<?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님의 서재 (-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7378287</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Wed, 03 Jun 2026 05:41:18 +0900</lastBuildDate><image><title>-</title><url>http://image.aladdin.co.kr/img/blog2/manage/profileimg.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27378287</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description></image><item><author>-</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계발] ‘나‘는 왜 우주에서 가장 경이로운 존재인가_나와 잘 지내는 법 - [나와 잘 지내는 법 - 나를 만나는 49일 글쓰기 워크북]</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7378287/17313186</link><pubDate>Tue, 02 Jun 2026 15:2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27378287/1731318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12138407&TPaperId=1731318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63/18/coveroff/k61213840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12138407&TPaperId=1731318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나와 잘 지내는 법 - 나를 만나는 49일 글쓰기 워크북</a><br/>조민영 지음 / 스피어인 / 2026년 04월<br/></td></tr></table><br/>&nbsp;심리학 이론 중에 '자아 확장(self-expansion)이라는 표현이 있다. '나'라고 하는 것의 '경계'가 어디까지인가, 하는 물음에서부터 과정은 시작된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nbsp;가령 우리가 정의하는 '나'는 어디까지인가,​<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nbsp;쉽게 말해서 어느 영화의 장면처럼 '순간이동'이나 '시간이동'을 할 경우, '나'라는 것의 시공간을 이동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디까지 '나'라고 정의하고 이동할 수 있겠는가,하는 것이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nbsp;'손톱'의 경우 그 뿌리는 분명 살아 있겠지만 새로운 세포가 계속 만들어지므로 앞으로 밀려나온 세포는 케라틴으로 굳어진다. 이렇게 밖으로 나온 손톱은 이미 죽은 세포 덩어리다. 고로 우리는 손톱을 잘라내더라도 고통이나 상실을 느끼지 않고 그것이 떨어져 나감에 있어서 '나'가 분리되었다는 느낌도 갖지 않는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nbsp;그렇다면 머리카락, 손톱, 피부 각질, 우리몸에 있는 수십조 마리의 미생물은 '나'와 별개의 것들이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nbsp;우리몸의 60%는 물로 이뤄져 있다. 물은 대체로 태평양 증발한 수증기가 따뜻한 공기와 함께 상승하여 구름이 됐다가, 바람을 타고 이동하여 찬공기를 만나 비가 되어 땅에 내린다. 내린 비는 땅으로 스며들어 지하수를 거치고 수도꼭지를 통해 우리 입으로 들어온다.&nbsp;이렇게 들어온 물은 핵액 속에서 최소 수시간 혹은 수일을 머물고 몸 전체에서 짧게는 2주, 길게는 4주 정도 머물다가 소변으로 빠져나가 하수관을 지나고 정화시설을 거쳐, 강으로 흘렀다가 마침내 다시 바다에 이른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nbsp;즉 우리몸의 60%는 한달 전까지 태평양 바다의 일부였다. 이것은 동아시아 어느 호랑이의 방광에 머물었기도 하고, 인도 평원을 걷던 코끼리의 땀이기도 했으며, 수백년 전 이름 모를 사람이 흘렸던 눈물이거나 소변이기도 했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nbsp;'나'라는 것은 무엇인가.​<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나라는 것을 확장하다보면 꽤 경이로운 순간을 만날 수가 있다. 우리가 더 크게 비약하면 '별'에서 왔다는 증거를 알 수 있다. 우리 몸을 이루는 탄소와 산소, 질소와 철은 지구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이는 우주 초기에 오래된 별의 내부에서 핵융합을 통해 만들어진다. 이것들이 다른 원자와 중력으로 모여 있다가 초신성 폭발을 통해 우주 공간으로 흩어지기를 반복하면 결국 '내'가 된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nbsp;'나'는 모였다 흩어졌다를 반복하는 우주 생리 속에 잠시 모여 형태를 짓고 있는 찰라의 흔적일 뿐이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nbsp;어떤 감정에 의해 스스로가 괴로워지는 순간이 있다. 남들과의 비교, 자기 자신에 대한 자책, 열등감, 외로움, 슬픔.&nbsp;이런 것들은 '나'의 한계를 좁혔을 때 삶을 괴롭게하는 무엇이겠지만 '나'의 경계를 무너뜨려 확장시키다보면 '우주의 경이로움'의 한 조각일 뿐이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nbsp;'한낱 원자 알갱이'가 모였다가 폭발했다가를 반복하다가 이런 '감정'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은 생각할수록 신비롭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nbsp;우리는 금빛 물고기나 황금을 낳는 거위, 말하는 고양이에는 무한한 호기심과 관심을 갖는다. 이유는 그것이 '참 희귀하고 신비한 현상'이기 때문이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nbsp;이런 신비로운 현상이라는 것.​<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사실은 저 멀리에서 찾을 것 없다. 별의 죽음에서 태어난 원자가 모여,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이런 감정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이 더 놀랍지 않은가.​<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nbsp;천문학자 '프레드 호일'의 비유에 따르면 '고철 더미로 토네이도가 휩쓸고 지나갔더니 우연히 보잉 747 여객기 한대가 조립되어 나올 확률'과 얼마나 다른가.​<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이 무섭고도 믿기 힘든 우연이 바로 여기 '나'에서 일어나고 있다. 수십억 년 우주를 떠돌던 원자들이 잠시 모여 의식을 만들어 낸다니, 세상은 '나'를 관찰하고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우주 전체'를 이해하고 관찰하는 바와 다르지 않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nbsp;문뜩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어쩐지 자신이 초라해 보이고 우울하고 현실의 번아웃 상태에서 괴로운 상태에 머물고 있을 때, 너무 '나'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닌가. 어쩌면 너무 갇혀 있어서 작은 세계에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닌가.​<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nbsp;'나'라는 것이 '고정'됐다는 그 착각이 워낙 '금강'과 같아, 인도의 한 수행자는 오랜 세월 그것을 깨뜨리고자 노력했다. '금강'이란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물질 즉 '다이아몬드'를 의미하다. 깨지지 않는 그 관념을 깨부수자고 불교 경전 '금강경'은 물었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nbsp;'나'라는 것은 정말 고정된 값인가,​<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여러 글을 읽다보면, 혹은 글을 쓰다보면 '천체물리학'이든, '양자역학'이든, '심리학'이든, 종교나 수필이든, 그 모든 것이 '나'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게 돕는다. 그리고 그런 여러 글들은 내 속에서 섞여 자신만의 대답을 만든다. 다시말해서 오늘의 '나'에 대한 마음을 느끼고 기록하는 것은 150억 광년 우주의 역사상 단 한번도 일어난 적 없는 일에 대한 현상이고 기록이다.&nbsp;​<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nbsp;이 경이로운 관찰을 언제든 펜과 조금의 시간만 있으면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nbsp;​<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nbsp;조미영 작가는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라고 말한다. 언제든 자기 자신을 더 잘 이해하고 관찰하다보면 스스로 뿐만 아니라 '나'의 확장으로 만들어진 주변 세계에 대해서도 깊은 이해가 생기지 않을까.​<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class="Apple-interchange-newline">]]></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63/18/cover150/k61213840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2631810</link></image></item><item><author>-</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인문] 요즘 같은 ‘분노‘ 시대에 읽어야 할 책_나와 당신은 왜 분노하는가 - [나와 당신은 왜 분노하는가 - 우리가 서로를 적이라 믿게 만드는 마음의 함정]</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7378287/17301740</link><pubDate>Thu, 28 May 2026 14:1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27378287/1730174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12137353&TPaperId=1730174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18/23/coveroff/k81213735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12137353&TPaperId=1730174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나와 당신은 왜 분노하는가 - 우리가 서로를 적이라 믿게 만드는 마음의 함정</a><br/>커트 그레이 지음, 제효영 옮김 / 김영사 / 2026년 04월<br/></td></tr></table><br/> 생물학적으로 보면 인간은 분명 '포식자'의 특성을 가진 종이다. 다만 사자처럼 순수 육식포식자는 아니다. 현대 인류는 먹이사슬 최상위권에 올라 있어 만생명을 고루 다스리는 위치에 있는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우리의 신체 능력만 보면 생물종으로 우리가 처음부터 '포식자'에 위치 했었는지 의심해 볼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상대적으로 날카롭지 않은 '이빨'을 가지고 있다. 위협적인 발톱도 없고 느린 속도와 약한 근력도 가지고 있다. 고로 우리가 지구 최상위 포식자로 설계되었다고 생각하기 쉽지 않다.​ 포식자와 피식자는 진화과정에서 각자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진화해 왔다. 포식자의 대부분은 진화 과정에서 눈이 앞으로 향하게 진화했다. 거리 감각과 입체 시야가 사냥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피식자의 상당수는 눈이 양옆에 달려 있다. 넓은 시야로 주변의 위협을 빠르게 감지하기 위해서다.​ 우리의 눈은 분명 '포식자'의 그것을 닮았다. 다만 다른 대부분의 증거가 우리를 '피식자'라고 인도하면서 우리의 위치는 '피식자'와 '포식자' 그 중간 어디쯤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br><br> 우리가 이족보행을 하고 허리를 곧게 세우는 순간부터 우리의 시야는 허리와 목을 이용하여 넓어졌다. 거기에 타인과 협력을 통해 사방을 훑어 볼 수 있는 능력까지 갖추면서 우리는 사방을 경계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됐다. 그렇다면 우리는 '피식자'이면서 '포식자'인 종이지 않았을까.​ '미국 도덕심리학자', '커트 그레이'는 '나와 당신은 왜 분노하는가'라는 책에서, '우리가 서로를 적이라 믿게 만드는 불안과 분노은 '피식자'로 진화해 온 '인류종'이 가진 '방어기제'라고 말한다.​ 인간이 자신이 속해 있지 않은 집단에 대한 '위협'을 느끼는 이유는 단순히 '선과 악'이 개념이 아니라 '피식자'의 불안감을 '타인에 대한 위험'으로 인지하기 때문이다.​ '진보와 보수' '남성과 여성' '부모와 자녀' '온라인 커뮤니티' '종교' '국가 간 갈등'​ 현대 우리 사회가 '분노'로 가득찬 사회라고 증명해내는 다양한 갈등들이 사실은 오랜 시절, '포식자'로부터 잡아 먹히지 않기 위해 불안해 했던 조상들의 DNA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고로 인간은 공격성이 짙은 포식자라기보다, 단순히 위협에 민감한 존재라는 것이다. 우리의 뇌는 위험 신호를 과도하게 담지하도록 진화했다. 내부집단와 외부집단을 나누고 비록 내부집단의 구성원이 반사회적이라 하더라도, 외부집단의 구성원이 조금더 친사회적이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내부집단의 행동을 모방하고 방어하도록 행동한다.​ 인간의 대부분은 항상 자신이 피해자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많은데 이유는 '상대'를 위협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고로 그들을 '악'이나 '위협'의 존재로 상정하고 '분노'를 표출한다. 실제로 진보 혹은 보수적 정치 특성을 가진 이들은 상대쪽 진영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보며 '지능이 낮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그 비율은 진보와 보수 양쪽에서 크기 다르지 않은데, 통계적 결과를 살펴보면 그들의 지능과 학력 차이가 무의미한 차이라고 한다.<br> 커트 그레이는 인간의 이런 성향을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뇌과학' 관점에서, '사회심리학적 관점'에서 관찰한다. 얼핏 '사피엔스'처럼 '역사와 진화'를 이야기하는 듯 하다 현실로 돌아와 현상을 관찰하고 연구한다.​ 뉴스를 일부러 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러나 얼핏 뉴스를 보게 되면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분노'하고 있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자신의 불안을 표출하는 그 방식이 '피식자'가 갖던 불안을 증명하는 것 같기도 하다.​ 단순히 '선과 악', '지능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인간종의 작동 매커니즘을 이해하고 나면 조금 더 우리가 갖는 '분노'의 감정을 객관적으로 살펴 볼 수 있지는 않을까.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br class="Apple-interchange-newline" style="caret-color: rgb(0, 0, 0); color: rgb(0, 0, 0); white-space: normal;"><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18/23/cover150/k81213735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1182345</link></image></item><item><author>-</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계발] 현대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 말 사용법_적을 만들지 않는 대화법 - [적을 만들지 않는 대화법 (18주년 특별기념판) - 사람을 얻는 마법의 대화 기술 56]</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7378287/17299513</link><pubDate>Wed, 27 May 2026 11:2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27378287/1729951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52138335&TPaperId=1729951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331/54/coveroff/k75213833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52138335&TPaperId=1729951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적을 만들지 않는 대화법 (18주년 특별기념판) - 사람을 얻는 마법의 대화 기술 56</a><br/>샘 혼 지음, 이상원 옮김 / 갈매나무 / 2026년 05월<br/></td></tr></table><br/> 알량한 자존심으로 '사용설명서'를 외면한 경험은 누구나 있다. '내비게이션' 없이 길을 찾거나, 약 복용법을 대충하는 경우도 있다. ​엑셀 단축키, 함수를 배우지 않고 마우스로만 버티는 경험. 운동 자세를 배우지 않고 몸만 축내는 경험.스마트폰 설정을 건드리기 싫어서 기본값으로만 몇 년을 쓰는 경험도 있다.​ 여러 시행착오 끝에 우리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사용설명서를 들여다본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거야!', 혼자 골똘하게 고민해도 해결되지 않았던 문제가 이미 거기에 적혀 있을 때가 많다. 같은 길을 몇바퀴나 돌다가, '안되겠다, 내비게이션을 켜야겠다'하고 켜고나면 너무 쉽게 길을 안내해서 허무할 때도 있다.​ 가만보면 세상은 애초에 '모든 사용설명서를 먼저 제공해 주었다. 인류가 쌓아 놓은 집단지성은 세대가 지나고나면 흙이 되어 버리는 다른 동물들과 다르게 아래로 옆으로 전달할 수 있게 됐고 그렇게 거인의 어깨 위에서 더 넓은 세상을 보면서 조금 더 나아갈 수 있게 됐다.​ 인류는 30만년간 5억 제곱킬로미터에 펼쳐진 수많은 '사피엔스(지혜로운 인간)들'의 발견을 무시하고 혼자서 스스로 해 보겠다는 것은 용기가 아니라, 비효율이자 오만에 가까운 일일지 모른다.​ 물론 직접 부딪혀 배우는 경험은 중요하다. 실패도 중요하다. 시행착오 끝에 얻어지는 감각도 중요하다. 다만 문제는 이미 수없이 반복된 실패를 다시 처음부터 재현하고자 하는 아집에 있다.<br> 미국의 '희극인' '그로우초 막스'는 이렇게 말했다."남들의 실수에서 배워야 한다. 그 실수를 다 직접 겪어보기에는 인생이 짧다."​ 그렇다면 수많은 현세와 과거의 '사피엔스'들이 남긴 인간관계의 실패와 후회, 갈등, 화해를 다루는 방법을 외면하는 것이 맞을까.​ 다른 '사용설명서'처럼 인류는 수많은 실패와 성공을 수십만년간 쌓아가면서 노하우를 축적했다. 그 중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기술'인 '화법'도 마찬가지다.​ '적을 만들지 않는 대화법' 역시 그런 종류의 책이다. 누군가는 평생 인간관계 속에서 상처를 입고, 누군가는 말 한마디로 관계를 잃는다. 또 누군가는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다만 우리가 겪는 이런 상황이 인류 탄생 이래로 최초, 전세계 모든 인간들 중 나에게 첫번째로 일어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와 비슷한 다른 시대 혹은 다른 나라 사람들이 이미 비슷한 문제를 고민해 봤으며 친절하게도 그것을 잘 기록하였다. 대부분의 관계에 대한 문제는 완전히 새로운 형태로 나타나지 않는다. 오해나 감정적 반응, 불필요한 자존심, 상대를 이기려는 태도, 자기 말만 맞다고 생각하는 습관은 시대가 바뀌어도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게 반복되어 일어난다.​ 이는 다양한 국가와 시대의 '소설'이나 '역사적 기록'만 봐도 알 수 있다.​ '샘혼'의 '적을 만들지 않는 대화법'에는 그들의 기록이 적혀 있다. 또한 흔히 '밥 먹고 그것만 연구한다'라고 하는 '전문가'의 정리도 함께 있다. '샘혼'은 미국 비즈니스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다. 그녀는 강연이나 워크숍, 다양한 저술을 통해 왕성한 활동을 하면서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다시 이야기 한다.​ 그런 그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또다시 실전 경험으로 실패를 쌓아가며 인류 역사 만큼의 데이터를 혼자 만들어 가기에 우리의 시간은 너무나 짧다.<br> 스마트폰에 '최신 기능'이 업데이트 되거나, 더 좋은 카메라 성능을 탑제 하는 것만큼 우리 인간 자체에게 가장 유용하게 쓰일 반영구적 기능은 '말하기'다. 이는 한번 '업데이트'가 되면 퇴보하지 않고 '배터리'도 달지 않으며 '버전'이 오래됐다고 버벅거리는 경우도 없다.​ 언제나 복리로 그 기술을 쌓아 올릴 수 있으며 '외부 장치'가 아니라 내 신체에 직접 이식할 수 있는 기술이다.​ 우리는 '말'이라는 강한 도구를 가지고 살아간다. '말'은 사회생활에서 필수적이고 '가족'과 '친구'를 사귀는데 가장 중요하며 스스로를 갈고 닦는데 필수불가결한 도구다.​ 그것을 어제와 오늘, 언제나 불편함을 느끼며 업데이트를 하지 않은 채, 구버전을 고집하는 것은 어찌보면 아둔한 일일 것이다. 가끔 어떤 어른들을 보면 세상이 바뀌었는데도 불구하고 시대에 맞지 않는 구식 핸드폰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다. 그런 기기로는 간단한 '은행 업무'도 힘들다. 약간만 시간을 내면 바로 달라질 수 있는데 그렇지 않는 경우들이 있다.  그런 경우에는 '스마트 기기' 뿐만 아니라 사고하는 방식이나 말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변화를 두려워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의미에서 스스로를 업데이트하는 일은 나이와 상관없이, 어쩌면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더 갈고 닦아야 하는 일인 것 같다.​ 오늘 나는 '어떤 도구'를 가지고 세상에 나서는가, 그런 생각을 해 보게 된다.<br>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br class="Apple-interchange-newline" style="caret-color: rgb(0, 0, 0); color: rgb(0, 0, 0); white-space: normal;">]]></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331/54/cover150/k75213833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3315475</link></image></item><item><author>-</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역사] 과거를 배우는 학문이라기 보다, 현재를 낯설게 보게하는 역사_말도 안 돼 세계사 - [말도 안 돼 세계사 - 고대 이집트부터 제2차 세계대전까지 이상하게 빠져드는 역사 속 23가지 명장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7378287/17297991</link><pubDate>Tue, 26 May 2026 14:2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27378287/1729799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12137454&TPaperId=1729799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28/12/coveroff/k31213745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12137454&TPaperId=1729799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말도 안 돼 세계사 - 고대 이집트부터 제2차 세계대전까지 이상하게 빠져드는 역사 속 23가지 명장면</a><br/>지식지상주의 지음, 염명훈 감수 / 북라이프 / 2026년 04월<br/></td></tr></table><br/> 서부를 향하는 '우편배달부'의 이야기라던지, 고대 그리스의 '헬스장'의 이야기, 철도 회사 직원들의 여가 '스포츠' 이야기. 우리가 흔히 교과서에서 배우는 '역사'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현실 우리 일상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것들의 이야기다. 개인적으로 이런 류의 역사를 좋아하는데 '거시적 역사'들이 주로 '거대자본'이나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일상에서 얼핏 획일적인 경우가 많다.​ 모든 학문이 그렇겠지만 거시적인 정보에서 점차 내려가며 미시적인 정보를 알게 해주는 경우가 있고 미시적인 정보부터 시작하여 올라가다보면 거시적인 정보에서 만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어느쪽이 더 좋은지는 알 수 없지만 후자 쪽이 접근 가능성이 있는 것은 분명 한 것 같다.​ 역사에 관한 책은 여러 시선으로 읽을수록 좋은 것 같다. 인생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역사'은 '사피엔스'와 '총균쇠'였다. '인류'를 지칭하는 명사를 '사피엔스'라고 시작하는 것부터, 어째서 인류 문명의 발전 속도는 각각 다르게 됐는지를 설명하는 총균쇠의 도입부도 몹시 새로웠다. 단순히 사건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사피엔스'라는 종의 특성이 어떻게 발현되는지, 지리와 지구라는 물리적 공간이 어떻게 역사에 관여했는지 다양한 시선을 보여 준다.​'지식지상주의'의 '말도 안돼 세계사'에서도 '아, 그랬겠구나'하는 인사이트가 있었는데, 여권의 향상이 '세계대전'에서 출발했다는 시선이다. '여성의 경제참여'가 언제부터 활발해졌는지는 굳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굳이 생각해보면 1971년에야 여성 참정권이 도입됐다는 '스위스'를 보며, '여성의 권리'가 생각보다 최근에 발전됐다는 사실을 알았다. 특히나 스위스의 칸톤 지방에서는 무려 1990년까지 여성의 투표권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하니, 우리가 누리는 대부분의 상식들이 생각보다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br> 1차 세계대전 이후 수많은 남성 노동자들이 전쟁에서 사망하거나 전쟁 인프라 구축을 위해 소모되고 있을 때, 각 국가에서 '급하게 여성의 노동력'을 찾았다. 스위스는 비교적 전쟁의 직접적 피해를 덜 입근 국가였기에 변화의 속도 역시 느린 편이었다.​ 앞서말한 '영국의 철도 노동자의 스포츠'가 '프리미어 리그'가 되고, 플라톤이 신체를 단련하던 공간이 '헬스장'이 된 것처럼 변화는 아주 점진적으로 일어났지만 확실하게 일어났다.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면 세상에 많은 것들이 '호기심의 대상'이 된다. 언젠가 아이들과 외출을 했는데 아이가 물었다. '아빠, 구름은 왜 안 떨어져?' 혹은 '호주머니에 구름을 담아오면 안돼?', '달은 왜 자꾸 우리를 따라오는 거야?'하는 질문을 받은 적 있다. 그것에 대한 대답보다 먼저 떠오른 것은 아이만큼 어린 나이에 내가 비슷한 질문을 아버지께 했건 기억이었다.​ 나도 세상이 다 호기심 투성이었던 적이 있었는데, 어느순간부터 어설프게 알고 있다는 착각으로 호기심이 줄어 들었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저절로 그냥'이라는 것은 없다. 항상 이유와 원인이 있었을텐데, 어른이 되면서 '그냥 원래 그래'라는 방식의 사고방식을 하게 되면서 삶이 지루하고 재미가 없어지는 듯하다.​ 어쩌면 역사는 과거를 배우는 학문이라기 보다, 현재를 조금 더 낯설게 바라보게 만드는 학문에 더 가까운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다양한 시선으로 역사를 배우면 단순 '공부'가 아니라 삶이 즐거워지는 효과가 있는 듯하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28/12/cover150/k31213745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1281291</link></image></item><item><author>-</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수필] 더 느리고 간소하게..._간소한 삶 - [간소한 삶 - 적은 소유로 깊은 향유를 살아가는 사람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7378287/17296183</link><pubDate>Mon, 25 May 2026 16:0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27378287/1729618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1418406&TPaperId=1729618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85/77/coveroff/899141840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1418406&TPaperId=1729618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간소한 삶 - 적은 소유로 깊은 향유를 살아가는 사람들</a><br/>스콧 새비지 엮음, 강경이 옮김 / 느린걸음 / 2026년 05월<br/></td></tr></table><br/> 얼마 전, 커피 그라인더를 하나 구매했다. 요즘처럼 '전동 그라인더'는 아니고 핸드밀 방식으로 그 본체가 '목재'로 되어 있는 그라인더다. 그라인더를 구매하고 얼마 뒤에는 '모카포트'를 또하나 구매했다. 물품을 늘리는 것을 경계하고자 하는데 어느덧 정신을 차려보면 하나 둘 물건이 늘어나는 것이 느껴진다. 그래도 꽤 고민을 하고 구매한 흔적이 있다. 첫째 모카포트와 핸드밀 그라인더 둘다 '전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이게 어떤 의미에서 비효율적일 수 있겠지만 구매한 아이템에는 꽤 만족하고 있다.​ 수동으로 커피 원두를 갈면 '바스락'거리며 갈리는 원두의 향과 느낌을 느낄 수 있다. 날카롭게 돌아가는 '모터' 소리가 아니라 촉각과 시각, 후각으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편안함이 '커피 제조' 자체부터 '커피'를 즐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스콧 새비지'가 엮은 '간소한 삶'에는 자본주의의 상징인 '미국'에서 '간소한 삶'을 살고 있는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묶었다.​ 책을 읽는데,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이 '자동'이 되고 기계가 일상화 된 세상에서 '인간다움' 즉 '인간다운 감성'이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닐까. '야구'에서 투수들이 던지는 공의 최고 시속은 160km/h 이상이다. 이 엄청난 구속에 사람들은 열광하고 투수들은 이 공을 더 빠르고 정확하게 던지기 위해 끊임없이 신체를 단련한다. 세상 이처럼 비효율적인 행위가 있을까. 인간을 위해 대신 공을 던져주는 '피칭머신'의 경우 '속도 제한'이 걸려 있다. 이는 인간의 '구속력'에 맞춰 의도적으로 낮은 속도에 설정된다. 기술적으로 이 피칭머신의 구속력은 200km나 300km 이상으로 만들어 낼 수도 있다. 마운드 위에 투수가 아니라 기계 하나만 세워 둔다면 야구는 훨씬 효율적인 스포츠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럼 '야구'는 더 빠른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기계'들에게 대체될 수 있다. 그러나 스포츠에서 이런 기계는 '선수'로 뛸 수 없다.<br> '스포츠'는 '효율'보다 '규칙'과 '절제'가 중요한 행위다. ​ 축구에서 '오프사이드'라는 반칙이 있다. 모든 사람들이 '골'을 기다리고 있지만 축구에서는 '오프사이드 규칙'을 만들어 '골이 너무 쉽게 들어가는 상황'을 절제 시켰다. 초기 축구에서 '공격수'들이 효율적으로 골을 넣기 위해서 골대 앞에 그냥 서 있다가 긴 패스를 받고 점수를 만들어서 그렇다.​ AI 이후 사람들은 '인간이 직접 하는 것'에 큰 가치를 느끼는 경향이 강해졌다. 그리고 단순 '효율'이 아니라 '규칙'을 통해 '절제'된 '게임'이 더 큰 가치를 가진다.​ 가치는 '결과'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과정'에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학습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아이폰' 하나를 구매하기 위해서는 1~200만원의 현금이 필요하지만 '아이폰'을 생산과정을 구매하기 위해선 천문학적인 금액이 필요하다. '결과물'은 싸구려일 뿐이다. 인류 전체가 그것을 학습하고 있기 때문에 AI와 기계 시대에 오히려 '아날로그'에 더 큰 차치를 주고 있는 문화가 생겨나고 있다.​ 본래 모든 것은 그렇다. 인간이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것에 '가치'는 부여된다. '반짝거리는 광물'에 '가치'를 부여하면 '금'이라는 가치가 생기고 어떤 '종이'는 단순 문자와 숫자가 적혀 있을 뿐이지만 그 '광물'의 수백배의 가치를 지니기도 한다.​ 우리가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에 변화는 이미 일어나고 있다. AI와 기계가 만들어내는 값싼 결과물이 아니라 그것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얻게 되는 다양한 부산물의 감정들.​ 우리 모두가 그것에 가치가 있다고 여길 때, 그것의 시장은 더 커질 수 있다. 간소한 삶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라이프 스타일이다. '워렌버핏'이나 '빌게이츠', '일론 머스크' 등 세계 최고의 부자들의 특징이라면 물욕이 크지 않다는 점이다.<br> 그들은 무엇이든 살 수 있는 사람들이지만, 의외로 삶의 방식이 단순하다. 어쩌면 액자속 그림에 코를 박고 사는 우리가 '그림 전체'를 감상하지 못하는 것처럼 그들은 그림 전체를 조망하며 살아서 그럴지도 모른다.​ 멀리 떨어져 그림 전체를 바라보면 본질이 무엇인지 볼 수 있다. 사람들이 부유해질수록 '소비'보다는 '시간과 경험, 몰입'과 같은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돈으로 대부분의 결과를 살 수 있게 된 순간부터 오히려 '결과'는 흔한 '싸구려'가 됐기 때문이다. 희소성이 발생한 것에 우리는 가치를 느낀다.​ 천천히 커피를 내리고, 천천히 종이책을 읽고, 스포츠를 감상하는 일은 어찌보면 자판기가 내려준 커피나 자극적인 쇼츠, 공장 기계들끼리 무한 기술 경쟁을 벌이는 방면보다 훨씬 가치 있고 인간다운 삶에 가깝지 않을까.]]></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85/77/cover150/899141840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1857739</link></image></item><item><author>-</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인문]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 진화의 설계_달리는 호모 사피엔스 - [달리는 호모 사피엔스 - 700만 년을 달려온 몸과 마음에 새겨진 진화의 설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7378287/17285561</link><pubDate>Tue, 19 May 2026 13:3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27378287/1728556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32137046&TPaperId=1728556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035/32/coveroff/k93213704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32137046&TPaperId=1728556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달리는 호모 사피엔스 - 700만 년을 달려온 몸과 마음에 새겨진 진화의 설계</a><br/>배환국 지음 / 소금나무 / 2026년 04월<br/></td></tr></table><br/><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 '미술'이라던지, '음악', '지능'이라는 것.<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인간을 '인간'답게 분류할 수 있는 그 고유한 기능들은 과연 인간에게 '신'이 어느 날 갑자기 선물한 재능이었을까.<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 '호모 사피엔스'가 허리를 펴고 두 발 걷기를 시작하면서, 다른 영장류에 비해 더 가늘고 짧은 '털'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더 오래, 길게 걸을 수 있게 됐다. 털복숭이 다른 포식자들에 비해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 근육은 없지만 강인한 체력을 기반으로 우리는 더 오래 걷고 오래 뛸 수 있게 됐다.<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 이 '지구력'이라는 장점은 '지능'보다 먼저 우리에게 찾아온 선물이었다. 땀배출이 용이해지면서 인간의 사냥법은 '도구'가 아니라 '체력'이 우선시 됐다. 이어 단백질 공급이 용이해지며 지능은 조금더 크게 발달됐고 이 지능으로 인한 '도구 이용'이 가능하게 됐다.<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 우리는 동물을 쫒기 위해, 무리를 지어 다니며 소리를 질러댔고 피식자들은 인간 무리를 피해 빠르게 도망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고서 체력소진으로 최후을 맞이 하게 된다. 연약한 피부를 밖으로 노출하고 있던 인간이 다른 인간과 협동하며 무리를 지어 다니고 걷고 뛰기 위해 우리는 '심박동'에 맞는 '발걸음'을 가졌다.<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 오른발 왼발이 심장 박동에 맞게 땅을 딛고 떼면서, 우리는 자연히 '리듬'을 얻게 됐다. 더 빠른 리듬은 더 빠른 발걸음을 만들고, 더 빠른 발걸음은 더 빠른 심박동을 만들어 냈다.<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 어느날 갑자기 '진화'와 상관없이 고귀하게 신에게서 선물 받았을 법한 '음악'이라는 재능은 그렇게 수십만년 진화의 산물 중 하나다.<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 우리 인간이 두발로 걷고 서기 시작하면서 '시야'는 몹시 넓어졌다. 인간의 또다른 재능이 발견되는 순간이다. 인간의 높아진 시선은 '포식자'로부터 경계와 '피식자'를 발견하는 두 가지의 장점을 갖게 했다.<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 넓게 펼쳐진 시야가 우리에게 안정감을 주는 이유는 오래된 진화에서 자연스럽게 얻게 된 우리의 재능이다.<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 1980년대 환경 심리학자인 카플랜 부부가 제시한 '주의회복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집중력은 배터리처럼 소모된다. 다만 자연환경이 그 집중력을 회복시킨다.<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 넓은 초원과 수평선, 멀리까지 보이는 자연 경관은 인간에게 단순한 '심미적 아름다움'의 존재를 위한 존재가 아니다. 이는 오랜 시간 생존과 연결된 감각에 가깝다. 먼 곳까지 볼 수 있다는 것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포식자를 먼저 발견하고 먹잇감을 찾을 수 있다는 의미다.<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 인간이 닫힌 공간보다 열린공간에서 안정감을 갖도록 진화한 이유다.<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인간의 진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름아닌 '걷기'와 '달리기'라는 진화의 산물이다. 우리의 심장은 지쳐 쓰러질 때까지 사슴을 쫒던 선조들의 심장이다. 우리 현대인이 소비하는 '당', 끊임없이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마음, 타인과 연결되어 있을 때 느끼는 소속감을 포함해 거의 모든 결과물에는 '걷기'가 있었다.<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 어쩌면 인간 문명의 대부분은 단순한 '직립'의 결과물인지도 모른다.<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인간은 두 발로 걷기 시작하면서 손이 자유로워졌다. 자유로워진 손으로 불과 그림, 도구를 만들고 문자를 발명했다. 곧은 허리는 하늘을 올려다 보기 좋은 시야각을 만들었다. 이로써 우리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더 추상적인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구름과 별의 모양을 보고 날씨와 계절을, 그에 따른 자연의 변화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로써 우리는 '신'이라는 '존재'를 떠올렸다. 종교와 철학, 과학 역시 걷고 뛰는 과정에서 발생된 진화의 부산물이다.<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 인간은 이상하게 걷는 동안 생각이 깊어진다. 실제로 칸트, 니체, 아인슈타인 모두가 규칙적으로 걷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 인간의 뇌는 본래 의자 위에 장시간 고정된 채 형광등 아래에서 모니터만 응시하도록 설계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일정한 리듬으로 몸을 움직이며 주변을 천천히 살피는 과정 속에서 더 안정적인 사고의 확장이 일어난다.<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 걷는다는 행위는 단순한 이동이 아니다. 걷는 동안 인간의 시선은 끊임없이 흔들리고 주변 풍경을 스캔한다. 좌우 균형을 잡기 위해 소뇌와 전정기관이 작동한다. 일정한 박자의 움직임은 심박과 호흡을 안정시키고 인간의 사고를 지나치게 한 곳으로 고착되지 않도록 한다.<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 이동하는 것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주변환경을 만들고 더 많은 피식자의 발견 가능성을 높인다. 또한 포식자로부터 안정적인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안정감도 줬다. 그러나 현재 우리는 얼마만큼이나 걷고 뛰는가.<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 현대인들의 많은 정신적 문제 역시 단순 의지력 부족이 아니라 진화의 반대 방향으로 향하는 생활 습관의 반복 때문일지도 모른다.<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 다시 말해서 근현대 인간의 역사는 고작해야야 수백년 밖에 되지 않는다. 사피엔스 탄생 30만년의 역사에서 우리를 만들어낸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우리가 가진 일상은 얼마나 진화에서 역행하는지 알 수 있게 한다.<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035/32/cover150/k93213704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0353248</link></image></item><item><author>-</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계발] 많이 생각하지 말고, 깊게 생각하라: 생각중독에서 벗어나는 법_씽크딥 - [씽크 딥 - 가짜 생각에서 벗어나 진짜 생각이 시작되는 순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7378287/17284003</link><pubDate>Mon, 18 May 2026 15:2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27378287/1728400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72137351&TPaperId=1728400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17/36/coveroff/k57213735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72137351&TPaperId=1728400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씽크 딥 - 가짜 생각에서 벗어나 진짜 생각이 시작되는 순간</a><br/>유디트 베르너 지음, 배명자 옮김 / 페이지2(page2) / 2026년 04월<br/></td></tr></table><br/><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 뇌는 언제나 작동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생각'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도록 몇몇 계발서는 말하고 있지만 다른 장기와 마찬가지로 '뇌' 역시 꾸준하게 작동되며 작동되지 않는 '뇌'는 죽은 '뇌' 밖에 없다.<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 '생각'은 화수분처럼 쏟아져 나와 우리를 괴롭힌다. 그것은 우리가 먹은 음식이 꾸준하게 '소화'되어 배변으로 나오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먹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눈, 코, 피부 등의 감각기관을 통해 흡수하고 그 흡수된 정보는 '뇌'라는 장기로 이동하여 끊임없이 소화되고 배출되어야 한다.<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 취식된 음식이 장기로 들어와 소화되지 않고 멈춰 있는 것이 위험하듯, 받아들여진 정보 역시 멈춰 있는 것이 부자연스럽다. 그것은 '뇌'라는 기관에서 끊임없이 해석하고 소화하여 '루미네이션(Rumination)되야 한다.<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 '루미네이션(Rumination)'은 '반추'라는 의미로 소와 같은 가축이 이미 먹은 음식물을 다시 끄집어내어 되새김질 하는 행동이다. 이것은 불필요한 작업이 아니라 해당 동물에게 어쩌면 꼭 필요한 행동에 가깝다.<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 그렇다면 우리를 괴롭히는 '생각중독'은 과연 어떤 것을 의미하는가.<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뇌'라는 기관이 하는 일을 멈추게 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일인가. 흔히 말하는 SNS 혹은 자기계발서에서 '생각을 멈추세요'라고 말한다.<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 '과도한 생각은 독이 됩니다. 생각을 멈추세요'<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 이 말이 얼마나 폭력적인지는 비슷한 매커니즘으로 작동하는 다른 현상에 빗대어 보면 알 수 있다.<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 살을 빼고자 하는 이들에게 '소화 멈추세요.' 라던지, 피곤으로 잠이 쏟아져 오는 사람들에게 '피곤함을 멈추세요', 병을 앓고 있는 이에게 '고열은 위험합니다. 열나는 것을 멈추세요'는 불가능하다. 고로 '생각을 멈추세요'는 '뇌'라는 기관의 매커니즘에 역행하는 소리다.<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 생각 과잉은 의지력이 관여하는 분야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뇌'라는 기관이 '끊임없이 작동'할 것이라는 전제를 둔 조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조언은 '생각을 멈추세요'가 아니라. 어차피 작동할 생각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 과잉 생각은 '생각'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방향성'의 문제다. 가령 같은 '에너지'를 가지고도 누군가는 '발전기'를 돌려 유의미한 생산능력을 만들어내는 반면, 누군가는 그냥 의미없이 '모터'를 돌려 같은 자리를 맴돌게 하여 방전도록 하기도 한다.<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 어차피 멈춰지지 않는 생각이라면 그 '생각'의 동력을 무한대로 에너지 방출의 형태로 방치할 것이 아니라, 유의미한 '고찰'을 통하여 '그 주도권'을 가지고 와야 하는 것이 '유디크 베르너'의 주장이다.<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 많이 생각하지말고 깊게 생각해라, 사유에 대한 주도권을 갖고 피상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본질에 대해 '고찰'해라.<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 그것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각'에 대한 제대로 된 사용법이다. 팔을 잃거나 다리를 잃어도 '나'라는 '자아'가 유지되지만 '생각'을 잃으면 '자아'가 상실하는 것처럼, '생각'은 곧 '자아'를 의미한다. 즉 우리의 정체성 그 자체인 생각에 '주도권'을 가지고 날카로운 철학적 사유를 발판 삼아 진짜 내면과 외면이 일치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은 아닐까.<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17/36/cover150/k57213735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1173642</link></image></item><item><author>-</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메뉴  더보기  공유  댓글  라이킷 4  응원하기 [소설] 과연 누가 짐승이었는가 &amp; 강 - [다나]</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7378287/17281978</link><pubDate>Sun, 17 May 2026 16:1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27378287/1728197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77394&TPaperId=1728197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36/78/coveroff/893747739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77394&TPaperId=1728197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다나</a><br/>박서영 지음 / 민음사 / 2026년 01월<br/></td></tr></table><br/><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 소설의 도입을 몇 번이나 읽다가 말했다. 소설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 시작해서 그렇다. 어떤 소설은 대략의 '줄거리'를 알기 때문에 도입의 이해가 쉬운 반면 어떤 소설은 '감'도 잡히지 않는 제목과 표지만 가지고 시작한다.<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 '다나'는 후자이다.<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 소설은 난데없이 '자신'의 어머니가 '짐승'이라고 고백하며 시작한다. 마치 '카프카'의 변신처럼 도발적인 도입이다. 어떤 은유적 표현이 담겨 있을까, 하고 소설의 전개를 따라가다보면 '짐승'이라는 표현이 '은유적 표현'이 아니라, 표현 그대로 '짐승'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 주인공의 어머니는 실제 '짐승'이다. 이 무논리적 도입을 이해하기 위해서 어느정도의 참을성이 필요하다. 소설이 페이지가 거듭되고 좌측으로 넘어간 페이지가 도톰하게 잡히기 시작하면 '오호라'하고 작가가 전개하려고 하던 설정의 가닥이 잡힌다.<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 그 뒤로 소설은 '영화'처럼 흥미진진하고 빠르게 흘러간다.<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 소설은 '소나무 해충'을 옮겨 다니는 '다나'라는 동물에 대한 이야기다. '다나'는 '해충'을 옮겨 다닌다. '소나무 에이즈'로 알려진 '소나무재선충병'을 옮겨 다니는 존재다. 다나의 흔적은 '살림'과 마을을 파괴한다.<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 '외지'에서 온 인종(?)에 대해 '짐승'이라는 비유를 하고 그들이 사회의 악을 옮기는 나쁜 것이라 표현한다. 그들은 곧 '재난'이고, '침입자'이며, '짐승', '박멸해야 할 대상'이다. 심지어 그의 핏줄마저 그들을 '증오'의 대상으로 둔다.<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 다나의 '딸'은 스스로가 '다나'의 '딸'이라는 것을 숨긴다. 그것이 결국 이 사회에서 '살아남는 방식'이며 그로인해 '보통의 사회구성원'이라는 이름표를 얻게 된다. 그리고 다른 사회구성원들처럼 핏줄에 대한 '증오감'을 키워간다.<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 도서에서 '다나'는 끝까지, '짐승'으로 묘사되지만 생물학에서 교배를 통해 생식이 가능한 자손을 낳을 수 있으려면 '종' 혹은 '목'이 가까워야 한다. 현재 알려진 과학 기준으로 '인간'과 안정적으로 교배해서 자손을 낳을 수 있는 동물은 없다.<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 이는 확인된 사례도 없거니와 현대 생물학에서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본다. '소설' '다나'에서는 외국에서 포획한 '다나'라는 짐승을 대한민국 동물원에서 기르며 시작된다. 인간은 분명 아니라고 하지만 '다나'를 담당하는 '동물원 사육사'와 '다나'와의 사이에서 소설의 주인공이 나오게 된다.<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 과연 다나는 '짐승'이었을까.<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여기에 대한 표현은 명확하다. 소설에서 '다나'에 대한 언급으로 '짐승'만이 유일하게 사용될 뿐이다. 이에 대해 인류, 인종에 대한 그 어떠한 표현방법도 없다. 단지 짐작만할 뿐이다. '다나'는 과연 '짐승'이었을까.<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 '다나'와 '사육사' 사이에서 태어난 '주인공'은 다나의 과보호 속에서 꽤 심적, 육체적 상처를 받는다. 그 과정에서 '다나'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다만 다나의 아이에게 했던 꽤 잔인한 폭력은 '외부'에서 '자식'을 보호하고자 했던 잘못된 모성애의 일부라고 굳이 이해해 볼 수 있다.<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 어쨌건 다나의 딸은 다나를 벗어나 '사회'에서 생활하게 된다. 그녀는 반인반수임에도 '반쪽'의 피를 부정하고 철저하게 '인간'이 되고자 노력한다. 스스로 자신이 인간과 어떻게 다른지를 매순간 느끼고 어떤 경우에는 질투한다.<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 사회에 악을 끼치는 '다나'에 대한 증오감도 함께 커진다. '다나'를 직접 죽이고 싶다는 욕망은 점차 커진다. 스스로도 사회가 만들어낸 '증오감'에 철저하게 '세뇌'되며 그 절대악을 처단하기 위해 가장 앞서 나간다. 소설의 후반부에 들어서면 '다나'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 근거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 그러나 이미 커져버린 '증오감'은 이제 근거가 없어도 저절로 작동된다.<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정치와 사회가 만들어낸 증오의 대상에 완전히 세뇌된 채, 자신의 어머니를 '짐승'으로 취급하며 직접 사냥하러 다니는 '딸'의 이야기에서 자칫 '허무맹랑한 소재'일 수 있는 글이 꽤 현재 우리의 어떤 모습을 닮고 있다는 동질감을 가지게 한다.<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 소설은 마지막까지 이어지며 읽고 있는 독자로 하여금 다시 묻는다.<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자, 이제 과연 누가 짐승이었는가'<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해충을 옮긴다고 믿어졌던 '다나'였는가, 아니면 근거조차 없는 희미한 공포를 증오로 증폭시키고, 그 증오를 정의로 소비하던 우리 사회였을까.<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36/78/cover150/893747739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5367880</link></image></item><item><author>-</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교육] 세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_초3부터 SKY는 시작됩니다 - [초3부터 SKY는 시작됩니다 - 기적의 최상위 초중고 공부 전략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7378287/17278449</link><pubDate>Fri, 15 May 2026 17:1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27378287/1727844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52931038&TPaperId=1727844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4213/34/coveroff/k05293103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52931038&TPaperId=1727844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초3부터 SKY는 시작됩니다 - 기적의 최상위 초중고 공부 전략서</a><br/>하지원 지음 / 다산에듀 / 2024년 06월<br/></td></tr></table><br/> 굉장한 제목이다. 개인적으로 다른 부모처럼 엄청난 교육열을 올리며 '학원'을 보내거나 아이에게 학습 강요를 하진 않는다. 다만 아이에게 '구몬'이나 '학교숙제'와 같은 해야 할 일을 명확히 알고 '반드시 하라'라고 할 뿐이다. 개인적으로 아이가 학교에 숙제를 놔두고 온다면, 나는 부모로써 반드시 아이를 학교로 다시 돌려 보낸다. 비가 오더라도, 너무 덥거나 눈이 오더라도 그렇다. 나는 반드시 아이를 다시 학교로 돌려 보낸다. '실수'는 용서할 수 있지만 실수에 대한 '책임'은 반드시 스스로 져야 한다.​ 예전 법륜 스님의 강의를 보는데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상대의 잘못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었다. 이에 대답이 너무 명쾌했다.​ '상대를 용서한다' 그러나 '법적인 절차는 밟는다'감정으로 상대를 대하는 것과 '법률'의 대처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상대가 혹은 사회가 잘못되어 있다면 '화'를 내며 감정적으로 대처할 것이 아니라, 일단 상황과 상대, 환경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고소'할 것은 '고소'하고 '고발'할 것은 '고발'하여 스스로를 감정에게 좀먹지 말라는 것이다.​ 제주시에서 서귀포시로 이동 중에 아이가 '읽어야 할 책'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고 말했었다. 외출시 내가 정한 규칙은 몇이 되지 않는데 어렸을 때부터 반드시 '책'을 챙겨 나가도록 이야기 했다. 읽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책은 챙기라고 이야기 했었다. 그러나 아무리 목적지에 거의 도착했다고 아이가 '깜빡'하고 안가지고 왔어, 라고 말한다면 나는 군말 없이 다시 돌아간다.​ 융통성이 없다고 할 수 있겠지만, 만약 '우리가 가던 길이 더 멀어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가는 길이었다고 하더라도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방법을 택할 것이다. 물론 그 비용에 대한 감당은 해야 한다. 그러나 그런 일은 아마 평생 그 뒤로 다시는 생기지 않을 것이고 인생 전체로 봤을 때, 비용은 확실히 줄어들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 아이와 여행을 떠나도 반드시 그날 해야 할 분량을 면제 받는 일 없이 챙겨가도록 하고 있다. 아이가 '상하이', '경주', '서울' 등 여러 곳을 여행했었지만 그때도 매번 풀어야 할 학습지를 찢어 가방에 챙겨 갔다. 그런 일은 생일, 어린이날, 고열로 인해서 병원을 다녀 온 날에도 예외라는 것은 없다. 예외가 없다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계산법에서는 아무리 그 연산이 큰 수를 만들어낸다고 해도 그 마지막에 곱한 값이 0이면 0이 되버린다. '복리'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꾸준히'다.​ 그러면 됐다. 그러면 공부는 잘하면 좋고 못해도 괜찮다. 물론 마음 깊은 곳에서는 '잘하면 좋겠다'라는 인식이 있어서 아이가 받아오는 평가지의 점수를 물어보기는 하지만 아이에게 언제나 열심히 했다고 칭찬한다. 개인적으로 약간의 '몹쓸' 믿음이라면, 공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유전자'가 아닐까,하는 부분이다.​ 실제 사람은 모두 다르다. 애당초 같은 운동을 하더라도 근육이 더 빨리 붙는 사람이 있고, 같은 음식을 먹어도 더 빨리 찌는 사람이 있다. 이처럼 이는 흔히 '체질'이나 '성향'에 관련된 이야기일지 모른다. 운동에 대한 '센스'는 길러지는 것도 있지만 타고나는 부분이 있다. '음치'나 '몸치'에 대해서는 너무 쉽게 인정하면서 '공부'가 타고 나야 한다는 사실은 잘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 대부분이 '학력'에 대한 컨플렉스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 이것을 인정하지 않을 뿐이지 않을까 싶다.<br> 교육이라는 것은 어느정도 노력을 통하여 전보다 더 나아지도록 지도하는 것에 있겠다. 다만 거기에 '열등감'이 지나치게 주입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SKY와 의대가 학업 경쟁에서 유일한 승자가 된다면 대한민국의 절대 다수는 패자로 살아가며 그 모든 기회를 '패자부활전'이라는 생각으로 임하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으며 기본과 원칙을 지키는 이들에 의해 돌아간다.​ '초3'이 되자, 아이의 '학업'에 대한 관심이 더 커졌다.​우리 아이의 유일한 장점이라면 '좋은 습관'과 '성실함'이다. 얼마전 다녀가신 구몬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아이들이 '수학'에 관해서는 분명히 '타고난 수학머리'는 없어요,  간혹 타고난 아이들이 있거든요."​그 말이 꽤 섭섭했지만 얼마전 받아온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실제로 우리 아이의 수리력이 대한민국 평균 이하라는 사실을 보고 인정하기로 했다.​ '뭐... 그럴 수 있지'​어릴 때부터 나의 컴플렉스가 하나 있다. 어린시절 부모님은 처음 키워보는 아들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하고 포용적이셨다. 나는 '미술학원, 피아노 학원, 태권도, 웅변학원, 주산학원 등' 다녀보지 않은 학원이 없었으나, 피아노 학원에서는 '바이엘' 정도를 치고 그만 두었고 태권도 도장에서는 '흰띠'를 마지막으로 했던 것 같다.<br> 약간의 '자기고백적 자책'을 해보자면 나는 무언가 끝까지 성취해 본 경험 없이 성인이 됐다. 그 패배적 학습의 경험을 아이에게 물리고 싶지 않다. 아이가 하는 '구몬'은 앞으로 고3까지 이어질 것이다. 모든 경험은 신중히 선택하되 선택을 했으면 끝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초3부터 SKY'가 중요하기보다 세살버릇이 여든까지 가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4213/34/cover150/k05293103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42133414</link></image></item><item><author>-</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계발] 과학이 주는 신뢰의 함정에 빠지지 말자_하버드 식사혁명 - [하버드 식사 혁명 - 먹어서 병을 예방하는 아주 작은 식습관의 힘]</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7378287/17257473</link><pubDate>Mon, 04 May 2026 21:0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27378287/1725747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52137757&TPaperId=1725747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066/47/coveroff/k95213775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52137757&TPaperId=1725747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하버드 식사 혁명 - 먹어서 병을 예방하는 아주 작은 식습관의 힘</a><br/>하마야 리쿠타 지음, 오시연 옮김, 김민지 감수, 김혜민 감수도움 / 부키 / 2026년 04월<br/></td></tr></table><br/>이 식품은 심한 불면증과 신경 과민을 만들어내는 경우가 있다. 교감 신경을 자극하여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고, 예민하게 하여 깊은 수면이 힘들도록 할 수도 있다. 일부 사람들에게는 혈압을 올리는 효과가 있어서 고혈압 환자의 증상을 악화시키고 심하면 두통이 발생하고 얼굴 열감이 있으며 가슴이 답답하게 할 수 있다. 위 점막을 자극하고 공복 섭취 시에는 속쓰림과 메스꺼움, 설사 발생 빈도를 높이며 호르몬 교란을 하여 여성의 경우에는 생리주기를 변화 시키기도 한다.​ 위의 식품은 건강식품으로 알려진 '홍삼'의 부작용이다.​자, 다음의 식품의 효과를 살펴보자.​ 이는 노르에피네프린과 도파민을 자극하여 순간 집중력을 높이고 반응 속도를 올리는 효과가 있다. 특히 피로 상태에서는 그 효과가 크게 체감된다. 일부 사람들에게는 시상하부 신경계를 조절하여 포만 신호를 강화시키고 음식 섭취 욕구 자체를 낮추는 방식으로 자용한다. 고로 식욕을 떨어뜨려서 체중감소의 효과가 있다. 또한 기초대사률을 높여 지방 분해를 촉진하고 같은 섭취량에도 체중이 덜 증가 하거나 체지방이 감소하는경향을 만들기도 한다.​ 위 식품은 위해식품으로 알려진 '담배'의 부작용이다.​ 어떤 식품 할 것 없이, 과학적 근거는 믿고 싶은 방향을 이미 정해 둔 검색자의 '확증편향'을 보조할 뿐이다. 이는 현대 검색 환경에서 더욱 강화되는데 흔히 알고리즘 추천 구조과 검색어 정보 상위 노출 시스템이 결합하면서 더욱 뚜렷해진다.<br><br> 그냥 별 생각없이 오늘 아침에 먹었던 아무런 식사 메뉴를 쓰고 그 뒤에 '효과'라는 키워드만 붙여 넣더라도 그 식단은 꽤 건강 식품으로 바뀐다.​ 그냥 가볍게 떠오르는 '단무지' 정도를 떠올려봐도 그렇다. 단무지는 '탄수화물 분해'를 돕고, 소화를 도와주며 수분과 전해질 보충에 기여한다고 적혀 있다. 포만감 대비 열량이 낮고 발효 방식으로 인해 장내 환경에 간접적인 영향이 가능하다라고 적혀 있다. 이렇게 누구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몇가지 긍정적인 효과를 극대화하여 홍보하면 현대 식품산업에서 우리를 유혹하는 효과적인 마케팅 전략으로 재탄생할 수 있다. 그냥 단무지를 꽤 유용한 건강식품으로 판매할 수 있는 것이다.​ 식품산업은 세계 산업 규모에서 사실상 세계 1위 수중의 규모다. 흔히 '선진국'이라고 하면 '기술집약접 산업'이 가장 큰 산업일 것 같지만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의 서구 선진국들의 주요 산업은 여전히 '의식주' 산업이다.​ 가령 손톱깎이를 예로 들어보자.손톱깎이를 하나 만들어 생산하면 대략 5000원 정도가 들어간다고 해보자. 반면 5000원짜리 치즈버거를 생각해봐라. 우리는 하루 3회 치즈버거를 소비하는데 큰 고민을 하지 않지만 하루 3회 손톱깎이를 구매하는 것은 굉장히 바보 같은 일일 것이다.​ 여기서 소비의 빈도와 반복성이 발생하는데, 손톱깎이는 한번 사면 몇년을 쓰는 구조이지만 치즈버거는 하루에도 몇번을 소비시킬 수 있다. 여기에 '콜라'라는 소화제를 함께 섭취하면 '콜라'의 당이 빠르게 혈당을 높여 다음 식사의 양을 늘릴 수 있는 기폭제로 작용하기도 한다.​아무리 기술 집약된 제품이라고 하더라도 교체주기가 길고 소비 빈도가 낮다면 시장 전체의 크기는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커피나 생수, 유제품 등을 판매하는 '네슬레'는 그 매출이 수준이 '소니 그룹'보다 더 크다.<br><br> 고로 어떤 것을 먹는다는 것은 현대 산업 구조상 단순히 개인의 기호나 성향,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최대 수재들이 '마케팅'이라는 이름으로 벌이는 각축장의 무대에서 강요되는 경우가 많다.​ 카페인, 당, 지방은 뇌의 보상 시스템을 자곡하고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다양한 문장들이 과학적 사실의 일부를 확대 재생산하게 하고 검색, 추천, 광고 등이 사용자의 관심을 학습시킨다. 즉 사용자는 객관적인 정보가 아니라 자신이 보고자 하는 방향으로 정렬된 정보만 반복 접하게 된다.​ 결론은 이렇다.​무엇을 먹을 것인지보다 중요한 것은 실제 '식품산업'이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다. 배고픔과 습관, 욕망 이런 것들은 선택이 아니라 반응에 가깝고 현대의 거대 자본이 만들어낸 다양한 심리학적 과학적 기술의 집약체다. 그것에 노출되지 않기 위해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강박을 버리고 단순하게 식단을 점검해 보는 것이 아닐까.]]></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066/47/cover150/k95213775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0664772</link></image></item><item><author>-</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수필] 암 병동 간호사의 삶과 죽음에 대한 기록_안녕하지 않은 날들에 대해 안녕 - [안녕하지 않은 날들에 대해 안녕 - 암 병동 간호사가 기록한 삶과 죽음 사이의 이야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7378287/17255853</link><pubDate>Sun, 03 May 2026 21:4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27378287/1725585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32137506&TPaperId=1725585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94/63/coveroff/k73213750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32137506&TPaperId=1725585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안녕하지 않은 날들에 대해 안녕 - 암 병동 간호사가 기록한 삶과 죽음 사이의 이야기</a><br/>문경희 지음 / 파람북 / 2026년 03월<br/></td></tr></table><br/>&nbsp;가끔 뉴스로 접하는 '암 병동'에서의 이야기를 담은 수필이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nbsp;적잖게 그런 표현이 나온다. '이런 일이 나에게...'​<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nbsp;그야말로 어제와 오늘을 평범히 살아가던 이들에게 찾아 온 '암'이라는 진단 이후를 담은 이야기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nbsp;그들을 옆에서 관찰하던 암 병동 간호사로써 굉장히 인간적이고 성찰적인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nbsp;책의 제목을 보면 '안녕하지 않은 날들에 대해', 라고 적혀 있다. 얼핏, 안녕하지 않았던 날들에 대한 회고를 담은 글일까, 싶었지만 도서를 다 읽고 책을 뒤집으면서 살펴보니 오른쪽 끝에 '안녕'이라는 두글자가 적혀 있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nbsp;책 제목은 '안녕하지 않은 날들'에 대한 성찰이 아니라, '안녕하지 않은 날들에 대해 안녕'이라는 결심이다. 안녕하지 않은 날들에게 작별을 고한다는 의미와 '안녕하지 않은 날들'에게 '안녕'하며 포용적인 두가지 중의적인 표현을 담지 않았나 싶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nbsp;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생'의 치열함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nbsp;어떻게하면 더 성장할 수 있을까,&nbsp;어떻게 하면 더 확장할 수 있을까,&nbsp;어떻게하면 더 나아질 수 있는가,​<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다만 비슷한 고민을 했던 누군가가 '암병동'이라는 뜻밖의 장소로 그 목적지가 정해지면서 '저 사람이 느꼈을 법한 허탈감'과 어쩌면 한치 앞도 모르고 달려가고 있는 나의 '무지함'에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nbsp;27년간 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를 했던 '문경희' 작가는 스스로도 뇌종양 진단을 받고 시한부 시간을 보낸다. 그러면서도 병동에서 암 환자를 간호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nbsp;그의 말에 따르면 평소 '업무'로써 '사무적'으로 대하던 '환자'들에 대해 마음으로의 공감을 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실제로 어떤 분야든 일을 하다보면 '기계적'으로 혹은 '사무적'으로 변하게 될 때가 있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nbsp;'간호사'라는 직업은 어쨌건 '아픈 사람들'을 상대해야 한다. 얼마 전, '대상포진'을 앓았던 입장에서 '환자'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예민해지는지 깨달았다. 사람의 성격은 엄밀히 말해서 '의지'만큼이나 '건강상태'도 중요하다.&nbsp;그런 이들과 함께 하다보면 덩달아 저절로 '짜증'이 일어나지 않을까 싶지만 그녀의 기록에서 그들의 그런 반응에 대한 공감과 성찰이 담겨 있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nbsp;책에서 소개된 많은 투병환자들의 과거는 지금의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 급하게 일상을 정리하고 '항암'을 준비하는 가정의 이야기나 자기계발에 힘을 쓰고 열심히 운동을 했다는 이들, 어떤 분야에 꽤 재능을 보여 왔던 수재들을 포함하여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통장 잔고나 성과, 자존심이 아니라 자신이 없어진 이후를 고민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괜히 부끄러워지고 숙연해지기도 한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nbsp;너무 하루와 일과에 매몰되다 보니, 실제 밖에서 실존하는 이야기에 너무 눈을 감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다. 지금도 어디선가에서는 '삶'과 '죽음'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유쾌하고 긍정적으로도 다르고 있는데, 어쩌면 그에 비하면 하찮을 대로 하찮은 주제를 다르고 뭘 그렇게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나, 싶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nbsp;어제까지 중요하다고 믿었던 것들이 건강 앞에서 오늘에와서 아무 의미도 갖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성과, 체면, 비교, 인정 이런 것들이 얼마나 허영심 많은 마음이 지은 허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nbsp;수필 초반에 '배테랑 간호사'임에도 가질 수 밖에 없었던 인간적인 실수와 두려움, 작가 스스로가 환자가 되고 나서 느끼게 되는 다양한 감정들이 너무 솔직하고 가감없어서 읽는 내내 감정이입이 되었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nbsp;책은 어쩌면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허상'에 휩쌓여 괜한 불만과 불평이 쌓여 있을 어느때 한번씩 꺼내어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class="Apple-interchange-newline">]]></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94/63/cover150/k73213750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8946319</link></image></item><item><author>-</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시집] 보편적인 사람들의 보편적 생각을 담은 시_광장의 제다이들에게 - [광장의 제다이들에게]</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7378287/17249979</link><pubDate>Thu, 30 Apr 2026 20:4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27378287/1724997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22137503&TPaperId=1724997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93/54/coveroff/k72213750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22137503&TPaperId=1724997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광장의 제다이들에게</a><br/>이마냥 지음 / 창조와지식(북모아) / 2026년 03월<br/></td></tr></table><br/>&nbsp;누구나 그러지 않을까,​<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nbsp;나름의 나르시스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도 은밀한 비밀이라는 것은 자신만 알고 있는 비밀일 것이다. 대부분은 사소하지만 더럽고 지저분하고 너저분한 것들 투성인 내면이 더욱 그렇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덜 잘려진 손톱 끝이라던지,&nbsp;변소를 나온 뒤에 느껴지는 찝찝한 기분덜 떨어진 이해력이나 몹쓸 무능력하찮은 무기력​<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그런 것들이 내면 어딘가에서 시큼한 냄새를 풍기며 썪고 있겠지만 가장 가깝고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이마저 포장하고 싶어진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nbsp;냄새나는 포장지를 뜯어내면 그래도 꽤 쓸만한 보금자리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스스로도 아닌 채 악취나는 그 오물들이 저절로 사라질 것 처럼 하기도 한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nbsp;모두가 외면하고 스스로도 외면한 그 지저분한 내면 깊은 곳을 누군가에게는 열어두고 싶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nbsp;내면으로 가는 길, 만나게 되는 어둡고 지저분한 외겹 한 겹 때문에, 버려진 곳이 내면이 다시한 번 버려진 곳이 될까, 겁이 날 때가 있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nbsp;이마냥 시인의 시를 읽는데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대단한 사람인냥 하더라도 결국은 내면의 그림자에 있는 자기혐오 같은 것들 때문에 상대에게 스스로를 한없이 낮도록 만드는 일.​<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nbsp;인정받고 싶지만 누구도 인정할 것 같지 않은 스스로라고 인정을 하며 한없이 초라해 지지만 언젠가는 '그래도 그곳에 자리 한 켠 두면 갈께'라고 하는 아무개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nbsp;이마냥 시인의 시는 휘리릭 넘기다가 눈에 띄는 시구 몇 개에 시선을 잡히게 된다. 시구를 보다가 여러번 묵독하고, 그러다 저절로 몇번은 음독한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nbsp;그러다보면 자물쇠로 잠겨진 시구가 가진 감정과 의미가 '스르륵' 하고 해체 되는데 그 맛이 씁쓸하기도 하고 달콤하기도 하고 그렇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nbsp;무언가 엄청난 이야기라기보다 누구나 가질 법한 일상의 이야기와 생각이 짧은 시 속에 녹아져 있는데 어떤 시는 앞에 있는 다른 시와 극을 다르게 하기도 한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nbsp;짧지만 강한 그의 시 중에서 꽤 마음에 드는 시 한 소절을 소개 하고자 한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너한테만 말하는 건데_이마냥 시인​<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nbsp;쉿​<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저기 수평선 너머 섬이 하나 있어머나먼 저 바다 한가운데 지도에도 표시되지 않는누구도 알지 못해서 수소문으로도 찾을 수 없는가시덤불에 새들도 감히 앉지 못하고&nbsp;갖은 벌레들만 득실거리는떠밀려 온 것들의 악취로 무성한 곳눈알 빠진 곰 인형과 구슬과 퍼즐조각과언젠가 유리병에 담아 던졌던 수많은 편지들​<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깊은 밤이면 양탄자를 타고 나는 날아가네마른세수 세찬 고개짓 두어번에바위 절벽 한가운데가 쩍하고 갈라지지금은보화처럼 반짝이는 침방울너저분한 살 껍데기 거미줄이 드리워진 터널을 지나굴을 파서 마주하게 될 철제금고 가장 구석에​<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너의 자리를 마련해두었어너라면 보여줄 수 있어​<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자 이제 내 손을 잡아줄래​<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93/54/cover150/k72213750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8935471</link></image></item><item><author>-</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역사] 지리가 한중일 역사에 끼치는 영향_지도와 전쟁으로 다시 읽는 한중일 세계사 - [지도와 전쟁으로 다시 읽는 한중일 세계사 - 지리는 어떻게 동아시아 3국의 운명을 뒤흔들었나?]</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7378287/17241946</link><pubDate>Mon, 27 Apr 2026 18:1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27378287/1724194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62137554&TPaperId=1724194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31/32/coveroff/k46213755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62137554&TPaperId=1724194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지도와 전쟁으로 다시 읽는 한중일 세계사 - 지리는 어떻게 동아시아 3국의 운명을 뒤흔들었나?</a><br/>이동민 지음 / 갈매나무 / 2026년 04월<br/></td></tr></table><br/>&nbsp;<br> 역사를 보다보면 단순히 '정치'만으로 해석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가끔은 '경제'가 해석의 역할을 돕기도 하고 가끔은 기후가 해석의 역할을 돕는다. 마찬가지로 역사를 해석할 때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이 바로 '지리'다.​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를 보면 그 도입부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뉴기니'를 방문하고 있던 토착민 '얄리'와의 대화다.​"왜 당신들(백인)은 그렇게 많은 문명을 발전시켜 뉴기니까지 가지고 왔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한가. "​ 책은 그 질문을 시작으로 시작한다.'왜 그런가', '왜 세계는 공평하지 못하고 어느쪽은 반드시 가난하고 어느쪽은 폐망하더라도 다시 부유해지는가'​ 1, 2차세계 대전에서 폐망한 국가들이 다시금 21세기에 강한 경제력을 갖게 되는 일을 맞이하면서 어쩌면 단순히 '민족적 근성'이나 '정치'만으로 해석되지 않는 필연적 인과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한반도 지도를 보면 그 외형이 참으로 기묘하다. 서쪽으로는 대륙 세력의 끝자락에 붙어 있으며서 동쪽으로는 열도가 마치 의도라도 한 것 마냥 태평양 길목을 '포옥'하고 감싸고 있다. 이런 지형적 특색은 실제로 동아시아의 근대사에도 영향을 줬다. 서쪽 끝에서 시작한 '산업혁명'은 실제로 그들의 필요 따라서 증기선을 만들어냈다. 산업혁명 이전의 전통 강국이라면 '대륙 농업 기반 국가'였다. 대표적으로 '프랑스'가 그렇다. 프랑스는 강한 농업생산력을 기반으로 많은 인구를 가지고 있는 국가였다. 이후 산업혁명으로 그 패권이 '해양'으로 이동한다.​ 영국의 산업혁명은 많은 공급을 만들어 냈을 뿐만 아니라 막대한 생산량을 소비할 소비처를 찾아 낼 수 있었다. '증기선'이 발전되면서 영국의 상품 수출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그들은 증기선으로 만들어진 상선에 막대한 공급품을 싣고 세계 이곳 저곳을 돌아다녔다.​ 흔히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으로 우리가 '일본'에 비해 개화 시기가 늦어졌다는 해석을 많이 하지만 미국이나 유럽의 상선의 '한번도'로 들어가기에는 지리적으로 접근 비용이 높았다.​ 한반도 서해는 수심이 앝고 조수 간만의 차가 큰 편이다. 항해 기술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았던 시기에는 대형 상선이 안정적으로 접근하기에 어려웠다. 반면 일본은 태평양에 면해 있다. 깊은 수심과 자연 항만을 갖춘 구조는 외부 세력이 들어오기에 훨씬 유리한 편이었다. 앞서말한 '쇄국정책'은 당시 시기적으로 '한반도'만의 정책이 아니라 중국과 일본 모두의 정책이기도 했다.​ 즉, 단순히 문을 닫았느냐, 열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외부세계가 얼마나 수비게 들어 올 수 있는가,의 문제에 가까웠다.​ 실제로 산업혁명 이후 서구 열강은 증기선을 기반으로 해양 네트워크를 확장했고 이때 그들이 우선적으로 접근한 지역은 당연히 접근성 높은 항구였다. 그런 이유에서 일본은 자연스럽게 그 경로 위에 있었다.​ 대표적으로 '페리 제독의 일본 개항'이다. 미국은 군함을 이끌고 일본에 직접 접근하여 개항을 요구했다. 물리적으로 도달한 지리적 특성 때문이었다. 반면 조선은 같은 방식으로 접근하기에 꽤 까다롭다. <br>과거 '카미카제'는 몽골군이 일본으로 접근하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했다. 대륙 세력으로부터 일본은 고립되기도 했다. 고려는 당시 몽고군에 침입을 받았지만 개화가 늦어지기도 했다. 이처럼 '지형'이라는 것은 반드시 '특정 장점'만 있거나 '단점'만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양면이 다 존재한다. 고로 이를 보완할 수 있는 것이 어쩌면 정치와 경제가 아닐까 싶다. 과거 '스페인'을 비롯한 패권국이 '은'을 기축통화로 사용할 때, 일본의 은 생산량은 엄청나게 많았다. 이또한 일본에게는 엄청난 기회였다. 고로 단순히 한 국가의 역사는 '단독'으로 존재할 수 없고 지구 반대편의 다른 국가에 영향을 받으며 경제, 기후, 정치 등 모든 부분에 영향을 받는다.​ 최근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다양한 갈등 상황과 이로인한 '원유공급' 차질로 '지도'와 '전쟁', '지리'가 얼마나 역사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지 알 수 있게 된다.​ 과거는 '미래'를 볼수 있는 '선견지명'이 될 수는 없지만 우리는 과거를 통해 '현재'를 더 잘 알 수 있게 된다. 요즘과 같이 국제정세가 어지러운 시기에 가볍게 한 번 일독해 볼 만하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31/32/cover150/k46213755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1313292</link></image></item><item><author>-</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소설] 짧고 강렬한 높은 수위의 19세 소설_뱀에게 피어싱 - [뱀에게 피어싱]</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7378287/17233888</link><pubDate>Thu, 23 Apr 2026 11:5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27378287/1723388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32137851&TPaperId=1723388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068/59/coveroff/k93213785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32137851&TPaperId=1723388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뱀에게 피어싱</a><br/>가네하라 히토미 지음, 정유리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04월<br/></td></tr></table><br/>&nbsp;'뱀에게 피어싱'은 2023년에 이미 한 차례 읽었던 책이다. 그때도 역시 서평을 꾸준하게 쓰고 있어서 책에 대한 '감상평'이 적혀 있었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nbsp;100쪽도 되지 않는 분량, 강력하고 몰입감 있는 소설을 찾고 있던 어느 날 저녁 이었던 것 같다. 3년이 지났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불현듯 그런 류의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한 걸 보니, 어쩌면 이게 일종의 성향일 수도 있겠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nbsp;당시에는 감도 잡히지 않는 제목이라 호기심 조차 없이 도서를 구매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읽어가면서 완전히 다른 삶을 구경하고 나온 기분이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nbsp;소재라면 '스피릿텅'으로 시작한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nbsp;스필릿텅이란 혀에 하는 피어싱의 일종인데, 혀에 구멍을 뚫고 피어싱을 하다가 점차 피어싱의 크기를 확장시키며 결국은 혀끝까지 갈라지도록 만드는 방법이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nbsp;'스필릿텅'에 매력을 가진 '루이'라는 여성의 1인칭 시점으로 소설은 전개 된다. 루이에게 '스필릿텅'의 매력을 갖도록 한 '아마'라는 남자 주인공과 문신전문가 '시바'.​<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nbsp;소설은 이렇게 세 명의 젊은 일본인 남녀의 이야기가 빠르고 짧게 전개된다. 소설의 시작은 꽤 자극적인 소재였지만 초중반을 지나갈 때, 그래도 여느 연인들 같은 '사랑'이 소재가 된다. 다만 조금 다른 모습이라면 우리가 넘지 않을 선을 너무 쉽게 넘어 버린다는 점이 다르달까.​<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nbsp;'저 사람'들은 인생에 '뒤가 없나'하는 충동적인 선택과 선택들이 마구잡이로, 그것도 아무렇지 않게 행해지면서 그 나름대로의 쾌감도 없지않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nbsp;3년 전에도 그랬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nbsp;'스플릿텅'이 뭔데?, 하면서 유튜브와 사진으로 책을 읽다말고 검색해봤던 것 같다. 몇 번을 검색해보고 '아,...' 했던 기억이 있다.&nbsp;실제로 '문신'이나 '피어싱'에 대해 큰 거부감은 없다. 여기서 말하는 거부감이란 '남이 했을 때'에 대한 거부감을 말한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nbsp;해외에서 생활할 때, 문신과 피어싱 한 사람을 만나는 것은 그닥 어렵지 않았다. 이유는 내가 일했던 곳에서 '피어싱'을 판매하기도 했다. 내가 일했던 곳은 '소매물품'을 팔던 곳이 었는데 얼핏 기억하기로 'plug, ring, bar, tunnel, stud' 뭐 이런거 였는데 잘은 기억에 나질 않는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nbsp;카운터에 서 있으면 계산을 하던 손님들이 이런 피어싱을 보여 달라고 할 때가 있는데 그러면 서랍 속에서 하나당 3불 짜리 바늘처럼 얇고 큐빅이 박혀 있는 핀을 꺼내주며 고르도록 해 주었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nbsp;그때, 엄마가 딸에게 그 모양을 추천해주고 서로 멋지다고 말해주던 모습들이 너무 보기 좋아서 그 부분에 대한 거부감은 있지 않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nbsp;문신이며 피어싱이며 이런 것들이 그 문화권에서는 그닥 거부감이 있는 문화는 아니었던 것 같다. 물론 일반적으로 직장생활을 하거나 할 때, 과도하게 그런 꾸밈을 하는 경우는 없는 것 같지만 자기 개성에 맞게 표현해야 할 때는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nbsp;그러나 '문신'이며 '피어싱'이라는 문화가 유독 동양으로 왔을 때는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보여지는 것 같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nbsp;유교 문화 영향 때문인가, 싶다가도 일본에서도 우리와 비슷한 시선인 것 같아서 아닌 것 같기도 하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nbsp;'뱀에게 피어싱'은 내 윤리관에 대한 의심들 정도로 '선'이라는 것이 모호하다. '응? 이게 이렇데 당연하게 넘어서도 되는 거야'그런 일들이 소설에서 아무렇지 않게 일어난다. '성적인 취향', '살인', '술' 할 것 없이 매우 자극적인 소재들이 '슴슴한 말투'로 여과없이 나온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nbsp;마치 이러한 일들이 '별로 대수로운게 아니야'라는 사고가 그들이 보여주지 않는 무표정 속에 더 깊은 심연을 보게 하는 듯하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nbsp;3년 전 읽었던 소설이지만 다시 한 번 정독 했다. 이미 읽었던 책이라 내용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책을 읽을 때는 완전히 새로운 느낌이었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nbsp;소설의 마지막 역시 확실하게 해결되지 않은 채 마무리 되는데, 그 불확실함 역시 내가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소설'의 영역이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nbsp;'기승전결'을 정확히 따르며 결말에 와서는 모든 복선이 깔끔하게 이용되고 갈등과 문제가 모두 해결되고 마는 그런 비현실과는 거리가 먼 소설.​<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nbsp;그래서 읽고나서도 어쩌면 세상 어딘가에서는 소설의 주인공들이 있을 것만 같은 초현실주의적인 소설인 것 같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nbsp;역시 이런 류의 소설은 어제와 오늘이 같고, 내일이 다르지 않을 것은 일상에 꽤 큰 충격을 주어 일상적 고민 이외에도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든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class="Apple-interchange-newline">]]></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068/59/cover150/k93213785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0685960</link></image></item><item><author>-</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인문] 글의 해상도를 높이는 일화들_짧은 이야기가 깊은 시간을 만든다.  - [짧은 이야기가 깊은 시간을 만든다 - 108개의 짧으나 깊은 이야기와 60개의 가슴에 새겨지는 말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7378287/17231991</link><pubDate>Wed, 22 Apr 2026 14:0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27378287/1723199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52137630&TPaperId=1723199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019/90/coveroff/k75213763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52137630&TPaperId=1723199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짧은 이야기가 깊은 시간을 만든다 - 108개의 짧으나 깊은 이야기와 60개의 가슴에 새겨지는 말들</a><br/>김정빈 지음 / 새로 / 2026년 04월<br/></td></tr></table><br/>글의 종류는 참 많다.  일상을 기록하는 '일기문', 상대에게 마음을 전하는 '편지문', 정보를 안내하는 '안내문', 나의 생각을 주장하는 '주장문'. ​ 건축물이 목적에 따라 짓는 방법이 다를 수 있듯이, 글도 목적에 따라 쓰는 방법이 다를 수 있다. 건물은 얼마 만큼의 높이가 될 예정인지에 따라 기초공사 방법 역시 달라진다. 글도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의 목적에 따라 도입부분이나 전개 방법이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 '글'이라는 같은 카테고리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모두 '글'이라고 부르지만 '길거리'에서 받게 되는 '홍보물'과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는 읽는 방법도 정보를 얻는 방법도 완전히 달라진다. 어떤 글은 '훑어보고' 어떤 글은 '정독'해야하고, 어떤 글은 짬짬히 읽어야 하고, 어떤 글은 '메모'하여 읽어야 한다.​ 글이 '건축물'과 비슷하다는 생각은 동서양에서 비슷하기 있어왔다. 영어에서 'text'는 현재 문자를 뜻지만 이는 '직물'을 짜거나, '건물'을 짓는데서 먼저 유래 했다. '주장문'을 쓰기 위해서는 '통념'을 제시하고 그에 대한 '반박'을 하고, '반박한 주장' 뒤에는 '근거'를 두는 것이 좋다. '설명문'은 상대가 모를 만한 '고유명사'의 의미를 먼저 제시해주고 그것의 '구체적 사례'를 들어주면 좋다. '이야기글'을 쓸 때에는 '기승전결'을 따르며 상대의 흥미를 자극해 주되, 항상 교훈으로 마무리해 주는 것이 좋다.​ 건물이 목적에 따라 짓는 방법이 다르기에 사용되는 재료가 다를 수 있듯, 글 역시 목적에 따라 사용되는 기술과 재료가 다를 수 있다.  '김정빈' 작가의 '짧은 이야기가 깊은 시간을 만든다'는 글에서 자주 사용하는 짧은 일화들이 잔뜩 모여 있는데 이는 앞서말한 글쓰기에서 매우 고효율적으로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재료'들이다.<br> 글은 나의 생각을 상대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전달 도구다. 나의 생각을 생동감있게 저장하는 저장기구이며, 상대의 생각을 생생하게 전달 받을 수 있는 수신도구이기도 하다.​글은 '분명'하고 '생생'하고 '생동감'있는 메시지를 담을 수록 좋은 글이 된다. 다만 이는 전달자의 능력에 따라 혹은 수신자의 능력에 따라 그 '글의 해상도'가 명확하게 달라진다.​ '사과가 있다'라고 표현 할 수 있다. 그러나 표현력이 조금더 풍부하다면 '작고 선명한 빨간색이며 표면이 매끄럽고 윤기가 나는 사과가 있다'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같은 사진기로 찍어도 어떤 사진기가 표현하지 못하는 색상과 감성이 있듯. 글도 표현자의 능력에 따라서 다양한 감성을 전달할수도 있고 없기도 하다. 인터넷을 찾아보면 '삼성'이냐, '애플'이냐, 그 카메라 성능을 비교하는 영상을 많이 볼 수 있다. 일반인은 좀처럼 구분하지 못하는 '색감'이 주는 '감성'의 영역과 빛에 따른 색변화, 몇배를 당겨 볼 수 있는 '줌'까지 그 기능을 아주 유심하게 찾아본다.​ 사람들은 이처럼 스마트폰의 '카메라'의 성능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자신에게 장착될 수 있는 '표현능력'에 대해서는 그만큼 생각치 않는 것 같다.  표현능력의 차이로 인해 같은 정보라도 '저장'과 '전달'과 '수신' 능력에 차이가 생길 수 있음에도 말이다.<br> 이는 반드시 '글'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만 가지고 있어야 하는 능력은 아니다. 우리는 모두 '사진'을 업으로 하고 있지 않음에도 모두 꽤 괜찮은 성능의 카메라를 필요로 한다. 이유는 모두가 풍요로운 경험 후 흐린 저화질로 추억을 남기고 싶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상향 평준된 요즘 카메라 기술'에 비해, 글쓰기 능력은 그 편차가 매우 심히다. 꺼내 볼 때, 남에게 전달할 때, 전달 받을 때의 해상도 차이가 매우 심하다.​ 고로 글의 해상도를 높이면 단순히 '표면 시각 정보' 즉 카메라가 담을 수 있는 정보 이외의 것들을 담아낼 수 있다. 이와같이 정보의 해상도를 높이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가 '사례' 혹은 '예시'를 드는 것이다. 그것은 '과학적 근거'나 누군가의 일화, 가벼운 가정일수도 있지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이미 생생하게 남아 있는 누군가의 '자서전', '우화집', '역사서'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짧은 이야기가 깊은 시간을 만든다'는 읽어서 좋고, 글을 쓸 때 두고두고 참고하기 좋은 것 같다. 읽다보면 '어디선가 들어봤는데....' 싶은 일화도 많고 '출처가 뭐였더라', 했던 글을 출처와 만날 수도 있다. 마치 지나가던 라디오에서 '노래만 알고 있던 옛 음악'의 제목을 함께 들었을 때와 같은 기쁨이랄까.​ 책은 독특한 띠지를 가지고 있어서 북스탠드 처럼 원하는 페이지를 고정하여 세워 둘 수도 있는데 그 아이디어와 섬세한 감성이 담고 있는 정보와 결을 같이 하는 것 같다.​ 아무튼 글은 짧게 쪼개진 작은 이야기들의 모음집으로 언제고 글을 쓰거나 어떤 상황을 맞이했을때, 유용하게 사용될 것만 같다..<br>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br class="Apple-interchange-newline" style="caret-color: rgb(0, 0, 0); color: rgb(0, 0, 0); white-space: normal;"><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019/90/cover150/k75213763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0199055</link></image></item><item><author>-</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인문] 인류가 남긴 승리 사용설명서_이겨 본 적 있는가 단 한번이라도 - [이겨본 적 있는가 단 한 번이라도 - 당당한 나를 만드는 손자병법의 지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7378287/17229440</link><pubDate>Tue, 21 Apr 2026 08:5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27378287/1722944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12137646&TPaperId=1722944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059/67/coveroff/k51213764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12137646&TPaperId=1722944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이겨본 적 있는가 단 한 번이라도 - 당당한 나를 만드는 손자병법의 지혜</a><br/>이남훈 지음 / 페이지2(page2) / 2026년 04월<br/></td></tr></table><br/> 아날로그형 인간이라 고집스럽게도 '직감'만 믿고 낭패를 본 경험이 있다. 겨우 익숙한 장소를 여행하거나 새로운 전자기기를 살 때도 마찬가지다. 지도나 사용설명서 따위는 '약자'를 위한 보조용품이라 쓸데없는 허영심을 부리며 가야 하거나, 해야 할 일은 돌아간 기억이 있다. 이는 비단 나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괜한 고집을 부려 어차피 달성할 문제를 돌아가는 일 말이다.​ 한창 '스타크래프트'가 유행을 할 때, '빌드오더'라는 것이 존재했다. 이는 종족별 가장 효율적으로 건물을 짓는 순서를 말하는데, 가령 적정 인구수에 맞게 '건물'을 지어 올리면 가장 빠르고 효율적으로 승기를 잡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 '스타크래프트'가 한창 유행하던 시기, 그 '빌드오더'를 무시했었다. 그결과, 당연히 게임 승률이 높을리가 없었고 얼마 뒤 '스타크래프트'가 한창 전국적으로 유행을 하던 시기에도 '그 게임'을 그닥 하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그 집단지성을 무시한 독선과 아집은 결국 '게임' 자체의 흥미를 잃게 했다. 마치 '승패'를 벗어나면 '패배'는 하지 않는다는 자기합리화의 방식을 택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삶은 단순히 그렇게 '회피'의 방법으로만 일관할 수는 없다. 비록 '게임'을 하지 않는 선택을 함으로써 '게임' 내에서의 '패배'는 피할 수 있었지만, 실제로 내가 살아내야 했던 세계에서는 반드시 '참여'해야 하는 게임들이 존재했고 또 거기서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특수성도 있었다.<br> '유학', '사업', '강의', '농사', '집필' 등 다양한 경험에서 인류 최초로 내가 처음 해보는 일은 많지 않다. '닐 암스트롱'과 같이 인류의 위대한 첫걸음을 달 표면 위에 찍고 있다는 오만이 아니라면 내가 하고 있는 고민은 당대 최고의 지략가와 집단 지성에 의해 이미 '빌드오더', 즉 최적화 된 해결책이 나와 있는 경우가 많다.​ 내가 무언가를 처음하던 시기, 그것을 기대어 물어 볼 만한 곳이 많지 않았다. 기껏해봐야 '어떤 커뮤니티'에 가입하여 질문하고 대답을 기대하는 정도의 수준이랄까. 그러나 구체적인 상황은 다를 수 있지만 비슷한 많은 경우가 이미 '고전 병법서'에 기록되어 있다.​ 전쟁은 모든 변수가 극단적으로 압축된 상황이다. 거기에는 단순히 '진로'나 '먹고 사는 생계 수준'의 고민이 담겨 있지 않다. 거기에는 생존, 집단의 자원, 사회 체제 유지' 등의 문제 거고 있었으며 이에 따라 당대 최고의 지성들이 고민하고 성공과 실패를 했던 기록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그렇다면 이제 선택의 문제가 남는다.과거의 자신을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류의 지성'이 쌓아 올린 승리 사용설명서'를 외면한 채, 자신의 직감만을 믿으며 전쟁이 투입된다. 그렇다면 이미 존재한느 '빌드오더'를 따를 것인가. 아니면 또다시 자신만의 직감을 신뢰하며 인류사 전반의 지성을 무시하고 새롭게 시작된 40년짜리 1인칭 주관적 데이터를 신뢰할 것인가.<br> 완전한 창의성이라는 착각에 빠져 검증된 구조를 외면하는 것은 인생을 건 도박과 같다. 과거 고장 난 줄 알았던 전자기기를 앞에두고 '패배한 듯' 사용설명서를 꺼내며 '아, 진작 볼 걸'하는 후회를 하거나 '앱'이나 '지도'를 꺼내들고 '아, 진작 확인할 걸'하는 후회를 해 봤다고 한다면 그것은 '승패'와 관련없는 '승패'에 연연하는 것이다.​ 결국 책이 말하는 바는 이렇다. 전쟁에서든, 삶에서든, 승리는 새로운 방법에서 나오지 않는다. 이미 검증된 선택을 얼마나 정확하게 실행하느냐에서 나온다. '승리'와 '패배'라는 이분법적인 세계에서 상대를 굴복시키기 위한 방법이 아니다. 병법은 상대를 이기기 위한 기술이기 이전에 자신의 오류를 줄이고 불필요한 손실을 없애는 방법을 기록한 글이다.​ 결국 싸움은 외부에 있지 않다. 항상 내부에 있으며, 모두가 아집을 가지고 있는 이 시대에서 아집을 버리는 순간, 이미 절반은 이긴 것이나 다름없다.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br class="Apple-interchange-newline" style="caret-color: rgb(0, 0, 0); color: rgb(0, 0, 0); white-space: normal;"><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059/67/cover150/k51213764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0596778</link></image></item><item><author>-</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수필] 나의 기록으로 완성하는 나만의 산행일지_도전 100 명산 - [도전 100 명산 - 나의 기록으로 완성하는 나만의 산행 일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7378287/17227499</link><pubDate>Mon, 20 Apr 2026 08:4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27378287/1722749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72030257&TPaperId=1722749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110/61/coveroff/k17203025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72030257&TPaperId=1722749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도전 100 명산 - 나의 기록으로 완성하는 나만의 산행 일지</a><br/>김헌준 지음 / 소금나무 / 2025년 09월<br/></td></tr></table><br/> 어쩌면 '행복'도 비슷한 것 같다. 가장 가까이 있기에 가장 마지막까지 느끼지 못하는 그 심리.​ 군시절, 선임들과 근무를 서면 멈춰 있는 국방 시계 마냥 근무 시간이 굼벵이처럼 흐른다. 선임 병사들은 그렇게 일대일 상황이되면 평소에는 묻지 못했던 것들을 묻기 시작한다.​ '과거에 사회에서 무엇을 하다 왔는지', '취미는 무엇인지', '여행은 어디를 다녀 왔는지' 대부분 시덥잖은 일상의 이야기지만 '국방부'가 랜덤으로 연결해 놓은 '타인과의 인연'은 적당한 호기심과 흥미를 불러 일으키며 꽤 재미있는 이야기 거리가 되곤 한다.​ 당시 스무살에 군입대를 했던터라, 선임과 후임들의 이야기는 참 재미있게 들었으나 내가 꺼내 놓을 이야기는 하나도 없었다. 기껏해봐야 상대는 '제주'에서 왔다는 배경 정도에 깊은 호기심을 가지곤 했는데 살면서 '제주도 출신'을 처음 만났다는 사람도 굉장히 많았다. 심지어 유학시절에는 '일본'이나 '중국'이 아니라 '제주'에서 왔다고 신기해 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니 말은 다했다 볼 수 있다.​ 어쨌건 '제주'에 살다보니, 사람들은 꽤 많은 걸 궁금해 한다. ​'제주도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집은 어디가 있느냐''여자친구와 여행하기 가장 좋은 곳 한 곳만 추천해봐라''제주도에서 혼자 여행하기 좋은 곳은 어디냐'​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막 입대를 했던 마당에 나에게 '추억'이란 '야간 자율 학습' 시간에 친구들과 '운동장'을 빙글빙글 돌았던 추억 밖에는 없다. 그러니 상대에게 꺼내 놓을만한 이야기가 있을리 만무하다.<br> 제주에 살면서 '백록담' 한번 가 본 적 없고, '가파도'나 '마라도'는 TV에서 방송하면 가끔 보여지는 곳일 뿐이었다. 제주에 살면 언제든 갈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것들은 '언제든 갈 수 있을 것 같기에' 한번도 가지 않는 아이러니를 낳는다.​ 뉴질랜드라는 '지상 낙원'에 10년 간 살면서도 마찬가지다. 뉴질랜드에서 유학을 했다고 하면 여행을 많이 다니고 바다며 산이며 강 등 볼거리가 많지만 당시의 나는 그곳에서 평생을 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니 '보장된 그것'에게는 그닥 호기심이 일지 않았고 되려 TV에서 방송되는 '한국'의 길거리가 오히려 더 가보고 싶은 풍경이 될 뿐이었다. 실제로 '제주와 뉴질랜드'를 살면서 여행다운 여행을 제대로 하지 못한 이유는 '정말로 바빠서' 혹은 '여유가 없어서'가 아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언제나 할 수 있어서'에 가깝다. 시간이 지나고나면 실제로 언제나 할 수 있을 것 같은 것들을 하지 않아서 후회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 깨달음을 한참이 지나고서 알았기에 나는 뒤늦게 이곳 저곳을 아이를 데리고 다니며 경험했다.​ '소금나무'에서 출판한 '도전 100 명산'을 보니 과거의 생각이 문뜩 떠오른다. 갚지고 귀한 것은 언제나 먼곳에 있다는 착각 때문에 항상 먼곳에서 '기쁨'을 얻고자하는 착각이 얼마나 많은 주변의 아름다움에 눈을 멀게 했을까 도전 100 명산'은 우리나라에 있는 명산을 하나하나 도전하며 기록할 수 있도록 만든 '일지'다. 단순히 기록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간단한 소개와 가이드, 사진 등이 있으니 산을 좋아 한다면 주변의 명산부터 하나하나 방문하고 배워가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책의 오른쪽에는 산이 가지고 있던 이름의 유래라던지, 역사 혹은 다양한 기록과 이야기들이 적혀 있다.​ '갓'의 모양이라 '갓뫼'라고 불리던 산이 이후에 '관악'이 됐다는 이야기라던지, '덕망'이 높은 용이 하늘로 승천한 산이라는 전설에서 출발한 '덕룡산'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산에는 역시 내가 있는 '한라산'도 포함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한 두 시간이면 언제든 '산'을 갈 수 있는 굉장히 특별한 나라다. 도시의 끝에서 바로 벗어나면 곧바로 산이다. 해외에서는 '자연을 보러 간다'는 것이 하나의 일정이자 결심이 필요한 일이지만 우리의 경우에는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가능하다.​'너무 가깝다''너무 당연하다'​이러한 것들이 얼마나 우리를 '아름다움'에서 눈멀게 하는 이야기인지 삶을 통해 많이 배웠따.​ 멀리에 있는 것만 마치가 있다고 착각하는 동안 극한의 '원시'가 되어 가까운 것을 볼 수 없게 되었으니 언제나 '행복'과 '삶'이 몇 발걸음씩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br> 요즘은 의도적으로 '가까운 것들을 먼저 선택'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제주'에 있는 다양한 박물관과 명소를 될 수 있으면 먼저 보고자하고, 아이에게도 '한국'의 명소에 대해서도 많이 보여주고자 노력하고 있다.​ 요즘 'K-문화'가 세계적으로 유행을 하면서 굉장히 우리에게 사소하고 익숙한 것들을 보기 위해 세계에서 많이 온다고 한다.​ 단순히 인터넷에서 얻게 되는 짧은 지식이 아니라 실제로 걸어보고 땅을 밟아보며 느끼는 다양한 감정으로 경험을 쌓아가는게 좋을 것 같다.​ 물론 나의 경우에는 '제주'라는 특수성 때문에 명산 100곳을 다 돌아 다니는데는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도서를 구매하는 다른 이들의 경우에는 가까운 곳부터 하나씩 방문해 가는 재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110/61/cover150/k17203025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1106193</link></image></item><item><author>-</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경제] 소득이 아니라 자산이 중요하다_부의 사다리에 올라타라 - [부의 사다리에 올라타라 - 당신의 자산을 확실하게 늘리는 6가지 방법]</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7378287/17226114</link><pubDate>Sun, 19 Apr 2026 16:2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27378287/1722611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25569574&TPaperId=1722611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934/1/coveroff/892556957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25569574&TPaperId=1722611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부의 사다리에 올라타라 - 당신의 자산을 확실하게 늘리는 6가지 방법</a><br/>닉 매기울리 지음, 박슬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6년 04월<br/></td></tr></table><br/><br>부를 얻는 방법이 똑같을 수는 없다. 축구선수 '손흥민', 가수 중 'BTS', 프로게이머 '페이커'도 그렇다. 그들의 특징이라면 모두 굉장한 '부'를 가졌다는 것이지만 그들이 '부'를 얻는 방법이 똑같다고 할 수도 없다.​ 2019년에서 2021년 사이 테슬라의 주가가 폭발적으로 상승하면서 일론머스크의 순자산은 200억 달러에서 2000억 달러로 10배 이상 증가했다. 단순히 10배 상승이라고 할수도 있지만 1800억달러 상승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대다수의 일반인인 우리 입장에서도 그들과 같은 전략으로 '부'를 얻을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모든 사람이 처해 있는 상황과 소득 수준이 상이하고 자산수준이 다르기에 '부'를 얻기 위한 방법이 일관적이다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도서가 '부자'가 되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일론머스크는 2019년에서 2021년 사이에 1800억 상당의 부를 얻었지만 이미 2019년 이전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꿈도 꾸지 못할 정도의 부를 가지고 있었다.​ 고로 '부'를 이야기 할 때는 이미 '부'의 반열에 올라가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참고'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각자의 자산수준과 소득수준에 맞게 취해야 할 전략적 방향이 분명하게 다르다. 이것을 세분화하여 나눈 것이 '부의 사다리'다.<br><br><br>부의 사다리에는 각 단계마다 다양한 지출의 범주가 있다.​단계는 총 여섯 단계로 이루어져 있으며 다음과 같다.​1단계, 하루 벌어 하루 살기(1만 달러 이하)이 단계에서는 적은 액수의 돈에도 아주 예민하게 반응하는 단계다. 보통 극심한 부채를 가진 이들이 여기에 해당된다.​2단계, 식료품 구매의자유(1만~10만 달러)이 단계에서는 재정상태에 대한 걱정 없이 식료품을 살 수 있는 단계다.​3단계, 외식의 자유(10만~100만 달러)이 단계에서는 원하는 만큼 외식을 자유롭게 즐길 수 있다.​4단계, 여행의 자유(100만~ 1000만 달러)원하기만 하면 언제든 여행을 떠날 수가 있다.​5단계, 주거의 자유(1000만~1억 달러)이상적인 집을 구입해도 전체 재정 상황에 영향이 없다.​6단계, 영향력의 자유(1억 이상달러 이상)돈을 이용하여 다른 사람의 삶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 사업체를 매수하거나 대규모 자선 사업들이 그렇다.​각 단계에 따라 사람들이 특정 소비에서 자유를 얻는다. 즉 부의 사다리가 높아질수록 소비의 자유에 대한 폭이 넓어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소득'이 아니라 '자산 수준'이다.<br><br> 흔히 말하는 '아껴써야 부자가 된다'는 말은 어떤 부분에서 옳고 어떤 부분에서는 옳지 못하다. 아껴쓰는 일이 '부'를 만드는데 중요하다며 '일론머스크'나 '워렌버핏', '빌게이츠'의 검소한 삶을 예로든다. 그러나 그들보다 더 검소한 삶을 사는 이들은 '베트남' 혹은 '에티오피아' 어느 마을에 있는 이들의 소비 수준이며 그들이 그렇게 검소하게 산다고 해서 그들이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소비의 지출'은 어떤 수준에서는 필수적인 요소가 되겠지만 그 수준을 넘어서면 '소비의 지출'이 자산축적에 가지는 의미는 매우 미미하다. 그 단계에서 '소비'를 더 줄이는 일보다 중요한 것은 '소득 수준'을 늘리는 일이다.​ 책에서 꽤 흥미로운 관점을 하나 발견했다.​'자기계발'이 '펀드', '주식', '부동산'과 같이 적립식 투자 중 하나라는 것이다. 특히 '자기계발'이라고 함은 젊은 시절 투자하고 평생에 걸쳐 '배당소득'을 얻을 수 있단다. 즉 '존디어'라는 회사에 투자를 하고 배당 수익을 얻듯, 젊은 시절 '자기계발'을 통해, 고소득 직업을 얻으면 '월소득'이라는 '배당소득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 투자의 최장점은 매우 안정적이라는 것이고 언제든 공격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점도 있다. 누구도 훔치지 못하고 언제나 복리고 커질 수 있다는 점도 있다.​ 책이 말하는 바에 의하면 '고소득'과 '자산가'의 상관관계이다. 고소득자들은 대체로 소비성향이 강하다. 그러나 소득의 변동은 대체로 고소득자들에게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고소득자들의 대부분은 자신의 소득 수준에 맞춰 소비 수준을 갖는다. 그러나 소득의 변동이 생겼을 때 그들의 소비수준은 이에 맞춰 일정수준으로 떨어지지 않는다는 지연효과가 있다. 소비의 대응은 소득이 아니라 '자산'이어야 한다는 것이 분명하다.​ 어떤 이유로 소득이 급격하게 줄어들면 이들은 갑자기 파산하게 되는 경우가 적잖다. 현역에서 은퇴한 운동선수나 연예인들이 그럴 수 있다. 쉽게 말해서 '소비'의 자유는 '소득'이 아니라 '자산'의 규모에 맞춰져야 한다. 노동소득은 '소비'를 위한 소득으로 분류해서는 안된다. 노동소득은 '자산'을 형성하는데 사용하고 자산을 이용한 소득의 특정 비율만을 '소비'로 활용해야 한다.​ 책은 지난 얼마간 내가 가장 많이 읽었던 책 중 하나인 '저스트킵바잉'의 저자 '닉 매가울리'의 책이다. 이 책 역시 서재 한편에 꽂아두고 몇번을 더 읽어야 할 책이라고 본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934/1/cover150/892556957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9340198</link></image></item><item><author>-</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철학] 충동 과잉의 시대, 우리 정신은 괜찮은가_철학은 어떻게 인생의 길이 되는가 - [철학은 어떻게 인생의 길이 되는가 - AI 시대 어제와 다르게 살고 싶은 당신의 인생철학]</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7378287/17217705</link><pubDate>Wed, 15 Apr 2026 09:0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27378287/1721770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52137693&TPaperId=1721770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43/81/coveroff/k35213769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52137693&TPaperId=1721770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철학은 어떻게 인생의 길이 되는가 - AI 시대 어제와 다르게 살고 싶은 당신의 인생철학</a><br/>모기 겐이치로 지음, 이초희 옮김 / 다산초당 / 2026년 03월<br/></td></tr></table><br/> '스토아학파'를 굳이 한문장으로 정리하자면 이렇다.<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통제할 수 없는 것에 흔들리지 말고,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라.'<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세상은 두 가지로 나눠진다.<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통제 가능한 것'과 '통제 불가능한 것'<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통제 가능한 것이라면 생각, 태도, 선택, 행동 이런 것들이다. 통제 불가능한 것이라면 '날씨, 결과, 타인의 생각과 행동' 같은 것이다.<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 여기서 스토아학파는 '통제 불가능한 것에 에너지를 사용하지 말고, 통제 가능한 것에 에너지를 쓰라고 말한다.<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 스토아학파는 '금욕'과 '이성'을 통해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상태를 추구한다. '금욕'과 '이성'이란 통제 가능한 영역에 있는 것들을 통제하는 것이다. 이에 반대되는 것이 '외부환경'과 '감정'이다.<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 스토아학파는 '감정이나 환경'에 동요되지 않고자 한다. 이것은 통제 가능한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인간의 본성인 '이성'을 통해 환경과 감정에 무관한 평온한 상태를 추구할 수 있다.<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 최근 이런 말을 많이 듣게 된다.<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도파민 중독', '도파민 중독', '도파민 중독'<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 현대인들에게 '도파민'은 '나쁜 것'으로 여겨지는데 도파민과 충동이 과잉되는 시기이기에 그렇다.<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 본래 인간이 살던 시대에는 '당'을 구하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당은 매우 귀한 자원이었다. 인간이 당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야생 과일'이나, '꿀', '곡물의 뿌리'에서만 가능했다. 야생의 과일은 비교적 작고 신 편이었다. 당도 역시 낮았다. 꿀은 농도가 높은 당이지만 매우 구하기 어려운 편이었으며 곡물의 뿌리에서 나오는 당은 '전분'의 형태로 존재하여 즉각적인 단맛을 충족하지는 않았다.<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 그러나 '당'은 빠르게 에너지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인간은 '당'을 '에너지자원'으로 여기고 가능하면 많이 먹도록 설계가 되어 있다.<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 다만 '현대'에 와서 정제당의 공급이 무한에 가깝게 생산된다. 가격은 저렴하고 구하기도 쉽다. 이런 정제당으로 인해 현대인들의 건강에는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 '당 뿐만 아니다' 현대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스마트폰'도 그렇다. 흔히 '도파민 중독'하면 가장 많이 떠오르는 SNS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얻기 힘들었던 '보상만족'이 이제는 너무 쉽게 이뤄진다.<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 손가락을 넘기거나 좋아요를 받거나 간단한 퀘스트를 성공하며 '가축'과 같이 '보상'을 받고 길들어진다.<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 이제는 '충동'의 과잉 시대다. 아이나 어른할 것 없이 '절제'를 상실한 시대에서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스토아학파'가 추구하던 이상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살아가고 있다.<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 '타인'과 '사회' 현상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결국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쉽고 빠른 보상'에 길들여지다보니, 지연된 보상을 못 견디게 된다.<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 그러나 사회 대부분의 보상은 '지연'된 형태로 나타나지 않는가.<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시험점수'라던지, '운동', '다이어트', '사업', '승진' 모든 것이 그렇다. 그런 것들의 특징이라면 즉각적인 보상이 아니라 '지연된 보상'을 받는다는 것이다.<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 그러나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지연된 보상을 갖지 못하고 쉽게 그만두거나 지치는 경우들이 많다.<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스토아 학파의 특징 중에서는 '결과'보다 '태도'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도 있다. 어떤 일을 할 때, '결과'란 인간의 의지가 반영될 수 없는 요소다. 아무리 열심히 공부를 한다고 해도 1등이 될 수 없고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가 있다. 그러나 여기서 '자신'의 정체성을 '무엇이 되는 사람'이 아니라 '최선을 다하는 사람'으로 두는 것이다.<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 AI에게 묻는다면 뭐든 척척 알려주는 시대에 '지연된 형태'로 얻게되는 '지식'은 '하찮은 것'처럼 여겨진다.<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 그러나 '지적호기심'은 간단히 'ChatGPT'에게 물어 해결하는 것보다 꾸준하게 사색하고 고민하고 의심해보는 과정에서 더 깊어진다.<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 철학을 잃어가는 AI시대에 우리는 얼마나 더 깊은 사유를 할 수 있는가. 마치 AI에게 묻고 얻게 된 정제된 지식을 스스로의 지적능력이라고 착각하며 '건강하지 않은 정신적 비만상태'에 도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본다.<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43/81/cover150/k35213769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8438174</link></image></item><item><author>-</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소설] 오랫만에 밥친구 소설&amp;정해연 작가의 단편추리소설집_불빛 없는 밤의 도시 - [불빛 없는 밤의 도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7378287/17210809</link><pubDate>Sat, 11 Apr 2026 21:2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27378287/1721080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32137189&TPaperId=1721080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15/72/coveroff/k53213718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32137189&TPaperId=1721080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불빛 없는 밤의 도시</a><br/>정해연 지음 / 엘릭시르 / 2026년 03월<br/></td></tr></table><br/> 정해연 작가의 소설에 한창 빠져 살고 있었는데 '출판사'에서 협찬 제의 연락이 왔다. 행운이다. 그러지 않아도 '정해연 소설'을 전부 사놓고 있다. 이제 신간까지 읽게 됐다.​ 소설은 완전 만족이다.​ '착착착'하고 넘어가는 속도감이 마음에 든다. '메시지'를 주겠다거나 '가르치겠다'는 의도가 없다. 고로 읽는데 부담 없다. 쉽고 빠르고 재미를 추구하는 추리소설 본질에 충실했다.​ 최근 체력이 빠르게 방전되어 한계가 느껴졌다. 멍'하게 있는 날이 많다. 운동을 하고 있어서  많이 올라왔지만 그래도 여전히 '수면부족' 탓에 체력소진이 빨랐다. 그러다보니 '책'과는 조금 멀어졌다. 짧게 멍을 때리고 볼 수 있는 '영상'을 주로 찾게 됐다. 그러다가 이 소설을 만나게 됐다.​정해연 작가의 '불빛 없는 밤의 도시'를 보면서 다시 '영상'과 멀어진다. 활자를 읽어가는 재미를 다시 느낀다.​ 혼밥을 할 때, 요즘에는 당연하게 '영상'을 찾는다. 흔히 말하는 생각을 내려놓고 보게 되는 '밥친구'다. 이를 '짧은 영상'이 대체하다보니 자연히 '영상시청 시간'이 늘었다.​ 도서를 협찬받고 집에 있는 '노르잇 북스탠드'에 책을 고정했다. 정해연 작가의 소 설은 영상만큼 혹은 영상보다 재미있다.<br><br> 책은 총 4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불빛 없는 밤의 도시, 보름, 아름다운 괴물, 인생리셋​ 네 편의 단편 중에서 가장 긴 소설이 '아름다운 괴물'이고 실제로 가장 기억에 남기도 했다. 소설은 '정수정'이라는 양심을 판 여의사의 이야기로 진행한다. 소설 중반부 정도를 지나면 대략 어떻게 흘러가겠구나, 하고 반전을 추리할 수 있다. 실제로 소설이 다른 반전으로 이야기를 뒤집지는 않지만 그 역시 짧게 끝나는 단편의 맛이기도 하다.​ 책은 분명 '권선징악'과 같은 기본적인 인과응보의 논리를 가지고 주제를 전달한다. 이런 윤리관 마저 없다면 어쩌면 소설이 더 거부감이 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흥미로운 플롯에 적당한 철학을 가지니 '오락'으로써 이만한 글도 없다 싶다. ​ 여기서 말하는 '권선징악'이라함은 대중을 '교화'시키기 위해서라기 보다 어떤 의미에서 '악'이 받게 되는 '벌'에 대한 통쾌함 같은 '엔터테인먼트'적 요소가 많다고 본다.<br> 마지막 소설 인생리셋도 흥미롭다. 소재는 특별히 독특하다고 할 수는 없다. 이미 소설이나 다른 영화에서도 다룬 '타임리프'를 다룬다. 인생을 송두리째로 바꾼 어떤 사건을 기점으로 여러번 돌아가며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소설이다.​ 추리소설의 특성상 스포를 조심해야 하기 때문에 더 이야기 할 수는 없다. 다만 짧은 소설을 읽으며 짧게 감정을 이입할 수 있다. 물론 단편 소설 특성상 성격에 대한 '축약'이 심해지며 극단적으로 왜곡된 '캐릭터'가 탄생한다는 부분이 있겠지만 그또한 요즘과 같은 '바쁜 시기'에 나쁘지 않다고 본다.​ 요즘과 같은 책태기 시기에 이런 재미있는 소설을 만나 아주 기쁘다.​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15/72/cover150/k53213718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8157244</link></image></item><item><author>-</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과학] 양자역학에 대해 최대한 쉬운 설명_과학을 연결하는 최소한의 양자역학 - [과학을 연결하는 최소한의 양자역학 - 지구 생물부터 우주 행성까지, 세상을 해석하는 양자역학 이야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7378287/17210799</link><pubDate>Sat, 11 Apr 2026 21:1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27378287/1721079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52137015&TPaperId=1721079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944/97/coveroff/k85213701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52137015&TPaperId=1721079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과학을 연결하는 최소한의 양자역학 - 지구 생물부터 우주 행성까지, 세상을 해석하는 양자역학 이야기</a><br/>김상협 지음 / 지상의책(갈매나무) / 2026년 03월<br/></td></tr></table><br/> '건물 앞뜰'에 나란히 있는 두 개의 창, A와 B가 있다. 목격자가 없는 상황에서 한 '범인'이 건물 안으로 침입했다. 범인은 창 A와 B 중 어느쪽으로 침입했을까.​ 논리적으로 A와 B 둘 중 어느곳으로 침입해야 하지만 '전자'라는 범인은 '두 창'을 동시에 통과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범인인 전자'가 A 창에 있었다면 B 창에는 없어야 하고, B 창에 있었다면 A 창에는 없어야 한다. 그러나 사건 당시 목격자는 아무도 없었고 목격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두 창을 동시에 지나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험적으로 그런 일을 본 적 없다. 그러나 '그럴 수 없다'는 것과 '그런 것을 본 적 없다'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어떻게 입자가 동시에 두 군데 있을 수 있죠?""왜 관측하면 결과가 바뀌는거죠?"​이 질문에 한 과학자가 답했다.​"이해하려고 하지 마시오. 그냥 그렇게 작동할 뿐입니다."그럼에도 재차 이해를 시켜 달라는 말에 덧붙였다.​"우주는 당신을 이해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오."​양자가 가지고 있는 역설에 대한 이야기다.<br> 전자는 A도 아니고 B도 아닌 것이 아니다. A이면서 동시에 B인 상태로 존재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후다. 우리가 그것을 '확인'하는 순간 다른 가능성은 무너지고 하나의 결과값만 남는다. 관측이 결과를 바꾼다는 의미다.​ 이는 역시나 비상식적으로 작동하는데, 인간은 여기서 '비상식적'이다,라는 말은 '자연의 존재'를 부정하는 말이 된다. 인간의 '인지력'을 절대값에 둔 커다란 오류다. 이 얼마나 대단한 오만인가, 인간의 '인지력'과 '우주의 이치' 중 '우주의 이치'가 비논리적이고 비상식적이라고 믿는 판단 말이다.​ 다행히 과학자들은 이해가 되지 않는 상태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쪽을 선택했다. 양자역학은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기술과 예측의 대상'으로 둔 것이다. 그것이 '왜' 그렇게 되는가,를 생각하는 대신, 수학적으로 증명하고 결과가 맞는지 확인할 뿐이다.​ 하나의 전자가 두 곳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 관측이 결과를 바꿀 수 있다는 것, 확률이 실재를 대신한다는 것.​양자역학은 '수천년 넘은 동양철학' 같은 모호함과 궤를 같이한다. 이 아이러니함은 21세기에 가장 정밀한 과학에서도 사용하고 있다.​ 고전물리학을 보면 직관적으로 '그럴 수 있겠다'하는 이해의 범주 내에서 발전해 왔다. 이는 아무리 천재 과학자들의 발견이라고 하더라도 우리가 마주하는 가시세계에 관한 이야기라서 그렇다.​ 그러다 20세기에 이르면서 '양자역학'부터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굳이 따지고 들자면 X축도 Y축에도 속하지 않은 그 모호한 어딘가에 존재하는 '존재'에 관한 이야기.​ 그러나 좌표평면상 'X축'과 'Y축'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 경계 어디선가에도 분명 존재할 수 있다. <br> 이처럼 수학이라고 하는 언어로 밖에는 관측할 수 없는 '미세한 세계'가 언제나 신비스럽다.​ '김상협 작가'의 과학을 연결하는 최소한의 양자역학에서는 아주 쉽고 재미있는 방식으로 '양자역학'의 개념과 역사를 설명한다. 여기에서 들고 있는 많은 예시들은 물론 작가의 말에 따르면 완전히 상황에 부합하지 않지만 충분히 흥미를 줄 수 있고 이해할 수도 있다.​ 책은 '무시무시한 양자역학'을 다뤘다는 주제와 다르게 굉장히 쉽고 가볍다. 완독하는데 시간도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는다. 다만 주제 하나하나마다 덮어놓고 생각할 거리가 많다.​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944/97/cover150/k85213701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9449787</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