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 알았지만 주유소 직원과 택시 기사는 적은 아니라해도 절대 친구가 될 수 없는 사이였다. 택시 기사들은 일하다받은 스트레스와 분노를 그렇게 만든 사람한테는 풀 수 없으니 전부 우리한테 풀었다. 기름값이 0.1 위안만 올라도 우리한테 화를 내고 우리가 나쁜 사람을 돕는 하수인이라도 되는 양, 자기들이 더 내는 돈을 우리가 받아 챙기기라도 하는 듯 냉소와 조롱을 퍼부었다. 하지만 우리 역시 비슷한 방식과 태도로 그들을 대했다. 비천한 사람들은 불만이 생길 때 권력에 반항해 봐야 힘만들기 때문에 다른 비천한 사람을 괴롭힌다. 누구도 괴롭힐 수 없을 때는 동물을 학대한다. 흔히 사랑을 맹목적이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 사랑은 맹목이나 공리와 동떨어진, 본심에 충실한 감정이다. 맹목적인 것은 오히려 증오다. - P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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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마지막 날이니 거꾸로 가도 될 듯했다. 시간이 많이 허비되고 산업단지 고객은 출근 전이라 건너뛰었다가 나중에가야 하는데도 상관없었다. 갑자기 여유로워졌다. 천대받던 빈털터리가 하루아침에 부자가 된 듯 나는 시간을 흥청망청 보복적으로 썼다. 오랫동안 일분일초도 소홀히 하면 안 된다는 스트레스에 시달려왔다. 나는 늘 신경이 팽팽하게 곤두서 있었고 시간표에 따라 다음 목적지를 아등바등 쫓아가기만 했다. 그제야 문득 1년 넘게 일했는데도 아침 8~9시의 하이퉁우통위안과 치젠카이쉬안 단지를 보는 건 처음이라는 걸 깨달았다. 기존에 짜놓았던 시간이 아닌 다른 시간에 단지로 들어서자 느낌이 달랐다. 완전히 새로운 시선으로 내 일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시공간에 대한 인식의 변화만이 아니었다. 예전에는 적정과 불안 때문에 시도할 수 없었던 각도, 아무 목적 없는 각도에서 주변을 바라볼 수 있었다. 더 이상 나 자신을 정해진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면 책망하고 화내는 시급 30위안짜리 배송기계로 보지 않아도 됐다. - P159

물론 최악의 택배기사였던 것도 아니었다. 고객과의 소통을 싫어하고 잘하지 못하는 것 말고 다른 면에서는 지점에서 제일 뛰어나고 책임감 있었다. 내 능력이 출중해서가 아니라 일을 과하게 맡지 않아서였다. 돈을 더 벌려고 관리하기 어려울 만큼 넓은 지역을 맡은 뒤 툭하면 항의를 받는 타입은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내 수입은 최고는커녕 지점 내 상위권에도 들지 못했다. 하지만 고객은 택배기사를 평가할 때 수입이 높은지 낮은지를 따지지 않았다.일을 마치기에 앞서 고객만 볼 수 있는 모멘트에 핀쥔택배의 폐업을 알리고 나도 더는 VIP숍의 물건을 배달하지 않는다고 썼다. 많은 고객이 위챗으로 내 서비스를 칭찬하며 오랫동안 고생했다고 감사의 글을 남겼다.
그 덕분에 줄곧 형편없었다고 생각했던 스스로에 대한 평가를 조금 높일 수 있었다. 한 고객은 "제가 만난 택배기사 가운데 가장 책임감 있었습니다"라고 남겨줬다. 특별한 인상을 받은 고객이 아니라서 그렇게 높이 평가해줄 거라고 생각도 못 했다. 하지만 그게 진심이라고 믿었다. 이미 업무가 종료돼 더는 만날일이 없으므로 마음에도 없는 아부를 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그래서 내 택배기사 경력을 과장 없이 한마디로 정의해보려 한다.
나는 몇몇 고객한테는 그동안 만났던 모든 택배기사 중 최고였다. - P164

Y는 우리가 잠시라도 한가한 걸 싫어하고 때로는 무의미한 일로 괴롭히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낌없이 음식을 대접하면서 좋은 관계를 맺으려 했다. 다른 가게 사장들은 대부분 그러지 않았다. 다만 Y는 모든 면에서 과한 경향이 있었다. 과하게 요구하고 과하게 베풀고, 과하게 상처 주고 과하게 보상했다. 요컨대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늘 끊임없는 격정 속에서 살았다. 그는 타고난 투사였다. - P186

‘인생은 나선형으로 상승한다‘는 말을 누가 제일 먼저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절하고 생생한 비유다. 다만 상승의 폭이 무척 작고 속도가 느리다는 말이 빠져 있을 뿐. 인생은 등장하는 이름과 형태만 바뀔 뿐 늘 지난날이 반복되고 우리는 과거에 만났던 사람을 새로운 이름으로 다시 만난다.
타인은 나와의 관계만 있지, 개성은 없다. 예를 들어 여자친구를 사귀다 보면 시간이 갈수록 전 여자 친구와 비슷하다는걸 발견하게 된다. 단순한 착각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두여자는 이름과 외모가 달라도 ‘내 여자 친구‘를 연기하면서 그 배역에 맞춰 공통된 면모를 보여줄 뿐이다. 배우가 다르고 각본이 다를지라도 똑같은 인물을 연기하면 두 배우가 보여주는 모습이 상당히 비슷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면 다음번 여자 친구도 지금의 여자 친구와 별 차이가 없을 거라고확신하게 된다. 첫 여자 친구를 사귀었을 때 이미 마지막 여자친구와 만나고 있던 셈이다.
새로운 회사에서 만난 새로운 상사와 동료 역시 금세 이전의 상사와 동료로 변한다. 그들은 내 인생의 배우들일 뿐이라어떤 일을 겪고 어떤 대우를 받을지 예상할 수 있다. 그리고 마침내 이 세상의 구조, 그런 사람들은 나를 중심으로 그려진 원이고 그들의 반경이 바로 나와의 관계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당연히 같은 반경 위에 여러 개의 원이 중첩될 수 있으며, 그건 평면이 아니라 나선형으로 상승하는 인생의 한 조각이다.
바로 그래서 사람들은 생각이 단순한 사람을 좋아한다. 단순한 사람들은 표상을 꿰뚫어 보지 못해 본질에 도달하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살아가는 날들이 완전히 새로운 날이고 만나는사람들도 전부 낯선 사람이다. 그들은 똑같은 고통과 행복을 무수히 겪으면서도 매번 처음인 것처럼 느낀다. -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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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해의 물고기는 눈이 보이지 않고 사막의 동물은 갈증을잘 참는 것처럼 어떤 사람이 되는지는 내가 처한 환경에 좌지우지되지, 본성에 따라 결정되는 게 아니었다. 나는 업무 환경이 조금씩 나를 바꾸고 있음을, 더 조급하고 쉽게 욱하고 무책임하게 바꾸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지금껏 지켜왔던 기준을 지킬 수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아졌다. 한번은 모르는 여자한테 한바탕 난리를 친 적이 있었다. 원래 누구한테 호통치는 성격이 아니라그 일은 아주 강한 기억으로 남았다. -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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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의 야간 노동이 남긴 것

1년이라고 썼지만 사실 D사의 물류센터에서 일한 시간은 10개월 정도다. 쓰촨 대지진 발생 9주년이었던 2017년 5월 12일, 나는 광저우 근교의 순덕(順덕)에 있는 D사의 허브센터에 입사했다. 당시 전국 최대 규모의 물류센터였지만 퇴사한 뒤에야 인터넷을 통해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거기서 일할 때 규모에 압도당하긴 했어도, 솔직히 몇 번째로 큰지에 관심을 가질 만큼 여유가 있지는 않았다. - P17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떠들기를 싫어하는 모양새였다. 열정적이거나 주체적인 구석이 전혀 없어서 꼭 늙고 조용한 농부들 같았다. 나이가 그렇게 많지 않은데도 그랬다. 또 낯선 사람을 경계하며 차가운 태도를 유지했다. 다행히 나도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다들 입을 다문 채 일만하는 게 좋았다. 그런 인간관계가 무척 편안했다. 그러다 어느날 문제가 생겨 조언을 구했더니 다들 어색하게 웃으며 멋쩍게 대답하는 게 아닌가. 사실 그들은 거만한 게 아니라 내향적일 뿐이었다. - P22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이 일은 수습 때가 가장 힘들다. 신체조건이 나쁜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특히 그 여자처럼 바람에 쓰러질 듯 약한 사람이 오면 우리는 아예 도움을 줄 수 없었다. 괜히 도와주었다가는 이 일이 할 만하다는 오해를 심어줄 수있기 때문이었다. 완전히 나가떨어지게 만들어야 했다. 그렇게했는데도 버텨낸다면 그 사람은 정말로 이 일을 감당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우리는 건장해 보이는 사람을 오히려 도와주고 약해 보이는 사람은 외면했다. - P32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는 전부 방관자였다. 사태가 어떻게흘러가는지 조용히 옆에서 지켜보기만 했지, 누구도 그 일에 개입하려 하거나 임신부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다. 기껏해야 몇 마디 위로하는 게 다였다. 다들 자신만의 스트레스와 고충에 빠져 있어서 다른 사람을 돌볼 여력이 없었다. 그런 일터에서는 누구나 삶에 짓눌려 동정심이 바닥나고 자기도 모르게 무감각하고 차갑게 변해갔다. -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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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정(廟庭)의 노래

1
남묘(南廟) 문고리 굳은 쇠 문고리
기어코 바람이 열고
열사흘 달빛은
이미 과부의 청상(靑裳)이어라

날아가던 주작성(朱雀星)
깃들인 시전(矢箭)
붉은 주초(柱礎)에 꽂혀 있는
반절이 과하도다

아-어인 일이냐
너 주작의 성화(星火)
서리 앉은 호궁(胡弓)에
피어 사위도 스럽구나

한아(寒鴉)가 와서
그날을 울더라
밤을 반이나 울더라
사람은 영영 잠귀를 잃었더라

2
백화(白花)의 의장(意匠)
만화(萬華)의 거동의
지금 고오히 잠드는 얼을 흔들며
관공(關公)의 색대(色帶)로 감도는
향로의 여연(餘烟)이 신비한데

어드매에 담기려고
칠흑의 벽판(壁板)위로
향연(香煙)을 찍어
백련을 무늬 놓는
이 밤 화공의 소맷자락 무거이 적셔
오늘도 우는
아아 짐승이냐 사람이냐 -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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