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러‘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그들의 강인함에 쓰린 질투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하는 일은 보통 인간의 기준으로 보자면 거의 초인적이라 할 만큼 엄청나다. 그것은 그들이 어마어마한 양의 석탄을 퍼담을 뿐만 아니라, 두세 배 힘든 자세로 작업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계속해서 기는 자세를 유지해야만 하는데(무릎을 펴려고 했다간 천장에 머리를 부딪히지 않을 수 없다) 그게 얼마나 힘든지는 시늉만 해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삽질은 서서 할 때 더 쉬운 법이다. 삽을 움직일 때 무릎과 허벅지를 이용할 수 있기때문이다. 무릎을 꿇게 되면 그 부담을 팔과 배 근육으로 다 떠안아야 한다. 다른 조건들도 작업을 딱히 더 수월하게 해주는 건 아니다. 덥고(제각각이지만 경우에 따라 숨 막힐 정도다). 탄진은 목구멍과 콧구멍을 틀어막으며 눈썹에 자욱하게 쌓이며, 그 비좁은 공간 안에 있으면 기관총 소리처럼 시끄러운 컨베이어벨트의 소음이 끝없이 들려온다. 그런데도 필러들은 철로 만든 사람처럼 보이고, 또 그렇게 일을 한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매끈하게 덮여 있는 탄진을 보면, 그들은 정말 철의 인간 같다(철을 두드려 만든 조각상 말이다). 광부들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려면 탄광 밑에서 벗고일하는 모습을 봐야만 한다. 그들은 대부분 덩치가 작지만(크면 그만큼 작업이 불리해진다) 거의 모두 신체가 대단히 빼어나다. 널찍한어깨는 점점 가늘어져 미끈하고 유연한 허리로, 그리고 작고 도톰한 엉덩이와 근육질의 허벅지로 이어지며, 단 1온스의 군살도 없다. 더운 탄광에서는 얇은 속바지와 작업화와 무릎보호대 차림으로만 작업하며, 아주 더운 곳에서는 작업화와 무릎보호대 차림뿐이다. 여기서 광부들은 겉모습으로 젊었는지 늙었는지 분간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많으면 예순에서 예순다섯까지 될 수도 있으나, 벗은 몸에 시커먼 모습이면 모두 똑같아 보인다. 단, 청년의 신체, 그것도 근위병 수준의 몸이 아니면 누구도 이 일을 할 수가 없다. 허리에 군살이 몇 파운드만 있어도 계속해서 허리를 굽혔다 펴는 동작은 할 수 없을 것이다. 일단 보고 나면 다시는 잊을 수 없는 광경이다. - P33

하지만 정말 내가 강조하고 싶은점은 이런 것이다. 즉, 여기 기어서 한참을 오가야 하는 끔찍한 일이 있고, 그것은 보통 사람에게는 그 자체로 하루치 일거리다. 그런데 그게 광부에게는 아예 작업의 일부도 아니며, 도시인이 지하철을 타고 날마다 출퇴근을 하듯 부수적인 일에 지나지 않는다는것이다. 광부는 그런 식의 출퇴근을 하고, 그 사이에 일곱 시간 반의 무지막지한 노동이 끼여 있다. 나는 막장까지 1.5킬로미터가넘는 거리는 이동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흔히 그 거리는 5킬로미터나 되며, 나를 포함해 광부가 아닌 대부분의 사람은 결코 그만큼 가지 못할 것이다. 이런 점을 사람들은 늘 간과하기 쉽다. 우리는 탄광을 생각할 때 깊이와 더위를, 암흑을, 그리고 채벽을 파내는시커메진 사람을 생각하되, 기어서 몇 킬로미터를 왔다 갔다 하는지는 생각해보지 않는다. 더구나 시간의 문제도 있다. 광부가 일곱시간 반 단위로 근무 교대를 한다고 하면 별로 긴 것처럼 들리지 않겠지만, 거기다 매일 적어도 한 시간, 보통은 두 시간, 때로는 세시간에 달하는 ‘여행‘ 시간을 더해야 한다. 물론 이 ‘여행‘은 법적으로는 작업이 아니며 그래서 광부는 그 대가를 받지 못한다. 하지만 그것은 아무리 상관없다 해도 그 자체로 노동에 가까운 일이다. - P42

나는 이게 어떤 의미인지 이해할 만큼 곡괭이질과 삽질을 해본 경험이 있다. 내 정원에서 땅을팔 때 오후 내내 2톤 분량의 흙을 펴낸다면, 나는 차 마실 값은 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흙은 석탄에 비하면 다루기 쉬운 물질이며, 땅속 300미터 밑 숨 막히는 더위 속에, 숨 쉴 때마다 탄진을 마셔가며, 그것도 무릎으로 기어가며 일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일을 시작하기 전에 몸을 반으로 접고 1.5킬로미터씩 걸을 필요도없다. 광부의 작업은 나로서는 공중그네를 타거나 그랜드내셔널에서 우승을 하는 것만큼이나 내 역량을 벗어나는 일이다. 나는 육체노동자가 아니며 앞으로도 그럴 일이 없기를 신께 빈다. 그런가하면 내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육체노동도 있다. 정 필요하다면 나는 봐줄 만한 거리 청소부가 될 수도 있고, 무능한 정원사가 될수도 있고, 최악의 농장 인부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애를쓰도 훈련을 받는다 한들, 광부는 될 수가 없다. 그랬다간 몇 주 만에 죽어버리고 말 것이다. - P46

광부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다른 세상에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구나 하고 문득 깨닫게 될 것이다. 저 아래 누가 석탄을 캐고 있는 곳은, 그런 곳이 있는 줄 들어본 적 없이도 잘만 살아가는 이곳과는 다른 세상이다. 아마 대다수 사람들은 그런 곳 얘기는 안 듣는 게 좋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세계는 지상에 있는 우리의 세계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나머지 반쪽이다. 아마도 우리가하는 모든 것, 말하자면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부터 대서양을 건너는 것까지, 빵을 굽는 것부터 소설을 쓰는 것까지, 모든 게 직간접적으로 석탄을 쓰는 것과 상관이 있다. 평화를 위한 모든 수단에 석탄이 필요하며, 전쟁이 터지면 석탄은 더욱 필요해진다. 혁명기에도 광부는 계속 일하러 가야 한다. 아니면 혁명이 중단될 수밖에없다. 혁명도 반동도 석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상에 어떤 일이벌어지건, 석탄을 파고 퍼담는 작업은 쉬지 않고 계속되어야 한다. 아니면 길어도 몇 주 이상 중지되어서는 안 된다. 히틀러가 거위걸음으로 행진하기 위해, 교황이 볼셰비키 사상을 지탄하기 위해로즈 경기장에 크리켓 관중이 몰리기 위해, 동성애자 시인들이 서로의 등을 긁어주기 위해, 석탄은 언제든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 P47

그들은 임신한 상태로도 그런 일을 하곤했다. 나는 심지어 지금도 만일 임신한 여자들이 땅속을 기어다니지 않으면 석탄을 얻을 수 없다고 한다면, 우리가 석탄 없이 살기보다는 그들에게 그런 일을 시키리라 생각한다. 어떤 육체노동이든 다 그렇다. 그것 덕분에 살면서도 우리는 그것의 존재를 망각한다. 아마도 광부는 다른 누구보다 육체노동자의 전형일 것이다. 그것은 광부의 일이 더없이 끔찍하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너무나 필요함에도 우리의 경험과는 워낙 멀리 떨어져 있어 실제로 보이지도 않고 그래서 우리가 혈관에 피가 흐르는 것을 잊듯 망각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떤 면에서는 광부들이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해도 자괴감을 느낄 만하다. 그럴 때 우리는 잠시나마 ‘지식인‘ 으로서의, 전반적으로 우월한 존재로서의 자기 지위를 의심하게 된다. 적어도 지켜보는 동안에는, 우월한 인간들이 계속 우월하기 위해서는 광부들이 피땀을 흘려야만 한다는 자각을 똑똑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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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브루커 부부의 하숙집에서

아침이면 제일 먼저 들리는 소리는 돌 깔린 길을 타박타박 걷는 여공들의 발소리였다. 나는 더 일찍 깨본 적이 없어 못 들어봤지만, 그보다 앞서 공장에서는 경적을 울리는 모양이었다. - P11

아침 식사 때 식탁 밑에 가득 찬 요강단지가 있는 것을 본날, 나는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있다 보면 더 우울해질 것 같았다. 더럽고 냄새나고 음식이 형편없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무의미하게정체되어 썩어간다는 느낌, 사람들이 지하에 갇혀 바퀴벌레처럼 같은 자리를 빙글빙글 기어다니며 끊임없이 비열한 불평불만만 늘어놓고 있다는 느낌이 더 견디기 힘들었다. 브루커 부부 같은 사람들의 가장 끔찍한 점은 같은 얘기를 하고 또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그들을 보노라면 인간이 아니라 매일 똑같은 시시하고 장황하고 무익한 이야기를 끝없이 연습하는 무슨 유령 같다는 느낌이 든다. 결국 브루커 부인의 자기연민뿐인 이야기는 언제나 같은 것들에 대한 불만이며 늘 "그러니 얼마나 힘들겠수?"라는 푸념으로 끝난다) 신문지 조각으로 입을 닦는 버릇보다 내 비위를 더 거슬렀다. 그렇다고 브루커 부부 같은 사람들은 역겨우니 잊어버리면 그만이라고 해봤자 부질없는 짓이다. 그들 같은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으며, 그들 역시 근대 세계 특유의 부산물인 것이다. 그들을 만들어낸 문명을 받아들이면서 그들을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들 역시 산업화가 우리에게 가져다준 것 가운데 일부이다. 콜럼버스가 대서양을 횡단하고, 최초의 증기엔진이 돌아가고, 워털루에서 영국군이 프랑스군의 총포를 견뎌내고, 19세기의 애꾸눈 악당들이 하느님을 찬양하며 제 호주머니를 채우는 것, 이 모든 일의 결과로 그런 사람들이 생겨난 것이다. 그 때문에 미로 같은 슬럼가가, 나이 들고 병든 사람들이 바퀴벌레처럼 빙글빙글 기어다니는 컴컴한 부엌이 생겨난 것이다. 그런 것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서는 이따금 그런 곳들을 찾아가 냄새를 맡아볼(냄새를 맡는 게 특히 중요하다) 의무 같은 게 있다. 가서 너무 오래 머무르지는 않는 게 낫겠지만 말이다. -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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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까지 빈쥐에서 찾아보기 힘든 음식이라 기대했지만 장사가 잘되지 않았다. 내가 파는 조림은 식사보다 간식에 가까웠는데 그곳 사람들은 간식에 별 흥미가 없는 듯했다. 어쩌면 간식은 물질적 풍요로 늘어난 욕망, 혹은 생존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한 정신적 탈출구일지도 몰랐다. 빈쥐 사람들은 부유하지도 않고 특별한 압박도 없는 모양이었다. - P304

내가 말하고 싶은 자유는 고도의 자아의식을 기반으로 추구하는 개인적 갈망과 자아실현이며 타인과 확실히 구분되는정신이다. 나는 그런 자유를 동경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세상이 더욱 다양하고 다원적으로, 더욱 평등하고 포용적으로 더욱 풍부하고 다각적으로 변할 수 있다고 믿는다. 사람들이 자유를갈망할 수 있게 돼야 서로 다른 목표를 추구할 것이기 때문에 좁은 외나무다리에서 부딪칠 필요가 없어진다. 유전적 차원에서 환경에 대한 적응은 다양성을 기반으로 하는 것처럼, 사회 전체의 행복은 사회 구성원의 정신적 다양성에 기반한다.
나는 진리의 추구가 진리의 소유보다 소중하다는 도리스레싱의 말에 동의한다. 자유도 진리와 마찬가지로, 볼 수만 있을뿐 잡을 수 없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평생 도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자유를 추구하는 게 자유를얻는 것보다 중요하며 그것이 모든 사람, 더 나아가 전 세계에 중요하기 때문이다. 자유는 이상과 신념처럼 삶의 지렛목이다. - P325

사실 이제는 내가 했던 모든 일에 감사하고, 당시를 생각하면 그리울 뿐이지, 불만이나 원망은 조금도 남아 있지 않다. 예전에 들었던 그런 마음은 이제는 전부 내려놓았다. 삶의 경험이 쌓이면서 원한의 무가치함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 P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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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첫 글쓰기는 샐린저를 모방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이어서는 레이먼드 카버를 읽으며 그가 묘사한 일상생활의 붕괴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지금보다 훨씬 감상적이었기 때문인지 쓸쓸한 리처드 예이츠의 작품도 좋았다. 트루먼 커포티의 작품도 읽었다. 내게는 자전적인 어린 시절 이야기들이 [티파니에서 아침을]보다 훨씬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그때는 미국 현실주의작가들이 그려낸 일상과 감정이 가슴에 와닿았다. 상품화된 사회와 소비주의 등이 세계를 정복하면서 인간의 삶이 동질화되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문학작품을 많이 읽을수록 현실에서 점점 멀어지는 느낌이들었다. 일이든 사업이든 감정이든 내 삶에는 좌절과 고통이 가득했다. 나는 내가 적응하기 힘든 세상에서 인정받으려 애쓰다가 끊임없이 실망하고 실패했다. 물론 실패를 외부 환경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었다. 나도 남들한테 인정받으려 그렇게 애쓸 필요가 없었다. 글쓰기처럼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 했다. 그 시간 동안 내 정신세계는 현실 세계가 척박해지는 만큼 풍요로워졌다. - P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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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우리는 많은 실수를 했고 많은 일을 그르쳤지만 그런 시간을 통해 나는 세상, 최소한 이 사회에 대해각성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 예전에 읽어보지 못했고 원래라면 절대 읽을리없는 책들을 읽었고 나를 변화시킨 개념과 주장을 접할 수 있었다. 그런 경험 덕분에 적당히 맞춰 살면 된다고 생각했던 과거에서 벗어나, 무엇이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지 삶의 여러 가치와의미를 새롭게 살펴볼 수 있었다. 물론 변화는 한순간에 일어나지 않았고 그때 바로 완성되지도 않았다. 씨앗만 뿌려졌다가 이후 오랜 시간 천천히, 그렇지만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워 지금까지도 내게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그렇기에 앞에서 이야기한 일들은 어느 하나를 빼더라도대세에 지장이 없다고, 지금의 나를 형성하는 데 별 영향을 주지않았다고 할 수 있지만 베이징에서 겪은 일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되었을 것이다. 환골탈태는 과장일수 있겠지만, 적어도 그때의 경험이 지금의 내가 만들어지는 하나의 출발점이 되었음은 확실하다. 지금의 나는 다른 사람과의 차이 때문에 불안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 개성을 소중히 여긴다. 여전히 나는 모르는 게 많고 겁이 많지만 그 덕분에 의지와 신념이 생겼다. 이후로는 일을 하든 글을 쓰든 나만의 정신세계를 구축할 수 있게 되었다. - P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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