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브르에서 중국을 만나다 - 예술품으로 본 동서양의 문명 교류
중국 CCTV 다큐멘터리 제작팀 지음, 김원동 엮음 / 아트북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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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에서 중국을 만나다]중국과 프랑스, 예술작품으로 본 두 문명 산책

 

내가 살아보지 않은 시간과 공간을 만날 때면 마치 시간여행자의 느낌이다. 홀로 과거 속으로 걸어가 옛 사람을 만나고, 옛 예인과 장인들을 만나고, 천하를 호령하던 영웅호걸과 소박한 서민을 만나기에 감동과 전율이 멈추질 않는다. 특히 박물관 산책은 내가 몰랐던 과거의 시공 속에 존재했던 예인들의 삶과 역사와 고스란히 조우하기에 그 느낌은 보다 강렬하다. 예술가의 혼, 권력의 자취를 마주할 수 있는 미술관 산책은 그래서 언제나 호기심 가득한 시선을 뿜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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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에서 중국을 만나다.

동양과 서양의 만남, 자금성과 루브르의 만남, 갑골문자와 쐐기문자의 만남, 나폴레옹과 강희제의 만남, 고대 그리스 여신과 고대 중국의 선녀의 만남, 함무라비 석비와 사기정의 금문의 만남, 중세의 기독교와 당의 불교의 만남,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원나라 예찬의 만남, 17세기 렘브란트와 청의 팔대산인의 만남, 부셰의 그림 속 중국과 <옹정행락도> 속 유럽의 만남, 푸생의 고전주의와 조맹부의 당송 계승의 만남, 들라크루아와 서위의 만남, 코로의 자연주의와 쉬베이홍의 사실주의의 만남 등 수많은 만남을 보면서 도도한 장강과 고고한 세느강의 만남을 보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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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루브르 박물관의 역사가 흥미롭다.

1793년 루이 16세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자, 프랑스 제1공화국은 왕궁이던 루브르궁을 '중앙예술박물관'으로 만들었다. 국왕과 귀족들의 예술 소장품들을 전시해 일반 시민에게 공개해 예술 감상조차 자유와 평등의 정신을 나타내려 했다. 나폴레옹이 집권하던 시절에는 '나폴레옹 박물관'으로 불리기도 했다. 미테랑 정부는 '그랑 루브르'계획에 따라 루브르 박물관을 세계 최대의 박물관으로 만들고자 했다. 1989년 중국계 미국인인 이오밍 페이의 건축설계도에 따라 새 출입구를 유리 미라미드로 만들었다. 당시엔 프랑스 국민들의 반발이 심했지만 루브르 박물관은 전시장의 크기가 두 배로 확장될 수 있었고 채광량이 훨씬 늘어난 현대적 박물관으로 재탄생할 수 있었다. 미궁처럼 좁고 복잡한 224의 방을 105만 점의 작품이 가득 채우며 세계의 관객들을 끌어 모으게 된 것이다. 세계 최대의 박물관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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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박물원은 1924년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푸이가 자금성에서 쫓겨나고, 1925년 자금성의 신무문에 '고궁박물원'이라는 현판이 걸리면서 시작되었다.  루브르 등 서양의 박물관 시스템을 배워 지은 중국 최대 규모의 고대 문화 박물관이라고 한다.  왕과 귀족이 쓰던 귀중한 물건, 수집품 등이 황궁의 빗장을 열고 서민들과 마주한 것이다.

 

건륭제와 나폴레옹의 비교도 흥미롭다.

건륭제가 자신의 정벌전쟁의 공로를 내세우기 위해 프랑스와 루이 15세에게 자신이 승리하는 장면을 그린 동판화를 특별히 주문했다. 이 동판화는 황제의 권위를 세우기 위한 의식 같다. 더구나 멀고 먼 이국 땅 프랑스의 동인도회사를 통해 동판화를 주문 제작한 것은 저자의 말대로 과시욕이 아닐까. 자신의 업적을 널리 알리고 제국을 넓히고 싶은 욕망을 담은 황제의 과욕일 것이다. 어쩌면 유럽까지 정복하고 싶은 권력에 대한 욕망을 은근히 보여준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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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은 루브르 궁 광장에 자신의 승전을 축하하기 위해 작은 개선문(카루젤 개선문)을 짓도록 했다. 개선문 상부에는 나폴레옹이 베네치아에서 가져 온 청동 말 네 마리가 장식되었는데, 1815년 왕정복고를 기념해 베네치아에 반환했다고 한다. 전장에서 승리한 장군만이 통과할 수 있었던 개선문.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 자신의 공을 국민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해 자신만의 개선문을 만든 것이다.  루브르 박물관의 동쪽 카레 궁정의 페디먼트의 중앙에는 나폴레옹의 모습이 조각되기도 했다. 물론 지금은 그 자리에 아폴로 신이 조각 되어있다.

 

나폴레옹이 자신을 ‘전쟁의 신’으로 포장하고 싶어 했다면, 건륭제는 ‘청렴한 문인’으로 인식시키려 노력했다. 건륭제도 나폴레옹과 마찬가지로 그의 자취가 오래 남기를 강렬히 원했다. (책에서)

나폴레옹이 그림과 조각을 많이 남겼다면 건륭제는 그림과 글을 많이 남겼다.

예술을 통한 두 권력자의 영웅심리, 과시욕의 발로가 아닐까. 

 

루브르 박물관의 서아시아 관에 가면 세계 최초의 문자인 쐐기문자 기록이 있다. 설형문자인 쐐기문자는 메소포타미아인들이 점토 위에 갈대나 금속으로 펜을 만들어 수를 센 흔적이라고 한다. 반면 중국에서는 은나라의 갑골문자가 보존되어 있다. 갑골문자는 거북의 등껍질이나 짐승의 뼈에 새겼으며 전쟁이나 제사를 앞두고 길흉을 점친 흔적이라고 한다.

 

고대 중국의 갑골문자가 신과 소통하기 위한 문자였다면, 반대로 서아시아의 쐐기문자는 실용 위주의 문자다. 실제로 어느 수메르 신전에서 최초로 발견된 점토판 문서 역시 행정 문서였다. (책에서)

 

사고방식의 차이가 글자에서도 드러나다니. 어쩌면 정신문화를 중요시하는 동양문화와 물질과 실용을 중시하는 서양문화의 차이가 태초부터 있었던 건 아닐까. 최초의 글자 사용에서도 그런 차이가 있는 걸 보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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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과 서양의 세계관 차이가 예술에서도 잘 나타난다.

고대 그리스 여신은 새의 날개를 정교히 달아 생동감이 있고 중국은 하늘거리는 천을 휘감고 하늘로 올라갈 뿐이다. 아니면 구름을 탄 선녀의 모습이다.  건축의 기둥에서도 고궁박물관은 둥근 모양의 별다른 장식이 없는 담백한 여백미가 있지만 루브르 박물관 기둥은 정교하고 사실적인 조각들이 세밀하게 그려져 있다. 고대 중국인들이 추상적인 선을 중요시 했다면 그리스인들은 사실적인 형체를 추구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중국은 농업국가여서 농민을 잘 다스려야 했다. 한 해의 수확을 위해 늘 하늘에 제사를 지냈고, 모호하거나 추상적이거나 어렵게 느껴질수록 하늘의 뜻에 더 가깝게 여겼다고 한다. 반면에 유럽은 농업보다 상업이 더 발달했기에 스스로의 힘을 더 의존해왔다고 한다. 그리스 신들이 굉장히 인간적인 욕망을 가지고 있다는 점, 중국의 선녀가 천상에 속한 신비로운 여인이라는 점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자연과 개인, 집단주의와 개인주의의 차이가 농업 중심 사회, 상업 중심사회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이 새삼 새롭다. 동양과 서양의 유전자 차이, 두 세계의 고유한 빛깔의 차이는 세월이 흘러도 근본이 바뀌지 않는 이유가 될 것 같은데...... 외양은 바뀌어도 본질은 유구히 남아 각자의 모습을 지켜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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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대표하는 고궁박물원과 프랑스를 대표하는 루브르 박물관의 만남은 커다란 두 문명의 충돌이다. 유물, 예술품에는 두 나라의 권력의 역사와 예술가들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을 보니,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고 삶은 예고대로 흘러가지 않는 드라마 같다. 두 문명 속에서 피어난 예술품들이 말하는 역사의 흥망성쇠, 문명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책이다. 거대한 물줄기가 부딪친 듯 격렬하게 남긴 흔적은 예사롭지 않다.  단순한 두 나라의 과거의 예술 혼, 과거의 역사의 조우를 넘어선 장대한 동양과 서양 문명의 발자취와 흔적들이었다. 두 문명의 고유한 리듬과 박자가 시간과 공간을 아우르며 흐르다가 새로운 시너지를 받는 모습은 상상 이상이다. 특히 거대한 중국의 영욕의 시공간을 햇빛 속으로 드러낸 작품들이 많아서 낯설면서도 반가운, 잊히지 않는 예술품들이 한아름이다.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 중국의 고궁박물원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기회였다. 서로 다른 채색미, 균형미, 정신을 통해 역사, 인물, 영웅심리를 만날 수 있는 책이다. 박물관 여행자가 되어, 시간여행자가 되어 두 문명의 교류를 체험한 시간, 잊히지 않는 비교 감상의 시간이었다. 

 

 

중국 CCTV와 프랑스가 합작해 3년간의 제작 기간을 거쳐 완성한 다큐멘터리 12편인 <루브르 박물관, 자금성을 만나다>. 2012년 2월 중국과 프랑스에서 동시 방영하면서 화제를 모았던 이 12편의 다큐멘터리를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것이라고 한다. 책을 읽으면서 중국의 거대함과 치밀함을 다시 확인한 순간이었다. 실제 다큐멘터리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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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그림에도 사람이 살고 있네 - 조선 화가들의 붓끝에서 되살아난 삶
이일수 지음 / 시공아트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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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그림에도 사람이 살고 있네]옛 그림 속에서 만나는 선조들 모습, 생생한 느낌이야!

 

조선 500년 역사 속에서 백성들의 삶은 어땠을까. 선조들의 옛 풍습이나 삶의 모습을 보려면 실록이나 역사적 기록들, 집 안 대대로 물려오던 기록들, 그림들을 보아야 할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생동감 넘치는 자료가 그림이 아닐까. 사진기가 없던 시절이니 손으로 그린 그림이야말로 그 시절의 모습을 가장 생생하게 느낄 수 있을 테니까.

 

 

스탕달 신드롬이라니. 예술 작품을 접할 때 순간적으로 가슴이 뛰거나 우울증 혹은 현기증 등의 증상이 일어나면서 무릎에 힘이 빠지는 현상이라고 한다. 아직은 그림을 머리로만 즐기는 수준이라서 가슴으로 느끼는 감상의 즐거움과 감동을 이해하지 못한다. 더구나 스탕달 신드롬 같은 건 꿈도 못 꾸고 있다.

조선의 풍속화가인 김홍도의 <행상>

남부여대한 부부의 모습이 현실의 고단함을 보여주는데……. 보육시설도 없던 시절의 맞벌이 부부니까.

아내는 포대기도 없이 남자용 저고리를 입고 그 안에 아이를 업고 있다. 머리에 인 큰 대광주리가 무거운지 고개는 살짝 꺾여 있다. 아기는 아직 어려 머리카락도 채 나지 않은 상태며 곤한 잠에 빠져 있다. 남편은 그런 아내를 보며 걱정 어린 눈길을 거두지 못한다. 자신의 지게 짐도 무거운지 어깨끈을 단단히 잡고 말이다. 가난이 일상이었던 시절, 살아내야 했던 부부의 책임감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밥벌이의 고단함은 가장의 어깨를 더욱 짓누를 텐데.

 

김홍도의 <장터 길>

말을 탄 남자들이 곰방대를 피우며 여유롭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5일장을 맞아 물건을 구하러 가는 걸까. 아니면 짐을 실어주는 짐꾼일까. 말을 타고 줄지어선 모습이 마치 택시 정류장의 택시 기사들 같은데…….

저 멀리 말에 짐을 가득 싣고 언덕을 오르는 남자도 보인다. 보부상이 아니라 말을 끌 정도면 여유 있는 상인들일 텐데……. 조선 후기에 중상정책을 썼다고 하지만 상업을 천시하던 시절이 아닌가. 전국 장터를 떠돌며 살아갔을 상인들의 빡빡한 인생이 느껴진다.

 

김홍도의 <자리짜기>에서는 가내수공업의 모습이 보인다. 아버지는 고드랫돌을 옮기며 자리를 짜고 있고, 어머니는 물레를 돌리며 실을 뽑고 있다. 하나 뿐인 아들은 큰 소리로 책을 읽고 있다.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충실한 세 식구의 모습에서 열정이 묻어난다. 더구나 아이는 아랫도리를 벗은 채 공부를 하고 있다. 그렇게 가난한 걸까. 아니면 다른 의미가 있는 걸까.

 

김홍도는 살아 있는 화가의 눈을 가졌고,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시인의 눈을 가졌으며, 영혼을 울리는 음악가의 귀를 가졌다. 음악가의 귀를 가졌다는 것을 알려 주는 그림들에는 거문고, 당비파, 생황, 퉁소 등이 등장하는데, 김홍도 자신이 여러 가지 악기들을 실제로 연주할 수 있었다고 한다. (94쪽)

 

<길쌈>, <대장간>, <점심>, <무동>등 김홍도의 풍속화에는 농사짓는 사람, 수공업 하는 사람, 베를 짜는 사람, 서당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의 모습 등이 있다. 서민들의 역동적인 삶, 소박하지만 해학적인 모습을 정감 있게 그려져 있다. 체험 삶의 현장 같이 다양한 모습들이다.

김정희의 <세한도>, 강희안의 <고사관수도>, 안견의 <몽유도원도>, 신사임당의 <노연도>, 윤덕희의 <책 읽는 여인>, 신윤복의 <연당의 여인> 등에서 옛 사람을 만날 수 있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는 그림들이다. 족보에서나 만날 수 있는 조상들의 모습이 오늘의 우리와 맞닿아 있다고 생각하니 더욱 소중해지는 그림들이다. 소중한 우리의 옛 그림 읽기다. 추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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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국립 회화관 마로니에북스 세계미술관 기행 14
윌리엄 델로 로소 지음, 최병진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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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국립회화관]베를린 국립 회화관 산책…….

 

 

그림에 관련된 책은 많이 접하지만 미술관을 중심으로 한 책은 별로 접하지 못했다. 빈 미술관에 이어 베를린 회화관을 보면서 미술관 여행자라면 미리 읽고 간다면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

베를린 국립 회화관.

1998년 베를린 국립 회화관은 동독의 보데 미술관과 서독의 다렘 미술관의 소장품을 합치면서 새롭게 출발했다. 이곳에는 수백 년에 걸친 독일의 문화유산이 전시되어 있다.

베를린 국립 회화관은 17세기 선제후들에 의해 오렌지 가문의 유산과 네덜란드 회화가 유입되었고, 프리드리히 대제에 의해 르네상스와 바로크의 작품들이 추가되었다. 그리고 1798년 대중교육을 위한 미술관으로서 첫걸음을 시작했다.

 

 

이곳의 소장품에는 빛의 화가인 렘브란트, 북유럽의 거장 루벤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전성기를 대표하는 코레조, 카라바조, 베르메르, 대 피테르 브뢰헬, 뒤러의 작품이 있다. 조토, 판 에이크, 와토, 홀바인, 보티첼리, 페트루스 크리스투스의 작품들도 있다.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대 피테르 브뢰헬의 플랑드르의 속담 1559.

가까이 바다가 보이는 마을에는 여러 인간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작품 속의 인간과 동물, 사물의 모습은 플랑스드 지역의 여러 가지 속담과 격언을 연상시킨다고 한다. 이 그림의 최초의 제목은 <뒤집힌 세상>이었다. 그렇기에 그림 속의 풍자는 보편적인 속담을 나타낸 게 아니라 종교적 믿음에서 벗어난 모습을 다루고 있다고 한다. 15세기부터 16세기까지 플랑드르 미술과 문학에서 많이 사용된 소재라고 한다.

 

 

그림은 두 종류의 이야기를 따라 도덕적인 목적에 부합하는 교훈을 만들어내고, 무질서한 이미지를 효율적으로 강조한다. 첫 번째 부류는 뒤집힌 세계를 통해서 구성되며, 당시 만연된 허황된 가치에 대한 상징을 구성한다. 두 번째 부류는 위선과 사기를 둘러싼 속담을 시각적으로 번역한다. (94쪽)

 

 

집안에 있는 사람들 모르게 카드를 몰래 빼내는 남자의 모습 아래 천구가 거꾸로 매달려 있다. 위선자의 손, 정신착란자의 형태를 나타내며 이상적인 세계의 전복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림 속에는 한 수도사가 묵주와 엉터리 수염을 달고 가짜 구원자의 얼굴을 만지는 모습도 있다. 악마가 죄를 사하는 거짓된 고백성사의 장면도 있다. 지붕 위에 널린 빵들은 풍요와 쾌락을 상징한다고 한다. 쏟아진 옥수수를 담고 있는 여인, 식탁 위에 두 팔을 벌려 엎드려 있는 남자의 모습은 피해를 당해 무력감을 나타내고 있다.

 

 

그 당시의 풍습과 가치관을 알 수 있는 그림이라서 보는 재미가 있다. 일종의 풍속화 같기도 하고 풍자만화 같기도 하다.

 

피에로 디 코시모의 베누스, 마르스, 큐피트 1505년 경.

 

이 패널화는 15세기 말 피렌체 문화의 전형을 보여준다는데…….

선과 미의 신인 베누스가 악과 전쟁의 신인 마르스에 승리한다는 내용이다. 이 주제는 보티첼리가 그린 그림과 동일한 것이지만 보티첼리가 귀족적인 취향이었다면 코시모는 서정적, 자연주의적 취향이라고 한다.

 

그림에 나타난 싱징들이 재미있다.

토끼는 다산을 의미하고 부리를 맞대고 있는 두 마리의 비둘기는 연인을 의미하며 나비는 고양된 영혼과 허영을, 물은 새로운 탄생을 상징한다고 한다.

 

 

참고로 베를린 국립 회화관은 월요일이 휴관이다. 모든 개장시간에 미술관 가이드 프로그램을 예약제로 운연하고 있다. 특별한 그룹, 외국어 가이드의 경우에는 전화 예약이 필수라고 한다.

 

 

하나의 그림 안에 그려진 소소한 것들이 의미와 상징을 가지고 있는 그림 이야기다. 신화와 종교에 바탕을 둔 그림들이 시대적 가치관과 풍습을 담았기에 더욱 흥미진진하다.

세계미술관 기행을 떠나기 전, 이렇게 책으로 예습하고 간다면 더욱 유익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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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 베토벤, 모차르트만 아는 당신을 위한 친절한 해설이 있는 클래식 가이드
김수영 지음 / 나무수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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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한국인이 사랑한 클래식 TOP 20, 귀가 행복해지는 시간~

 

클래식 음악을 싫어하진 않지만 잘 듣지 않는다. 운전하다가 음악 프로그램에서 우연히 접하는 정도다. 여고 시절엔 음악 감상 시험을 친다고 두루두루 듣기도 했는데……. 대학 시절에도 간혹 클래식 감상을 하곤 했는데……. 집에도 LP판, CD가 제법 있지만 요즘엔 도통 접하지 않는다. 책을 읽을 때나 무언가를 할 때, 그저 묵음 상태가 좋기 때문이다. 나는 적막이 좋다. 적요의 세상이......

클래식에 대한 책을 만났다.

최근 10년간 한국인이 사랑한 클래식 TOP 20이라고 한다. 내가 사랑하는 음악, 내가 사랑했던 음악도 있을까. 괜스레 설레며 펼치게 된다.

 

다사다난한 삶의 한복판에서 부르는 노래, <합창>

기뻐하고 경배하게 영광의 주 하느님.

주 앞에서 우리 마음 피어나는 꽃 같아. (71쪽)

 

베토벤이 30년이나 구상했다는 교향곡 9번은 교향곡의 완결판, 모든 인간 사상의 합류점, 최고의 진보라고 한다. <합창> 교향곡이라는 별칭이 생길 정도로 유명하고, 찬송가에도 나와서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인 이 곡이 불멸의 걸작인 이유는 무엇일까.

 

<합창>에는 인간의 다양한 감정들이 담겨 있고, 들을수록 위기와 역경을 극복해 낸 자의 에너지가 느껴진다고 한다.

베토벤 자신이 겪은 삶의 불행과 고통을 음악으로 그렸기에 <합창>을 들으면 삶의 의지와 환희, 긍정의 기운이 더욱 느껴지는 걸까. 들으면 들을수록 웅장하고 장엄하고 거대한 물줄기가 흐르는 듯하다.

 

베토벤의 <합창>과 비교되는 모차르트의 <레퀴엠>

저자는 모차르트의 <레퀴엠>은 천국과 지옥을 수직으로 연결한다면, 베토벤의 교향곡 9번은 삶을 수평적으로 팽창시킨다고 한다. 모차르트의 <레퀴엠>은 죽음을 앞두고 삶의 끝에서 부르는 묵직한 노래이고, 베토벤의 <합창>은 다사다난한 삶의 한복판에서 부르는 노래라고 한다.

 

비발디 <사계>중에서는 '봄'을 가장 많이 들었다. 봄에 태어난 나는 봄과 늘 숙명이라는 생각까지 들어서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는 곡이다.

 

<사계>에서 바이올린의 활약은 정말 대단하다. 바이올린으로 빼어난 기교와 표현력을 자랑할 수 있는 곡, 바이올린의 매력을 한껏 끌어올린 곡이라고 한다. <사계> 중 '봄'을 듣고 있으면 호수 위의 물안개가 스멀스멀 피어나고, 들판의 아지랑이가 아롱아롱 거리고, 하늘에선 종달새가 지저귀고, 나뭇가지 여기저기서 움트는 새순들의 생기와 활기가 느껴진다.

 

비발디 집안은 대대로 바이올린에 재능이 있었고, 비발디와 그의 아버지 역시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누구보다도 바이올린의 장단점을 잘 꿰고 있었다고 한다. 비발디의 음악사랑은 사제직을 잊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미사도 잊어버리고 악보를 그리던 빨간 머리의 신부님이었다는데…….

처음엔 신부의 길을 걸었지만 종교보다는 음악에 심취했고 영감이 떠오르면 마사를 보다가도 악상을 적을 정도였다니! 대단한 열정이다. 그는 사제직을 떠나 음악 학교의 교사를 지내기도 했지만 말년에 베네치아를 떠나 빈의 빈민묘지에 묻혔다고 한다. 제자였던 알토 가수 안나와 그의 동생까지 끌어 들여 동거했다는 염문설은 정말 아이러니다.

 

최근 10년간 한국인이 사랑한 클래식 TOP 20에는 익숙한 곡들이 많다. 휴대폰 벨소리, 전자시계의 알람 등으로 익숙한 곡들도 있다. 이미 음악 교과서에서 접했던 곡들이 많아서 더욱 친근했다고 할까. 음악과 음반과 작곡가에 얽힌 에피소드들이 들어 있어서 초보자를 위한 클래식 가이드북 같다.

오랜만에 클래식을 감상하며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있다. 적막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클래식 음악을 들으니 웬 사치인가 싶다. 괜히 풍족해지고 넉넉해지는 느낌이다. 귀도 즐겁고 마음도 즐거운 시간……. 자주 즐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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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부모에게 답하다 - 청소년과 부모가 영화로 소통하는 인문학 이야기, 2014 세종 도서 교양 부문 선정 도서 인문학 콘서트 1
최하진 지음 / 국민출판사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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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부모에게 답하다]청소년과 부모가 영화로 소통하는 인문학 이야기!

 

 

아이와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이 여러 가지다.

독서, 영화보기, 같은 스포츠 즐기기, 같은 취미 즐기기, 게임 등이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족끼리 영화를 보는 경우라면 많은 소통과 공감을 나누게 될 것이다.

청소년들과 함께 볼 수 있는 영화란…….

<죽은 시인의 사회>

소설로 먼저 읽고 비디오로 봤던 영화. TV로도 봤던 영화다. 지금 보면 어떤 느낌일까.

로빈 윌리엄스가 키딩 선생임으로 나왔던 영화.

키딩 선생님의 '카르페 디엠' 이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다. 현재를 즐겨라. 는 말이 너무나 와 닿았던 영화, 우리의 현실과 비스해서 더욱 공감이 갔던 영화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담보하고 있는 현실은 비단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니겠지만 청소년기에 는 더욱 그런 생각이 들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열심히 살기를 강요받던 아이들…….

누구나 한번쯤 이런 고민들을 하지 않을까.

-왜 공부하는가.

-공부해서 무엇에 쓸 건가.

-제대로 공부하고 있는가.

-다른 방법은 없는가.

 

나의 학창시절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교실이란 콩나물시루에서 지내왔기에 키딩선생님을 둔 영화 속의 아이들이 부러웠는데…….

현재를 즐겨라. 는 말을 그 당시에 들은 적이 없어서 정말 충격이었는데…….

 

<죽은 시인의 사회>의 배경은 입시에 치중하는 엘리트들만 다닌다는 학교다. 학생들은 모두 공부에만 열중하며 성적에 매달린다. 그들의 부모들은 자녀들의 자유와 선택권을 박탈하고, 자녀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슨 고민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 오직 공부만 강요한다. 이런 아이들에게 빛과 같은 존재인 키딩 선생님의 등장은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키딩 선생님은 책을 찢게 하고 책상 위에 올라 더 멀리 바라보게 한다. 시야를 넓히고 시각을 달리하라는 말에 아이들은 환호를 하는데……. 결국 선생님은 학교에서 쫓겨나게 되고, 아이들은 나의 캡틴이라 부르면서 눈물로 배웅하게 된다.

 

소설로도 가슴 뭉클했지만 영화는 더욱 좋았던 경우다. 연기력과 영화 배경, 음악의 조화가 더욱 빛났던 영화다.

이 영화는 행복과 성공이 책에만 있지 않음을, 학교 교실에만 있지 않음을 일깨운 영화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고 현재를 즐기라는 정말 좋았던 영화다.

 

책에는 함께 읽을 책과 영화도 제시되어 있다.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 구병모의 <피그말리온 아이들>, 수잔 비에르 감독의 <인어 베러 월드>.

<수레바퀴 아래서>와 <피그말리온 아이들>들을 읽은 적이 있기에 이 영화와 비교해서 이야기를 나누어도 좋을 것 같다.

<길버트 그레이프>

조니 뎁이 형으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정신박약아 동생으로 나오는 영화다. 친구의 추천으로 비디오로 본 영화다.

기억은 잘나지 않지만 형이 가장이고 희망의 빛이라고는 없는 암담한 가정형편이 기억이 난다. 그리고 여자 친구가 희망으로 등장하고…….

길버트의 아버지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충격으로 엄마는 외부와 단절된 생활을 하고, 그로 인해 몸무게가 엄청 육중했다는 기억도 난다.

34 살의 누나, 16살의 여동생마저 서로를 힘들게 하는 가정이다.

그러던 중, 캠핑족 소녀 베키의 등장은 길버트의 희망이 디고 숨통을 트게 해준다. 길버트의 대화상대가 되어준 베키의 질문에는…….

.

-그래서 넌 뭐가 되고 싶니?

-나? 글쎄…….

-그냥 원하는 거 한 가지만 말해봐.

희망이라곤 없다고 여겼던 길버트는 소원을 가져 본 적이 있을까. 그저 현실이 조금 나아지는 것이 아니었을까. 베키의 질문에 상당한 충격을 받으며 자신을 돌아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자신의 삶은 없는 장남의 얘기다. 장남으로서의 책임감이 운명 같은 거라 여기지 않았을까. 타인에 대한 희생과 배려만 있고 자신의 꿈을 가질 수 없던 장남이기에 희망과 소원은 더욱 필요했을 텐데…….

예전에 영화를 볼 때는 그다지 공감이 가지 않았는데…….

지금 이 글을 읽으면서 장남의 무게감이 더욱 공감 간다. 세월은 이해력도 성숙시키는 걸까.

이 영화와 함께 읽을 책과 영화로는…….

김이윤의 <두려움에게 인사하는 법>, 구병모의 <위저드 베이커리,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의 <인생은 아름다워>.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기지 못하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되새기게 된다. 경쟁과 불안의 사회일수록 즐기는 자라야 행복한 성공을 이루게 될 것이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장남의 무게감은 지금도 있지 않을까. 세월이 흘러도 중요한 가치는 변하지 말아야 하는데…….

 

부모와 자녀가 함께 영화를 보고 글로 적어 나눌 수 있다면 훌륭한 소통일 것이다. 보는 영화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영화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영화와 책, 시와 이야기가 함께하는 책이다.

청소년들의 생각을 알 수 있도록 아이들의 글도 첨부되어 있다.

못 본 영화가 많아서 영화부터 챙겨보고 싶은 책이다.

요즘 본 영화들이 없어서 조금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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