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캉 미술관의 유령들 - 그림으로 읽는 욕망의 윤리학
백상현 지음 / 책세상 / 201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두 번째 읽지만 역시나 쉽지 않다.
예술과 라캉의 정신분석의 조합으로도 읽을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쾌락원칙은 우리의 욕망이 삶의 공허 또는 공백이라고도 할 수 있는 파괴적인 실재에 너무 가까이 접근하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그렇게 해서 (보수적) 욕망은 주체가 공백에 가까이 접근하기에한발 앞서 미끼를 던지고, 삶을 다시 익숙한 장소로 되돌아오게 하는역할을 한다. (미술에서는 그러한 미끼가 곧 통제된 일관성의 이미지들,즉 거세된 이미지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죽음충동은 모든가상적인 것, 실재가 아닌 것을 넘어서려는 욕망이며, 그 모든 욕망의 근원인 결여 또는 공백 그 자체와 대면하고 때로는 대결하려는 파괴적인 양상을 보인다.
쾌락원칙의 욕망과 죽음충동의 욕망이 이러한 양상을 보이며, 거세된 이미지와 유령이미지가 이들 각각의 고유한 외관이라고 한다 - P60

라캉과 바디우는 진정한 사유는 공백에까지 이를 수 있는 사유라고 말했다. 세계의 외관, 현상계를 가득 채운 판타즘의 이미지들을모두 물리치고 도달하게 되는 경계선, 세계의 가상과 세계의 실재가만나는 연안지대, 즉 공백을 마주하는 그곳에 이를 수 있는 사유만이진리의 사유라는 것이다. 매너리즘은 이성의 질서라고 하는 안정된판타즘을 초월하는 용기를 통해 진리를 상상했음에도 공백 그 자체를 마주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이렇게 공백 그 자체와 마주하는 예술은 후에 해체주의 예술이라 불리게 될 터인데, 그러나 이는 아주 오랜 세월과 다사다난한 시행착오를 거친 후에야 비로소 등장할 터였다. 프로이트가 등장하기 전까지 그리고 초현실주의자들이 등장하기 전까지 유럽 문명은 공백 자체의 실존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 P64

하지만 아이는 부모의 응시에 근거해서만 자신의 존재 위치를 설정할 수 있기 때문에 응시로부터 벗어나거나 그로부터 완전히 고개를 돌릴 수는 없다. 인간은 자신의 실존적 위치를 결정하게 될욕망을 부모의 응시-욕망으로부터 배우고, 그렇게 함으로써 스스로의 존재 좌표를 설정하기 때문이다. 이로써 아이가 원하게 되는 것은 결국부모가 욕망하는 그것이 된다. 인간은 그렇게 전 생애를 통해 타자가욕망하는 대상을 좇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욕망의 이 같은 상호관계가 라캉이 시관적 장이라고 부르는 영역, 즉 우리가 이미지를 본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영역에서 구조화되어 나타나는 것이 바로 응시이다. - P70

초자아는 자아가 도덕적 행동들을 통제하기 위해 의존하는 도덕자아, 즉 ‘자아를 통제하는 자아‘인데, 이것은 인간이 법적·사회적 처벌의 실질적 위협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어째서 비윤리적인 행동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는지 설명해준다. 초자아는 우리 마음속에 존재하는 ‘양심‘으로, 마치 티지인 양 자아를 억압하고 때로는 자아와 충돌을 일으킨다. 초자아의 심리적 구조가 시각 상에서 출현할 때에는 응시의 형식을 갖게 되는데, 그것은 절대자 또는 신의편재하는 응시의 실존으로 형상화될 수 있는 경험이다. 초자아의 응시에 대한 경험은 우리의 일상적 시선이 정지하는 지점에서 시작되는데, 달리 설명하면 우리 앞에 펼쳐진 일상의 이미지들이 어떠한 심리적 이유로 우리 존재가 속한 현실로부터 물러나게 되는 순간 응시가 출현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고독의 순간이 바로 그런 순간이다. 고독과 함께 세계의 외관에 무심해질 때, 또는 그와 같은 외관너머의 깊이 있는 것을 보려고 할 때, 우리는 초월적 존재의 응시에 노출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 P73

응시의 욕망이 우리가 속한 세계의 질서를 언제나 넘어선다는 사실로부터 응시의 공포는 시작된다. 우리의 정체성을 유지시켜주는세계질서를 파괴하지 않는 한, 즉 우리 자신을 스스로 파괴하지 않는 한, 응시를 만족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경악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칸트가 아브라함의 하느님에게서 느꼈던 공포의정체이다. 인간 이성으로는 만족시킬 수 없는 신의 응시가 신의 자애로운 시선 뒤에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 P77

동일한 관점에서 타자의 응시는 곧 주체의 응시로 전환될 수 있다.
응시란 욕망이 시관적 장에서 표현된 것이기 때문이다. 응시한다는것은 시선을 통해 욕망한다는 것이고, 그래서 어둠 속 심연의 타자가 우리를 응시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은 우리 역시 그와 같은 응시를 욕망하고 있다고 해석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 쪽에서의 응시하는 행위gaze는 우리 눈이 보는 행위scc와 어떻게 다를까? 라캉은 ‘눈과응시의 분열‘이라는 제목의 강연에서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주체가 ‘사물의 본질을 보려고 하는 순간 주체는 사물을 ‘응시하게 된다고 그런데 본질을 보려고 하는 주체의 욕망 속에서 주체가 실제로보게 되는 것은 사물의 본질이 아니라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사물의 궁극적 본질은 텅 빈 허무인데, 인간의 눈은 그러한 허무를 견뎌낼 수없다). 주체가 실제로 볼 수 있는 것은 사물의 외관의 불완전성을 임시로 고정시켜주는 환영적 질서일 뿐이다. 그렇게 외관으로 주어지는 환영적 질서를 보는 것이 바로 인간의 눈이며 ‘눈의 봄seeing‘이다.
‘눈의 봄‘은 주체의 응시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좌초하는 지점, 그것의 불가능성의 지점에서 작동하는 대체물이다. - P85

카라바조의 이미지들이 우리를 이끌어가는지점이 바로 그곳, 진정한 리얼리티의 공간, 즉 공백의 연안지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카라바조는 마침내 도달하게 된 공허의 동공가장자리에서 그가 믿어왔던 모든 종교적 신념을 포기하는 허무주의를 선택하는 대신, 역사가 남긴 진리의 이름-그에게는 ‘예수의부활‘이라고 명명된 진리의 사건으로서의 이름을 처음부터, 그 토대의 텅 빈 공백으로부터 다시 사유하기를 시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 P100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귀머거리의 집‘ 내벽에 그려진 그림들 대부분은 인간의 잔악함과 우둔함 그리고 폭력성에 대한 풍자적 의미와죽음에 대한 강한 암시가 깔려 있는데, 이를 통해서 이미지들은 일정량의 의미들을 전달해주고 있다. 그리고 이 한 줌의 의미들이 그림속에 입을 벌린 허무의 공허 속으로 감상자가 추락하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감상자는 그림들이 만들어내는 극단적인 공허의 정서 속에서도 그림의 이미지가 제공하는 일말의 의미에 매달려 완전한 추락을 모면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 P110

고야는 바로 그와 같은 방식으로 자신이 그린 이미지들의 파괴적인 효과 속에서 공백의 가장자리로 접근하는 데 성공했다. 귀머거리의 집에 그려진 그림들은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고야 자신만을 위한그림들이었다. 이미지를 다루는 기술자로서 고야가 평생을 바쳐 고민해온 문제들, 인간 존재란 무엇이며, 선과 악의 의미와 기원은 무엇인지, 그리고 이와 같은 선악의 진리에 이미지를 통해서 접근하는방법은 무엇인지를 마침내 해결해주었던 그림이 바로 이곳에서 그려진 공포의 유령이미지들이었던 것이다. - P115

그렇다면 정상인의 망상은 어떻게 정신병자의 망상과 달리 자기파괴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은 정상인의사고 구조가 근본적으로 의미들을 순환시킬 수 있는 상징계의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정상인의 정신은 한 가지 생각의 의미에 사로잡혀 그 의미에 고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다른 단어의 의미로 그 의미를 대체하면서 사유를 진행시킨다. 그래서 정상인에게 망상적 세계관은 확고하게 정지되어 있지 않고 끊임없는 질문‘ 속에서 변화하고 발전하며 순환된다. 이러한 순환의 과정 속에서개별적 망상들은 보편성의 지점으로 수렴되거나 폐지되는 운동을반복하는 것이다.
라캉주의 정신분석은 이것을 ‘팔루스의 기표 signifiant de phallus‘를 중심으로 순환하는 ‘기표연쇄la chaine signifiante‘ 작용이라고 설명한다.  - P139

이 모든 질문들이 의미하는 바를 정확히 파악하는 순간 우리는 정신질환의 진단 체계가 그 자체로 현대 문명이 만들어낸 가장 노골적인 방어의 체계라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광기의 이미지와 정상 이미지를 구분할 수 있다고 장담하는 패러다임은 결국 정상성이라는 환영을 창조해내고 이로부터 이탈하는 모든 이미지의 연쇄를 ‘광기‘로규정짓는다. 여기서 광기라고 표현되는 것은 더 이상 초월적 세계를믿지 않게 된 오늘날의 인류가 만들어낸 유령이미지의 또 다른 판본에 불과하다. 광기는 상식의 체계에 대항하는 모든 ‘불법적인 이미지를 규정하는 명칭인 동시에 ‘지식‘이라고 하는 이성의 협소한 질서를 빠져나가는 모호함들에 대한 억압의 이름인 것이다.
- P145

라캉이 생각하는 진리의 형상은 바로 이런 것이다. 그것은 덧없는삶의 환영들을 해체하면서 기필코 도달해야 하는 공백의 지점(색즉시공)이지만 결코 끝이 아닌, 아니 오히려 시작으로 간주해야 하는 지점(공즉시색)이다. 주체는 진리를 하나의 절대적 수렴점으로 생각하기보다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될 수 있는 보편적 시작점으로 사유할 수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그러한 시작이 아무렇게나 발생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삶의 모든 환영을 제거하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해서 마치 모든 것이 허용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다시한 번 강조하건데 공백으로서의 진리 앞에는 역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만일 공백만 있고 역사가 없다면 주체는 물 없는 수조의 밑바닥에 갇혀 죽음충동의 허무주의에 매몰될 것이다. 물 없이는 수조 밖으로 나올 수 있는 어떠한 방법도 없다. - P200

사진 속에서 인간은 존재에 대한 이 같은 욕망을 동일한 방식으로반복한다. 사진 속 이미지를 통해서 느끼는 아득함과 그리움은 사진이 보여주는 것에 대한 향수가 아니라, 사진이 감추며 보여주려고 하지 않는 것에 대한 향수이다. 이미지는 그렇게 자신이 가진 것을 통해 주체를 끌어당기기보다 자신이 상실한 것을 통해 주체를 유인한다. 이미지는 자신이 속한 질서가 초과되는 현상 속에서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는 것이다. 물론 모든 이미지가 초과의 현상을 보여줄 수있는 것은 아니다. 이미지는 스스로가 조직되는 방식에 따라서, 또는인간과 만나게 되는 형식에 따라 더 많이 초과하거나 전혀 그렇지 않거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P205

그렇다면 워홀이 간파한 20세기 풍경의 본질, 그 토대를 이루는 구조는 무엇이었을까? 워홀에게 그것은 언제나 깔끔한 방식으로 연속되는 ‘반복의 구조‘였다. 그것은 기계적 반복 속에서 모든 사물의 다양성을 획일화하는 유니폼화 현상, 즉 규격화 현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특히 ‘반복‘은 대량생산과 대량복제를특징으로 하는 자본주의 문화의 가장 본질적인 기능이다. 동일한 제품을 무한 반복하여 생산하면서 자본주의는 인간 욕망의 불확정성과 무한성을 유한한 것으로 만들어 규범화하고 차단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언제나 타인과 똑같은 것만을 욕망하도록 길들여지고 거기에 만족하게 되었다.  - P220


세계 이미지의 선명함을 거부한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존재를 지배하고 있는 세계의 질서를, 그 정당성을 거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잠시만이라도 리히터의 이미지가 품고 있는 욕망에 사로잡혀본 사람이라면 더 이상 미술관 바깥의 익숙했던 풍경을, 그것의 정돈된 선명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게 될 것이다. 이제 그는세계의 사물들을 명확히 구별해주는 윤곽선의 선명함에 사로잡히는대신 흐릿한 시각 장애의 상태, 아무것도 보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보려는 응시의 눈빛을 욕망하게 될 테니 말이다. - P245

그런데 이러한 현상 속에서 쉽게 간과되곤 하는 아주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 바로 가면을 벗어버린 진정한 자아란 결코 존재할 수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지금 쓰고 있거나 쓰도록 강요받은 가면을 벗어버리면 진정한 자아를 찾을 수 있다고 착각한다. 혹은 잘못된 자아의 상대항으로서 올바른 자아라는 것이 존재하며, 병든 자아로 돌아올 수 있을 거라는 허망한 기대를 품는다 - P252

삶을 살아가기 위해 어차피 가면을 써야 한다면 (자신의 초월적 지아, 기면 뒤에 실존하는 진리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으니)소피 칼은 그것들을 자신의 가능성에 대한 신념에 근거해서 써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고착하기 위해 가면을 쓸 것이 아니라, 내부에 존재하는 순수한 가능성의 영역인 공백으로 접근해 들어가기 위한 위장의 도구로서 가면을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 P270


댓글(3)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레이스 2023-08-18 0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상현 님의 <라깡의 루브르>도 읽으셨나요?
저는 그 책 좋았어요.
인상적이어서 이 책도 사놨습니다. 이 분도 쉽게 쓰시는 분은 아니죠? 하지만 많은 영감을 주는 책이란 생각이예요.

몽이엉덩이 2023-08-19 12: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 책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는데 읽어보려고요.

몽이엉덩이 2023-08-19 12: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백상현님 쉽지 않아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54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김연경 옮김 / 민음사 / 2007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 생각으론, 악마가 존재하지 않아서 인간이 악마를 창조해 냈다면, 인간은 그것을 자신의 형상과 모습에 따라 창조했을 거야." - P50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헤밍웨이 - 20세기 최초의 코즈모폴리턴 작가 클래식 클라우드 6
백민석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집에 있는 헤밍웨이 책들을 읽기 위해 이 책을 선택했는데 백민석 작가의 시선으로 본 헤밍웨이는 이해하기 힘든 사람이란 말에 공감되면서 그의 글속에는 어떤 헤밍웨이의 모습들이 그려질지 정말 궁금해진다.

헤밍웨이 소설 미학을 몇 가지 열거해본다. 입말체 대화법, 빙산이론과 하드보일드 스타일, 그리고 남근중심주의 미학이다. 네 가지로 나눴지만 이들은 서로 겹쳐지는 부분이 많고 서로 영향을 미친다. 무엇보다 헤밍웨이라는 하나의 실존에서 나온 것들이다. 네가지로 나누어 있지만 실은, 헤밍웨이라는 한 인간의 다른 표현들이다. - P101

사람은 누구나 죽어 죽는다고. 죽음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죽어가지 결코 그 의미를 깨우칠 시간의 여유도 없이 인간은 이 세상에 내던져신 다음 세상의 규칙을 일방적으로 통지받는 거야. 그리고 그규칙의 베이스에서 떨어지자마자 세상은 그 사람을 죽여버리지.
- 『무기여 잘있거라』, 428쪽 - P151

이제 막 자아가 형성되기 시작할 무렵의 헤밍웨이의 눈에 여성들은 비난을 퍼붓고 남성성을 위협하는 존재로 비쳤을 수 있다. 그의남근중심주의는 어쩌면 어머니 그레이스가 덜 강압적인 양육 방법을 썼다면 그렇게 극단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또 그의 소설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순종적인 여성상도 정도가 덜했을지 모르고, 현실적인 성격의 여성들이 다채롭게 등장했을지도 모른다. 그에게 있어 여자란 정복하고 통제해야 할 존재인 동시에 남성성을 무력화시키고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는 무서운 존재" (‘섹슈얼 트라우마』, 237쪽던 것이다. 그의 눈에 비친 여성이 그런 존재였다면,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의식적으로는 무의식적으로든 여성을 억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물론 어머니에 대한 증오를 여성 일반에 투사해, 실생활에서든 문학적으로든 여성을 억압하려 했다면 그것은 헤밍웨이의 잘못이다. - P163

헤밍웨이가 평생 욕망했던 진정한 대상은 죽음이었지만, 그는 자살의 가능성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자살이 아닌 사고로 죽을위험이 큰 전장이나 사냥터나 바다 같은 위험한 장소들을 찾아다녔던 것이다. 틀린 대상을 쫓는 것이다. 그는 그런 위험한 장소들에서총질을 하고 사냥을 하고 낚시를 하면서 욕망을 해소한다고 생각하고 그때그때 즐거워했지만, 돌아오는 길에는 매번 자신이 이번에도죽지 못했다는 사실에 자신도 모르게 실망하고 괴로워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그런 목숨을 건 장소들에서 늘 죽음에 근접하곤 했지만그저 사고를 당하고 병을 얻을 뿐 죽지는 못했다. 실패한 욕망의 드라마는 반복된다.
그렇게 죽을 장소를 찾아다니는 위험한 삶의 여정 끝에서, 헤밍웨이는 마침내 「킬리만자로의 눈」의 해리처럼 자신이 평생 욕망했던 것이 사실은 죽음이었음을 깨닫고는 스스로 그 진정한 대상을손에 움켜쥐었던 것이다. 그가 그랬다는 것은 누구를 위하여 종은울리나』의 조던의 진술을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다.
종교가 있으면 위안은 많이 되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두려워할 것은 아무것도 없어. 나쁜 건 인생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지.
죽는 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고 또 고통이 너무 심해 괴롭다면 그 죽음은 비참한 거지. 그런데 넌 그렇지 않으니 행운이잖아?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하권,364쪽 - P285

어느 인간도 죽음에서 살아 돌아와 죽음이 무엇인지 산 자들에게가르쳐줄 수 없다. 살아 돌아와 무언가 증언한다면 그것은 진짜 죽음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죽음은 인간이 풀 수 없는 가장 어려운 수수께끼가 된다. 자살은 죽음의 수수께끼에 더해, 어째서 그런 비극으로 갈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수수께끼까지 숙제로 남겨놓는다.
그 수수께끼는 죽은 자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는 한 끝까지 남아 산자들을 괴롭히고 슬픔에 잠기게 한다.
하지만 자기 생명에 대한 처분은, 개인이 가진 가장 기본적인 권리다. 자기 생명에 대한 선택은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다. 그래서때때로 자살은 개인이 할 수 있는 가장 내밀한 행위가 되고, 자신이아닌 어느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수수께끼가 되고 만다. 헤밍웨이는 그 사실을, 오래전부터 아버지의 자살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을것이다. 그는 개인의 권리와 가치를 믿고 실천했던 작가였다. - P31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 세월 동안 자신이 차지했던 모든 공간을 기억해낸다. 그는 기억의 그물을 던진다. 자신을 향해 그물을 덮어씌워 스스로를 끌어올린다. 어부인 동시에 어획물이 되어 그는 과거의 자신이 무엇이었던가를, 자신이 무엇이 되어 있었나를 보기 위해, 시간의 문턱, 장소의 문턱에다 그물을 던진다. 하기야 지금껏 그는 이 날에서 저 날로 건너가며 별생각 없이 살아왔다. 날마다 조금씩 다른 일을 계획하며 아무런 악의 없이. 그는 자신을 위한 숱한 가능성을 보아왔고,이를테면 자신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믿었다위대한 남자, 등대의 한 줄기 빛, 철학적인 정신의 소유자. - P10

그에겐세계라는것이취소가 가능한 것으로 보였고, 자기 자신까지 취소가가능한 존재로 여겨졌다.
그는 지금처럼 자신에게 30세가 되는 해의 막이 오르리라고는,판에 박힌 문구가 자신에게도 적용되리라고는 또한 어느 날인가는자신도 무엇을 진정 생각하고, 무엇을 진정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어야 하리라는 것을 그리고 자신에게 진실로 중요한 게 무엇인가를고백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한순간도 걱정해본 적이 없었다.
천한 가지의 가능성 중 천의 가능성은 이미 사라지고 시기를 놓쳤다는 혹은 자기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가능성은 단 하나뿐이고 나머지 천은 놓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나는 이제껏 한 번도 의혹에 빠져본 적이 없었다.…그는 이제껏 무엇 하나 겁내본 적이 없었다.
지금에야 그는 자신도 함정에 빠져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 P12

그가 체득한 것은, 여러 인간들이 한 인간에 대해 과오를 벙한다는 것, 인간이란 모름지기 인간들에게 잘못을 저지르게 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인간에겐 상처를 받아 우울해지는 순간이 있다는것누구나가 타인에 의해 죽고 싶도록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것, 그러한 체험뿐이었다. 또한 바로 그 자체가 인생이라고도 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상심으로부터 인간을 구제해줄 수 있는 것은 죽음뿐임에도, 누구나 죽음을 두려워한다는 사실에 대한 체험이었다. - P19

이 금빛의 9월, 타인이 나에 대해 품고 있는 모든 환상을 털어내버린다면, 나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구름이 저처럼 흐르는 것이라면 나는 대체 누구일까!
내 육신에 기거하고 있는 정신은 그것의 거짓 주인보다 한결 위대한 사기꾼이다. 정신에 정면으로 마주치는 일을 나는 무엇보다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 그 어느 것이나 나자신과 상관없기 때문이다. 개개의 사상이란 한결같이 낯선 데서얻어 온 씨앗이 발아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를 감동시킨 그 어느 것에 대해서도 나는 생각할 능력이 없다. 그런가 하면 감동하지도 않았던 유의 사물들에 관해서나 나는 생각하는 것이다.
- P20

나, 온갖 무의식적인 반응과 단련된 의지로 이루어진 한 다발의묶음인 나, 충동과 본능의 부스러기와 역사의 찌꺼기에 의해 길러지는 나, 한 발을 황야에 두고 다른 한 발로는 영원한 문명의 중심가를 밟고 있는 나. 도저히 관통할 수 없는 나, 각종 소재가 혼합되어 머리칼처럼 뒤엉켜 풀 수 없는, 그런데도 뒤통수의 일격으로 영원히 소멸되어버릴 수도 있는 나, 침묵으로부터 생성되고 침묵을강요당하는 나..………… 왜 나는 이 한여름 내내 도취 속에서 파괴를 추구해왔던가? 아니면 도취 속에서 승화를 갈구해왔던가 그것도나 자신이 하나의 버림받은 악기였음을, 벌써 오래 전에 누구인가몇 개의 음을 튕겨본 적이 있을 뿐인 버림받은 악기였음을 스스로외면하기 위해서 말이다. 나는 그 음을 어쩔 줄 몰라하며 변주하고,
분노에 떨며 나의 흔적을 지닌 한 가락의 음을 만들어내려고 애를쓰는 것이다. 나의 흔적이라니! 흡사 그 무엇이든 간에 나의 흔적을지니는 것이 무슨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 P2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녀들, 자살하다 민음사 모던 클래식 48
제프리 유제니디스 지음, 이화연 옮김 / 민음사 / 201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결국 리즈번 자매들을 갈가리 찢어 놓은 수많은고통은 그들이 오랜 고민 끝에, 오점으로 가득한 이 세상을 어른들이 물려준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는 단순한 사실을 암시하고 있었다.
- P28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