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깡의 루브르 - 정신병동으로서의 박물관
백상현 지음 / 위고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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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통해 라깡의 정신분석을 설명해주는 아주 훌륭한 책.

우리의 개인사 박물관을 채우고 있는 유물들은 그 추억들이 간직한 표면적인 아름다움과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애틋함의 정서 이면에 하나의 강력한 동기를 간직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영영 상실한 욕망의 대상에 대한 애도의 작업이다. 현재 우리의 정제성을 구성하고 있는 기억의 유물들은 그렇게 상실을 중심으로 전시되어 있으며, 그런 상실의 본질을 은폐하고 그에 대한 기억을 다른 것으로 대체하기 위해서 조직되어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정체성은 사실상 우리가 상실한 것에 대한 그림자라고 할 수도 있다. 현재의 나 자신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미지는 우리가 어린 시절에 포기해야 했던 사랑의 대상에 대한 그림자이다. 이것이 단순한 반영 이미지가 아니라 검은 그림자인 이유는,
상실한 대상에 대해서 우리 자신의 무지가 유지되는 한도 내에서만 우리의 정체성이 유지될 수 있다는 조건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무엇을 상실했는지 알 수 없어야 하며, 그러한 무지가 우리 자신의 안정된 정체성 형성에 본질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개인사 박물관은 일종의 투쟁의 흔적들이다. 그것은 상실에 대한 투쟁이며, 상실을 위한 투쟁이기도 하다. 한때 소년이었던 혹은 소녀였던 우리 자신의 어린 시절이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이미지로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해내기 위해서 받아들이거나 억압해야 했던 기나긴 애도 작업의 흔적들. - P38

사물은 논리적 시간 속에서 문명 이전의시작점을 의미하며, 산물은 문명의 과정 속에서 분화되어 산출된 욕망의 대상들이다. 사물과 산물 모두 욕망의 대상으로서 기능하지만,사물은 보다 근본적이며 파괴적인 것으로, 죽음 충동의 영역 전체를지칭한다.  - P55

인간의 마음은 사유의 언어적 흐름 속에서 자신의 충동-사물을 멀리할 수 있는 거리를 확보한다. 늑대인간의 무의식이 자신의 성충동에 대해서 시도했던 거리 유지의 최초 방식은 늑대 꿈의 공포라는 강박적 생각의 반복이었다. 이후 소년의 마음은 지칠 줄 모르는 사유의작업 속에서 종교 담론의 언어적인 연쇄를 도입하여 충동과의 거리를유지하는 데 부분적으로 성공한다. 늑대인간을 치료했던 프로이트가활성화하려고 했던 것 역시 바로 이러한 생각의 흐름이며, 언어적 연쇄의 힘이었다. 우리가 늑대인간과 루브르 왕궁의 역사 속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논리는 그와 같은 연쇄가 보다 정교할수록 사물과의 거리는 더욱 멀어진다는 사실이다. 언어 연쇄의 정교함은 사유의 정교함을 의미하고, 이는 더 많은 기표들이 더욱 자유로운 방식으로 연쇄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음을 뜻한다. 만일 이러한 설명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면 언어의 정교함에 대립하는 두 가지 반대 사례를 떠올려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그 첫 번째가 우울증이다.
우울증 또는 단지 우울함이라고 묘사될 수 있는 마음의 상태는 정 - P57

신병으로서의 멜랑꼴리와 유사한 증상을 보이는데, 생각의 속도가 현저하게 느려지는 것이다. 여기서 사유의 흐름이 느려진다는 것은 추상적이거나 문학적 표현만은 아니다. 우울한 상태의 마음은 생각하기를 거부하는 실질적 증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우울한 마음은 자신의 슬픔을 말로 설명할 능력이 없거나, 있더라도 그것을 거부하는 상태에 있다. 이는 자신의 상실을 타자의 언어로애도하지 않으려는 거부의 표현이기도 하다. 애도라는 것은 상실한대상을 현재의 언어 또는 타자의 언어로 설명하고 상징화하는 작업이다. 우울증이나 멜랑꼴리는 자신의 상실을 언어적 연쇄로 설명하기를거부함으로써 대상 a들의 순환이 정지된 상태로 들어가게 된다. 이를애도의 기능장애라고 부를 수 있겠는데, 이때 출현하는 것은 상실된것의 빈자리, 즉 텅 빈 허무이다. 우울증이나 멜랑꼴리가 자기 파괴적충동에 쉽사리 노출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허무의 증상과 관련이 있다. 산물들(a) 또는 언어의 기표-연쇄를 통해 보호받지 못한 우울증자가 텅 빈 허무의 자리에서 마주치는 것은 다름 아닌 사물 그 자체, 충동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울증과 멜랑꼴리는 기표연쇄가 빈곤해진 상태이며, 사유가 기민함을 상실한 상태이다. - P58

터너는 빛을 그린 것이 아니라 빛 너머의 타자를, 그에게는 초자연적인 힘인 동시에 신 그 자체였던 타자를 그렸던 것이다. 반면에 모네의 그림은 문자 그대로 빛을, 물질로서의 빛의 이미지를 그린 것이다. 인상주의 화가들의 이미지는 그런 의미에서 빛의 현상 너머의 그 무엇도암시하고 있지 않다. 그들은 빛의 사실주의자들이었고, 새로운 광학기술의 도움으로 자신들의 객관성을 완성하고 있었다. 인상주의는 그렇게 해서 실증과학의 시대에나 가능할 수 있는 타자 없는 예술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터너와 인상주의자들 사이에는 이미지의구조적 차원에서 그 어떤 유사성도 존재하지 않는다.
- P124

정신병의 일종인 멜랑꼴리는 환자의 독특한 세계관으로 특징지어진다. 현대 의학에서는 ‘주요 우울증 major depressive disorder‘ 이라는 병명으로 분류되는‘ 이 병의 환자들은 세계를 극단적으로 유한한 공간으로인식한다. 여기서 유한하다는 표현은, 더 이상의 새로움이 존재할 수없는, 은유가 불가능한, 이미 결정 난 장소로 세계를 인식한다는 것을의미한다. 멜랑꼴리 환자에게 자신이 속한 세계는 참혹할 정도로 비루하며, 조금의 아름다움이나 살 만한 가치도 존재하지 않는 지옥보다 못한 곳에 불과하다. 차라리 지옥이었다면 죄의 사함이라는 가치있는 가정이 전제될 수도 있다. 그러나 멜랑꼴리 환자에게는 그러한갱생의 가능성조차 남아 있지 않다. 나아가서, 극단적으로 우울한 성향의 이러한 사람들에게 무엇보다 참을 수 없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의 존재의 비루함이다. 그들에게 자신의 자아는 쓰레기만도 못한 것,부정적 가치의 집적소와 같다. - P170

위 도식은 은유와 환유의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여 안정된 신화를 구성해내는 정신의 구조이다. 여기서 오른편에 위치한 충동의대상은 유아기의 주체가 쾌락을 탐닉할 수 있었던 대상-타자의 자리이다. 중앙에 마름모꼴로 분할된 세로 직선은 거세의 계기이다. 아이는 어른들의 말을 통해 자신의 충동의 대상-타자를 포기할 것을 암시받는다. 이때 아이는 거세를 받아들이고 충동의 대상에 투자하던 리비도의 방향을 틀어 언어적인 방식으로 분절하는 은유의 구조 속으로들어간다. 인간 정신의 모든 환상들은 바로 이런 언어적 분절 장치 속에서 일관된 신화를 생산하는 통제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하여주체는 언어적으로 욕망하며 언어적으로 환상을 추구하는 추상적 존재가 되는데, 앞서 설명한 것처럼 바로 이러한 정신의 추상적 성격이인간을 충동으로부터 보호해주는 역할을 떠맡는다. 그런데 멜랑꼴리정신병에서는 언어적 분절의 기능이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다. - P180

여기서 우리는 멜랑꼴리의 치료가 단지 또 하나의 신화를 만들어내면서 욕망을 되살리는 과정만으로는 불충분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되살려진 욕망이 흔들리지 않도록 고정점을설정해줄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와 같은 고정점의 역할은 오직 추상적 기표들만이 수행할 수 있는데, 여기서 기표의 추상성이란개방성을 의미한다. 사랑, 평등, 박애, 우정, 모정, 부정 등의 단어들이 바로 그와 같은 추상적 기표들이다. 이들은 인간이 발명해낸 개념들 중에서 흔들리지 않는 보편성을 획득한 것들이며, 멜랑꼴리의 욕망의 불꽃이 위태롭게 흔들릴 때마다 환자에게 다시금 욕망의 방향성을 제시하도록 허용하는 개방성을 가진 기표들이다.  - P195

일반적으로 멜랑꼴리 환자들은 삶의 토양을 비옥하게 해줄 환상과신화의 결핍을 겪는 동시에 환자의 자아를 비난하고 파괴하려는 강력한 초자아를 가진 주체이다. 여기서 환자를 비난하는 초자아가 강력해진 이유는 환자의 충동이 신화에 의해 각색되고 은폐되는 기능이 무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환자의 숨겨지지 않는 충동은 역설적이게도 환자 자신의 초자아를 분노케 하는 원인이 된다. 만일 환자가 이러한 초자아의 공격에 자기 비난의 형식으로 반응하며 자기 파괴를시도하려 한다면, 보편적 선의 기표들은 바로 이러한 초자아의 분노를 중화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분노하는 신에 대해서 인류가 할수 있었던 가장 효과적인 방어는 신에게 말하도록 하는 것, 즉 십계명을 창조해내도록 하는 것이지 않았는가? 인간의 욕망을 무작정 비난하는 신이 아니라 언어적인 방식으로 보편적 선의 방향성을 제시하는신의 존재는 인류가 감당할 수 있는 신이다.  모든 종교가 초자아를 - P196

이미지화하면서 출현하고 있었다면, 보편화를 추구하는 종교의 성공의 열쇠는 바로 말씀의 보편적 가치에 달려 있다. 구약이 신약으로 도약하기 위해서 필요했던 ‘사랑의 담론‘이 바로 그 전형적인 사례이다.
만일 멜랑꼴리의 병리학에서 가장 파괴적인 기능을 하는 것이 환자의초자아의 폭력이었다면, 이것을 중화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러한 폭력을 보편적 선의 기표로 개방하여 충동이 아닌 욕망의 질서 속에서 말해지고 사유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바로 그와 같은 차원에서 프로이트가 종교의 기원을 강박증으로 설명하는 것은 또 다른 타당성을획득한다. 불안의 대상인 초자아에 대해서 강박증자들은 사유와 언어의 방어막을 통해 그 폭력을 비켜가려고 시도한다는 의미에서 종교는초자아를 언어적으로 포획하려는 강박증적 시도이다.
- P197

승화는 바로 이러한 새로운 애도의 창안이 시작될 수 있도록 주체를모든 것의 시작점에 위치하도록 만드는 장치이다. 승화는 충동에 대한억압 없는 만족을 미끼로 주체를 공백의 가장자리로 유혹한다. 이곳에서 주체는 이제까지 자신의 세계를 지탱하던 모든 의미의 체계를 포기할 것과 자신이 의존하던 사회 속 좌표를, 즉 상상적 자아를 포기할 것을 요청받는다. 우울증자라면 이러한 요청을 기꺼이 수용하거나 혹은이미 그러했을 것이다. 라깡적 승화는 바로 그렇게 세계를 포기한 자가다시 애도하기를, 그리하여 욕망하기를 시작할 수 있도록 하는 특수한장치이다. 충동에 적대적이며 욕망에 환멸을 겪는 주체가 다시 충동을삶의 에너지로 전환할 수 있도록 해주는 승화의 이와 같은 기능은 우울증의 치료뿐만 아니라 새로운 세계의 창안이라는 윤리적 실천의 가장핵심적인 기능에 다름 아니다. - P218

자아가 흩어지면 욕망의 민낯인 파편적 또는 ‘다형적‘인
충동들이 출현한다. 아이-어머니의 세계를 지배했던, 그러나 상징계의 법을 받아들임으로써 포기되어야 했던 부분 충동들의 세계가 바로그것이다. 그런데, 파편적으로 흩어진 부분 충동들의 상공을 떠다니는 것이 바로 응시, 시관충동이다. 응시는 다른 모든 충동들의 배후에서 가장 치명적인 불안의 정동을 흩뿌리는 저승사자이다. 시각적 이미지의 공간 속에서 추구되는 전체성에 대한 욕망이 응시의 출현을필사적으로 억압하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미지가 흩어지거나 혹은 이미지 자체가 부재하면 응시의 공포가 출현할 것이기 때문이다. - P280

그리하여 우리는 성도착과 신경증에 관한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 즉, 무의식의 중핵에 도사린 근본적 결여, 어머니의 상실로부터 야기되는 결여의 웅덩이인 공백만이 유일한 실재이며,
성도착과 신경증은 바로 이러한 공백의 가장자리로부터 피어오르는최초의 환상에 대해서 취하는 두 가지 다른 양상의 태도라는 것이다.
성도착은 근본환상을 쾌락의 필터를 통해 재현하며, 신경증은 쾌락이 아닌) 쾌락원칙과 현실원칙이라는 억압의 필터로 재현한다. "성도착은 거세되지 않은 어머니라는 가장 일차적인 환상을 마주 보는 방식으로 그것에 매달려 있었던 반면, 신경증은 등지는 방식으로 그것에 매달려 있었을 뿐이다. 두 경우 모두 욕망의 여정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그원적 결여로서의 공백과 자아 사이를 매개하는 환상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에는 차이가 없다. - P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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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 - 친숙한 이방인 배반인문학
김석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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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얇은 책이지만 자아를 세분화해 상세한 설명이 좋았다.

그렇기 때문에 무조건 자아를 강화할 게 아니라 자아의 부정적인 모습과 망상적 속성을 철저하게 알고 경계해야 한다. 데카르트가 한 것처럼 자아 자체를 극한까지 의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자아를 의심하는 것은 의심을위한 의심이나 회의주의적 태도가 아니라 진리의 확실성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이다. 자아의 편견이나 망상적 기만에서 벗어나려면 자아 자체를 더 냉철하게 들여다보아야한다. 자아는 그 자체로는 건강하지도 나쁘지도 않지만 구조적으로 상상적인 본성을 지니고 있다. 상상적 본성은 자아의 고질병이기도 하다. 병을 잘 알아야 고칠 수 있다. 자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병적이다. - P112

세 번째 욕망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라캉에따르면 욕망은 요구에서 욕구를 뺀 만큼의 차이다. 인간의 욕망은 욕구에서 출발하지만 욕구와 동일하지 않고, 욕구를 요구로 전달하는 과정에서 점점 커지는 간극과 결여에서 생긴다. 곧 욕망은 결국 다른 무엇이 아니라 언어가만들어낸 결여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랑하는연인들은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그 말이 자신들의 사랑을다 표현하지 못한다고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언어가 만들어낸 욕망은 절대 충족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하나의 대상이 주어지면 다른 대상으로 이동하면서 끝없이 반복되는게 욕망의 속성이다. 언어가 작용하면서 주체의 요구와 이것에 대한 타자의 인정이 복잡하게 얽히기 때문에 인간의욕망은 그렇게 복잡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인간은 타자의인정을 통해 욕망을 배우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타자의 욕망 자체를 욕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타자의 욕망에 무작정 매달리다 보면 욕망에서 소외되기 쉽다. 또 욕망을 반복할수록 욕망이 점점 커지면서 부질없이 대상에만 매달릴 수도 있다. 그러므로 타자의 욕망에서 길을 잃지 않아야 하며, 욕망이 처음부터 충족이 불가능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욕마은 언어가 만들어낸 틈에서 생겨나는데 이 틈은 나의 존재가 언어화되면서 생긴 구조적 틈이다. 결국 욕망의 윤리를 강조하면서 거짓 욕망에 이끌리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 P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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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삼킨 소년 - 제10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84
부연정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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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쓸모없는 것 같은 낙엽이지만 저대로 썩어 거름이 되면새싹을 돋게 하는 양분이 된단다. 그러니 이 세상에 쓸모없는 일은 하나도 없지."
-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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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크라의 힘 - 내 안에 잠든 근원적 에너지를 깨우는 명상법
스와미 사라다난다 지음, 김재민 옮김 / 판미동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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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크라에 대한 깊은 이해와 설명, 명상에 관해 상세한 내용이 좋았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흔히 요가를 배우다가 차크라 이론을 접하게 된다. 차크라를 알기 위해서는 인도에서 수천 년 전에 깨달음을 얻기 위해 개발된 하타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하타요가에서는 물질적 신체와 마음, 미세 에너지에 대한통제력을 획득하기 위해서 여덟 가지 원리를 주장한다. 첫째는 내적 정화와 외적정화, 둘째는 육체적 수행, 셋째는 손짓과 몸짓으로 하는 에너지 봉인(무드라), 넷째는 호흡 조절, 다섯째는 감각 기관의 거두어들임, 여섯째는 집중, 일곱째는 차크라명상, 마지막은 절대적인 하나됨의 경험이다. 유연성 증대와 더 강한 몸, 스트레스감소는 모두 하다 요가의 영적 수행에 부수하는 긍정적 효과들이다. 고대 이래로차크라 명상은 하타요가의 일부분이었다. 호흡 조절과 요가 자세들은 차크라들의에너지를 자극하고 균형을 잡아 주는 데 특히 효과적이다. 당신은 곧 이 책의 많은수행법이 이것들로 구성되었다는 점을 알게 될 것이다. - P27

"나디들이 불순물로 가득 차 있다면 숨은 중앙 나디. 즉 수슘나로 들어가지 않는다.
그때는 의식의 가장 높은 상태에 결코 도달하지 못한다. 불순물로 차 있는 모든 나디가 정화된다면오직 그때에만 프라나야마(프라나의 통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하타요가 프라디피카) - P38

명상 기법들에 정통하고 일정 기간 스승과 함께 수행해 왔다면, 차크라 명상의 궁극적인 목적을 안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 각자의 내부에 잠들어 있는 무한한 영적 잠재력을 위로 보내, 각 차크라를 차례로 통과시켸 정수리 차크라에 도달하게 한다. 그러면 절대적인 지복을 경험한다. 쿤달리니로 아려진 어마어마한 잠재 에너지의 원천은 척추의 맨 아래에 있는데, 흔히 뱀의 형상을 취하고서 똬리를 틀고 잠들어 있는 여신으로 여겨진다.
그 여신의 이름인 쿤달리니는 ‘나선형 또는 고리 모양으로 감긴‘이라는 뜻의 산스크리트 쿤달라(kundala)에서 파생되었고, 그 코일 안에 포함된 어마어마한 잠재적 힘을 상징한다. 이 감긴 에너지를 풀어 주는 것은 댐의 수문을 여는 것에 비유될 수있다. 이 수행이 가볍게 추구해도 될 무언가가 아닌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차크라 명상을 규칙적으로 수행해 왔다면 나디들에서 에너지 장애물이 제거되고증가된 부하를 다룰 수 있는 힘을 갖추게 되었을 것이다. 더 많은 에너지의 흐름에대한 준비가 될 때까지 에너지적 신체는 많은 양의 에너지가 통과하여 흐르지 못하게 하는 그란티 (Granthi), 즉 심령 에너지 결절로 알려진 세 개의 ‘차단기‘에 의해보호되고 있기도 하다. - P41

"한 걸음이 지상에 길을 만들지 못하는 것처럼, 한 번의 생각은 마음에 길을 내지 못할 것이다. 물질적으로 뚜렷한 길을 만들기 위해서우리는 걷고 또 걷는다. 정신적으로 선명한 길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삶을 지배하기를 바라는 그러한 종류의 생각을 계속 해야만 한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 - P60

"당신의 꿈에 어떤 물을 줄지 유의하라. 걱정과 두려움의 물을 주면그것들은 당신의 꿈으로부터 삶을 질식시키는 잡초들을 자라게 할 것이다.
낙천주의와 해법의 물을 주면 성공을 재배하게 될 것이다."
노자, 『도덕경』 - P72

마니푸라 차크라

힘의 기반

차크라들을 통하여 위로 올라가다 보면 태양신경총에 있는 셋째 차크라인 마니푸라 차크라에 이른다. 이것은 배꼽 센터로 언급되지만, 대부분은 이 에너지를 배꼽과 맨 아래 복장뼈(흉골) 사이에서 느낀다.
마니푸라(Manipura)는 몸의 중심지, 즉 요새다. 산스크리트 문자 그대로번역하면 ‘빛나는 보석의 도시‘라는 뜻이다. 이곳은 당신의 가장 귀중한 자산, 다시 말해서 자아의식을 저장하는 곳이다. 마니푸라 차크라는 의지력과 자존감과 연관되어 있다. 여기에서부터 강하지만 아직은유연한 자아의 경계들을 긋고 행위하고 적응하는 능력이 생긴다. 모든변화와 개인적 성장은 이 단계에서 시작된다.
이 차크라의 에너지는 삶에서 자기 자신과 자신이 속한 상황을 변화시키는 능력으로 나타난다. ‘변화‘는 마니푸라 차크라와 관련된 핵심어다. 그러므로 이 명상의 초점은 변화다. - P81

비슛다 차크라

의사소통 센터

비슛다. 즉 인후 차크라는 심장과 마음 사이의 다리다. 마음속에서 창조의 충동이 일어날 때에도 비슛다 에너지를 사용하여 그것을 말로 표현할 때만 이 세계에 나타날 수 있다. 이 의사소통의 다리가 막히게 되면 충동들은 ‘억압‘되고, 차크라 시스템의 아래로 내려갈 수 없는(심장으로 데려갈 수 없는 생각과 희망, 꿈들은 실현되지 못한 상태로 남는다.
산스크리트의 비슛다(Vishuddha)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순수한 장소‘라는 뜻이다. 이 차크라는 의지와 선택권, 진실감을 관장하기 때문에 결정에 대한 책임을 지고 믿는 바를 강력하게 옹호하게 만든다. 또한 이곳은 영적인 소리를 발달시키는 곳이기도 하다. 이 장의 명상법들은 마음속의 진실과 머릿속의 생각을 표현하는 일의 중요함을 보여준다. - P121

아즈나 차크라

지혜의 자리

흔히 ‘제3의 눈‘ 또는 ‘마음의 눈‘으로 언급되는 아즈나, 즉 미간 차크라는 미세 신체에 있는 명령 센터다. 이 센터는 다섯 가지 감각 기관뿐아니라 의식적 · 무의식적 마음을 관장하고, 다른 차크라들과 관련된에너지 통로들을 통제한다. 미간 바로 위에 위치한 아즈나 차크라는세 개의 주요 나디, 즉 에너지 통로의 마지막 합류점을 형성한다. 왼쪽의 이다와 오른쪽의 핑갈라는 여기에서 끝난다. 한편, 중앙의 수습나는 정수리 차크라를 통해 보다 높은 단계의 의식으로 계속 이어진다.
이 차크라의 다른 이름은 갸나-파드마(Jnana-Padma), 즉 ‘지식을 주는연꽃‘이다. 이 장의 명상법들은 지혜와 명료한 통찰력, 증가된 직관력을 주어서 삶의 더 큰 그림을 볼 수 있게 한다. - P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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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55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김연경 옮김 / 민음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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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칼가노프는 현관으로 달려와 구석에 앉은 뒤 고개를숙이고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울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그렇게앉아서 울었으니 그건 이미 스무 살 청년이 아니라 아직 조그만 어린애의 울음 같았다. 오, 그는 미챠의 유죄를 거의 굳게믿었던 것이다! "정녕 사람들이란 이것밖에 안 된단 말인가, 이러고서도 과연 진정한 사람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쓰라린 우울함에 젖어, 거의 절망에 빠져 그는 두서없이 외쳤다. 이 순간그는 숫제 이 세상을 살고 싶지도 않았다. "살 가치가, 그럴 가치가 어디 있단 말인가!" 슬픔에 잠긴 청년은 이렇게 절규했다. - P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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