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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묻힌 거인 - 가즈오 이시구로 장편소설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하윤숙 옮김 / 시공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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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되살아나는 것

-가즈오 이시구로 파묻힌 거인’-

 

  

 

 

거인의 무덤

 

이 소설의 바톤은 오래된 설화를 전해주는 이야기꾼에서 액슬에게 넘겨진다. 브리튼인과 색슨족은 이 땅의 일시적인 거주자들에 불과하며, 진짜 토박이는 도깨비들이라고 넌지시 언급하는 이야기꾼은 시종일관 회의적이다. 사람들은 생존에 급급하여 진짜 찾아야 할 것을 찾지 않고 포기하거나 부적합한 명령에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설명되지 않는 모든 비극들은 도깨비 탓으로 돌리면 된다. 이처럼 난폭한 일에 철학적으로 대처한다는 태도는 결국 삶의 여백을 그대로 방치하는 데 이르고 만다. 모든 소설은 쉽게 설명되지 않는 삶의 여백에 대한 의문을 통해 시작된다. 안개가 뒤덮고 있는 이 대륙의 모든 사람들은 이야기를 하다가 결국 모든 건 제대로 끝나지 않을 것이며 이 이야기도 끝내야 한다는 회의주의에 잠기게 된다. 그로 인해 결국 정말 찾아야 할 것까지 잊어버리고 만다. 어른들은 마르타를 찾으려다가 독수리에게 정신이 팔린다. 마르타를 찾는 사람은 오직 액슬 뿐이다. 비어트리스와 액슬 부부의 기억도 점차 사라지고 흐릿해져 가고 있지만, 그들은 끊임없이 서로의 퍼즐을 맞춰간다. 이 동화같은 이야기의 시작은 그들이 끝내 잊어버리지 않고 있던 소중한 것, ‘아들에게서 기인한다. ‘아들은 그들에게 촛불을 빼앗지 않을 것이고 그들을 망각의 어둠 속에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흔한 동화의 이야기를 따라간다면, 그들은 기이하고 아름다운 모험을 무사히 통과해 아들이 있는 마을에 도착하고, 행복하게 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모험의 시작부터 여의치 않다. 그들은 손을 잡고 가는 대신 상대방의 안전을 걱정하는 수밖에는 방법이 없다. 끊임없이 서로의 이름을 호명하는 것밖에는. 부르면서 간절하게 대답을 바란다는 것, 그 대답이 돌아왔을 때의 안도가 이 소설의 감정 저변을 흐른다.

하지만 이 안도가 끝까지 이어질 수 있는가? 그들을 둘러싼 주변 상황은 그들의 의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몰아붙이고 닦달한다. 그들 부부가 아무리 조심스럽게 거인의 무덤 위를 오간다 하더라도 윈스턴은 이미 죽은 지 오래된 역사라는 거인을 일으켜 세울 것이다. 가웨인 경의 주장대로 모든 이들이 전쟁과 증오를 망각하고 평화롭게 살면 되지 않느냐는 말은, 이미 그런 바람의 균열을 암시한다. 비어트리스와 액슬 부부는 초를 받지 못했고 윈스턴은 자신을 색슨족이라는 이유로 내친 브리튼인들을 용서하지 않는다. 가웨인은 금발 처녀에게 복수할 기회를 줬지만, 그녀는 서투르게, 색슨 족 기사를 괭이로 내리찍을 뿐이다. 그 행위는 색슨 족 기사에게는 물론이거니와 이 작업을 수행하는 그녀 자신도 지치게 만든다. 이 지난한 복수의 과정은 망각으로도 지울 수 없다. 거인은 완전히 죽지 않았고 파묻혀 있을 뿐이다. 거인은 어쩌다가 그 곳에 파묻힌 것일까? 이미 그들이 있기 전, 아주 오래전부터 도깨비들의 싸움이 있었을 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아마 거인이 죽었다고 믿었노라고, 죽은 거인이 되살아나는 순간 그 모든 과거-역사를 알게 될 것이다.

윈스턴은 암용 케리그를 죽이고 모두가 과거를 기억해내는 순간-파묻힌 거인이 깨어나는 순간, 증오는 되살아나고 전쟁이 도래할 것이라고 단언한다. 하지만 그에게는 여전히 순수한 색슨 인으로서의 증오가 아니라, 브리튼인과 색슨족의 경계를 뛰어넘었던 동료애와 즐거웠던 순간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다. 부부는 윈스턴의 뒤를 이어 전사가 될 꼬마 에드윈에게 그들의 호의를 잊지 말아 달라고 요청한다. 윈스턴의 바람과 달리, 에드윈에게도 혼돈이 주어지는 것이다.

 

 

 

안개

 

비어트리스의 목적은 아들을 찾는 게 아니라 안개를 없애는 것일지도 모른다. 액슬은 케리그에게 다가가면서 점차 자신의 잃어버렸던 기억을 하나하나 떠올린다. 그 기억은 그들을 기쁘게만 했던 기억이 아니라 절망에 빠뜨리고 때로는 서로를 갈라놓기도 했던, 날카로운 유리조각들이었다. 액슬은 기억을 떠올리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들의 사랑이 맺은 결실이었던 아들은 이미 죽어버린 지 오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촛불 하나 허락하지 않는 마을을 떠나서, 그들을 어둠 속에 내버려 두지 않을 아들의 마을. 그 곳은 그들에게 가정된 이상향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이 모험의 목적이 사라진 순간, 액슬은 비어트리스가 지쳐버리지 않을지 걱정한다. 그 지친다는 것은 모험의 강제 종결을 뜻한다. 그는 친절한 뱃사공이라고 평가하던 것과 달리 중반으로 갈수록 뱃사공의 속임수에 대해, 교활한 뱃사공에 대해 비난한다.

반면 비어트리스에게 기억의 재생은 그들의 결합을 뜻한다. 그녀는 뱃사공 앞에서 그들이 다른 대답을 할까봐 두려워하고, 계속 떠오르는 기억들을 말하면서 액슬과 나누려고 한다. 그러나 과연 그녀는 그들이 좋았던 기억만을 떠올리는가? 언뜻 불화와 갈등의 순간들이 있었다는 걸, 그녀 또한 기억하고 있다.

액슬은 주저하고 비어트리스는 이끈다. 비어트리스는 액슬에게 가다가 혹시 낯선 사람을 보거나, 부근에서 누가 우리를 부르거나, 불쌍한 동물이 덫에 걸렸거나 도랑에 빠져 다친 것을 보거나 그 비슷한 일이 눈에 들어와도 절대 한 마디도 하지 말고 걸음을 늦춰도 안 돼요.”라고 조언한다. 액슬은 비어트리스의 말을 충실히 따른다. 이 여행에서 모든 걸 결정하고 미루고 판단하는 사람은 비어트리스다. 그녀는 안개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수많은 전설과 로맨스로 파생되는 아서왕 전설의 인물들이 소설 곳곳에서 등장하지만, 이들은 대부분 잊히거나 너무 오래된 인물들이다. 가웨인은 윈스턴이 소년에서 어른이 될 때까지 케리그를 처치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받는다. 멀린은 죽었다. 아서왕은 찬란하고 아름다운 전설로 남아 있다. 색슨 족과 브리튼인에게 평화를 가져다 주었다는 전제 하에서다. 하지만 이 모순을 알고 있는 사람은 바로 액슬이다. 액슬은 아서왕을 전설이 아닌 실제 인물로 격하시켰으며, 그의 모순을 파악하고 심한 말을 했다. 가웨인은 액슬을 사랑하면서도 용서할 수 없었다. 윈스턴과 마찬가지다. 가웨인은 과거 자신의 모습과 유사한 윈스턴을 바라본다. 그들의 전쟁은 평화를 표방하고 있었지만, 사실상 이 땅에 가져온 건 분쟁과 소음이었다. 모든 전설의 온화한 끝은 현실과 부닥치고, 이 충돌을 막고 모든 것을 정지 상태로 놓아두는 것이 안개다.

가웨인이 암용 케리그에 대해 교활하고 영리하다라고 말하지만, 실상 가장 영리하고 교활한 건 인간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끊임없이 의심한다. 액슬과 비어트리스는 서로의 기억에 대해, 현재에 대해, 미래에 대해 의심한다. 하지만 그 의심이 이 소란한 가운데서도 한 줌의 공기처럼 숨 쉴 틈을 만들어 주는 이유는, 그들이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사랑이 유지되기를 바라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이 풍경을 지켜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액슬은 비어트리스에게 계속 과거의 기억이 그들을 방해하더라도 지금 사랑을 이어나가자고, 계속 사랑해 달라고 애원한다. 비어트리스는 그런 그의 불안에 응답한다.

안개를 헤치고 그들이 찾고 싶어하는 아름다운 기억은 그들의 생각처럼 아름다운 형상은 아닐 테지만, 그건 아름다울 것이다. 아주 사소하고 아름답고, 잊혀지지 않을 만큼 선명하고 아득하다. 그들은 서로에게 상처를 입혔고 오기를 부렸다. 그 상실의 순간을 망각을 통해 이겨냈다고 말하며 그 망각이 사라지는 순간 그들의 상처가 다시 재생된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 망각은 반창고처럼 떼어졌고, 그들에게 남은 흉터는 아름다운 흔적으로 남아 있노라고. 그 상실을 우리가 함께 견뎌냈다는. 가장 잊혀지지 않는 상처는 상실이고 가장 아름다운 기억은 그 상실을 치유하기 위해 소소한 기억들을 끌어당기고 메꾸어야 했던 필사의 노력들이다. 어쩌면 신은 그들을 잊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신이 베푼 자비란 그들이 잠시만이라도 망각으로 모든 걸 해결했다고 믿을 수 있도록 잊어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과부와 홀아비의 서사

    

소설에서 거듭되어 나오는 뱃사공의 일화는 자못 이 소설의 결말을 암시하는 듯하다. 남편 없이 남겨진 노파는 세상의 모든 것을 증오하고 두려워한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연약한 짐승의 살해로 뱃사공에게 보복하는 것이다. 뱃사공은 자신이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노파 또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했을 뿐이다. 노파 부부는 한때 서로 저 섬에서 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의심했고, 그로 인해 노파 혼자만 남겨진다. 그들은 공통의 아름다운 기억을 제시하지 못했다. 검은 옷을 입은 과부들은 가웨인에게 케리그를 처치하지 않았다며 진흙 덩어리를 던지고 비난한다. 가웨인은 그녀들이 그걸 어떻게 알았냐고 캐묻지만, 그들은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상태이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고 대답한다. 이 대륙의 모든 이들은 부부가 아닌 이상 서로의 존재를 입증할 수도 없을만큼 서로를 쉽게 망각해 버리게 된다. 결국 남편과 아내, 혹은 유대관계나 원한 관계만이 서로의 존재를 입증하고 기억한다. 한 쪽을 상실하게 되면 그 상실한 것을 애도해야 할 텐데, 그 애도 대상조차도 또렷하지 못하다. 그들의 존재를 입증하는 기억을 확인해줄 이조차도 없다. 그들은 끊임없이 원망하고 탄식한다.

과부들은 그들의 존재조차도 흐려져 버렸다고 말한다. 허공에 형체 없이 떠돌아다니는 안개처럼, 그들에게는 끝도 보이지 않는다. 뱃사공은 그들을 태워주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언젠가는 식욕이 돌아올 것이라고 말한다.

비어트리스는 그 섬에 갈 때 그들이 공통된 기억을 떠올리지 못할까봐 두려워하지만, 액슬은 둘이 같이 가지 못하게 하는 모든 것들을 무찌르고 해치운다. 픽시 도깨비들이 비어트리스를 내달라고 말할 때, 액슬은 포기하지 않는다. 그의 존재가 사라지는 것보다 더 두려운 건 바로 비어트리스의 안전이다. 그는 비어트리스를 사랑하기 때문에 잃기 두려워하고, 그래서 더 의심하며, 의심 때문에 뱃사공을 더욱 더 두려워한다. 소설의 후반부에서 뱃사공은 비어트리스가 말한 기억과 액슬이 말한 기억이 일치하는지 말해주지 않는다. 다만 그는 일을 수월하게 하기 위해비어트리스를 자신이 들어올리겠다고 말하며, 액슬에게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한다. 그가 다시 돌아와 액슬을 데리러 가더라도, 액슬은 이미 홀아비가 되어버린다.

세상에 남겨지는 건 결국 두려움이다. 우리가 믿었던 어떤 확신들은 다 사그러진다. 의심은 모든 것을 두렵게 하고, 애도할 줄 몰라 갈팡질팡하게 하며, 모든 것을 다 내버리거나 다 끌어안고 있게 만든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노인 화자들은 불평하거나 신경질을 부리지 않는다. 그들은 끊임없이 위로하고 회개하며, 서로에게 다가서지 못했던 과거를 후회한다. 이 이야기를 굽어보고 있는 이야기꾼은 현대에 가까운 인물일 것이다. 노인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동력이 없는 폐기 직전의 도구이며, 컴퓨터가 있는 현재에서는 정확하지 않은 역사책에 불과하다. 자본을 좀 더 많이 가지고 있으면 소비자 축에 껴주지만, 그 소비능력조차도 미약하다고 판단된다. 그들은 이 사회에서 어린애와 같이 한없이 무능해진다. 그러나 그들은 곧 시간을 거쳐온 역사다. 어떤 역사가 우리에게 미안하다고 말해주는 것이 아주 사소할지라도 묘하게 위로가 된 것처럼, 잠꼬대처럼 낮고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이야기들이 있다. 그 이야기들은 우리가 마주한 커다란 실수가 사실은 번복된 것이었고, 이를 무마하려는 모든 시도들이 허사였으며, 결국 수긍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방법이라고 말하는 모든 회의주의를 격파하듯이. 시간이 가도 잊히지 않는 어떤 소중한 것이 있노라고 말한다. 현대 사회에서 번복되고 있는 모든 실수와 과오와 두려운 참극들은, 어쩌면 실수를 무마하고 용인하기를 거부하는 자세에서 왔을지도 모른다. 윈스턴은 그들을 사랑하려고 했지만, 사랑을 거부한 건 그들이었다. 브리튼인과 색슨 족은 싸우다가 결국 서로의 손에 멸망할 것이다. 이들 앞에서 우리는 쉽게 어느 누구도 비난할 수 없다. 전쟁인가, 망각인가? 망각이 일시적인 구원이라면, 그 구원은 일시적이라는 이유에서 거짓인가, 아니면 구원이기에 구원일 수 있는가.

적어도 우리가 망각하는 가운데서도 기억해야 할 무언가가 있다면, 이 무거운 묵시록의 끝에서 아주 하찮아 보이고 곧 소멸해야 할 것처럼 연약한 암용 케리그처럼-희미한 빛으로 뻗어나가는 비어트리스와 액슬을 기억해야 한다. 그들은 서로 사랑했고, 사랑해왔으며, 평생 서로를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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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스트레인저
세라 워터스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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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입고 피폐한 짐승

-세라 워터스 리틀 스트레인저’-

 

 

 

닥터 패러데이

 

책의 뒷면에는 보통 유명인들의 추천사와 함께, 이 책의 내용에 구미를 당겨줄 멘트 서너줄 이 실리게 마련이다. 이들은 책의 구매에 기여하는 바이나, 간혹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한다. 특히 추리나 스릴러 소설들이 저지르는 오류다. 가령 밀실 살인 소설에서는 밀실의 작동 방식뿐 아니라 범인의 정체도 중요한 편인데, 늙은 노인이 만드는 밀실 미스테리라고 써놓는 식이다. 세라 워터스의 리틀 스트레인저또한 마찬가지로 이런 실수를 저지르는 것처럼 보인다. 그 중 퍼블리셔스 위클리에서 발표한 추천평이 압권인데, ‘문학 사상 가장 믿을 수 없는 화자 중 하나로 기록될 인물 패러데이.’라는 것이다. 이 소설은 패러데이의 1인칭 시점으로 쓰여지고 있고, 때문에 독자는 패러데이의 인도에 따라 작품을 읽어나갈 수밖에 없다. ‘믿을 수 없는 화자라는 추천평을 읽은 이들은 이제 패러데이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고, 다 읽은 후에서야 추천평을 발견한 사람들은 다시 읽게 된다. 사실 패러데이에 대한 의심을 품지 않는다면 이 소설은 시대의 흐름에 의한 젠트리 계급 사회의 몰락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패러데이는 분명 헌드레즈 홀을 망가뜨려서라도 갖고 싶을 만큼사랑했다. 그는 도토리 장식을 칼로 파서 억지로 떼어낼 만큼 그 일부를 가지고 싶어했다. 이는 그가 태어날 때부터 부과된 어떤 계급과 이에 대한 열등감에서 기인한다. 패러데이는 과거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거나 맞았고, 부모님의 어려운 사정과 도토리 장식을 가지면 안된다는 금기 앞에서 분함과 슬픔을 느낀 적이 있다. 열심히 공부해서 의사가 되었지만, 출세마저도 계급 앞에서 별다른 소용이 없다. ‘가정의가 그의 한계인데, ‘가정의로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의 동료 실리나 그레이엄처럼 대대로 의사 집안이거나 젠트리에게 인정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초반부에 그가 캐럴라인과 로더릭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은 사실상 젠트리에게 인정받고 싶고, 그들의 일원이 되고 싶다는 욕심이 엿보인다. 그러나 그는 젠트리의 하인이었던 이들에게 묘한 공감을 보이는데, 베티를 설득하는 한편 며칠이라도 쉴 수 있게끔 입을 맞춰주거나 에어즈 부인과 로더릭의 하인들에 대한 낭만적인 이야기에 은근히 반감을 내비치는 것을 그 예시로 들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열등감과 욕망이, 패러데이를 헌드레즈 홀의 파국에 기여한 전범으로 볼 수 있을 것인가? 에어즈 가문은 무고하며 패러데이라는 낯설고 하찮은 방문자에 의해 파괴된 것일까? 패러데이가 원한 것은, 헌드레즈 홀에 사는 이들을 망가뜨려 내보내고 망가진 헌드레즈 홀이라도 가지는 것이었을까?

그는 에어즈 부인에 대한 한없는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 에어즈 부인은 곧 헌드레즈 홀이다. 패러데이가 원한 건 에어즈 부인의 죽음이 아니다. 유일하게 헌드레즈 홀과 어울리는 에어즈 부인의 보존이었다. 그는 자신을 버리고 떠나가지 말아달라고 애원하는 에어즈 부인의 손을 잡고 굳게 약속한다. 그가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캐럴라인이지만, 정작 찬사는 에어즈 부인을 향해 대부분 소모된다. 패러데이가 사랑하는 건 헌드레즈 홀이며 그가 원하는 건 헌드레즈 홀의 보존이다. 이를 위해서는 헌드레즈 홀에 어울리지 않는 인물들을 제거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영주로서 모든 책임을 떠맡아야 하는 로더릭의 부담감을 파헤치고 그를 정신병원에 보내는 데 일조하지만, 그는 로더릭이 보는 환상-그들을 헌드레즈 홀에서 내쫓으려 하는-의 환각성을 주장하고 이를 명명백백히 밝히려고 애쓴다. 패러데이는 로더릭에게 같이 헌드레즈 홀에서 밤을 보내겠다고 말하지만, 그는 이 소설에서 단 한번도 헌드레즈 홀에서 밤을 보내는 걸 허락받지 못한다. 헌드레즈 홀에서 떨어진 에어즈 가문의 사람들은 그의 관심에서 멀어진다. 그 다음은 에어즈 부인이다. 설령 그가 의식적으로 계획한 것이 아닐지라도, 그는 헌드레즈 홀을 대표할 수 있는 인물과 함께 헌드레즈홀을 소유하고 싶어한다. 그 선택은 캐럴라인을 향한다. 물론 에어즈 부인이 그 홀에 더 어울리기는 하지만, 닥터 실리의 말마따나 캐럴라인이 에어즈 부인보다 더 가치가 있다.’ 그녀는 에어즈 부인보다 조금 더 오래 살수 있기 때문이라고-말하기보다는, 과거의 영광스러운 헌드레즈홀이 에어즈 부인이었다면 현재의 굴욕적인 헌드레즈 홀은 캐럴라인에 가깝기 때문이다. 베이커하이드의 처남은 캐럴라인 대신 골동품인 하프시코드에 관심을 두고, 사람들은 그녀를 못생겼다고 수군거린다. 그녀는 잡초가 우거지고 정돈되지 않은 헌드레즈홀을 닮았다. 그는 캐럴라인이 결혼식 예복을 맞추기를 거부하자 그녀의 낡은 드레스를 들고 가서 치수만 참고해 달라고 하는 게 아니라 새로이이 디자인을 살려 만들어 달라고 청한다. 하지만 캐럴라인은 그를 거절하한다. 이제 그에게 캐럴라인을 위해 준비했던 예물과 드레스는 쓸모가 없다. 헌드레즈 홀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헌드레즈 홀-캐럴라인은 그를 거부했고, 그는 그것들을 놔두고 도망친다. 과거 어린 패러데이가 헌드레즈홀에 매혹당했듯이, 어른 패러데이는 몰락해 가는 헌드레즈 홀에 매혹된다. 그는 자신이 캐럴라인을 사랑했었는지 자문하며 죄책감을 느끼지만, 한편으로는 헌드레즈 홀을 지키기 위해 그녀를 정신 이상자로 몰아가고 금치산자인 로더릭에게 헌드레즈 홀을 귀속한다.’

그러나 그가 정말로 원했던 게 헌드레즈 홀이었는가? 아니면 뒤틀린 인정 욕망이었는가? 모두가 떠나고 폐허로 남은 헌드레즈 홀에서 그는 차라리 누군가가 자신을 이곳에서 내쫓아주기를 바란다. 캐럴라인의 말대로라면, 그 조그맣고 성가신 것은 자신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마주하는 건 그의 방향 잃은 집착 뿐이다.

 

 

캐럴라인

 

패러데이와 동료 의사인 실리는 권태에 찌든 인물이다. 그는 아름다운 아내와 잘생긴 아들들을 두고 있지만, 그들이 자신의 사적인 공간에 들어올 때마다 히스테리를 부린다. 패러데이가 원하는 아늑하고 따뜻한 가정에 대대로 의사였다는 가문까지 가지고 있지만, 실리는 지쳐있다. 그는 패러데이를 질투하지도 않는다. 패러데이의 환상이 끝나면 남는 건 욕망과 타산적 이익과 손해밖에 없다는 걸 냉정하게 지적하고 그를 부추길 뿐이다. 이 소설에서 사실상 제일 최악이자 신뢰할 만한 화자는 실리가 유일하다. 어쩌면 실리가 우스갯소리로 지껄인 말들은 소설을 읽는 사람들과 패러데이의 시점에서 쓰인다는 전제 하에-헛소리로 치부될 수도 있겠지만, 패러데이가 그의 말을 캐럴라인에게 화를 낼 때 그대로 옮긴다는 점에서 보면 단순하게 지나칠 만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실리가 유일하게 칭찬하는 사람이 캐럴라인이다. 이는 단순히 패러데이의 환심을 사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실리는 캐럴라인이 영리한 아가씨라고 말한다. 캐럴라인은 영리하고, 저돌적이다.

캐럴라인이 패러데이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서는 척 몸짓을 취한 것은, 패러데이의 런던 방문기를 듣고 난 후부터다. 패러데이가 런던에서 일자리를 구할 수도 있겠다고 말하자 그녀는 적극적으로 그를 반긴다. 하지만 정작 패러데이가 그녀에게 구혼자의 몸짓을 취하려고 할 때마다, 그녀는 거부한다.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거나 그럴 기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를 어떤 의심의 표출로도 읽을 수도 있다. 닥터 패러데이는 캐럴라인에게 에어즈 부인이 야반도주를 할까봐 겁을 낸다고 말하고 덧붙인다. 그들은 그렇게 경망없는 짓을 하지 않을 것이며, 이 곳에서 영원히 어머니와 함께 있겠다고. 그러나 캐럴라인은 집을 지키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패러데이의 마음을 받아들이거나, 젠트리로서의 계급 차에서 오는 혐오 때문에 패러데이를 멀리하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작품 내에서 끊임없이 떠나고 싶어하며, 군인으로 복무했던 시절의 추억을 떠올린다.

한때 그녀도 헌드레즈 홀의 영광을 꿈꿨던 적이 있다. 그녀는 베이커하이드 일가를 초대했을 때, 에어즈 부인의 과거처럼 아름답게 꾸미려고 애쓴다. 그녀의 드레스는 구식이었지만 솔직히 그리 잘 어울리지는 않았다.’ ‘목선이 낮게 파여 그녀의 두드러진 쇄골과 목의 힘줄이 드러났고, 부푼 가슴에 비해 보디스를 너무 조였다. 눈꺼풀에 색조화장을 하고 뺨에는 연지를 칠했으며, 붉은 립스틱을 바른 입술은 깜짝 놀랄 만큼 크고 두꺼웠다. 사실 맨 얼굴에 그 맵시 안 나는 낡은 치마와 에어텍스 블라우스를 입었을 때가 훨씬 멋지고 그녀답게 보이는 것 같았다.(125p)’ 캐럴라인은 패러데이의 칭찬을 받지만, 패러데이는 나 자신의 결함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에게 너그럽다. 처음에 캐럴라인은 그의 찬사를 받고 기뻐하지만, 이내 베이커하이드의 처남 폴리와 베이커하이드의 말 못생긴 사제놈 주제에 얼굴을 밝힌다는 말로 그 찬사의 무용함을 알게 된다. 그녀를 칭찬해주고 아름답다고 말해줄 사람은 패러데이 뿐인 것이다. 그녀의 자존심을 꺾어 놓는 고작 패러데이’. 캐럴라인은 베이커하이드의 딸 질리언의 얼굴이 지프 때문에 다쳤다는 소리에 날카롭고 매정하게 말한다. “이젠 확실히 콤플렉스가 생겼네.” 그녀는 자신의 입에서 나온 매정한 말에 놀란 눈치였다고 하지만, 이는 패러데이의 서술일 뿐이다. 그는 그녀의 명예를 위해 말해두자면이라고 덧붙인다.

캐럴라인이 패러데이에게 원망하듯이 어머니와 동생을 데리고일년 전에 이 곳을 떠났어야 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녀는 헌드레즈 홀을 그냥 떠나버릴 수는 없다는 걸 알고 있다. 이미 에어즈 부인은 헌드레즈 홀이며, 로더릭은 헌드레즈 홀을 지키는 것 외에는 어떤 삶의 사명도 생각해내지 못한다. 마지막에 그녀를 붙잡는 모든 것들이 다 사라지자 그녀는 패러데이마저도 차버린다. 패러데이는 그녀에게 어떤 도구였을지는 몰라도 사랑은 아니었다. 패러데이는 캐럴라인이 불안하고 힘들어 보인다고 말하지만, 캐럴라인은 그 어느 때보다도 희망에 차 있었다. 그녀는 집에 사는 것이 일종의 협정이었다고 하지만, 협정을 지킬 만한 사람들이 다 사라지고 나면 협정은 무의미한 것이 되어버린다. 패러데이는 구식에 익숙한 인간이고, 그래서 협정의 준수를 거부하는 캐럴라인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캐럴라인은 패러데이와 함께 참석한 의사들의 무도회에서 전혀 다른 인간이 된다. 패러데이가 생각했던 것처럼 조신하게 그의 곁에 붙어 있기보다는 동갑내기 친구와 팔짱을 끼고 다니며, 다른 남자와 춤을 춘다. 패러데이가 묘한 불쾌함을 숨기면서 많이 친했던 친구냐고 묻자, 싫어하는 쪽이었다며 스스럼없이 대답한다. ‘젠트리의 소멸을 원하는 것 같은 이 현대 사회가 갑갑하다고 말하던 에어즈 가의 식구들 중 캐럴라인만은 유일하게 그 곳을 스스로 나오기 위해 노력한다. 도피, 죽음이 아닌 삶으로. 하지만 아름다운 계급의 상층부로 가는 계단을 내려오는 순간, 캐럴라인은 죽는다.

 

리틀 스트레인저

 

믿을 수 없는 화자라는 말은, 그 화자가 범인일지도 모른다는 의심 뿐 아니라 화자의 시선이 지니는 신빙성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한다. 우리는 과연 진실을 보고 있는가, 아니면 편견 섞인 판단으로 진실을 보지 못하고 있는가? 패러데이는 듣는 데 익숙한 인간이다. 그는 말하는 데에는 익숙하지 않다. 그는 환자의 말에서 진실과 거짓을 찾아낼 수 있을 만큼 도통하지만, 정작 자신의 발화에서는 거짓과 진실을 찾아내지 못한다. “게다가 나는 당연히 상대방의 말을 듣는 데 더 익숙하다네. 그런 생각 해본 적 있나, 로드? 나처럼 이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은 얼마나 많이 들어야 하는지에 대해? 우리 같은 가정의는 성직자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종종 들어. 사람들은 우리한테 비밀을 털어놓지. 우리가 이러쿵저러쿵 판단하지 않으리라는 걸 잘 알거든. 우리가 겉모습에 관계없이 인간을 있는 그대로 보는 데 익숙하다는 걸 잘 알아....”(228-229p) 패러데이는 그렇게듣지만, 말할 때는 가감없이 보호자에게 말한다. 성직자와 의사가 다른 점이라면, 의사에게는 환자 말고도 보호자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로더릭의 정신 질환이 의심된다고 캐럴라인에게 말하며, 캐럴라인은 그의 말을 의심하고 화를 내는 대신 수긍한다.’ 패러데이는 그 수긍에 일말의 의심도 품지 않는다. 그가 의심을 품게 되는 계기는 바로 이 모든 이야기를 바깥에서 보고 가끔은 불쾌하다 싶을 정도로 정곡을 찌르는 실리때문이다. 소설의 뒷면 홍보와 달리, ‘믿을 수 없는 화자가 불안해지는 순간마다 우리는 묘하게 그를 믿고’ ‘공감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 소설의 리틀 스트레인저는 누구인가? 패러데이의 방문 이후로 모든 것들이 망가지기 시작했다는 캐럴라인의 말처럼, 패러데이가 이 모든 몰락의 범인인가? 그는 헌드레즈홀의 찬란한 과거를 기억하고 있었고, 그들에게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에어즈 가문은 그를 환영했다. 왜냐하면 그는 헌드레즈 홀을 기억하고 그때를 선망하며, 그들에게 하여금 젠트리로서의 자의식을 확인시켜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패러데이의 직접적인 범죄-억울함을 호소하는-보다, 그의 간접적인 범죄 기여도가 있을지도 모른다. 캐럴라인은 그로 인해 자신이 못생겼다는 걸 다시 깨달았고, 이어 헌드레즈 홀에서 벗어난 다른 삶을 선망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폴터 가이스트나 조그만 요정들의 존재는 패러데이에게는 별다른 고려 요소가 되지 않는다. 그는 베티가 법정에 서서 진술을 할 때도, 그녀가 말하는 귀신의 존재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캐럴라인은 끊임없이 여기서 살지 않을 거잖아요”(472p)라고 말한다. 그녀는 에어즈 부인의 죽음에 자신을 공범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것이 가장 분하다고 말했지만, 사실 이러한 공범의 의식은 단순히 그녀가 어머니를 방기했다는 것에서만이 아니라 이 집을 벗어나고 싶어하는 캐럴라인과 집에서 쫓아내고 싶어하는 어떤 존재의 호응에서 인식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닥터 패러데이와 캐럴라인에게 침입자, 저택으로 스며드는 시간들이다. 그들 중 어느 누구도 헌드레즈홀로 침입하지 않았다. 패러데이가 과거를 형상화한 인물이라면, 캐럴라인은 미래를 형상화한 쪽이다. 로더릭을 압박하고 에어즈 부인을 과거의 죄책감에 사로잡히게 만든 건 그들이 별 것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고 넘겨버린 시간이다. 그들은 젠트리의 영속성을-어떤 의심없이 그 상태로 태어나’ ‘그 상태로 죽을자신의 위치를 과신했지만, 자본주의 사회는 그들의 행동에 일일이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제동을 걸고, 그들의 자본이 얼마나 빈약한지 지적한다. 한 벽돌이 시간이 지나면 점점 풍화되고 이내 먼지가 되어 사그라들 것처럼, 그런 소멸은 패러데이와 캐럴라인에게는 더 무서운 것이었다. 패러데이는 헌드레즈 홀을 지탱할 자본, 캐럴라인은 탈출을 꿈꿨다. 패러데이는 시간이 지나 젠트리가 젠트리가 아니게 된 이 시점에서, 비로소 그가 젠트리로 끼어들 수 있다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캐럴라인은 헌드레즈홀이 사라지면 그녀 또한 벗어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들에게 시간만큼 헌드레즈 홀은 별것이 아니거나 별것 이상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헌드레즈 홀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우매한 착각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쇠락의 형상은 시간의 전리품으로, 진보했다는 명목하에 남겨진다. 아주 사소한 시간의 흐름들로 인해 배수관은 묘한 소리로 들어차고 팽창한 공기들은 불타오른다. 과거는 쓸모없다는 이유로 기피의 대상이 된다. “혼돈 한 가운데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상처입고 피폐한 짐승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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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즈오 이시구로 '파묻힌 거인'

  ->가즈오 이시구로의 신작, 영문학과 교과서 등 조용히 여러 곳에서 읽히고 있는 그의 책들에서는 일본계 영국인으로 살아온 묘한 '경계'의 감각이 느껴진다. 그 감각은 우리에게 배외적이거나 이질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끝내 포함되지 못하는 어떤 타인으로서의 지점을 건드린다. 이 신간은 정말 기대가 된다.

 

2. 스티븐 킹 외 '더 좀비스'

 ->SF든 판타지든 현대 공포물, 개그물에 이르기까지 좀비는 참신한 소재에서 식상한 소재로 사용되어 왔다. 왜 좀비가 자주 사용되었는가? 이는 인문학자들이 이미 현대인의 좀비성에 대해 논한 바 있다. 하지만 그 좀비가 어떤 유형에서 어떻게 새로이 '죽은 자'에서 이야기의 '주체'가 될지 궁금하지 않을까.  

 

3. 제임스 서버 단편선

->현대문학은 또 제임스 서버라는 작가를 슬그머니 데려다 놓는다. 사람들이 영화로 감명깊게 보면서 '영상미'만 따졌지 차마 그 영상을 가능케 하는 이야기를 인지하지 못했던 제임스 서버의 단편 소설들을 읽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

 

 

 

 

 

 

 

 

 

 

 

 

 

 

 

 

 

 

4. 추차방크 '수영하는 사람'

 ->이름이 특이했다. 제목도 특이하다. 책 표지는 뭔가 애잔하다. 읽어보고 싶은 단편집.

 

5. 세라 워터스 '리틀 스트레인저'

 ->'벨벳 애무하기', '핑거스미스' 등 레즈비언 문학의 대명사라고 불리는 세라 워터스지만, 어떻게 본다면 사람들은 그녀의 이야기가 지니는 흡입력이나 인간의 본원적인 감정에 대한 그 감각을 '성소수성'이라는 것 때문에 놓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세라 워터스는 성소수자 문학이라는 분류 아래 뱀파이어처럼 살아남아 또다시 핏물 뚝뚝 떨어지는 책을 내놓았다.

 

6. 앤드루 포터 '어떤 날들'

->앤드루 포터의 단편 소설집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은 단순한 문장들의 연쇄가 주는 아름다움이 압권이다. 이 장편은 어떨지 궁금하다. 제임스 설터처럼 섹시하거나 줌파 라히리처럼 섬세한 것보다는 무언가 모르는 사이에 가슴을 탁 치고 가는 감각들, 그 감각이 장편에서는 어떻게 살아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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