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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스 민음사 모던 클래식 46
유디트 헤르만 지음, 이용숙 옮김 / 민음사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기나긴 죽음의 연대기

-유디트 헤르만의 알리스’, 애도의 끝에 대한 불가능, 그리고 연장선인 삶을 향하여

 

나는 마녀야
  

알리스의 소중한 사람들은 알리스가 미묘한 예감을 느낀 순간 떠나가 버린다. 그녀의 전 연인이었던 미햐, 친구 콘라트와 리하르트, 연인인 라이몬트. 알리스가 집어드는 물건마다 그들의 죽음을 예정하는 것 같고, 그녀의 눈에 들어오는 라이몬트의 문신마저 불길해 보인다. 하지만 그녀는 정말 민담에 나오는 마녀처럼 누군가를 저주하거나 마법을 걸 수가 없다. 그저 다른 사람들처럼 희망을 갖지만, 동시에 역설적인 불안감을 느낀다는 것. 빗자루 위에 올라탄 마녀처럼 알리스는 정처없이 죽음의 바람이 몰아치는 거리 한 가운데를 걸어가야 한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미햐에게 마지막으로 키스를 하고, 콘라트와 인사를 하고 리하르트의 아내인 마르가레테에게 담배를 사다주는 정도. 그나마 그들에게는 알리스보다 더 큰 상실감을 느낄 누군가가 있었다. 미햐의 아들을 낳은 마야, 콘라트의 아내 로테, 리하르트의 연인 마르가레테.

과거 중세시대에 마녀는 '다르다'로 일컬어졌다. 불길하고 음울한, 살아있는 상징으로 여겨졌다. 사람들과 다르고, 경계 밖에 물러서 있지만 인간 형태를 띄고 있어서 인간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 무엇이라고 규정지을 수 없는 이 불안한 위치. 알리스는 무게 중심을 잡을 수가 없다. 그녀는 어떤 위치에도 제대로 설 수가 없다.

마야에게 알리스는 이질적이지만, 동시에 미햐를 위해 무언가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알리스는 마야보다 나이는 많았지만, 늘 불안했다. 그녀는 과거에는 미햐의 연인이었으나 지금 미햐가 의식을 잃은 이상 현재 그녀가 어떤 위치에 서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녀는 그저 미햐의 트렁크를 잠시나마 가질 수 있게 된 것에 '만족'할 뿐이다. 콘라트와 함께 수영을 하고 친구들을 소개시켜 주어야 하지만 콘라트는 아프고, 그와 안나, 루마니아 남자를 이어줄 연결점은 알리스 한 명 뿐이다. 알리스만이 그 두 쪽을 다 알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쉽사리 그들을 잇지 못한다.

알리스는 미햐에게 무슨 염려를 끼치지는 않을까, 마치 자신이 역병같은 존재라도 되는 양 불안해 한다. 하지만 미햐는 죽지 않는다. 그녀가 와서 키스를 했을 때, 마치 그게 신호탄이라도 되듯이 몇 시간 후 죽음을 맞이한다. 콘라트를 마지막으로 본 것도 알리스다. 리하르트가 좋아하는 꽃이 작약이라는 것을 맞춘 것도 그녀다. 이 죽음들은 다른 소설들 속에서 나타나는 죽음처럼 쿵쾅거리지도 않고 장렬하지도 않다. 풍경처럼 너무 잔잔하게, 마치 원래 그랬어야 한다는 듯이 다가온다. 누구도 알리스 때문에 그들이 죽었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알리스에게는 이 모든 것이 그녀 때문에 일어난 일처럼 여겨지고, 그녀 앞에 놓여진 모든 것이 죽음의 전조처럼 보인다. 이 때문에 그녀는 라이몬트의 말에 대답하기를 거부한다.

  들을 만나고 돌아온 알리스는 라이몬트에게 물었다. 나보다 먼저 죽고 싶어, 아니면 내가 죽은 뒤에 죽고 싶어? 당신이 죽은 뒤에. 라이몬트가 대답했다. 그 대답을 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말도 안 되는 질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 그는 대답에 확신이 없었던 모양이다. 그럼 당신은? 이렇게 되묻는 걸 보면. 알리스는 고개를 저으며 손으로 그의 입을 막았다. 알리스는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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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바램과 달리, 라이몬트는 '꼴찌가 첫째가 되고 만다'. 알리스에게는 가장 멀게만 느껴지던, 절대로 다가오지 않을 것이라고 여겼던 연인 라이몬트가 죽은 것이다. '꼴찌'이길 바랬던 라이몬트는 첫째가 되어버렸다. 사람들이 모르는 새에 머릿속으로 들어와서 사람들을 미치게 만든다는, 이탈리아의 머리 메뚜기처럼. 알리스가 원치 않아도 죽음은 다가온다. 알리스는 입 안에서 벌레를 뱉어낸다. 웨이터는 그녀에게 '날이 덥기 때문에 벌레가 많다'고 말한다. 그녀는 그 벌레가 머리 메뚜기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다. 그걸 분간할 수 있는 사람은 콘라트 뿐이다. 그녀가 죽음을 건드리면 건드릴 수록 죽음은 더더욱 알 수 없는, 불가한 것이 되어버린다. 어떻게든 정의를 내리려 할 수록 그녀는 그 앞에서 좌절하고 미쳐버릴 수밖에 없다. 머리 메뚜기는 그녀의 머릿속에서, 그 죽음을 건드릴 것이다. 그녀는 무사하게 다른 세상으로 '귀환'하기 위해서, 머리 메뚜기를 삼키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녀의 연인 라이몬트의 죽음 때문에, 그녀의 머릿속에서 머리 메뚜기가 높이, 튀어오르게 된다.

 

 

눈부시게 빛나는 레몬나무

 

빛 아래에서 모든 것은 명징해 보인다. 형체도, 풍경 사이의 구분도, 사람들도. 허나 알리스는 안나에게 묻는다. 매미와 여치의 차이점이 뭘까? 색깔, 소리, 크기로 분간해 볼 수도 있고, 여치 소리가 나는 상자는 베트남 시장에서 샀기 때문에 베트남 산이라고 볼 수 있다고. 하지만 그 차이점에 따른 매미와 여치의 정체성을, 알리스는 납득하지 못한다. 안나와 루마니아 남자는 콘라트를 보지 못했다. 콘라트와 그들을 이어줄 수 있는 사람은 알리스 뿐이다. 병원의 수녀도 미햐에 대해 묻는다. 미햐는 어떤 사람이었죠? 알리스는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오히려 당혹감을 느낀다. 과연 한 인간의 삶이, 한 마디 말로 완결될 수 있는가? 라이몬트의 모습을 연상케하는 소설 속 소설의 몇 구절처럼, '사라졌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프로이트는 애도를 '자신의 상징 구조 안에서 상징화하고 현실로 돌아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울증은 그 반대로 '하나의 의미로 규정할 수 없기 때문에' 끊임없이 알 수 없는, 그 사람의 그림자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것이다. 알리스는 프로이트식으로 보자면 우울증에 가깝다. 수녀는 미햐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묻지만, 그녀는 그 전의 미햐에 대해서만 알고 있을 뿐이다. 그녀와 미햐 사이의 공백기. 그녀는 그 공백기를 읽어내고 싶지도 않고 인정하고 싶지도 않다. 그녀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곤 미햐는 '마법사'였다는 것. 그녀처럼 불길함을 알아채지는 못했지만 타인에게 마법을 보여주고 그 마법 패를 다 읽게 해주는 사람이었다는 것. 미햐가 살아 있었을 때라면 그녀는 미햐를 '어떤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입을 다문 지금은, 그럴 수가 없다.

그녀는 죽음을 인정하기를 거부한다. 시체를 보는 것도 거부한다. 미햐의 시체를 보겠냐고 물었을 때, 알리스는 생각해 봐야 겠다고 말했다가 이어 '볼 수 없다'라고 말한다. 수많은 죽음들이 있었지만, 그녀는 시체를 보지 못했거나 보지 않았다. 우리는 타인의 죽음을 언제 인정하게 되는가? 고인의 마지막 얼굴은 우리가 알던 그 사람의 얼굴이 아니다. 너무 딱딱하게 굳어 있다. 장난을 치거나 농담을 던져 그 딱딱한 입매를 실타래처럼 풀어 버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지만, 그렇게 해봤자 그 사람이 되살아날 리가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시체를 보는 순간, 그 명확한 물적 증거 앞에서. 우리는 죽음에 항복하게 된다. 마르가레테는 리하르트의 장례식을 준비하고 그의 죽음을 기다린다. 알리스는 3주 뒤에 과연 리하르트가 죽을지 모르겠다고 말하지만, 마르가레테는 리하르트가 했던 말 그대로를 믿는다.

 

마르가레테는 고개를 끄덕였다. , 이제 모든 게 다 준비됐어. 모든 문제를 정리했어. 연주자들, 묘지의 오케스트라, 묏자리까지. 장례식 날도 정했어. 3주 후야.

리하르트가 그때까지 죽지 않으면요. 알리스가 물었다.

, 그때까지는 마치게 될 거야. 마르가레테가 대답했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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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가레테가 가장 결연하게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그녀는 일주일 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고, 점점 말없이 떠나가고 있는 리하르트 곁에서 잠들 것이다. 리하르트가 3년 뒤면 다 잊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녀는 잊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알리스가 태어났을 때 이미 없었던 말테 삼촌의 연인 프리드리히를 굳이 찾아간 것도, 그 문제를 풀기 위해서다. 그녀는 프리드리히처럼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버렸다. 그녀의 자의 때문이 아니라, 그녀가 예상치 못한 무언가에 의해서. 운명의 날카로운 타격으로. 그녀와 프리드리히가 가질 수 있는 것이라곤 죽은 자들이 남기고 간 물건 뿐이다. 프리드리히에게는 그것이 말테의 편지였고 알리스에게는 라이몬트의 물건들이었다. 그리고 총알. 알리스는 말테 삼촌의 죽음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가 살아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상상할 수 있다. 프리드리히는 알리스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다. 그 또한 완전하게 애도를 끝내지 못했다. 말테 이후로 소중한 사람을 만들지 못했고, 말테의 조카라는 아이가 말테를 닮았기를 기대하고 상상했다. 프리드리히는 말테의 편지를 알리스에게 건네주면서 '돌려달라'고 말한다. 그의 애도는 금고 속의 편지처럼 계속 고정 상태로 남아 있다. 끝나지 않는다. 알리스는 프리드리히에게 편지를 다시 돌려줄 수 없을 것이라는 걸 안다. 프리드리히는 많이 늙었고, 알리스와 다시 만나기 전에 죽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는 깨닫는다. 애도는 끝이 없다는 것을. 프리드리히는 그녀보다 더 많은 세월을 거쳐 왔지만, 그래도 애도를 끝내지 못했다는 것을.

그녀는 어떻게든 애도를 끝내려고 한다. 라이몬트의 물건을 정리할 사람은 마야도 아니고 마르가레테, 로테도 아니고 그 자신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녀는 라이몬트의 물건들을 처분하려고 하지만, 그의 재킷 주머니에서 아몬드 크루아상을 발견한 순간 그 결심을 무너뜨리게 된다. '차분하게', 언젠가는 정리해서 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녀의 감정은 그녀의 기대를 배반한다. 그녀는 라이몬트를 본다. 그게 어디든 간에.

 

모두가 라이몬트였다. 걷거나, 서 있거나, 한 손으로 목 뒤를 잡거나, 머리 위를 문지르거나, 어깨를 늘어뜨리거나, 하품을 하거나, 재킷을 입거나 벗거나 모두 그의 모습이었다. 그는 세상에 없어, 알리스. 알리스는 자기 이름을 부르며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했다. 마치 자신이 스스로의 아이인 것처럼. 알리스, 라이몬트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 미쳐 버리지 않고 그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는 것이 중요했다. 미치거나 분노하지 않고 그를 생각하는 것. 조심스럽게. 언제나 새롭게, 맨 처음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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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그녀는 차마 '라이몬트가 죽었다'라고 말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라이몬트는 살아 있다'라고 말할 수도 없다. 머리 메뚜기가 들어온 것마냥 무작정 눈 앞의 현실을 거부할 수도 없다. 결국 말할 수 없는 것이, 말해질 수 없는 것이 있다. 처음부터 되짚는다는 것은 사실 불가해한 일이다. 프리드리히 또한 처음부터 되짚었을 것이나, 그는 아직도 애도를 끝내지 못했다. 소설의 문장 사이사이마다 미묘한 공백, '사이'에서 가벼우면서도 견딜 수 없이 무거운 사이에서 미묘한 '애도의 불가능성'을 느낀다. 그리고 그 끝없음에, 알리스는 절망과 희망이 뒤섞인 모습을 본다.

 

 

물 속으로 뛰어들기

 

애도가 끝이 없다는 것은 절망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누군가의 부재를 인정하는 순간, 사람은 오롯히 혼자로 남게 된다. 알리스는 이 소설 속에서 혼자다. 그녀가 타인의 죽음 앞에서 절망하지 않기를 위해서 그녀는 스스로 죽을 수밖에 없다. 절망, 절망. 슬픔의 수채화를 그리다가 그 위에 갑작스레 물을 끼얹으면서 모든 풍경들을 무너뜨리는 것. 그 뿐이다. 자기파괴 충동에 시달리는 것. 이는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이다. 그녀는 로테 앞에서 술에 취한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그녀와 안나, 로테와 루마니아 남자가 새를 구분한답시고 잠깐 멈춰 있었던 순간에 콘라트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낀다. 그녀 혼자 짊어지기엔 너무 무거운 죄책감들. 그녀는 라이몬트의 문신에 대해 알고 있지만 동시에 모른척 한다. 라이몬트가 말하지 않는 이상, 그게 무슨 뜻인지 말하지 않는 이상 절대로 그 뜻이 이뤄지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라이몬트는 죽었다. 그녀와 가장 가깝고, 그녀를 위해 술집 테이블에 앉아 그녀를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은 이제 없다.

생이라는 거대한 호수 안에서도 타인의 죽음의 동심원과 성의 동심원은 천천히 퍼져나가지만, 우리 삶의 동심원은 그 근처를 스쳐지나갈 뿐, 완전히 경험할 수는 없다. 타인의 죽음이고 사랑이기에, 우리는 '이건 어떤 것이다'라고 말할 수 없다. 그녀는 루마니아 남자와 밤을 같이 하지만 그에게 차마 '같이 하자'라고 말할 수 없다. 그저 루마니아 남자의 미묘한 암시, 이제는 두 개의 행성이 생겼다는 말을 웃으면서 들을 뿐이다. 그녀는 라이몬트를 계속 '보기 때문에', 그와의 인연이 이제는 사라졌다고 인정할 수가 없다. 하지만 생은 차갑다. 한없이 차갑다. 인정하기 힘든 것을 인정하라 하고, 규정할 수 없는 것을 규정하라고 강요한다. 그러나 콘라트의 말대로 그녀는 '죽지 않고' '물을 바라보기만' 하지 않는다. 진통을 없애주는 모르핀을 한 상자 가득 가지고 다니는 간호사의 말마따나 어떻게든 '죽음'은 올 것이다. 동심원들이 서로 독립된 것처럼 퍼지다가도 주변의 동심원과 맞부딪치고, 수면 속으로 함께 사라지는 것처럼 절망과 희망, 삶과 죽음, 사랑. 이 모든 것이 하나로 웅뚱그려질 것이다. ''이란 것으로. 삶이라는 거대한, 원이나 삼각형, 사각형이라고 규정지을 수 없는 거대한 숭고로. 결국 우리는 진통제 한 알을 삼켰다고 상상하면서, 내게는 너무나도 친숙한 타인이 이제는 낯선 죽음으로 물러났다는 것을 깨달을 수밖에 없다. 결국 콘라트의 말대로 그녀는 '물이 차가운 걸 알면서도'그 안으로, 생 속으로 다시 뛰어들게 될 것이다. 햄릿의 오필리어처럼 죽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 그게 얼마나 차가운지, 온 몸으로 느끼면서도.

 

알리스는 콘라트가 자신을 집으로 초대했을 때 그가 호수에 대해 했던 얘기를 떠올렸다. 호수 물은 언제나 얼음처럼 차갑지. 그걸 견디고 물로 들어가야 해. 그래도 너는 물에 들어가게 될 거야. 그리고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거야. 넌 결코 후회하지 않을 거야. 콘라트는 그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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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언달러 티켓 - 비행기에서 만난 백만장자 이야기
리처드 파크 코독 지음, 김명철 옮김, 공병호 해제 / 마젤란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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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사실 이 책은 이론서나 다름없다. 아니, 이론서다. 소설을 가장한 이론서. 이 이론서같은 장르-그러니까 소설을 빙자한-들은 요즈음 부쩍 뜨고 있다. 그 이유는 접근하기 쉬울뿐더러 이해하기에도 좋기 때문이다. 허나 나는 이 장르들을 좋은 시선으로 보지 않았다, 보질 못했다. 문학을 쉽게만 보려는, 이해하려는 태도로밖에 보이질 않았기 때문이였다. 하지만 그건 편파적인 생각이였다. 몇 십권의 그런 장르를, 어쩌다 보니 접하게 되면서-난 내 생각이 일종의 편견이라는 가설을 찾게 되었고, 그리고 그 가설을 입증, 혹은 부정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 그리고 어느날,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요즘 사람들에게 유행인 부자가 되는 법-을 다룬, 흔한 소재의 소설이였지만 진짜 백만장자를 만난다? 백만장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다. 한 명이 아니라 세 명이고, 세 명이 아니라 몇 십명이다. 수많은 백만장자들이 있다. 곧 백만장자가 될, 백만장자도 있다. 마이클이, 그의 곁에서 잠시동안 앉아갈 사람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어느 누구에게 토를 받지 않을 만한 정당한 이야기다. 그래, 그렇게 하면 되겠구나! 모두가 잊고 있었지만, 모두가 알고 있는, 모두가 인정하는 이야기들이다. 이 책은 그것을 되살려 주고, 좌우명이 아닌 수단으로 목적을 이루게 해 준다. 또한 마이클이 진정한 백만장자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어느 누구던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이거, 진짜일까?

난 이 책이 마시멜로 이야기나 여타 다른 책과 비슷하다고 말했지만-앞서서. 그 결론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일을 즐기고, 늘 메모를 하는 습관이지만 진정한 백만장자에 대해 직접적으로 말하는 책은 없었다. 이 책은 매우 쉽고, 이해하기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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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너와 나를 가깝게 할 수 있다면
장폴 뒤부아 지음, 김민정 옮김 / 밝은세상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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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여러색의 셀로판지를 겹치면 검은색이 되지만, 여러색의 빛을 합치면 흰 색이 된다. 사람들은 때때로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며 셀로판지를 겹치고, 가끔 있는 행운에는 빛을 겹친다. 하지만 그 셀로판지가 단지 불행의 상징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여러 색의 셀로판지를 겹칠 수록 검은색은 점점 깊어진다.

이런 삶의 모습이 여실없이 나타나 있는 이 책.

이 책이 너와 나를 가깝게 할 수 있다면.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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