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시험을 잘 보고 싶어 + 내 몸이 어때서 - 전2권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내가 되기 위한 파워 충전소 시리즈
최은영 지음, 김진화 그림 / 우리학교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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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은 믿고 거르는 책 종류가 인성동화’ ‘가치동화를 표방한 동화들과 더불어 자기계발 동화였다. 읽어보면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경우도 있는데 약간의 선입견과 심리적 거부감이 있다. 스토리가 훌륭하면 굳이 그런 단서를 붙이고 무슨무슨동화라고 내세울 필요가 없는거 아니야? 이런 생각이 있었다.

 

이제는 그런 편견도 좀 깨 보려고 한다. 그런 생각 중에 만난 이 책은 내게 꽤 좋은 영향을 주었다. 뻔한 교훈을 들이대는 느낌 없이 스토리가 자연스러웠고 무엇보다도 전하려는 메시지가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어서 욕심이 좀 났다.

 

파워 충전소! 이 시리즈는 앞으로 더 나온다고 하는데 일단 두 권이 먼저 나왔다. 바디 파워 충전소와 브레인 파워 충전소다. 몸에 대한 이야기가 먼저 나온 것이 순서에 맞는다고 동의한다. 어른들도 그렇지만 요즘 아이들의 몸은 형편없다. 아마 신체나이를 측정해보면 깜짝 놀랄 만한 아이들도 많을걸? 자연에서 뛰어놀며 자라고, 적절한 노동을 하고(어쩔 수 없이1), 건강한 채소를 먹고(어쩔 수 없이2) 자라던 옛날 아이들과는 너무 다른 환경에 있기 때문이다. 미국 같은 나라에서 저소득층에게 비만이 절대적으로 많다고 하듯이, 우리나라도 비슷해져 간다. 소득과 비례하지는 않지만 보호자의 관심과 관리에는 비례한다. 입맛에 맞는 것만 먹게 내버려두고 아무 시도도 하지 않는 경우 아이의 식습관은 한없이 나빠져 고정된다. 몸에 쓰레기를 담는구나 싶은 아이들도 보게 된다. 일단 5대 영양소에 맞춰 나온 급식 중에 일부만 골라 먹거나 거의 먹지 않고, 하교하면 편의점을 찾거나 라면을 먹는다. 이 책의 소율이가 이와 비슷하다.

 

그런가하면 먹는 양이 절대 부족한 아이들도 있다. 다이어트 강박 연령이 점점 내려오는 추세다. 이 책에서는 연예인 지망생인 세라가 그렇다. 파워충전소를 찾게 되는 아이들은 소율이와 훈이다. 노부부가 운영하는 이곳을 처음에는 의심하던 아이들이 결국은 파워 충전을 받게 되는데, 첫권에서는 소율이가 바디 파워를, 둘째 권에서는 훈이가 브레인 파워를 충전한다.

 

바디 파워를 충전한 소율이는 세 가지에 집중하게 된다. 바른 자세, 건강한 식재료, 충분한 운동이다. 이건 나이든 나에게도 너무 절실한 것이다. 내가 다니는 커브스에도 노후에 가장 중요한 저축은 근육 저축이라던가 뭐 그런 뜻의 문구가 붙어 있다. 이 책에서 근력운동을 매우 중요하게 다루는 것이 어른에게 더 적절해 보인다. 사실 아이들은 아무 운동이든 잘 뛰기만 해도 좋은 것 아닐까. 내가 너무 무식한 소리를 하나.ㅎㅎ 어쨌든 자세, 음식, 운동. 이 중요한 것을 균형있게 다루어 준 것이 아주 적절하고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이 많은 어린이들을 바꾸어줄 힘이 있다면 세상에 유익한 일이 되겠다.

 

둘째 권에서 훈이는 학년이 올라가 어려워진 수학을 극복하지 못해 자신감이 떨어지고 친구관계에까지 위기가 찾아온다. 두 친구는 브레인 파워의 필요성을 깨닫고 충전소를 찾게 되는데, 노부부는 브레인 파워는 머리가 좋아지는 파워가 아니란다.” 라고 분명히 밝힌다. 그리고 머리에 필요한 힘을 주는 거야. 생각하는 힘, 몰두하는 힘, 그리고 그것을 단단히 지탱시켜 주는 힘 말이야.” 이 설명이 정말 맘에 들었다. 이건 정말 중요하고 꼭 필요한 것이다. 자꾸 이런 말을 하게 되는데, 나도 이거 충전 좀 받고 싶다. 나이들수록 왜이렇게 집중력이 떨어지는지... 왜 공부를 젊을 때 하라는지 알 것 같다니까. 에이고...^^;;;

 

나는 나이들어 이렇다지만 아이들 중에 이 브레인 파워가 필요한 경우가 정말 많다. 절반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주의를 빼앗길 것들이 옛날보다 훨씬 더 많아졌기 때문이겠지. 이 책에 제시된 방법들의 필요성과 효용성을 초등학교 고학년 때쯤 인식하고 노력하다가 중등과정으로 가게 되면 공부에 훨씬 재미를 느낄 것 같다. 다만 책의 후반부에 짧게 제시되어 있으므로 한 번 읽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고 계속 동기부여를 시켜줄 조력자가 옆에 있으면 좋겠다. 친구들과 함께 노력하는 것도 도전을 주는 매우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바디 파워도 브레인 파워도 남과 비교하기 위한 것이 아닌 오직 스스로의 기쁨과 성취감을 위한 것이며 결국 건강한 사회를 위한 것이다. 부디 아이들의 몸과 정신이 건강해지고 그만큼 이 사회도 건강해지면 좋겠다. 파워충전소 시리즈가 아직 다루지 않은 주제는 무엇일까, 그것도 매우 중요하고 솔깃한 것이겠지? 다음 책을 기다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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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외로움이 다른 외로움에게 보통날의 그림책 5
나탈리 비스 지음, 쥘리에트 라그랑주 그림, 김윤진 옮김 / 책읽는곰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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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인간'이라는 말이 있다. 소설 속 무서운 주인공 말고, '투명인간 취급한다'고 할 때 그 투명인간. 아무도 알아봐주지 않고, 그 존재에 신경쓰지 않는 그런 사람.

'나의 아저씨' OST를 들으면 아직도 가슴이 아릿할 때가 있는데 이런 가사들 때문이다.

이 넓은 세상에 혼자인 것처럼
아무도 내 맘을 보려 하지 않고
아무도

웃는 사람들 틈에 이방인처럼
혼자만 모든 걸 잃은 표정
정신없이 한참을 뛰었던 걸까
이제는 너무 멀어진 꿈들

이 오랜 슬픔이 그치기는 할까
언제가 한 번쯤 따스한 햇살이 내릴까

버스 정류장에 언젠부터인가 '투명인간' 할아버지가 앉아있다. 앙리 할아버지는 마치 정류장의 한 부속품이 된 듯 언제나 거기에 있었고, 아무도 돌아보지 않았다.

거기에 아기 코끼리가 바람을 피해 들어왔다. 아기 코끼리 또한 '투명'이었다. 그 둘만 서로를 알아보았다. 할아버지는 아기 코끼리가 걱정되어 모처럼 작심하고 마을로 들어갔다. 집집마다 다니며 물었다. 당연히 돌아오는 건 냉대와 험한 말들 뿐이었다. 둘은 다시 정류장으로 돌아왔다.

아무것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하지만 작가는 할아버지의 삶이 달라졌음을 표현하려고 애쓴다. 바로 끈질기게 따라다니던 '외로움'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마음만 달라진 것이 아니고 결말에 가면 상황도 많이 바뀐다. 할아버지는 더이상 정류장에 없다. 마지막 장면은 할아버지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정류장에 앉아있는 것을 비추고 끝난다. 독자들은 그림엔 없지만 다른 곳에 있는 할아버지를 상상하며 끝날 것이다.

외로움은 인간에게 기본값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또 적당한 외로움은 그냥 즐기(?)는 편이지만 이게 나의 교만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한마디로 배가 불러서 호강에 겨워 하는 생각이라는 거다. 완벽한 외로움 앞에서 나는 공포에 떨 것이다. 지푸라기라도 붙잡으려 할 것이다.

언어를 몰라서 잘은 모르겠지만 원제는 그냥 <버스 정류장>인 것 같은데, 제목 번역을 이렇게 한 것은 주제를 제목에 담으려는 의도로 보인다. (걍 너무 밋밋해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한 외로움과 다른 외로움이 만나면 더하기(+)가 아니라 빼기(-)가 되는 마법. 사회를 이루는 모든 존재들의 공통적인 공식이 아닐지.

오늘도 외로움과 외로움이 눈이 맞아,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마법이 곳곳에서 일어나길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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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의 마음 사계절 만화가 열전 12
소복이 지음 / 사계절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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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기말에는 학급 아이들과 쉽고 편한 독서를 해보고자 도서실에서 만화 바구니를 구성해왔다. 국어 마지막 단원의 텍스트가 만화인데, 몇장면만 제시된 만화로 수업을 하느니 전체를 제대로 읽게 하고 성취기준에 맞는 활동을 시키는 게 좋을 것 같아서다.

'**남매' 류의 가만 둬도 너덜너덜해지는 만화들은 다 빼고, 그래픽노블들과 남동윤 작가님 만화들을 주로 담았다. 그러다 이 만화를 발견했다. 수많은 어린이책에 그림을 그린 소복이 작가님의 만화네? 나온지도 꽤 됐고... 그런데 어린이용은 아니구나. '사계절 만화가 열전' 시리즈의 한 권이네. 시리즈를 검색해보니 옛날에 읽었던 책들도 있다. 최규석 작가님의 '울기엔 좀 애매한' 등등. 시리즈 중에선 소복이 작가님의 이 책이 그래도 전 연령 가능한 만화인 것 같다.

'소년의 마음'이라는 제목이 평이하면서도 특별하다. 이 소년은 불특정 누군가일 수도 있지만 바로 '그 아이'일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읽는 사람의 마음은 얼마나 아플까. 맨 뒤 작가의 말을 읽어보니 모델은 바로 작가님의 남동생이었다. 아마도 그 남동생은 좋은 어른으로 잘 자랐을 것이다. 하지만 외로움과 서러움에 잠겨있던 시간들은 위태로웠지.... 누구나 이 위태로운 다리를 건너 '무사히' 어른의 세계에 도착한다. 어른의 세계 또한 위태로움 투성이라는 것이 함정이지만......

소년이 작은 상을 펴고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는 곳은 문이 두 개 있었다. 문이 두 개인 방? 이라고 생각하려다보니 이곳은 거실이었다. 방이 두개인 작은 집에서 소년의 방은 없다. 방 하나는 부모님이, 하나는 누나들이 쓴다. 부모님은 늘 싸우고, 누나들은 자기들끼리 논다. 소년은 자기만의(?) 이 자리에서 계속 그림을 그린다. 부모님이 싸울땐 소를 그리고, 죽음이 두려워질 땐 말을 그리고, 깜깜한 밤이 무서우면 새를 그리고.... 그 동물들은 방을 가득 채웠다가도 어느순간 빠져나간다.

소년이 눈물을 후두두둑 떨어뜨리며
".....엄....마,
어차피 다 죽는데....
나를....
왜 낳았어?"
라고 묻는 장면에서 가슴이 철렁했다. 하지만 화가 난 채로 폭풍 집안일을 하던 엄마의 화를 더 돋구었을 뿐이었다. 이 부모는 싸우지만 특별히 나쁜 사람들 같진 않았다. 싸우는 평범한 사람들일 뿐....ㅠ 아이는 할머니를 그리워한다. 아이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드라마를 보던 할머니. 유일하게 따뜻한 품이던 할머니는 죽어서 땅에 묻혔다. 아이의 두려움의 근원인 것 같다.

하지만 두려움에서 시작된 아이의 상상이 결국 아이를 구해냈다는 생각이 든다. 물고기를 잔뜩 그린 어느 밤 거실은 바다가 되었고, 자유롭게 헤엄쳐오는 할머니를 만난다. "난 할머니가 죽은 줄 알았어. 아니었구나~" 기뻐하는 아이에게 할머니는 말한다.
"할머니는 죽었지."
아이의 폭풍 눈물은 한참동안 이어진다. 할머니는 "나는 네 눈썹 사이에 있어. 내가 제일 귀여워했던 콧구멍 속에 있고...."로 시작되는 말로 아이를 위로한다. 아이가 그렸던 동물들이 나타나 한바탕 신나게 논 뒤 할머니는 다시 바다를 헤엄쳐 떠난다. 아이를 한참동안 꼭 안아주고.

바닷물이 다 빠져나간 집안에 아이 혼자 깨어 있다. 울다 잠든 엄마의 눈물을 닦아주고, 탱크 코골이를 하는 아빠의 코를 꽉 집어주고, 그리고 창문을 열어 작별의 손을 흔든다. 상상 속의 모든 것들에게....

가장 어린 막내의 마음 속에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나는 동안 가족 누구도 그것을 알아주지 못한다. 그냥 그림을 잘 그리네. 신통하네. 그정도였을 것이다. 아무도 모르는 동안 아이는 아팠고 아픈 만큼 자랐던 것 같다.

그러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먹먹하다가도 가라앉는 이유다. 누구나 위태위태한 유년의 다리를 건너 어른이 된다. 하지만 그 다리가 갈수록 더 위태로워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요즘 아이들이 그 다리를 건널 수 있을까? 가다가 떨어져 버리거나 아예 발도 떼지 못하고 유년의 자리에 주저앉을 것 같아 불안해지는 내 마음. 이 마음이 괜한 기우였으면 좋겠다. '소년의 마음'은 이렇게 스스로 단단해질 수 있다고 믿고 싶다. 다만, 때로 머리를 쓰다듬는 '할머니'의 손길은 있어야겠지. "나는 언제나 네 곁에 있어." 라는 확신을 주는 그 한 존재.

우리반에 지적장애에 가까운 한 아이가 있는데.... 그 아이가 고집을 피우면 아무도 못말리며, 역시 지적으로 약하신 아빠만을 무서워한다. 교실을 탈출하면 아빠한테 알려야 한다고 하자 아이는 복도 바닥에 주저앉아 대성통곡했다.
"아빠한테 말하지 말라구요. 나는 사라져 버리고 싶다구요. 엉엉엉"

이 소년의 상상과 위로가 그 아이의 마음 속에도 일어날 수 있을까. 어차피 인생은 혼자야. 너무 서러워 마라. 상처엔 딱지가 앉고 혼자 아물기도 한단다. 그렇게 어른이 되어라. 그래야만 되는데 그래야지 별수가 있겠니. 다만 너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옆에 있길 바랄 뿐.

인간은 태어나면 어찌어찌 살아내는 존재인 것 같기도 하고, 온 우주가 도와야만 겨우 버틸 수 있는 존재인 것 같기도 하다. 부디 전자였음 한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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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제 손 지우 작은 책마을 53
최도영 지음, 최민지 그림 / 웅진주니어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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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읽은 책 중에 평이 좋은 두 권의 단편집이 유독 내게는 별로였다. 내가봐도 훌륭한 책이긴 했는데 마음이 가지 않는다고 할까.... 훌륭하지만 좋지는 않은....^^;;; 작품에서 겨누는 무언가에 내가 들어있는 느낌이어서 그런 걸 수도 있고, 서늘한 느낌 자체를 별로 안 좋아하는 나의 취향 탓일수도 있다. 근데, 이 단편집이야말로 정확히 나를 겨누고 있는데? 그런데 난 웃고 말았다. 머리를 긁적거리며. 아 미안해 미안해, 조심해야겠네.^^ 이런 느낌으로.

 

저학년용 얇은 단편집인데 작가 이름을 보니 몇 년 전 학급 아이들과 재미있게 읽었던 <레기, 내 동생>이라는 수상작의 작가님이어서 꺼내들게 되었다. 검색해보니 그 책만큼 팔리는 책은 아닌데, 읽어보니 내 느낌으로는 뒤처지지 않는 작품이었다. 어른들의 말 한마디가 어린아이들의 마음속에 퍼지는 파장을 실감나게 그려낸 작품들이다.

 

[파마 임금님]의 화자는 1학년 수호다. 오늘 태어나서 처음으로 파마를 하는 날이라 신이 났다. 그런데 얄미운 아랫집 동생 영교도 같이 한다는 거다. 영교는 수호보다 야무지고 똘똘하다. 더 얄미운 건 본인도 그걸 알고 으스댄다는 거다. 영교 엄마는 아닌 척하면서 웃음을 깨물고 수호 엄마는 열받아서 얼굴이 일그러진다.

 

저런 일들은 다 비교때문에 일어나는 거다. 비교는 인간의 본성인 건가. 나도 아동기와 청소년기를 열등감으로 많이 낭비했다. 지금도 능력있는 남들을 많이 부러워하긴 하지만 그냥 부러울 뿐이지 나를 들볶지는 않는다. 우리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부러움과 은근한 으쓱함 모두를 경험한 것 같다. 키우고 나니 모두 부질없던 그 감정들을....

 

파마는 멋진 미용실이 아닌 야매 아줌마 집에서 하게 됐다. 야매 아줌마는 파마 도구를 아이들한테 집어달라고 말하면서 형이 잘하나, 동생이 잘하나, 한번 봐야지.” 라고 하는게 아닌가. 영교는 신이 나고 수호는 움츠러드는 순간이다. 학교에서도 이런 일이 빈번하다. “몇 반이 더 잘하나 볼까요.” “누가 더 잘하나 볼 거예요.” 이 말은 아이들의 허리를 단번에 꼿꼿이 하는 효과가 있지만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나는 이제 이런 말을 거의 하지 않게 됐다.

 

파마를 하는데 똘똘한 영교는 역시 아줌마 마음에 들었고 어설픈 수호는 역시나 어설픈 티를 냈다. 아줌마는 굳이 동생이 더 똘똘하네.”라는 말을 하고 말았고 엄마는 또 열을 받았다. 심통이 난 수호는 파마도구들을 휘젓는데, 여기서부터 판타지! 파마 임금님들이 나타난 것이다. 수많은 이들이 다 임금님이라니, 이해할 수 없는 수호가 외쳐 묻는다.

무슨 임금님이 이렇게 많아요? 임금님은 하나여야죠!”

이것이 우리가 가진 서열고정관념이다. 서열은 존재하고 그 우위를 점령해야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위가 있으면 아래가 있는 법. 아래에 있고 싶은 사람은 없다. 그러니 사회는 무한 경쟁, 그 연령은 점점 더 낮아져.... 킬러문항만 없앤다고 될 일인 줄 아나? (앗 너무 많이 나갔네ㅠㅠ)

 

파마나라 임금님들은 수호가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었다. 수호가 원하는 회오리파마를 해주었고, 영교에게는 촌스러운 버섯머리를, 엄마와 아줌마들한테는 사자머리를 해주었다. 그런데 마지막에 수호는 이런 말을 하고 말았다.

파마만 하는 임금님은 시시해요.”

슬픈 얼굴이 된 임금님들은 파마를 다시 풀어놓는데, 마지막 순간에 수호가 붙잡는 바람에 결국 파마는 유지된 채로 마법은 끝났다. 이걸 보면, 상처를 주는 쪽은 늘 어른인 것은 아니다. 아이도 어른한테 상처를 준다. 그 두 가지 모두 괜찮지 않다. 어른들은 절대 강자이고 절대악이며 아이들은 절대약자이고 절대선이고. 그렇지는 않다는 뜻이다. 피차 돌아보고 고칠 것은 고쳐야 한다. 물론 더 많이 산 어른들이 더 노력해야 하는 것 분명하지만.

 

표제작인 [숙제 손 지우]에서 직장에 다니는 지우 엄마는 바쁘다. 방과후 순례를 하다가 지우가 집에 오는 시간은 5시 반, 엄마가 퇴근하고 들어오는 시간은 6시 반이다. 둘 다 지쳐 쉬어야 할 시간이지만 지우에게는 숙제가, 엄마에게는 집안일이 있다. 엄마는 집안일을 하며 쉬지않고 지우한테 숙제타령을 한다. 지우의 엄살과 투정은 무시되기 일쑤다. 아이의 엄살은 때로 다독임이 필요하지만 엄마는 그런 마음의 여유가 없다.

 

나 또한 엄마로서 교사로서 이렇게 여유가 없던 순간이 많았다. 특히 징징거림을 몹시 싫어하는 성격이라 받아주지 못한 순간이 많았을 거라 짐작한다. 지우는 힘없이 책상 앞에 앉았다가 입이, 다리가, 하나씩 없어지기 시작한다. 결국 손만 남는다. 숙제를 하는 손. 바로 제목인 숙제 손 지우.

 

결국 지우가 제 모습으로 돌아온 건 엄마의 이 혼잣말이었다.

숙제가 다 무슨 소용이람. 깜깜해질 때까지 난 저녁도 안 먹이고 뭐 했니..... 배고플 텐데 얘는 어디로 사라진 거야....”

내 아이들 다 키운 교사로서 엄마들한테 부탁하고 싶은 말이 있다. 아이들 밥에 진심이셨으면 좋겠어요. 밥이요.... 그게 되게 중요해요. 밥 좀 정성껏 차려 먹이세요. 아침도 꼭 먹이시구요.

그리고 교사로서 자기변명을 하자면, 나는 숙제를 거의 내주지 않는다. 요즘 학교 교사들은 거의 그렇다. 이 책처럼 매일매일 엄마가 저렇게 잔소리를 할 만큼 숙제가 있지 않다. (다 그렇다고 장담은 못하겠지만) 그래서, 엄마가(또는 아빠가) 차린 제대로 된 밥을 아이들이 꼭 먹으면서 자랐으면 좋겠다. 그 속에 들어있는 것은 단순한 영양소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요즘 사람들은 모두 바쁘고, 그러니까 할 일에 우선순위를 둘 수밖에 없겠지만, 내 주장은 밥이 그 우선순위에 든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크는 동안은.

 

[맞혀 맞혀 다 맞혀]에는 어린 시절의 내가 들어있다. 운동을 심하게 못했던 나. 피구 하면 일등으로 맞고 나가는 나. 공이 오면 받을 생각도 못하는 나. 그래도 나 때는 깍두기라는 것이 있어서 친구들이 많이 봐줬는데, 내가 요즘 아이라면 상처를 많이 받고 자랐을 것 같다. 이 책의 다해는 에이, 그걸 못 맞혀?” 라는 선생님이 한마디에 기가 죽는다. 아이가 듣고 싶었던 말은 그럼~! 잘 못하면 어때” “못해도 괜찮아.”라는 말이었다. 결국 선생님께 그 말을 듣고 회복되는 다해. 노력해서 극복하는 것도 좋은 일이고 필요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어때~ 괜찮아.” 라는 여유를 갖는 것도 필요하다. 내가 운전을 포기했을 때 어떤 분이 , 선생님보다 띨띨한 사람들도 다 해요. 공부도 잘했는데 왜 그걸 못해.” 라고 해서 우울했지만.... 그냥 뚜벅이 생활에 만족하니까 가끔 불편한 때를 빼놓고는 괜찮다.ㅎㅎ

 

이 책에 공감했던 건 어쩌면 지금의 나가 아닌 내 안의 어린 나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어린이들은? 이 책을 좋아하지 않을까? 나처럼 어딘가 부실한 아이들만 공감하려나?ㅎㅎ 어쨌든 기회가 된다면 같이 한 번 읽어보고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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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정의 물음 - 이집트 편 이야기 산타 세계 일주 1
송언 지음, 소복이 그림 / 종이종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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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책 때문에 도서관에 갔다가 무심코 신간코너를 쳐다보는데 이 책이 눈에 띄었다. 오, 송언 선생님 책이 나왔네? 꺼내보니 옛이야기책이다. 세계 옛이야기.

송언 선생님이 현직에 계실 때는 털보 선생님과 그 반 아이들이 만들어가는 교실 이야기가 주로 나왔었다. 지금도 송언 작가님 하면 그 책들이 우선 떠오른다. 마법사 똥맨이나 김 구천구백이 류의 책들. 그런데 퇴직을 하시고나선 교실소재 동화는 딱 끊겼다. 난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교실에 몸담고 있지 않아도 교실 이야기를 쓸 수 있다. 하지만 작가님은 다른 흐름을 선택하신 것 같다.

그 흐름은 '옛이야기'인 것 같다. <이야기 숲에는 누가 살까?> <이야기 똥 여우> 같은 창작우화나 기존의 고전들을 재화한 책들이 주로 나왔다. 그리고 이번엔 세계 옛이야기! 종이종이라는 처음보는 출판사에서 '이야기산타 세계일주'라는 시리즈로 나오고 있다. 나라별로 나오는 것 같다. 이 책이 첫 권이며 나라는 이집트다. 뒤의 권들은 아직 보지 못했지만 영국, 인도, 노르웨이 순으로 이어지고 있어 기대감을 준다. 2학기 학교도서실 수서때 이 시리즈를 다 신청해서 갖춰 놓아야겠다. 필요할 때가 있을 것 같다.

예를 들면 2학년 2학기 통합 <겨울> 교과서에는 '두근두근 세계여행'이라는 단원이 있다. 음식, 의상, 집, 놀이 등 다양한 영역에서 세계 여러나라를 살펴본다. 옛이야기 영역이 교과서에 딱 나오진 않지만 담임 재량으로 충분히 다룰 만한 영역이다. 이 시리즈 말고도 기존에 나온 책들이 있으니 (많지는 않음) 함께 모아서 살펴보고 여러가지 활동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씩 소개한다든가, 그림으로 그려본다든가, (그림으로 그리고 소개한다든가^^), 모둠별로 한 나라씩 정해서 연극으로 표현한다든가 (정식 연극은 어렵고 낭독극 정도가 좋을듯). 진행하다가 우리 옛이야기와 비슷한 화소들을 만나면 비교도 해볼 수 있고. 그러면 비교문화까지 나아가는 것 아닌가? 아 꿈이 너무 원대하다.ㅎㅎ

게다가 이 시리즈는 송언 선생님과 소복이 작가의 콜라보 작업이어서 더 친근하며 눈에 띈다. 많은 어린이책에 작업을 하신 소복이 작가님의 그림은 이제 책에 재미와 접근성을 더 높여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이야기 산타'라는 설정도 아주 효과적이다. 그림을 보니까 떠나가신 털보선생님이 산타로 돌아오신 것?ㅎㅎ 산타는 루돌프에게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 줄 선물 어디 없을까?"라고 묻는다. 아이들은 너무 바쁘거나 핸드폰에 코를 박고 있거나.... 그때 루돌프는 이렇게 대답한다. "이야기 선물 어때요?" 그렇게 해서 산타와 루돌프는 이야기 보물을 모으러 세계로 다닌다는 설정. 괜찮지 않은가?^^

이 첫 권은 이집트에서 모아온 다섯 편의 이야기다. 송언 선생님이 재화를 잘 하셨는지 무지한 내가 알 수는 없으나, 잘 하셨겠지 뭐! 이집트의 이야기는 평소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꽤 재미있었다. 모든 나라의 이야기에는 길을 떠나고, 모험을 하고, 다시 돌아오는 공통된 패턴이 자주 들어있다. 그 과정에서 남을 돕는 자들이 복을 받고, 악한 꾀를 쓰거나 남의 불행을 모른체 하거나 민폐를 끼치는 자들이 벌을 받는 권선징악의 요소도 자주 나온다. [모르간의 딸, 룰리야] 라는 이야기에선 '라푼젤'을 연상시키는 화소가 나와 그 점도 재미있었다.

'이야기산타' 라는 설정과 같이, 이야기가 어린 나이부터 삶에 지친 이 사회의 아이들에게 선물이 된다면 좋겠다. 뭣이 소중한디? 그게 이야기 안에 다 들어있는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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