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돌떠돌 떠돌 씨
신은숙 지음 / 미세기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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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션이 참 중요하긴 하다. 특별히 작정한 책을 보러 간 게 아니라면 일단 큐레이션 해놓은 책에 눈길이 먼저 가기 마련이니까. 그러니 치우치지 않게 좋은 책들을 골라내 진열하는 일은 어찌보면 무거운 일이기도 하겠다.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책들이 저마다 "나도 한번 저 자리에 앉아보고 싶다." 하지 않을까? 제대로 눈에 띄지도 못하고 수명을 다하는 책들은 얼마나 많을까.

이 책 또한 그렇게 놓여있었고 재밌어 보여서 대출해오게 됐다. 일단 제목부터가. '떠돌' 씨는 누구일까? 이름에 정체성이 다 들어있긴 한데.^^ 이 주인공은 돌멩이다. 오랜시간 강가의 흔한 돌멩이로 놓여있었다. 그러다 예기치못한 누군가의 발길질(헛발질?)로 그곳을 떠나게 됐다. 인생의 결정적 순간은 그렇게 뜻밖의 순간에 온다.

드디어 이름에 걸맞는 인생이 시작되었다. 떠돌 씨는 이리저리 굴러 세상의 반을 떠돌아다녔다.
"요래요래 댕기 싸면 세계 일주도 하겠구먼."
아마도 충청도인 것 같은 이런 말투를 가진 떠돌 씨.
그러다 뭔가에 부딪치는데, 이 순간이 또 그 인생의 결정적 순간이다. 만남의 순간이기도 했다. 부딪친 상대는 작은 나무였다. 작은 나무는 엄살이 다소 있었고 떠벌떠벌 재잘재잘 말이 많았다. 둘은 함께 있는 시간들이 좋았다. 그래서 떠돌 씨는 떠돌기를 멈추고 '머물기'를 한동안 하게 됐다.

그러는동안 작은 나무에겐 변화가 있었다. 어린 나무였으니 당연히, 쑥쑥 자랐겠지? 그러는 동안 떠돌씨의 몸에는 이끼만 꼈다. 현타가 온 떠돌 씨는 잠 못 자고 고민한다. 그리고 결심했다.
"작은 나무야, 나가 지금 떠날 때여!"
아직도 요기랑 요기가 아프다며 눈물을 떨구는 작은 나무를 두고 떠나는 장면에서 난 어린 왕자가 별을 떠나던 장면이 떠올랐다. 어린왕자와 마찬가지로, 누구나 떠날 때는 떠나야 한다. 아파도. 그때를 놓치면 어그러지는 게 많다.

떠돌 씨의 떠돌기는 재개되었다. 산과 들과 도시, 온세상을 다 돌아다녔다. 그런데 이상했다. 마음이 계속 허전한 거야. 갈수록 더.

생각에 잠겼던 떠돌 씨는 어느순간 홱 돌아섰다. 어디를 향하는지는 어느 독자나 짐작할 것이다. 둘은 처음과 비슷하게 재회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작은나무가 더이상 작은 나무가 아니라는 점. 하지만 재잘재잘은 여전했다. 떠돌 씨가 떠도는 이야기는 더이상 나오지 않고 여기서 끝이다. 떠돌 씨는 이제 '정착'을 하려는가?

mbti는 두가지 상반된 요소 4쌍을 두고 어느 쪽 경향에 치우치는지로 유형 판단을 한다. 그런 식으로 [여행-정착]을 넣는다면 당신은 어느 쪽입니까? 나는 거의 98퍼 '정착'이다. 떠도는 삶은 나에겐 맞지 않아. 힘들어. 하지만, 그게 또 뜻대로만 되는 것은 아니다. 인생의 예기치 못한 순간이 내 등을 강하게 떠밀 때가 있으니까. 그런가 하면 내가 결단해야 할 순간도 있다. 그 두가지가 모여 인생이 되는 것 같다.

떠벌 씨와 작은 나무의 행복을 빈다. 이 책은 캐릭터도 귀엽고 문장도 유머가 있어 아이들도 재미있게 볼 것 같지만 청년들이나 어른들이 읽고 인생을 이야기하기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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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없는 편지 서유재 어린이문학선 두리번 19
백혜진 지음, 정은선 그림 / 서유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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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역사동화를 한권 읽었다. 전에는 나오는 역사동화들을 거의 따라가며 읽었는데 요즘은 워낙 풍성하게 나오니 언제부턴가 놓쳐버린지 오래다. 그래도 가끔 한권씩 읽는다.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은 위인전에 수록된 분들부터 이름없이 조력하다 조용히 사라져간 사람들까지 다양할 것이다. 아마도 많았겠지만 우리는 그들을 알 수 없다. 작가는 그이들 중 일부를 역사적 상상력으로 되살려 놓았다. 표지처럼 밝고 희망차면서도 그당시엔 어둡고 참혹했을 그런 이야기다. 많은 것을, 특히 목숨을 잃었어야 했던 당시의 상황들.

작가는 흥미로운 요소들을 꽤 많이 배치했다. 일단 제목인 '글자 없는 편지'. 일본 순사들에게 끌려갔다 시신으로 돌아온 아빠는 딸 아란이에게 편지를 남겼는데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은 흰 종이였다. 아란이가 그 비밀을 깨우치고 결국 내용을 읽어내는 과정이 어린이 독자들에게 매우 흥미로울 것 같다.

궁내 과원이라는 배경도 새롭다. 단짝인 아란이와 명이는 아빠들이 다 궁내 과원에서 일한다. 덕분에 표지처럼 화사한 자연의 느낌을 자주 맛볼 수 있다. 하지만 한명은 대의를 쫓다가 모든 걸 잃었고, 한명은 실리를 쫓다가 떡고물을 꽤나 챙겼다. 그 대의는 '나라'이다. 이건 매우 오래전부터 다루던 가치이기도 하다.

"아란아, 나라가 제대로 살아있지 못하면 그 나라에 발 디디고 사는 우리도 설 자리가 없는 거야. 아란이와 아빠처럼 나라와 우리는 절대 떨어질 수 없는 사이거든. 운명을 같이 한다고 해야 할까? 지금 당장 편하게 나 살길만 찾는 건 어리석은 거야. 나라가 있어야 나도 있는 거니까. 과원의 나무들도 봐봐. 기름진 땅이 있고 흙이 있어서 나무와 꽃이 거기에 뿌리 내리고 튼실히 자라잖아. 나라는 우리한테 이 땅과 같은 거야." (42쪽)

지금은 나라를 뺏긴 상황도 아니지만 아빠의 말씀은 여전히 통하는 면이 있다. 좋은 나라에서 산다는 것은 그만큼 행복의 기반이 넓어지는 일이다. 그 '좋은' 이라는 기준이 매우 다양하긴 하지만 말이다. 그러므로 국민들은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관심을 갖고 동참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게 참 어렵긴 하다. 지금처럼 엉망진창인 상황에서도 뭘 해야될지 모르겠으니 말이다.ㅠ

단짝 두 친구 외에 장에서 댕기를 파는 수임이라는 아이도 이야기에 색을 더하는 인물이다. 특히 수임이가 직접 염색을 하는 (물들이는) 인물이고 이걸 아란이에게 전수해 준다는 것도 작가가 의도적으로 넣은 장치인 걸로 보인다. 물들인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보기 위해서. 결국 두 아이는 아빠가 못하고 떠난 일에 용감히 나서게 된다.

너무나 위험한 일을 하는 과정에서 위기와 절정이 살짝 비현실적으로 해결된 것 같은 아쉬움이 내게는 있었다. 이건 보기 나름일 것 같다. 이 아이들이 한 일이 마지막에 어떤 역사적 사건으로 연결되는 장면은 흥미로웠다.

과거사에 너무 집착하는 것도 찬성하진 않지만 기억과 성찰은 필요하다고 본다. 이 책은 중학년 이상의 아이들이 주인공들을 응원하며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역사동화라고 생각된다. 그 과정에서 정의로움의 편에 서는 일의 가치, 나라라는 기반을 잘 지켜야 할 필요성 등을 선명하게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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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코끼리 스콜라 어린이문고 42
김태호 지음, 허지영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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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호 작가님의 신간이 나오면 챙겨보는데, 마침 서평 기회가 떠서 운좋게 신청했다. 의미와 상징이 풍부하면서도 흥미진진한 이야기였다. 그러면서 느낌은 아주 보드라왔다. 이 책의 표지가 그 느낌을 잘 잡았다고 생각한다. 크림이 들어간 듯한 분홍, 노랑, 민트색에 귀여운 그림. 가운데에 제목의 달코끼리가 흰색으로 그려져 있다. 얘는 어떤 존재일까.

 

호수로 둘러싸인 호반시의 아파트 아래위층에 사는 두 아이가 주인공이다. 보미 엄마 정민 씨는 덤프트럭 기사고, 다움이 엄마 강해라 씨는 놀랍게도 호반시의 시장이다. 보미 엄마는 남편을 잃고 혼자 일하며 바쁜 중에도 아이들을 챙기는 편이지만 시장 강해라 씨는 대외적인 일에 정신이 팔려 아들과의 소통은 뒷전이다. 그럴수록 보미 모녀와 다움이는 더 가까워진다.

 

늦겨울의 한파가 찾아온 날, 두 아이는 공원에서 강아지로 보이는 생명체를 발견했는데, 눈에 뒤덮여 꽁꽁 얼어있었다. 살아있기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고, 찾아간 동물병원의 의사도 이미 늦었다고 했다. 하지만 보미는 집으로 데려와 간절한 마음으로 마사지를 해주는데... 놀랍게도 생명체는 조금씩 숨을 쉬며 움직이기 시작했고, 더더욱 놀랍게도 강아지가 아니라 코끼리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아주 작은 강아지만한 하얀 코끼리. 이름은 달코가 되었다.

 

코끼리는 1톤 정도까지 크며 엄청 많이 먹어서 기를 수 없다는 정민 씨의 말에도 아이들은 달코를 놓을 수 없다. 그러던 중 차기 당선을 위한 업적을 세우고자 하는 강해라 시장, 그 뒤에서 그보다 한술 더 뜨는 부시장, 권력에 부역하는 수의사 등등 많은 어른들이 달코에게 눈독을 들이고 자신들의 권력과 부를 위해서 달코를 가두고 이용한다.

 

여기에 맞서기 위해 온갖 지혜를 짜내고 행동하는 건 아이들. 그리고 모든 어른이 나쁘지는 않으니 아이들의 조력자들도 있다. 보미 엄마 정민 씨와 외할아버지, 또다른 수의사 등. 달코는 지금 처한 처참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달코는 작가가 만들어낸 특별한 캐릭터다. 코끼리라고는 하지만 일반적인 동물 코끼리는 아니다. 인간의 횡포에 무력하게 당하기도 하지만 아주 대단한 능력을 갖고 있기도 한 달코. 작가는 지구, 혹은 자연을 달코라는 캐릭터로 형상화한 것이 아닐까. 달코는 소생의 능력을 갖고 있었다. 달코가 함께 있던 밭의 양배추가 싱싱하게 살아나고, 벚꽃이 환하게 피어나고, 달코를 끌어안고 한잠 주무신 할아버지는 독한 감기에서 몸을 일으켰다.

 

귀엽고 하얀 달코가 거대한 회색 코끼리가 되어가는 과정은 안타깝고도 긴박했다. 부시장의 욕심과 못된 수의사를 통해 성장 호르몬 주사를 과하게 맞는 장면, 온갖 폐기물들이 먹이로 주어지는 장면 들은 바로 연상되는 것들이 있다. 그러나 이 책은 결국 악의 무리에게 맞서 어린이들과 조력자들이 이기는 것으로 끝맺는다. 동화다운 결말이다. 그래서 달코는 죽지 않았고, 지금은 여전히 작은 강아지처럼 뛰어다니고 있다. 거대한 코끼리였던 기억은 코끼리 똥산에 남겨둔 채.

 

사랑스럽고 보드라운 희망이 담긴 이 책을 아이들과 읽으며, 희망의 길을 탐색해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우리의 달코를 괴롭히는 일은 우리 모두가 하고 있으니까. 귀여운 달코가 평화롭게 뛰놀수 있게 하는 일 역시 모두의 책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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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핀섬의 기적 - 학교도서관저널 4월호 도서추천위원회 추천 도서 봄날어린이문고 1
마이클 모퍼고 지음, 벤지 데이비스 그림, 김선희 옮김 / 봄날의곰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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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모퍼고의 신작이 보여서 대출해왔다. 원작은 2020년에 발표됐고 국내에서는 작년에 출간됐다. 노년 작가의 생산력이 대단하신 것 같다. 읽어보니 작가를 모르고 읽었어도 이거 ‘마이클 모퍼고 작품 느낌인데?’ 했을 것 같다. 기존 작품들의 느낌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 소재도 겹치는 부분이 있지만 어떤 것들은 매우 새롭다.

마이클 모퍼고의 작품은 주제가 무겁고 배경과 소재의 스케일이 매우 크다. 주로 전쟁이 배경으로 나온다. 그리고 작품마다 운명적인 만남이 나오고 그들의 사연이나 행동을 통해 인류애를 일깨워준다는 점도 대체로 공통적인 특징이다. 어린이용 동화책이고 두껍지도 않은 편인데 늘 이런 내용을 담는다는 점이 놀랍다. 그러면서도 재밌다는 점. 국내에선 잘 안 팔리는 걸 보면 나만 그런가 싶기도 하지만.^^;;;

이 작가를 좋아하게 된 계기가 되었던 작품 <켄즈케 왕국>을 연상시키는 장면들이 꽤 있다. 주인공이 어릴 때 항해를 하게 됐고, 큰 파도를 만나 난파됐고, 노인의 도움을 받았다는 점 등이다. 디테일은 많이 다르다. 앨런은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사고로 잃고, 앞날이 막막해진 엄마와 함께 할아버지(아버지의 부모님) 댁으로 가던 길이었다. 난파선에 탔던 사람들은 다행히 큰 바위에 모두 뛰어내렸지만 그 바위는 육지와 멀었고 파도가 곧 그들을 모두 삼킬 상황이었다. 이때 인근 작은 섬(퍼핀 섬)의 등대지기 벤저민 씨가 작은 배를 노저어 그들을 구하러 왔다. 30명을 모두 자기 섬으로 옮긴 등대지기는 아무 말 없이 그들에게 따뜻한 차를 끓여 주었다.

그는 거의 입을 열지 않을 정도로 과묵했고 집안 곳곳에 직접 그린 그림들이 놓여있는 것으로 보아 그림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구해준 승객들이 구조선을 타고 떠나던 날, 아저씨는 앨런에게 말없이 그림 하나를 건네주고 돌아갔다. 앨런이 계속 눈여겨보던 바다와 배 그림이었다.

이후 앨런의 유년기와 청소년기는 외롭고 괴로웠지만 아저씨와 그 그림을 하루도 잊지 않고 살았다. 엄마 입장에서 보면 남편을 잃고 시댁에 들어가서 살게 된 셈인데, 조부모들은 조금도 다정하지 않았고 앨런의 가정교사는 최악이었다. 그나마 엄마와 조금씩 다정함을 나누며 살았지만 청소년기는 홀로 기숙학교에서 보내게 되었다. 여기서도 앨런에게 친절한 사람은 없었다.

도서관에서 책을 찾던 앨런은 우연히 오래된 잡지를 넘겨보게 되는데, 거기서 12년을 마음에 품고 살던 그를 보게 된다. ‘등대지기 영웅, 훈장을 거부하다’ 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그들의 이야기가 그 잡지에 기사로 실렸던 것이다.
”나는 할 말이 없어요. 그저 내 일을 했을 뿐이에요. 구해야 할 목숨이 있었어요. 그뿐입니다. 생명은 훈장이라든가 뭐 그런 것과 아무 상관이 없어요. 훈장은 그냥 가져가세요. 이제 가세요. 나를 그냥 내버려 두세요. 나는 등대를 살펴봐야 합니다.“ (46쪽)

앨런은 아저씨에게 편지를 보냈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 졸업과 동시에 앨런은 ‘세상을 둘러보고 오겠다’는 인사와 함께 엄마를 떠났다. 앨런이 향한 곳은 바로 퍼핀 섬이었다. 가면서 들은 소식은 좋지 못했다. 등대가 폐쇄되었고, 역할이 없어진 벤저민 씨는 혼자 섬에 틀어박혀 거의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섬에서 나올 방법도 기약을 못한채로 앨런은 섬에 들어갔고 아저씨와 재회했다.

아저씨는 앨런이 두 번째 손님이라고 말했다. 첫 번째 손님은 다리를 다친 퍼핀이었다. 이름만 퍼핀 섬이던 그곳에 퍼핀이 왔지만 더 이상 불이 켜지지 않는 등대에 부딪쳐 다리를 다친 것 같았다. 두 남자, 한 청년과 한 노인은 그 퍼핀을 보살피는 일에 흠뻑 빠져 함께 살아간다. 보통 그렇듯이 헤어짐의 순간은 왔고, 아쉬운 마음을 애써 누르며 그들은 퍼핀을 날려보내 주었다. 그리고 아저씨가 답장을 보내지 못한 것이 글을 모르기 때문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아저씨에게 글을 가르쳐주면서 앨런은 그곳에 더 머문다. 이들도 헤어질 때가 왔다. 때는 2차대전 중. 앨런에게도 소집 영장이 왔다.

전쟁에 대한 묘사는 길지 않았지만 앨런이 엄청난 고초를 겪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그래도 생존했다는 것은 엄청난 행운이 함께한 것이다. 그는 어머니를 찾아갔고, 또 아저씨를 찾아갔다. 다시 찾아간 퍼핀 섬에는 온통 퍼핀들이.... 그게 그들이 이루어낸 기적이었다. 이 책의 원제는 ‘The Puffin Keeper’인데, 번역제목도 잘 지었다고 생각한다.

대도시의 아파트 외에서는 절대 살지 않겠다고 다짐한 내게 무인도나 다름없는 곳에서 살기로 작정한 이들의 이야기는 너무나 신기하게 들린다. 얼마나 불편할까? 소통이 없으니 얼마나 답답할까? 불안하지도 않나? 뭘 하면서 사나? 하지만 두 사람은, 특히 등대지기 아저씨는 말없이 내게 보여준다. 그가 행한 기적을. 그걸 보면서 나는 스스로 묻게 된다. 수많은 연결과 즉각적인 소통 가운데서 진정으로 건져올린 것은 무엇인가, 라고.

마이클 모퍼고는 나이를 비롯한 큰 차이를 극복하고 친구가 된 사람들의 진정한 우정을 자주 보여준다. 주목받지 못한 이들이 행한 귀한 일들을 보여준다. 온 세상을 커다란 체에 올려 흔들었을 때 끝까지 남을 것 같은 것들을 보여주는 느낌이다. 거기에서 내 인생은 어디쯤 해당되는지 돌아보게 한다. 그의 작품의 가치가 여기에 있지 않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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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HD, 틱, 자폐 스펙트럼, 우울증, 느린 학습자도 함께 성장하는 통합교실 이야기
천경호 지음 / (주)학교도서관저널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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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을 읽으며 오호, 이렇게 하면 되는구만. 알겠어, 실시!’ 라면 당장 열 권이라도 읽겠는데, 그럴 수가 없다는 점이 힘든 점이다. 알아야지 할 수 있는 점도 분명히 있지만 아는 걸로 끝이 아니다. 사람을 길러내는 일은, 더구나 어려움을 가진 아이를 길러내는 일은 결국 몸과 마음의 온 힘을 다해야 하는 일이다. 전문성이 있는 사람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천경호 선생님의 기록을 보면서 대단하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앞섰다. 그가 대외적으로 얼마나 많은 역할을 하고 있는지 대충 알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도 부장은 기본적으로 하고 계실텐데 그런 분이 학생 한 명에게 기울인 관심과 노력, 시간을 보며 아이고 난 이렇게 못해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특히 나처럼 마음이 조급하고 여유가 없는 사람은 돌발 상황으로 미리 세워둔 계획이나 루틴이 깨질 때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차분하고 느긋한 눈으로 학생을 쫓아가기 어렵다. 실제로 학교라는 곳이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가지 일들을 처리해야 하는 곳이기도 하고. 여러 역할들이 화살처럼 빗발치는 그곳에서 꿋꿋이 아이 옆에서 천천히 걸어가시는 저자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내겐 다른 게 아니라 그게 가장 존경스러운 점이었다.

 

이제 통합교실은 특별한 사명감이 있는 누군가가 맡아주는 곳이 아니라 아주 일반적인 상황이 되었다. 어떤 이유에선지 학급에 특수교육 대상자나 느린 학습자들이 늘어났다. 특히 정서적 어려움을 가진 아이들이 매우 큰 폭으로 늘어났다는 건 확실히 체감된다. 이런 경향에 대해서 연구가 있다면 자세히 알고 싶다. 어쨌든 이제 모든 교실이 통합교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자는 통합교실이 아니라 그냥 교실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씀에도 동의한다. 예전에 어느 특수교육과 교수님의 강연에서 앞으로 일반교육과 특수교육의 경계는 의미 없어질 것이다.”라는 말씀이 인상적이어서 잊지 않고 있다.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이 바로 그렇다. 앞에서 나는 저자의 학식보다도 마음가짐과 태도를 높이 샀는데 그건 전제와 출발이고, 이제 우린 공부를 해야 한다. 당황하지 않고 맞닥뜨리기 위해서. 이 책은 저자의 그 과정을 담은 교실 이야기이다.

 

1장은 ADHD와 틱을 가진 정모와 함께한 이야기, 2장은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진웅이와 함께한 이야기다. 앞에서 저자의 인내심에 감탄한 것은 모두 이 과정을 보고 느낀 감정이다. 그 과정에서 또 한가지 배운 것은, 학급의 비장애학생들의 관점과 시선을 잘 매만져 주신 점이다. 사실 이같은 아이들과 한 학급에서 지내는 것은 비장애 학생들에게 때로 괴로운 점이 있을 수 있다. 이런 상황에 불평하고 입에서 나오는 대로 내뱉는 아이들이 있는 것도 현실이며, 그건 교사에게 2중의 고통을 안긴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이해하며 보듬어 함께 가려는 마음이 이 사회에 필요한데 그 교육은 가정과 교실에서부터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교사의 처신과 지도는 매우 중요하다. 저자는 그런 점에서도 매우 뛰어났다. 많은 참고가 된다.

 

페친들 중에 글이 참 좋은 분들이 많은데, 그중의 한분이 오늘 우리 안의 우생학이라는 책을 소개하시는 중에 어디선가 인용한 말씀이 확 화닿았다. 우생학적 사고는 공동체를 위해 배제하고 소위 좋은 사람들로 만든 공동체가 더 나은 공동체로 간다는 사고이다. 그러나 인류학적 관점에서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인류가 생존하기 위해선 누군가를 배제하는 집단은 멸종했고 더 많은 수를 포함시키는 집단은 번성했다고 한다. 페친쌤이 그 책을 소개하시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갈수록 배제가 일상화된 이 사회에서 모두를 품고 가는 일의 중요성을 말씀하고 싶으셨던 게 아닐까. 학급의 아이들에게도 이 일이 매우 중요하다. 배제를 아무렇지도 않게 당연시하는 아이들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아이들을 설득할 때는 단호하면서도 매우 섬세해야 한다. 말공부를 오래 하신 저자는 이런 면에서도 강점이 있었다.

 

1년의 고생이 열매로 보일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는 것, 쓸쓸한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것도 우리가 감수해야 할 부분인 것 같다. 기대를 하지 않고 노력만 한다는 건 인간이 되어가지고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적어도 좌절하진 않았으면 한다. 그 열매가 언젠가 맺힐 수도 있고, 안맺힌다 해도 화낼 일은 아닌 것. 가장 적절한 방법을 늘 더듬어 찾으며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 ‘말이 쉽지에 해당되는 일이지만.....

 

3장에 나오는 '아이, 아이, 아이들'은 정말 모든 교실에서 수시로 만날 수 있는 아이들이다. 읽기만 해도 바로 우리반 누구와 줄 그어지는 아이들로 가득하다. 이중 꽤 많은 경우가 경계선지능에 해당하는 학생들이라는 것은 우리가 주의해서 볼 점이다. 처신에는 상황판단이 전제되고, 판단은 인지적인 기능이므로 납득되지 않는 처신을 하는 아이들 중 지적 능력이 부족한 학생이 당연히 있을 수 있겠다. 이런 경우 비난하지 말고 천천히 알아듣게 단계적으로 설명하고 다시 반복하고 확인하고 하는 지도가 필요하다. 경계선 지능의 비율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높다는 것을 알았다. 이들에겐 교육과정을 따라 수업하는 것 자체도 무척 힘겨운 일일텐데 특별한 지원이 있지는 않다. 갈수록 많아지는 다양한 어려움들을 볼 때, 교육부가 과연 천문학적인 돈을 지금 거기에 때려박는게 맞는지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하는 걸 보면 하나 가진 것까지 빼앗아 100에다가 몰아줄 테세다. 제발 정신차리라고 말하고 싶다. 뭣이 중한지 정말 몰라? 알고 싶지도 않지?

 

그 외 입을 열지 않는 아이, 밥을 너무 안 먹는 아이, 반대로 말하는 아이, 이런저런 나쁜 태도를 가진 아이들이 나온다. 딱히 진단명을 붙이기 애매하지만 지도하기에는 극강의 인내심을 요구하는 아이들.... 되도록 이런 아이들을 맡지 않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하지만 저자는 어떤 아이들에게든 다음과 같은 믿음을 잃지 않는다.

인간의 행동에 미치는 요인은 많습니다. 무엇이 지금의 아이를 만들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모든 아이는 자기를 실현하려는 경향성이 있다는 점이요....(중략) 아이들은 누구나 스스로 해내고 싶어 하고, 잘하고 싶어 하고, 타인과 좋은 관계를 맺고 싶어 한다는 걸 이해하고 응원해 주기를 바랍니다....(중략) 차이에 주목하기보다 서로의 인간다움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모두의 마음에 공감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것이 통합교육이 지향하는 바입니다.” (224)

발췌해서 쓰고 읽어보니 역시 말이 쉽지에 해당하는 말처럼 들리네. 하지만 차근차근 걸어서 도달한 문장에서 느끼는 힘은 다르다. 선생님들이 모두 그렇게 이 문장에 도달해보시길 추천하고 싶다.

 

보호자님들이 학교의 권고를 무시하고 자녀의 문제행동을 외면하길 바라지 않는다. 필요한 검사를 받고 진단에 따라 치료도 하기 바란다. 하지만 그게 만능키가 아님도 부모와 교사가 함께 알아야 한다.

하지만 약물만으로는 나아지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아이가 주변 사람들과 나누는 상호작용이 편하지 않기 때문이다.” (206)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어려움을 두고 노력 부족이니 능력 부족이니 하며 비난할수록 아이는 스스로 무력해지기 쉽다. 아이가 무력해지면 스스로 자신을 폄하하는 마음에 사로잡혀 자신과 타인을 함부로 대하기 쉽다. (209)

쉽지 않은 일이지만 외면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직면하지 않으면 더욱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물론 저자는 모든 짐을 교사가 홀로 져야 한다는 식의 불가능한 주장을 하지 않았다. 사랑만이 해결이라는 식의 하나마나한 소리도 하지 않았다오히려 적절한 협력과 지원, 조기 진단과 개입의 필요성을 대변하기도 했다4장 '통합교육을 위한 한 걸음'에서 통합교육지원체계가 필요하다는 말씀에 매우 동의한다. 교실에서 교사는 어려움을 겪는 아이를 이끌어주어야 할 의무 뿐 아니라 나머지 학생들의 수업 또한 질 높게 이루어주어야 할 의무와 소망을 갖고 있다. 현실적으로 막막한 상황에서 어려움에 발을 구르는 교사들을 질책하는 사람들을 볼 때 내가 혼나는 것처럼 속상했었다.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구체적인 일들에 대한 현실적인 대책이 나무라면 장애를 드러내고 함께 도와 아우를 수 있는 사회에 대한 지향은 숲이다. 이 책은 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숲을 조망해주는 책이라고 느껴졌다. 이 책에 있는 상황 중 일부는 올해 나의 상황이기도 하면서 내년에 나의 상황일 확률 100퍼다. 갈수록 찐해지는 기운을 느낀다. 그렇다면 뛰어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난 이 책을 읽었다. 한 권 읽었다고 뛰어들었다기엔 그렇고, 발을 담갔다고 할까. 이제 더 많은 책을 읽어야 할 것 같다. 공부하고 부딪치고 (깨지고) 수정하고 또 공부하고.... 이것이 숙명이 된 것 같다. 힘들지 않은 직업 없으니 칭찬이나 응원을 바라지는 않는데, 협업과 소통, 지원의 길은 열려 있으면 좋겠다. 학교가 내부 폭발의 압력솥이 아니라 순환과 확장의 한 지점이 된다면 좋겠다. 이 책의 지향을 모두가 공감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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