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마을 스캔들 - 제2회 살림어린이 문학상 동화 부문 대상 수상작 살림어린이 숲 창작 동화 (살림 5.6학년 창작 동화) 7
김연진 지음, 양정아 그림 / 살림어린이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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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캔들이라면 마땅히 이런게 나와야 하지 않나? 총각 선생님을 짝사랑하는 소녀... 이게 너무 진부하다 해도 어쨌거나 약간의 멜로적 요소는 있어야 되지 않느냐 말이다. , 전무하다고는 볼 수 없지만... 어쨌거나 스캔들이 주는 어감과는 거리가 먼 내용이다.

 

그런데 내용요소들 중 맘에 드는 것들이 무척 많았다. 몇 가지 들자면 이런 것들이다.

1. 아빠가 있지만 어쩔 수 없이 보육원에서 살게 되었던 다율이

2. 재혼과 동시에 다율이를 찾으러 온 아빠

3. 노력하지만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새엄마

 

여기까지는 동기유발이라고 해야 할까? 무척 땡기기는 하지만 그리 흐뭇할 정도로 맘에 드는 설정은 아니다. 그러나 계속 이어지는 내용을 보자.

4. 외할머니와 같이 지내려고 섬마을에 가는 다율이. 이 외할머니는 친엄마의 엄마가 아니라 새엄마의 엄마다. 말하자면 새외할머니다. 차가운 새엄마와는 달리 너무나 따뜻한 새외할머니.

5. 다율이가 와서 겨우 전교생 4명이 된 온도분교. 자유롭고 융통성 있는 그 교육과정이라니!

6. 본명을 잊어버리고 가겟방, 민박집, 낚싯배, 감나무집 등으로 서로를 부르는 섬마을 할머니들.(, 그 중엔 백살공주라고 불리는 똑똑한 할머니도 있다)

7. 다율이가 가만 보니 이 할머니들은 대부분 까막눈이다. 똑똑한 백살공주 할머니까지도!

8. 온도분교에 대한 폐교 결정!

9. 폐교 결정을 되돌리고, 늦었지만 늦지 않은 배움의 열정을 불태우게 되기까지, 할머니들과 4명의 아이들의 눈부신 협력 작전!!

 

이런 내용들이 맛깔스런 밑반찬처럼 입맛을 짭짭 다시며 책장을 넘기게 했다. 그리고... 등장인물 누구 하나 완벽하진 않지만 다들 마음속에 숨겨진 따스함이 있는 것을 보게 해줘서 마음이 참... 좋았다. 곁을 주지 않는 새엄마 역시, 상처를 감추고 최대한 노력하고 있는거다. 맘이 쓸쓸하지만 그걸 받아들이고 외할머니에게 폭 기대는 다율이가 너무 사랑스러웠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엄마랑 친해지지가 않아.”

니 에미랑은 나도 안 친햐. 내 딸이래두 을매나 어려운가 몰러. 기냥 그런 애여 갸는. 생전 가야 따순 말 한마디 안하는디. 맴은 안 그러믄서 말은 왜 구따구로 하는지 몰러

 

세상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상처 없는 사람이 없어서 그 누구라도 온 세상사람 품어줄 수가 없는 법이다. 그저 마음의 한 자락이라도 내어준다면, 그 방식이 그리 감동적이지 못해도 가만히 손을 대어보면 온기가 전해져 올 것이다. 그 온기만 가지고도 세상은 꽤 살만하다. 뜨거운 사랑만을 원한다면 온기 정도는 성에 안차겠지만... 욕심을 버리면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면 작은 관심에도 감사해진다.

 

이야기 속 인물들은 저마다의 트라우마가 있다. 아내를 잃음(아빠), 보육원에 맡겨짐(다율), 어릴적 어부인 아버지가 실종됨(새엄마), 실종된 남편을 아직도 기다림(외할머니), 엄마를 잃고 섬에서 할머니랑 살아감(기철,기수) 등등... 그러나 서로에게 내어준 마음 한 귀퉁이씩이 서로 연결되어 제법 튼튼한 버팀목이 되고 살아가는 힘과 재미가 되어가는 것을 보았다. 이 책이 따스하고 환한 이유이다.

 

농어촌의 폐교 문제를 짚어준 것도 작가의 문제의식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책에서처럼 행복한 대안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교사로서 학교의 역할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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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공부가 뭐야? 높새바람 28
윤영선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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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이 좀 죽었다. 제목을 보면 내용을 어느 정도 짐작하곤 했는데 이번엔 완전히 헛짚었다.

"도대체 공부가 뭐야?" 라는 제목을 보면 공부하라는 압박에 시달리는 요즘 아이들 얘기 같지 않은가 말이다. 근데 정반대였다. 작가의 의도가 여기에 있는거였나?

 

이야기의 배경은 내 어린시절보다 10년쯤 앞이다. 그러니까 여기에 나오는 언니들은 지금 50대가 되었겠다. 그보다 10년쯤 더 앞이라고 해도 적절할듯하다. 그러니까 6,70년대 산골 언니들의 꿈을 향한 도전을 담고 있다.

 

그 언니들이 택한 방법은 '공부'였다. 공부를 하겠다는데, 엄청난 핍박이 뒤따른다. 요즘 아이들이 읽으면 눈이 휘둥그래질 듯! "우와, 아빠가 딸한테 공부를 하지 말래! 그리고 고등학교에 가서 계속 공부를 하겠다니까 막 따귀를 때려!!"

 

여기서 화자인 영희는 셋째딸이다. 큰언니 영순이와 작은언니 영숙이는 다 공부를 잘한다. 아버지는 딸들이 공부해서 뭣에 쓰겠냐면서 집안일 잘 돕다 시집이나 가라고 한다. 하지만 큰언니는 악착같이 공부해서 읍내에 나가 장학금 받으며 중학교에 다니고 있고, 작은언니 또한 큰언니의 길을 가려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공부방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공부한다고 칭찬 받는 것도 아니며, 집안일은 집안일대로 도와야 하는 상황에서도 이 소녀들의 공부를 향한 갈망은 줄어들지 않는다. 심지어 작은언니는 방학이 싫고 학교가서 공부하는 게 더 재미있다고 한다.

(여기서도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심리가 작용되는 것일까? 요즘 애들한테도 공부를 못하게 하면 그 중 할 녀석들은 이렇게 공부에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게 될까? 한 번 그래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할 사람만 해라. 이게 훨씬 더 건강한 사회인 것 같다.)

 

그러더니 큰언니는 큰 도시에 있는 산업고등학교까지 합격해 집안을 발칵 뒤집고, 작은언니도 동시에 중학교에 합격한다. 이 과정에서 여러가지 풍파를 겪는다. 과거를 숨기고 살아야하는 이들의 가족사를 보게 되고, 동시에 민족의 아픔의 단면 또한 볼 수 있다.

 

언니들을 타지에 다 보내고 나니 동생 돌보기와 집안일은 모두 영희 차지다. 더구나 두 언니들의 학비를 마련해야 하기에 부모님은 영희에게 눈길을 줄 시간도 없다. 그 속에서 부대끼며 서러워하면서도 영희는 담임선생님께 동시쓰기를 배우며 자신의 소질을 알게 되고, 작가라는 꿈을 키우게 된다. 영희 또한 꿈을 찾아가는 언니들을 비로소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장하고도 대견하며 푸근하고도 엄마같은 큰언니는 이제 열 일곱살이다. 헉! 열 일곱살짜리와 난 얼마나 싸웠으며 앞으로 또 다른 열 일곱살짜리와 얼마나 싸우게 될 것인가! 그런데 여기서는 집안을 일으키는 기둥이고, 동생들을 푸근히 품어주는 존재라니! 이 책을 엄마들에게 보여주면 여러가지 무리수가 생길 듯하다.^^

 

중간쯤 읽으면서 눈치챘지만 이 책은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다. 이 책에서는 다른 책과는 다른 형태로 '꿈'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것이 모두 공부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언니들은 꿈을 쫒는 방법들 중에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공부'를 붙들었다. 억지로가 아니라 말려도 나아가는 공부에 대한 열정, 그 모습은 참 아름다웠다. 공부라는 게 아름다워 보일만큼 아름다웠다.

 

만약 언니들이 산골에서 농사짓고 사는 것을 꿈으로 삼았으면 그것을 열심히 했을 것이다. 그 모습 또한 아름다웠을 것이다. 이 책의 키워드는 어찌보면 '공부'인 것 같지만 그보다는 '꿈'이라 해야 마땅할 것이다. 꿈을 향해 나아가는 도전은 아름답다. 그게 공부든 무엇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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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기 과외 난 책읽기가 좋아
로리 뮈라이유 글, 올리비에 마툭 그림, 최윤정 옮김 / 비룡소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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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기과외, 우리나라에서 나온 책이라면 뭐 이제 나올만도 하지 할텐데 프랑스 작가가 쓴 책이고 나온지 10년도 넘은 책이다. 다른 나라에도 이런 일이 있구나.... 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일반적인 현상이 아니라 특별한 경우를 소재로 했다는 느낌이 있다. 우리나라에선 이제 놀랍지도 않은 일인데 말이다.

 

몇년 전 2학년 담임을 할 때 아이들은 토요일 수업이 끝나면 교문 앞에서 차를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무슨 차를 기다리냐고 했더니 생활체육 차라고 한다. 거기서 뭘 하냐고 했더니 피구도 하고 줄넘기도 하고 편을 나누어 놀이도 한다고 한다. 엥? 어렸을 때 골목에서 그냥 하던 것들인데... 이제 그것을 돈내고 하는 것이다. 어머니들께 꼭 그런걸 돈주고 시켜야 하는지 조심스럽게 물어본 적이 있다. 그랬더니 하는 대답. 뛰어노는게 좋다고 하는데 그냥 두면 뛰어놀 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엄마들은 하나는 아는 것이다. 아이들은 놀아야 한다는 것. 근데 우리 아이들은 노는 법을 잊어버렸을 뿐 아니라 같이 뛰어놀 친구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과외를 시킨다. 바로 <놀기과외>!

 

편해문 선생님의 <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라는 책을 읽고 많은 공감을 했다. 그런데 우리나라 엄마들의 특징. 좋은 건 유행이 다 휩쓸고 지나간다는 것. 말을 꺼내보면 모르지를 않는거다. 심지어는 학부모 독서교육 강의를 들으러 가봐도 강사들이 아이들을 놀려야 된다는 말을 책 이야기보다 훨씬 더 많이 한다. 그럼 엄마들이 '헉! 그걸 몰랐네.' 이럴 줄 아는가? 천만에 말씀. 다 알고 있다. 다 알고 있으니까 유행하는거다. 바로 <놀기과외>가 말이다.

 

평범한 아이 앙투안의 반에는 특별한 아이 라디슬라스가 있는데 이 아이는 모든 면에서 실력이 월등하다. 그렇다고 나대는 것도 아닌데 학급의 친구들은 이 아이의 존재를 불편해 한다. 이 아이가 뭐든지 잘하는 건 원래 능력이 있어서이기도 하겠지만 부모가 최고급의 사교육을 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파리에서 제일 유명한 첼로연주자에게 첼로를 배우고 옥스퍼드에 있었던 교수님에게 영어를 배우고... 이런 식이다.

 

어느 날 라디슬라스의 일상에 파문이 이는 사건이 발생했다. 첼로 선생님이 아프셔서 레슨을 할 수가 없다는 연락을 갑자기 받은 것이다. 부모님이 집에 없기 때문에 라디슬라스는 이 시간동안 있을 곳이 없었다. 그래서 앙투안의 집에 가게 된다.

 

앙투안의 방은 보통 아들들의 방이 그러듯이 매우 심란하다. 하지만 라디슬라스에겐 그 모든 것들이 신기한 일이다. 라디슬라스는 앙투안이 즐겨 읽던 만화에 빠져들었고, 앙투안이 직접 그린 만화에 경탄하다가 제안을 한다. 그림 과외 선생님이 되어 달라고.

 

어찌어찌 아버지를 속여 <과외수업>이 시작되었다. 매번 600프랑이라는 수업료까지 받아가면서...(이게 첼로선생님에게 지급되는 돈과 같으니 아마 꽤 큰 돈일듯-역자 주에 보니 우리돈으로 12만원 정도 된다고) 전문가가 아닌 앙투앙이 가르치는데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수업이 될 리가 있겠는가? 그런데 의외인 것은 실력이 늘지도 않는데(소득이 있다면 천하의 라디슬라스에게도 소질없는게 있다는 깨달음?) 라디슬라스는 이 수업을 너무나 좋아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쌓여가는 수업료에 마음이 떨리는 앙투안은 수업료를 들고 라디슬라스의 아버지를 찾아가서 모든 걸 털어놓는다. 이 때 아버지의 반응이 그가 몰지각한 부모는 아님을 알게 해준다.

"난 라디슬라스의 행복을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했지. 그 애가 어떻게 하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까 하고 늘 마음을 써 왔단다. 그래서 그 애가 행복해하고 있는 줄 알았어."

"내가 잘못 알고 있었구나. 행복해지려면 필요한 것,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그 애한테 빠져 있었던 거지. 그게 친구잖니."

"이것저것 다 생각했는데 내가 왜 그 생각은 못했는지 모르겠구나. 그 애한테 노는 걸 못가르쳤다."

 

이제 라디슬라스에게도 여백의 시간이 주어지게 되었다. 그 시간에 라디슬라스는 앙투안과 그림도 그리고 만화의 스토리를 구상하기도 하고 그 외 기타등등 어찌보면 시간낭비인 것 같은 일들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게 되겠지. 앞만 보고 가던 라디슬라스가 바야흐로 곁눈질을 시작했으니 아마 당분간 부모를 힘들게 할지도 모른다는 예상을 경험자로서 해보는 바이다. 그러나, 그게 순리인 것이다. 자연스럽게 숨쉬면서 사는 일. 우리나라의 학생들도 미래를 위해 12년을 저당잡힐 일이 아니다. 행복은 과외로 배울 수 있는게 아니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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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붓 사계절 그림책
권사우 글.그림, 홍쉰타오 원작 / 사계절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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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 이 책의 주인공 마량이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 나와있는데 깜짝 놀랐다. 우리 딸래미 아기때 모습이랑 똑같아서. 통통한 얼굴, 숱 적고 짧은 머리를 위로 묶은 모습... 꼭 우리 딸 세살 네살 때의 모습이다. 이야기 중 마량의 나이가 그정도로 어리지는 않겠지만 그만큼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이다.

 

이 책의 원작은 중국과 우리나라 북부에 구전되던 옛이야기를 중국의 아동문학가 홍쉰타오가 <신필마량>이라는 제목으로 재탄생시킨 작품이라고 한다. 그것을 우리나라 그림작가 권사우 님이 그림책으로 다시 만들었다. 10년 동안이나 이 작품을 품고 있었다고 한다. 고민하고 다듬으며 보낸 10년의 세월이 무색하지 않을만큼, 책은 섬세하고 사랑스럽다.

 

세계의 옛이야기들에는 신기하게도 공통되는 모티프들이 많은데 그 중의 하나가 '원하는 것이 저절로 생기게 하는 어떤 것'이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더듬어 보면 도깨비 방망이, 요술주머니(보자기), 요술 항아리 등등.... 인간의 심리에 보편적으로 그런 갈망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어렸을 때 천사가 소원을 들어준다면 뭘 말할까? 이런 고민을 심각하게 해봤으니까. 이제 판타지에서 벗어난 어른들조차도 로또가 당첨되면 뭘 할까? 이런 개꿈을 꾸고 있으니 말이다.

 

이 책에서 요술을 부리는 도구는 바로 붓이다. 수없이 많은 요술이야기지만 이 이야기가 식상하지 않은 건 '붓'이 주는 새로움인 것 같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마량은 너무 가난해서 붓 한자루를 갖는게 소원이다. 그런 마량에게 신령님이 준 붓이 생겼는데, 이 붓으로 닭을 그렸더니 진짜 닭이 푸드덕 살아나는게 아닌가!

 

지금부터 따뜻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마량은 이 붓으로 배고픈 아이들에게 밥을 그려주고, 농사일에 힘든 할아버지에게 소를 그려준다.

 

이제 위기가 닥칠 시점이 되었다. 요술물건을 모티프로 한 옛이야기에선 그걸 가로채려는 인물이 다가오기 마련이다. 여기서는 원님이다. 그러나 요술물건은 임자를 알아보는 법, 아무한테나 선한 요술을 베풀어주는 게 아니다. 금덩이를 그리면 똥덩이가 되고, 돈나무를 그리면 뱀나무가 된다. 원님은 할 수 없이 마량을 다시 불렀다.

 

모름지기 악인은 자기 욕심에 의해 망하는 법이다. 이 이야기에선 그 교훈을 극대화시켜 보여준다. 황금산을 향하여 배를 탄 원님. 더 빨리, 더 세게를 외치더니만 결국은....

 

권사우 님의 그림은 따뜻한 곳에서는 따뜻하게, 클라이막스에서는 극적인 긴장감을 눈앞에 다가오도록 생생하게 살리고 있다. 그렇지만 진정한 공포심을 자아낼 정도는 아니다. 난 그것이 마음에 든다. 옛이야기의 매력이 그런게 아닐까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책을 많이 권해주고, 그림책을 가끔 읽어주기도 하지만 그동안 옛이야기의 소중함에 대해서는 별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요즘들어 오랜 세월을 거치며 살아남은 옛이야기들에는 어떤 깊은 의미가 있는것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면서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이 책만 해도 그렇다. '원하는 것을 맘대로 가질 수 있다면' 이라는 인간의 근원적인 로망... 그것을 붓 한 자루를 소재로 하여 생생하고 흥미진진하며 권선징악의 교훈까지 듬뿍 담기게 표현해냈다. 옛이야기의 힘을 새롭게 느끼게 되는 작품이었다.

 

내가 아끼는, 하지만 아이들 손에 너덜너덜해지는 그림책 목록에 들어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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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전설은 창비아동문고 268
한윤섭 지음, 홍정선 그림 / 창비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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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권하고 싶고, 아이들도 틀림없이 좋아하리라 확신이 드는 책을 만나는 건 흔치 않은 일인데, 오랜만에 건졌다. 난 이걸 올해 권장도서 목록에 넣을 작정이다. 권장도서 목록을 만드는 것에 대해서 말들이 많고 나도 문제점을 인식하기는 하나, 그래도 그 순기능을 포기할 수 없어 매년 만들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열심히 찾아 읽고 있잖은가. 선생님이 좋은 책을 발견해서 얘들아~ 이 책 참 좋더라~ 좀 읽어봐라~ ?” 이러는게 뭐 나쁜 일은 아니잖은가?

 

작가 한윤섭 님은 극작을 공부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이야기의 짜임새에 내공이 남다르다고 느낀다. 어린이 대상의 책이지만 문장의 문학성도 감탄스럽다. 어린이문학의 예술성을 유감없이 보여준다고 할까? 한 대목을 골라보겠다. 주인공 준영이가 무서워하던 돼지할아버지의 밤나무밭에 들어가 새벽에 함께 평상에 앉아있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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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사람이 다가가면 울음을 멈추는 풀벌레처럼, 밤 떨어지는 소리는 준영이 눈을 감았을 때만 들렸다.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신기한 소리였다. 적당한 무게의 밤알이 낙엽이 쌓인 흙에 부딪쳐 나는 소리, 그 소리는 정말 새로운 느낌이었다. 밤들은 수없이 쏟아져 내렸다. 최고로 아름다운 음악이 밤밭에 흐르고 있었다.

아름다운 소리 사이로 가끔씩 돼지할아버지의 숨소리도 들려왔다. 왠지 두 소리가 잘 어울렸다. 문득 준영은 깨달았다. 가을이 되면 돼지할아버지는 매일 새벽 혼자서 이 아름다운 소리를 듣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이 소리를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었다는 사실을.

 

사실 아이들에게 문학성 타령은 진부할 것이다. 재미있어야 된다. 이야기가 재미없다면 다른 모든 것을 갖춘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근데 이 책은 일단 재미가 있다. 목사님인 아빠를 따라 시골학교로 전학을 간 준영이에게 마을 친구들은 무시무시한 마을의 전설을 알려준다. 그 전설은 황당무계하지만 혼자 집에 못 가고 친구들을 기다릴 정도로 준영이를 빨아들인다.(이 때, 독자도 같이 빨아들인다.^^)

 

이 전설을 공유하고 함께 행동하며 아이들은 허물없는 친구가 된다. 이 전설이 하나 둘 실체를 드러내면서 아이들의 사계절이 지나간다. 아이들의 우정도 마음의 깊이도 그에 따라 깊어진다.

 

색감이 뛰어난 그림도 이 책의 매력이다. 봄은 화사한 봄 색깔, 여름은 울창한 여름 색깔, 가을은 깊은 가을 색깔, 겨울은 차가운 겨울 색깔이 계절의 변화를 마음에 와닿게 해준다.

 

작가의 어린시절 시골이야기로 풀어나간 여러 작품들을 읽어봤다. 그 작품들 모두 나름대로 특징과 재미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어떤 작품과도 겹치지 않은 소재와 재미를 지닌 이 책을 또다시 발견하게 된 것은 큰 기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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