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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 쉽게 통으로 읽는 한국사 1 - 선사 시대부터 통일 신라 ㅣ 알기 쉽게 통으로 읽는 한국사 1
이진경 기획.글, 임익종 그림, 여호규 감수, 오영선 기획 / 시공주니어 / 2014년 11월
평점 :
초등 5학년 정도의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한국사 시리즈 한 세트를 읽히고 싶은 건 부모나 교사의 공통된 마음이다. 10여년 전 <한국사편지>시리즈가 나온 이후 입말체로 쓴 어린이 대상의 한국사 시리즈는 매년 꾸준히 나와서 이제 고르기에도 벅찰 지경이 되었다. 다들 새로운 구성과 알찬 내용을 자랑한다. 사실 대부분 야심차게 기획하고 제작한 거라 장점들을 다 가지고 있다. 어떤 학부모가 "선생님, 우리 아이한테 어떤 한국사 시리즈를 읽힐까요? 좀 골라주세요." 하고 묻는다면 난 이런 무책임한 답변을 하고 싶다. "아무거나 애가 읽겠다는 걸로 읽히세요. 책들이 다 좋아요~ 안 읽어서 문제지요~"
5학년 담임을 많이 했던 나는 처음엔 한국사 편지를 읽히기 시작했었는데 그 책이 어린이 한국사 시리즈의 선구적 책임에도 불구하고 보통 수준의 독서력을 가진 아이들이 읽기 힘들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어른들이 아이들의 독서수준을 너무 높게 잡고 있다. 이 정도 수준의 책을 중학생들에게까지 넓힌다면 무난할 것이다) 그래서 만화로 된 <살아있는 어린이 한국사 교과서>도 읽혀봤는데 역시 만화라는 한계와 아쉬움이 어느 정도는 있었다. 서술이 쉬운 <행복한 한국사 교과서>는 시작했다가 10권이라는 권수에 눌려버렸다. 다음으로 <키워드 한국사>책이 꽤 맘에 들어 시작했다가 후속편이 안나오는 바람에 낭패를 봤다.(얼마 전에 7권이 모두 완간되었다. 6년이나 걸렸다. 진짜 목빠지는 줄 알았다)
이렇게 내가 시도해 본 책들만 해도 다들 내세울 만한 장점들을 가지고 있어서, 문제는 아이들이 손에 잡느냐 인 것 같다. 아이들의 취향과 독서수준이 다 달라서, 자신에게 맞는 것을 잘 고르는 게 중요할 것 같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이 책은 아주 손쉽게 잡을 책은 못된다. 하룻밤에 한국사 정복하기~ 이런 차원의 책이 절대 아니다. 일단 권수는 5권으로 시리즈물 치고 많은 건 아닌데 권당 분량이 300쪽 정도여서 분량에 압박을 많이 받는 녀석들은 고개를 저을 것 같다. 그러나 분량이라는 난관을 뛰어넘기로 결심한 친구들이라면 이 책이 그렇게 험난하지만은 않다. 일단 구성이 다채로우면서도 어지럽지 않고 깔끔하다. 사진과 그림자료들도 크고 풍성하다.
분량이 많다는 건 그만큼 남이 안해주는 설명을 해준다는 뜻 아닐까? 역사에 조예가 깊지 않아 평가내리기는 어렵지만 각 분야에 꽤 이름이 높은 전문가들로 기획과 집필이 이루어져 내용의 신뢰성이 확보된 것 같다. 그동안 한국사 서술에서 오류로 지적되어 온 것들도 기존의 서술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새롭게 서술되어 있다. 한국사 편지의 저자 박은봉 님이 <한국사 상식 바로잡기> 책에서 지적한 고조선의 건국연대를 이 책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삼국유사나 동국통감에 따르면 고조선은 기원전 2333년에 아사달을 수도로 세워졌다고 해. 하지만 실제로 고조선이 2333년에 세워진 것은 아니야. 그 무렵 한반도와 주변 지역은 신석기 시대였거든. 고조선이 실제 세워진 것은 청동기 문화가 발달한 기원전 10세기 이후라고 볼 수 있어. 그런데 왜 고조선이 2333년에 세워진 것으로 기록되었을까? 그건 삼국유사가 쓰인 고려나 동국통감이 쓰인 조선 초기 사람들의 역사의식과 관련이 있어. 고려 때 몽골과 맞서 항쟁하면서 사람들의 민족의식이 강해졌고, 우리 역사가 중국 역사처럼 길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역사의식이 생겼기 때문이야."
이 대목을 읽고 난 좀 생각이 복잡했다. 역사의식이란 게 무엇인가? 우리 역사만 훌륭하다고 미화하는 게 역사의식인가? 전에 읽었던 신동원 교수의 <한국 과학사 이야기>에서 잊을 수 없는 구절이 있다. "오늘날 잣대로 옛 것을 바라보면 문제가 생겨. 역사적 사실을 정확히 밝히고 그래서 비약이 없도록 조심해야 돼. 지나친 애정은 판단을 흐리게 하고 분별력이 없어지면 다른 사람들이 그 주장을 신뢰하지 않게 되지. 과장하게 되면 안 하니만 못한 결과를 낳아. 경계하고 경계할 일이야."
우리 것을 과장하고 미화하는 것이 역사의식은 아닐 것이다. 무조건 오래되고 최고인 것만이 우리 역사의 자랑은 아니다. 분별력을 가지고 정확한 연구를 하는 것이 결국 우리 역사를 바르게 세우고 지키는 일일 것이다.
이와 같이 논란이 된 역사서술을 바로잡아 썼을 뿐 아니라 기존 어린이 역사서에서 간단히 다루고 넘어간 고대국가(부여, 옥저, 동예, 삼한)들에 대한 서술도 자세해서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이 많았다.
각 장별로 짧은 만화와 보충노트가 들어있는데, 만화는 쉬어가는 페이지 같아서 한숨 돌리며 재미있게 읽기 좋았고, 보충노트에는 깨알같은 정보가 들어있어 좋았다. 마지막 발해 편을 읽으면서 해결이 안되는 궁금증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보충노트에 나와 있었다. 발해가 우리나라 역사인 이유.
이와 같이 완급조절을 해가며 읽을 수 있고 꼭 필요한 정보가 본문 뿐 아니라 요소요소에 잘 들어가 있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라 하겠다.
책을 권해줄 때는 무조건 보다는 맞춤형으로 권해주는 게 옳은 법, 나는 이 책을 독서력이 높고 읽기에 끈기가 있는 아이들에게 권해주고 싶다. 다른 역사책을 한 번 읽어 본 아이들이라면 더 좋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에 대한 내 마음 속의 최종 평가는 아직 나오지 않은 5권(현대사 부분)을 읽고나서 내리겠다. 아마도 흡족할 것이라 예상은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