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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픔의 틈새 ㅣ 여성 디아스포라 3부작 
                    이금이 지음 / 사계절 / 2025년 8월
                    
                  평점 :
                    
                    
                    
                    
                    
                    
                    
                    
                    
                    
                    
                 
                
            
            
            
        
 
        
            
            
            
            
            
            
            비오는 주말에 집에 들어앉아 이 책을 읽었다. 도서관에 구입신청해서 대출한 책이다. 다른 읽을 책들도 쌓여있지만 이 책이 가장 먼저 손에 잡혔다. '일제강점기 한인 여성의 디아스포라 3부작'을 완료한 작품이다. 첫번째 <거기, 내가 가면 안돼요?>를 무척 재미있게 읽었는데 10년 가까이 지나다보니 내용이 희미하고, 두번째 작품 <알로하, 나의 엄마들>은 읽지 못했다. 이번 작품을 읽고보니 두번째도 읽어서 완성하고픈 생각이 든다. 내용이 가물가물한 첫번째 작품도 다시 읽어볼까 하는 마음도.
나라가 고난을 겪을 때 백성들의 삶은 고달프다 못해 처참하다. 제목도 잊어버린 과거의 독서에서 어쩌면 이토록 최악의 길로만 가는 인생이 있나 기가 막혔던 기억이 난다. 이 책도 그럴까봐 두려운 마음으로 읽었다. 이제 너무 비극적인 이야기는 힘들다.... 하지만 이 책은 결이 좀 달랐다. 물론 고난은 심했지만 불쌍한 마음보다는 장하다라는 마음이 컸고, 단단한 기둥들이 서있는 이미지가 떠올랐다. 표지그림 때문인가. 눈밭에 곧게 뻗은 자작나무들이 단단하게 서 있다. 그 가운데 서있는 여성이 주인공 단옥일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강제노역 등으로 끌려간 곳은 한군데가 아니었다. 대표적으로 강제이주 당한 중앙아시아가 있고, 하와이도 있고, 이 책에서 다룬 사할린도 있다. 사할린에 대해선 별로 생각해보지 못했다가 이 책을 읽고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작가님이 여러번의 답사, 면담, 문헌 연구로 완성한 책이다. 덕분에 내가 생각 못하고 살았던 장소와 시대, 사람들에게 공감하는 경험을 했다. 이것이 문학의 힘일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읽으면 내가 얼마나 편하게 살아왔는지를 새삼 느낀다. 우리는 지금도 살기 힘들다고 아우성을 치지만, 그래도 가족의 생사도 모른채 수십년을 마음에 한이 되도록 그리워하다 죽지는 않고, 만날 기약도 없이 생이별을 하지도 않고, 살 길인줄 알고 갔는데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길이었던 것도 아니니까. 
사할린 또한 그런 곳이었다. 단옥의 아버지가 먼저 탄광노동자로 가서 일하고 있었고 그후 단옥이가 어머니, 오빠, 남동생과 함께 찾아가 합류했다. 조부모와 여동생 한명은 추후 오려고 고향에 남았지만 결국 오지 못했고, 여정 중에 일본 본토로 가겠다고 이탈한 오빠도 평생 만나지 못했다. 그뿐인가, 잠시의 화목한 생활도 불안한 평화일 뿐이었다. 일본이 패전을 해도 마찬가지였다. 고국에 돌아갈 길이 그렇게 열리지 않을 줄 누가 알았을까. 사할린의 탄광이 문을 닫고 일본 탄광으로 옮길 때도 아버지만 가게 됐다. 나머지 가족들은 속절없이 아무 연관도 없는 사할린에 남아 삶을 이어가야 했다. 그 사이 아버지 계실 때 여동생, 떠나신 후 남동생 이렇게 식구는 늘어났다.
삶이 이어진다는 건 또다른 관계들이 생긴다는 것이었다. 일본에 간 아버지와 장남의 생사를 몰라도, 고국에 있는 딸의 생사를 몰라도 사할린의 가족은 나이가 되면 결혼을 하고 또 자식을 낳으며 삶을 이어갔다. 무국적자로 살기에는 삶의 손해가 너무 막심했기에 울며겨자먹기로 소련이나 북한 국적을 신청해 살아가는 사람들도 생겼다. 그렇게 사할린에는 한인, 일본인, 소련인, 고려인, 북한인, 또 이 여러 조합의 2세들까지 다양한 출신의 사람들이 얽혀 살게 되었다. 
전작들이 모두 이 디아스포라 과정에서 여성의 연대를 그리고 있다. 이 책의 단옥과 유키에도 마찬가지다. 유키에는 탄광에서 아버지와 의형제를 맺은 정남 아저씨의 의붓딸이다. (복잡하지) 아저씨는 고국에서 가족들이 오지 않자 사할린에서 일본 과부와 재혼을 했다. 두 가족은 평생을 혈연보다도 더 끈끈한 관계로 서로 의지하며 지낸다. 일본 때문에 낯선 땅에서 억지로 살아야 했고, 그와중에 일본 가족과 형제같은 사이가 되었다니 참 인생은 아이러니하다. 거악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개인이 그 틈바구니에서 당한 고난은 어떻게 보상받을 수 있는 것일까.
어떤 시간의 선을 넘기면 그곳이 또 제2의 고향이 되는 법이다. 위에 썼듯이 그렇게 2,3세들이 태어나면... 그들에게 한국은 돌아가고픈 조국일수 없으니까... 한시대의 아픔은 그 세대의 가슴에 커다란 한이 되어 그렇게 묻힌다. 그렇다고 후대가 그걸 함께 묻어버리면 안될 것이다. 아픈 역사이니까.... 그들에 대한 존중과 위로의 마음, 그들의 그리움에 비해 너무 소홀했던 고국의 대응에 대한 미안한 마음도 남겨놓아야 할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역할도 하고 있다.
제목을 지은 과정이 작가의 말에 나와있다. 제목을 처음 봤을 때부터 인상적이었는데 아주 적절한 제목이라고 생각한다. '슬픔의 틈새'를 채운 것은 무엇일까? 그것이 절망 속에서 이들을 살게 했다고 생각한다. 그 이야기만 해도 한참을 나눌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