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이샘 진로툰 - 초등학생을 위한 쉽고 재미있는 장래희망 찾기
옥이샘 지음 / 지식프레임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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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 책들은 다들 적당히 괜찮으면서 비슷비슷하다. 내가 본 것들은 그랬다. 이 책도 그렇겠지 아이들이 좋아하는 옥이샘 만화가 들어갔다는 것 외에는.... 이라고 생각하며 차례를 펼쳤는데 내 눈을 끄는 목차가 있었다. 2부의 ‘직업 가치관 알아보기’, 3부의 ‘인생 가치관 알아보기’가 바로 그것이다.

초등 국어 교과서에서는 4학년부터 전기문 단원에서 ‘가치관’을 다룬다. 가치관이라는 말을 설명할 때 좀 애를 먹어야 하긴 하지만 그래도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환영이다. 전기문 단원이니 위인들의 일생을 살펴보면서 그들의 가치관을 분석하는 활동을 하게 되어있다. 자신과 견주어보게도 하고 있지만 이 부분에서 나는 살짝 부족함을 느꼈다. 이 책을 보니 그 아쉬움이 채워지는 느낌이다. 국어 전기문 단원 + 창체 진로활동 시간을 통합해서 이 책을 활용하여 수업하면 아주 좋을 것 같다.

1장, 가장 많은 지면을 차지하는 내용은 아무래도 직업이다. 홀랜드 성격유형 6가지 구분에 맞추어 알맞은 직업들을 설명했다. 진로수업에서 자주 사용되는 방식이다. 경향성이 확실하고 본인의 생각과 맞는 직업이 예시에 나오는 경우에는 매우 고무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그런 경우가 많지는 않고 대부분 물음표가 더 많이 남는다. 하지만 그것도 좋다고 본다. 당연하기도 하고. 나의 경우엔 해당되는 유형이 하나도 없는 것 같다. 6유형인 사무형이 그나마 가장 비슷한데 나는 4유형(사회형) 직업인 교사를 평생 해 왔으니 성격에 역행한 직업선택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음 그래서 힘들었나?^^;;;

1현장형, 2탐구형, 3예술형, 4사회형, 5진취형, 6사무형 이 여섯 유형에 따라 장을 구분하고, 성격 지수를 파악하는 10개의 질문에 이어 알맞은 직업을 10가지씩 소개해 주는 구성으로 되어 있다. 전문적 검사에 비하면 문항수가 적겠지만 교실에서 간단하게 함께 해보기에는 적당한 것 같다. 사실 초등의 경우에는 유형 파악 자체가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다른 흥미와 성격을 갖고 있으며 그에 맞추어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는 것이 행복에 가까워지는 방법이라는 점만 잘 이해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 진로에 대해 더 알고 싶어져서 찾아보고 탐구하는 자세를 갖게 된다면 120% 달성한 셈.

각 직업당 한 쪽. 옥이샘 특유의 만화 4컷으로 느낌을 딱 주고 그 아래 ‘어떤 일을 하나요?’, ‘세상에 어떤 도움을 줄까요?’ 두 가지 설명이 간단히 나와 있다. ‘어떤 일을 하나요’는 어느 책에나 나오는 필수적이고 당연한 내용이고, ‘세상에 어떤 도움을 줄까요’가 나에게는 인상적이었다. 모든 직업은 사회와 연관을 맺는다. 나의 삶은 타인들과 연결되어있다. 그 연결이 선하고 보람되면 세상의 행복도 확장될 것이다.

이어서 앞에 언급한 가치관 장이 나온다. 2장은 ‘직업 가치관’이다. 직업을 선택하는 데도 가치관이 투영된다. 이 책에서 다룬 직업 가치관으로는 보수, 사회봉사, 인정과 존경, 변화 지향, 안정성, 근무 환경, 성취, 즐거움 등이 있다. 자신의 우선순위에 따라 직업 선택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겠다. 나의 직업 가치관은 무엇인가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아마도 ‘보수’를 말하는 아이들이 가장 많을 것 같고 당연하기도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점을 새롭게 깨달을 수 있을 것 같다.

3장은 ‘인생 가치관’이다. 이 장이 이 책의 가장 큰 차별성 아닐까 생각한다. 진로와는 상관없지 않나 생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로라는 것, 인생이라는 것을 직업에만 한정하지 않는다면 인생 가치관은 우리의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장을 넣어주신 작업에 감사를 표하고 싶고, 앞에서 말한 국어 단원의 가치관 수업에서 꼭 다루고 싶다. 장 마지막에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생 가치관은?’이라는 활동이 나오는데, 학생을 파악하는 데도 도움이 되고 학부모 상담 자료로도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앞의 홀랜드 유형 검사지와 함께. (이렇게 꼭 써먹을 궁리가 앞선다.^^;;;;)

마지막 4장은 미래사회에 대한 내용이다. 적절한 마무리라고 생각한다. 사회가 변화하면서 있던 직업이 없어지기도 하고 새로운 직업이 생기기도 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죄다 실업자로 만들 것이라는 식의 극단적인 생각은 좀 경계해야 하지만, 여러 가지 가능성을 살펴보는 일은 필요하다.

이 책은 이렇게 진로수업의 길잡이가 될 만한 알찬 구성으로 되어있다. 내용이 알찬 데에 비해 가독성이 매우 높아 활용하기 더욱 좋다. 읽기 편하고 그리 두껍지도 않다.(150쪽 정도) 만화가 많아 재미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개인적으로 읽도록 권해줘도 좋겠지만 나는 교실에서 같이 읽고 활동해보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그럼 이제 방법을 생각해 봐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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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서 온 아이 - 기묘한 도서관 2 서유재 어린이문학선 두리번 14
이병승 지음, 최현묵 그림 / 서유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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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도서관’ 두 번째 책이다. 전작인 <비밀유언장>의 모자가 그대로 주인공이다. 할머니가 세우신 도서관에 불만이 많았던 엄마가 이번 책에서 또다른 도서관을 여는 것을 보면 전작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할머니가 사시던 시골의 ‘숲속 작은 도서관’을 주민들에게 넘기고 돌아온 엄마는 ‘정글 도서관’ 문을 연다. 할머니의 영향을 받아 비슷한 컨셉을 갖고 있다. 주인장의 안목으로 책들을 구입해 서가를 채우고, 책 공간뿐이 아닌 먹거나 쉴 수 있는 공간도 마련한다.

번거로운 것을 싫어하는 나는 생각만 해도 눈살이 찌푸려진다. 아니 도서관에 떡볶이라니.... 먹으면서 책을 봐도 된다니.... 그런거야 집에서 자기 책으로는 해도 되지만 도서관은 공공장소잖아. 그리고 누가 어떤 의도로 이 공간들을 차지할지 어떻게 알아. 들어온 사람 쫓아낼 수도 없고 그런 마음고생을 왜 사서 해. 요즘은 공공도서관들도 얼마나 좋은데.

나의 이런 생각에는 새로운 만남과 관계를 부담스러워하는 성향이 그대로 들어있다. 남의 사정 별로 궁금하지 않고 알면 뭐하겠어 라는 생각이 강하다. 그러면서 민폐인들에 대한 혐오는 매우 강하다. 내 돈과 내 수고를 들여서 민폐인들의 치다꺼리를 하다니 미쳤어? 이런 생각...

하지만 세상엔 많은 유형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다행이다. 단절하는 나같은 유형도 있지만 그 사이에 접착제를 채우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지. 이 책에선 할머니가 그 원조고 엄마가 그 뒤를 이어받았다.

이렇게 좋은 마음으로 도서관을 예쁘게 차려 열었지만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나라면 집근처에 있다면 (공공도서관보다 가깝다면) 자주 갈 것 같은데... 아이들은 학원으로 향하기 바쁘고 시간이 나도 도서관보다는 PC방에서 스트레스를 풀어야 한다. 모자는 손님들을 유치하기 위한 전략을 고민한다. 첫 번째 전략 떡볶이 공짜 제공은 실패했다. 젯밥에만 관심이 있는 아이들은 책 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았고, 근처 분식집에 큰 피해를 주는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와 바로 작전을 철회하게 됐다. 다음은 타자기. 지금은 골동품 축에 속하는 타자기를 구해다가 ‘신비한 주술이 걸린 타자기’라는 판타지를 입혔다.

이제부터 하나둘씩 도서관에 정착하게 되는 손님들이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작가 지망생인 다미, 작가임을 숨기려 하는 홍유미 작가, 책은 싫지만 도서관은 좋다는 지우, 책에 일부러 코딱지를 묻히는 만행을 저질렀던 분식집 아들 영훈, 깡패인 줄 알았는데 토론 달인이었던 도해 등... 그리고 그림책 읽는 고양이, 버려진 강아지까지....

나비효과를 믿고 희망차게 시작한 일이지만 힘든 상황은 엄마를 회의하게 만든다.
“여기가 도서관인지 아동보호소인지 강아지 놀이터인지 모르겠어.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이렇게 가는 게 맞는 걸까?”
이때 엄마를 위로하고 기운을 북돋워준 아들의 말이 엄마보다 훨씬 더 확신에 차 있다. 엄마의 회의는 내가 볼 때 너무 당연한 것이다.
“누구도 식당에 가서 밥을 공짜로 달라고는 안 하잖아? 극장이나 공연장에 가서도 그렇고. 외식비는 당연히 쓰면서 책은 안 그래. 도서관을 하면서 책은 빌려보는 거라는 인식만 심어주는 게 아닌지 걱정 돼.”
하지만 아들은 소수일지라도 자기처럼 변화된 아이들을 들어 엄마에게 확신을 준다. 아들이 말한 가치는 책 자체도 있지만 소통과 관계가 함께한 책읽기에 있는 것 같다. 책은 돈주고 살 수 있지만 경험까지 돈 주고 살 수는 없는 것이니까. 이 부분에 나도 동의한다. 그래서 교실에서 함께 책을 읽으며 많은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게 하려 한다. 교실 밖에서까지 하시는 훌륭한 분들도 많지만 내 성향상 그것까진 힘들고 교실에서만이라도.... 어쨌든 엄마의 도서관은 이제 여기에 정착한 아이들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공간이 되었다.

가장 극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방문객은 아인이다. 아인이는 자신을 ‘미래에서 아주 중요한 사명을 띠고 온 아이’라고 소개했다. 그 사명은 ‘미래로 가져갈 단 한 권의 책’을 골라 가져가는 것이다. 이 작업에 많은 이들이 동참하면서 이야기는 흥미를 더해가게 된다. 각 인물들은 어떤 책을 골라 제출했을까? 과연 아인이의 정체는 무엇일까?

화자인 아들의 이름이 처음엔 나오지 않다가 아인이가 등장하고서부터 나오는데, 그 이름이 ‘도석완’이라니.ㅎㅎㅎ 책과 도서관에 대한 작가의 열정이 집약된 책. 이런 도서관이 우리 동네에도 생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외형적 공간보다는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아주 조금은 아이들과 함께하는 공간을 도서관으로 만들어본 경험이 있다. 정말 잘하시는 분들에 비하면 얘기할 것도 못 되지만.... 책과 사람. 오래오래 곱씹고 고민할 주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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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1- 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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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교육과정을 디자인하다 : 실천편 - Teachers’ Curriculum 교사 교육과정을 디자인하다
교육과정디자인연구소 지음 / 테크빌교육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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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우연이 작용하여 자의반 타의반으로 이 책을 읽게 됐다. 5년 전만 해도 이런 책을 찾아서 읽었을 것이다. 책모임에서 읽었을 수도 있고 마음 맞는 동료들이랑 함께 읽고 실천에 도전했을 수도 있다. 이제 전성기(?)가 지나 내리막길이어선지 현상유지에 급급해서 교육서적들을 회피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진짜 열심히 하시는 선배님들은 그만두기 한 학기 전에도 배우고 도전하시던데.... 나를 조금 반성한다.

‘교사 교육과정’은 교육과정 재구성에서 한발 더 나아간 개념이다. 교사는 국가교육과정과 교과서를 그대로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고 교육목표와 내용을 재구성하고 교과서를 비롯한 교재와 학습자료를 적절히 선택하여 가르치고 평가하는, 다시말해 교육과정을 ‘실행’하는 사람들이다. 이 실행자가 주도적으로 만들지 않으면 교육과정은 살아있는 것이 되기 어렵다. 교사 교육과정은 그래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며 어느 정도는 ‘뭐 그동안 내가 해왔던 거네~’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론과 공부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해왔던 것에 불과하다. 농담 조금 섞어서 말하면 본능적으로 했던 거다. (본능이 가장 무서운 거라고 주장하고 싶다.ㅎㅎ) 그러다보니 정교하지 못했다. 이 책과 일련의 책을 읽으며 정교함을 좀 기르면 한층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전편 <교사 교육과정을 디자인하다>을 읽어보지 못한 상태에서 이 책을 읽어서, 그 책도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장 허술했던 점은 교육과정-수업-평가의 일체화와 과정중심 평가이다. 이 책에서 불일치 유형을 4가지로 소개했는데 거의 모든 유형에 다 해당되고 특히 평가까지 매끄럽게 연결되지 못했던 점이 가장 크게 보였다. 수업은 자유롭게 했지만 평가는 학년에서 정해 나이스에 올린대로 시행하다보니 의미가 퇴색되는 경우들이 있었던 것 같다. 또한 피드백을 교실 내에선 그때그때 하지만 그게 가정에 전달되기에는 한계가 많았던 것 같다. 그 부분에 좀 고민을 해봐야되겠다. 또 내 성격상 숲을 보지 못하고 개별 나무만 들여다보는 경향이 좀 있다. (전체를 조망하는 능력이 좀 부족하다고 생각함) 학기 시작 전에 숲 지도를 한번 그려보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이걸 능력있는 이들과 함께 하면 상당히 유익하고 통찰을 주는 시간이 될 수 있다.

이 책의 전편은 이론적인 내용인 것 같고, 이 책은 제목에 –실천편 이라는 단서가 붙어있어, 전체 1,2부 중 2부는 저자샘들의 실제 사례로 구성되어 있다. 초, 중, 고 사례가 골고루 들어있는데, 이 부분은 관심있는 내용만 훑어 읽었다. 연구하시는 선생님들이라 그런지 스케일도 크고 내용도 충실하다. 앞에서 내가 본능적으로 했다고 한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다음 학년도부터는 시작에 앞서 전체 조망과 개요 작업을 먼저 하고, 디테일은 실행과 함께 채워나가면서 교사 교육과정을 진짜에 가깝게 한번 운영해 보고 싶다. 그때 이 책을 다시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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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용호동에서 만나 - 제13회 권정생문학상 수상작 창비아동문고 319
공지희 지음, 김선진 그림 / 창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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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오랜만에 단편집을 너무 재밌게 읽었다. 아이들 책을 고르는 교사의 눈으로 살핀 게 아니고 그냥 독자로 읽었다. 그러고보니.... 아이들이 좋아할 책인지는 모르겠다. 아이들도 보는 눈과 취향이 다양하니 각자 흥미와 느낌에 차이가 있을 것이다. 어쨌든 나는 참 재밌었다.

제각기 떨어진 이야기들을 모아만 놓은 단편집이 아니고 ‘용호동’이라는 공간적 배경을 함께 하는 작품들로만 구성된 책이다. 용호동은 재개발되고 있는 동네다. 작가님이 보신 실제 어떤 동네가 모델이 되었을 것이라는 짐작을 해본다. 재개발 하면 들고 나는 사람들이 있다. 새롭게 단장한 곳에는 낯선 사람들이 주로 들어와있기 마련이고 오래 살던 사람들은 그곳을 두고 더 주변으로, 더 싸고 허름한 곳으로 밀려난다. 일명 젠트리피케이션이다. 그런데 이 책은 밀려나는 이들과 들어오는 이들의 갈등을 부각시키려 하지 않았다. 언제 떠날지 모르지만 그곳을 지키고 있는 찐 용호동 주민들의 이야기를 주로 담았다.

용호동은 기찻길이 지나가는 동네다. 나도 어렸을 때 경춘선이 지나가는 동네에 살았었다. 그 기찻길을 걸어 학교에 가기도 하고 동네 아이들과 놀기도 했다. 칙칙폭폭 기차가 와서 옆길로 내려서면 내 옆으로 기차가 날 휩쓸어 버릴 듯 지나가기도 했었다. 요즘 엄마들이 보면 기겁할 일이지만.... 지금은 그 동네의 기차역은 없어졌고 산책로와 문화공간 등이 생긴 것 같다. 그때 이사하지 말고 버텼으면 지금쯤 좋은 집에서 살았을지도 모른다고 말하곤 한다.^^ 용호동도 비슷하다. 도시가 복잡해지면서 철도는 땅속으로 들어가고, 녹슨 철길은 새로운 명소가 되어 ‘용트럴파크’라 불리게 된다.

용트럴파크 맞은편에는 정우네 집이 있고, 집 앞에는 오래된 벤치가 있다. 얼마전부터 여기를 애용하는 노숙자 아저씨가 있다. 정우가 왜 집에 안들어가냐고 묻자 “지금은 표류 중이거든.”이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그 벤치를 뗏목이라 표현한다. 어느날 보니 그 ‘뗏목’이 쇠칸막이를 박은 다른 벤치로 교체돼 있었다. 뗏목조차 잃은 아저씨는 이제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아저씨가 부르는 노래 “사람들은 벤치, 나무, 길을 하나씩 가지고 있어....” 이 가사의 의미를 음미해보고 싶다. 이 단편의 제목은 「벤치 아저씨, 표류하다」였다.

「안녕, 단팥죽」은 아주 달콤하고 향기로운 이야기였다. 정우 친구 석이가 살던 집은 이제 ‘까페 안녕’으로 바뀌었다. 이번 이야기는 그 까페 사장 차무진 씨 이야기다. 그리고 그 동네에 오래 산 소복 할머니의 이야기. 신세력과 구세력의 갈등이 아니라 서로에게 호의를 베풀고 함께 동업하게 된 이야기가 새롭고 따뜻해서 좋았다. 그리고 단팥죽을 파는 까페. 아이디어도 좋은 것 같다. 팥죽을 먹으러 식당을 찾아가게 되진 않는데, 까페에서 판다면 나도 먹어볼 것 같아서.^^

「수리수리 가게」는 수리수리 마수리~ 마술과 관련있는 가게가 아니다. 버려진 물건들을 ‘수리’하는 가게다. 거기서 홍비는 낡아빠진 옛 인형이 생생하게 살아나는 마법을 체험한다. 아, 그러고 보니까 수리수리는 다중의 의미를 담은 작명! 그리고 그 되살아난 인형들을 가지고 마을 축제에서 공연을 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고마움에 가까운 호감을 느꼈다. 정말 인생 멋지게 사는 사람들이다.

「달구는 시속 3킬로미터로 달린다」에서 달구는 사람이 아니다. 유아차를 개조한 할아버지의 운송수단이다. 거기에 둥절이라는 개가 따라붙어 셋이 동네 일주를 하는 이야기다. 그 일주에 할아버지의 하루가 담겼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할아버지는 귀한 일을 하는 존재다. 시속 3킬로미터의 속력 때문에 때로 큰 차들에게 욕을 먹지만, 할아버지는 화내지 않는다.

「b의 낙서」의 화자는 구이구이 식당 집 딸이다. 구이구이 식당은 앞의 다른 작품에 나온다. 이렇게 이 책은 공간과 인물들이 살짝씩 겹치면서 연결성을 보여준다. (마지막 작품 「용호 슈퍼」도 그렇다.) 이 작품은 그라피티를 소재로 했다. 관심있던 분야가 아니어서 이 이야기에서 새롭게 보게 됐다. 이 책에서는 이렇게 자유로운 예술인들이 많이 나온다. (물론 돈은 안되겠지... 그게 문제....ㅠ)

마지막 작품 화자는 「용호 슈퍼」 아들이다. 인근 슈퍼들이 다 문을 닫거나 편의점으로 전향했지만 끝까지 버티고 있는 엄마는 가게 운영이 어렵지만 그래도 마음 퍽퍽하지 않게 살아간다. 귀신손톱 형이 유통기한 다된 것들만 용케 골라 반값 할인을 해달라고 할 때 심정 상할 만도 한데 흔쾌히 해준다. 회전이 잘 되지 않으니 유통기한 임박 제품은 자꾸 나올 수밖에 없고 매일 그런 걸로 끼니를 해결해야 되어도 그러려니 한다. 얌체같고 쪼잔하던 귀신손톱 형은 늘 그런 건 아니었다. 어떤 날은 돈이 생겼다며 정상 제품을 사먹는다. 알고보니 귀신손톱은 기타를 치기 위한 거였고 형은 작곡과 연주를 하는 사람이었다. 아이고야~~~ 예술은 배고프다더니...... 형은 슈퍼 앞 공터에서 버스킹(?)을 하고, 지나가던 사람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연주를 감상하며 어떤 이들은 기타 케이스에 지폐 한 장을 놓고 간다. 형은 이제 뻔뻔하게 저녁도 얻어먹는다. 근데 내가 슈퍼집 엄마라도 이 청년이 오면 밥이랑 찌개 퍼줄 것 같다. 맛있게 먹어주는 것도 복이거든.... 근데 이 청년이 뭐해먹고 살지는 걱정이다. 그냥 밥만 안굶고 살기를 바란다면 큰 걱정은 아니겠지. 이 작품의 도입에서 “지금도 밥은 먹고 살잖아요?” 라는 대화가 나오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밥은 먹고 사는데, 우리는 불안에 대한 보험을 드느라 다들 힘든걸까?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욕심 때문인걸까?

이렇게 6편의 단편을 다 읽었다. 꽤 오래 전 <영모가 사라졌다>만큼의 흥행작은 나오고 있지 않지만 공지희 작가님의 필력은 건재하다고 생각되었다. 특히 프랑스 가수의 노래라는 ‘벤치, 나무, 길’이라는 노래를 OST로 깔아놓은 듯한 구성이 인상적이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노래라 궁금하고 내 인생에서 벤치, 나무, 길을 성찰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이 책을 학급에서 함께 읽거나 하진 않을 것 같지만 뭔가 통할 것 같은 친구를 만난다면 권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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