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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어부 챔피언 ㅣ 바람어린이책 20
남온유 지음, 임윤미 그림 / 천개의바람 / 2022년 9월
평점 :
단편집인 줄 모르고 책을 골랐는데 펼쳐보니 다섯 편의 이야기가 들어있었다. 굳이 키워드를 찾는다면 ‘가족’이라고 할까? 넓은 범위의 가족이다. 그 안에는 마음을 나누는 동물이나 이웃도 포함된다.
표제작이자 첫 편인 「도시 어부 챔피언」은 소재가 아주 새로웠다. 도시의 실내 낚시터. 나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고 낚시 자체에 전혀 관심이 없어서 작품을 읽으며 아 이런 곳이 있구나 했다. 연우는 여기에 회원권까지 끊어놓고 다니며 챔피언이 되어 경품을 탄 적도 여러번이다. 그러다 어느 날 황금 붕어 한 마리를 받아와 어항에 넣고 키우게 된다. 사냥꾼이 반려인으로 전환된 순간이라고 할까. 잡아야 할 대상이 보살펴야 할 대상으로 바뀌자 마음도 말도 행동도 달라진다. 이야기가 행복하게 진행되지는 못하지만....ㅠ
사람들의 취미와 쾌락을 위해 이용되는 생명들은 아주 많고, 실내 낚시터 등등도 그런 모습이 아닐까 생각된다. 여러 번 잡혔다 놓아졌던 황금붕어의 입 주변에는 상처가 많았다. 낚시터 사장님은 “걱정하지 마. 물고기들은 아픈 걸 잘 못 느낀대.” 라고 하셨지만 정말 그럴까? 사람들이 마음의 짐을 덜고 싶어서 넘겨짚어 말하는 건 아닐까? 얼마 전 가족 생일에 횟집 정식을 먹었는데 그중 해산물 접시에 머리와 꼬리만 빼고 껍질을 벗긴 생새우가 놓여 있었다. 근데 그걸 집어들려고 하자 펄떡펄떡 뛰더라는....ㅠㅠ 그런 먹거리들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작품 결말에 연우가 외친 말 “아저씨, 물고기도 상처가 나면 아파요. 아저씨가 잘못 아신 거라고요!” 이 말을 사람들이 좀 더 고려하면 좋겠다.
두 번째 「어쩌다 화해」는 아파트 이웃 간의 이야기다. 코로나로 재택근무와 원격수업을 하는 배경이 담겨있다. 아래층 버럭 할아버지는 계단에 쓰레기를 버리는 범인을 우주라고 단정하고 호통을 치셔서 우주는 억울하기만 한데.... 진짜 범인을 잡으려는 과정에서 알게되고 친해지는 이웃들. 그리고 진범은 과연 누구일까? 서로의 형편을 알기, 양해하기, 이런 것들은 이미 우리들과는 너무 멀리 떨어져버린 것은 아닐까.
「인하가 울던 날」의 인하는 잘 울지 않는다. 친구들이 로봇 멘탈이라고 부를 정도로. 하지만 그건 인하가 덮어놓은 방어기제 때문이다. 터질까봐 두려워 덮어놓은 감정. 그건 그대로 덮어놓기만 해서는 안 되는데.... 인하가 판타지에서 본 것들, 그리고 인하가 울던 날, 인하의 마음은 조금 시원해진다.
「포포랜드에서」도 앞 작품과 유사한 슬픔이 담겨있다. 인하는 엄마의 부재를, 예준이는 아빠의 부재를 겪어야 한다. 인하 이야기에서 엄마와의 시간이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는 것과 달리 이 작품에서는 아빠와의 마지막 하루가 주된 이야기로 나온다. 그걸 함께 한 독자는 더 슬프다. 마지막으로 하지 못한 말, "알러뷰, 마이 대디"가 더욱 아쉽다. 하지만 아빠는 모르시지 않을거야. 그 말을 삼킨 너의 마음을....ㅠㅠ
마지막 「화요일의 전쟁」에 가장 감정이입이 되었다. 화요일은 분리수거일. 미니멀리스트를 자처하는 엄마와 내 사전에 버리는 건 없다는 할머니의 전쟁. 사실 난 게을러서 실제로는 못버리면서도 마음으론 전적으로 엄마편. 버린거 기어이 다시 주워오는 할머니 짜증남. 그 사이에 '욕망노트'를 쓰는 도운이가 있다. 소비에 대한 욕망에 몰두해 살아가는 현대인의 표상이라고 하겠다. 이처럼 세 극단을 대표하는 가족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 도운이의 욕망노트에 변화가 왔듯이 이 가족에게도 뭔가 절충의 묘가 생길 듯하며 이야기는 끝난다.
난 셋중의 그 어느쪽도 아니고 가운데 어디쯤이다. 미니멀리스트가 가장 좋아보이긴 한데 그렇게 살진 못하고, 소비욕망이 크진 않지만 그래도 돌아보면 굳이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꾸역꾸역 사면서 살고있는 것 같다. 나처럼 사는 취미 없는 사람도 이고지고 사는 걸 보면 많이 사면서도 깔끔한 사람들은 대체 얼마나 버리는 걸까. 그 버린 것들은 연기처럼 사라지진 않을 터. 이제 지구가 버텨낼 수 없는 수준에 와 있다. 하지만 이 세상 시스템은 계속 생산하고 계속 소비하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도록 되어버렸으니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을까. 이 마지막편은 가족의 이야기를 넘어서 나에게 이런 근심을 다시 깨우쳤다.
선명한 이미지의 표지와 걸맞은 첫편부터 감정이입하게되는 마지막편까지, 인상적인 작품들로 꽉 채워진 단편집 또 한 권을 알게 됐다. 4,5학년 정도에 권해주면 적절할 것 같고 주제로 봤을 때는 6학년도 괜찮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