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룡 반점 특별 수련 저학년은 책이 좋아 24
예영희 지음, 신민재 그림 / 잇츠북어린이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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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학년은 책이 좋아시리즈인데 주제 상으로는 고학년에게 읽히고 싶은 마음이다. 그럼 최대한 끌어올려서 3학년 권장이라고 해보자.^^

 

소룡반점이라는 제목처럼 이소룡을 추앙하는 이들이 나오는 것이 특징이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노랑 추리닝과 함께. 사실 나는 무술영화를 싫어해서 이소룡 영화를 한편도 안봤기 때문에 노랑 추리닝이 유명한지도 몰랐었다. “아뵤오~” 하면서 엄지로 콧잔등을 쓸어내리는 동작은 한참 유행했었기에 기억이 난다. 어쨌거나 나는 이소룡에 대한 향수가 전혀 없기에 그것 때문에 구미가 당기거나 하진 않았다. 아이들도 그렇겠지 뭐. 나보다 더 모를 테니까.

 

고수시 쌍룡동에 이소룡 같은의인이 출몰한다는 내용이 세상에나 그런 일이에 방송되었다. 같은 반 아이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우영이는 동네 중국집 소룡반점아저씨에게서 낌새를 발견하고 그에게 무술을 가르쳐 달라고 조른다. 그또한 노랑 추리닝을 입고 있다.

 

우영이의 사부가 된 중국집 사장님이 주신 미션은 양파까기일 뿐이다. 그게 수련이라고? 약수터까지의 아침 달리기도 우영이 스스로 하는 훈련이다. 그러던 중 사부님은 또 한 명의 제자를 받아준다. 바로 우영이를 괴롭히던 재서다.

무술을 배우려면 인간의 기본이 먼저 되어 있어야 한다. 너희는 학생이고 학생의 기본은 공부다. 강해지려면 기본에 충실하도록.”

무술은커녕 우영이와 재서는 남아서 공부까지 해야 한다. 그러면서 우영이는 싫어하기만 했던 재서의 몰랐던 모습들도 조금씩 알게 되고....

 

그러던 중 젊은 노랑머리 무리들이 들이닥쳤다. 사부님의 제자들이라고 했다. 오호, 드디어 이제 제대로 된 수련을 보여 주시는가? 사부님과 형아들이 야외수련을 간다고 한 날, 우영이와 재서도 따라간다. 그 수련 현장은 바로.... 달동네에 연탄을 나르는 일이었다. 사부님이 매년 하시는 일이라고 한다. 그 일에 동참하게 된 노랑머리 형아들도 제각각 사연이 있겠지? 중요한 것은, 그들이 더 이상 주먹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고기만 등급이 있는 게 아니라 인간에게도 천차만별 급이 있다고 난 생각한다. 그중에 최하급은 남을 괴롭히면서 즐기는 인간이다. 자신의 상처를 감추기 위해 쎈척하고, 그 방식으로 폭력을 사용하는 인간도 하급이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 어디 멀리 범죄의 세계에서만 있는 게 아니라 매일을 살아가는 교실에도 있다는 사실.ㅠㅠ

 

그래서, 선행의 가치를 보여주려는 이 작품의 시도가 나는 참 고맙다. 인간은 힘에 대한 동경이 있다. 어떤 형태로든 힘을 가지고 영향력을 발휘하기를 추구한다. 그러나 가장 강한 힘은 남을 괴롭히는 힘이 아니다. 가장 부드럽고 따뜻한 선의의 힘이 가장 강한 힘이다. 그거야말로 고수의 경지인 것이다.

 

, 마지막으로 그럼 세상에나 그런 일이에 나왔던 이소룡 닮은 의인은 과연 누구인가? 소룡반점에서 켜놓은 텔레비전에서 그의 정체가 드러난다. ! 사부님인........? 누구지? 책에서 확인!^^

 

나는 태생이 쫄보라서 폭력을 사용해본 적은 없다. 그러니 아까 말한 인간 등급에서 최하는 아니라고 하겠지만.... 상급이라고 하기엔 귀차니즘과 이기주의가 나를 꽁꽁 얽매고 있지.... 아이들에게 인간 고수가 되자는 동기를 줄 수만 있다면 그걸로 인성교육은 출발한 거나 마찬가지다. 이런 주제의 책들이 재미와 문학성을 가지고 더 많이 나와서 골라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 폭력과 비행의 저열함에서 벗어나 인간 고수를 지향하는 아이들.... 생각만 해도 마음이 벅찬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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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곳에서도 안녕하기를 - 삶의 곳곳을 비추는 세 사람의 시선 문학인 산문선 2
김지혜.이의진.한정선 지음 / 소명출판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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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한 주변잡기라면 오히려 더 달갑게 집어들었을지도 모른다. 사회를 이야기하고 우리를 이야기하고 당위를 얘기하는 책이라면 썩 읽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있다. 내가 슬램덩크의 강백호 말투로 어디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내 피가 끓고 있다구!!” 할 수 있는 주제면 좋겠는데 난 이제 모가지 잡혀 출근하는 곳 아니면 집 밖을 나설 의욕도 없는 사람이라서. 이 책은 안 봐도 안다. 내가 엄청 공감하리란 걸.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다. 공감만 하면 뭐하나? 나는 여전히 집구석에 쭈그리고 있을 텐데?

 

그래도 용기를 내어 구매 버튼을 눌러보았다. 저자들의 이력을 보고 궁금하기도 했다. 한 분은 나랑 같은 교사(이게 가장 큰 이유), 한 분은 독일 거주하는 음악가(음악이 아니라 사회학을 전공한 분이던데? 이런 이력 가진 분들 신기), 마지막 한 분은 인권활동가다.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 중에 열혈 활동가는 없다. 이런 분들 얘기는 책으로 접하는 수밖에....

 

독일 거주 음악가인 김지혜 님의 글이 가장 먼저 나온다. 이분의 글에 가장 많이 나오는 내용은 소수자,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제도와 책임이다. 산재로 죽는 사람들의 비율이 대한민국은 이토록 높은데, 왜 법과 제도를 정비하지 않으며 정치인들은 나몰라라 하는지 그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다. 사회 격차를 줄이면 모두가 안전망 안에 들어올 수 있을텐데 왜 그런 노력을 하지 않는지에 대하여 분노하며 지적한다. 말만큼 쉬운게 아니겠지... 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내게 부끄러움을 주는 글들이었다. 당연히 쉽지 않다. 하지만 역사는 어려움을 뚫고 발전해오지 않았던가. 문제의식을 느꼈다면 현실적으로 바뀔 때까지 노력하는 것이 사회구성원들의 역할이다.

 

요즘 느끼고 있던 것과 맞아떨어져서 특히 공감되었던 글은 정치인을 지지하는 방식이라는 글이었다. “누군가 내게 한국 사회의 여러 문화 중에서 지양되어야 할 것 하나를 꼽아 보라고 한다면 정치인을 지지하는 모임을 없애야 한다고 서슴지 않고 말하고 싶다.”(67) 이 말은 바로 묻지 마 지지에 대한 일침이다. 정치인은 덕질의 대상이 아니다. 조건없는 열광도 비판이 실종된 동정도 모두 무익하다. 중립적인 태도로 그의 행보에 따라 지지나 비판을 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진영에 따른 묻지 마 지지가 특히 강하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음) 어떤 당이라면 나라를 팔아먹었어도 뽑아줄거야~ 라는 인터뷰 보도가 한동안 회자되었듯이.... 이쪽은 절대 되고 저쪽은 절대 안되고.... 이런 태도가 정치발전의 발목을 잡고있는 것 아니겠나. 그리하여 우리나라 정치의 수준이 이렇게 엉망진창이 된 것 아닐까. 아니, 우리나라에 훌륭한 사람들 많은데, 왜 정치판에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거야? 괜찮은 사람이 전체의 평균비율 정도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왜 괴상하고 찌질한 인간들 모아놓은 집합소 같냐고! 진영논리를 부수고 우리가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태도를 갖추어 나간다면 점차 정상적이고 괜찮은 사람들도 인력풀 안에 들어오지 않을까! 기대를 해보고 싶다.

 

이어서 나오는 거꾸로 가는 한국 사회의 시계에서도 정치를 보는 우리 사회의 저열한 시각을 꼬집는다. 정치인을 검증할 때 필요한 기준은 위법행위 여부와 세계관이다. 그러나 저열한 언론들은 상식적인 것들은 제쳐두고 자극적인 것에 골몰한다. 바로 사생활이다. 그리하여 보통의 사람들이 환멸을 느껴 머리를 흔들도록 만들어버린다.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하는 한국과 독일의 차이가 살짝 엿보이는 글도 있었는데, 우리나라는 주로 인간이 빠져있다. 무엇을 위한 발전인가? 우리는 수없이 질문해야 한다. 여기에 답이 없다면 굳이 왜 달려야 할까? 걸음을 멈출 필요도 있다는 걸 생각해야 한다.

 

두 번째 저자는 고등학교 국어교사인 이의진 님이다. 이분의 단독저서를 재미있게 읽었다. 이 책에서는 고3 교사로서 느끼는 문제의식이 더 많이 들어가 있다. 나와 학교급은 다르지만 교사로서 공감과 위안이 많이 되었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이야기를, 그래도 역량있는 작가로 활동하시는 분이 이리 써주시니 그래도 조금은 읽히겠구나 하는 생각 때문이다. 교육기관을 거치지 않은 사람은 없다. 학생으로서 학부모로서. 그러니 모두들 자신이 무척 안다고 생각하고 그게 전부인 것처럼 생각한다. 사회에 무슨 문제가 터졌을 때 그게 학교에서 안 가르쳐서 그렇다며 학교 탓을 하기는 얼마나 쉬운가. 그래서 너도나도 교육과정에 참견한다. 그게 사실은 이미 교과목 안에 다 들어있다는 사실을 찬찬히 살피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다양한 의무교육 시수들이 들어오고 만원 줄테니 와퍼세트 두 개 사고 2천원 남겨오라는 요구를 실현하느라 교육과정은 누더기가 된다.

누구나 교육전문가를 자처하는 시대다. 하지만 교육은 전문적인 영역이다. 쉽게 건드리면 건드릴수록 정작 진짜 배워야 할 것을 배우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제발 초중고 교육과정에 대해 어설프게 아는 국회나 시민단체 등이 왈가왈부하거나 건드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강제된 의무교육 시간을 국어 교과 진도표 안에 억지로 욱여넣으면서 이런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108~109)

 

공교육이 추구하는 가치와 욕망이 반영된 각 개인들의 가치가 같을 수는 없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공교육의 목표가 대입일 수는 없다. 대입도 그냥 대입인가? 명문대 입학이지. 공교육 대상자가 몇 명이며 그중에 소위 명문대 입학 자리는 몇 자리인가? 그걸 추구하는 게 공교육의 역할일 수가 어떻게 있겠냐고? 그런데 그걸 못해낸다고 비난을 퍼부어대는가 하면 한쪽에서는 어항 영상을 무한 돌려대면서 공교육이 창의성을 말살한다고 욕을 해대니 뭐 어쩌라는 거임? 이의진 님은 고3 담임을 10년 이상 계속한 대입 지도의 베테랑 교사다. 그가 진학지도를 성심으로 하면서도 붙잡고 가는 공교육의 가치에 대해서 미래사회는 어떤 아이들을 원하는가?(부제:뭣이 중한디?)라는 글을 꼭 읽어보시기 권한다.

 

코로나로 인한 현장의 혼란과 원격수업의 소회에 대한 글을 읽으며 그때의 고생이 떠올라 울컥했다. 원격수업도구나 플랫폼에 대해서 전혀 모르던 내가 그걸 운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주어진 시간은 한 달도 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2주쯤 되었나?) 심지어 계획조차 미리, 정확히 알려주지 않았고 필요한 것들이 제때 제공되지도 않았다. 안개속에서 더듬더듬하며 동학년 선생님들과 구하고, 배우고, 협업하고, 확인하고, 피드백하는 모든 과정을 알아주는 사람은 없었다. 뭐 그걸 바랐던 적도 없다. 당연히 해야될 일이라 생각하니까. 다만 애먼소리 하면서 힘빼는 사람들은 없었으면 좋겠다.

밖에서 보는 것보다 현장은 훨씬 역동적이며 능동적이다. 이 많은 인원들이 교육부에서 달랑 몇 페이지의 글로 내려보낸 일들을 몸으로 부딪혀 가며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을 오로지 맨땅에 헤딩하는 정신으로 부딪히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116)

그해 나에게 배정된 교실은 일반교실과 좀 다르게 교사 자리가 뒤에 있고 조금 분리된 느낌의 가벽이 한쪽에 세워져 있던 특이한 공간이었는데, 그 공간을 떠올리기만해도 거기서 만들던 수많은 수업과 시도들이 생각나 흠칫 몸서리가 쳐지곤 한다. 그해 협업하던 후배들과는 아직도 뗄 수 없는 사이로 지낸다. 그런 나에게 이 글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참, 고마웠다. 물론 나보고 고마워하라고 쓰신 글이 아님은 잘 알고 있다.ㅎㅎ

 

그의 마지막 글 징검다리 게임이 말해주는 것을 읽어보면 앞의 저자 김지혜 님의 글들과도 통하고,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가 보인다. 우리가 함께 안녕하려면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할까?

 

마지막 저자 한정선 님은 공감능력이 매우 뛰어나신 분 같다. 타인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느낀다. 나는 이 민감성을 많이 차단했다. 아픈 건 싫기 때문에.ㅠ 그건 내가 이 사회에서 그래도 살만한 위치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뜻하겠다. 여성이긴 하지만 큰 차별은 없는 직종에서 일하고 있고, 풍요롭지는 않았지만 안정적인 아동기를 보냈고, 장애인도, 성소수자도, 빈곤층도 아닌 내가 타인의 아픔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이 책을 읽을까말까 망설였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냥 이렇게 살아도 별 문제 없는데 괜히 들쑤셔서 심란해지고 싶지 않은 마음...

 

하지만 이분의 글은 그렇게 살아도 정말 별 문제 없을까요? 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내게 던진다. 가장 인상적인 글은 불평등한 평정심이라는 글이었다. 평정심이란 외부의 자극에 동요되지 않는 마음을 뜻하며 누구나 이런 상태를 원할 것이다. 하지만 그 가능성이 누구에게나 공평할까? 외부의 자극이 누구에게나 비슷할까? 누군가는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야 하거나 거의 불가능한 지경이라면, 그 사회는 평등하지 않다. 그럴 때 그들의 편에 가까이 서서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 꼭 필요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집구석 쭈그리가 이 훌륭한 주제의 책을 다 읽었다. 읽었다고 당장 달라지는 것은 없다. 저자들의 어떤 곳에서도 안녕하기를이라는 마음에 같은 마음 하나 포개는 것 외에는. 거기에서 반 발짝만 더 나간다면 내가 그동안 무심코 하던 말이나 행동이 혐오에 해당된다는 것을 알아채기, 그래서 입방정으로 남에게 상처주기 같은 것을 좀 덜 하게 될지도 모른다. 부디 진정성으로 쓴 저자들의 글이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다가가 앉기를 바라며, 리뷰로라도 마음을 보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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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엄마 안녕, 로마 웅진책마을 116
김원아 지음, 리페 그림 / 웅진주니어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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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따라서 떠오른 책이 있었다. 최나미 작가님의 엄마의 마흔번째 생일이다. 당시 아주 새로운 내용이었고 많은 곳에서 읽혔고 사랑받은 책이었다. 생각난 김에 검색해보니 첫 출간이 2005! 이제 거의 20년이 다 되어가는구나. 그래도 세상이 아주 조금은 바뀌었나보다. 당시엔 나도 우와 이런 소재, 이런 결말? 하면서 놀라워했는데, 지금 나왔다면 그렇게까지 특별한 느낌은 아닐 것 같으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여성을, 엄마를, 가족을 바라보는 눈이 그때와 크게 달라졌냐면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아직도 고정관념은 존재하고 나도 예외는 아니다.

 

김원아 작가님의 이 책도 가족의 문제, 그중에서도 자신을 찾기 위해 길을 떠난 엄마와 가족의 관계를 조명한다. 가족 간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는 시시콜콜히 설명하지 않았다. 대신 배경의 스케일이 커졌다. 로마! 승아는 2년만에 엄마를 만나러 로마로 떠났고, 로마에서 겪는 일들이 이 책의 대부분을 이룬다.

 

아빠와 갈등을 겪던 엄마는 2년 전 승아에게 어떤 설명도 없이 홀연히 떠나버렸다. 남은 아빠는 책임감이 강하고 딸에 대한 애정이 극진한 사람이었기에 최선을 다해 승아를 키웠다. 2년이 지난 어느날 승아는 엄마에게 난데없는 엽서를 받는다. “엄마 로마에 있어. 놀러 와.”

 

복잡한 감정을 안고 승아는 홀로 로마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런데 그 긴장된 여행길에 미리 나중나와 있어도 부족할 엄마가 늦게 오질 않나, 잘생긴 외국남자와 함께 그의 차를 타고 오질 않나, 한국에선 입지 않던 과감한 패션을 하고 있질 않나.... 승아의 마음이 더 꼭꼭 닫혀버릴 상황들만 눈에 띈다. 엄마는 상처받고 힘들었을 승아에게 미안해할 생각이 없어보인다. 매일 본 듯 무심하며, 당당하고 자유롭다. 자신의 일(로마에서 여행 가이드)도 멋지게 하고 있다. 승아만 속을 끓이는 듯하다.

 

승아는 엄마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으로 여길 왔는데 언감생심, 어른들 세계의 벽은 높았다. 승아가 어찌 해보겠다는 생각은 어림없었다. 끝내 승아는 최후의 방법을 쓰고 만다. 자신의 안위에 대한 걱정을 담보로 한 작전이었다. 자식에 대한 걱정이라면 어느 부모가 한마음이지 않을까? 극약처방이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그 방법도 어른들의 마음을 돌리지는 못했다. 엄마는 로마에 남고, 승아는 다시 한국행 비행기를 혼자 탄다. 그렇다면 서사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아마도 로마에 올 때와 떠날 때 승아의 마음과 생각이 조금은 달라졌다는 것....?

 

부모도 부모가 처음이라는 말을 흔히 하듯이, 어른이라고 완전하지 않다. 완전하기는커녕 모순과 허물투성이인 것이 인간이다. 이 책에서 엄마가 자리를 지키지 못했고 아빠에게도 알고보니 좋은 모습만 있진 않았던 것처럼. 물론 부모라는 이유로 사람들은 많은 수양(?)을 하며 산다. 말하자면 함께 성장하는 것이다. 일방적인 희생하고는 의미가 조금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머리가 조금 큰 자녀라면, 이런 부모의 모습에 좌절하거나 화내지 말고 쿨하게 인정하는 편이 훠얼씬 낫다. 엄마의 인생은 엄마의 인생, 나의 인생은 나의 인생. 서로 대신 살아줄 수 없으니.

 

로마에서 만난 여행객 중에 중요한 조연이 있었다. 엄마와 둘이 여행온 지훈이. 지훈이는 승아가 갖지 못한 엄마와의 시간을 갖고 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끔찍하게 싫어하고 있는 중이다. 말하자면 엄마랑 좀 떨어지는 게 소원이다. 이쪽도 이해가 간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중간이 없을까.^^;;;

 

난 독립적이지 못하고 걱정이 많은 성격이라 가족을 벗어나 단독질주할 생각은 평생 해보지 못했다. 가족 공동체에, 그리고 특히 어린시절 양육에 큰 의미를 두는 편이다. 하지만 이 책의 결말에 불만은 없다. 승아는 앞으로도 좀 쓸쓸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쓸쓸함을 독립적인 감성으로 잘 승화시키길 바란다. 그러면 나보다 훨씬 멋진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우리 생각대로 안되는 일은 인생에 수없이 많이 닥쳐온다. 그걸 상대하는 모습, 거기서 삶의 자세가 나온다. 승아와 엄마의 다음 만남은 훨씬 더 편안하고 즐거우리라 믿어본다. 행복하지 못할 건 뭔가.


표지에 캐리어를 끌고 노을지는 저녁길을 혼자 걷는 승아의 모습이 우리 모두의 모습인 것 같아 살짝 눈물겨운 느낌이 든다. 쓸쓸하지만 아름답잖아. 힘을 내어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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띵띵이가 그랬어 바람그림책 133
윤진현 지음 / 천개의바람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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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작업도 함께하시는 그림책작가 윤진현 님의 그림책에선 내용과 그림 모두에 아이디어가 넘친다. 재미있는 발상, 그리고 그것을 구체화하는 그림, 그 안에 담긴 유머와 따뜻함. 이것이 작가님 그림책의 특징인 것 같다. 특히 그 디테일 속에 깨알재미들이 잔뜩 숨어있다. 나처럼 그림을 꼼꼼히 못보는 사람들은 손해다. 그렇지만 아이들에게는 그런 걱정을 안해도 되겠지.^^

 

띵띵이가 그랬어.” 라는 핑계를 만날 대는 아이가 있다. 옷에 흙을 잔뜩 묻혀 들어온 날도, 실내화를 잃어버리고 온 날도, 밥 먹기 전에 군것질을 하는 날도, 책을 잔뜩 어질러놓은 날도 띵띵이를 끌어들인다. 띵띵이는 누구일까? 제목만 봤을 때는 아무개와 같은 불특정의 대상을 말하는 줄 알았다. 나는 보통 땡땡이라고 하는데.... 하지만 좀 달랐다. 아이가 친구에게 하는 말을 보니. “나한테는 띵띵이라는 비밀 친구가 있어.” 이건 내 안에 있는 또다른 나를 말하는 게 아닐까. 오늘은 이런 띵띵이. 내일은 이런 띵띵이. 내 안에 띵띵이는 많기만 하다.^^

 

흙투성이인 아이가 거실에 흙발자국을 찍으며 들어온다. 엄마는 당연히 놀라고 화난 표정으로 어디서 뭘 하다 온 거냐고 묻겠지? 그때부터 띵띵이 타령 시작이다.

띵띵이가 그러는데...... 땅속 마을 보물 가게에 새로운 게 많이 들어왔대. 그래서 잠깐 놀러갔다 왔어.”

그리고 펼쳐진 장면에 작가님 특유의 디테일과 유머가 가득이다. , 이런 그림 한 장 그리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그림에 소질이 없는 나는 감탄만 하고 있는데, 하긴 교실에서도 머릿속에 든 걸 쓱쓱 빨리 그리는 아이가 있기는 하더라만.... 그렇다고 쳐도 대단하다. 구석구석 작은 그림 하나에도 표정과 동작, 상황이 살아있다. 땅속 마을에는 다람쥐 씨앗 가게와 거미 의상 가게, 개미 사탕 가게, 두더지 보석 가게.... 등등이 있다. 각 동물들이 하는 일과 말들이 너무 재미난다. 이후 나오는 모든 그림들이 그렇다.

 

띵띵이 타령을 하는 아들에게 엄마가 하는 반응도 인상적이다. “거짓말 하지 마!” “어디서 헛소리야!” 하기가 쉬울 텐데 이 엄마는 그러지 않는다. 눈높이 반응이라고 해야 할까? 비슷한 맥락으로 대화를 맞춰 준다. 그렇다고 끌려가는 건 아니고 엄마의 요구를 정확히 담아서. 어른들이 주목할 포인트는 여기인 것 같다. 예를 들면 아이가 냉장고를 열어놓고 시간을 끌며 얼음 나라에 소동이 나서 그걸 구경하는 중이라고 하자 엄마는 이렇게 말한다.

정말? 어떤 소동일까? 그런데 여기도 소동이 나겠는걸. 얼음 나라 구경하느라 네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이 다 녹겠다.” 물론, 그림책에 표현되지 않은 엄마의 인내의 시간과 부들부들 주먹 꽉이 있을 것 같지만.... 그래도 유머와 여유는 중요해. 그것이 많은 상황을 해결하니까.

 

마지막으로 엄마도 그건 말이지, 엄마 친구 뿅뿅이가 그랬어.” 하면서 끝나니 더욱 재미있었다. 이렇게 엄마와 아들이 서로를 이해해가는 과정으로 생각해도 될까? 한쪽만 이해하라는 법은 없으니까 말이야. 물론 띵띵이가 안내한 세상에 훨씬 많은 상상이 담겨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겠다. 한마디로 이 책에는 아이들의 상상이 담겨있다. 좀 노골적으로 말하면 저녀석 머릿속에 뭐가 들었는지 보고 싶네!” 할 때의 그 머릿속? 그걸 그려내시다니 작가님은 천재가 아닙니까? 너무 깨알같아서 저는 보기도 바빠요.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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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랑 안 맞아! 신나는 책읽기 62
전수경 지음, 윤봉선 그림 / 창비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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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름을 보고 집어든 책이다. , 우주로 가는 계단작가님 맞나? 맞네. 그런데 분위기가 완전 다른 책이다. 두 번째 책 별빛 전사 소은하까지는 비슷한 느낌이 이어지더니 이 책에서는 완전히 바뀌었다. 일단 저학년 동화라는 것부터. 솔직히 난 전작 두 편의 느낌이 워낙 강렬해서 이 책은 아주 평범하게 느껴졌다. 근데 평범한 게 나쁜거야? 그렇지 않다. 늘 힘만 주고 있을 수는 없듯이 작품도 강약 조절을.^^ 그리고 내용과 느낌이 일상적이라고 해서 술술 쉽게 써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안 써봐서 모르지만 이런 일상 동화가 더 쓰기 어려울지도.

 

아빠랑 안 맞아!” 이 제목에 공감하는 어린이들이 꽤 많지 않을까? 물론 엄마랑 안 맞아!”도 많겠지만.... 많은 아빠들이 자녀들과 맞추는 일에 실패한다. 이 책도 많은 부분 그 실패기에 해당된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래서 읽는 내내 아빠랑 안 맞아!” 라는 불평을 보게 되지만 그건 심각하다기보다 귀여운 불평에 가깝다. 좌충우돌하지만 결국 행복을 향해 가는 이야기다.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 속에서도 마음에 환하게 다가오는 장면이 있었는데 아빠가 딸 하루에게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다.

참 신기해.”

뭐가?”

하루랑 같이 있으면, 평범하고 그저 그런 날도 멋진 하루가 되는 것 같아.”

아빠는 늦게 결혼하고도 한참만에 하루를 낳아서 나이가 많다. (모르는 친구들에게 할아버지 소리를 듣기도) 엄마의 파견근무를 대신해서 휴직을 하고 하루를 돌보는 중이다. 꼼꼼하지도 못하고 구멍 투성이라 하루한테 구박을 들을 지경이다. 전업주부로 사는 일상은, 뭐 다들 알다시피 잘해봐야 본전이다. 일해봐야 티도 안 나고. 그런 일상 속에서 저런 말을 할 수 있다는 데서 나는 이 작품의 빛을 보았다. 뭔지 모르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나는 이 사회에서 중요한 것이 누구의 사회적 성취나 경력에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특히 여성들이 육아 때문에 경력 단절이 되는 것은 안타깝다. 원할 때 언제든 경력이 이어질 수 있도록 의미있는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는 그것을 위해서 노력하면 된다. 부모 양쪽 모두 늦게까지 맘놓고 일하라며, 아이들을 학교에 12시간씩 잡아둘 궁리나 하지 말고 말이다!!

 

사회가 분위기를 그런 쪽으로 몰고 가자 가정에서의 양육의 가치는 땅바닥에 떨어졌다. 자녀와 함께하는 시간이 시간 죽이는 의미없는 일로 전락했다. ‘집에서 애나 돌보는루저가 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돌봄시설이 있는데 내가 왜 굳이 힘든 시간을? 하면서 본인이 돌볼 수 있는 시간에도 아이와 떨어져 혼자 자유로운 시간을 추구하는 부모들도 많아졌다.

 

이런 시대에, 저 늙수구레한 아빠가 1년 회사를 쉬면서 아내도 없는 집에서 안해본 살림을 하느라 후줄구레한 운동복을 입고서 저런 말을 하다니. “너와 함께 있으면 평범하고 그저 그런 날도 멋진 하루가 되는 것 같아.” 아 정말 너무 중요해서 눈물이 날 것 같다. 내 자식이랑 있는 시간보다 더 소중한 시간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 다 큰 아이들은 말고 어린 자녀들 말이에요) 자녀들이 크는 거 보고 있으면 막 아깝지 않은가요. 이렇게 함께 하는 시간, 후줄근한 옷을 입었고, 오늘의 실적은 하나도 없고, 잘하던 것도 퇴보하는 것 같고, 그래도 조급해하지 말아요. 가장 멋진 하루를 보낸 거예요. 그보다 더 가치있는 시간은 없어요.

 

이 책의 주제가 실제로 무엇이든, 양육의 가치라고 우기겠다. 사회는 돌봄보다 양육의 가치를 높이 보고 최대한 그 방향으로 지원해 주어야 한다. 돌봄은 최후의 수단이다. 왜 멀쩡한 집을 컴컴하게 비워놓고 딱딱한 교실에 불을 밝히고서 아이들을 하루종일 살라고 한단 말이오? 아이들이 얼마나 집에 가고 싶어하는지 알아요? 어른들도 근로기준법 8시간 일하게 되어있잖아요. 끝나면 집에 안가고 싶어요? 하던거 끝나면 집에 가서 쉬고 싶은 건 모든 존재들의 공통점이라구요.

 

흥분했다.....ㅠㅠ 부디 세상을 이상하게 만들려는 자들의 획책이 뜻대로 되지 않길 빌며... “아빠랑 안 맞아!” 하면서도 서로에게 적응해가는 이 부녀의 이야기를 읽어보시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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