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 상상도서관 (다림)
황지영 지음, 정인성.천복주 그림 / 다림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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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영 작가님이 이번에는 환경재난동화를 쓰셨구나. 예상가능한 가까운 미래의 기후재난을 다룬 동화다. 엄청난 절망과 고통이 펼쳐지지만 그래도 쓰레기더미 속에서도 장미꽃이 핀다던가. 한가닥 희망만은 남겨놓고 끝난다. 그건 아이들의 웃음소리였다. 전쟁터에서도 아이들은 어울려 논다고 하지. 그런 희망. 어른들이 다 망쳐놓은 지구를 되살릴 주인공들에 대한 희망.

그런데 사실 더 심각한 것은 그런 희망을 되살릴 아이들마저 사라져가는 저출산의 현실이다. 작품에는 그것까지 다루지는 않았지만 읽는 내내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누구를 탓하랴. 어디선가 스치듯 본 내용이라 정확하지는 않은데, 젊은이들의 비혼이나 딩크의 이유를 물으면 상당한 비율로 ‘기후위기’가 나온다고 한다. 이렇게 걱정되는 세상에 자식을 남겨놓지 않겠다는 거다. 나야 이미 태어났으니 어쩔 수 없이 겨우 살다가 죽더라도.... 그 생각을 탓할 수가 없는 게, 나라도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겠다는 거다. 나 때는 결혼을 하면 자식을 낳아 가정을 구성하는 게 당연한 일이어서 별다른 가능성을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지금이라면 나도 다를 것 같다. 그러니 이 낭떠러지 그래프를 극복하려면 기후위기에 대한 희망적 전망이 꼭 나와야 할 것 같다. 어떤 노력을 해서라도 그 가능성을 꼭 열어야 한다.

‘작가의 말’에 보면 작가는 이 책이 철저히 이야기로만 남기를, 절대 이런 미래가 우리에게 오지 않기를 바라며 이야기를 썼다고 하셨다. 나도 같은 마음이다. 재난이 거대해지면 공고한 줄로만 알았던 사회시스템도 균열이 가고 결국 무너진다. 그러면 인간성이라는 것도 우스운 말이 될 것이다. 각자도생이며, 생존하려는 동물적 본능만 남을 것이다. 그건 곧 지옥이다. 이 책에서는 그 단계까지 가지는 않았기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보게 된다. 아직도 사회시스템이 작동한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평소에도 이에 대한 생각을 좀 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의 배경은 해수면 상승이 본격화 된 가까운 미래다. 고지대의 도시는 돈 많고 눈치 빠른 사람들이 이미 다 점령했고, 힘없는 사람들은 하루가 다르게 차올라오는 물을 바라보며 불안한 나날을 보낸다. 할머니와 둘이 사는 마로도 마찬가지다. 이웃들도 다 이사가고 몇 집 남지 않았다. 해안에는 침수 방지벽이 둘러쳐있고, 지정 대피소도 정해져 있지만 불안하다. 어느날 드디어 올 것이 왔다. 폭풍 해일이 몰아친 것이다. 침수 방지벽 따위는 아무 소용도 없었다. 사람들은 정신없이 산 위의 대피소로 뛰었지만 휩쓸려 간 사람들이 더 많았다. 그 난리통에 홀로 남겨진 아이를 구하려던 할머니도 마로의 눈앞에서 휩쓸려갔다. 옆집 아줌마의 독려로 마로는 구사일생 대피소에 도착했다.

수색과 구조가 이루어지고는 있지만 충분하지는 않았다. 여기서도 사회의 불평등 문제와 기득권을 가진 자들의 이기심을 보게 된다. 세상은 점점 고통스러워진다. 그래도 할머니가 아이를 구하려 하셨던 것, 마로가 할머니를 포기하지 않고 찾았던 것, 그 길을 말리면서도 친구와 아줌마가 동행했던 것 등의 서사에서 작가는 아름다운 인간성을 보여주려 하셨던 것 같다. 인간에게는 이런 면도 있는 것이 사실이니까.

후반부에 화자인 마로의 이런 말이 딱 우리의 심정이라고 하겠다.
“이번 태풍이 심한 편이었다고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난 얼마나 많은 재난을 겪게 될까... 그 생각을 하자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졌다. 이번에는 살아남았지만 계속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러려면 얼마나 운이 좋아야 할까. 나는 왜 이렇게 살얼음 위에서 살아야만 할까. 이렇게 되기 전에 막을 수는 없었을까?”
“타임머신이 있다면 과거로 가고 싶다. 가서 사람들에게 내가 겪은 일들을 들려주고 싶다. 제발 거기서 멈추라고, 제발 모든 걸 바꾸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타임머신은 없고, 세상은 앞으로만 흐른다. 되돌릴 방법은 없다.”

되돌릴 수는 없기에, 이 책의 애타는 경고가 우리에게 전달되면 좋겠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지지 않는 세상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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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니 독깨비 (책콩 어린이) 80
R. J. 팔라시오 지음, 천미나 옮김 / 책과콩나무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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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아이'와 일련의 시리즈는 이 작가의 첫 작품이라는데, 첫 작품이라기엔 믿기 어려운 정도의 완성도를 보여주며 대성공을 거두고 '원더'라는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많은 이들이 그 아름다운 주제에 공감했고, 책의 문구나 영화의 대사들이 많이 인용되기도 했다.

그 작가의 신작이 동네 도서관에 진열되어 있길래 바로 빌려왔다. 전혀 다른 결의 이야기면서 같은 방향으로 흐르는 주제가 있었다. 세상의 가치가 아무리 다양화되고 개인화되고 쿨해졌다 하더라도 우리의 근본은 선함을 추구하지 그 반대는 아닐 것이다. 친절의 가치는 이미 전작과 영화에서 극대화된 바 있다. 이 작품에선 사람들의 인연, 그것도 죽음을 초월한 인연들까지 다룬다. 그게 나같은 사람들에겐 과해서 좀 부담스럽기도 했고, 애틋하고 아름답기도 했다.

이 작품에 좀 몰입이 어려웠던 이유는 판타지도 아닌데 시종일관 등장하는 '유령'의 존재 때문이었다.주인공 소년 사일런스와 어릴 때부터 동행한 유령 미튼울. 그는 어떤 존재일까? 그 외에도 이 책엔 여러 명의 유령들이 나오는데, 그들이 단지 회상이나 추억, 마음의 위로 등의 역할로만 등장하는 게 아니라 실제 사건 해결에 너무나 결정적인 역할들을 하곤 해서, 현실감이 나지 않았다. 어떤 유령의 존재는 정말 충격적인 반전이기도 했는데, 나의 느낌은 '엥.....?????' 이어서, 이 설정 자체가 내겐 좀 아쉬운 부분이었다.

하지만 작가의 주제로 볼 때 이 설정은 뺄 수 없는 것이었겠다. 물리적 단절로 끝낼 수 없는 사랑하는 이들의 애틋하고 소중한 인연. 그건 지금의 삶을 더 소중하고 책임있게 살아야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이 책의 배경, 인물, 사건 모두 흥미진진하다. 1800년대 중반 보안관이 활동하던 시대의 미국. 위조화폐범들이 아버지를 끌고 가버린 사건. 베일에 싸인 과거를 가진 구두장이이자 사진사인 아버지와 지금은 홀로 남겨진 아들. 그 아들이 그를 태우러 온 말 '포니'를 타고 아버지를 찾으러 가는 여정이 이 책의 줄거리라 하겠다.

똑똑하고 강인한 아버지의 보호 아래 있던 사일런스에게 그 여정은 말도 안되게 험난한 것이었지만, 신비로운 말 포니와 미튼울을 비롯한 수호자들의 도움으로 드디어 악의 세력과 맞닥뜨리게 된다. 그리고 현실의 존재들로는 그지역 보안관과 부보안관. 첫 만남은 별로 미덥지 않더니만 그들은 정말 '찐'이었지 뭐야. 세상에 홀로 남겨진 사일런스에게 그들은 진정한 어른이자 가족이 되어준다.

너무 큰 슬픔도 있었고, 그에 못지 않은 위로도 있었다. 그리고 악은 그에 걸맞은 댓가를 받았다. 사일런스는 타인의 친절과 애타는 인연들의 사랑으로 잘 성장했다. 훌륭하게 짜여진 이야기였다.

개인적으로 설정에 썩 몰입하진 못했지만, 인생을 대하는 작가의 진지한 자세가 여전히 느껴져서 좋았다. 허투루 살아버릴 수 없는 내 인생과 인연의 소중함. 정성껏 살며, 나쁘게 살지 말자. 친절함은 누군가를 구한다. 좀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작가는 계속 이 말을 한다. 전작보다 배경의 스케일이 더 크고 긴박하며, 취재와 공부도 많이 해야 되었을 작품으로 느껴졌다. 원더처럼 영화로 또 제작되어도 멋있을 작품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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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환경일력 365 - 날마다 지구하자
지구하자 초등환경교육연구회 지음 / 시대인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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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력이라는 종류의 책을 처음 가져본다. 탁상형의 스프링제본이 튼튼하고 쓸모있어 보인다. 이런 외형보다도 더 쓸모있는 것은 내용이다. 365일을 환경 지식과 활동으로 채운 것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협업이라서 가능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지구하자라는 이름의 초등환경교육연구회. 이름이 참 좋다. ‘지구를 구하자라는 문장이 떠오르기도 하는 이 낱말은 땅이 오래도록 변함이 없다는 뜻이라고 한다. 훌륭한 교사모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한 장씩 넘기는 이 책은 매 장마다 간단한 본문과 한문장의 활동으로 되어있다. 예를 들면 19일에는 기후 위기라는 용어의 해설이 나오고 기후 변화에 대한 영상을 보고 기후 위기에 대해 생각해 보자라는 활동이 나온다. 그 옆에 QR코드가 찍혀있는 것을 보니 영상도 제공해 주는 것이다. 이처럼 알차게 하루하루가 진행된다.

 

매달 새로운 달의 이름이 제시되는데, 이렇게 달마다 환경과 관련된 달의 이름이 있는지 몰랐다. 1월은 기후의 달, 2월은 자원순환의 달, 3월은 공기의 달, 4월은 생태 감수성의 달, 5월은 생물다양성의 달.... 이런 식이다. 내용도 대체로 이 달의 이름과 관련되게 구성되어 있어 짜임새가 아주 좋다. 예를 들면 28일에는 음식쓰레기 분리배출을 설명하고 음식물 쓰레기로 버릴 수 없는 것은 무엇인지 찾아보자라는 활동이 제시되어 있는 식이다.

 

본문 내용은 짧고 어렵지 않아 매일 보기에도 부담이 없는데 문제는 언제나 그렇듯이 실천이다. ‘활동중에는 쉽사리 행동으로 옮기기 어려운 것들도 보인다. 당연한 일이다. 실천이 쉽다면 지구가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겠지.... 하지만 되든 안되든 지구에 필요한 일을 매일매일 하나씩 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환경문제는 교육으로도 개인의 실천으로도 어려운 점이 지속성이다. 놀라고 걱정하다가 어느새 스을쩍 잊어버리고 제자리로 돌아가버리는 관성. 그것이 문제다. 이 일력은 그런 우리를 잡아주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일년 지나면 버려야 하는 책도 아니다. 완벽하게 실천했을 리가 없으니까(?....^^) 다시 시작해볼 수도 있고, 교사라면 새 학생들과 새롭게 시작해도 좋을 듯하다. 어쨌든 신경쓰이는 일력 한 권이 눈앞에서 항상 얼쩡거리는 것은 좋은 일이다. “너 그래두 되니? 그건 아니잖아.” 라고 말해주는 존재. 환경문제는 이제 인류에게 선택이 아니고 절체절명의 막다른 골목인 바, 우리를 일깨우는 무엇인가는 꼭 필요할 것이다.

 

학급 아이들과 매일 잠깐씩의 시간을 들여 살펴보는 습관을 들이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하며 이 책을 찬찬히 넘겨본다. 물론 일력의 특성상 내용적으로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그렇게 학습의 확대가 이루어지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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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시끄러운 그림책
벤야민 고트발트 지음, 윤혜정 옮김 / 초록귤(우리학교)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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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니! 놀라운 그림책을 또 한 권 발견!! 이제까지 이런 그림책이 있었던가? 내가 그림책을 그렇게 많이 본 건 아니라서 단언할 수는 없지만 처음인 것 같다.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이 좋은 아이디어를 그동안 아무도 생각을 못했다니 말이 안 되는거 같은데? 만약 그렇다면 일종의 '콜럼버스의 달걀' 같은게 아닐까? 너무나 멋지고 재미있는 달걀이다.^^

 

'소리'를 표현한 그림책이다. 제목이 <세상에서 가장 시끄러운 그림책> 그림책이 시끄럽다니? 어떻게 표현을 했길래? 너무나 궁금해진다. 책장마다 온갖 의성어들이 춤을 추는게 아닐까 짐작했다. 그러면서, 그걸 어떻게 번역했을까 궁금했다. 아 그런데 책장을 열어보니 이런 반전이! 글자가 하나도 없어! 엥 분명히 표지에 역자가 있었는데 뭘 번역하신 거여? 서문이랑 작가의 말 정도만 번역하셨나보다. 본 내용이 시작되면서부터 글자는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 의성어의 난무는 독자들의 몫인 것이다. 작가가 아니고.

 

작가는 그저 자신이 찾은 소리들을 모아 열심히 그려주었을 뿐이다. 작가의 말에 보니 160여 가지나 되는 소리를 모으느라 가족이나 친구들의 도움도 받으면서 애를 쓰신 것 같다. 그리고 '마치 그 소리가 들리는 듯한' 장면을 한 장 한 장 그리는데 공을 들였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림책 치고는 상당히 두꺼운, 164쪽이나 되는 그림책이 탄생했다. 그 그림책은 이렇게 시작된다.

그림이 들려주는 소리를 들어 보세요.”

실제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지만, 다채로운 소리의 향연인 그림책.

 

이 책은 읽기만으로도 좋지만 아주 다양하게 활용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가정에선 형제들끼리, 혹은 부모가 아이와 함께 놀이책으로도 활용 가능하고, 교실에서는 더욱 쓰임새가 많겠다. 누구나 바로 떠올릴 수 있는 쓰임새는 당연히 의성어. 이 수많은 페이지의 어느 장면이나 수업에 활용할 수 있다. 개 짖는 소리는 항상 멍멍으로 들리지 않으며 매미 우는 소리 또한 맴맴이 다는 아니다. 전에 그런 수업을 하고 시로 써본 적도 있었는데, 그런 수업에 이 책을 활용하면 너무 훌륭한 시각자료가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 쓰기 뿐 아니다. 이야기 만들기로 이어갈 수도 있겠다. 이야기의 도입은 아주 중요한데 의성어로 시작되는 도입도 흥미진진한 방법 중의 하나다. 게다가 장면까지 있으니 서사를 만들기 아주 좋은 자료다.

 

바로 그런 발상을 바탕으로, 출판사에서 제작한 카드도 제공된다. 설명서에 의성어 말하기와 이야기 만들기, 이렇게 두 가지 놀이방법이 제시되어 있다. 24장이 살짝 아쉬운데? 라는 생각을 하면서 살펴보니, “더 재미있는 카드 놀이를 만들어 보세요.” 라는 안내가 되어 있다. ! 좋은 생각이다. 미술활동 쪽으로 확장해도 좋겠다. ‘소리가 날 듯한 그림을 그려 보세요.’ 이것도 미술 시간의 좋은 아이템이 될 것 같다. 근데 그것과는 별개로 장수를 더해서 카드게임을 선택 부록으로 출시하면 어떠실까 싶은데.... 저작권 문제가 있으려나?^^;;;

 

17000원이라는 금액이 적은 것은 아니라 해도, 이 책을 보면서는 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 빼고 모든 물가가 좀 내려서 책의 가치가 그만큼 올라갔으면 좋겠다. 근데 실상은 장바구니 물가가 너어무 올라서 오히려 책은 웬만하면 사지 말자가 되어가고 있으니.... 안돼~~~ㅠㅠ 어쨌든 나는 이 책을 잘 활용해서 본전의 열 배는 뽑을 것이다. 그러고도 남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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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18 13: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2-21 12: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야기 귀신이 와르릉와르릉 1 - 딱 하나만 들려주오 초승달문고 49
천효정 지음, 최미란 그림 / 문학동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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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천부적 이야기꾼 작가님들을 보면 이야기 주머니를 갖고 계신 것 같다고 표현하곤 했는데, 이 책에 바로 그 이야기 주머니가 나온다. 물론 내가 생각한 이야기 주머니는 좀 성격이 다르다. 이 책의 주머니는 모아서 넣어놓는 주머니였고 내가 생각한 건 화수분 같은 주머니다. 천효정 작가님이 갖고 계신(계시다고 내가 생각하는) 주머니가 바로 그 화수분 주머니다. 작가님의 노력을 깎아내리고 싶은 게 아니고, 정말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서사력이라서 그렇다. 타고난 이야기꾼!

 

벌써 10년이 지났나? 싶은 작가님의 첫 수상작, 삼백이 시리즈와 느낌이 비슷하면서도 전혀 새로운 이런 작품이 또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고도 반갑다. 삼백이 시리즈는 교실에서 널리 읽히고 있고 아직도 열기가 전혀 식지 않았는데, 거기에 이 이야기 귀신이야기까지 가세.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상황이다.^^

 

천효정 작가님의 특기 중 하나는 그럴듯한 설정 만들기. 이야기에 빠지게 되는 설정을 정말 기가 막히게 만든다. 뼈대를 세우는 이것부터 너무 잘하시니 기본부터 먹고 들어가는 거다. 삼백이 때도 그렇더니만, 이 책도 그러네. 옛날 옛날에 밥보다 이야기를 더 좋아하는 아이가 있었다. (여자아이로 나와서 더 좋았다. 균형이 맞는 느낌) 이야기를 갈구하는 이 아이가 안 가본 곳, 안 들어본 이야기가 없어 세상 사는 재미가 없던 차에, 예전에 인연이 있던 영감의 집에 찾아갔다가 보따리를 발견하게 된다. 그 보따리에서 나오는 소리 때문에 그 집은 흉가가 되었지만 아이는 알아낸다. 그 보따리엔 세상으로 나가고 싶은 이야기 귀신들이 갇혀 있다고. 아이는 보따리를 풀어 이야기들을 훌훌 날려 보내준다. 그런데 여섯 이야기가 날지 못하고 빌빌대는 것이다. 사연인즉, 너무 웃겨.ㅎㅎㅎ

우린 너무 오래 갇혀 있는 바람에 본모습을 잃었소.”

우리조차 우리가 무슨 이야기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니 누가 우릴 알아보겠소.”

 

바로 이거다! 이제 여기에서 이야기가 시작되는 거야. 아이가 만들어 나가는 이야기. 빌빌이들이 겨우 기억하는 부분을 어눌하게 말하면 야무진 아이는 딱딱 정리하고 빈 부분을 채워 새로운 이야기로 만든다. 이렇게 해서 두 권의 책이 채워진다. 이 책에 세 편, 2권에 세 편이 들어간다.

 

나는 이 설정에서 입을 틀어막을 정도로 좋았다. 이건 그냥 살아있는 교재야! 난 아이들과 이야기만들기 수업하는 걸 아주 좋아하는데 한 가지 소스 추가! 주인공과 동시에 이야기를 만들어보는 것이다. 빌빌이들 이야기까지만 딱 읽고, 각자 이야기를 만들고 발표한 후에 책을 이어서 읽어보는 거지. 물론 아이들은 작가님과 너무 비교되는 자신들의 결과물에 비명을 지르며 좌절할 수도 있지만, 그게 다 배우는 과정이지 뭐. 그 와중에 드물게 반짝거리는 보물을 발견할 때도 있거든.^^

 

하여간에 설정은 그렇고, 설정만으로도 너무 재밌었는데 이어지는 세 편의 이야기 또한 흡인력이 대단하다. 그냥 입맛이 짭짭 다셔지는 감칠맛. 입말체가 너무 자연스러우면서도 익살스럽다. 입말체를 읽다보면 여기에 작가의 말투가 반영되는 게 아닐까 의심스러워질 때가 있는데, 그게 맞다면 작가님은 엄청 웃긴 사람. 같은 말을 해도 더 재미나게 하는 사람.^^

 

거기에 재미를 더해주는 고마운 양념은 삼백이 때부터 함께해오신 그림작가 최미란 님의 그림이다. 특히 빌빌이 귀신들이 어리버리하게 자기 얘길 하는 부분은 만화 형식으로 구분하여 그리셨는데 효과가 만점이다. 글에도 그림에도 익살이 가득하니, 어찌 재미없을 수가 있으리오.

 

첫 번째 귀신은 운이 없는 사나이 이야기를 했다. 아니 근데 이게 운이 없다는 건지 있다는 건지부터 갈팡질팡한다. 우리의 야무진 주인공은 이 상황을 정리하고 세상에서 가장 운 없는 사내라는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다 읽어보니 운이 있는 건지 없는건지 헷갈리는 상황까지 작품에 다 담았어! 참으로 절묘하다. 운이 있다는 기준은 무엇인가? 그건 가치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

 

그 사내는 보통 기준으로 볼 때 엄청나게 운이 좋았다. 일확천금을 하는가 하면, 산길에서 구해준 처자가 알고보니 공주여서 왕이 되기까지 한다. 이보다 더 운 좋은 이야기 있음? 그런데 사내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탄식 뿐이다.

아이고, 안되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운이 없다 없다 이렇게 지지리도 없을 수가!”

이러면서 자신의 불운을 한탄한다. 그러다 마지막에 개똥에 미끄러지는데 신하들이 이제 죽었다 싶어 머리를 조아리는 가운데 사내가 한다는 말이,

이렇게 운이 좋을 수가!”

사내의 운을 좋게 한 그것은 대체 뭐였을까. 그러게 사람마다 운의 기준이 다르다니까. 나의 기준으로 남을 판단하지 말 것이며 남의 기준에 맞추려도 애쓰지도 말지어다. , 그러니까 행복의 조건은 도처에 숨어있는 것이니.

 

두 번째 귀신의 이야기를 토대로 만든 이야기는 신기한 대나무 베개.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잠보. 왠지 나인 것 같잖아? 잠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가장 소중한 물건은 베개. 와 정말 딱 나네! 내가 언젠가 남편한테 내가 가장 사랑하는 무생물은 이불이랑 베개야.” 라고 했더니 남편이 웃음을 깨물며 나가다 말고 방구석에 이불과 베개를 꺼내놓고는 푹 자라고 어깨를 두드려주고 나갔다. 나같은 주인공이 있다니!ㅎㅎ

 

어느 날 아끼던 목침이 쪼개져버린 잠보는 대나무를 쪼개 새 베개를 만들었다. 쌍둥이 같은 두 베개를 나란히 놓고 자다가 함께 누울 이가 없다는 생각에 미친 잠보는 광고를 낸다.

푹 자고 싶은 이라면 누구나 환영! (매일 밤 선착순 한 명 모집)”

그리하여 다양한 존재들이 잠보의 옆에서 쌍둥이 대나무 베개를 베고 하룻밤 잠을 자고 간다. 선비, 할머니, 호랑이에 저승사자까지 각양각색에다 저마다의 사연도 재미나기 짝이 없다. 그런데.... 마지막이 좀 쓸쓸한가 싶었는데 그게 아닌 것도 같아. 마지막 주인공은 바로 그의 그림자였거든. 어제도 그림자 이야기를 읽었는데 신기하다. 하여간 한 이불을 덮고 사이좋게 잠이 들었다니 잘 됐지 뭐야.

 

세 번째 귀신의 이야기는 배경이 지넷골이다. 연약한 소녀들을 잡아가는 왕지네. 우리의 주인공은 그 이야기를 이렇게 바꿨다. “몰랐어? 지금 소녀들은 하나도 안 연약하거든.” 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귀신에게 하면서 말이다. 바꾼 이야기의 제목은 빨래꾼과 복복이. 씩씩한 빨래꾼 소녀는 빨랫방망이 하나로 어찌나 깨끗하게 삯빨래는 하는지 아주 동네의 보물이다. 부모를 잃고 복복이라는 병아리(?)와 둘이 산다. 없는 형편에도 복복이를 잘 먹이며 소중하게 키운다.

 

드디어 이야기 귀신이 말한 왕지네가 나올 차례가 되었다. 왜 있잖은가? 제물로 소녀들을 바쳐야 하는 이야기. 하필 이번에 빨래꾼이 뽑힌 거다. 하지만 이야기란 건 변화무쌍하면서도 공통적인 고갱이 같은 것이 있잖아. 바로 키워준 동물이 은혜를 갚는 설정. 복복이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무서운 왕지네에 대한 실감나는 묘사, 당당한 빨래꾼의 모습, 복복이의 활약까지 여기도 재미가 한가득이다. 이렇게 하여 1권이 끝나고, 나머지 세 귀신의 이야기도 궁금하여 독자는 2권을 사러 간다.^^ 거기다가 부록처럼 덤 이야기 하나가 뒤에 붙어있는데, 그것도 센스 만점. 이야기를 만드는 주인공 아이가 윙크를 하면서 나를 보네. 그래, 바로 나!를 말이야.ㅎㅎㅎㅎㅎ

 

이 책도 대박이 날 느낌이다. 왜냐하면 이게 소장각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혹시 빌려주게 되면 꼭 챙겨서 받을 거고, 웬만하면 사시라고 권하겠다. 교실에 있어도 활용할 일이 많고, 가정에 있다면 닳도록 읽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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