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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ㅣ 독깨비 (책콩 어린이) 23
마이클 모퍼고 지음, 피터 베일리 그림, 천미나 옮김 / 책과콩나무 / 201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마이클 모퍼고는 영국이 자랑하는 동화작가이고 발표한 작품도 대단히 많다.(국내에 소개된 것도 꽤 많지만 다 소개되지는 않은듯) 나로서는 손꼽을 수 밖에 없는 작가인데, 나를 어린이 문학세계에 빠뜨린 작품이 바로 이 작가의 <켄즈케 왕국>이었기 때문이다. 어릴 때, 나는 책이 없어서 못읽는 아이였는데 청소년기 이후로는 거의 책을 잊고 지냈다. 켄즈케 왕국은 어릴 때의 독서추억을 단번에 되살려 주었고 그 이후로 나는 어른책보다 아이들책을 훨씬 더 많이 읽으면서 산다. 그게 10년 정도 된 일이다.
켄즈케 왕국 이후로도 훌륭한 작품이 많았는데 전작의 감동보다 더 크게 다가오지는 않았었다. 그래도 변함없이 작품마다 훌륭한 주제의식과 아름다운 문체를 보여주는구나 라는 생각은 했다. 그러다 최근에 이 책을 읽고 충격에 가까운 감동을 받았다. 이런 작품은 정말 나와야 마땅한 작품이고 진작 나왔으면 더 좋았을 작품이다. 그런데 이런 주제의 작품을 이렇게 아름답게 쓸 수도 있구나.
같이 근무하는 부장선생님이 있다. 전의 학교부터 같이 근무해 꽤 오랜기간 알고 지내는 사이다. 처음 뵈었을 때부터 이분은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으셨고 환경단체의 회원이시기도 했다. 그러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부터인가, 이분은 원전과 방사능 문제에 완전히 '꽂혀'버리셨다. 그런데 누구든지 붙잡기만 하면 전도하는 사람을 피하듯, 이분을 피하는 사람도 많고 그 학급에 민원도 심심찮게 들어오고 영양사 선생님과는 불편한 관계가 되어 버렸다. 이분이 방사능과 식품에 대해 본인이 알게 되신 것들을 필사적으로 전하려 하시기 때문이다. 그게 그분에게는 사명인 듯하다. 나도 가끔은 모든 것을 그쪽으로 몰고 가시는 그 분의 화법에 대화가 즐겁지 않을 때가 있다. 하지만 '모르겠다 알게뭐냐' 하는 태도로 사는 사람들보다는 훨씬 훌륭한 분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그분이 수시로 보내주시는 자료나 정보들을 때로는 흘리지만 가끔은 챙겨보기도 한다.
추석연휴를 보내고 있는데 그분에게서 카톡이 왔다. "지난 9월 15일 밤 SBS에서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물게 원전과 방사능에 대하여 진실된 방송을 하였습니다. 우리나라 지상파에서 이정도 방송되었다는 것은 획기적입니다. 방사능 시대에 온 가족이 꼭 시청해야 할 프로그램입니다."
때가 딱 맞았다. 마침 마이클 모퍼고의 <집으로>를 읽고 무거운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있을 때였던 것이다. 나는 컴퓨터를 켜고 그분이 말씀하시는 프로그램을 찾아보았다. SBS스페셜이었다. 죽음의 습격자-후쿠시마발 방사능 공포.
대부분 그 부장님께 들었던 이야기이긴 했지만 생생한 취재와 관련자들의 증언을 통한 방송을 접하니 새삼 답답함이 몰려온다. 어째서 저렇게 예측 가능한 것을 몰랐단 말인가? 똑똑함을 자랑하던 인류가? 정말 몰랐던 것일까? 모르는 척 했던 것일까? 알면서도 가르쳐 주지 않았던 것일까? 누구를 위해서? 분노가 몰려온다.
잊고 있었던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20년이 다 되어가는 기억이다. 초임시절, 서툰 나를 예쁘게 보시고 잘 도와주시던 교감선생님께서 어떤 1박2일 연수에 내 이름을 넣는다고 하셔서, 나는 정확한 내용도 모르고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원자력 무슨무슨 연수라 했다. "엄청 좋은 연수야. 공짜고."
대절한 버스를 타고 가면서 알았다. 이건 연수라기엔 뭔가 껄적지근 하구나. 엄청 좋은 밥에, 호텔 수준의 숙소에. 연수라 할만한 건 원전 시설을 둘러보며 안내를 듣는 것이었는데,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걱정하지 마라. 원전은 이렇게 깨끗하고 안전하며 효율적이다.... 뭐 그런 내용이었던 듯. 어리고 무식했던 초임시절의 나는 그냥 '쫌 그러네.... 이런 건 줄 알았으면 오지 말걸...' 하면서도 주는 밥 먹고 좋은 숙소에서 자고 돈 한푼 안내고 여기저기 구경하고 돌아왔다.
잊고 있다가 지금 생각해보니, 교사들에게 그런 연수는 도대체 왜 했을까? 그 좋은 밥과 숙소와 교통비는 어디에서 나왔을까? 화가 난다. 동시에 나의 어리숙함과 무식함에도.
이 책이나, SBS스페셜은 말해준다. 그 연수에서 했던 말들은 모두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이산화탄소가 나오지 않으니 친환경이고 깨끗하다고? 방송에서 에너지시민연대의 한 연구원이 쓴웃음과 함께 울컥하며 했던 말이 머리속에 맴돈다. "태평양 전체를 지금 방사능으로 오염시킬 기세인데 이산화탄소 배출하지 않는다고 원자력을 친환경적인 전원이라 하는 말은... 이제 더이상 할 수 없는 시대가 왔습니다."
안전에 대한 주장은 이미 다시 세울 수 없을 정도로 무너졌다. 체르노빌에 이어 후쿠시마 사고가 터지기까지 20년 남짓이 지났을 뿐이다. 백만 분의 일이라는 확률 자체가 엄청난 거짓이라는 것을 알수 있다. 설사 백만분의 일이 맞다 해도 그것은 무시할 확률이 아니다. 어쨌든 0은 아니니까 말이다.
효율성에 대한 주장도 눈가리고 아웅이었던 것. 원전이 제대로 가동되고 있는 몇십년 동안은 비용대비 전력 효율이 높다고도 볼 수 있지만, 그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얘기다. 가동이 끝난 원전은 철거가 불가능하며 수백년동안 두꺼운 콘크리트로 뒤덮어 두어야 한다. 설비부터 폐기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본다면 효율이란 말은 어불성설이다.
이런 모든 이야기를, 마이클 모퍼고는 두껍지도 않은 동화 한편을 통해서 잔잔하고도 가슴아프게 들려준다. 주인공은 50년만에 추억 속 풍경을 찾아 고향으로 간다. 어릴적 추억에 남겨져 있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그 중 가장 잊을 수 없는 사람은 페티그루 아주머니다. 그 마을 습지에 기차 한 칸으로 만든 집에서 아주머니는 각종 동물들과 함께 자연을 가꾸고 지키며 살아가고 있었다. 결혼하자마자 남편을 잃는 슬픔을 당했지만 아주머니는 자연 속에서 슬픔을 이기며 조용히 아름답게 살고 있었다. 아무도 이들의 작고 조용한 행복을 방해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원자력 개발의 바람은 바로 아주머니의 그 터전으로 불어닥쳤다. 처음에는 원전 건립을 반대하던 이들도 개발과 발전의 논리에 넘어갔고 아주머니는 끝까지 외로운 싸움을 해야 했다. 결국 건설 승인이 떨어지고 아주머니는 평생의 터전이던 기차집을 스스로 불태우고 말없이 마을을 떠났다.
이것이 주인공의 가슴아픈 추억이다. 50년이 지나 되돌아온 주인공은 무엇을 보았을까? 흉물스러운 원전 단지의 모습이었다. 그것도 그새 수명을 다하고 콘크리트로 뒤덮인. 마을에서 만난 한 남자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몰려가서 그 여자를 쫒아내고 저런 흉물스러운 물건을 지었지. 어쩌자고? 겨우 몇 년 전기 만들다가 쓸모없게 돼서 끝나 버린 것을. 발전의 대가라나. 사람들은 그렇게 부르는 것 같더군. 나는 그걸 수치의 극치라고 부르오.”
대다수가 몰랐을 때는 어쩔 수 없었다 해도(나의 어리숙한 초임시절과 같이) 이제 문제들이 극명하게 드러난 지금, 아직까지도 개발의 논리에 질질 끌려가는 것이야말로 수치의 극치가 아닐까? 현재까지 지어진 원전만 해도 그 위험성과 파괴력을 이루 말할 수 없지만, 그 짓을 계속하는 어리석음까지 범하지는 말아야 할 것 아닌가. 방송의 마지막 나레이션이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때론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무섭고 위험하다.
그리고 때론 당장의 달콤한 풍요와 편안함에 길들여져 미래가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원자력 에너지도 그런 것 아닐까?
후쿠시마 사람들도, 체르노빌 사람들도, 재앙이 닥치기 전에 죽음의 습격자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제 우리는 미래를 걸고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