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과 고기 국수 - 옛사람과 함께하는 음식 이야기 우리 고전 생각 수업 2
김미려 지음, 김태형 그림 / 스콜라(위즈덤하우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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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머리맡에 몇 권의 어린이책이 놓여있곤 하는데, 가끔 남편이 그걸 휘리릭 넘겨 볼 때가 있다. 어느 날은 아예 끼고 앉아 읽고 있길래 웬일이야? 싶은 마음에 들여다봤더니 이 책이었다.

"재밌어?"

"응, 책을 아주 잘 썼네."

남편이 먼저 읽고, 내가 읽었다. 아이들책과 관련이 없는 남편이 재밌다며 끝까지 읽은 책은 과연 내용이 어떠했을까?

 

작가의 이름이 낯설었는데 작가소개를 읽어보니 공부한 이력이 대단하다. 대학에서 문학과 시각디자인을 배우고, 유학으로는 비교문학을, 그 후에는 궁중음식을.... 언뜻 연관성이 없어보이는 공부를 오래 하신 셈인데, 그것들이 이 책 한권에 잘 짜여서서 들어있었다. 작가의 색다른 공부 이력이 아니었다면 이런 책이 나올 수는 없었을 것 같다.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음식 이야기다. '옛 사람과 함께하는 음식 이야기'라는 부제가 이를 말해준다. 그 다음은 인물이다. 이 책에는 9명의 옛 인물이 나오는데 그 인물이 어떤 상황에서 먹었을 듯한, 또는 작가가 차려주고 싶은 밥상이 소개된다. 다음은 역사다. 옛 사람이니 그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당대의 역사적 상황이 소개되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같이 음식, 인물, 역사가 의미있고 재미있게 짜여지게 하려면 많은 공을 들였으리라 짐작이 된다. 어린이책이지만 많은 문헌연구 끝에 탄생했을 것 같다.

 

그런데 문헌연구 외에 이 책의 장점을 꼽으라면 그것은 바로 상상력이었다. 나에게는 상상력 쪽이 더 매력있었다. 그것은 역사적 상상력이기도 했고 심리적 상상력, 미각적 상상력이기도 해서 더 흥미있었다. 이 책에서 세번째 인물이 책의 제목으로 선택된 이순신장군인데, 이순신장군은 명량대첩 전날 어떤 음식을 드셨을까? 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상상력이 펼쳐진다.

 

명량대첩이 어떤 전투인가! 이순신 장군이 모함을 받아 죽을 고비를 넘기고 다시 수군통제사로 돌아왔을 때, 겨우 남겨진 열 두 척의 배로 백 척이 넘는 일본의 전선을 상대해야 되는 전투가 아니었던가! 마음을 가다듬어야 할 뿐 아니라 힘든 전투를 대비해 체력까지 비축해야 하는 식사. 그때 드셨을 음식으로 작가는 고기국수를 떠올리고 있다. 고기가 듬뿍 들어간 국수인가? 했는데 고기를 채쳐서 밀가루를 입혀 끓는 국물에 넣은 아주 생소한 음식이었다. 음식 이야기 뿐 아니라 임진왜란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도, 이순신 장군의 인간적 고뇌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글이었다. 

 

그 외에도 신사임당이 '죽순해삼'을, 허균이 '두부젓국찌개'를, 백제 무왕이 '서여병'을 먹었을 것이라 상상하는 작가의 설명이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그런가 하면 작가는 어떤 인물에게 마음을 담아 밥상을 차려주고 싶어한다. 상상력이 가장 크게 발휘된 것은 홍길동 형제에게 차려주는 '된장찌개와 알뚝배기'이다. 홍길동은 실존인물이 아닌데도, 작가가 마음을 담아 따끈하게 차린 밥상을 대하니 마음이 찡해진다.

 

한 책 안에 중심없이 너무 이것저것을 담다보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책이 되는 경우를 종종 보는데, 이 책은 음식 이야기를 중심으로 잘 잡고 거기에 역사와 인물 이야기를 훌륭하게 엮어 넣었다. 역사와 인물 책은 이미 수없이 나와 있지만 음식 이야기 면에서 이 책은 차별화에 확실히 성공했다고 하겠다. 이렇게 차별화된 음식 책을 또 만나보고 싶다. 난 솔직히 먹는 이야기를 읽는 게 참.... 구미가 당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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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예요? 생각하는 분홍고래 2
콘스탄케 외르벡 닐센 지음, 정철우 옮김, 아킨 두자킨 그림 / 분홍고래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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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일까?를 줄기차게 고민하는 이 아이, 윌리엄. 이 아이가 만약 내 아들이라면 나는 고민할 것이다. 이 아이는 왜 혼자 있는 걸 좋아할까? 왜 다른집 아이들처럼 뛰어놀지 않을까? 왜 같은 말을 반복할까? 왜 한가지에 집착할까?

 

이 아이가 우리 반 학생이라면 나는 살짝 짜증이 날 지도 모르겠다. 이 아이는 왜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있을까? 왜 또래들과 어울리지 못할까? 왜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자꾸, 반복적으로 할까? 한 번 생각하면 왜 그치지를 못할까? 왜 나의 수업 안으로 들어오질 못할까?

 

이것이 나의 한계다. 일상에서 본 윌리엄은 나에게 그런 존재일 수 있다. 그러나 애정의 눈길로 따라간 이 책이 보여주는 아이의 모습은.... 정말 귀하고 사랑스럽다. 자신의 존재를 고민하는 아이라니.... 인생의 답을 찾아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아이라니.... 스마트 기기에만 눈을 박아놓고 생각이라고는 조금도 하려들지 않는 요즘 아이들을 바라보며 드는 안타까운 마음이 이 아이를 통해서 조금은 위로받는 느낌이다.

 

이 아이는 조금 느리게 천천히 갈 지도 모르겠다. 그게 무슨 문제겠는가? 그러나 대한민국에선 문제가 된다. 나같이 성질 급한 엄마나 교사를 만나면 이 아이는 마음 편히 하고싶은 생각을 하기도 힘들 것이고 어른들의 걱정거리가 될 것이다. 그렇지만 윌리엄의 친할머니처럼, 기다리며 옆에 있어주는 사람들이 있다면 아이는 정말 생각이 깊은 사람으로 자랄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태어났을까? 나는 어디에서 왔을까? 나는 어떤 사람이 될까?.... 이런 고민을 하는 아이와,

왜 친구를 괴롭히면 안되는가? 왜 남에게 피해를 주면 안되는가? 남의 행복을 빼앗는 것은 왜 나쁜가? 와 같은 질문에도 대답을 회피하는 아이가 어떻게 같을 수가 있겠는가?

 

윌리엄의 '나무집'은 그런 의미에서 아주 귀한 공간이다. 혼자 있을 수 있고 생각을 방해받지 않을 수 있는 곳. 우리 아이들에게도 그런 공간이 필요할 것 같다. 안 내려온다고 너무 독촉하지 말고 때로는 담요와 먹을 것을 가지고 올라가 함께 있어줄 수 있는 그런 공간.

 

어느 누구도 이 아이의 질문에 명확한 답을 알려줄 수 없다. 이 세상에 그 답을 밝힌 사람이 있던가? 나름대로의 작은 답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것은 일반화할 수가 없는 답이기에, 고민은 누구나 거쳐가야 하는 과정이다. 답을 얻든 못 얻든, 생략해서는 안되는 우리 인생의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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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독깨비 (책콩 어린이) 23
마이클 모퍼고 지음, 피터 베일리 그림, 천미나 옮김 / 책과콩나무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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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모퍼고는 영국이 자랑하는 동화작가이고 발표한 작품도 대단히 많다.(국내에 소개된 것도 꽤 많지만 다 소개되지는 않은듯) 나로서는 손꼽을 수 밖에 없는 작가인데, 나를 어린이 문학세계에 빠뜨린 작품이 바로 이 작가의 <켄즈케 왕국>이었기 때문이다. 어릴 때, 나는 책이 없어서 못읽는 아이였는데 청소년기 이후로는 거의 책을 잊고 지냈다. 켄즈케 왕국은 어릴 때의 독서추억을 단번에 되살려 주었고 그 이후로 나는 어른책보다 아이들책을 훨씬 더 많이 읽으면서 산다. 그게 10년 정도 된 일이다.

 

켄즈케 왕국 이후로도 훌륭한 작품이 많았는데 전작의 감동보다 더 크게 다가오지는 않았었다. 그래도 변함없이 작품마다 훌륭한 주제의식과 아름다운 문체를 보여주는구나 라는 생각은 했다. 그러다 최근에 이 책을 읽고 충격에 가까운 감동을 받았다. 이런 작품은 정말 나와야 마땅한 작품이고 진작 나왔으면 더 좋았을 작품이다. 그런데 이런 주제의 작품을 이렇게 아름답게 쓸 수도 있구나.

  

같이 근무하는 부장선생님이 있다. 전의 학교부터 같이 근무해 꽤 오랜기간 알고 지내는 사이다. 처음 뵈었을 때부터 이분은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으셨고 환경단체의 회원이시기도 했다. 그러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부터인가, 이분은 원전과 방사능 문제에 완전히 '꽂혀'버리셨다. 그런데 누구든지 붙잡기만 하면 전도하는 사람을 피하듯, 이분을 피하는 사람도 많고 그 학급에 민원도 심심찮게 들어오고 영양사 선생님과는 불편한 관계가 되어 버렸다. 이분이 방사능과 식품에 대해 본인이 알게 되신 것들을 필사적으로 전하려 하시기 때문이다. 그게 그분에게는 사명인 듯하다. 나도 가끔은 모든 것을 그쪽으로 몰고 가시는 그 분의 화법에 대화가 즐겁지 않을 때가 있다. 하지만 '모르겠다 알게뭐냐' 하는 태도로 사는 사람들보다는 훨씬 훌륭한 분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그분이 수시로 보내주시는 자료나 정보들을 때로는 흘리지만 가끔은 챙겨보기도 한다.

 

추석연휴를 보내고 있는데 그분에게서 카톡이 왔다. "지난 9월 15일 밤 SBS에서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물게 원전과 방사능에 대하여 진실된 방송을 하였습니다. 우리나라 지상파에서 이정도  방송되었다는 것은 획기적입니다. 방사능 시대에 온 가족이 꼭 시청해야 할 프로그램입니다."

때가 딱 맞았다. 마침 마이클 모퍼고의 <집으로>를 읽고 무거운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있을 때였던 것이다. 나는 컴퓨터를 켜고 그분이 말씀하시는 프로그램을 찾아보았다. SBS스페셜이었다. 죽음의 습격자-후쿠시마발 방사능 공포.

대부분 그 부장님께 들었던 이야기이긴 했지만 생생한 취재와 관련자들의 증언을 통한 방송을 접하니 새삼 답답함이 몰려온다. 어째서 저렇게 예측 가능한 것을 몰랐단 말인가? 똑똑함을 자랑하던 인류가? 정말 몰랐던 것일까? 모르는 척 했던 것일까? 알면서도 가르쳐 주지 않았던 것일까? 누구를 위해서? 분노가 몰려온다.

 

잊고 있었던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20년이 다 되어가는 기억이다. 초임시절, 서툰 나를 예쁘게 보시고 잘 도와주시던 교감선생님께서 어떤 1박2일 연수에 내 이름을 넣는다고 하셔서, 나는 정확한 내용도 모르고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원자력 무슨무슨 연수라 했다.  "엄청 좋은 연수야. 공짜고."

대절한 버스를 타고 가면서 알았다. 이건 연수라기엔 뭔가 껄적지근 하구나. 엄청 좋은 밥에, 호텔 수준의 숙소에. 연수라 할만한 건 원전 시설을 둘러보며 안내를 듣는 것이었는데,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걱정하지 마라. 원전은 이렇게 깨끗하고 안전하며 효율적이다.... 뭐 그런 내용이었던 듯. 어리고 무식했던 초임시절의 나는 그냥  '쫌 그러네.... 이런 건 줄 알았으면 오지 말걸...' 하면서도 주는 밥 먹고 좋은 숙소에서 자고 돈 한푼 안내고 여기저기 구경하고 돌아왔다.

잊고 있다가 지금 생각해보니, 교사들에게 그런 연수는 도대체 왜 했을까? 그 좋은 밥과 숙소와 교통비는 어디에서 나왔을까? 화가 난다. 동시에 나의 어리숙함과 무식함에도.  

 

이 책이나, SBS스페셜은 말해준다. 그 연수에서 했던 말들은 모두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이산화탄소가 나오지 않으니 친환경이고 깨끗하다고? 방송에서 에너지시민연대의 한 연구원이 쓴웃음과 함께 울컥하며 했던 말이 머리속에 맴돈다. "태평양 전체를 지금 방사능으로 오염시킬 기세인데 이산화탄소 배출하지 않는다고 원자력을 친환경적인 전원이라 하는 말은... 이제 더이상 할 수 없는 시대가 왔습니다."

안전에 대한 주장은 이미 다시 세울 수 없을 정도로 무너졌다. 체르노빌에 이어 후쿠시마 사고가 터지기까지 20년 남짓이 지났을 뿐이다. 백만 분의 일이라는 확률 자체가 엄청난 거짓이라는 것을 알수 있다. 설사 백만분의 일이 맞다 해도 그것은 무시할 확률이 아니다. 어쨌든 0은 아니니까 말이다.

효율성에 대한 주장도 눈가리고 아웅이었던 것. 원전이 제대로 가동되고 있는 몇십년 동안은 비용대비 전력 효율이 높다고도 볼 수 있지만, 그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얘기다. 가동이 끝난 원전은 철거가 불가능하며 수백년동안 두꺼운 콘크리트로 뒤덮어 두어야 한다. 설비부터 폐기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본다면 효율이란 말은 어불성설이다.

 

이런 모든 이야기를, 마이클 모퍼고는 두껍지도 않은 동화 한편을 통해서 잔잔하고도 가슴아프게 들려준다. 주인공은 50년만에 추억 속 풍경을 찾아 고향으로 간다. 어릴적 추억에 남겨져 있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그 중 가장 잊을 수 없는 사람은 페티그루 아주머니다. 그 마을 습지에 기차 한 칸으로 만든 집에서 아주머니는 각종 동물들과 함께 자연을 가꾸고 지키며 살아가고 있었다. 결혼하자마자 남편을 잃는 슬픔을 당했지만 아주머니는 자연 속에서 슬픔을 이기며 조용히 아름답게 살고 있었다. 아무도 이들의 작고 조용한 행복을 방해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원자력 개발의 바람은 바로 아주머니의 그 터전으로 불어닥쳤다. 처음에는 원전 건립을 반대하던 이들도 개발과 발전의 논리에 넘어갔고 아주머니는 끝까지 외로운 싸움을 해야 했다. 결국 건설 승인이 떨어지고 아주머니는 평생의 터전이던 기차집을 스스로 불태우고 말없이 마을을 떠났다.

 

 

이것이 주인공의 가슴아픈 추억이다. 50년이 지나 되돌아온 주인공은 무엇을 보았을까? 흉물스러운 원전 단지의 모습이었다. 그것도 그새 수명을 다하고 콘크리트로 뒤덮인. 마을에서 만난 한 남자는 이렇게 말했다.사람들이 몰려가서 그 여자를 쫒아내고 저런 흉물스러운 물건을 지었지. 어쩌자고? 겨우 몇 년 전기 만들다가 쓸모없게 돼서 끝나 버린 것을. 발전의 대가라나. 사람들은 그렇게 부르는 것 같더군. 나는 그걸 수치의 극치라고 부르오.”

 

대다수가 몰랐을 때는 어쩔 수 없었다 해도(나의 어리숙한 초임시절과 같이) 이제 문제들이 극명하게 드러난 지금, 아직까지도 개발의 논리에 질질 끌려가는 것이야말로 수치의 극치가 아닐까? 현재까지 지어진 원전만 해도 그 위험성과 파괴력을 이루 말할 수 없지만, 그 짓을 계속하는 어리석음까지 범하지는 말아야 할 것 아닌가. 방송의 마지막 나레이션이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때론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무섭고 위험하다.

그리고 때론 당장의 달콤한 풍요와 편안함에 길들여져 미래가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원자력 에너지도 그런 것 아닐까?

후쿠시마 사람들도, 체르노빌 사람들도, 재앙이 닥치기 전에 죽음의 습격자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제 우리는 미래를 걸고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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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사의 코끼리 일공일삼 74
케이트 디카밀로 지음, 요코 다나카 그림, 김영진 옮김 / 비룡소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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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어떤 작가의 최근작이 나왔나 검색을 해볼 정도면 팬이라고 말할 수 있으려나? 케이트 디카밀로는 내게 그런 작가다. 그런데 작품은 정말 가뭄에 콩나듯 가끔 한 편씩 나온다. 다작을 하는 작가가 아닌듯. 하지만 작품을 읽어보면 알 것 같다. 그가 왜 다작을 하지 않는지. 아니, 할 수가 없는지.

 

그의 작품은 인생을 생각하게 한다. 주제는 표면에 드러나지 않으며 단순하지도 않다. 서사는 환상적이고 매력적이나 느낌은 눈물겹다. 그래서 "재밌다"라는 표현을 잘 쓰게 되지 않는다. 작품의 흡인력이 대단한데도.

 

내 친구 윈딕시나 생쥐기사 데스페로, 에드워드 툴레인의 신기한 여행을 아이들에게 권해주고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동화를 쓰는 작가이나 사실 그의 주제는 어른들에게나 와 닿는 것이 아닐까? 라는 걱정(?)을 해본다. 요즘 '동화작가가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는 사람인가, 아이들이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쓰는 사람인가, 어느 쪽이 더 동화작가의 본질에 맞는가'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런 식으로 본다면 디카밀로는 내 경험상 후자와는 거리가 좀 멀다. 인생에 대한 깊은 통찰을 작품 속에 녹여내기 때문이다. 그것을 아이들이 찾아내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그의 작품이 꾸준히 잘 팔리고 있으며 영화로도 제작되어 상영되는 것을 보면 주제의식만을 고집하는 작가는 아니라는 점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내가 왜 이런 쓸데없는 걱정을 하며 글을 쓰기 시작했는가 하면, 특히 이 책이 가장 어려웠기 때문이다. 중반 이후까지도 고개를 갸우뚱하며 읽었다.

 

이 작가가 창조한 인물들은 이분법으로 나누기 어렵다. 그리고 대부분 인생의 무게를 안고 살아간다.

피터 - 아버지는 전쟁터에서, 엄마는 동생을 낳다가 돌아가셨다. 아버지의 전우인 빌나 루츠에 의해서 일반적인 가정의 따스함과는 거리가 멀게 양육된다.

빌나 루츠 - 의족을 한 상이군인이다. 군인으로서의 삶과 명예를 고집하고 싶지만 마음은 늘 괴롭다.

마술사 - 그의 생애에 시시껄렁한 마술이 아닌 대단한 마술을 한번 보여주고 싶었다. 그게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고 그는 감옥에 갇혔다.

라 본 부인 - 마술 공연 구경하다가 이게 웬 날벼락이람. 코끼리가 지붕을 뚫고 그녀의 무릎 위로 떨어졌고 불구가 되어 휠체어에서 살아야 한다.

레오 마티엔느 - 시인의 영혼을 가진 경찰. 아내 글로리아와 함께 피터의 아래층에서 살고 있다. 그들이 사랑해 줄 아이가 생기지 않아 슬퍼한다.

바르톡 윈 - 괴물상을 특히 잘 만들던 전직 석수장이. 성당 꼭대기에서 떨어져 척추를 다친 후 코끼리 시중꾼으로 일하게 된다. 늘 큰 소리로 웃는다. , 기뻐서 웃는게 아니다.

한스 익맨 - 라 본 부인의 충실한 하인. 오랜 기억 속 어린 시절의 하얀 개를 떠올린다.

 

이야기는 시장에 심부름을 나왔던 피터가 "1플로릿만 내면 당신의 마음이나 머릿속에 간직된 가장 심오하고 어려운 문제에 대한 답을 알려드립니다" 라는 쪽지에 이끌려 심부름할 돈으로 점쟁이의 천막에 들어간 일로부터 시작된다. 피터의 마음 속에 간직한 질문은 이것이었다. "어떻게 하면 제 동생을 찾을 수 있나요?"

 

점쟁이의 대답은 황당했다. "코끼리가 널 그곳으로 안내해 줄 거야."

코끼리라니. 될 말인가? 그러나 그날 저녁, 오페라 극장에서 위에 쓴 것과 같은 사건이 일어나고 말았다. 코끼리는 나타났다. 한 귀부인의 다리는 부러졌고 마술사는 감옥에 갇혔고 코끼리는 처치곤란이 되었다.

 

이후로부터 짜여져 가는 이야기는 내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다가 한순간에 맞춰져 버린 퍼즐처럼 마지막에 완성되었다. 모든 등장인물과 동물들은 자신의 역할을 했다. 자신의 가슴 속에 키워 오던 꿈을 통해서. 그러면서 모든 것들은 있어야 할 자리를 되찾았다. 이야기는 따뜻하게 끝났다.

 

끝까지 내 마음을 풀어주지 못한 부분이 있는데 불구가 된 부인에 대해서이다. 나머지 이야기가 다 해피엔딩이라 해도 부인은 다리를 잃었지 않은가? 부인의 다리가 다른 이들의 행복보다 중요하지 않단 말인가? 그렇다면 마법으로 부인의 다리가 원래대로 낫는게 좋은 결말이었을까? 그랬더라면 서사적 가치는 뚝 떨어졌을 것이다. 그래도 난, 부인의 다리가 자꾸만 마음에 걸려서..... 이야기에 몰입하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모든 일이 끝난 뒤 감옥 마당에서 라 본 부인은 이렇게 말한다.

"마술사를 감옥에 다시 가둘 필요가 없다고. 그래 봤자 아무 의미도 없으니까. 이미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이야. 그러니 저 사람을 그냥 풀어 주세요."

"부인."

"그래요. 가 보세요."

마술사가 가 버리자 라 본 부인은 자신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던 무거운 짐이 갑자기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가는 것 같았다.

 

케이트 디카밀로는 용서에 대해 자주 이야기한다. 생쥐기사 데스페로에서 그랬던 것처럼.... 내가 부인의 다리에 집착하는 것처럼 용서는 힘든 일이다. 그러니 디카밀로의 작품이 쉬울 리 없다. 작가는 좀처럼 편안하고 부유한 삶을 그리지 않는다. 고단한 삶에서 서로 버팀목이 되어주는 사람들의 관계와 그들의 희망을 이야기한다. 그 사이에서 나는 내 것을 잃을 수도 있고 누군가를 용서해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아직 이것이 안된다. 그래서 힘든 것일게다.

 

디카밀로의 작품 속 세계는 짙은 안개 속 같다. 불투명한 유리창에 눈을 대고 들여다보는 느낌이다. 뭔가 뚜렷한 윤곽도 색채도 아니지만 그립고 따스하며 아름답다. 모르는 사이에 그의 작품은 내 마음을 어루만지고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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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로 시작하는 어린이 인문학 - 똑똑똑! 생각의 문을 여는 인문학 질문 76가지
뱅상 빌미노.샤를로트 그로스테트 지음, 박언주 옮김, 에르베 플로르 그림 / 한울림어린이(한울림)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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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상당히 좋은 책이라는 것을 충분히 인정하는데, 내 취향은 아니라는 것을 말해야 솔직한 글을 쓸 것 같다.

 

인간의 사상과 문화를 대상으로 하는 인문학. 그 광범위한 것을 한 권의 책으로, 그것도 어린이용으로 풀어낼 수 있을까? 궁금해 하며 책을 신청했다. 책을 읽고 역시 그것은 무리라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

 

펼친 화면 한 장에 인문학 질문 하나가 제시되어 있고 질문의 실마리가 되는 간단한 만화, 질문에 대한 설명, 용어설명, 관련된 이야기로 딱 짜여진 구성을 갖고 있다. 난 이것부터가 약간 숨이 막힌다.

 

평상시에 생각을 아주 많이 하는 아이라서 이 책에 나온 질문을 평상시에 가슴에 담고 살았다면, 이 책의 목차를 보고 어? 평소에 내가 궁금해 하던 것들이네? 라고 탄성을 지를 수 있는 아이라면 이 책이 더할나위 없이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가 이 책을 뒤적인다면 삼키지를 못하거나, 아니면 삼키더라도 식사대용 캡슐과도 같을 것 같다. 나에게는 바로 그랬다.

 

캡슐처럼 매끈하고 영양소가 자로 잰 듯 들어있지 않아도 좋다. 나라면 인문학의 털끝 하나를 건드리다 말더라도 그냥 이런저런 책을 읽고 싶다. 영양가가 검증되지 않아도 내 혀가 맛을 느낄 수 있는  그냥 음식들을 먹고 싶다. 캡슐은 내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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