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트 구름 너머 우리학교 소설 읽는 시간
탁경은 지음 / 우리학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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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청소년소설도 가끔씩 읽게 되었는데 생각해보니 대부분 장편을 읽었던 것 같다. 이 책도 장편인 줄 알고 들었다가 첫 편이자 표제작인 오르트 구름 너머가 금방 끝나버려서 당황했다.ㅎㅎ 예상과는 달랐지만 단편의 느낌도 괜찮았다. 이어지는 작품들도 다양하면서도 일관된 느낌을 주었다. 그것은 뭐랄까.... 고민하고 애쓰는 청소년? , 아닌 청소년도 많을 것이다. 생각이란 걸 안 하는 청소년.... 하지만 그들이 부각되어 보여서 그렇지 설마 다들 그렇기야 할까. 이런 청소년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오르트 구름 너머SF지만 과학이나 미래에 중점이 있지 않다고 느꼈다. 성격과 성향이 정반대인 쌍둥이 자매 소율과 지율. 둘은 다른 만큼 서로에게 애틋하기도 하다. 혈육이니 당연한 것도 있겠지만 외로웠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엄마는 아파서 돌아가셨고 아빠는 그걸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바빴고. 독보적인 과학자인 아빠는 광속추진체 개발에 성공했고 오르트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성공을 보장할 수 없는 그 프로젝트에 소율이 뛰어들었고 지율만 남는다. 지율은 나와 비슷하다. 모험이나 명예, 기록적인 일 등에는 관심이 없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안전과 소박한 행복이 더 소중하다. 지율은 이 일로 소율과 다투다가 말한다.

우주선에 타는 순간 우리는 다른 공간, 다른 시간을 사는 거야.”

결국 지율만 남기고 두 사람은 떠났다. 순조롭진 않았고 장치의 오류도 있었지만 결국 무사히 돌아오긴 했다. 다시 만난 그들은........

 

소율의 편지에서, 장치 오류를 느끼고 새까만 우주 공간에서 깨어났던 그때의 느낌을 상상해봤다. 나는 지금 나를 둘러싼 온갖 잡다한 것들 사이에 존재하지만 광활한 우주에서 나는 어떤 존재일까. 여기서 죽는 것과 거기서 죽는 것은 다를 바가 없고 어차피 사람은 죽는다. 그런데 엄청난 외로움과 막막함, 공포가 다가온다. “사랑은 그 사람이 필요한 순간에 곁에 있어주는 일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내가 여기서 복작대며 낑낑대며 살아가는 의미는 사랑인 것일까. 언젠가는 상상할 수 없는 곳으로 떠날 인생들이 여기서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은.

 

엄마는 그곳에의 가은이는 엄마의 관리로 만들어진 엄청난 우등생이었지만 지금은 할머니 집에서 지낸다. ‘한 달 전 엄마는 그곳에 갔다.’라는 문장에서 나는 그곳이 어디인지 바로 알아챘다. 그게 맞다는 사실에 또 놀라고....

 

그 엄마는 나보다 훨씬 자식에게 헌신적이다. 나는 그래도 해줄 수 없는 일에는 선을 그었고, “나도 쉬어야 살지.” 이런 주의였는데 이 엄마는 그렇지 않았다. 그게 잘못되었다는 것은 명백하고 그 댓가 또한 치러야 하지만, 적어도 자식을 향한 마음만은 진심이겠지. 가은이는 엄마에게 짧은 편지를 쓴다. 자신을 만들어주던 엄마는 이제 곁에 없지만 이제 진정한 자신을 스스로 만들어가길 바란다. 나는 이렇게 가은이를 응원하지만, 자식을 이런 방식으로 관리하는 엄마들에게는 동의할 수 없다. 이런 불상사를 겪어야만 아이들이 홀로서기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슬픈가. 부모들의 자식 만들기는 좀 멈추고 성찰할 필요가 있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에서 청소년들의 문제는 뜻밖에도 간병이었다. ... 간병의 고단함과 참혹함을 이렇게 보여주다니. 나이 든 나도 아직 제대로는 겪어보지 못했다고 느끼는 그것.... 인간의 마지막이 누군가에게 주고 떠나는 그 고통, 간병. 앞으로 갈수록 어렵고 힘들어질 이 문제가 청소년소설에 나올 줄은 몰랐다. 마음이 참 무겁다. 그래도 이야기는 너무 어둡지는 않게 끝난다.

 

시드볼트는 이 책의 단편 5편 중 두 번째 SF. 위기의 지구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나 아직 그 위기가 본격적으로 닥치지는 않았다. 종자 금고라는 뜻의 시드볼트는 만약을 위한 시설이고 실무자들은 그 만약이 오지 않기를 바라며 일하고 있다. 전세사기를 당해 오갈 곳 없어진 현준 부자는 시드볼트 중 한 곳인 고요에서 일하는 삼촌의 도움으로 그곳에 일자리를 얻어 살고 있다. 그러다 현준은 중요한 씨앗 하나가 없어진 것을 알게 되는데, 그 범인은 어처구니없게도..... 깽판을 친 존재는 누구든 그 깽값을 무는 게 당연하지만 아이보다 못한 어른은 왜 이렇게 많으며 왜 아이들의 인생은 그 타격을 고스란히 받아야만 하는가. 현준이처럼 의연한 경우는 많지 않을 텐데. 또한 기후위기 앞에서 현실의 사람들이 시드볼트 같은 대비를 하고 있는지 나는 모르지만 아마 도미노의 한 조각이 쓰러지기 시작하면 그 대비책이란 것 또한 종이장보다도 못하게 깔려버릴 것이란 예상을 한다.

봄이 오면 섬진강 변에 꽃들이 가득 피어나길 현준은 간절히 바랐다.” (118)

나도 그렇게 바란다. 돌아오는 봄엔 섬진강 변에 가보고 싶다.

 

마지막 오늘은 내가 아웃은 교실에서의 권력 관계와 왕따 문제를 다루고 있다. 권력자 아이가 일일 왕따놀이 제안을 했고 현우를 비롯한 나머지 아이들은 눈치보며 동참을 했다. 자기 순서가 되었을 때는 비참한 하루를 경험해야 했고. 결국 어른들에게 알려져 아주 모양 나쁘게 종료가 되었지만 파국으로까진 안 가서 다행이라고 할까. 현실에서는 이보다 더한 파국도 많으니까 말이다. 더구나 이 작품은 상당히 교육적인(?) 결말로 가는데, 살짝 삽입된 작은 존재들의 판타지가 약간 뜬금없게 느껴진 것이 조금 아쉬운 점이었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일수도)

 

하지만 나는 이 작품의 교육적인(!) 메시지가 너무 좋았고, 아이들이나 어른들 모두가 공감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주인공의 이런 결심 때문이다.

다만 남의 가슴에 상처 주는 말을 함부로 내뱉지 않겠다.” (160)

나도 예외는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실수하는 일일 테고. 그래도 노력은 해야된다. 노력하지도 않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각 편을 다 얘기하다 보니 글이 길어졌는데, 책은 두껍지 않고 읽는 데 시간도 얼마 안 걸린다. 6학년쯤부터는 읽고 얘기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글을 시작하며 고민하고 애쓰는 청소년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고민은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고통을 느끼기 싫어서 덮어놓고 외면하면 곪아서 썩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삶에서 그 전략을 쓰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때론 그렇고. 아이들에겐 직면의 전략을 알려줘야 한다. 문학의 힘으로 그걸 하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책들은 그 힘을 갖추었다고 생각한다. 많은 청소년들에게 가 닿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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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 고마워요, 고맙습니다 작은 곰자리 70
일레인 비커스 지음, 서맨사 코터릴 그림, 장미란 옮김 / 책읽는곰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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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 순수하지 않은 접근에는 약간이라도 무리수가 있기 마련이다. 그림책에 대한 나의 접근이 그러한데 써먹을궁리를 하면서 접근하기 때문이다. 이 책도 그렇게 신청했다. ‘연말도 되어가니, 이 그림책을 읽어주고 감사에 대한 활동을 하면 좋겠다.’

 

내 꾀에 내가 넘어간 격인지, 아쉽게도 그렇게 사용할 순 없겠다. 학교 같은 대그룹에서 읽어줄 책은 아니었다. 본의 아니게 상처받을 아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첫 장면부터 그렇다.

따뜻하고 포근한 집이 고마워요.”

책을 읽어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엄마, 아빠가 고마워요.”

엄마 아빠는 밤마다 이불을 꼭꼭 여며 주고, 나직나직 자장가도 불러줘요.”

잘 자렴. 단꿈을 꾸렴. 꿈의 날개를 타고 날아가렴. 내일 어떤 일이 찾아와도 널 사랑한단다.”

 

솔직히 저런 가정에서 자라면서 감사를 하지 않는다면 양심이 없는 거 아닌가?^^;;;; 하지만 저런 가정 속에 있는 아이는 의외로 적다. 가정은 이상이 아니고 현실이며 시궁창인 경우가 많고 그정도까지는 아니라도 부드럽고 완벽하다기에는 여기저기 깨지고 흠집들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인생에는 감사할 일들이 있으며 그걸 찾는 밝은 눈이 있을 때 그 인생은 행복한 것이다.

 

첫장부터 완벽한 사랑을 갖춘 엄마 아빠의 모습과 모두가 원하는 단란한 가정, 웬만한 것은 다 갖춘 듯한 집의 모습까지 보이니, 지금 우리반에서 읽어주기엔 반 넘는 아이들이 마음에 걸린다. 물론 아이들은 괜찮은데 어른이 괜히 하는 걱정일 수도 있다. 어쨌든간 나는 이 책을 학급에서는 읽어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가정에서 읽거나 개인적으로 읽기에는 아름답고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어서 아이는 모든 것이 다 고마워요.”라고 말하고 있다. 밤과 아침이, 어김없이 뜨고 지는 해와 달이, 심장이 뛰는 것도, 들이쉬고 내쉬는 모든 숨도 다 고맙다고. 이것도 아이가 안정된 행복감 안에 안전하게 들어있을 때 할 수 있는 생각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아이들이 많았으면 좋겠고, 그걸 위해 노력하는 것이 어른들의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삐딱한 눈으로 보면 슬프고 힘든 아이들의 불행감을 더 자극하는 책이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까지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표현들은 아주 맘에 들었다.

근사한 곳으로 이끌어주는 문이 고마워요.

근사한 곳으로 데려가 주는 책이 고마워요.”

그리고 따뜻한 것들의 고마움에 대해서 표현한 뒷장에 차가운 것들의 고마움을 표현한 부분에서는 감탄을 했다. 감사한 일들을 넓게 볼 수 있도록 생각을 넓혀주는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이 책의 대상 연령이 유아부터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등장하는 어른들이 거의 부모인 것은 좀 아쉽다. 아이들은 타인에 대한 감사도 좀 배워야 한다. 하긴 어른들도 마찬가지고 나도 마찬가지인데....^^;;; 감사는 정말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는 좀 본을 보이고 가르칠 필요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어른들이 많이 읽으면 어떨까 라는 생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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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2도에… - 지구 기온 상승이 불러올 환경 재앙 한울림 생태환경 그림책
김황 지음, 전진경 그림 / 한울림어린이(한울림)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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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가 환경교육주간이라고 교육청에서 자료지원 공문을 보내왔다. 교육청과 환경재단이 함께 만든 영상자료를 신청한 교사에게 영상링크와 비번을 보내주겠다는 공문이었다. 개요를 보고 적당해 보이는 것을 신청했다. 지구온난화 주제로 10분 가량의 애니메이션 + 15분 가량의 전문가 강의로 구성된 영상자료였다. 그런데 우리반 어린이들이 어른들 말을 이해하는 일이 좀 낯설어서인지 강의를 듣는 표정에 물음표가 가득했다.ㅎㅎㅎ 중간에 끊고 이 그림책을 투입했다. 교사의 수업은 계획성도 매우 중요하지만 때로는 융통성과 임기응변도 중요하다. 이 책 덕에 완성도를 높일 수 있게 되어 고마운 마음이다.

 

기후위기를 다룬 어린이책들도 많고 그림책도 꽤 된다. 이 책은 그중에서 쉽고 직관적이어서 저학년까지 읽기에 적당한 쪽이라고 생각된다. 시종일관 2상승이 가져올 수 있는 재앙을 다양하게 제시한다. 아플 때 체온이 오르는, 어린이들이 모두 경험해봤을 현상을 도입으로 하여 지구온난화를 지구가 아파서 열이 나는 것에 비유한다.

 

고작 2가 올라가면....

물고기가 대이동하고

산호초가 다 죽어 죽음의 바다가 되고

점박이물범이 사라지고

바다거북이 멸종하고

자이언트판다가 먹을 것이 없어 살 수 없게 된다.

일부 곤충은 사라지거나, 반대로 개체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아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이상기후로 그 외에도 많은 동식물들이 살 수 없게 된다.

마지막 장은 2로 가는 갈림길에 바리케이트를 치고 아무도 못 가! 이 길은 절대 안 돼!”라고 비장하게 말하는 아이를 그려놓았다. 다른 길은 1.5를 사수하는 길이다.

 

여기서 2015년에 체결된 유엔 파리 협정에서 정한 마지노선이 1.5이며 그동안에도 1는 이미 넘었기 때문에 이제 0.5를 지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는 부연설명을 곁들이며 읽어주니 더 이해하기 좋았다.

 

표지 그림도 제목글씨도 강렬하여 독자를 끌어당기는 힘이 있는 책이다. 본문의 그림들도 색감과 붓터치가 모두 좋다. 다만 이런 이슈는 사실 실천이 중요한 것인데 거기까지는 나아가지 못하고 끝났다. 책 한 권에서 모든 것을 다 다룰 수는 없기 때문에 그것이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책마다 역할이 다른 것이니까. 다만 지도해주는 어른이 자연스럽게 연결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큰일났다고 아무리 울부짖어봤자 달라지는 건 없으니까. 하나라도 발걸음을 떼어야 하는 것이니까. 이 책은 그 발걸음으로 이어지는 방법을 찾으려는 동기유발을 훌륭하게 해줄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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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야 할 세계 - 제13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문경민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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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전부터 제목이 너무 좋았다. 지켜야 할 세계. 뭔가 크고 깊은 의미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읽고 나니 거기에선 아픔도 느껴지고 회한도, 절망도, 한계도, 체념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재처럼 한 줌 남은 결심이 느껴진다. 젊은 날을 한참 지나고 보니 인생이 지켜낼 것은 그다지 많지 않다. 죽을둥살둥 몸부림치며 살아봤자 남는 것은 거의 없다. 어찌보면 인생만큼 가성비 떨어지는 것도 없다. 하지만, 진정으로 애쓴 이들에겐 한 줌일지라도 남는 것이 있으리라. 그것이 바로 그들이 '지켜낸 세계'가 아닐까. 그러니 대단한 일을 할 것처럼 치기 넘치게 덤비는 것도, 결국 아무것도 없을 거라며 허무한 냉소를 보내는 것도 옳지 않다. 소중한 것은 분명 있다. 그것이 각자가 ‘지켜야 할 세계’일 것이다.

정윤옥 선생님. 꼿꼿한 성품으로 정년까지 교직을 지켰던 그의 죽음으로 소설이 시작된다. 끝을 닫고 시작하는 이야기. 그의 끝을 열어놨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도 들긴 했지만, 작가의 결정을 존중한다. 그것이 인생이기도 하고, 꼭 나쁜 것은 아니기도 하다.

윤옥의 60년에 담긴 인생과 시대의 질곡이 이 소설의 소재고 배경이다. 윤옥 10살 때 화약사고로 건축일 하시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남매를 키워야 하는 윤옥의 어머니는 독하게 살아야 했다. 첫째인 윤옥은 남달리 총명했지만 동생 지호는 중증 뇌병변장애를 갖고 있었다. 생업전선에 나가야 하는 엄마를 대신해 동생 수발은 윤옥의 차지였고, 보다못한 엄마는 장애인들을 돌본다는 사기꾼 목사에게 아들을 넘긴다. 지금도 장애인들과 그 가족의 고통은 해결되려면 멀었지만 그 옛날이야 말해 무엇하랴.... 그렇게 포기된 목숨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이 선택은 어머니와 윤옥이 평생 짊어질 굴레가 되었다. 끝났는가 싶어도 끝이 아니었다. 이런 서사를 완성해 간 작가님의 필력에 감탄하는 건 두 번째고 그 서사 자체를 따라가기에도 감정이 벅찰 정도였다.

윤옥은 63년생. 교직에 나온지 몇년 되지 않아 87 민주항쟁의 해를 맞이했고, 교원노조 가입으로 고초를 겪었고, 끝내 탈퇴하지 않아 해직교사 신분이 되었다. 천 명이 넘는 유례없는 해직사태였기에 이 해직 동료들은 아직도 주변에 많다. 내가 교대 들어가기 전과 바로 직후의 일들이지만 내게도 기억이 생생한 사건이다. 몇 년 후 그분들은 복직되었지만 해직 당시에는 낙관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일생을 건 결심이었을 것이다. 그들 또한 그것이 ‘지켜야 할 세계’였을 것이다.

당시 윤옥은 고등학교에 근무하고 있었기에 제자들과 나이 차이가 크지 않았다. 그중 수연이라는 제자와는 평생의 인연을 유지한다. 악연이라기엔 너무 사랑하지만, 또 아니라기엔 너무 아프게 얽힌 그런 인연..... 그 사이엔 윤옥의 사범대 동기 정훈이 있다. 함께 야학 교사를 하며 교육, 새로운 세상, 정의, 프레이리... 등을 부르짖던 정훈. 그는 그러다가 유학을 갔고, 윤옥이 평교사로 늙어가는 동안 승승장구하여 교육감까지 되었다. 그러나 그는 이제 뉴스에 오르내리는 사람이 되었다. 무슨 일로....?ㅠㅠ

비슷한 길을 간 사람들이 많이 있다. 한때 정의를 부르짖었다고 그의 본성까지 정의인 것은 아니다. 진영에 선악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그저 함부로 까불지 말아야 된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한걸음 한걸음을 성찰해야 한다고. 안그러면 말로를 보장 못한다. 많은 이들이 골로 갔듯이, 그 전철을 밟을 것이다.

마지막까지 수업에 온 마음을 다하고, 자신감과 자부심을 잃지 않았던 윤옥의 모습이 내게 가장 큰 도전이 되었다. 부럽다. 정년을 앞두고 중증장애인 시영이 있는 2학년 반의 담임을 달라고 싸우는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했다. 물론 동생 지호가 그 마음의 배경에 있는 줄은 알고 있지만.... 교장감이 편한 자리를 주겠다는데도 그 험난한 반을 굳이 맡는 그 사명감은 존경스럽다. 그리고 결국 윤옥은 그 아이들의 단단한 껍질을 조금씩 벗겨갔다. 교사로서 최대치의 역량과, 온 마음과 열정과 시간을 다해야만 겨우 꿈쩍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걸 60세에 했다는 것 자체가 존경스럽다. 나는 못해....ㅠ 윤옥은 초임때부터 내게는 넘사벽 교사였다. 첫째는 그가 엄청나게 공부하는 교사였고,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절대 굽히지 않는 교사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그 훌륭함 때문에 오히려 더 고초를 겪었다. 수업과 평가에 대한 교권침해성 민원도 많았다. 학부모들은 별걸 다 참견하며 요구했고 비굴한 학교는 또 그것을 들어주었다. 학부모들은 윤옥의 수업 동영상을 요구했고 보고나서 되지도 않는 안목으로 이런저런 비난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교사 정윤옥 국어수업 관찰 분석 보고서’라는 꼴같잖은 보고서를 만들어냈다. 그럼에도 윤옥은 끝까지 굽히지 않았다. 이게 가장 놀라웠다. 그리고 그가 교감 앞에서 삼킨 말, “내가 지켜야 할 세계란 말입니다.”(218쪽) 이 말에 전율이 일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을까. 그건 지킬 자신이 있단 말이잖아. 나의 문제는, 그럴 자신이 없다.ㅠㅠ

꼿꼿하고 외로웠던, 파란만장하면서도 단조로웠던 윤옥의 삶은 60년의 짧다면 짧은 마감을 했다. 그는 억울했을까. 그렇지는 않았을 것 같다. 못 지켜낸 것도 많았지만 애써 지킨 것들도 있으니까. 그리고, 적어도 비겁하진 않았으니까. “정 선생님은 사람을 부끄럽게 만드는 구석이 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정 선생님을 좋아하지 않는 겁니다. 그 사람들이라고 나쁜 사람으로 태어났겠어요? 아닙니다. 다들 사느라 그러는 거예요.” 라는 말을 젊은 날 교감한테 들었듯이. 모두가 이런 타협을 했다면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겠지. 그러나 그 태도를 평생에 걸쳐 유지한다는 것 또한 얼마나 어려운가. 쓸데없는 똥고집도 아니고 꼰대질도 아니게. 물론 외로움은 숙명이었지만. 윤옥이 뭐 대단히 세상을 바꾼 것도 아니지만 한 인생 꼿꼿하게 유지하는 것 하나도 이렇게 놀랍도록 어렵다.

독자는 무심코 내가 읽은 순서와 흐름대로 작가가 쓱쓱 써나갔을 것을 상상하지만 작가의 말을 읽어보니 이 책은 수년에 걸쳐 곳곳에서 반려되며 몇 번이나 뒤집었다 엎었다를 반복한 작품이었다. 끝내 이렇게 고갱이가 남아 혼불문학상이라는 좋은 결실을 얻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싶은 마음이다. 덕분에 감정과 생각이 조금 일렁였고 좋은 재가 한 줌, 까진 아니고 반의 반 줌?쯤 남았다고 생각한다. 매우 오랜만에 드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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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얼굴을 찾고 있어 바일라 18
김혜진 지음 / 서유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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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한 편에 얼마나 많은 작가의 생각과 경험과 시간이 들어가 있는지 이 책을 보고서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그러고보면 소설을 쓰는 것만큼 가성비가 떨어지는 일도 없다. 그 시간에 무슨 알바를 하더라도 그보다는 많이 벌 것이다. 베스트셀러 쯤 된다면 예외겠지만....

박물관을 좋아하는 고1 여학생 이해솔. 이 아이가 화자다. 박물관이라니, 흔한 취향은 아닌데, 얘는 단순 취향만은 아니고 혼자 있을 수 있는 도피처로 활용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곳이 국립중앙박물관이어서 배경으로 자주 나온다. 작가 또한 그곳에 자주 가셨구나 하는 걸 읽다보면 느끼게 된다. 나는 기억이 오래되어 희미해서 좀 아쉬웠다.

왜 붙어있는지 모르겠는 양극단의 두 아이. 서루아와 지태희. 루아는 때로 생각이란 게 있는지 의심될 정도로 무턱대고 덤비며, 요란스럽고 시끄러운 스타일이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대책없는 스타일. 하지만 왠지 루아는 그렇게 밉진 않더라. 작가님의 애정이 들어간 탓이겠지.

빈틈없는 우등생 지태희. '마지막 신라인 윤경렬'이라는 분이 태희의 돌아가신 외가 친척 할아버지라고 한다. 실존했던 인물의 소설 속 등장! 작가의 말을 읽어보니 그분이 바로 작가님의 친척이라고 한다. 소설의 최초 씨앗이 여기서 나왔구나 짐작할 수 있었다. 윤경렬이라는 분은 원래 함경도 태생이지만 일본에 갔다가 경주에 정착했다. 일본에서 토우 인형 제작을 배워왔는데, 그것으로는 우리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없다는 조언을 듣고 깨달은 후, 경주에서 신라문화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전파하는데 평생을 바치셨다고 한다. 태희는 할아버지가 찾던 그 '얼굴'을 찾으려 하고, 루아는 그 옆에 덤벙거리며 동행한다. 그러다 박물관에서 이해솔과 뜻밖의 만남을 하게된 것이다.

실존인물 윤경렬 님의 생애도 작품 속에서 비중이 높지만 아무래도 중요한 서사는 세 아이의 내면이다. 고학년 동화나 청소년 소설을 아주 많이는 아니지만 꽤 읽어본 편이라 갈등과 상처, 방황과 고민들도 이젠 거기서 거기로 보일 때도 있다. 겪는 개개인에겐 우주만한 크기의 고민이겠지만 무뎌진 주변인에겐 "그것도 한때야. 다 지나간다." 뭐 이런 느낌?

이 책의 아이들의 문제도 다른 책들에 비해 그렇게 강렬하다고 볼 순 없었다. 그렇다. 때가 되면 지나갈 문제일 수도 있고 아이들이 나름 잘 버티고 애쓰고 있는 문제이기도 했다. 이 책에서 벌어진 아이들의 일탈은 큰 사고는 아니어서 하루의 해프닝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고 학교에서의 처리도 원만했다. 하지만 이런 다행스러운 하루의 일탈 속에서 살짝 보여준 아이들의 진심, 혼자만 품고 있었던 아픔들을 느낄 때 이모심정(?)으로 아이들을 응원하게 되었다. 아이들이 잘 품고 있어서 그렇지 그 아픔들은 작은 게 아니었는데, 그걸 그정도에서 마무리하고 다시 일상을 챙기는 아이들이 너무 대견했다. 실제로 이와 비슷한 아이들도 있겠지. 돌이키기 어려울 정도로 자신을 파괴하는 아이들도 있고. 이 책은 교훈을 주려는 책이 절대 아니지만 또래 아이들이 읽고 자신들의 표현방식을 돌아봤으면 하는 마음도 생겼다. 부디 불의 크기를 조절하기를. 놓쳐버리면 모든걸 다 사르게 된다.

세 아이의 일탈은 무단결석과 경주행이었다. 목적지가 경주인 이유는 짐작할 것이다. 제목도 그걸 말해준다. <우리는 얼굴을 찾고 있어> 이게 한 가지 의미가 아니었다는 게 마지막에 좀 반전이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 느낀 건 어른들도 깨닫기 힘든 것들이었다. 사실 문제는 부모들한테 있는 건데, 그때문에 상처받고 아파하는 아이들이 안타깝다. 이제는 부모 인생의 그늘에서 좀 벗어나면 안되나? 시대가 달라졌다고 해도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 이 아이들은 지금 진통을 겪으며 그걸 해내고 있는 중일수도.

"그곳에 뿌리가 있는 것도, 가족의 역사가 있는 것도 아닌데 상자 속의 아기는 왕이 되고 외지인은 역사가 되었다. 나 역시 그럴 수 있을까. 세상의 벽은 내가 두려워했던 것보다 높지 않을지 모른다. 또 어떤 우연이 나를 우연한 각도의 시야로, 풍경으로 데리고 갈 수도 있다." (183쪽)

"길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우린 아직 헤매고 있다. 많이 헤맬 테니까 많은 답을 찾게 될 것이다. 동그라미나 빗금이 쳐지지 않을, 질문보다 길어질 답들을." (188쪽)

"얼굴을 본다는 건 결국 마주보는 것이었다.
나는 사실 내 얼굴을 보여주고 싶었나 보다.
이 마음을 받아들이는 데까지 오래 걸렸다."
(지태희의 반성문, 아니 여행소감문 중에서)

폭발하고 떼쓰는 아이들보다 삼키고 참는 아이들이 더 마음이 가고 안쓰럽다. 그 아이들에게 이 책이 선물이 되고 친구가 되면 좋겠다. 그 아이들의 부모님들도 읽어보시면 좋은데. 청소년소설을 읽는 부모님이 많이 계시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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