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의 웜뱃 피아니스트, 월리 그림책 숲 29
로타 텝 지음, 카밀라 핀토나토 그림, 김여진 옮김 / 브와포레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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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목요일마다 싱어게인 시즌3을 보느라고 새벽 무렵에야 잠들곤 한다. 싱어게인1에서 이승윤에게 열광한 뒤, 시즌2를 시작할 때 별 기대가 없었다. 그만한 인재는 이제 없을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와 그런데 결국은 보게 되었다. 스타일은 다르지만 대단한 사람들은 아직도 많았다. 시즌3이 되었다. 이젠 걸출한 인재들이 좀 빠졌겠지? 세상에나 천만의 말씀. 이렇게 잘하는 사람들이 왜 여태 볕도 못 쬐고 있다가 어디서 튀어나왔지?

 

이것 뿐만이면 말을 안 한다. 우리나라는 무슨무슨 내가 알지도 못하는 경연 프로그램도 많다. 얼마전엔 우연히 슈퍼밴드를 살짝 역주행해보았는데 미친 연주자들 투성이였다. , 천재들도 저렇게 자리 잡으려고 기를 쓰는데 그냥 수재급, 심지어 평재들은 어떻게 살라는 거임? 평재도 겨우 되는 내가 지금껏 벌어먹고 살았다는 사실이 신통방통하고, 역시 평재인 나의 딸과 아들이 이 경쟁사회에서 어떻게 살아야 되나 걱정이 앞선다.

 

이번주 도서실 수업은 편하게 자유독서를 했다. 아이들이 각자 좋아하는 자리에서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신간 그림책 서가에서 머무르다 이 책을 뽑아들었다. 그림책을 아주 많이 읽어본 편은 아니라서 작가의 이름이 낯설다 생각했는데 이 책이 첫 책이라고 한다.^^ 대신 역자는 요즘 활발히 활동중인 선생님이시라 눈에 확 들어왔다.

 

월리라는 이름의 웜뱃은 피아노를 정말 좋아했다. 좋아해서 많이 치다 보니 어느새 세계 최고의 웜뱃 피아니스트가 되었다. 하지만 그건 오래가지 않았다. 금세 더 뛰어난 피아니스트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젠 그냥 잘 치는 거로는 되지 않는다. 월리는 탭댄스 추면서 치는 피아니스트가 되었다. 하지만 경쟁자도 그걸 금방 넘어섰다. 이번엔 탭댄스 추면서 공굴리기까지 하면서 쳤다. 그것마저도 뛰어넘는 경쟁자가 있었다. 다음 장면에서 월리는 폭발하여 탭댄스 추던 신발을 집어던지며 더 이상 못 하겠어!” 라고 소리를 지른다.

 

월리는 피아노를 포기하고 피아노에서 멀어진다. 그래도 다른 일들을 하며 일부러 바쁘게 지낸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불안한 이시대의 능력자들을 보는 것만 같다. 하지만 그럴수록 피아노가 자꾸만 생각났다. 어느날 밤 밖에 나갔다가 집 근처를 어슬렁대는 다른 웜뱃을 만났다. 그는 이전 경쟁자 와일리였다. 그는 월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랑 피아노 연주하던 때가 그리웠거든.”

네 덕분에 피아노를 더 열심히 연습해서 나도 잘 치게 되었거든.”

 

둘은 마음이 통했고, 함께 연습하다 보니 세계 최고의 콜라보 공연도 하게 된다. 여기서 끝내는게 맞을 것 같은데.... 한 장이 더 남았어. 그 마지막 장면에서 풋!!ㅎㅎㅎㅎㅎ 아, 넘나 현실적이다. 그렇지, 현실은 그래.ㅋㅋㅋㅋ

 

그래. 최고는 계속 경신되게 되어있어. 그러니 내가 생애 한 번쯤 최고를 찍어보아도 좋은 거고, 그렇지 않다 해도 상관은 없어. 바퀴벌레인가 싶게 능력자는 나오고 나오고 또 나오더라고. 그니까 스트레스 받지 말자. 상투적인 말인 것 같지만 내가 이것을 하면서 행복한가가 더 중요한 것이니까.

 

사회 안에서 살아가면서 경쟁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다. 하지만 눈 가리고 외발자전거 타면서, 불꽃 내뿜고 훌라후프 타면서 피아노를 치는 그 장면은 우리 사회 극한 경쟁의 모습을 그림 한 장에 너무 재치있게 담았다. 그냥 하나쯤만 잘해도 만족하면 안될까. 하나도 잘하지 못해도 주눅 들지 않고 살면 안될까. 저마다 자녀들에게 팔방미인이 되라고 밀어붙이는 사회는 너무 잔인하지 않을까.

 

평범인으로 살아가는 나같은 사람은 SNS를 하는 것 자체가 자괴감을 촉진하는 행위다. 세상에는 잘난 사람들이 너무 많아. 하지만 기억하자. 영원히 박수를 받는 사람은 없다. 박수 자체에 너무 의미를 두지 말자. 월리에게 가장 행복하고 설렜던 순간은 와일리가 다가왔던 순간이었지.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 , 이 책의 주제가 그것은 아닌 것 같은데...^^;;; 나는 그냥 여기서 끝맺으려고 한다.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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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의 수호천사 고래동화마을 13
이현지 지음, 김정은 그림 / 고래가숨쉬는도서관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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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작가도 초등교사구나. 요즘 일부러 찾은게 아니고 우연히 잡았는데 작가가 초등교사인 경우가 부쩍 많았다. 같은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학교의 일상 하나로도 죽는소리 하면서 사는데 창작까지 하시는 분들 보면 부럽고,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응원하는 마음도 생긴다. 이 책의 사건이나 상황들은 작가님이 어느정도 취재도 하신 걸로 보이지만 기본적으로는 상처받고 어긋난 아이들에 대한 이해가 바탕에 깔려있다고 느꼈다. 조금 부끄러워졌고 다시 마음이 복잡해졌다. 내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혼란의 도돌이표일까. 이건 그냥 그만두는 날까지 숙명인걸까.

내가 부끄러웠던 건 주인공 한나와 같은 아이가 우리반이라면 이라는 가정에 대해 '아 제발...' 하면서 사양하고픈 마음이 드는 것이다. 진통을 겪는 사람 옆에 밀착되어 있는 사람은 그 진통을 함께 겪을 수밖에 없다. 물론 본인같을 수야 없지만. 그래도 그 진동이 학급을 흔들고 나도 흔든다. 아 제발... 평안한 일상을 살고 싶어. 나도 나의 생활이 있잖아. 퇴근하면 나랑 내 가족 생각만 하고 싶어.

그래도 우리에게 선택권은 없기에 겪을 일은 겪어야 한다. 이 책의 담임선생님은 젊으신데 참 사려깊고 품도 넓은 분이었다. 때로는 몰아닥치는 사건에 지치고 버거워보이기도 했지만.... 하지만 선생님은 함께 겪는 사람일 뿐 해결자가 되어줄 순 없었다. 많은 경우가 그렇다. 대부분의 문제는 문제의 근원에서 해결되기 때문이다. 거기까지 가지 못하고 끝내 해결되지 않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는 자각도 참 슬픈 것 중의 하나다.

한나는 도벽이 있다. 제목의 '도둑'이 바로 한나다. 그건 엄마가 돌아가시고부터 생겼다. 정확히 말하면 그 억울함 때문에. 엄마는 음주운전 차에 치어 돌아가셨는데 그인간은 겨우 4년형을 받았다. 처음이고 반성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나의 세상은 무너졌는데 그인간은 4년 후면 다시 일상을 살게 된다. 한나는 그걸 참을 수 없었다.

"그 생각을 할 때마다 배에서 커다란 뱀이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밤새 침대에서 몸을 비틀고 난 아침이면 아무나 잡아서 목을 덥석 베어물고 싶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훔쳤다. 도둑맞은 걸 알아채고 분노하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게 나의 가장 큰 위안이었다."
"내가 잘못했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나도 나만의 규칙이 있다. 나는 한 사람한테 딱 한 가지 믈건만 훔쳤다. 그러면 걸리더라도 그 새끼처럼 당당할 수 있다. 그 친구한테 물건을 훔친 건 처음이고 원한다면 나도 얼마든지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한나의 심정이 이해는 간다. 하지만 부모없는 한나의 유일한 보호자가 된 이모의 이런 말에 더 동의를 하게 된다. 어쩔 수 없이.
"너 핑계 대지 마. 이건 다 너 때문이야. 네가 스스로 만든 일이라고. 엄마 없는 애들이 다 너처럼 사는 거 아니야. 엄마가 하늘에서 지금 너를 보면 뭐라고 하시겠니?"

나라도 저렇게 말했을 거다. 평소에 내가 하는 생각이 딱 저렇다. 하지만 그렇다해도 사람의 마음이 그냥 풀리는 건 아니다. 시간이 해결해 주는 것도 절대 아니다. 죽은 사람이 살아돌아올 수 없는 것도 알고, 과거로 되돌아갈 수 없는 것도 안다. 하지만 아는 것으로 마음이 풀리지는 않는다.

한나는 급기야 가출을 감행했고, '가출팸' 집에 들어갔다. 집 밖이, 학교 밖이 얼마나 험하고 무서운가. 그래서 위의 심정들을 다 이해한다 하더라도 이런 결정은 꾸짖고 바로잡고 싶다. 다행히 한나에게는 '수호천사'가 따라붙었다. 천사의 실체가 이야기의 가장 큰 반전이다.

마지막에 마음이 말끔해진 한나의 변화를 보니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새로운 기운과 희망이 느껴지는 결말이다. 그럴 수 있었던 건 앞에서 말한 '문제의 근원'이 건드려졌기 때문이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선택을 하지 않는다.

진심어린 사과에 대해 생각해본다. 애끓는 사과. 사과를 강요하는 세상에 살고있지만 오히려 진심어린 사과는 자취를 감췄다는 느낌이다. 그리고 용서. 용서 또한 밀어붙여져선 안된다. 두 가지가 어떤 지점에서 만나고, 작용이 일어날지는 쉽사리 알 수 없다. 매뉴얼대로 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많은 상처가 이것으로 치유된다는 점만은 확실하다. 그리고 "깽판을 치면 깽값을 물어야 한다."는 아주 날것의 진리도 유효하다. 마음의 상처는 정상참작만 가능할 뿐 핑계가 될 수는 없다. 어차피 내가 갚아야 할 빚이다. 그 빚을 열심히 갚는 한나의 모습이 짠하고도 기특했다. 잘 생각했다 한나야. 응원할게. 이것밖에는 해줄 수 없어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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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달달 달려요 웅진 우리그림책 113
김도아 지음 / 웅진주니어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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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책의 결정적인 장면에서 살짝 놀란 나는 아직도 한참 멀은 사람이다. 학교에서는 사회시간에 한창 편견, 차별, 다양성이라는 주제로 수업을 해놓고선.... 그뿐인가? 이전 단원에선 사회변화의 키워드로 저출산, 고령화를 다루었다. 그 이전 단원에선 도시와 촌락의 문제점을 공부했다. 이 얇은 그림책 한 권에 이 모든 주제가 담겨 있었다. 감탄했다.

그렇다고 이 책의 느낌이 무겁냐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게 더욱 감탄스럽다. 그림부터 아름답다. 색감이 너무 예쁘고, 표정도 살아있는 사랑스러운 그림. 이런 곳에 살아보고 싶어지는 그림이다. 서사는 어떻고? 그 또한 아주 맘에 든다. 등장인물들은? 인정 많고 유쾌한 사람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이 책은 비현실적인가 라는 생각이...? 아니다. 절대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냥 이곳을, 이 마음을 지키고 싶다는 생각이 단단하게 올라온다.

제목에 나오는 ‘달달달 달리는’ 것은 경운기다. 그렇다. 이 책의 배경은 농촌이다. 한창 추수에 바쁜 가을. 주변은 너무 아름답고 주민들은 너무 바쁘다. 그런 중에 동네 방송으로 울려퍼지는 이장님의 목소리.
“그.... 농번기라 다들 바쁘시것지만 가실 수 있는 분들은 그... 내일 아침 6시까정 저...기 마을 앞 느티나무로 나오시면 됩니다.”

다음날 이른 아침, 이장님은 경운기를 단단히 채비하고 자기 과수원의 사과를 한 상자 싣고 출발한다. 느티나무 앞에는 네 분의 할머니가 각자 뭔가를 바리바리 싸들고 기다리고 계셨다. 헐레벌떡 뛰어오신 할아버지까지, 총 6명의 주민이 경운기로 길을 떠난다. 이런 말들을 나누면서.
“온 마을 경사여.”
“경사구말구유.”
“우리 어릴 적엔 참 북적북적혔는디.”
“그러게 말여유.”

경운기는 가을의 논을 지나, 밭을 지나, 오르락내리락 산길까지 지나간다. 밤나무 숲을 지날 때 따가운 밤송이들이 떨어지는 모습, 롤러코스터처럼 경운기로 오르막 내리막을 타는 모습이 아주 재미나게 표현되어 있다. 풍경은 또 얼마나 이쁜지. 한 장 한 장이 작품이다. 작가님의 다른 책도 찾아보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든다.

이렇게 하여 드디어 도착한 곳은.... ‘탕’씨 부부의 집이었다. 할머니들이 탕씨 부인의 손을 잡고 “고생 많았구먼.” 하신다. 짐작한 대로, 이 집에 아기가 태어난 것이다. 할머니들이 가장 보고 싶어하는 것이 뭐겠어. “어머나, 이뻐라!” 하며 모두가 들여다보는 그곳엔 얼굴이 까맣고 머리가 곱슬곱슬한 아기가 새근새근 잠들어 있다.

우리의 농촌마을 깊숙한 곳에 외국인 부부가 정착한 것이다. 마을 어른들은 그들을 이모저모 보살펴 주고. 할머니들이 바리바리 가져온 보따리들엔 김치며, 떡이며, 고구마 등의 각종 농산물에다 미역, 참기름과 들기름, 천기저귀, 아기옷과 딸랑이까지 있다.
“얼마 만에 아가를 보는 겨?”
“건강하게 잘 커야 혀.”
이런 대화 속에 교과서에서만 가르쳤던 촌락의 문제들이 들어있다. 마을 노인네들은 아가도 보고, 미역국도 끓이고, 밭일도 봐주고, 장 담근 것도 봐주며 이 새로운 마을 식구를 살뜰하게 살펴준 후 바이바이 작별하고 달달달 경운기로 왔던 길을 돌아온다.

얼굴색이 다른 아기를 보고 기뻐하고 예뻐하며 축복하는 주민들의 모습에서 우리 사회의 나아갈 방향을 보았다면, 나는 한가지 생각이 더 들어서 좀 착잡한 마음도 되었다. 촌락의 이야기는 이제 이렇게 쓰여질 수밖에 없는가? ‘이렇게도’ 쓰여지는 것은 물론 좋지만 ‘이렇게밖에’ 쓰여질 수 없다는 것은 또 새로운 문제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작가님은 물론 '이렇게도' 쓰신 것이고 이제 그 첫걸음인데 노파심이 너무 심하단 생각도 든다.^^;;;; 부디 이 작고 예쁜 마을의 다양성과 수용력, 나눔과 인정이 우리나라 전체의 것이 된다면 좋겠다. 지금 우리나라는 여러 면에서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이 책에 감사하며, 이런 희망이 향기처럼 퍼져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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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사회, 공감이 진짜 실력이다 - 세상을 바꾸는 교실 공감교육
도대영 지음 / 푸른칠판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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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이라는 단어의 홍수시대다.
얼마 전 딸이랑 동네 지나가다가 '공감○○○' 라는 식당이 생긴 걸 봤다. 딸이 이런다.
"저기 분명 맛없다. 식당이고 뭐고 저런 이름 지은데가 제대로인 꼴을 못봤어. 이름만 저렇게 지으면 맛이 있어지나?"
"안 가면 그만이지 열은 왜 내니?" 하면서 웃고 말았지만 솔직히 나도 이제 그 말에 피로감을 느낀다. 이러한 공감 피로 현상은 원인이 두가지인 것 같다. 첫째는 개념이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남용되고 있다는 점, 둘째는 강요받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일부 직종에게는 더욱 그렇다.

저자는 이러한 점을 정확히 꿰뚫어보고 공감에 대한 개념을 명확히 하며 필요성을 역설한다. 단지 도덕적이거나 당위적인 면에서의 접근이 아니고 이성적이고 실용적인 접근인 점이 인상적이었다. 훨씬 설득력이 있을 뿐 아니라 개인적으로 내 취향에 맞기도 했다.

공감이라는 단어의 오용은 ‘동의’와 혼동하는 데서 가장 많이 일어난다고 본다. 이 책에서도 그 점을 지적해주었다. 공감은 동의가 아니며 동조는 더더욱 아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공감해 주기를 바랄 때 동의, 나아가서는 동조를 바란다는 점이 문제다. 상대방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 오해가 있다. 이렇게 혼동된 공감의 개념이 만연할 때 공감 염증 현상이 퍼지게 되며 지금이 그런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니 이 책은 아주 시의적절하게 나온 책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저자는 ‘공감은 하나의 유기체’라고 하며 공감은 하나의 반응이나 행동이 아니라 정서적, 인지적, 행동적 활동을 포함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즉, 정서 공유, 관점 공유, 적절한 반응이 어우러진 개념이라는 것이다. 공감만능주의가 공감 알러지를 가져온 것도 어느 정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멀리하기에는 매우 중요하고 필수적인 것이 맞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당위적으로 중요하다기보다도 생존적으로(?) 필요하다. 살아가려면 있는 게 좋다. 나에게도 좋고 남에게도 좋다. 결국 전반적으로 좋은 세상을 가져올 것이다. 그러니, 교육에서 이 부분을 중요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공감, 공감 공허한 메아리만 울리는 것이 아니라 전문적인 공부와 적용을 하신 저자의 노력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1장이 공감에 대한 이론적인 정리라면 2장은 저자의 교실 현장이다. 공감교육이 뿌리내리도록 학급운영에 세심하게 적용한 사례들이 잘 정리되어 있다. 일단 감정 수업으로 시작하는데 이 부분은 꽤 익숙한 수업이다. 나도 해본 적 있는 수업들. 하지만 저자와 다른 점이 있다면 저자의 지향점이 훨씬 더 멀리 있다는 것이다. 감정 자체에 대한 이해도 중요하고, 거기까지만 간다해도 아예 안하는 것보다는 도움이 된다. 하지만 저자가 1장 초반에서 언급했듯이 공감능력은 연마할 수 있는 것이므로 적절한 연습 프로그램에 따라 꾸준히 해나가면 훨씬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차후의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는 저자의 감정수업은 방향성이 분명하다. 나는 감정사전이나 감정툰 등의 책을 아이들과 함께 읽으며 몇가지 활동을 하고 끝냈는데 이 책을 읽고보니 활동을 추가해 훨씬 더 풍성하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예를 들면 ‘공감 체크인’이라든가 ‘감정 양피지’ 같은 활동들. 의미도 있으면서 놀이의 형식을 띠는 활동들을 소개해주고 있어서 도움이 많이 된다.

이렇게 다양한 감정을 알게 되는 [정서 공유] 단계가 지나가면 타인의 입장에 서 보는 단계로 나아간다. [관점 공유] 단계라 하겠다. ‘나, 너, 그 글쓰기’ 등의 활동이 소개되어 있는데 무릎을 치게 되었다. 이 단계의 수업은 갈등 상황이 있을 때 직접적으로 할 수도 있지만 평소에 독서수업을 할 때도 염두에 두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평소에도 문학수업의 큰 의미가 공감에 있다고 생각해 왔는데 이 책을 읽으며 그 부분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이처럼 공감 수업은 교과 포함 학급살이의 전반에 스며들어 있어야 한다.

다음 단계는 [공감적 반응] 단계인데, 마음은 표현을 해야 상대방이 알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고, 또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표현 방법을 잘 모르거나 어색해서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연습이 꼭 필요한 단계라고 하겠다. 욕심껏 사놓기만 하고 넣어둔 관련 카드들을 다시 꺼내볼까 생각하게 되었다. 한가지 뜨끔한 부분이 있었는데, 저자는 스킨십도 반응의 일부로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고 계신데, 나는 평소 이 부분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고 생활지도에 신체접촉 금지를 표방할 정도라서 마음에 좀 부담이 왔다. 개인적 성향도 좌우하는 것 같다. 어쩔 수 없는 나의 한계라서 이 부분은 좀 접어두어야 하겠지만 치명적인 부분은 아닐거라 믿고 싶다.^^;;;

마지막 단계는 [사회적 공감]이다. 편견과 차별, 다양성에 대한 교과 내용도 이 안에 다 담겨있었다. 공감은 공기처럼 인간의 삶에 넓게 스며 있는 것을 다시 확인하면서 이 분야의 연구와 실천이 이처럼 책으로 나온 것이 꼭 필요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교적 가볍게 읽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읽는 데 오래 걸렸고 한 번 읽고 말 책도 아니었다. 1장은 정독하면서 이해했다면 일독으로도 괜찮겠지만 2장은 적용하려면 옆에 두고 봐야할 책인 것 같다. 이런 책을 쓰기까지 상당한 공부와 내공이 있었겠다 느껴져 감탄하게 됐다. 교직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이제라도 보게 되어 다행이다. 나처럼 ‘공감’에 멀미를 느껴보신 선생님들께도 꼭 읽어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멀미를 치료하고 더 나아갈 수 있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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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개 마루비 어린이 문학 18
정승진 지음, 해랑 그림 / 마루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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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언뜻 너무 평범하고 밋밋해 보이지만 첫인상과는 다르게 아주 특별한 느낌들로 채워진 단편집이다. 사실 나는 ‘늙은 개’를 연극으로 먼저 접했다. 지난겨울(2023) 아스테지 출품작이어서 대학로의 큰 극장에서 보았다. 그림자극으로 만들어진 연극은 적당히 유머스러우면서 각종 기법들도 돋보였다. 마지막으로는 슬픔이 잔잔하게 남았다.

정승진 작가는 원래 어린이극을 주로 쓰는 희곡 작가다. 그가 쓴 작품은 이미 여러 편 좋은 평가를 받았다. 거인 이야기, 깨비가 잃어버린 도깨비방망이, 고래바위에서 기다려 등이다. 다른 작품도 많은 듯한데 내가 본 것은 늙은 개 빼면 이렇게 3편이다. 하나같이 재밌었고 기발했고 감정의 여운도 잔잔히 남는 연극들이었다. 그러다 어느 해 신춘문예 동화 부문에서 이분의 이름을 보게 되었다. 오, 동화 쪽으로의 진출?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때의 당선작이 이 책에 첫 번째로 실린 ‘손톱’이다. 그 작품 또한 연극에서 느꼈던 기발성(?)이 있었다. 심사평도 아주 좋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아무래도 양쪽 장르를 다 다작할 수는 없어서인지, 한참만에야 첫 동화집이 나왔다. 늙은 개와 손톱을 알고 있는 나는 너무 반가워 덥썩 읽어보았다. 총 일곱 편이 담겨있다. 약간씩 작품의 무게들은 다르지만 다 좋았다. 무게...라는 말을 하고보니.... 그렇다. 대체로 다 무겁다. 주제나 소재들이 말이다. 하지만 무거우면서 무겁지 않다. 어린이극을 쓰는 희곡 작가의 특기인가 한계인가. 나는 전자라고 생각한다. 쉽게 말하면 재밌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의 연극이 그랬듯이 이 책에도 전반적으로 슬픔이 깔려있다. 어떤 것은 얇게 어떤 것은 두껍게. 어떤 것은 희망과 함께 어떤 것은 그런 것도 없이. 유머를 장기로 갖고 있으면서도 슬픔의 시내가 그 밑으로 흐르는 정서가 매우 인상적이다. 첫 책이 이제 겨우 나왔을 뿐인데 성급한 말이지만, 이 작가가 ‘마구 웃기기만 한 책’을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이 책의 첫 단편이자 신춘문예 수상작인 「손톱」은 쥐변신 설화의 손톱 화소를 그대로 차용했다. 그게 아주 천연덕스럽고 거침이 없다. 대중목욕탕의 두 소년이 나누는 쥐인간 이야기. 은근 스릴있기도 하면서 다양한 상상을 불러일으킬 이야기다. ‘이야기’의 본질에 아주 잘 맞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 작품 「마중」은 스포를 조심해야 될 것 같다. 그래서 나도 말조심... 슬픔과 희망은 동전의 양면처럼 같이 있는 것인가, 슬픔을 거름으로 희망이 꽃을 피우는 것인가. 하여간 슬픔의 자리에 화사한 벚꽃비와 아침햇살이 눈부신 작품이었다.

「심사」라는 작품의 무게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상상력과 표현력도 넘치는 작품이다. 주인공 노바 씨는 작은 항구의 출입국 관리소 직원이다. 난민 심사도 그가 하는 일 중 하나다. 한가한 그곳에 어느날 신입사원이 도착해 노바 씨는 의아해한다. 두 사람 사이의 신경전, 그리고 대비되는 캐릭터에 웃음이 난다. 그러다 아주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난민이 도착했다! 그는 외계인. 1300만 광년이나 떨어진 별에서 웜홀을 통해서 도착했다는. 하지만 노바 씨는 쉽게 그를 받아들일 수 없어 계속 새로운 질문을 만들어내는데.... 주제의식은 무거우나 작품은 가장 상큼하다. 아주 재밌게 읽은 작품이었다.

드디어 표제작「늙은 개」가 나온다. 늙은 주인과 정을 나누는 동물들의 사연은 참 애틋하다. 그런데 그 주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되면.... 게다가 진돌이도 늙은 개다. 개도 치매에 걸린다는 사실을 이 작품을 통해 새삼 떠올리게 됐다. 고달픈 몸을 이끌고 날마다 할머니를 찾아 헤매는 진돌이, 얄밉게 쏘면서도 늘 그 옆에 동행하는 까망이. 개와 고양이의 우정도 인상적인 작품이다. 까망이가 ‘불빛이 번쩍거리는 차를 타고 가서 다시 올 수 없는’ 할머니를 입에 올리지 않는 이유는 무얼까. 그것도 우정이다. 날마다 할머니를 찾는 고생이 진돌이에는 차라리 나은 것이다. 그걸 지켜보는 독자는 너무 슬프다.

「라이카의 편지」는 가장 슬프다. 라이카가 화자다. 인간이 자기한테 한 짓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라이카를 화자로 할 생각을 하다니. 라이카가 나온 책들이 몇 권 있는데 다 읽어보진 못했지만 이 작품이 단연 가장 슬펐다. 미안해 라이카....ㅠ

「호랑이와 아이」에도 손톱과 마찬가지로 옛이야기의 화소가 나온다. 바로 ‘재판’이다. 호랑이를 구해준 착한 인간, 그리고 그를 잡아먹으려는 호랑이가 여러 동물들에게 재판을 청하는 이야기.(토끼의 재판?) 이 책에서 아이는 아파트, 강물에게 재판을 청했지만 그것들은 호랑이의 손을 들어주었다. 마지막 재판을 해준 존재는? 이 모든 일은 단지 꿈이었을까?

마지막 「어린이 공화국에서 온 편지」의 화자는 할아버지다. 독거노인이다. 또다른 주인공은 할아버지가 병원에 계신 동안 할아버지 집의 마당에 침입해 ‘본부’를 짓고 있는 남자아이다. 할아버지는 이 아이를 내치지 않았다. 외로움이 깊은 사람에겐 인기척이라도 그리운 법이기 때문일까? 게다가 할아버지는 이 아이의 치명적 사정을 알아차리게 되는데, 두 사람의 관계는....

이렇게 하여 소재도 주제도 느낌도 다양한 7편의 단편을 모두 읽었다. 150쪽 정도의 4,5학년 수준 분량일 뿐이지만 상당히 알차게 많이 담겼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중 내가 본 「늙은 개 」외에 「손톱」과 「호랑이와 아이」 등도 연극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공연을 꼭 보고 싶다. 희곡과 동화를 넘나들며 어린이들과 만날 수 있는 일. 이 신인작가(?동화 쪽으로는...)의 강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작가의 말에 보면 도깨비가 복수할지 모른다고 엄살을 피우며 다음 책도 꼭 읽어달라고 부탁을 하셨던데, 두 번째 책도 이처럼 다양한 느낌으로 재미있을지 기대를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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