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의 학교 사계절 중학년문고 37
김혜진 지음, 윤지 그림 / 사계절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대작 판타지 동화를 쓰신 작가님이라고 하는데 나는 그 작품을 읽어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름이 익숙했는데, 작가 소개를 보니 내가 읽은 작품이 하나 있었다. 집으로 가는 23가지 방법이라는 청소년 소설이었다. 느낌이 아주 좋았던 작품이라 반가웠다. 그 책은 판타지는 아니었지만, 이 작가님은 판타지에 관심이 많으신 듯하다. 이 책도 그랬다. 그리고 오카다 준의 판타지들이 떠올랐다. 그건 아마도 무대가 학교라는 점, 현실에 뿌리를 둔 소소한 판타지라는 점 때문이었을 것이다.

 

일주일의 학교라는 제목이 무슨 뜻인가 하면, 요일마다 다른 학교에 간다는 뜻이다. 당연히 그 학교들은 아주 많이 다르다. 간단하면서도 재미있는 상상이다. 매일 똑같은 학교에 가지 않는다! 이 상상을 아이들에게 던져주면 어떨까? 좋아할까? 변화를 싫어하고 일정한 루틴에서 벗어나면 힘들어하는 아이도 있고, “골치아프고 귀찮아요라고 할 게 뻔한 매사 귀차니즘 아이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눈을 빛낼 것 같다. 일상과 닿아있는 판타지이기 때문에 아이들의 생각을 끌어내기도 아주 좋을 것 같다.

 

나는 공립학교 교사로서, 학교를 악마화하는 시각을 만나면 솔직히 답답하다. 학교에서 배운 것이 하나도 없다든가, 학교는 감옥이고 선생들은 간수라든가, 어항속 물고기를 보여주며 학교는 헤엄쳐야 할 물고기에게 달리라고 강요한다든가.... 뭐 학교만 없애면 사회문제가 다 해결될 듯이 핏대 올리는 사람들을 보면 솔직히 그 사람이 그닥 똑똑해 보이지 않는다. 나도 학창시절이 즐겁기만 하지는 않았다. 학교가 즐거워서 간 적? 중학교때까진 간혹 있었지만 고등 이후로는 없었던 것 같고 아침에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뜨고 질질 끌리는 발로 억지로 간 적이 훨씬 더 많다. 하지만 학교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않았다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 학교는 나에게 기본을 잡아주기도 했고, 틀을 갖추게도 했고(이것이 누구에게는 속박으로 다가올 수도 있었겠지), 혼자서는 볼 수 없는 것을 보여줬고, 게으름의 시간에 널브러질 나를 끌어올려줬고, 여러 면에서 종합적으로 다른 이들과의 격차를 줄여주었다. 지금도 학교는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 주로 학교에서 배운 것 없다고 목청 높이는 사람들이 학교에 교육 아닌 더 많은 역할들을 요구하고 있고 그래서 학교는 터져나갈 지경이다.

 

아니, 재미있는 판타지 동화 리뷰에서 내가 왜 숨겨뒀던 울분을 터뜨리고 앉았나?ㅎㅎ 어쨌든, 학교를 마녀사냥하기는 쉽다. 입으로는 뭔들 못하랴. 하지만 학교를(기존의 교육과정을) 해체하면 더 나은 배움이 다른 곳에서 일어날까? 나는 회의적이다. 물론 학교는 완벽하지 않다.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으니. 변화가 필요한 부분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학교의 기본적인 역할(교육)의 토대를 든든히 한 상태에서 고민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고민으로 참신한 상상도 좋다. 이 책처럼 판타지에서 출발한 생각이어도 좋을 것이다.

 

는 날마다 다른 학교에 다니는 아이다.(요일마다 다른 학교라는 뜻) 매일 만나는 친구도 있고 특정 요일에만 만나는 친구도 있다. 어느날 영문을 모른 채 앉아있던 그 애를 도서관에서 다시 만났고, 여기도 이사올지도 모른다는 말에 는 일주일의 학교를 소개해준다. 그게 이 책의 내용이라 생각하면 되겠다.

 

월요일의 학교엔 언제나 비가 와

화요일의 학교에선 운동화가 필수

알지? 수요일의 학교는 열쇠 없인 못 가

목요일의 학교에서 밤을 보았어

금요일의 학교는 아직도 미완성, 우리에겐 할 일이 있지

 

이 책의 차례를 써본 것이다. 각 학교들엔 작가의 판타지가 가득하다. 동시에 현실 아이들의 모습도. 곡이, 녹이, 록이, 복이, 촉이, 폭이 같이 초성만 바꾼 작가의 작명이 매우 특이하지만 아이들의 대화나 행동은 우리가 가까이서 보는 모습들이다.

 

실제로 요일마다 다른 학교를 다닌다면 어떨까? 고등, 대학생 정도는 상관없을 것 같다. 하지막 적어도 초등은 그럴 수는 없다. 어릴수록 루틴이 매우 중요하고 대하는 사람이 매일 바뀌는 것도 좋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이 무슨 교육개혁을 말하는 책도 아닌데 그런 걸 따질 필요가 뭐가 있겠어. 중요한 건 아이들이 재미있게 읽을까, 읽으면서 즐거운 상상을 할까, 그걸 즐겁게 표현하고 서로 나눌 수 있을까 하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고 아이들이 일주일에 하루쯤 가고 싶은 학교를 그려 표현해보면 어떨까 생각해봤다. 하루종일 게임만 하는 학교, PC방인 학교, 이런 걸 그리는 아이가 있으면 어떡해? 당연히 있지 왜 없겠나. 하지만 그게 대다수는 아닐 것이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건설적인 생각을 많이 하는 존재다. 분명히 건강하고 좋은 생각들도 많이 나올 것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어쩔 수 없다. 이룰 수 없는 욕구라도 상상을 하면서 좀 해소될 수 있을 테고, 표현을 통해서 서로를 조금은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을 테니까.

 

사계절 중학년문고로 출판된 만큼, 중학년 수준에 맞을 것 같다. 내 생각에는 3학년보다는 4학년에 딱 맞아보인다. 쉽고 편한 느낌으로 5학년이 읽어도 괜찮을 것 같고. 아래로 내려가 2학년도.... 좀 빠른 아이들은 가능할 것 같다. 간혹 작가의 사색이 담긴 듯한 의미심장한 문장도 있긴 하다. 목요일 편(밤에 열리는 학교)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밤은 거대한 생명, 아이들이 없다면 어찌 밤을 배불리 먹였을까. 밤도 부스러기를 흘려. 그게 바로 꿈이지. 우리는 잠 속에서 밤의 선물을 풀어 본다네. 모두 너희 덕분이야. 아이들이 학교로 모이기 때문.”

마지막 금요일의 학교는 아이들이 만들어가는 학교. 교실부터 지어야 한다. 아이들이 실패했을 때,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잘못된 선택을 할 수도 있어. 괜찮아. 그것도 수업에 포함되어 있단다. 대신, 확실하게 수습해야 하지.”

금요일의 학교까지 다 끝나고, 마지막 장에는 이런 문장도 있다.

배워야 하는 것은 많아. 배우게 되는 것도 많고. 그 둘이 꼭 같지는 않지. 배우는 줄 모르고 배우기도 해. 우린 생각보다 많은 걸 알고, 또 할 수 있는걸.”

화자가 어린이인 것을 생각하면 어려운 문장이지만 각자 자기 입장의 문장에 눈이 뜨이기 마련이므로 이 문장은 교사의 눈에 뜨일 확률이 높다.^^

 

오늘이 어땠든 내일은 또 다른 학교가 기다리고 있어. 겉으론 똑같아 보여도 속은 그렇지 않아. 그러니 안녕. 우리, 내일의 학교에서 만나.”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이다. 판타지를 즐기고 살짝 현실로 돌아오는 느낌의 문장이다. 나에게도 그렇다. 어쨌든 우리반 아이들은 매일 내게로 온다. 아침독서 시간부터 정해진 루틴에 아이들은 이제 좀 익숙해졌다. (올해는 두달간 아이들을 일상에 적응시키는 일만으로도 온 힘을 쏟아야 했음ㅠ) 하지만 똑같으면서도 새로운 교실. 이것 또한 나의 몫이다. 경력 30년이 다가와도 끊을수 없는 고민이기도 하다. 월급을 받는 한 나는 이 고민을 계속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 우리반이 4학년인데 이 책을 한 번 읽어봐? 읽을 책들이 줄서 있는데 끼워 봐? 고민이 시작된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엣센스 2021-06-23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요를 두 개, 세 개 드리고 싶네요.
 
[세트] 고양이와 왕 + 고양이와 왕, 무슨 일을 하지? - 전2권 고양이와 왕
닉 샤랫 지음, 심연희 옮김 / 키다리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예전에도 고양이들이 이야기에 등장하긴 했었다. 장화 신은 고양이도 있고 백만 번 산 고양이도 있고 말이다. 하지만 요즘 부쩍 더 많아진 것 맞지? 고양이 이야기가 트렌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유가 뭘까? 애묘인들이 늘어난 것과 관계가 있을까?

난 애묘인은 아니지만 심심찮게 고양이 이야기를 읽는다. 일부러 골라 읽는 건 아니니 그만큼 많아졌다는 증거.... 이번엔 닉 샤랫의 고양이 이야기 두 권을 읽었다. 닉 샤랫? 왜 이름이 익숙하지? 생각해보니 재클린 윌슨 책들의 그림 작가였다. 딱 보면 아 이분이구나 알 수 있는 특유의 귀여운 그림체를 좋아했는데, 이제 글도 쓰시는구나.... 글,그림 작업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건 참 멋질 것 같다.

이야기는 단순하고 간결하고 재밌다. 출판사는 표지에 '그림책에서 동화책으로 넘어가는 아이에게 딱 맞는 징검다리 도서'라는 홍보를 하고 있는데 적당한 설명이라 생각한다. 2,3학년 어린이들이 부담없이 재밌게 읽기에 좋겠다. 이야기 구조로는 1학년에게도 가능하고 부모가 읽어준다면 더 어린 아이들에게도 괜찮겠다. 더 큰 아이들은? 물론 괜찮지. 아, 어른인 나도 읽는데. 그냥 휴식처럼 편하게 읽기에 좋다. 그런 책도 있어야지.

요즘 동화들 중 대다수의 작품이 엄밀히 말하면 '어린이 소설'이라고 정의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이 책은 그야말로 '동화'다. 사건 전개를 위한 배경 설명이나 인물의 심리묘사 같은 걸 자세히 하지 않는다. 인물은 그냥 있고 사건은 뚝 떨어진다. 그걸 설명해 달라고 할 필요가 없는 것이 동화다. 각자 상상하면 되는 것이니까.

"옛날 옛날, 커다란 성에 왕이 살았어요. 친한 친구인 고양이와 함께요."
이렇게 시작된다. 닉 사랫이 그린 성은 정말 성답게(?) 생겼다. 성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그대로...^^ 성 안에는 하인들이 일을 하고, 고양이는 왕의 비서?(대신) 같은 역할을 한다. 드디어, 사건이 일어났다! 드래곤이 나타나 성을 불태워 버렸다. 하인들은 뿔뿔이 도망갔고 왕과 고양이는 새로 살 집을 구했다. '37번지'라는 작은 집이었다. 욍궁에서 가지고 나온 건 거의 없었고 여기서는 모든 일을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왕인데 성이 불탔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되냐고 묻지 말자ㅎㅎ)

왕궁을 나온 왕이 세상에 적응해가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짐작할 수 있다시피, 고양이가 있어서 가능했다. 이름이 주는 권위 빼고는 가진게 없는 왕에 비해 실무에 능한 고양이가 할 수 있는 일이 훨씬 많았다. 그렇다고 왕이 권위를 내세워 화를 내거나 남을 부리려고만 하는 건 아니라는 점에서 전형적인 캐릭터가 아니라고 할까. 그저 어리숙하고 순진할 뿐. 동네 수퍼 앞의 동전 놀이기구 타는 걸 가장 좋아하는 왕을 보면서 실소에 가까운 웃음이....^^;;;

왕의 세상 적응사에 또하나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들은 이웃집의 크롬웰 가족이었다. 왕을 왕으로 존중해 주면서도 이웃처럼 친근하게 대해주었다. 아, 결정적으로 다시 나타난 드래곤을 쫓아내주기까지. 왕은 이들과 고양이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는 '연설'을 한다. 모두들 행복하다. 이쯤에서 1권이 끝나고 2권으로 넘어간다.

2권에는 좀더 흥미진진한 설정이 들어있다. <고양이와 왕, 무슨 일을 하지?>라는 제목처럼 이들의 취업 도전기다. 왕은 기차역 안내방송 담당자, 백화점 판매원, 박물관 안내원, 호텔 문지기 등에 도전하지만 번번이 해고된다. 결국 왕이 찾은 최적의 직업은 무엇일까? 그리고 고양이의 직업은? 이건 걱정할 필요가 없겠다. 고양이가 뭔들 못하랴.ㅎㅎ

학교에서는 '진로'라는 이름으로 장래 직업에 대한 활동을 많이 하는데, 이 책과 엮으면 너무 억지일까? 왕에게 제안할 추천 직업, 그리고 나의 직업을 표현해보는 활동. 왕도 자신이 먹을 건 벌어야 한다. 나도 마찬가지. 그리고 직업에 귀천은 없다! 내 몫의 일을 하며 월급값을 하면 될 뿐.

다시 맞닥뜨린 드래곤과의 흐뭇한 마무리도 인상적이다. 드래곤도 자신의 임무가 있을 때 크게 기여할 수 있는 존재였다는 사실.

드래곤, 왕, 고양이, 그리고 여러 이웃 조연들이 만들어낸 마음 편하고 즐거운 이야기. 그림 그리는 작가라 장마다 들어간 그림들이 흥미를 더한다. 칼라도 아니고 2도 인쇄(확실히는 모름)인데도 풍성한 느낌의 그림. 3권도 나오려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담을 넘은 아이 - 2019년 제25회 황금도깨비상 수상작 일공일삼 51
김정민 지음, 이영환 그림 / 비룡소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특별한 역사적 사건을 다루지 않은 역사동화다. 한글 창제 이후의 조선시대라는 것 정도만 알 수 있다. 하지만 어느 작품보다도 시대 상황에 몰입하게 된다. 거기에 삶이 있고 그 삶이 독자들을 애타게 하고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인물들도 매력적이다. 다소 낭만적인 느낌도 들긴 하지만 말이다. 특히 양반들 중에 저런 이들이 있었을까 싶은 인물들. 하지만 이야기에 인물의 맛이 빠지면 무슨 재민겨. 자투리 시간을 때우려고 무심코 잡았다가 그대로 끝까지 읽었다. 어미가 아기 젖을 먹이는 이야기여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말하자면 어미의 심정을 알기 때문인지도. 아이들은 그 심정을 모를 터, 나처럼 감동을 받을지는 알 수 없다.

 

물난리, 가뭄난리를 연이어 겪은 백성들이 풀뿌리까지 캐어 먹던 시절이었다. 가난한 농민의 딸 푸실이가 주인공인 것도 작가의 의도일 것 같다. 평민의 가정에서도 남녀는 엄연히 달랐다. 곡식보다 풀이 더 많은 죽이라도 아버지와 남동생 몫이 먼저고 푸실이는 늘 주린 배를 움켜쥐고 지내야 했다. 가장 불쌍한 것은 그 집의 갓난아기. 태어나자마자 배고픔부터 배워야 했던 막내딸. 푸실이의 여동생.

 

하나밖에 없는 아들 귀손이가 열병을 앓자 어머니는 양반집에 유모로 가기로 하고 약값을 얻어 겨우 아들을 살린다. 갓난아기 몫의 젖마저 아들에게 먹이고 아기는 빈 젖을 빨다가 배고파 울기 일쑤다. 그보다 더 기막힌 일이 있다. 이제 유모로 들어가면 어머니는 계약한 기간 동안은 집에 올 수 없다. 아기의 목숨은 운명에 달린 것.... 아니다, 사실은 그냥 포기하는 것이다.

제 명이 그뿐이면 할 수 없지.”

아들의 목숨을 살리려고 딸의 목숨은 포기하는 것. 이런 참혹한 일이 예사였다 생각해보면 그래도 지금 세상에 태어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현대판 참혹사들도 못지않지만 그래도 굶어죽는 아이를 지켜보는 일은 겪을 일 없을 테니까.

 

하지만 그 목숨은 쉽게 끊어지지 않았다. 푸실이가 있었으니까. 푸실이는 여동생의 목숨을 지키려고 암죽을 끓여 먹이고 젖동냥도 다니고, 어머니가 있는 양반댁에 몰래 가서 어머니를 만나 간청하기도 한다. 형제간에도 이렇게 하는데 그 애비가 하는 꼴이라니.... 푸실이에게는 어머니한테 데려다줬다고 거짓말하고선 그냥 죽도록 시렁 위에 올려둔 애비. “계집애 목숨값이 사내애 목숨값하고 같니? 애초에 계집으로 태어난 죄지.” 자신도 계집이면서 이렇게 말하는 어미. 우리는 이런 세상을 거쳐왔던 것이다.

 

아기와 젖에 관한 이 사연과 함께 대감댁 선비, 그의 딸 효진 아가씨, 그리고 아기를 낳고 돌아가신 그댁 마님, 그리고 선비님이 상을 치르고 돌아오는 길에 버렸다는 마님의 책..... 그에 얽힌 사연들이 글을 배우기 시작한 푸실이와 맞닿아 더욱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된다. 돌아가신 마님, 그의 딸 효진, 신분이 낮은 푸실이, 이 세 여성이 연대하는 느낌이 이 책의 매력이자 메시지가 아닐까 생각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매우 낭만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담을 넘자는 발상과 제안이 신분이 낮고 심지어 여성인 푸실이에게서 나왔다는 것, 그것이 책을 읽는 데서 출발했다는 것. 의미심장하다. 그리고 그 책 제목이 무엇이었던가? 여군자전. 오우, 멋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지막 레벨 업 - 제25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대상작(고학년) 창비아동문고 317
윤영주 지음, 안성호 그림 / 창비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린이책을 읽으면서 직업병으로 독후활동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이런 질문을 하면 어떨까, 이런 활동을 하면 좋겠다.... 와,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는 그냥 손을 놔버렸다. 내가 뭘 할 수준이 못 되는 것 같았다. 그냥 읽으면 될 것 같다. “책을 안 잡은 아이는 있어도 잡고서 끝까지 안 읽은 아이는 없다.” 이런 말이 나올 것 같다.

작가는 게임도 좀 해보신 모양이다. (무슨 경험이든 있는 게 좋다) 나는 게임을 해보지 않은데다가 현재 게임 수준이 어느 수준까지 왔는지도 잘 모른다. 요즘 아이들이 접하는 게임들은 아이들에게 어느 정도의 현실감을 제공하는지, 이 책의 배경인 가상현실게임 ‘판타지아’는 지금의 게임 수준과 어느 정도 유사한지 그런 걸 잘 몰라서 읽으면서 궁금해졌다. 하지만 그런 걸 몰라도 어쨌든 이야기는 무진장 흥미진진했고 아이들은 나보다 더 빠져들 것이 분명했다. 책과 담쌓은 고학년 남학생들도 충분히 유인해낼 수 있을 것 같다.

현실이 초라하고 고단한 13살 선우는 가상현실 게임 ‘판타지아’ 속에 들어가는 하루 1시간이 유일한 위안이고 기쁨이다. 그 안에서 어느날 극적으로 ‘원지’라는 여자아이를 만난 후로 선우에게 판타지아 없는 세상은 상상을 할 수도 없게 되었다. 원지와 함께 즐기는 가상현실 공간은 현실에서는 손에 넣을 수 없는 온갖 성취감들을 선우에게 선사했다. 게다가 원지를 향한 소중한 감정까지.

이런 설정들이 고학년 또래 아이들을 몰입시켜 흥미진진하게 이끌어갈 것은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그런데 이 책의 가치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가상현실에 빠졌던 주인공은 어찌어찌하여 현실세계에 발을 붙여야 함을 깨닫고 적당한 지점에서 돌아온다”, 이런 정도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훨씬 더 충격적인 문제의식이 들어있었다. 사건 자체도 충격이었다. 존재 자체가 달린 이런 상황에서 주인공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가? 아니 존재란 무엇인가? 어디서부터 우리는 존재인가? 존재는 어디까지 이어지는가? 현실세계에서 존재의 소멸은 그것으로 끝인가?

폭풍같은 갈등과 사건을 겪은 선우는 어쨌든 '현실세계'로 돌아왔다. 그런 선우의 눈에 가장 먼저 띈 사람, 그리고 선우가 가장 먼저 취한 행동. 그것이 시사해주는 바도 크다고 생각한다. 우리를 둘러싼 세상이 몇 겹인지 그 크기와 깊이가 어떠한지 우리는 다 모른다. 다만 지금 발붙인 이 세상에서 나의 역할은 나의 의지와 선택에 달려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책임이 있다.

아이들은 어디까지 생각이 미칠지 모르겠지만 각자의 깊이에 맞게 생각할 것이다. 어쨌든 한 걸음 더 생각이 나아가고 한 번 더 성찰해보게 될 것은 분명하다. 내가 “이렇게 생각해 봅시다.”라는 말을 굳이 하고 싶지 않은 이유다. 쓸데없이 끼어들었다가 “깬다”는 느낌을 줄까봐.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궁금해. 아이들이 뭘 생각했는지 몹시 궁금해.^^;;;

린드그렌의 『사자왕 형제의 모험』과 C.S.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에서 영감을 받으셨다는 작가의 작품세계가 계속 펼쳐지면 좋겠다. 궁금하다. 환상적이고도 깊이있는 세계를 작품으로 또 만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밀의 무게 신나는 책읽기 60
심순 지음, 심보영 그림 / 창비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학년용이라고 하는데 그래도 3학년쯤 되어야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어른들이 읽고 나누어도 할 이야기가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 편의 단편이 담겨있다.

 

표제작인 비밀의 무게에는 남산타워가 소재로 나오는데 처음에는 참 뜬금없다는 느낌이었다. 아니 멀쩡한 남산타워가 왜... 어느날 밤 남산타워와 교감한 찬이의 방에 남산타워가 진짜로 나타났다. ‘진짜로라는 건 원래 있던 자리에선 없어졌단 뜻이다. 세상은 그 희한한 일로 시끄러워졌고 그 비밀을 안고 있는 찬이는 입이 근지러워도 참는다. 나만 알고 있는 그 비밀은 한편으론 설레고 뿌듯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비밀의 무게는 찬이를 딴사람처럼 바꿔놓았다. 예전처럼 말썽을 피울 수도 없었고 까불지도 않았고 말수도 적어졌다. 그러겠다고 결심해서가 아니었다. ‘무게때문이었다. 이 과정을 지켜보면서 뜬금없게 느껴졌던 소재에 대한 이질감이 점점 없어지고 몰입된다.

 

반면 남산타워는 찬이 방에서 뒹굴면서 아무 생각이 없는 듯 좋아라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찬이는 몇 번이나 결심했던 말을 삼키지만 결국은 하게 된다. 이제 돌아가라고.... 남산타워는 서운해하는 듯했지만 고마웠다는 인사와 포옹을 남기고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 언제 사라졌었냐는 듯 태연히 불을 밝힌다. 다시 멀리서 교감하는 그들의 마음이 애틋하다. 그리고 찬이에게서 씻은 듯 사라진 그 무게가 많은 의미를 남긴다. 작가가 가장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을까?

 

작가는 비밀의 소중함을 말하는 것 같은데 나는 그보다도 거리제자리의 소중함이 더 크게 다가왔다. 인간의 해석은 다 자신의 성향과 가치관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남산타워가 찬이의 작은 방에서 잠시의 일탈을 즐겼을 때, 둘은 행복한 비밀을 간직했지만 그게 영원할 순 없었다. 결국 자신의 존재가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야 하는 법이다. 아쉽고 힘들어도.... 세상 모든 것들 사이에는 적당한 사이가 있고 그 사이가 잠시 좁아질 순 있어도 적당한 순간에는 제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그 타이밍을 놓치면 상황이 망가진다. 찬이의 방에서 함께 있을 때도 좋았지만 멀리서 교감하는 지금이 좋다. 무엇보다도 마음이 편해서.

 

두 번째 작품의 제목은 다 사정이 있어첫 번째 작품도 그랬는데 제목에 의미를 내포하는 작가의 작명 솜씨가 탁월하신 것 같다. 사정 때문에 일주일동안 와계셨던 친척 할머니와 유나의 이야기다. 객관의 눈으로 할머니는 치매 환자시다. 하지만 유나에게는 요정들의 세상을 알려주는 친구였다. 그리고 요정들에게도 다 사정이 있다는 것까지.

 

치매에 걸린 할머니가 유나의 책가방 속에 온갖 쓸데없는 물건들을 넣어놓는데, 결국 그 물건들이 의미를 찾아가게 되는 과정이 재미있고 기발하다, 정 의미를 찾지 못한 경우에는 사정이 있을 거야로 이해된다. 불평할 것 없고 시비 걸 것 없는 따뜻한 세상이다. 도끼눈을 뜨고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이런 세상이 필요하다. 요즘 내 상태가 좀 그랬다. 다시 되뇌어 보자. “다 사정이 있어.”

 

마지막 세 번째 작품 가장 귀한 눈물에는 할아버지와 손자가 나온다. 생계에 매달려야 하는 딸을 대신해 손자를 맡으신 외할아버지. 조부모, 더구나 할아버지가 이와 같이 돌봄 노동에 시달리는 경우가 이제는 낯설지 않다. 하긴 우리 아들도 할아버지가 많이 키워주셨다. 지금은 같이 살지만 합치기 전에 몇 달간 아들을 아버님께 맡긴 적이 있었다. 아들은 그때를 행복했다고 회상한다. 그게 쉬운 일일까? 얼마나 애쓰셨기에 손자에게 그런 기억을 남길 수 있었을까? 이 책의 할아버지도 그런 할아버지다.

 

이 작품에서도 요정이 등장한다. 눈물요정. “세상에서 가장 귀한 눈물을 나에게 주면 네 소원 하나를 들어줄게.”라고 승모에게 제안한다. 우는 거야말로 승모의 특기. 별별 일로 다 울어제끼지만 할아버지를 힘들게 할 뿐 눈물요정에게 통과받지는 못한다. 그럼 눈물요정에게 인정받은 세상에서 가장 귀한 눈물은 누구의 어떤 눈물이었을까? 그의 소원은 무엇이었을까?

 

탐욕의 눈물, 분노의 눈물이 가득한 세상에서 귀한 눈물을 보기는 얼마나 어려운가? 나 또한 귀한 눈물을 흘려본 적이 있던가? 이 짧은 이야기가 담은 메시지에 가슴이 먹먹해 왔다. 이 책을 그저 저학년용 이야기책이라고만 분류할 수 없었던 이유다. 물론 어린아이들도 그들의 수준에서 충분히 재미를 맛볼 수 있겠고 감상도 가능하다. 하지만 그 이상의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이 책이 더 귀하게 느껴졌다. 창비 좋은 어린이책 수상작이라는데 그럴 법 하구나 하고 완전히 인정! 동화에도 충분히 인생의 진리를 담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책들 중에 한 권으로 꼽을 수 있겠다.

 

웬 남산타워? 하고 뜨악해 했던 첫인상을 지나, 나에게 아주 따뜻하고 깊이있는 인상으로 마무리된 동화집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