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 공장, 테마파크 되다! 길벗어린이 지식 그림책 4
마랴 바슬레르.아네마리 판덴브링크 지음, 차르코 판데르폴 그림, 임숙희 옮김 / 길벗어린이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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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면지를 넘기면서부터 아이들의 입이 귀에 걸리겠다 예상한다. 수십 가지의 똥 모양을 표현해 놓았기 때문이다. (혼자 보기보단 둘 이상 같이 봐야 키득키득 제맛이 나겠다.)

전체 내용은 인체 중 소화기관의 구조와 기능에 대한 것이다. 인체 전체를 다룬 책들도 있지만 그림책 중엔 이렇게 인체의 특정 기관을 다룬 책들이 많다. 그 중에서도 이 책은 특히 비유와 상상이 기발한 책이라 하겠다. 소화기관을 커다란 공장에 빗대었다. 이름하여 똥 공장. 하긴 말이 된다. 최종 부산물은 똥이니까 말이다.

똥 공장에 비상이 걸렸다. 어딘가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똥공장의 연구자 변기통 교수님이 고민하는 것을 본 아들딸 응가와 쉬야는 공장에 찾아간다. 상황은 공장의 언어로는 가동불가? 일반적인 언어로는 변비 되시겠다.

응가와 쉬야는 소화의 경로를 따라 공장을 돌아보며 이것저것을 살펴보고 의문을 해결하기도 하고 새로운 의문을 품게도 된다. 그 질문들에는 차례로 번호가 붙어있고 책의 제일 뒷장에 모아서 설명이 되어있다.

어른인 나는 차분한 설명과 가독성 있는 본문의 배치, 그림은 설명을 돕는 정도, 이런 지식책을 선호하지만 대단히 큰 판형에 가득찬 그림, 사이사이에 배치된 설명으로 구성된 이 책은 아이들이 더 좋아할 만한 책이다.

응가와 쉬야는 입과 식도를 지나 위, 작은창자, 큰창자, 곧창자의 구조와 하는 일들을 살펴본다. 그리고 똥공장을 구할 새로운 계획을 세운다. 테마파크로 거듭나게 하는 것이다. 위에서는 수영체험, 소장에선 서바이벌, 대장에선 롤러코스터 이런 식이다. 직장과 항문에서 미끄럼틀을 쭈욱 타고 내려오면 똥 레스토랑과 정보센터로도 연결된다. 정보센터에서는 똥에 관련된 여러가지 체험교실이 열리고 있다. 똥 클리닉, 장을 위한 체조교실 등.... 마지막으로 화장실 겸 기념비에는 리얼한 똥의 형상과 함께 '떠내려간 모든 똥을 위한 기념비'라는 팻말이 붙어있다.^^

큰 책의 도처에 정보가 많아서, 보고 또 봐도 한가지씩은 새로운 걸 알게 될 것 같다. 끼고 놀다보면 소화기관과 똥에 대해서는 웬만한 어른을 능가하는 척척박사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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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윈딕시 시공주니어 문고 2단계 32
케이트 디카밀로 지음, 송재호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시공주니어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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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주인공들은 다 외로운 사람들이다. 나름대로 슬픈 과거들을 가지고 있다. 책의 제목인 윈딕시까지도...(윈딕시는 개 이름이다.)


오팔은 목사님인 아빠를 따라 작은 마을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친구가 없어 외로운데 거기다 오팔은 엄마도 없다. 3살때 엄마가 집을 나가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책의 분위기는 우울하지 않다. 외로운 느낌이 묻어 나오기는 하지만.. 그 외로움은 뭐라고 할까... 따뜻한 봄날 오후 한적한 시골길을 걸을 때의 느낌이라고 할까.

교회 일에 바쁜 아빠 대신 오팔은 수퍼마켓에 왔다가 버려진 개 윈딕시를 만나게 된다. 친구가 없던 오팔에게 유머러스하고 푸근한 윈딕시는 첫 친구가 되어 주었다. 그리고 윈딕시와 더불어 새로운 만남을 통해 하나 둘 친구를 사귀게 된다. 가족도 친구도 없는 도서관 사서 할머니, 동네 아이들에게 마녀라고 놀림받는 글로리아 할머니, 감옥에 갔다온 경력이 있는 오티스 아저씨, 늘 찡그리고 남들을 무시하지만 동생을 잃은 아픔을 가지고 있는 아만다...


이야기 듣기를 좋아하는 오팔은 전혀 연배가 맞지 않는 이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또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우정을 쌓아간다. 깊은 슬픔을 가진 오팔이지만 그 슬픔을 과장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숨기지도 않는다. 그다지 격렬하지 않은 슬픔을 그냥 무심한 듯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그래서 더 안쓰럽고 꼭 안아주고 싶고, 가슴 한 구석이 먹먹하다.


어느 날 도서관 사서 할머니의 증조 할아버지 이야기를 듣다가 할아버지가 만드셨다는 사탕을 먹게 되었는데 그 사탕은 달콤한 맛 외에 또 한가지의 맛이 있었다. 할머니는 그것을 '슬픔'의 맛이라고 했다. 사탕을 먹은 친구들은 모두 다 다른 맛을 이야기한다. 
"사람들이 떠나는 것 같은 맛이 난다"는 글로리아 할머니. 
"이 사탕을 먹으니까 네 엄마 생각이 난다"는 아빠. 
"감옥에 있을 때의 느낌이 든다"는 오티스 아저씨. 
이 책을 읽을수록 책의 느낌이 그 사탕 맛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슬프면서도 달콤한 맛, 살짝 눈물이 흐르면서도 미소가 지어지는 맛, 외로움을 위로받는 맛.


이 외로운 친구들은 글로리아 할머니 집의 소박한 파티에서 한 자리에 모인다. 갑자기 비가 쏟아지고, 천둥번개에 병적인 공포를 가진 윈딕시가 사라지는 바람에 파티는 엉망이 되지만 비속으로 윈딕시를 찾으러 나간 오팔과 아빠는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주고, 집에 남아있던 사람들도 서로 따뜻한 친구들이 되어 있었다.

파티에 초대된 아빠는 여기에서도 목사님의 본분을 다해 모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한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긴 어렵지만, 멋진 선물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이 우리를 사랑하시듯이 저희도 온 마음을 다해 서로 사랑할 임무를 내려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우리 인생에 아픔이 왜 찾아오는지는 모른다.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린 그 상실감은 누구나 감당하기 고통스럽다. 그런데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있다. 아픔을 겪고 나야 위로할 힘을 얻게 된다는 것, 슬픔은 서로를 이어주는 끈이 된다는 것.

상실과 슬픔이 인생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난 이걸 바라고 싶다. 그것으로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기를, 내가 슬플 때 누군가가 옆에 있어 주기를, 나와 내 사랑하는 사람들의 슬픔이 오묘한 '리트무스 로젠지' 사탕 맛과 같기를, 슬프면서도 달콤한….


(2007년에 다른 곳에 썼던 것을 옮겨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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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도 복제가 되나요? 창비아동문고 291
이병승 지음, 윤태규 그림 / 창비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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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두껍지 않은 동화집에 8편이나 되는 단편이 담겼다. 각 편의 길이가 짧다는 뜻이 되겠다. 표제작인 첫편을 읽고는 엥? 이정도의 주제를 이렇게 짧게?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어지는 작품들의 느낌이 다 색다르고 주제도 내용도 다양했다. 뒷부분으로 갈수록 짧다는 느낌이 사라졌다. 묵직한 주제의식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말' 역시 여느 책들에 비하면 짧은데, 작가는 여기에서 창작에 따른 본인의 고민을 털어놓는다.
"동화의 계몽성과 작가의 주제 의식은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가?"
"아동문학은 현실을 어디까지 반영해야 하는가?"

그동안 읽었던 작가의 작품이 그리 많지 않지만(검은 후드티 소년, 난 너무 잘났어 정도) 그런 고민들로 세상에 내놓았던 작품들이구나 하고 되돌아보게 된다. 그중에서 특히 이 책이 더욱 그런 것 같다.

- 필요에 의해 인간복제가 성행되면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는가? (마음도 복제가 되나요?)

- 오래된 자전거를 방치한 채, 새 자전거를 사달라고 조르는 동우. 둘이 함께한 하루의 모험 뒤 새것을 포기하는 동우. 내 곁에 잊혀진 소중한 것은 또 무엇이 있을까? (달려라 나의 고물 자전거)

- 할아버지와 소년의 우정. 그 속에서 배움의 의미를 비로소 찾아내는 소년 (우주 전파사 할아버지)

- 전형적 여성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엄마, 아빠와의 첫 결혼엔 실패한 엄마, 그런 엄마를 사랑하는 아저씨를 보는 아들의 마음 (레슬링 아줌마와 스파이더맨 아저씨)

- 좋은 집에서 없는 거 없이 살다 사업이 망해 좁은 반지하로 이사온 은찬이. 숨이 막힐 것 같이 좁던 반지하가 점점 넓어보이는 체감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내가 작아지면 돼)

- 그림에 열망이 있지만 부모에게 버려지고 할머니에게 얹혀진 주제라 꿈도 꿀 수 없는 태호. 이 꿈이 가능하게 해 주는 두 어른의 역할 (제자입니다!)

- 고양이 벽화로 유명해져 동네는 발전하지만 그 혜택은 커녕 동네에서 밀려나야 되는 원주민들의 아픔-젠트리피케이션의 사례 (여긴 내 자리야)

- 서예시간의 조용함을 즐기는 아이, 부모님의 갈비집 한구석이 공부방이며 침실인 아이의 이야기 (5교시 서예 시간)

'제자입니다!'의 두 어른(담임 선생님과 화가)같은 어른이 못되어줘서 나를 거쳐간 모든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이름난 곳에 가서 구경하긴 좋아하지만 그 이면에 갈수록 외곽으로 밀려나는 못가진 사람들의 애환이 있다는 생각은 거의 해보지 못했다. 이와 같이 작가의 화두인 주제의식은 세상 구석구석을 향한 독자의 감각을 일깨운다.

개인적으로는 <내가 작아지면 돼>에서 부유에서 빈곤으로 전락한 아이가 긍정적으로 적응법을 찾아가는 모습이 참 건강해서 보기 좋았다. 그리고 마지막 작품 <5교시 서예시간>에서는 주제와는 상관없이 이 대목이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주변은 점점 더 조용해진다.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것 같다.
아, 조용하다는 것은 행복하다는 거다."
".....시끄럽다. 정말 시끄럽다. 정신이 쏙 빠지게 시끄럽다. 시끄러운 건 불행한 거다."

왜 맥락없이 이 대목에 꽂히지..... 음냐~ㅋ 다시 작가의 말로 돌아가서, 나는 주제의식이 선명한 작품보다는 그냥 동화의 맛이 느껴지는 재밌는 작품을 더 좋아하는 편이지만, 이런 작품도 좋다. 계몽적이기보다는 따뜻한 관찰자의 시선으로 평소 지나치는 것들을 살피게 해준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작가의 마지막 말, "그런 시도가 성공적이었는지 아닌지는 독자 여러분이 판단해 주실 테고 저는 그저 꾸준히 써나가는 수밖에 없겠지요."에 박수를 보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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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브레멘 그림책이 참 좋아 46
유설화 글.그림 / 책읽는곰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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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거북과 으리으리한 개집은 내가 구입해서 읽고 학급문고에 꽂아둔 책인데 아침독서시간에 보면 누군가는 꼭 읽고 있다. 1년만에 헌책이 되어버렸지만 그만하면 본전은 뽑고도 남았다두 책 모두 맘에 꼭 들어 서평도 썼던 책들그 작가인 유설화 님의 새 그림책이 알라딘 화면에 뜨길래 덜컥 구입했다어쩜... 이 책은 더 좋다뭔가 가슴 밑에서 울컥 솟아오른다엄청 웃긴데 뭔가 눈물이 날 것 같기도 하다.

 

재작년내 교직 생애 최악의 아이들과 종업식을 앞두고구질구질 잔소리도 하기 싫고 그렇다고 사랑한다 축복한다 이런 낯간지러운 소리는 사절이고 해서 임팩트 있는 그림책 한방으로 끝내려고 이것저것 찾아봤지만 마땅한 게 생각나질 않았었다이 책을 보니 딱 그때 내가 찾던 바로 그런 책이다실패자는 없다분노하지 마라너도 쓸모가 있다괜찮다할 수만 있다면... 분노를 승화시켜라아름다운 것으로......

 

만약 내가 이런 말을 그냥 쌩소리로 애들 앞에서 한다면 그게 무슨 망발이냔 말이다그게 가능하냐나도 그렇게 못하면서그러나 이 책은 보여준다그게 환상이라도 좋다가능성의 길은 넓지 않대도 아예 없는 것은 아닐 터그리고 길을 찾는 아이들은 더 이상 자신과 남을 괴롭히는 데 에너지를 다 쓰지 않을 터.

 

밴드 브레멘』 제목만 보아도 어떤 책의 패러디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브레멘의 음악대난 이 책을 참 좋아했었다등장인물과 설정은 거의 같다사람들에게 학대당하거나 버려진 동물들(고양이)이 사람을 떠나 도망친 길에서 만나게 된다그들은 그동안 자신들을 괴롭힌 사람들에 대한 원망을 털어놓는다. (이 대목은 그동안 봤던 동물권 관련 어떤 책들보다도 짧지만 강렬했다그런 주제로 이 책을 다루어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말은 한때 촉망받는 경주마였으나 다리를 다친 후로는 마차를 끄는 신세가 되어 주인에게 모진 구박을 받았다개는 실험실에서 온갖 주사를 맞았다눈까지 멀게 되자 사람들은 마지막 주사를 준비했고....ㅠ 닭은 날개 펼 틈도 없는 양계장에서 품어보지도 못할 알만 낳았다산란능력이 떨어지자 팔려갈 신세가 되었다고양이는 사람 손에 자라다가 난데없이 버려져 길고양이로 험난한 생활을 해야 했다.

 

넷은 이제 뭐할까 고민하다 브레멘 음악대를 생각해냈다고양이와 개는 목청껏 노래를 뽑았다닭은 비좁은 닭장 생활의 한을 풀기라도 하듯 날개를 펼치고 춤을 추었다말은 말굽으로 장단을 맞추었다.

 

내일부터 공연을 다니기로 한 브레멘 음악대는 숲속에 들어갔다가 모닥불 주변의 사람들을 발견한다브레멘 음악대가 사람들을 쫓아내던 방법 그대로동물들은 한꺼번에 어마어마한 소리를 질렀다.

 

오우그런데 이게 웬일이지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면서 반기는 거였다. ‘진짜 브레멘 음악대가 나타났다며.... 그들은 밴드 브레멘의 멤버들이었다고래섬 음악 축제(ㅋㅋㅋ)에 가려고 준비중이란다사람에 대한 원망을 쉽사리 놓을 수 없었던 동물들이었지만 밴드 브레멘의 노래에 어느덧 장단을 맞추며 하나가 되어가고 있었다.

 

우린 버려졌지♪ 우린 지워졌지

우린 감춰졌지♪ 우린 쓸모없지

우린 괜찮아♪ 아무렇지 않아

 

우린 꿈꿀 거야♪ 계속 꿈꿀 거야

우린 잘 살 거야♪ 잘 잘아 낼 거야

우리 쓸모는♪ 우리가 찾을 거야

.........

 

드디어 도착한 고래섬 음악축제어마어마한 구경꾼들 사이에서 밴드 브레멘의 공연이 시작된다......

 

에필로그와도 같은 마지막장은 신문기사로 구성되어 있는데밴드브레멘의 데뷔 소식과인기곡 TOP 10의 제목들이 재미있다. 1쓸모없는 것들의 노래 2실험이 끝나면 행복해질까? 3길 위의 생명들 4닭장은 이제 됐어등등... 이중에는 작가의 전작 제목도 나오고 등장인물도 나오는 등작가의 귀여운 홍보가 깨알재미를 준다.ㅎㅎ 마지막으로책의 앞면지와 뒷면지를 비교해보면 이 책의 해피엔딩에 다시 한 번 마음이 흐뭇해진다.

 

낼모레가 종업식이다. 2학년이지만 이 책을 읽어줄까고래고래 목소리를 주체 못하던 박 군과 흔들흔들 움직임을 주체 못하던 정 군을 불러내어 노래 부분을 맡기고 나머지는 내가 읽어주어야겠다이렇게 해서 유쾌한 1년을 마무리하고 새 1년을 준비한다미련 따위는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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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쩡한 이유정 푸른숲 작은 나무 13
유은실 지음, 변영미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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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은실 작가의『만국기 소년』을 읽었을 때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재미는 있었지만 뭐랄까... 아팠다. 아니 그보다는, 불편했다..? 왠지 아이들에게는 별로 권하고 싶지가 않았다.

중학년 정도를 대상으로 좀 더 짧고 쉽게 나온 이 책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이제는 불편하지도 않았다. 내가 작가의 코드에 익숙해진 것인가? 아니면 작가가 날카로운 부분을 좀 깎아낸 것인가? 그건 모르겠다. 다 읽자마자 초등학생인 아들에게 내밀었다. 어떤 곳에서는 저학년용으로 추천하기도 하던데, 책이 얇기는 하지만 좀 공감하면서 읽으려면 고학년도 괜찮을 것 같다.

첫 번째 이야기『할아버지 숙제』는 참 고소한 이야기다. 으스대고 자랑할 수 있는 할아버지를 기대하고 집으로 달려갔건만, 돌아가신 할아버지들은 왜 한결같이... 주정뱅이 아니면 노름꾼이었는지... 숙제를 앞에 둔 경수는 좌절한다. 사실을 알려주는 할머니 앞에서 화를 내는 아빠보다, 담담하게 사실을 알려주는 엄마가 여기서는 훨씬 현명해 보인다. 어쨌든. 경수는 숙제를 다 했다. 할머니와 엄마의 코치를 받아서. 술주정뱅이였다... 라고 쓰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거짓말은 아니게. 다 쓰고 읽어본 경수는 자랑스럽지는 않지만 부끄럽지도 않다고 한다. 그럼 됐지 뭐... 사는 게 다 그런거지. 세상에 다 자랑스러운 할아버지와 다 자랑스러운 아버지만 있는 건 아니지 않는가. 사람 다 거기서 거기다. 핑계 대지 말고 내가 잘 살아야 되는 거다. 생각해보니 나도 이런 이야기를 아이들한테 해 주고 싶었다. 내가 자랑스러운 엄마가 아니라서 그런가... 어쨌든, 첫 이야기부터 기분이 좋았다.

『그냥』은 엄마의 출산 때문에 고모집에 며칠 살게 된 진이의 ‘해방기’이다. 아빠의 누님인 고모는 나이만큼 마음도 넉넉해서 아이를 닦달할 줄 모른다. 자기 집보다 훨씬 좁은 고모집을 나오면서 진이는 ‘고모집은 왜 그렇게 크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을 새장에 가두는 부모들이 한번쯤 생각해야 될 대목이다.

표제작인『멀쩡한 이유정』은 다른 건 멀쩡한데 심각한 길치인 유정이의 이야기다. 4학년인데 집을 못찾아서 늘 동생과 함께 다녀야 하는 유정이. 누구에게나 잘 안 되는 일이 있다. 나만 해도, 운전을 못한다. 배울 엄두도 내 본 적이 없다. 내 차 망가지고 돈 드는 건 괜찮은데, 다른 사람 다치게 하면 평생 어떻게 살아가나? 이런 두려움 때문에 누구 말마따나 '사지 멀쩡하고 대학까지 나온^^;;' 내가 운전을 못한다. 솔직히 나는, 자전거도 못 탄다. 가끔 농담반 진담반으로 “나 같은 모지리도 없어” 이러고 떠들고 다닌다. 하지만 난 <멀쩡히> 직장생활 잘 하고 살아간다. 그러니, 남의 약점에 호들갑을 떨지 말고 이해하고 배려할 일이다.

『새우가 없는 마을』 난 이 이야기가 제일 재미있었을 뿐 아니라 눈물까지 났다. 빈병 줍는 일로 살아가시는 생활보호자 할아버지와 단 둘이 살아가는 기철이. 조손간의 대화가 어찌나 실감나는지, 난 장면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읽기까지 했다. 난생 처음 <진짜 짜장면>을 먹으며 나누는 대화, 왕새우를 먹으러 갔다가 대형마트와 카트에 좌절하고 발길 돌릴 때의 대화.... 작가 특유의 유머가 들어있긴 한데 왜 눈물이 나는지....

『눈』을 읽으며 나는 작가가 혹시 하나님을 믿는 분인가 궁금해졌다. 그간의 작품을 볼 때 무신론자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빠를 잃고 매사에 불공평하다고 불평하는 영지를 놓고 엄마는 이렇게 기도한다.
“우리 영지는 불공평해서 억울한 게 많습니다. 우리 영지가 세상을 공평하게 만드는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
아빠를 살려달라는 기도도 들어주시지 않던 하나님이 어찌 이런 기도는 금방 들어주시는지, 바로 다음날 옥상에서 눈사람을 만드는 영지 눈앞에 장갑도 못끼고 눈을 만지는 옆집 옥탑방의 아이가 나타난다. 장갑이 두 개인 건 어떻게 알고... 엄마의 기도가 이루어지는 걸 끝까지 방해하려던 영지는 결국 포기하고(장갑을 꽁꽁 뭉쳐 옆집 옥상에 던져주고) 새 장갑을 끼며 되뇌인다. “이건 못 줍니다. 절대 못 줍니다.”
난 여기서 하나님의 미소를 보는 듯 했다. 작가는 어떤 뜻에서 쓰셨는지 알 수 없지만... 세상은 요지경이고 어디에도 하나님의 뜻 같은 건 없어 보인다. 그리고 하나님이 틀렸다고, 내 뜻이 맞다고 부르짖고 싶은 순간들이 종종 닥친다. 그 때 내가 하는 행동이, 영지와 크게 다를 것 없다. 하지만 지나고 나서 느낀다. 그것까지도 예쁘게 보아주셨다는 것을...

쓰다보니, 어린이용 짧은 단편에 이렇게 인생의 이야기를 많이 담을 수 있는 작가의 역량이 다시 한 번 존경스러워진다. 자기가 살아 온 세월만큼, 겪고 생각한 것만큼 느끼는 것이지만, 아이들도 이 책을 통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게 어른의 욕심이라면 그냥, 재미있게 읽었으면 좋겠다. 이 책은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책이다.


(2009년에 다른 곳에 썼던 것을 옮겨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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