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독후감 못 쓰겠어요! 독깨비 (책콩 어린이) 79
야마모토 에쓰코 지음, 사토 마키코 그림, 김지연 옮김 / 책과콩나무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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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소재이고 뭔지 대충 알 것 같다는 느낌으로 책을 펼쳐들었는데, 내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뻔하지 않다는 건 일종의 희열이랄까? 그렇지! 이 맛에 이야기를 읽는 거다.^^

제목과 전혀 다른 이야기인 건 아니다. 독후감 이야기는 시종일관 나온다. 그게 한 줄기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의외인 건 또 한 줄기가 있었다는 것. 그 줄기가 어찌보면 더 두꺼웠다. 그건 이야기 만들기였다. 말하자면 창작.

아이들과 창작(이야기 만들기) 수업을 해마다 하는데 (특별히 시간을 따로 내서 하는 건 아니고 국어 교과에 창작이 나올 때 시수를 충분히 늘려서 하는 정도) 그때 도입이나 과정 중에 참고할 책들이 이미 많다. 이것저것 꼽아 놓았지만, 다 사용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 책이 하나 또 추가되네! 즐거운 비명이다.

때는 3학년 여름방학. 방학 중 학교에 나와야 하는 날. 방학숙제 중간 제출(?)을 한다. (방학중 등교일이 있는 것도, 각종 방학숙제가 잔뜩 있는 것도 우리나라 수십년 전 학교모습 같다.)그런데 미츠카만 독후감 숙제를 안 해왔다. 못 쓰겠다고 뻗대는 미츠카를 담임선생님이 요령껏 설득하셨지만 그래도 미츠카는 엄두가 나지 않는다. 단짝 아카네와 그 이야기를 하며 돌아오다가 일은 이렇게 된다. 직접 이야기를 쓰기로! 그리고 그 이야기를 읽고 독후감을 쓰기로!

스케치북과 크레파스를 들고 앉아 아카네는 글을 쓰고 미츠카는 그림을 그리기로 한다. 다행히 미츠카는 그림에는 소질이 있어서 아주 귀여운 그림책이 되어간다. 아카네가 아끼는 동생 다쿠가 나오는 이야기를 만들기로 한다. 둘이 이야기를 완성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이 길 저 길을 모색해보는 과정이 바로 이야기의 창작 과정이다. 언뜻 보면 시시한 과정일 수도 있겠지만 잘 들여다보면 작가의 고민과 계산이 다 들어있는 과정이다.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의도성이 잘 보이지 않지만 그것까지도 의도한 과정이다.

그러는 중에, 인물이 등장하고, 사건이 일어나고, 전개되고, 점점 더 크고 긴박한 사건으로 발전되고, 갑자기 결말로 뚝 떨어지지도 않고, 너무 착해서 어색한 이야기가 되지도 않고, 적당한 곳에서 방해꾼도 나타나고, 조력자도 등장하고, 마지막 괴물에게서 다쿠를 구해내며 이야기가 끝난다.

이야기를 만드는 중에 동생 다쿠를 생각하는 아카네의 마음이 참 각별하다는 걸 볼 수 있다. 미츠카는 그걸 ‘사랑’이라고 명명했다. 그러고나니 저절로 이런 말을 하게 되었다.
“쓰고 싶은 말이 잔뜩 생겼어!”
그래, 이제 그걸 쓰면 돼. 그게 바로 ‘독후감’이지! 미츠카의 독후감은 처음 쓴 것이라기엔 너무 훌륭하다.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그 한 장의 독후감은 단지 한 장이 아니니까. 창작의 과정까지 함께한 결과물이니까.

둘이 만든 그림책 『아카네 누나, 힘내!』를 선생님이 학급문고에 살포시 끼워 넣으시며 이야기가 끝난다. 아이들의 창작이 공유되고 학급문고로까지 완성는 과정은 학급의 1년살이 중 흐뭇한 장면 중 하나다. 이런 기회를 최대한 많이 만들고 싶다.

인생의 희락을 다양하게 모르는 나는 독후감 쓰는게 유일한 취미생활인데....ㅎㅎㅎ 근데 아이들은 대부분 싫어하지. 그 과정을 단계적으로 이끄는 것도 교사의 역할이다. 이 책이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책의 주인공들이 3학년이라 대상 독자도 3학년이 적당하겠지만 4학년 수준에 가장 알맞을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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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자 신데렐라
리베카 솔닛 지음, 아서 래컴 그림, 홍한별 옮김 / 반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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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이야기를 재화할 때 그 원형을 손상하지 않도록 매우 조심해야 한다는 글을 읽은 적이 몇 번 있다. 옛이야기가 지금의 시각에서 언뜻 잔인해보이고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인간의 무의식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원형을 손상하게 되면 그 안에 들어있는 심리적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고 했다. 상당히 일리있는 내용이었고, 납득했다. 그래서 패러디도 함부로 할 것이 아니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옛이야기가 절대 손대서는 안되는 금기의 구역일 수는 없을 것이다. 시대에 따라 가치관이 변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지금으로서는 전혀 동의할 수 없는 가치관이 반영된 이야기가 있다고 할 때, 그걸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보다는 새롭게 조명해보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참 흥미롭게 읽었다.

 

해방자라는 말이 나는 좀 주제넘게 느껴진다. 누가 누굴 해방시킨단 말이야. 무릇 인간은 스스로 자신을 해방할 뿐이야, 라는 생각을 한다. 신데렐라가 선구적 행동으로 어리석은 뭇 대중들을 착착착 해방시키는 내용이라면 재미가 없었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은 결이 좀 달랐다. 어찌보면 신데렐라는 자신을 해방시켰을 뿐이다. 주변 사람들 또한 그랬을 뿐이고.

 

패러디 작품이지만 초반에는 원작과 크게 다른 점은 없었다. 어디서부터 다른 길로 갈까? 기대하며 읽는 것도 재미있었다. 새엄마와 언니들, 구박데기 신데렐라, 왕자님의 파티, 대모요정의 마법, 유리구두... 까지는 비슷하게 진행되었다. 결정적으로 달라진 지점은 이 부분이라고 나는 느꼈다. 왕자와 신데렐라가 서로 질문을 하는 부분이다.

그러니까 당신이 도망간 사람이군요. 왜 도망갔어요?”

당신 꿈은 무엇인가요?”

이 질문에 대하여 두 사람은 각각 이렇게 대답한다. 먼저 신데렐라부터.

내 케이크 가게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내가 요리할 때 쓰는 재료들을 기르는 농장에 가서 그곳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어요. 또 회색 얼룩무늬 말을 타고 싶고 배를 타고 당당하게 만으로 들어오는 어머니를 보고 싶어요.”

왕자의 대답은 이렇다.

가끔 내가 왕자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러면 사람들이 나를 보면서 왜 자기들은 가진 게 부족한데 왕자는 저렇게 많이 가졌을까 생각하지 않을 테니까요. (중략) 무언가를 길러내는 법을 배우고 싶고 낮에 땀 흘려 일하고 밤에 푹 잘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성에서는 할 일이 아무것도 없거든요. 또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무도 왕자와는 친구가 되지 않아요.”

이렇게 하여 두 사람은 서로에게 친구가 되어주었다.

 

약간은 거슬리는 대목도 있었는데, 작가가 패러디를 통해 계몽이나 교훈을 주려고 직접 말한다는 느낌이 들 때...

누구든 힘든 사람을 도우면 대모 요정이 될 수도 있고, 또 누구든 못된 새어머니처럼 될 수도 있어. 우리는 다들 마음속에 그런 굶주림이 조금은 있지만, 그래도 나한테 넉넉히 있어.”라든가 , 이거 가져.” 또는 잘 지내니?”라고 묻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할 수도 있단다.

이런 대목들이다. 말이야 다 옳다마는.... 이렇게 설교를 하게되면 약간 현대와는 안맞더라도 원형 그대로의 이야기가 훨씬 낫다.

 

맘에 드는 대목은 신데렐라와 언니들의 결말이다. 신데렐라는 집을 나왔고 (왜 진작 그 생각을 못했을까?) 언니들도 각기 자신의 관심 분야에 맞는 직업을 가졌다. (미용사, 재봉사) 그리고 가장 좋았던 건, 공주는 왕자와 결혼해 궁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원작이 이렇다면 신데렐라 콤플렉스라는 말도 생기지 않았겠지.ㅎㅎ 그리고 신데렐라는 원래의 이름을 되찾았다고 한다. 그 이름은 엘라. (신데렐라에서 라는 뜻의 신더를 빼면 되는 이름) 아참, 왕자의 이름이 네버마인드인 것도 재미있다. 작가는 어떤 생각으로 그 이름을 붙였을까?^^

 

그림자처럼 실루엣만 나온 삽화도 마음에 들었다. 문체도 유려하다고 느꼈다. (번역을 잘하신 거겠지만 원작이 그러하니 그런 느낌이 나오는 거겠지.) 같은 작가가 쓰신 깨어있는 숲속의 공주는 어떤 내용일까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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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난 사회 선생님의 한국 지리네요 - 지리로 만나는 대한민국의 모든 것
권재원 지음 / 우리학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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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나온 걸 보고 당장 샀다. 난 이런 책을 아주 좋아한다. 초등고학년~중학생 수준 정도의 지식책. 어른용도 아닌데 다 아는 내용이겠지? 절대 아니다. (내 기준에서 말한거지만, 대체로 그럴거라 생각한다.^^) 나는 사회나 과학 수업 준비하면서 이런 책들 덕을 톡톡히 보았다. 전문서적은 어렵고, 그걸 어린이들에게 맞는 내용으로 전환하려면 별도의 작업이 필요하기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 반면 학생용 책들 중 내용이 상세하고 알찬 책들은 그대로 수업으로 옮겨 가져갈 수 있어서 유용했다. 원래 지식을 습득할 때 전혀 모르는 지식보다는 아는 지식 플러스 알파일 때가 가장 효과적으로 배운다고 한다. 나에게는 이런 책들이 그렇다. 대충 아는 내용이지만 빈틈이 듬성듬성 있을 때 그 빈틈을 채우는 독서는 꽤나 즐겁다.

저자는 중등 사회교사로 다양한 영역에 많은 책들을 내셨지만 이 책은 본인의 교과 수업에 가장 근접한 책이 아닐까 한다. 그런데 저자의 말에 의하면 중등 사회 교육과정에 한국지리 내용이 매우 부실하다고 한다. 사실 초등도 그렇거든! 그래서 이 책은 그 아쉬움을 채워줄 보충교재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아울러 저자의 지적처럼 사회 교육과정에 한국지리 내용은 좀더 시수가 늘어나면 좋을 것 같다. 올해 가르치고 있는 4학년을 예로 들면 1,2학기 3단원씩 총 6개 단원 중에서 1학기 1단원(1.지역의 위치와 특성)만이 지리 단원이다. 정확히 말하면 그중 두개 소단원 중 하나만이 지도의 기본요소를 다루고 있을 뿐이다. 나머지 소단원 한 개는 지역화 내용으로 해당 지역의 중심지를 다룬다. 자신과 가까운 지역부터 공부하는 게 맞으니 여기까진 이해한다 해도 공공기관, 지역문제 단원 차시는 너무 많다고 생각한다. 2학기에 '촌락과 도시의 생활모습'이라는 단원도 있는데 이 단원을 지리 영역으로 개편하면 어떨까도 생각한다. 그렇게 배우다보면 촌락과 도시의 문제점, 지역간의 교류 내용은 자연스럽게 따라나올 수 있는데 말이다. 이책의 3장이 바로 그렇다.(행정구역, 교통, 산업이라는 계획-우리나라의 인문환경) 내용지식을 가르치지도 않으면서 문제점, 해결방안 등을 요구하고 있으니, 수업하면서 부질없다는 회의가 계속 들었다. 어쩌라고. '사회변화와 문화다양성' 이라는 단원도 도덕교과와 겹치는 내용이 많아 차시를 줄여도 된다고 본다. 전체적으로 사회 수업은 좀더 지식쪽으로 가도 좋겠다고 생각한다. 사회가 암기과목이 될까봐 경계하는 인식이 너무 알맹이 없이 허망한 교육과정을 만들어낸 것 아닐까. (교육과정에 안목도 없는 내가 이런 소릴 하다니 돌맞는 거 아닐지 모르겠다. 걍 개인적인 생각.^^;;;)

이 책은 총 10장으로 되어있는데, 4장까지는 이렇게 교사의 입장으로 읽었다. 지형, 기후, 인문환경, 지정학과 관련된 단원이다. 다음 5,6장은 관광자원에 대한 내용으로, 내가 제일 침흘리며 읽은 부분이다. 나는 해외여행도 딱 한번, 국내여행도 오래 걸리는 곳은 많이 안가봤다. 특히 5장은 국립공원 소개인데, 안가봤거나, 까마득히 오래 전에 가본 곳이 대부분... 친한 언니들 만나러 가는데 이 책을 가져가고 싶었다. 어차피 비슷하게 퇴직할 언니들이라... 우리 이중 어디부터 가볼까요? 이러면서...ㅎㅎㅎ 근데 한살이라도 젊을 때 다니는 게 남는건데.... 나의 집콕 인생이 이럴 땐 좀 후회된다.^^;;; 해외여행은 둘째치고, 국내도 가봐야 할 곳이 엄청 많다. 6장도 그렇다. 세계문화유산 중심으로 관광지들을 소개하고 있다. 가족이 함께 읽으며 여행 계획을 짜는 것도 아주 재미있고 살아있는 학습이 될 것 같다. 책 한권에 관광정보를 다 담을 수는 없지만 출발점이 되기에는 충분하고도 넘친다.

7~10장은 우리나라를 4개 장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경기지방, 호서지방과 관동지방, 호남지방과 영남지방, 제주도) 과거의 내력부터 최신의 상황까지 꼼꼼하게 내용이 잘 담겼고 각 지역이 담당하고 있는 특유의 역할까지 잘 설명되어 있다. 각장의 앞에 표지의 그 '별난 사회선생님'이 팔짱을 끼고 읽기의 가이드가 될 질문을 던져주는 것도 좋다. 예를들면 7장 경기지방에선 "옛날부터 오늘날까지 수도나 수도권의 위치는 어떻게 정해지고, 어떤 변화를 가져왔을까?" 8장 호서,관동지방에선 "산업과 기술, 교통의 변화를 보면 지리의 눈으로 지역의 변화를 생각해볼 수 있지." 와 같은 안내 문장들이다. 이렇게하여 촘촘하게 한국지리의 내용이 알차게 담긴 책이 되었다. 학생들 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꽤 유용한 책이라 생각한다.

'지리의 힘' 이라는 책이 화제가 되고 많이 팔린 것을 보아도, 지리는 단순한 암기 지식이 아니다. 이 책이 교육현장에서 그 출발점이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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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등등 동아리를 신청합니다 시공주니어 문고 2단계 90
류재향 지음, 모예진 그림 / 시공주니어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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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재향 작가님의 책들은 번역 그림책들을 먼저 읽었고 동화로는 '우리에게 펭귄이란'을 읽었다. 내 취향이라고 좋아하는 리뷰를 썼었다. 좋았던 작가의 신작은 챙겨보는 편이라서 이 책도 찾아 읽었는데, 전작의 느낌이 살짝 가라앉은 후라 그런지는 몰라도 더더더 재미있는 거다! 장편이라 호흡이 좀 더 길어 그런 면도 있고, 어쩜 아이들의 마음이 (정확히 말하면 결핍과 욕구가) 이렇게 예쁘게 표현되었을까 감탄하면서 읽었다. 매끈하게 잘빠진 예쁨이 아니고 울퉁불퉁하지만 정이 가는 예쁨이라고 할까.

중심소재는 '동아리 부서 신청'이다. 학교에는 창체 시간이 있고 그중 일부는 '동아리활동' 시간이다. 이 부서를 어떻게 정해 활동하는지는 해묵은 문제다. 이거네 하고 딱인 방법이 있다면 무슨 걱정이랴. 아쉽게도 모든 방법에 단점이 존재한다. 코로나로 원격이던 때 우리 학교는 동아리시수를 최소로 줄이면서 1학급 1부서 구성을 했고 그러니까 실제로는 동아리가 아닌게 되어버렸다. 그냥 '특별활동'이 얼마간 추가된 셈이다. 나는 '창의미술부'라고 지어놓고 입체미술이나 정식 미술시간에 못다룬 이런저런 잡다한 작품활동을 시키는 시간으로 활용한다. 주도자는? 당연히 나다. 어쩌다보니 이렇게 되었는데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 전에는 각 담임들이 본인이 운영가능한 부서를 서로 겹치지 않게 정해놓고 학생들이 골라 들어가게 했다. 당연히 선호부서와 비선호부서가 생기고 추첨이나 가위바위보를 해야하며 밀려서 원치않는 부서에 가는 학생들이 생기게 된다. 그시간은 학급에서 흩어져 각자의 부서 교실에 가서 활동하고 하교한다. 이 방법의 최대 단점은 학생의 욕구가 반영되기 힘들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원하는 부서는 대부분 체육관이나 운동장을 장소로 써야 하는데 겹치지 않게 조정하다보면 그런 부서를 많이 만들 수 없고 일부의 욕구만을 충족시킬 수 있다. 밀려서 원치않는 부서에 간 학생들은 열심히 참여하지 않게 된다.

내가 경험해보진 않았지만 아이들의 욕구와 자율성을 최대한 반영하는 학교들도 있다. 이 책과 조금 비슷한데, 학생들이 공고와 모집 등을 통해서 일정 인원을 구성하면 정해진 차시만큼의 계획서를 받고 동아리로 인정해주는 것이다. 다양한 부서들이 난립하고 그 모든 부서를 담임이 관리감독해야 하는 난관이 따른다. 수업시간인데 뭔가 알차게 진행되어야 한다는 교사의 강박과 그런 것 아랑곳하지 않는 아이들과의 간극도 괴로운 점이다. 모든 책임을 담임이 다 뒤집어쓰는 학교의 구조에서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이기에 허용할 수 없는 범위가 많다는 것도 갈등요소가 된다. 한마디로 동아리 몇시간 하자고 가성비가 너무 떨어지는 고생일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의 이야기 또한 현실에 대입하면 위와 같은 문제들을 제기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물웅덩이 탐험가' 라든가 '구석구석 탐방대' 같은 것. 작은 사고라도 났을 때 겪어야 할 고초를 생각하면 등골이 서늘해진다. 휴.... 하지만 난 이 책을 현실에 대입하지 않기로 마음먹으며 읽어나갔다. 현실에 맞는 말만 하자면 못하는 말이 얼마나 많겠어! 그런거 따지지 말고 읽자!! 결과적으로 재미나게 미소지으며 읽을 수 있었다.

화자인 솔이는 평범하고 눈에 잘 안 띄는 아이인데 어쩌다가 동아리 신청에 대한 의견을 담임선생님께 말했다가 중책을 맡게 된다.
"솔이가 직접 신청을 받고, 신청한 아이들을 만나보고 이야기를 나눠 봐. 그리고 정리해서 정식으로 학교에 건의하는 거야."
며칠동안 많은 신청서가 들어왔고, 솔이는 도서관 모임방에서 신청자들을 한명씩 인터뷰하기로 했다. 얼떨결에 면접관 같은 위치가 되어버린 솔이. 이 책의 대부분은 그 인터뷰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명씩 만나보는 아이들의 신청서에 얽힌 이야기. 어쩜 아이들은 이렇게 좋아하는 것도 소중히 여기는 것도 다르고 성격이나 생각, 상황들이 다 다르면서도 공감이 될까.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그동안 못해서 얼마나 답답했을까. 위에도 썼듯이 솔이는 평범하고 조용한 아이지 달변가는 절대 아닌데, 곰곰히 생각하며 집중해서 들어주고 한두마디 질문을 하는 것만으로도 면접(?)인지 상담(?)인지 모를 자리들은 충만하게 채워졌다.

나도 우리반 아이들의 신청서가 궁금하다. 부서도 부서지만 이유가 더 궁금하다. 들어줄 수도 없는데 묻기가 부담되지만.... 근데 실제로 물어보았을 때 이 책에 나온 것 같은 다채로운, 예상을 깨는, 자신의 상황과 가치관과 욕구가 잘 반영된 부서가 나올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의외로 정하기 어려워하거나 한쪽으로 우루루 쏠릴 수도 있다. 이 책에 나온대로 자신만의 신청서를 쓸 수 있는 아이들은 그 자체로 매우 건강한 아이들이다. 언젠가 음악학원에 잠깐 다닐 때 거기 원장님이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뭘 하고 싶다는 말을 하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는 아이들 천지라고. 엄마가 답답해서 손잡고 끌고 오는 애들이 대다수라고.

이 책의 마지막장을 보면 솔이는 행복하다. 학교생활이 재미있을 것 같다고 한다. 친구들과 함께하는 짧은 시간과 작은 기여감이 생겼을 뿐이지만 솔이의 세상은 달라졌다. 살면서 그 마음이 꺾이지 않길 빈다.

기타등등 동아리. 누구에게나 필요한 걸지도 모르겠다. 혼자있기를 좋아하는 나도 진정으로 혼자이고 싶지는 않더라. 그리고 늙은이들에게 동아리가 더 필요해... 다들 궁리해봅시다. 혹시 모르지요. 작은 행복을 찾을지도.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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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을 이겨 낸 교실 문학의 즐거움 68
혼다 아리아케 지음, 유코 그림, 모카 옮김 / 개암나무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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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에 불만은 없는데, 딱 한가지 제목 번역이 마음에 안든다.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이렇게 노골적이고 여지가 없는 제목은 좀 별로다. 설마 원작도 이 제목인가? 하고 원작 표지를 봤더니 전혀 달랐다. 원제목을 최대한 살려 번역했으면 좋았을걸.... 주제를 제목에 담으려는 의도가 너무 재미없는 제목을 만들어낸 것 같다. 요즘말로 '납작한' 제목이라고 할까. 오히려 내용은 제목보다 훨씬 풍성했다.

일본 사회나 교실의 모습은 우리와 유사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차별에 대한 문제도 비슷하지 않을까. 이책의 5학년 3반 교실에는 차별받는 세 명의 학생이 등장한다. 먼저 화자인 츠루타 켄토는 눈에 띄는 차별요소는 없어보이지만 일종의 트라우마를 가진 탓에 극복하지 못하는 문제를 안고 산다. '입스'라고 하던데, 충분히 가능한 동작을 긴장하는 순간에는 못하게 되는것. 그래서 츠루타는 멀리뛰기를 전혀 하지 못한다. 점프 시작을 아예 못하기 때문이다.

두번째 주인공인 사쿠라이 안은 츠루타와 유치원때부터 친구다. '쿼터'라고 불린다는데, 4분의 1이 혼혈이란 뜻이겠다. (아빠의 엄마가 영국인) 그리고 유치원때 교통사고를 당해 아빠는 돌아가시고 안은 무릎이 많이 상해서 장애를 갖게 되었다. 이후로 짖궂은 아이들에게 놀림을 많이 당했다.

세번째는 다니엘 켄토다. 츠루타 켄토와 이름이 같지만 외모는 많이 다르다. 아버지가 흑인인 다니엘은 신체조건이 운동하기에 월등하게 좋고 피부색도 검다. 가장 눈에 띄는 차별요인을 가진 셈이다. 그래서인지 충돌도 많았고 특정 아이들과 싸움이 심해져 3반으로 전반을 하게됐다. 이 반에선 눈에 띄는 괴롭힘은 없었다. 체격조건과 힘이 월등하고 태도도 거칠었기 때문. 하지만 아이들은 다니엘을 슬슬 피했다.

차별이 존재한 건 맞지만 그게 서사의 중심은 아닌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제목이 더 아쉬움) 이 세 명 외의 다른 아이들은 흐린 배경처럼 물러나 있었다. 오로지 세 주인공만 선명하게 빛났다. 그래서 내가 보기엔 차별을 이겨냈다기보다도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섰다고 하는게 더 정확한 표현 같았다. 그 과정에서 결과적으로는 차별도 넘어서게 되었을테니 아예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들이 자신의 문제를 극복한 방법은 셋의 연대였다.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관계. 치우쳐지지 않은 정확한 트라이앵글 같은 관계. 그런 서사가 매우 건강하게 흘러갔다. 카메라는 정확하게 그 삼각형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고, 나머지는 비중있게 다루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이 한걸음을 내딛은 순간, 그때 서로의 역할, 한걸음이 두걸음이 되고 이후의 걸음이 점점 쉬워지는 과정 등이 아주 잘 드러났다.

주변을(세상을) 바꿔야 할 때도 있지만 나 자신을 바꾸는 게 가장 빠르고 바람직한 경우도 많다. 이 책은 그런 경우를 다루고 있고, 그래서 조연들의 역할이 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굄돌이 되어주며 훌쩍 성장한 세 명. 이 아이들이 보는 세상 또한 달라졌을 것이다.

나는 다문화가정도 아니고 소수자의 조건을 딱히 갖고있지 않다. 그래서인지 츠루타의 '입스'에 눈길이 더 머물렀다. 경미하지만 나도 그랬던 적이 있었던 것 같다.ㅠㅠ 교실에도 그런 경우가 크고 작게 있다. 그걸 극복하는데 서로 격려하는 분위기가 된다면 최고의 학급이 될 것이다. 한걸음, 용기, 격려, 그리고 우정. 그것을 '차별을 이겨낸 교실'이라 불러도 될 것 같긴 하다. 차별의 대상은 우리가 익히 아는 것보다도 더 다양하게 많고 구호만으로 극복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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