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화 신은 늑대와 무적의 고양이 장군 봄볕어린이문학 15
엘 에마토크리티코 지음, 알베르토 바스케스 그림, 박나경 옮김 / 봄볕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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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 이름도 반갑고 이 익숙한 그림체도 반갑다.(근데 작가이름 못외움... 스페인 작가라는 것 밖에^^;;) <행복한 늑대>의 후속편이다. 행복한 늑대는 한 시기 우리반 친구들과 함께 했었다. 독서취향이 제각각 다르지만 이 책은 모두가 좋아했다. 사납고 난폭한 늑대라는 이미지를 뒤집은 착하고 다정한 아기늑대. 삼촌 페로스의 압박에도 아랑곳없이 특유의 순진무구함으로 끝까지 자신의 정체성을 지켰다.

이 책은 아기늑대보다 삼촌이 더 많이 나온다. 잔혹함과 사악함을 버리고 숲속에서 양복점을 운영하나 파리만 날리는 날들이 계속되자 삼촌은 점점 화가 나기 시작한다. 그러다 아기 늑대가 가져온 그림을 보고 숲속 동물들의 영웅인 '장화 신은 고양이 장군'에 대해 알게 된다. (이 시리즈의 특징 : 옛이야기나 명작동화의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첫 권에서도 그거 찾는 재미가 있었다.^^)

삼촌한테 장화 한 켤레를 받은 아기늑대는 좋아라 뛰어나가 친구들에게 자랑을 했고 친구들은 부러워하며 갖고싶어 하는데.... 이 모습을 본 사악한(아니 영리한이라 할까?) 삼촌의 머리속엔 어느새 사업구상이 펼쳐진다. 바로 장화신은 고양이 굿즈를 만들어서 파는 것이다. 장화에 이어 칼, 모자, 망토, 벨트.... 고양이 장군의 인기만큼 굿즈도 불티나게 팔렸다. 이제 숲속 동물 중 고양이 장군 복장을 하지 않은 동물이 없을 지경이었다.

지금까진 1단계였다. 사악..(아니 영리)한 삼촌의 마케팅 전략은 한단계 업그레이드 되었다. 고양이 장군을 만난 삼촌은 그에게 다양한 선물을 하고, 그것은 또 새로운 유행 아이템이 되어 돈을 벌어들였다.

나는 워낙 돈쓰는 취미가 없는 사람이라 많이 해당되진 않지만 현대사회의 소비 패턴을 풍자하는 우화라 표현해도 손색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사람들은 새로운 물건을 그렇게나 살까? 그리고 아직 쓸 수 있는 물건들을 그렇게나 버릴까? 이에 대해서 멋지게 꼬집은 철학동화 <오! 멋진데!>도 같이 읽어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사악해도 조카에 대한 애정만은 깊은 삼촌은 아기늑대의 이런 말을 듣고 자신의 행보에 비로소 제동을 건다.
"예전에는 친구들이랑 매일 모험을 천개쯤은 즐겼어요. 나무에 오르고, 바위에서 뛰어내리고, 바보처럼 장난치며 숲을 누비고 다녔어요. 정말 재미있었어요. 하지만 삼촌이 물건을 팔기 시작하면서 친구들은 오로지 돈으로 물건을 사고 또 사는 것에만 관심을 가졌어요. 그래서 같이 재미있게 놀던 친구들이 모두 떠났어요."
소비가 미덕이어야 하는 자본주의의 맹점까지 잘 짚어낸 부분이다. 조카의 소외와 슬픔 앞에서야 정신을 차린 페로스는 이제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게 되는데....^^

저학년 대상의 짧고 쉬운 동화이면서도 그 안에 각자의 층위에 맞는 사유를 할 수 있는 내용이 들어있다는 점에서 이 책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근데 1번 가수의 가창력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다음 가수들의 노래를 다 듣고도 1번을 누르는 청중평가단처럼, 나도 한 권을 고르라면 첫번째 책 <행복한 늑대>를 고르겠다. 착함의 가치가 훼손된 시대에, 바보 이반도 아닌 귀여운 늑대의 착함은 내게 너무 소중했다. 물론 이 책도 그 연장선이긴 하다. 이 시리즈는 계속 나온다고 하니, 같은 물줄기로 더욱 재미있게 구불구불 흘러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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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마법사 신나는 책읽기 54
허가람 지음, 김이조 그림 / 창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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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 웅진주니어 문학상과 비룡소 문학상을 연달아 받으며 데뷔한 허가람 작가의 세번째 책이다. 그당시 우리반 아이들과 그 두 권을 모두 읽었다. 내 취향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아이들이 너무 좋아해서 아주 흡족한 독서를 했다. 왜 더이상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궁금했는데 며칠전 드디어 눈에 띄길래 바로 주문했다.

앞의 두 작품도 이 책도 모두 100쪽 미만의 저학년용 동화다. <땅속 괴물 몽테크리스토>는 장편이고, <늑대들이 사는 집>은 늑대 세마리가 돌아가며 대표주인공으로 나오는 3편의 단편이며, 이 책에는 8편의 단편이 들어있다. 그러니 각편의 길이는 이 책이 가장 짧다.

제목이 <이웃집 마법사>. 혹시 모르잖아? 마법사인지도? 이런 시각으로 우리 이웃들을 바라본다.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이웃들의 도움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그들이 밝히지는 않지만 어쩌면 마법으로 좋은 일을 하고 있는 건지도.

8편의 단편에서 4명의 마법사가 등장한다.
물수제비 - 복사가게 아저씨. 특기는 복사마법.
깨금발 - 스카이콩콩 가게 아저씨. 특기는 높이뛰기 마법.
굽은등 - 바나나 가게 아저씨. 특기는 구부리기 마법.
달맞이 - 찻집 아저씨. 특기는 웃기마법
이야기들에서 이 마법사들은 각각 나오기도 하고 함께 나오기도 하며 이웃들을 도와준다.

솔직히 말하면 이번 책보다 앞에 나온 두 권이 더 맘에 든다. 이번 책의 에피소드들은 <늑대들이 사는 집>보다는 재미와 반전이 덜하고 <땅속 괴물 몽테크리스토>보다 능청과 유머도 덜하다. 그리고 전편들만큼 문장이나 사건이 정선되지도 않았다는 느낌이 든다. 아주 사소하지만.... 느낌은 중요한거니까. 3편에서 "학원은 망해버렸어" 이런 문장은 직접적으로 안썼으면 좋겠고(난 학원이랑 아무 상관 없는 사람임) 6편에서 교장선생님이 변화하는 과정에 공감이 썩 되지 않는 아쉬움도 있다. 하지만 이 책에 적용된 작가의 시선, 그 발상은 무척이나 맘에 든다. 우리 이웃에 마법사임을 숨기고 사는 평범한 마법사들. 세상에는 말섞기도 무서운 못된 작자들도 꽤 있긴 하지만 고맙고 따뜻한 사람들이 더 많다고 믿는다. 나도 그중의 하나가 된다면 인생이 헛되지 않으리라.

이런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주변을 둘러보며 잘 생각해 볼래요? 마법사는 절대 자기 신분을 밝히지 않아요. 여러분이 보기엔 누가 마법사인 것 같아요? 그 사람은 어떤 마법을 부릴 수 있나요?"
대답도 예상해본다.
"농부 할아버지요. 식물들이 잘 자라는 마법을 부려요."
- 우리학교 청소용역 할아버지는 자원해서 학교 농사를 다 떠맡으셨다. 우리들이 심어놓고 까먹은 농작물들이나 벼농사체험으로 심어놓은 벼, 사철 새로운 꽃들에 물을 주며 알뜰히 가꾸신다. 할아버지 안계셨으면 화단은 엉킨 밀림이 되었을 것. 연세가 많으셔서 곧 퇴직하셔야 된다고 한다.ㅠ 전교생을 아는척하시며 이름을 외우려 노력하신다. 진심은 아이들에게도 통하는듯. 아이들이 할아버질 무척 좋아하고 때론 의지한다.
"학습준비방 선생님이요. 정리마법을 부려요."
- 우리학교에서 안계시면 가장 표나면서도 월급은 제일 조금받는 분이 준비방 선생님이다. 부탁만 드리면 완벽한 준비와 정리. 영리한 일머리와 금손. 이분은 진정한 마법사인지도.

이런 아이디어도 있다. "지금부터는 고백의 시간이에요. 우린 모두 마법사들이잖아요. 아니라구요? 에이~ 우리끼리는 솔직하게 말해요. 어떤 마법을 부릴 수 있는지 알려주기로 해요."
- 저는 종이접기 마법을 부려요. 한번만 보면 다 접을 수 있어요.
- 저는 흉내마법을 부려요. 강아지 소리도 똑같이 낼 수 있어요.
책 읽고 이런 이야기들을 나눠봐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이웃들에 대한 '긍정적인 의심'의 눈초리, 이건 곧 감사로 이어질 수 있고 나에 대한 재발견, 이건 자존감으로 이어질 수 있으니. 단, 늘 생각대로 흘러가진 않는다. 그럼 뭐 재미있게 읽은 것으로 만족하면 되고.^^

전편들보다 살짝 약해진 느낌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함께 나눌 이야기들은 이렇게 많구나. 작가의 네번째 작품이 나온다면 나는 또 기대하며 읽어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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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 아래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조은하 옮김 / 애니북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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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 중 마지막이다. 다른 책이 더 있었다면 이 책은 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도서관을 못가서 더이상 책이 없어서 펼쳤다. 오 근데 재밌었다.^^

세로방향 책은 오랜만에 읽는다. 일본만화는 아직 이렇게도 나오는구나. 짧은 만화(4쪽 32컷) + 우주이야기로 된 매우 독특한 구성의 책이다. 만화 작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생각을 담은 인기작품을 많이 그리신 분 같고 각 만화에 딸린 칼럼은 우주관에서 일하는 분이 쓰셨다고 한다. 전문가들의 협업이라 하겠는데, 서로의 소통이 잘 되었는지 겉도는 느낌 없이 조화롭다. 만화가 아주 작고 귀엽고 가볍다면 칼럼은 살짝 무게를 주며 눌러준다. (만화의 생각이 가볍다는 뜻은 아니다. 굳이 말한다면 무게를 잡지 않는다고 해야할지) 그림체도 그렇다. 전혀 정교하지 않게 쓱쓱 그린 그림체. 그런데 좋다. 편하고 익숙하고. 인물들도 정겹고.

매 화마다 다른 인물들이 나오는데(시간이 흘러 뒷야야기에 다시 나오기도 함) 그냥 평범한 소시민들. 이들의 짧은 이야기는 꼭 우주의 무언가와 연결되고 이어지는 '알기쉬운 우주 이야기'에선 그걸 설명해준다. 운석, 별똥별, 별의 탄생, 별의 이름, 은하수 등등.... 인물들은 내가 아는 특별한 것 없는 주변인물들 중에서 못되고 탐욕스러운 사람들 다 빼고 남긴 사람들 같다. 부러운 능력자들이 가득한 세상에서 마음이 작아질 때 읽어보면 어떨까. 어차피 우주의 시간에선 길어봤자 찰나야. 커봤자 모래알이고. 머리 내밀겠다고 발꿈치 들지 말고 그냥 편하게 어울려 살아. 착하게.

만화가 다 공감가고 좋았지만 특히 공감간 것 몇 편.
[별똥별] 며칠째 야근중인 후지키. 야근수당도 청구하지 못하고.(이부분 나도 울컥한 사연이 있으나 생략) 욱신거리는 어깨를 두드리며 일하고 있는데 저녁먹고 들어온 남자후배가 별똥별을 봤다며 말을 시킨다. "소원 빌었어?" 라는 질문에 못빌었다는 후배의 대답. "생각해보니 하나밖에 안떠오르는 거예요. 이 회사 그만두고 싶다는 거였어요."
"별똥별을 보고 그거 하나는 알게 됐어요.".... 난 그정도로 내 회사에 불만있진 않지만.... 그래도 공감이 간다. 젊은 직장인들의 비애라 할까. 안쓰럽기도 하고.ㅠ

[별은 어떻게 태어날까?] 몇 친구들이 선술집에서 30세 생일축하중이다. 선술집 아주머니가 말한다. "30대는 아직 애야."
"초등학교 25학년 쯤 되려나?" 이 말씀에 하하하^^
사장님은 어른인가요? 질문에
'아유, 아직 멀었지. 대학교 40학년 정도 됐으려나."
나는 몇살쯤 된걸까? 대학교까진 가지도 못했고 중학교 37학년?ㅋㅋ 언제 어른이 될까? 되기는 할까? 아주머니는 "나이드니 생일날에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어진다"고 하셨다. 이걸 보니 나는 아직도 애구나. 담달에 생일 있는데 엄마한테 전화라도....ㅠ

[지구는 하나뿐?] 착한 사람들 사이에 가당찮은 주변인이 나온 경우. 퇴근 후 부장님과 식사하는데 그 부장이란 인간이 계속 말실수를(실수?가 아닌거지...) 그러면서 계속 하는 말이 "아이쿠야, 이러면 성희롱인가?" 인간아... 알면 닥치거라. 일본에도 이런 작자들이 많구나. 바뀌겠지. 단 바뀌는 과정에 선량한 이들을 제물로 삼는 걸 가벼이 보지 말아야 한다. 차라리 걸음을 좀 늦출지언정 꼭 그래야만 한다. 그게 계속 전진하는 길이다. 요즘 울분 터지는 일이 하나 있어 이 말을 하게 된다.ㅠ

[공부] 이 화에는 학생과 교사가 나와서 집중하게 됐다. 선생님은 50대로 보이는 역사교사. 그 옆에 상습 땡땡이 남학생. 선생님은 껄렁대는 그녀석의 질문에 무심한듯 답을 해주며 수업프린트를 열심히 만들고 있다. 재밌지도 않은거 대충 만들면 되잖냐는 녀석의 질문에,
"대충 만든 프린트물로 수업을 하면 내가 재미가 없어서 그런다!"
이 한마디에 이 나이든 교사의 교직 인생이 담겼다. 내가 그래도 아직은 그만두지 않는 건 이 선생님의 말씀이 내 얘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슬쩍 이 뺀질이에게 공부가 뭔지 한수 가르쳐주시는 선생님. 고수다. 그러니까 뺀질이가 기웃거리는 거겠지만. 근데 이 선생님의 말투는 세련되지 못했고 문제가 될 요소도 많다. "그딴거 필요없으니 썩 꺼져라." "바보 녀석" "커피 좀 타와라."
선생님, 선생님을 진정한 고수로 존경합니다. 근데 조심하세요. 인격파탄자, 아동학대로 고소 당하세요.ㅠㅠ

[우주를 알다] 결혼을 앞둔 남녀와 남자의 어머니가 까페에 앉아있다. 남자는 두고온 핸드폰을 찾으러 뛰어나가고 덤벙대는 아들을 흉보던 어머니는 "쟤 어디가 좋던가요?" 하고 묻는다. 어느 밤 같이 퇴근하는 길 밤하늘 별을 보고 감탄하는데 함께 감동하더라는. "제가 대단하다고 느낀 것을 같이 대단하네 라고 얘기할 수 있다는 게 참 좋다고 느꼈거든요." 그렇다. 그런 이들과 함께 해야 행복하다. 나처럼 매사 시큰둥해서는 많은 친구를 사귀기 어렵다.ㅋㅋ

아이고, 이렇게 하나하나 말하다간 끝이 없겠다. 이 외에 짧은 한편한편에 따뜻한 이야기들이 들어있다. 오늘은 아주 편안하고 미소짓는 책읽기를 했다. 이런 독서 좋네. 작가의 다른 책도 보고 싶다.

이 책을 보면서, 어린이책에 관심이 많은 나는 딱 요 컨셉으로 어린이책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대신 정보면은 칼라풀하게. 만화는 단색으로.(난 만화는 칼라 싫다. 단색이 더 잘 읽힘) 정보면엔 총천연색 사진과 그림과 재미있는 설명을 넣고, 만화엔 아이들이 등장하는 걸루. 대박일 거 같은데 표절이려나?^^;;; 솔직히 이 책도 칼럼에 좀 이해가 안가서 '그림이 들어갔으면' 하는 부분이 있었다. 고거 하나가 살짝 아쉬웠다. 나의 지식 문제이기도 하지만.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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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학부모 상담 - 학생, 학부모, 교사가 함께 성장하는
김연민.김태승 지음 / 푸른칠판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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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3월에 새 아이들을 만나자마자 한달도 안되어 학부모상담을 했고, 2학기 개학하면 3주만에 또 상담주간이 있다. 해마다 조금씩 (아주 눈에 안띌 만큼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그래도 나에게 이 두번의 주간은 일년 중 가장 힘든 주간이다. 교과전담(비담임)을 했던 해에는 이 주간 오후에 복도를 지나갈 때 마치 혼자 방학을 한 듯한 해방감에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가벼워지다가 교실의 담임들께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었다. 지금도 솔직히 이 주간만 놓고 본다면 비담임을 선택하고 싶다. 크게 망한 적이 없는데도, 사전의 부담감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왜 그렇게 부담스러운 걸까.

이 책에서는 '자동적 사고'에 따른 '비합리적 신념'으로 설명을 하고 있는데 들여다보면 나에게도 해당되는 것이 많다. 나는 기본적으로 '나쁜 사람보다는 좋은 사람이 많다.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좋은 학부모님이 훨씬 많다.'고 생각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본능적으로는 주변에서 보거나 들은 악질학부모, 진상학부모에 대한 기억이 먼저 튀어나오고 그게 어느새 비합리적 신념으로 내 사고를 지배하고 있었던 것 같다. 시작 전엔 마음이 무겁지만 일단 상담이 시작되면 대화가 즐겁거나 따뜻했거나 중요한 것을 알게 됐던 적이 더 많았고, 아이를 많이 걱정하던 한 어머니는 상담 오기를 너무 잘했다며 안심과 기쁨의 눈물을 흘리신 적도 있다. 그러니 이제 내 안에 있는 비합리적 신념(학부모는 항상 자신의 아이만 생각한다, 학부모와는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학부모는 삐끗만 해도 나를 상처주는 존재로 돌변할 것이다... 등)을 합리적인 생각으로 바꿀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 책은 학부모상담 경험이 적은 젊은 교사들을 주독자로 설정했다는 느낌이 들지만 20년을 넘게 한 나도 별반 다르지는 않다는 점에서 꼭 읽어볼 책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동안 나의 잘못된 발자취(?)를 되돌아보게 되어 부끄럽고 찔리는 대목이 많았다. 자아비판을 굳이 할 필요가 있겠냐만, 발전의 발판으로 삼기 위해 부족했던 점, 보완할 점들을 적어본다.

1. 별난 아이건 무난한 아이건 학부모에게는 상담을 요청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잊은 때가 있었다. 특히 학급 인원수가 많을 때는 하루에 4~5명의(야간상담날은 그 이상) 상담을 하게 되는데 그런 경우 수업준비, 업무에 해당되는 오후 시간이 모조리 들어가기 때문에 별도의 시간을 더 일해야 하고 체력적으로도 상당히 힘들다. 그래서 상담신청서를 걷을 때 잘하고 있는 아이가 내면 "아이참, 얘는 안해도 되는데"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기본적으로 학급의 모든 학부모를 만나는 게 맞다는 생각으로 임해야 한다.(그게 엄청 빡세긴 함...;;;)

2. 부담스러워만 했을 뿐 실제 준비는 부족했다. 뭘 준비해야 할지 잘 몰랐다는 말이 맞겠다. 해마다 이런저런 설문지나 양식들을 적용해보곤 하는데 이거다 싶은 것은 아직 찾지 못해서 매번 달라지곤 한다. 그것도 준비 못하던 처음에는 '말문을 열면 대화는 되겠지' 이런 무대뽀 정신으로 임했던 것 같다. 실제로 어떻게 하든 대화는 됐었다.ㅎㅎ 하지만 귀한 시간 내서 찾아온 학부모가 대화에 만족했을지는 미지수다. 몇년 전부터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는 것은 아이들의 글이나 작품이 담긴 포트폴리오, 교우관계 조사표 등이다. 이것도 2학기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이라 3월 상담은 아직도 어려움이 많다. 이 책의 Part2는 상담준비에 대한 장이다. 상담장소(교실) 정리와 자리배치 같은 공간적인 것부터 사용할 수 있는 서식들도 소개하고 있다. 이중에 뇌구조 그리기와 교우관계도, 상담기록지 등은 나도 활용하고 있는 것이라 나의 경우 서식 자체보다는 내용에 더 집중을 해야할 것 같다. 그 내용의 포인트는 '관찰'이다. 관찰을 기록한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나도 소위 적자생존(적어야 살아남는다)의 원칙에 따라 일부 걱정되는 아이들의 행동을 적어놓기도 하는데 이 책에서는 단점에 치우친 기술과 제시는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단점보다 장점의 관찰이 훨씬 어렵지만 꼭 필요한 것이며 그것이 형식화된 어떤 것보다도 중요한 상담준비가 된다. 또 '작은 실천 전략'을 세워두라는 조언이 나오는데(73쪽) 중요한 조언이라 생각한다. 언젠가 아이에 대한 걱정을 표현했을 때 어머니가 한숨을 쉬며 "어떻게 해야 되나요? 선생님이 알려주세요." 하시는데 갑자기 머리속이 백지가 된 경험이....;;;; 급하게 주워섬기긴 했지만 도움이 된 조언은 못되었을 것이다. 출발은 작은 실천이니 그것을 미리 생각해두는 것이 좋겠다.

3. 이 책의 Part3은 상담기술에 대한 것이다.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게는 이 장이 핵심이라고 느껴졌다. 내가 어렴풋이 느꼈던 어려움을 좀 더 명확히 볼 수 있었다.
1) 옳은 말(팩폭?) 보다는 좋은 말을 : 나는 사실 팩폭을 할만큼 간땡이가 크진 못하다. (하지만 그런 욕구는 늘 가지고 있음;;;) 그리고 좋은 말이라니? 달달한 말로 비위만 맞추란 뜻인가? 여기서 좋은 말이란 진정성 있는 말, 함께 해결책을 찾아가기 위한 의도를 가지고 다가가는 말이라 여겨진다.
2) 상담의 기본기술 경청 공감 반영 명료화 : 이건 백번 맞는 말인데, 경청 공감에 너무 집착하다보면 한없이 말려들어 문제해결이 어려워진 경험이 있다. 뭐든 절대적이지 않다. 특히 상담주간과 같은 공식적인 상담 말고 문제상황에서 한없이 경청과 공감만 하고 있었다가는 정확한 판단과 중재가 어렵다. 고개를 끄덕일 때와 정색을 할 시점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이 책에서는 반영과 명료화 부분이 참고가 되었다.
3) 화가 난 학부모와 대화하기: 운이 좋게도 그동안 이런 상황이 자주 있진 않았다. 또 정말 다행스럽게도(?) 같이 화를 내는 맞불상황을 내가 만든 적도 없다. 하지만 그쪽은 화내고 잊어버린다해도 할말 못하고 참은 나는 울분이 남는다는 점... 이것이 문제다. 나는 화내지 않으면서, 그의 화를 뒤집어쓰지 않을 방법은 없을까? 이 책에서는 진화에 비유하면서 상대의 발화점을 파악하여 대처하는 방법을 알려주면서도, 어느정도는 감수해야 한다고 보는 것 같다. "이 상황을 지혜롭게 해결하는 것이 전문성을 발휘하는 일이라는 것이라는 점을 상기하며 교사 스스로 차분하게 마음을 챙겨야 한다."(174쪽) 아이고 어렵다....

Part4는 즉문즉설이다. 아주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다.^^ 학부모 편과 교사 편이 있는데 경험이 풍부한 저자들이 뽑은 핵심질문과 그에 대한 답이다. 신규교사들은 이 부분을 읽고 나면 조금은 안심이 되실 것 같다. 물론 닥치기 전엔 절대 알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점에서 상담이란 무척 변수가 많은 작업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특별한 상황이 아닌 일반적인 경우엔 준비하고 공부한 만큼 나아질 거라 본다. 나도 관찰을 통해 내용을 확보하고 이 책의 팁들을 기억하며 체계를 좀더 세워가야겠다.

이 책을 읽고 기억해야 할 말은 무엇보다도 책 전체에 꾸준히 나오는 '작업동맹'이라고 생각한다. 이 말이 아주 새로운 건 아니다. 학부모와 협력관계를 유지하라는 말은 상담주간을 앞두면 교장선생님도 여러번 당부하시는 말이니까.... 다만 그 관계를 깨뜨리는 사소한 것부터 큰 것까지 여러가지 요인들이 있는데 이에 대한 파악과 대비는 쉽지 않다. 그것이 전문성이라 할 수 있겠고, 이 책은 그 전문성을 키우는데 실제적인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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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독 개꾸쟁 1 : 덩림픽 구하기 대작전 - 제1회 이 동화가 재밌다 대상 수상작 이 동화가 재밌다
정용환 지음 / 고릴라박스(비룡소)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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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좋아하는 책을 알아보려면? 아이들이 심사하는 공모 당선작을 보는 것도 한 방법이겠지? 그래서 이 책을 읽어봤다. 공모제목도 '이 동화가 재밌다' 이 책이 대상작이다. 같은 대상작 '소녀H'의 재미코드에는 공감을 못해서 슬펐다.... 아이들과 코드차이가 심해지면 곤란하다고... 다행히 이 책은 재밌었다. 아이들과 함께 웃고 즐길 수 있는 어른이고 싶다. 앞으로도 계속. 언젠가는 손주도 볼 테니...ㅎㅎ 사실 아이들과 즐기기, 이건 일과 휴식을 명확히 구분짓고 혼자 쉬는 것 외에는 다 일인 내게는 참 어려운 일이지만 그래도 애는 쓴다. 소통코드를 남겨두려고.

넘치는 삽화로 동화와 만화의 경계에 있는 것 같은 책이다. 정용환 작가님은 주로 그림작가로 활동해왔던 것 같은데(복제인간 윤봉구도 이분이 그리셨네?) 이번엔 그림과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내셨다. 이야기도 창의적이지만 익살스런 그림이 주는 재미가 만만치 않아서 아이들이 망설임없이 이 책을 추천했을 것 같다. 그림체가 과장되지 않고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깨알재미가 있어서 나도 아주 맘에 들었다.

주인공 개꾸쟁? 개의 이름이다. 친구인 개풍순, 개복실 각각 진돗개, 풍산개, 삽살개의 후손들. 이들은 과거 모종의 계기로 뇌가 급속한 발달을 하여 지금의 세상을 이루었다고 한다. 그 전에는 '핑거스'라는 종족의 지배를 받았다고. 혹시.... 그건 사람을 비유한 것일까? 꼭 그렇다고 말하고 있진 않은데, 하는 일을 보면 영락없네. 목줄을 채우고, 쓸데없는 심부름을 시키고, 중노동을 시키고, 사료밖에 안 주고... 개를 가족이라 부르는 핑거스도 있었지만 그들이 하는 일이란 것이 자꾸만 손을 달라고 하고(발인데....), 번식을 못하게 중성화수술을 시키는 것....ㅠ 그렇다. 우리집 개가 말을 한다면 뭐라 말할지는 모를 일인거지....

이 개나라에서 벌어지는 덩림픽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똥 이야기와, 어른이 봐도 뜨끔할 세상에 대한 풍자가 같이 들어있다. 위기와 갈등이 없으면 이야기가 아닌 바, 이 덩림픽엔 전복을 노리는 핑거스들의 엄청난 음모가 들어있다. 천지분간 못하는 강아지들이면서도 그에 대항해 싸우는 개꾸쟁 삼총사. 복수를 다짐하는 핑거스의 외침으로 이 책은 끝난다.

자동으로 2권을 찾게 되는 구성이네.ㅎㅎ 2권의 제목이 타일왕국 사수 대작전? 아이들아, 재미있는 게 이렇게 많은데 어디다 눈을 박고 어디에 박혀서 뭣들 하고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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