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퉁이 하얀 카페 심쿵 레시피 푸른숲 어린이 문학 9
박현정 지음, 신민재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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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적인 동화책을 읽었다. 이 표현이 내겐 딱 적당했다. 매력적. 검색해보니 아주 많이 팔린 책은 아니다. 근데 내겐 책장에 소중히 꽂힐 책이 될거같다. 고학년을 맡으면 함께 읽어 보려고.

같은반 친구 네 명이 각각 화자로 나오는 연작 단편집이다. 네 아이는 서로 오해하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이해하기도 가까워지기도 하는 흔한 인간사 어딘가를 통과하는 중이지만, 누구나 자신의 문제가 우주보다 큰 법이고 그걸 어떻게 통과하느냐가 중요하므로 이 아이들의 고민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이 아이들을 들여다보는 작가의 눈이 바로 '매력적'이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힘든 아이들의 이야기는 많다. 근데 난 정답을 정해주는 책도 싫지만 답없는 책도 깝깝하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어쩌면 현실을 직시하기 피곤한 나의 회피일수도 있지만, 아이들과는 다큐 같은 동화보다는 이렇게 '동화 같은' 동화를 같이 읽고 싶다. 적당한 판타지가 있는. 그게 꿈이고 허상이고 심하게 말하면 마취라 할지라도 어쩔 수 없다. 가라앉기보다는 떠올라보고 싶으니까. 차영아 작가의 '쿵푸 아니고 똥푸' 책에서 "산다는 건 백만 사천 이백 팔십 아홉 가지의 좋은 일을 만나는 것"이라는 대목을 아이들이 무척 좋아하는데, 그런 거다. 말하자면 희망. 그것 없이 아이들을 대한다는 건 고문 같았어서 말이다. 나도 날마다 이 모퉁이 까페의 음료 한 잔씩으로 충전해야 한다고.

첫번째 이야기 [잘 알지도 못하면서]의 주인공은 해진이다. 의도하지 않게 상황은 꼬이고 그 속에서 오해받고 움츠러드는 아이의 이야기다. 해진이는 친구들에게 '허언증 걸린 아이'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헬리시움이라는 최신식 아파트에 입주를 앞두고 아빠의 사업이 잘못되어 재개발구역의 연립 지하방에서 살게 된다. 해진이에겐 같은반 아역배우 나라와 어릴 때 같이 오디션을 봤던 기억도 있다. 이런 것들이 아이들에겐 '뻥'으로만 비춰졌고 생각없이 날아다니는 말들은 잔인했다. 모든 상황이 최악이 된 비참한 날, 해진이는 빗속을 뚫고 주머니 속 광고지에 있던 '모퉁이 하얀 까페'를 찾아갔다.
"이럴 땐 너만을 위한 특별 레시피가 필요해."
까페 언니는 이렇게 말했다. 이 책의 제목이 심쿵 레시피.(사실 심쿵이란 제목은 그닥 내맘엔 안든다;;;) 찾아온 아이들마다 추억을 찾고 힘을 내게 해주는 메뉴들이 이 책의 각별한 재미 중 하나다. 작가는 "함께 나누면 행복하고 마음의 아픔도 치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음식과 동화는 닮았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그래서 이 책의 까페 장면엔 꼭 맛있는 음식과 음료가 나오는데 그게 군침돌기도 하면서 독자에게도 따뜻함과 안도감을 준다. 까페는 보였다가 사라지는, 말하자면 판타지인데도.

까페 자체는 판타지지만, 그곳에서 무슨 마법이 일어나진 않는다. 까페를 나온 해진이는 울며 딸의 가방을 들고 나온 엄마를 만났고, 둘은 서로를 위로했고, 겹겹이 쌓였던 아이들의 오해는 아주 작은 실마리 하나로 풀려간다. 지하방의 냄새나는 수건 같던 해진이의 존재를 다시 빛나게 해준 건 해진이의 노래였다. 상상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도 그토록 노래를 잘 부르고 싶어하는 건데, 타고나지 못한데다 딱히 노력하는 것도 없으니 바랄 일이 아니기도 하다. 하여간, 해진이는 다시 빛을 찾았다. 집안형편의 반전은 없지만, 달라진 존재. 해진이는 그후 다른 아이들의 이야기에서도 중요한 조연으로 나온다.

두번째 이야기 [됐고 대마왕의 대굴욕]의 동권이는 해진이를 놀리는데 앞장섰을 뿐 아니라 발레를 하는 남학생 선유를 괴롭히다 다치게까지 하는, 표면적으로 객관적으로 못된 놈이다. 솔직히 난 이런 아이가 싫다. 심술, 무매너. 민폐. 이런 아이의 내면도 보여주는 게 문학의 매력. 심술이 꽃을 피우다 결국 선유를 다치게 한 상황에서 벼랑끝에 몰린 동권이는 까페를 찾게 된다. 까페누나는 동권이를 위한 레시피로 매직슬러시와 피자를 가져다 주었다. 동권이가 제일 좋아하는 피자. 그 맛은 동권이를 유치원시절 추억으로 이끌었다. 거기에 선유가 있었다.

까페를 나온 동권이는 가장 먼저 가야할 곳이 어딘지를 알았다. 선유에게 사과하고 속얘기를 하고 선유만 알고있는 자신의 약점으로 놀림을 당하면서도 마음이 편안했다. 둘은 함께 웃는다. 다행이다. 하지만 열쇠는 선유의 용서에 있었다는 걸 잊으면 안된다. 이녀석아. 넌 더 배워야 된다. 그러길 빈다.

세번째 이야기 [마음 속 새 한 마리]에선 선유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개인적으로 등장인물 중 선유에게 가장 마음이 끌렸다. 선유는 발레를 배우는 남학생이다. 그건 동권이에겐 놀림감이고 아빠에겐 못마땅함이었다. "남자가 무슨..." 더구나 선유는 특별히 천재적 자질을 타고난 것도 아니었다. 발전은 느렸고 아빠의 매의 눈에 질린 선유는 무대에서 실수하고 무대 공포증까지 생겼다. 이런 상황에 너무나 감정이입이 되었다. 특별난 재능 없고 소심하기까지 한 나... 하지만 선유는 멋있었다. 물개박수를 보내는 나의 편애를 보라.ㅎㅎ 솔직히 나는 마음으로는 편애한다. 어떻게 선유랑 동권이를 똑같이 좋아할 수 있냐고. 표 안내려고 조심하고 과정에 불공정이 있지 않도록 조심할뿐. 남의 마음을 사는 건 본인의 처신이고 책임이다. 고학년쯤 되었으면 말이다. 징징거리지 말고 자신의 모습을 돌아볼 것. 멋있을 기회는 있으며 누군가의 눈은 그걸 꼭 보아준다. 나도 그런 눈을 가지려고 애쓰는 사람이고.

이 이야기에서 직업적으로 주목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었다. 선유의 부상과 '학폭위'에 관련된 부분이었다. 솔직히 이정도 사안은 학폭위가 열린다 해도 담임으로서 전혀 말릴 수가 없는 상황이다.(사실 경중에 관계없이 어떤 상황에서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 팔을 다친 그날, 아빠는 다짜고짜 만년필과 수첩을 꺼내들더니 이렇게 말했다.
"김선유. 지금부터 친구들하고 있었던 일을 하나도 빼놓지 말고 자세히 얘기해."
아빠는 회의록을 작성하듯 내 얘기를 하나도 빠짐없이 적어 내려갔다. 중간중간 동권이가 어떤 성격의 아이이고, 언제부터 알고 지냈는지 물었다. 내 얘기가 끝나자 아빠는 수첩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내일 당장 병원에 가서 입원해." (99쪽)

엄마의 만류와 두 아이의 자체적 해결(사과와 용서, 다시 단짝됨)로 결국 학폭위까지 가지는 않았다. 이 대목을 보며 학폭법을 다시 생각한다. 위에 적은 아빠의 해법대로 했다면 아이들은 무엇을 배웠을까? 회복의 기회는 있었을까? 그러나 동권이가 후회와 반성을 할 줄 모르는 아이였다면?(모퉁이 까페에 다녀오지 않았다면) 이와같이 적절한 지점은 참으로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모든 과정에 교육적 고민이 들어가야 한다는 것. 그걸 가로막는 여러가지가 있다. 말하자면 길지만, 개선과 고민이 필요하다. 작가의 의도는 잘 모르겠지만 이런 내용이 나온 것이 현장교사로서는 고마웠다.

마지막 네번째 이야기 [확 삐뚤어지고 싶은 날]은 아역배우 나라의 이야기다. 빛이 있는 곳에 그림자가 있다고,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는 나라의 처지가 그리 좋기만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 매니저 역할을 하는 엄마의 속박에 나라는 터질듯한 압박을 받는다. 친구들도 나라를 동경은 할지언정 좋아하는 건 아니었다. 확 삐뚤어지고 싶은 날, 나라도 그 광고지를 발견한다. 모퉁이 까페로 가는.... 나라 이야기는 짧았다. 거기서 끝이었다. 좋게 봐서 그런지 그것도 절묘하게 느껴졌다.^^ 하나는 열린 결말로 남겨두는 게 좋지. 상상하기도 이야기 나누기도 좋으니까.

전체 이야기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이야기가 있다. 그게 내가 가장 문제적 인물로 생각하는 선유 아빠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는 게 아이러니.^^ 좋은 말은 하기 쉽지만 그걸 자신과 자기 자식한테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진리를 보여준다. 선유아빠가 일일교사로 왔을 때 했다는 말의 내용은 이런 것이다.

- 나비가 고치를 벗어나기 위해 애쓰는 걸 지켜보던 한 아이가 있었어요. 아이는 손가락으로 아주 조금 고치를 벌려 주었죠. 그 뒤에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요?
나비는 날갯짓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맴맴 돌다가 죽어버렸어요. 날개에 힘이 없어서 날지 못했던 거예요. 나비는 딱딱한 고치를 뚫고 나오면서 날개에 힘이 생기거든요. 그런데 아이가 도와준 나비는 날개 힘이 부족해서 혼자 날아갈 수가 없었어요. (125~126쪽)


부모와 교사가 갖출 덕목을 '애타는 인내심'으로 표현한 어떤 선생님의 말씀이 기억난다. 고치를 빠져나오려 몸부림치는 모습을 그저 지켜보는 건 얼마나 안타까운가.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격려와 응원 뿐임을 다시 기억한다. 아이들, 그중에서도 이 책을 함께 읽을 독자들을 응원하며 그들의 목소리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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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아의 장풍
최영희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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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덜트소설, 그중에서도 SF에 매진하시는 최영희 작가님의 신작이다. 난 '인간만골라골라풀'이라는 중학년동화를 읽고 이 작가님을 알게됐지만... 이 작품을 읽으니 청소년기 아이들의 입맛에 맞을듯한 툭 던지듯 쿨한 대화와 문장들이 재미있다.

동화나 소설을 읽으며 나는 작가의 입장을 생각해보는 편인데 주로 이르는 결론은 참 어려웠겠다, 대단하시다 등의 감탄이다. 간혹은 상당히 쉽게 그냥 관습적으로 엮은 플롯일 거 같은 느낌을 주는 작품도 있지만 그런 작품은 드물다.^^;;; 특히 SF를 쓴다는 것은, 읽는거야 쉽지만 현대과학의 토대에서 미래를 상상하고 (그 상상이 황당무계할 수 있음. 이 책처럼) 그것에 나름의 논리를 세워 독자로 하여금 실소 대신 다음장을 넘기게 하는 힘, 그것을 갖춘다는 것은 보통 내공이 아닐 거라 짐작한다. 이 말에 반대하시는 분은 본인이 직접 써보시고 그게 얼마나 웃긴지 직접 읽어보시면 알 것 같다. 나는 알고 있으니 굳이 그러지 않겠다.ㅎㅎ

이 책에서 작가가 보여주는 세계관은 나로서는 썩 공감가지 않았지만 '오 이런 상상도~' 정도의 느낌은 주었다. 내가 공감했던 건 작가의 상상보다도 그 안에 넣어놓은 현실인식이었다. 현아의 외로움에 대한. 나아가 인간의 외로움에 대한.

우주 어딘가에 절대자(설계자) 집단이 있고 지구는 그들이 조종하는 시뮬레이션 공간이라고 작가는 설정했다. 그런데 그 절대자 집단도 절대자로 보이지는 않는다는 게 이 책의 웃음코드이자 매력인 것인가... 청소년 설계자들의 과제이행 중 하나의 실수로 설계자의 능력과 과거 인간(최배달이라는 무도인)의 백업 데이터가 한 인간에게 흘러들어가게 되었다. 그게 바로 17세 여고생 강현아다. 현아가 가지게 된 설계자의 능력이란 '락싸멘툼'(팽창)이다. 말하자면 장풍을 쏘게 되었다는 것이다. 절대자 집단으로선 절대자들만 가질 수 있는 에너지 활용능력을 가진 피조물을 그대로 두고 볼 수가 없는 일. 하지만 그들도 나름의 윤리가 있는 바, 시뮬레이션 세상에 개입하여 '존재값을 없애는' 일을 함부로 할 수는 없다. 하여 청소년 절대자 한 명을 지구로 파견한다. 그는 현아네 반에 '손미카'라는 전학생으로 등장한다. 그에게 주어진 일은 밀착 감시, 그리고 위험하다는 판단이 들 시 지체없이 현아를 제거하는(존재값을 없애는) 일이다. 그들에게 현아는 이름 대신 오류X로 불린다.

청소년 절대자 손미카를 볼작시면, 인간을 초월하는 몇가지의 능력을 가졌을 뿐 딱히 다를 바가 없어보인다. 절대자 세계에서도 청소년들은 예측불가하고 얼빵한 것인가. 이야기의 깨알재미는 거기서 비롯된다. 어쩌면 감동도 그러하다. 현아를 밀착 감시할수록 미카는 그녀를 이해한다.

"미카는 자신을 이 세계로 내려보낸 어른들에게 욕을 퍼붓고 싶었다. 그들 중 누구도 이 세계의 변수에 대해 충고해 주지 않았다. 눈앞의 참사를 지켜볼 수만은 없었던 인간의 입장에 대해서 알려준 이도 없었다. 설계자들은 관찰 모니터상의 데이터들만 노려보고 있을 뿐, 이 세계를 속속들이 알지는 못했다. 이곳은 데이터로만 가늠할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52쪽)

감시자이자 실행자의 임무를 띠고 세상에 온, 지구인의 눈에는 전학생인 미카가 현아 주변을 맴돌며 겪는 에피소드들이 이 책의 중반부이며 청소년소설 특유의 쿨내 진동하는 재미를 주는 부분이다. 난 사실 청소년들을 대변할수도, 그들을 웃길 재주도 없다. 그런 면에서 작가님에게 또한번 감탄했다. 웃긴 문장이 많았는데 내 입장에서 웃겼던 문장을 하나 골라 적자면, 현아에게서 최배달이 발현되어 태권도장에서 수련생을 한 수 가르치는 장면이다.
"상대가 궁금해하지 않는 걸 굳이 가르쳐 주기, 자기가 원하는 답이 나올 때까지 상대를 몰아가기, 그래 놓고 결국 자기 입으로 정답 말하기. 수련생들은 무도인의 가공할 꼰대력에 입이 딱 벌어졌다." (99쪽)

후반부에 이르러 책은 웃기기를 멈추고 독자들에게 연민과 안타까움, 긴장감 등을 몰아준다. 현아가 어떤 아이였던가. 초반에 현아는 아이돌 그룹의 해체설에 세상이 무너진 광팬으로 등장했다. 가만보면 그 철저한 팬심은 텅 비어버린 그의 세상을 채우는 충전재 같은 것이었다. 캠퍼스 커플로 무지 사랑해서 결혼했던 부모님은 세월과 함께 사랑이 변하여 이혼을 했고, 아빠는 재혼해서 외국으로, 엄마는 남친에게로 떠나고 현아가 DMZ라고 표현한 다세대 주택에는 현아 혼자 살고 있다. 부모가 미성년자 딸을 홀로 두고 제 살 길을 찾아 떠날 수 있는지 나라면 그럴 수 없을거 같지만 크게 잘못된 거라고 정죄하고 싶지는 않다. 인생의 빈 공간을 팬심으로 채우며 그 대상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려고 자신을 관리하는 현아가 놀라울 뿐이다. 그런 청소년이 있을까? 잘 모르겠다. 엎치락뒤치락 우여곡절 끝에 가까워져버린 미카에게 현아는 이런 속마음을 얘기한다.

"정확히 언제쯤인지는 기억 안 나는데 엄마 아빠가 나를 원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어. 그래도 엄마 아빠는 날 낳고 키웠잖아. 그래서..... 그립다거나 원망스럽다거나 하는 맘은 별로 없어. 그냥 두 사람한테 지금까지 신세지고 사는 느낌이야." (128쪽)

어쩌면 좋은가. 마카는 임무를 이행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계속되는 독촉 끝에 절대자 세계는 미카의 복귀 명령을 내린다. 임무는 다른 절대자에게 위임되고, 그건 현아의 존재값이 지워질 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 며칠 동안에 일어나는 숨가쁜 일들, 스펙터클한 활극(^^), 그리고 반전들이 이 책의 후반부를 차지한다. (활극 편은 다소 황당하다는 느낌도 솔직히 없진 않았다.)

다 읽고 내 가슴에 가라앉은 하나의 이미지는 '달'이다. 작가도 이것을 노린 것 같지만.
달.... 어린 현아가 등장하는 장면. 딸에게 밥을 먹이지만 눈은 논문에 가있는 엄마 대신 거기에 있었던 달. 밥을 먹다가도 몇번씩이나 존재를 확인했던 달.
개인적으로는 이것만 다루었어도 충분하지 않았을까 싶다. 인류의 문명이나 인간의 가치까지 다루려면 작품의 스케일을 더 키웠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17살 현아의 어깨에 외로움 말고 더한 것을 지운다면 너무 심한거 아닐까.

한편, 이 책에서 현아의 락싸멘툼을 쓰게 만든 못되고 한심한 어른들의 모습에 난 불편하고 많이 슬펐다. 학생의 인권을 무시하는 교사, 상식과 논리를 물말아먹은 광기어린 종교집단의 모습 등.... 문학이야 현실을 반영하는 매개체인 바, 그런 이들이 존재하니 작품에 등장했겠지만....ㅠㅠ 아이들이 보고 배울 수 있는, 아니 이게 너무 큰 꿈이라면 때로 기대고 대화를 요청할 수 있는, 상식적이고 양심적인 어른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홀로 외로운 개인들이 모여 외롭지 않은 사회를 만들었으면 한다. 어차피 외로움이 인간의 숙명이라면 그걸 기본값으로 잡고 말이다. 말이 좀 안되는 것 같지만 이게 내가 원하는 건강한 지구의 모습이다. 나라면 그러지 않겠지만 현아네 부모 같은 이들이 있어도 아이들이 병들지 않을 수 있는. 어렵겠지....

이 책에 멜로를 좀 더 강화하면 드라마의 원작이 되는 것도 가능할 것 같다. 이세계, 저세계, 체인지(빙의) 등은 인기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모티프들이니까. 최근 2년간(3년인가...) 드라마를 끊어서 내 감을 믿을수는 없지만 그래도 강추해본다. 음... 아마도 현아와 미카의 캐스팅이 관건일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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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아의 숲 큰숲동화 14
유승희 지음, 윤봉선 그림 / 뜨인돌어린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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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이 나오면 꼭 챙겨보는 유승희 작가님의 책이라서 읽었는데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느낌이 든다. 세상에 참 안타까운 일이 많고 이 책의 세아 모녀 관계도 그러하지만 이토록 무섭고 기괴하게 그려내다니. 잘못된 부모노릇의 비극을 극대화하여 나타냈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모른다. 내가 모르는 곳에 이 책보다 더 큰 비극이 있는지도.ㅠ

유승희 님의 동화에선 아이가 화자나 주인공이 아닌 경우를 많이 본다. 이 책에서도 화자는 교사지망생(임용고시 준비생) 민희 씨. 초등임용생이면 후배인지라.... 동질감 비슷한 게 느껴졌다. 어려운 가정형편에 잇따른 임용실패로 엄마와의 관계가 껄끄러운 민희 씨는 구인광고를 보다가 눈이 번쩍 뜨였다. 담양 무릉리라는 마을에서 한달 입주 가정교사를 구한다는 내용이었다. 보수가 후하다는 단서와 함께.

홀린 듯 그곳을 찾아간 민희 씨는 심상치 않은 일들을 마주하지만 "일단 가보자" 식의 마음으로 숲 속의 저택에 도착하고, 세아 모녀를 만나고 세아 엄마와 '계약'을 한다. '세아가 검정고시에 붙을 때까지 지도해준다'는 계약. 세아는 아주 똑똑했고, 검정고시란 그닥 어려운 시험이 아니기 때문에 계약은 아주 무난해 보인다. 하지만 이 일은 저택에 걸린 '에셔의 상대성' 그림처럼 끝도 시작도 출구도 찾을 수 없는 일이었다. 화가 출신인 작가가 배경으로 넣은 이 그림은 의미심장할 것이라 짐작해본다. 우리가 많이 보던 그 계단 그림 말이다. 올라가도 올라가도 꼭대기가 아니어서 끝없이 반복되던 그 계단.....

그렇다. 민희 씨는 계약을 함과 동시에 빠져나올 수 없는 그 '세계'에 빠져버린 것이었다. '그 시점'에서 멈춰버린 세아와 세아 엄마의 세계에. 여전히 딴 곳을 보고 딴 것을 갈망하는 그들의 세계에. 알면서도 모른척 돌아가는 그들의 세계에.

세아 엄마는 다시 '이쪽' 세계로 돌아올 수 없음을 알면서도 세아의 학업을 위해 가정교사를 고용하며, 올 수 없는 세아 아빠를 위해 매일 밤 파티를 준비한다. 세아는 엄마가 원하는 것을 하는 '시늉'만을 하면서 마음 속 깊은 곳으로는 누군가가 옆에 있어주기를,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따뜻한 엄마와 때로는 토닥이면서도 자신이 원하는 걸 말할 수 있기를.... 기다린다. '그 시점'에 멈춘 이 상황에도 그들은 그러하다.

'그 시점'이란.... 차마 말하고 싶지 않다. 책 속에서도 명확히 표현해놓지는 않았다. 물론 충분히 짐작 가능하지만....ㅠㅠ 이 부분은 작년 화제 드라마였던 '스카이 캐슬' 보다 괴기스러웠다. 동화라는 장르로서 본다면 말이다. 그래서 민희 씨의 계약은 결코 이뤄질 수 없는 것이었고 에셔의 계단처럼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는 것이었다. 이 사실을 깨달은 민희 씨는 몸부림친다.

이 세계의 균열은 연락 안되는 딸을 찾아 마을까지 찾아온 민희 씨 엄마로부터 시작된다. 늘 투닥거리던 모녀. 구박에 가까운 잔소리를 퍼붓던 엄마. 아버지가 사고로 일찍 죽은 후, 먹고 살기도 힘들어 어린 민희에게 너무 많은 것을 맡겼던 엄마. 지금도 무뚝뚝한 엄마. 하지만 딸의 실종 앞에서 물불 안 가리는 엄마의 모습은 세아의 마음을 흔든다. 세아의 결단은 이 '세계'에 균열을 내고 마침내 세계는 무너져 덮여버린다. 그 와중에 오간 말들.
"엄마도 네가 행복하길 바라. 네가 다 자라면 엄마에게 고마워할걸. 다 너를 위한 일이야."
"다 자라서가 아니라 지금 행복해지고 싶다고!"
"널 위해 뭐든 다 해 줬는데....?"
"엄마는 내가 엄마를 사랑했는지도 모를 거야.... 안녕..."

'세계'를 건너와 엄마에게 달려가는 민희 씨의 모습은 어린아이와 다를 바 없었다. 대비되는 세아 모녀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을 섬뜩하게 할 것이다. 극단적인 모습이긴 했지만 우리 안에 그 모습이 없다고 단언할 사람 있을까?
자식 키우는 것의 엄중함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자식을 수단으로 삼는, 심지어 학대하는 부모도 없는 것보다는 나을까? 잘못된 부모됨의 비극은 어디까지일까?

어른이 봐야할 동화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더 많이 보게 될 텐데, 아무쪼록 아이들이 민희 씨 엄마를 자신의 엄마로 느끼길, 그래서 불현듯 깨달은 듯이 엄마에게 달려가 한번 품에 안겨 보길 바란다. 자신이 세아라고 느끼는 아이가 있다면 부디 용기를 내 보기를.... 그 '세계'에 갇혀 버리기 전에. 부디....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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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 거라면 자다가도 벌떡 신나는 책읽기 53
조지영 지음, 이희은 그림 / 창비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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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입에 짝짝 붙는 찰진 동화를 만났다. 책은 어제도 오늘도 쏟아져 나오는데 이상하게 한동안 슬럼프처럼 스파크가 안 일어날 때가 있다. 오늘 이 책을 읽음으로 모처럼 작고 예쁜 불꽃 하나가 튀었다. 좋은 징조다.ㅎㅎ

세 편의 연작 단편이 담긴 동화집이다. 주인공들은 금빛초등학교 1학년 차돌이네반 아이들이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
학교에 '똥 사건'이 일어났다. 1학년 화장실 바닥에 탐스런 똥무더기. 법석 떨 기회만 호시탐탐 노리는 아이들이 이 호재를 놓칠소냐. 소리지르고 몰려다니고 아이구 생각만 해도 골아프다. 범인은 잡히지 않고 점점 미궁에 빠져가는 사건 때문에 교감 선생님은 화가 머리 끝까지 나는데... 결국 똥무더기의 주인공은 밝혀질 것인가?
똥이야기 중에 가장 강력한 송언 선생님의 <마법사 똥맨>과 견주어도 될 만큼 강력한 똥펀치를 날린다. 예측이 어느정도 가능하긴 하지만 반전도 유쾌하다.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할지 눈에 선하네.ㅎㅎ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두번째 이야기는 참 잘 먹는 송이가 주인공이다. 송이네 엄마 아빠는 나와 비슷한 점이 많다. 보고 있자니 공감도 가면서 좀 찔린다.
"엄마는 많이 바라지도 않아. 우리 송이가 그냥 다른 친구들 하는 만큼만 하면 좋겠어. 너무 잘할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너무 못하지는 말고. 그래야 친구들이 싫어하지 않지."
안전빵, 무난한 인생을 추구하는 나와 '튀지 말고 중간만 가라'하는 이 부모는 본질적으로 같다. 사실 송이 정도면 무난한 건데, 유난히 좋은 식성을 걱정한 부모는 "급식은 꼭 한번만 먹어. 대신 집에 와서 간식 마음껏 먹기."라고 약속을 한다. 하지만 인생은 마음먹은대로 되기 힘든 법. 송이는 어느새 친구들 앞에서 '잘 먹는 아이'가 되어있고 공개수업날 엄마 아빠는 신나고 행복한 송이의 모습을 바라본다. 평범하기는 커녕 튀는 딸의 모습을.
그렇다고 평범이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강요된 평범, 조장된 튐이 문제인 것이지. 본인의 기질대로 행복하게 살도록 격려해 주는 게 부모의 역할이 아닐까 싶다.

[산 넘고 물 건너]
보통 단편집의 제목은 단편들 중에서 대표작 하나를 골라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책에는 표제작이 없다. 하지만 굳이 뽑자면 이 작품이 표제작이라 할 만하다. '노는 거라면 자다가도 벌떡'이라는 표제와 가장 연관성이 많은 작품이다. 그동안 조연으로 나오던 차돌이가 전면에 등장한다. (난 개인적으로 차돌이란 이름의 느낌이 참 좋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는 교사로서 뜨끔한다. 작가도 초등학교 교사시라고 한다. 같이 느끼는 미안함일 것이다. 현실적인 안전의 문제와 아이들의 욕구 사이의 괴리.

차돌이는 엄마 출근시간 때문에 일찍 등교하게 됐다. 그만큼 놀 줄 알고 신이 났는데 웬걸, '학교보안관' 아저씨에게 잡혀 도서실로 안내되었다. (모든 학교가 비슷하다. 정식 등교시간 이전에는 도서실에서 '아침돌봄'이 진행된다. 물론 수요가 있으니 생겨난 것) 차돌이는 왜 학교에서 맘껏 뛰놀 수 없는지 그것이 의아하다. 쉬는 시간에 찔끔 노는 것 정도로는 절대 직성이 풀리지 않는 것이다.

어느날 차돌이는 지각이 잦은 유리의 비밀을 알아냈다. 학교 옆 동네 놀이터에서 놀다 오는 것이다. 오잉, 이런 신세계가 있었다니! 그러나 그것도 학교와 집에 알려져 좌절... 그러던 어느날 등교길에 만난 삼총사는 즉흥적으로 산을 향하고, 그 아이들을 따라간 보안관, 교감, 담임선생님은....

"금빛 초등학교 운동장은 아이들 노는 소리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조용할 날이 없었대."로 끝나는 해피엔딩이다. 동화는 해피엔딩이지만 현실의 문제는 물론 여전히 남아있다. 이 책을 읽으시고 부모님들이 "맞아! 학교에서 아이들을 놀게 해줘야지!"라고 하시고 방과 후 시간에 학원 뺑뺑이를 돌리신다면 앞뒤가 안맞는다고 생각한다. 우리들이 어릴 때 어떻게 놀았는지를 기억해본다. 학교 끝나면 누구네 집에선가 모여서 숙제를 후다닥 마치고는 책가방을 팽개쳐둔 채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놀았었지. 동네 뒷산으로 언니, 오빠들이 동생들 손 붙잡아 주며 함께 가서 놀다 왔었지. '놀이'의 책임은 어른들 모두가, 가장 크게는 부모가 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원 하나씩만 줄여도 지금처럼 놀이터에 아이들 씨가 마르지는 않을 텐데.

그러나 나는 이 동화가 말해주는 아이들의 마음만은 늘 기억하려고 한다. 뛰어놀고 싶은 아이들의 마음. 놀면서 자라나는 아이들의 마음. 학교라는 짜여진 시간, 공간, 커리큘럼 안에서도 최대한 아이들과 콧바람을 쐬고 뛰어놀기를 추구하려 한다. 운신의 폭이 좁은 나는 아마 파격적이진 못할 것이다. 아이들이 더 놀려면 사회 전체가 바뀌어야 한다.

뭐가 그리 할게 많은지 책읽어주기가 뜸했던 요즘, 이 책으로 다시 문을 열어야겠다. 아이들의 이야기도 들어볼 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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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너랑 우리랑 - 건강하고 행복한 교실을 만드는 관계의 지혜
박광철 외 지음 / 교육과실천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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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일단 저자들의 이름부터 반가웠다. 지금은 SNS가 대세지만 얼마전까진 인터넷 사이트에서 많은 소통이 있었다. 초등교사라면 누구나 아는 '인디스쿨'이 있다. 막 육아에서 벗어나 어딘가 새로운 것을 보고 뭔가 실력을 쌓을 필요를 느끼던 내게 인디스쿨은 대단한 곳이었다. 오래 고민하고 만든 자료들을 막 댓가없이 퍼주고, 주말이면 수시로 '번개연수'들이 열리고 늦은 밤까지 눈이 반짝이는 글과 댓글들이 올라왔다.

저자들은 그당시 인디스쿨의 샛별들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어렸지만 그당시엔 연예인보다 더 멋진 선구자들이었다. 그들보다 고경력인 나도 그땐 30대였는데... 방학때 열리는 숙박연수에 수줍게 참여했을 때, 그때 날 반갑게 맞아준 샘(저자중 한분)은 노랑머리의 청년이었지.ㅎㅎ 그들이 이제 중년이 되었고, 요즘 젊은샘들 틈에는 감히 못끼는 나는 그때의 추억을 마지막으로 소환하며 이 책을 읽는다. 이제 아이돌은 아닌 그샘들은 지금도 그때의 열정을 갖고 있을까. 열정은 깊이 품고 더 원숙해진 샘들의 목소리가 내내 들리는 듯했다.

책을 읽고 시간이 지나면 기억은 희미해진다. 적용과 실천만이 무언가를 남긴다. 읽으며 실천하리라 마음먹은 것들을 중심으로 적어본다.

[1장 관계를 맺기 위한 준비]
교실환경에 대한 내용이 많은데 안정된 환경을 위해서 청결하고 정돈된 교실을 처음부터 만들고 학생들이 그 환경을 유지하게 할 것을 조언하고 있다. 이건 진짜 안되는 사람은 죽어도 안될거 같다.(몇명 떠오름ㅎㅎ) 나는 그냥 중간은 가는데, 조금 더 노력해야 할 것 같다. 능력만 된다면 집이든 교실이든 깨끗한 곳에서 더 행복하다. 난 교실보다 집을 못치우고 사는데, 집이 잘 치워져 있다면 행복할거 같다. 교실도 마찬가지 아닐까. 2월 준비기간이 엄청 빡세긴 하지만 더 열심히 준비하고 아이들에게도 교실 공간을 아끼고 정리하도록 안내해야 할 것 같다. 잔소리만으로는 안되고 의미있는 역할분담 등 학급시스템이 잘 정비되어야 하며 무엇보다 노동의 가치와 책임감을 가르쳐야 한다.(노동이라니 거창해 보이는데 교사가 관리하는 교실에서 아이들이 하는 청소란 아주 기본적인 것들이다)

[2장 관계의 시작]
따말카드 활동이 맘에 든다. 이런저런 카드들을 구입만 하고 사용 안한 것도 많은데 이 활동이 정말 맘에 든다. 근데 카드 문구를 내맘에 들게 바꿀 수도 있으면 좋겠는데 그게 어려울 것 같다. 문구는 그때그때 바꿀수 있도록 제작된 것이 있다면 좋겠다. 파일로 되어있어 입력해서 출력할 수 있다거나.... 안될 말이겠지?^^;;;;

[3장 나와 너를 이해하고 협력하기]
스토리텔링을 가미한 협력 운동회가 대박이다. 작은 학교에서 하신 것이지만... 큰 학교에서도 학년 단위 정도로 가능하지 않을까. 가상의 상황에 대한 몰입도가 아이들은 대단하니까 운영만 한다면 반응은 폭발적일 것 같다. 스토리와 프로그램 창작 등 기획과 실행의 어려움이 문제다.^^;;; 또, 각장마다 관련놀이들이 소개되어 있는데 이 장에선 미로탈출 놀이가 맘에 든다.

[4장 소통과 문제 해결]
다툼을 해결하는 대화의 방법이 나와있다. 많이 사용하는 '행감바' '인사약'과 유사하다. 일단 '쿨하게 봐주기'라는 선택지가 있다는 점에서 미소가 지어졌다. 아이들은 웬만하면 봐줄줄도 좀 알아야 한다. 매사에 사과 받겠다고 달려들면 참 피곤해진다. 그러나 힘의 우위에 밀려 참는 경우도 있으니 불편함을 표현하는 절차는 꼭 있어야 한다. 여기서는 '잘지내요' '미상표'로 작명이 되어있다. 작명이야 편한 걸로 하면 된다. 여기서는 사안의 경중에 따라 교사가 이끌어가는 해결의 방법까지 상세히 서술되어 있어 도움이 된다. 나아가서 함께하는 고민해결 절차까지 나와있다. 진지하게 진행된다면 아이들이 많이 성장할 것 같다.

[관계의 매듭짓기]
학급의 다양한 이벤트 총집합이다. 이제 중견교사가 된 저자들의 내공 + 여전한 열정을 엿볼 수 있는 장이라 하겠다.

위에 쓴 것들과 같이 '이건 기억했다가 해봐야지' 하는 것도 있었지만 '아 이건 난 못해' 싶은 것도 있었다. 아이들에게도 기질 차이가 있듯이 어른(교사)도 각자가 가진 기질이 있고 그에 따라서 쉽게 되는 일도, 여간해서는 안되는 것도 있다. 난 지나치게 친밀한 관계보다는 적당히 거리가 있는 관계를 좋아한다. 스킨십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이들의 '친밀한 관계'(친구간 정, 사제간 정)에 나는 저자들만큼 관심이 없다. 적대, 비난, 시기가 없는 관계 정도면 족하다. 원숭이처럼 엉키고 부비는 사이보다 호랑이처럼 독립적인 관계가 좋다. 존중만 있다면.
또 나의 성향은 사람(들)과 오래 함께 있는 걸 싫어한다. 같이 있는 시간에 최선을 다하되 그 시간이 지나면 미련없이 각자의 시간을 보내길 바란다. 이런 성격이라 나는 수업시간 외에 아이들과 더이상의 시간을 보내고 싶진 않다. 저자들이 아이들에게 선물로 주신 그 숱한 추억의 시간들, 학급야영, 방학이나 주말에 하는 이벤트, 방과후 특별시간(학급회식) 등등은 내겐 상상만해도 고통스러운 부담이다. 그런 부분들은 내겐 전혀 적용 불가능했다. 이 책을 읽으며 오직 한가지 그점이 아쉬웠다. 내가 부족한 교사라서 그렇지 뭐.^^ 하지만 기질 차이라고 위안하며 나도 내 기질 안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보겠다. 특별 이벤트가 아니어도 일상 중에 취할 수 있는 방법도 이 책에는 많다.

만남부터 헤어짐까지, 긴 여정의 관계 이야기를 담았기에 연중 참고할 만한 책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초반부터의 일관성이 중요하므로 학급을 세우는 시기에 탐독하면 좋을 것 같다. 아직도 나의 학급 시스템은 무엇인가 딱부러지게 말하기가 어렵다. 내년 준비시기에 다시 한 번 봐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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