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투 쳐 주는 아이 책 읽는 샤미 21
임지형 지음, 임미란 그림 / 이지북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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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화투놀이를 안 좋아한다. 화투에 딱히 선입견이 있어서가 아니라 카드로 하는 모든 놀이를 안 좋아한다. 보드게임도 싫어한다. 이유는 귀찮아서. 승부를 거는 모든 일이 피곤하다. 너무 져도 기분이 안좋고 (내가 멍청한가 싶어서) 이겨도 마음이 안 편하다. 무엇보다도 재미가 없다. 내가 쫌 문제라고는 생각한다. 무슨 재미로 사니?.....^^;;; 그냥 치는 사람들 옆에서 뒹굴면서 TV나 만화책을 보다가 간식 심부름이나 하고 개평이나 얻어먹으면 만족한다.ㅎㅎ

 

하지만 내가 화투치는 방법을 모르느냐 하면 천만의 말씀, 이미 초딩 때 고스돕을 마스터한 몸이시라고. 이유는 기나긴 겨울밤 엄마랑 아빠가 고스돕을 치시고 귤 한봉지 내기 같은 걸 하시면 우리 삼남매는 그 옆에서 판을 구경하다가 귤 심부름을 하기도 하고 귤을 까먹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조금 머리 커서는 그 판에 끼어들기도 했고. 화투를 금기시한 집들도 있었겠지만 우리집은 그런 금기는 없었다. 그래봤자 나는 화투를 즐기지 않는 사람으로 자라났다.ㅋㅋ

 

동화의 소재로 화투가 전면에 등장한 (심지어 제목이 화투) 동화가 있었을까? 표지에도 삽화에도 화투장들이 선명하게 뙇! 금기가 있는 집에서는 자녀에게 권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얼마든지 권할 것 같다. 재미있고 의미도 있었다. 소재의 확장면에서 아주 신선하다고 생각한다. 책 속의 할머니가 고스돕을 치며 하시는 전라도 사투리도 아주 귀에 착착 감긴다.

뭐라는 거여? 그것이 말이 돼? 안돼야. 얼른 못먹어도 고여!”

 

화투는 쳐도 쳐도 그렇게 재미있을까? 사실 규칙도 별게 아닌데 말이다. 하지만 그건 내가 맛을 못들여서 하는 말이겠지. 무겸이 할머니의 가장 친한 친구는 화투다. 매일 아침 화투점을 보고, 엄마랑 떨어지기 싫어 떼쓰던 무겸이를 화투장으로 달래 키우신 할머니. 덕분에 무겸이도 화투로 그림을, 숫자를 배우면서 자랐다. 하지만 사춘기가 온 지금은 할머니가 때로 창피하다. 노인정에서 화투를 치다 싸우거나, 촌스러운 복장을 하고 다니실 때 특히.

 

그런 할머니에게 유난히 짜증을 냈던 날, 할머니는 배아프다는 무겸이의 말에 약을 사러 달려가셨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가족의 시련이 시작되었다. 큰 수술을 했고 회복도 오래 걸렸다. 식당을 하는 엄마 아빠 대신 무겸이가 병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할머니는 섬망으로 치매와 같은 증상을 보이고, 그걸 지켜보는 가족들은 안타깝기만 하다. 그런 할머니를 위해 준비한 무겸이의 비장의 무기! 그게 뭔지 짐작 못할 독자는 없겠지?^^

 

작가님은 코로나 기간 동안 이 동화를 쓰셨다. 작가의 말에 보니 한 장의 사진이 이야기의 씨앗이 되었다고 한다. 나도 기억난다 그 사진. 격리병동에서 방호복 입은 간호사가 할머니와 화투를 쳐주는 모습. 그 화투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게 노름이거나 불건전한 놀이일 리는 없잖아? 어떤 마음인가에 따라 대상의 의미와 가치는 천차만별인 것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가 우울 증상으로 심상치 않을 때, 우리 삼남매도 고스돕 회동을 몇 번 했다. (그때도 나는 옆에 빠져서 뒹굴뒹굴 했지만^^;;;) 바닥에 여섯 장, 손에는 일곱 장. 이 익숙한 시작. 그리고 이야기의 마무리.

화투장 너머로 보이는 할머니의 눈빛은 아까보다 더 또렷했다. 드디어, 장마담이 돌아왔다.”

 

어떻게 보면 화투란 것은 참 대체불가인 것 같기도 하다. 나 어릴 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으니. 그 소재로 노인이 있는 가족의 이야기를 참 재미나게 풀어낸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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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쇠인간
테드 휴즈 지음, 크리스 몰드 그림, 조호근 옮김 / 시공주니어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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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이 책 혹시 애니메이션 <아이언 자이언트>의 원작인가? 하고 살펴보니 맞았다. '추억' 때문에 바로 장바구니에 넣었다. 그 추억이란 우리 애들 애기때... 넷플릭스도 아니고 DVD도 아니고 비디오 테이프를 보던 시절....ㅎㅎㅎ 아이들이 좋아해서 난 이 비디오를 구입했었고 교실에서도 가끔 활용했다. 비디오테이프를 재생할 기기들이 폐기되고 다른 인기 영화들이 많이 나오면서 잊혀진 영화가 되었는데... 이 책을 보고 추억을 소환했다. 엄마랑 단둘이 사는 소년 호거스는 귀엽고 정이 가는 캐릭터였다. 무쇠인간 또한 엉뚱한 매력을 발산하다가 마지막엔 눈물샘을 건드렸고, 고물상 주인이랑 경찰관 등 조연들의 캐릭터도 인상적이었는데.....

원작보다 영화를 먼저 봤으니, 어느 대목에서 차이가 있을까, 혹시 결말이 좀 다른걸까 생각하며 읽어나가는데, 엥......? 처음부터 달랐다. 중간까지도 공통점이 거의 없었다. 후반부엔 완전 처음 보는 등장인물이 나온다. 따라서 결말도 완전 달랐다. 아니 이걸 원작이라고 할 수 있는거야? 미지의 무쇠인간이라는 소재와 호거스라는 소년 이름만 겨우 같았다. 아니다. 주제가 같다고 볼 수 있겠다. 주요 소재와 주제의식만 가져가고, 서사는 애니메이션에 걸맞게 자유자재로 바꾼 거라 보면 되겠다. 아쉬운 점은, 비교에 치중해서 읽다가 작품 자체에 집중하지 못하고 아주 재미있게 읽지도 못했다는 점....;;;

무쇠인간이 출현했다. 이게 말하자면 로봇이니, 제작한 과학자들이 나오고 그 과정들이 나오고 해야 자연스러울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작가는 "아무도 모르지." 라는 말을 세 번 반복함으로 그의 출현을 미지의 일로 못박아 버렸다. 영화에서는 그런 생각을 못했는데, 책을 읽으니 이 존재는 어쩌면 상징일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어떤 상징일까? 그 답에 따라서 작품 해석이 다양해질 수 있겠다.

영화는 99년에 나왔는데, 원작은 자그마치 1968년에 쓰여졌다. 50년도 넘은 것이다. 영화해설에서 "냉전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라는 설명을 읽었기에 원작이 오래된 건 알고 있었다. 그 원작이 이렇게 또 새롭게 탄생하게 된 요소는 '그림'인가보다. 처음 책은 보지 못해서 모르겠고, 이번 책의 그림은 '크리스 몰드'라는 작가가 그렸다. 색과 질감으로 분위기를 탁월하게 표현하는 작가인 것 같다. 문자로 표현된 내용을 이미지로 구현하는 것은 작가의 감각에 따라 천차만별일 것이다. 김지은 평론가는 추천사에서 "고전의 정수를 찾아 이미지로 표현하는 일에 있어서 크리스 몰드는 누구보다도 예리하다."고 평해 놓았다.

무쇠인간에게 겁먹은 사람들은 그를 처치하려 한다. 그리고 처치에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구덩이로 유인하여 땅에 깊에 파묻음) 하지만 그는 결국 다시 나왔고, 이번에는 호거스의 중재로 사람들과 타협한다. 이때 고물상은 영화에서도 책에서도 중요한 장소가 된다.

'위험한' 존재는 무쇠인간으로 끝이 아니었다. 어느날부터 한 별이 눈에 띄게 커지는 것이 관측되었다. 그 별은 지구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 장면에서 " 아, 영화에서처럼 무쇠인간이 자신의 몸을 던져 지구를 구하나보다!" 했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별의 진행은 멈추었지만 거기에서 한 괴물이 지구를 향해 다가왔고, 드디어 도착했다.

이후 그 우주괴물과의 협상을 무쇠인간이 해 준것은 영화에서처럼 몸을 던져 지구를 구해준 것보다도 훨씬 다양하고 큰 의미를 남긴다.
그리고 우주괴물과의 이 대화. 할 말이 없어지게 만든다.
"우주가 완벽하게 평화로운 곳이라면서 너는 어쩌다 그렇게 탐욕스럽고 잔인한 생각을 하게 된 거지?"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어.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지구 위에서 울리는 다툼의 소리와 전쟁의 함성에 귀 기울이다 보니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든 거야. 너무 흥분돼서 나도 끼어들고 싶었어." (133쪽)

결국 우주괴물은 본연의 일을 하는 모습으로 돌아갔다.
"우리가 하는 일이라곤 우주에서 날아다니며 음악을 연주하는 것뿐이거든."
아, 나도 이런 존재이고픈데 인간세상은 그게 잘 안되는 곳이겠지.....ㅠㅠ

영화랑 너무 달라서, "엥 이 괴물은 또 뭐야?" 이런 느낌으로 책을 읽었는데, 다 읽고 생각해보니 고전의 요소를 잘 갖추었다고 생각된다. 영어가 된다면 원서를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저자가 시인이라 상당히 시적인 문장으로 이 책을 썼다고 하길래.... 그런데 번역가와 추천자들의 말에 살짝 석연치 않은 느낌이 감지되어 검색해보니 작가의 사생활은 꽤 복잡하고 순탄치 않았던 모양이다. 처음 알았네.... 작가와 작품이 일관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해도 작품에 집중하면 되겠지.

오랜만에 <아이언 자이언트>의 호거스 목소리를 들으면서 젊은엄마 시절 추억에 빠져보고 싶네. 그리고 이 책은 학급문고로. 눈 밝은 아이가 뽑아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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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앞에 뭐가 있는데? 북멘토 그림책 10
장잉민 지음, 마오위 그림, 류희정 옮김 / 북멘토(도서출판)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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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작가의 동화는 몇 권 읽었는데 그림책은 처음 보는 것 같다. 내게는 그림체도 새롭고 이야기도 재밌었다. 그림책 중에서는 판형이 아담한 편이고, 어른과 아이가 가까이에서 함께 머리를 맞대고 웃으면서 한 장씩 넘겨가기에 딱 적당해 보인다. 거기에 아주 고귀한 주제까지 담겨있다.

 

태풍이 막 지나간 뒤

첫 장 첫 줄의 문구가 아주 중요한 복선이다.

그리고는 동물들이 줄지어서 무언가를 미는 장면이 계속 나온다. 바다거북, 흰동가리, 파랑비늘돔, 개복치..... 다들 이유는 모른다. 앞에서 열심히 미니까 힘을 보태는 중이다.

 

육지동물들의 줄도 이어진다. 거북이, 영양, 얼룩말, 사자.... 도시에 있는 동물들도 줄을 이루었다. 고양이, , 토끼, .... 그 중 갈매기가 동물들의 궁금증을 해결하려고 날아올랐다. 한참을 날아 겨우 기나긴 줄의 맨 앞에 도착했다. 거기에는 무엇이(혹은 누가) 있었을까?

 

무엇이 있었든지 간에, 지구를 한바퀴 도는 그 줄의 마음은 같았다. 도와줘야 해! 힘을 합쳐야 해! 결국 귀한 생명을 살려낼 수 있었다. 그것이 일회성에서 그치지 않고 선순환되는 모습도 뒷면지에서 살짝 엿볼 수 있다. 이 그림책에서 미는 행위로 대표된 협력도움은 인간 세상에서 얼마나 고귀한 가치인가. 세상을 떠받치고 조금이라도 아름답게 유지하는 것들 아니던가.

- 어떤 때에 우리는 이렇게 미는사람들이 되어야 할까요?

- 지금이 바로 우리가 밀어야할 때가 아닐까요?

이런 이야기를 아이들과 할 수 있도록 실마리를 마련해 주는 아주 고마운 책이다.

 

복어의 가시가 생생하게 표현된 근경부터, 지구 전체가 한눈에 보이는 원경까지 표현도 다채롭고 재미있다. 초등학생들과 의미를 나누면서 읽기에도 좋지만 유아들도 아주 좋아하며 반복해서 읽을 것 같다. 아이들이 특히 좋아할 장면이 있는데, 그건 스포에 해당되니 여기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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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비누 인간 + 진화 인간 - 전2권 파란 이야기
방미진 지음, 조원희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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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기, 공포물을 즐겨 읽지 않는다. 그런 장르가 나쁘다는 게 아니라 개인적인 취향이 그렇다. 이 책도 좀 읽어보다가 아니면 덮어야지 했는데, 오오... 하면서 끝까지 읽다가 2권인 진화인간으로 바로 넘어갔다. 단순한 공포물이 아니었다. <비누인간>은 정체를 모르는 상태로 읽으니 무서웠는데 <진화인간>에서 이것저것 상황들이 밝혀지면서 보니 공포물과는 달랐다. 장르도 SF에 가까웠다. 외계인에 대한 새로운 상상.

 

<비누인간>에서 상남이라는 주인공 아이는 엄마, 엄마남친과 함께 새로운 마을로 이사한다. 전원주택들로 이루어진 마을이고 마을내 화장품공장의 근로자들이 주로 살고있다. 도시가 가까워도 이런저런 이유로 접근이 쉽지 않은, 고립된 느낌의 마을이라고 할까. 나중에 알고보니 이 고립성은 이야기의 아주 중요한 복선이었던 것......

 

뭔가 느낌이 좀 달랐던 그 사람들은, 우리와 같은 존재들이 아니었다. 그게 밝혀지는 과정이 조여드는 공포감을 준다. 미지로 인한 두려움은 실제보다 훨씬 과장된 공포감을 가져오기도 하는구나. 그리고 마침내 그 두려움은 최악의 파멸을 가져온다. 알지 못함, 두려움, 눈을 가림. 이 삼박자의 조합이 가져오는 파괴성. 그 뒤에는 판을 짜고 지켜보는 자들이 있다. 그게 더 무섭다.

 

이 작품에서는 서로 다른 존재를 이해하기도 전에 적대하고 파괴하는 인간의 오류에 대해서 말한다고 생각했다. 진짜 다르다. 많이 다르다. 우리가 그동안 생각해왔던 다양성보다 훨씬 극단적으로 다르다. 하지만 그것이 무조건적 파괴의 이유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난 이 작품을 이렇게 이해했고 첫 권만으로도 완결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2<진화인간>으로 넘어가보니, 훨씬 넓은 세계관이 존재했다. 단순히 마을, 그보다 더 넓혀서 국가 정도의 범위가 아니었다. 우주, 그것도 어디엔가 있는 외계생명체의 존재를 다루고 있었다. 그 존재의 속성에 대한 상상도 그동안 보지 못했던 새로운 것이었다.

 

1권에서 살아남은 최후 생존자가 그의 입장에서 미지의 곳에 갇혀서 누구를 어디까지 믿으며 살길을 도모해야 할지 탐색하는 과정이 긴장감을 불러온다. 그 존재가 자신의 정체성을 점차 알아가면서도 끝까지 버리지 못하는 인간성(?), 양심(?), 측은지심(?) 같은 것들이 독자들의 마음을 복잡하게 만든다. 그리고 2권의 끝은, 1권의 끝을 찾아가는 것 같아서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게 된다. 이 시리즈는 총 3권이고 3권 제목은 <도플인간>이며 올해 출간 예정이라고 한다. 작가의 말을 보니 이미 다 써놓으셨다고 하는데 일부러 시간차를 두시는 건가?^^ 어쨌든 그 책도 읽어보게 될 것 같다.

 

이 책은 내용을 상세히 쓰기 싫어서 요리조리 쓰다보니 두 권을 한꺼번에 썼는데도 평소보다 짧은 리뷰가 되었다.ㅎㅎ 마지막으로 덧붙임. 이 작가님의 책이 아주 많은데 나는 이 책과 분위기가 완전 다른, 공포라고는 1도 없는 <나 오늘부터 일기 쓸 거야>를 몇 년 전에 읽었고 그당시 2학년 아이들에게도 읽어주었다. 그 책은 귀여웠다. 다양한 느낌을 자유자재로 잘 표현하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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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펭귄이란 파란 이야기 9
류재향 지음, 김성라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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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재향 작가님 이름은 낯익은데 작품은 떠오르지 않았다. 검색해보니 내가 접한 책들은 이분이 번역하신 책들이었다. 그러니까 작가이자 번역가이신 것. <나의 개 보드리>, <우리집 식탁이 사라졌어요>가 내가 읽은 책들이다.

 

한동안 마음에 드는 단편집을 만나지 못하다가 완전 찐하게 만나고 말았다. 나는 딱 이정도의 온도를 좋아하는 것 같다. 너무 뜨거운 것은 부담스럽고, 동화가 서늘하면 마음이 안좋다. (그런 작품을 쓰지 말아야 한다는 뜻은 절대 아님. 개인 취향.) 봄날의 햇살 같은 온도. (아 이거 우영우에서 나왔던 대사였던가) 그런데 그 따뜻한 공기엔 외로움이 떠돈다.

 

동화를 통해 아이들을 보고, 그 아이들의 등을 쓸어주는 내 마음을 느끼다가 나는 궁금해진다. 이 책을 누구에게 권하고 싶은가? 나같은 마음을 느끼는 사람은 어른들일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일단 재미는 있을까...? 라는 걱정을 해보지만, 쓸데없는 걱정이다. 이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 아이가 느낀 것이 공감이든, 위로든, 나와 다른 친구들에 대한 이해든 그냥 소재와 이야기가 재미있어서든 말이다.

 

나는 귀가 예민해서인지 어쩐지는 몰라도, 시끄러운 인간을 아주 싫어한다. 어른이나 애나 똑같다. 적당히 눈치가 있어서 떠들 때는 떠들더라도 입 다물 순간을 분별하는 사람이면 괜찮다. 대화가 풍성해야 모임이 즐거우니까. 하지만 시종일관 고막에 고통을 주는 인간들은 정말. 너무. 싫다. 가만히 보면 나는 마음속으로 편애를 하고있는 것 같다. 이 책에 나오는 아이들처럼 조용한 아이들을. 별말 없고, 말 건네면 살짝 웃고, 눈길 안 주어도 한구석에서 꼬물꼬물 애쓰고 있는 아이들. 이런 아이들이 너무 예쁘고 뭐라도 해주고 싶다. 하지만 실제로는 반대다. 괴성을 지르는 아이들, 폭발하는 아이들에게 본능적으로 몸이 먼저 가게 되어있고 그 치다꺼리를 하다 문득 정신이 들면 그 조용한 아이들은 저 멀리로 밀려나 있다. 별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표정도 나쁘지 않으니 괜찮은가보다 하고 넘어가게 된다. 예뻐하는 마음과는 반대로, 눈길 손길 별로 주지 못한 채 이별을 맞이한다.

 

작가님이 이런 아이들을 포착하시고 마음으로 품어 주신 것에 고마움과 존경을 보내고 싶다.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해 조용히 두리번거리고 있는 아이들, 그래도 최대한 주변을 이해하려는 아이들, 남 탓보다는 자신이 어찌하든 해보려고 노력하는 아이들. 그 곁에 있어주려는 작가님의 마음을 어떤 아이들은 느끼지 않을까.

 

다섯 편의 단편이 들어있다. 첫 번째는 표제작인 우리에게 펭귄이란이다. 식탁의 풍경을 보니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 이모까지 있는 대가족인데 아빠는 없다. 엄마의 나이가 많이 젊은 걸로 봐서, 혼자 키우게 된 남매를 친정 식구들과 함께 돌보는 상황인 것 같다. 누구 하나 나쁜 사람은 없다. 하지만 아이의 마음결 하나하나를 섬세하게 들여다보기는 힘든 법이다. “펭귄을 만나러 남극에 가야겠다.”고 계획을 밝힌 남동생과 그 실행을 말없이 돕고 기다리는 누나. 이 가족에게 어떤 일이 생길까?

 

고양이를 안아보자를 읽고 뒷 작품들과 상관없이 무조건 별 다섯 개라고 마음속에서 결정을 내려 버렸다. 재혼 가정의 남매가 가장 아름답게 그려졌다. 영국인 아빠와 헤어진 누나. 엄마와 사별한 남동생. 그 사이에는 작은 길고양이가 있었다. 그 또래에 걸맞는 방황을 하면서도 동생과 고양이에게 손을 내밀어주는 누나에게 엄지척을 보내주고 싶다.

 

아람이의 편지에서는 이혼으로 헤어진 자매가 나온다. 아람이는 아빠랑 살고, 언니는 엄마가 데려갔다. 아이고, 못할 짓이다.... 엄마 집 주소를 알아내 언니에게 편지를 써보는 아람이. 우리집이 언니집이었는데 이제 언니집 주소가 따로 있다는 게 낯선 아람이. 그 편지를 우체통에 넣으러 가는 길에 함께 해주는 친구.

 

달팽이가 간다에서는 달팽이처럼 느린 아이 우주가 나온다. 꼼지락꼼지락과 한눈팔기는 나의 특성이기도 하다. 어떤 계정에서 내 닉네임이 달팽이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먹고 살아야하니 직장에는 적응했다. 아주 힘들게. 지금도 출근하는 모든 날이 힘들다. 겨우 참고 하는 것일 뿐. 그런 내가 우주를 보는 마음이 어떻겠어. 하지만 나는 나와 동류인 우주들을 많이 챙겨주고 이해해주지 못했어. 오히려 독촉하지 않았을까? 미안한 마음이 든다.ㅠㅠ

 

네모에게의 네모는 봄이가 키우는 거북이다. 정작 네모를 봄이에게 사준 엄마는 아무 관심도 없다. 엄마는 대학생 때 봄이를 낳았고 출산 후 다시 복학해서 승무원이 되었다. 봄이는 아빠네 집에서 양육하고 있고(주로 할머니가) 엄마는 자유롭게 비행하며 살고 있다. 아빠 또한 그때 대학생이었으니 이제 겨우 30대 초반? 그래도 자식이 생기면 좀 일찍 철이 들던데 이 아빠는 아직도 하루종일 게임을 하는 백수. 할머니만 속이 터진다. 그래서 봄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을 습관처럼 하신다. “너는 알아서 잘 자라야 해.”

 

그러네. 내가 좋아하는 아이들이 바로 알아서 잘 자라는아이들이었네. 왜냐면 날 힘들게 안 하니까. 하지만 진짜 저절로 자라는 아이들이 어디 있을까. 마음 둘 곳도 없는데 어떻게 알아서 자랄 수가 있을까. 내가 알아서 잘 자란다고 눈길을 덜 주었던 그 아이들은 마음 둘 곳이 있었을까. 부디 그랬기를 바란다.ㅠㅠ

 

그림에 대해 잘 몰라서 리뷰에 그림 이야기는 잘 안하는 편인데, 이번 책은 그림이 너무 좋았다는 말도 꼭 하고 싶다. 김성라 작가님의 작고 귀엽고 따뜻하며 사랑스럽고 살짝 외로운 느낌도 나는 그림이 내용과 너무 잘 어울렸고, 느낌을 더욱 풍부하게 살려 주었다. 글과 그림의 느낌이 이렇게 잘 맞도록 조합이 짜이기도 쉽지 않을 터인데, 딱 잘 만나신 것 같다.

 

작가의 말을 읽는데 작가님은 참 조심스러운 성품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책 속의 아이들 같은? 그래서 이렇게 다정한 이야기들을 쓰실 수 있었겠지만, 자신감 충전하셔서 더 왕성하게 쓰셔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 책이 나오면 난 꼭 챙겨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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