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여행 나무의말 그림책 7
이상은 지음, 오승민 그림 / 나무의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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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나온걸 보고 봐야지! 하고는 잊어버렸는데 동네도서관 신간코너에서 발견했다. 읽어보고 너무 좋아서 검색을 해보고 감탄의 한숨이 나왔다. 내가 모르는(몰랐던) 세계는 왜 이렇게 많을까. 이상은이라는 분이 아티스트인걸 나는 몰랐구나. 심지어 동시대인인데도.

그분과 나는 학번도 같다. 88년 대학 1학년일때 강변가요제에서 파란을 일으키며 데뷔했다. 그때 살았던 사람이면 안들어봤을 수가 없는 담다디. 이건 여담인데 88년은 서울올림픽의 해이기도 하지만 정말 걸출한 아티스트들을 배출한 해였다. 대학가요제에서는 전주만 들어도 가슴이 웅장해지는 신해철의 <그대에게>가 등장했다. 아 어느새 오래된 추억이다.

근데 나는 신해철에 비해서 이상은을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 '이상은=담다디' 공식 때문이었던 것 같다. 담다디는 썩 내맘에 드는 노래는 아니었고 겅중거리는 그이의 춤도 소비성이 높다고 생각했을 뿐 그닥 좋아하진 않았다. 나의 취향과는 반대로 그 노래는 엄청 히트를 쳤다. 하지만 가수에게 굴레를 씌우는 곡이기도 했던 것 같다. 이후 그의 음악 작업은 담다디를 지우는 작업이었을 수도.

그런데 나는 담다디 그 이후를 몰랐다는 게 오늘의 아쉬움이다. '언젠가는'을 좋은 노래로 기억하고 있는 정도. 거기에 오늘 그림책으로 '삶은 여행'이 추가되었고, 탈피에 가까운 그의 수많은 도전들과 함께 많은 명반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천천히 들어봐야겠다.

예술적 욕구는 있으나 표현기능을 갖고 있지 못한 나는 아티스트인 이상은 씨가 부럽다. 특히 싱어송라이터로서 가사를 잘 쓰는 사람들 보면 감탄한다. 요즘 가수로는 이승윤이나 이찬혁 같은... 이상은 님도 그런 부류였구나. 그림책의 본문으로 전혀 손색이 없는, 아니 넘치게 좋은 이런 가사를 쓸 수 있는 종합예술인.

그림작가 오승민 님에게도 감탄한다. 노래가사는 보통 구체적이지 않고 함축적이다. (아 지나치게 구체적인 가사도 물론 있긴 하지만^^) 그걸 그림으로 구체화해야 되는 작업이 쉬울 리 없다. 새로운 창작이되, 조건이 많이 따르는 어려운 창작일 것 같다. 이 책에선 그 창작이 아주 훌륭하게 이루어졌다. 그래서 글과 그림이 모두 아름다운 한 권의 그림책이 되었다.

'삶은 여행' 이라는 제목 속에 작가의 인생관이 다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기본적으로 개인의 삶이 독립적이고 자유로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삶은 계속되니까
수많은 풍경 속을 혼자 걸어가는 걸
두려워했을 뿐
하지만 이젠 알아
혼자 비바람 속을
걸어갈 수 있어야 했던 걸"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발걸음이 늘 혼자인 것은 아니다. 내 발로 디뎌야 하지만 내 옆에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기에
"용서해
그리고 감사해
시들었던 마음이 꽃피리"
"수많은 저 불빛에 하나가 되기 위해
걸어가는 사람들 바라봐"

라고 노래할 수 있는 것 같다.

삶의 많은 부분이 슬픔과 아픔이기에, 아픔을 노래한 가사들도 마음에 절절히 와닿는다.
"어제는
날아가버린 새를 그려
새장 속에 넣으며 울었지"
"눈물 잉크로 쓴 시
길을 잃은 멜로디"

이 대목에서 눈물이 후두둑 떨어지는 사람들도 많지 않았을까.

하지만 인생은 여행이기에, 떠날 때는 다 놓고 떠나는 것이다.
"삶은 여행이니까
언젠가 끝나니까"

작가소개에 작가가 이렇게 말했다.
"마음을 다친 이에게 힘이 되는 노래였음 했었어요.
기도로 만든 노래이므로 누군가에게 삶을 향한 긍정의 기도로 다가가기 바랍니다."
그 의미를 알 것 같기도 하다. 각자의 의미로 작가와 소통할 수 있다. 나도 그런 느낌이었다.

노래가사도 예술(문학)의 한 분야라고 생각한다. 나도 한 번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꿈틀꿈틀.... 하지만 나는 구구절절 쪽이고 함축과는 거리가 멀어서 불가능하다.^^;;;; 세상에 있는, 있을 수많은 가사들 중 이렇게 문학성이 높은 가사들은 종종 그림책으로 제작되면 좋겠다. 얼마나 좋을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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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는 작업치료가 필요합니다
나카마 치호 지음, 지석연 옮김 / 케렌시아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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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치료에 대해서 들어본지는 오래되었지만 아직도 잘 알지는 못한다. 역자서문에서 학교지원 경험으로 언급한 선생님과 내가 친한 사이여서, 그분이 마련한 연수자리에 나가본 적이 있다. 그때 역자 강의를 한번 들었는데, 이 분야가 무척 많은 공부를 필요로 하는 전문분야이며 이 전문가들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면 막막한 상황에서 상당히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일상적 학급운영에도 바쁘다보니 1년,2년,그리고 몇년이 쏜살같이 지나버렸고 난 그때의 생각을 거의 잊고 지냈다.

지금 근무하는 곳은 특수학급 2개반의 정원이 넘칠 정도로 대상자가 많은 곳이다. 나도 해마다 도움반 학생을 한명씩 맡았다. 어떤 학생은 비교적 무난했고 어떤 학생은 무척 힘들었다. 가장 힘든 것은 나의 대처방법에 대해 확신이 없었고, 시도한 방법들이 효과가 없는데 그게 방법의 오류인지 아니면 아직 때가 아닐 뿐이라서 지속적으로 밀고나가야 하는건지 끊임없이 고민이 된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특별한 주의가 필요한 학생들은 도움반 학생들 외에도 점점 늘어나는 느낌이다. 이유는 분석해보지 못했지만 체감으로는 분명히 그렇다. 이제는 이런 학생들 지도에 팀플레이가 필요한 것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한다. 무척 유연하고도 세심하며 전문적인 협업이 필요하다는 생각.

우리나라는 뭐든 도입되면 형태가 망가지는 경우가 많아 우려되는 점도 있지만, 그래도 부러운 마음으로 이 일본의 사례들을 읽어나갔다. 전문가의 분석은 문제의 지점을 찾고 목표를 세우고 목표를 향한 한걸음을 실행하는데 도움을 준다. 보통은 학교교육과 별도의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 치료를 받는데, 교육현장에서 병행하면 훨씬더 효과를 볼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치료는 보편적이라기보다 상황적이라 공적 시스템으로 만들기에는 유연성에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긴 했다. 하지만 이것은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고, 현장의 협업은 꼭 필요하니 방법을 모색해보면 좋겠다.

내용 중 학생의 문제행동에 집중하기보다 '도달하고 싶은 교육'에 초점을 맞춘다는 말이 가장 인상적이고 뜨끔하게 다가왔다. 보통 학급에서 도움이 절실할 때는 '문제행동'이 표출될 때다. 그래서 그 문제행동의 축소에 집중하게 되는데, 그게 쉽지 않다. 저자를 보니 세밀한 관찰을 통해 학생의 약점과 강점을 파악하고 도달하고 싶은 목표를 정한 뒤 구체적 과제를 단계별로 해결해 나갔다. 이 내용을 담임교사, 특수교사, 학부모, 보조인력 등이 모두 공유하고 협력했다. 은연중에 학급의 친구들까지 협력하게 되는 장면은 감동적이다. 이렇게 목표를 정하는 방식은 협력이 없는 상황이라 해도 교사로서 참고해야겠다.

다음으로 인상적인 대목은 ['해주는 복지'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실현하기 위해 '활용하는 복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117쪽) 라는 의견이다. 복지대상이 많은 학교에 근무해보니 우리나라는 복지의 불모지가 아니다. 다만 그 효율성에는 물음표가 떠오를 때가 많았다. 그래선지 '자신의 힘을 최대한 발휘하고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저자의 의견이 확 다가왔다. 사실 해주는 게 훨씬 더 쉽다. 하지만 진정한 복지는 가능성을 키워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가까이서 본 입장에서, 말이 쉽지 참 어려운 일이라는 건 알고있다. 연관하여 '졸업이 있는 복지'라는 의견도 현장전문가답다고 생각되었다.

이어서 목표 설정이나 작업수행 단계를 정하는 등의 과정을 간단히라도 보니 상당히 공부가 필요한 전문적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치료 영역과 교육의 영역은 상당부분 겹치고, 그래서 함께할 때 시너지를 낼 부분이 많아 보인다. 시스템적인 부분은 내가 잘 모르지만 고민하는 움직임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저자가 협력의 경험이 많은 분이라 자신의 실패경험을 토대로 사려깊고 현명한 협력의 태도를 말씀하시는 부분이 구석구석 보여서 그 점도 신뢰가 갔다. 부디 우리 아이들이 건강한 사람으로 자라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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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는 이별 큰 스푼
정지아 외 지음, 방현일 그림 / 스푼북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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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이라는 키워드로 다섯 작가의 단편을 모은 책이다. 정지아, 안오일, 이선주, 강효미, 김기정 작가님이 참여했다.

이별은 피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어떤 경우에는 필요하기도 하다. 좋고 나쁨을 떠나 누구나 인생에서 마주해야만 하는 경험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이 다섯 작가가 말하는 이별에는 죽음이라는 가장 거대한 슬픔이 주로 나오는데(다섯 편 중 세 편), 그 슬픔을 매우 담담하게 담았다는 점이 공통적이다. 우리는 누구나 이 피할 수 없는 길을 향해서 간다. 그래도 고통과 슬픔에 몸부림치며 가는 것이 인간의 적나라한 모습인데, 이 책에 담긴 모습들은 어찌 보면 낯설다. 이렇게 이별을 맞을 수 있다면 좋겠어, 그런데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 가능만 하다면 정말 바라는 바지... 라는 생각을 하면서 읽게 되었다.

가장 염려스러운 것은 현실적인 어려움이다. 쉽게 말해서 본인의 육신의 고통과 주변인들의 생활적 어려움이다. 어느덧 부모님들을 떠나보내는 나이가 되어서, 주변에서 듣는 이야기들이 많다. 죽는 것도 쉽지 않은 그런 이야기. 현대의 의료기술은 삶의 질보다는 목숨의 연명에 더 적합하게 돌아가는 듯하다. 그리하여 고통뿐인 삶을 그저 이어나가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게다가 엄청 겁도 많아서 솔직히 말해 육신의 고통이 가장 두렵다. 편안하게 눈감을 수 있다면 이별에 초연한 모습쯤은 나도 보일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느새 부모님들이 오래 사시는 것보다도 편안히 눈감으실 수 있기를 기도하는 나이가 되었다.

「할아버지의 은행나무」(정지아)에선 할아버지가 췌장암 판정을 받으셨다. 할아버지는 공개적으로 주변을 정리하신다. 할아버지 나이와 같은 은행나무와, 할아버지보다 더 오래된 감나무를 베고 집도 처분하신다. (책의 맥락과 관계없이 나무가 너무 아깝다고 안타까워 하는 나...;;;) 흔들리지 않는 차분함으로 가족들을 다독이며 이별을 준비하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아름답다. 그래서인지 가족들도 격동하기보다 할아버지와의 추억을 잘 저장하는 모습이 보인다.

「우리의 정원에서」(안오일)에서 죽음을 앞둔 사람은 노인이 아니고 건우의 형 승우다. 3학년 때 소아암 판정을 받은 형은 아직 6학년인 초등학생이다. 아빠도 돌아가시고 암환자인 아들을 키우며 가장 역할을 해야 하는 엄마의 고생은 짐작하기도 어렵다. 가족은 시골로 이사를 가서 새로운 곳에서의 생활을 시작한다. 아직은 아니라고 믿고 싶지만 본인은 느낄 수 있는 그 이별 예감에, 형은 이런저런 이별의 선물들을 준비한다. 셋 뿐인 가족의 서로를 위한 마음에 가슴이 찡해지는 이야기. 첫 작품도 그렇고 이 작품에도 이별의 순간까지는 나오지 않는다. 준비하는 모습이 마음을 먹먹하게 할 뿐.

「안녕, 거짓말」(강효미)에서는 아버지가 이미 돌아가셨다. 급속한 암의 진행으로 석달만에. 문제는 아흔 가까운 할머니. 줄초상을 염려한 가족 친지들은 막내아들의 사망 사실을 숨기고 외국 출장으로 둘러댄다. 어느날 할머니는 성치도 못한 몸으로 고집을 부려 집에 찾아오시고, 온갖 잔소리와 함께 대량의 음식, 특히 곰탕을 펄펄 끓여놓고 가신다. 사실 곰탕은 아빠가 좋아하시던 음식이 아니다. 할머니는 캐묻지도 알은 척도 하지 않으셨지만, 이제 할머니의 마지막 가는 길이 막내아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신 듯하다. 그리고 손주와 며느리 든든히 먹고 잘 살아가라고 끓여주신 곰탕.ㅠㅠ

나머지 두 작품에는 죽음이 나오지 않는다. 「절교에 대처하는 나의 자세」(이선주)는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는 바와 같이 친구 사이의 이별을 다룬다. 촌락의 소규모학교에 다니는 나리는 여학생이 혼자뿐인 교실에 지우가 전학을 오게 되어 무척 기뻐한다. 하지만 지우와의 친구관계는 쉽지 않았다. 금방 절친이 된 것 같았지만 금세 ‘절교’ 운운이 오가고, 지우는 또 전학을 가게 된다. 이별이 아프고, 이별 후의 잊혀짐은 더 아파서 미리 철벽을 치는 지우의 마음에 공감한다. 하지만 그러지 말라고 충고하고 싶기도 하다. 사랑할 땐 사랑하고, 잊혀지면 잊고... 그래도 괜찮다고. 이거 주인공을 어른으로 바꾸고 드라마로 만들어도 될 소재 같은데?^^

마지막 「굿바이 피기」(김기정)는 어떤 이별인지 언뜻 보면 고개가 갸우뚱할 수 있다. 타인과의 이별은 나오지 않기 때문에. 그러니까 여기서의 이별은 내 안의 어떤 나, 나의 어떤 모습과의 이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또한 굉장히 중요한 이별이다. 적절한 때 적절한 이별이 있어야 사람은 성장한다. 탈피에 비유할 수 있을까? 나도 돌아보면 아주 다행스러운 이별도 있었고, 미적거리느라 놓친 이별도 있었다. 이렇듯 이 작품에선 건강한 이별을 생각해보게 된다.

이별이라는 주제를 감당하려면 고학년은 되어야 권해줄 수 있을 것 같다. 분량은 가볍지만 중학생이 읽어도 나쁘지 않겠다. 우리 인생에 닥치기 마련인 중요한 사건들은 성찰해볼수록 좋을 것이다. 그중 가장 어려운 사건, 이별에 대한 성찰로 이 책이 적절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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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아는 도깨비 언니 1 - 수상한 공부방과 돈 나무 너랑 나랑 2
윤슬 지음, 코끼리씨 그림 / 프롬아이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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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어린이실 신간코너에서 이 책을 보고 '인기있는 시리즈가 또 나왔나보네' 생각하며 일단 1권을 빌려와봤다. 검색해보니 작가님도 출판사도 다 낯선데 책은 판매지수가 높았다. 인기비결이 있겠지? 생각하며 읽어보았다.

일단 시리즈물은 기본 설정을 잘해두면 이후는 좀 쉽게 굴러가는 장점이 있다. 1권은 그 골조를 세우는 권이라 성패가 좌우되는 중요한 권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매우 성공적인 것 같다. 각 권에는 문제나 아픔을 가진 어린이 주인공들이 등장할 것이고, 그 아이들에겐 조력자가 필요할 것이다. 이 시리즈의 기본 골조는 바로 그 조력자다. 그 골조 안에 각 권마다 다른 사정의 아이들을 만들어 넣으면 되니 시리즈는 꽤 길게 이어갈 수 있겠다. (그렇다고 창작이 쉬울 리는 없지. 이 점은 분명히 해둠.)

그 조력자가 바로 제목의 '도깨비 언니'다. 신비롭고 아름다운데 친근하고 다정하기까지 한 언니. 이 언니는 어떤 사연으로 마음고생을 하는 어린이들을 찾아가게 되었을까?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아는' 도깨비 언니는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을까?

보통 도깨비 하면 남성 이미지에, 인간을 초월한 능력을 가졌지만 어딘가 좀 부족하고 허당인 캐릭터가 일반적인데, 요즘은 그런 고정된 이미지에서 많이 벗어난 것 같다. 도도언니라고 불리는 이 언니도 그렇다. 도도언니의 과거 서사는 무척이나 애절하다. 원래는 사람이었던 언니. 부모님을 다 잃고 유일한 보호자인 할머니 밑에서 자라난 어린시절. 해녀였던 할머니마저도 물질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홀로남은 언니는 어쩔 수 없이 서툰 물질을 시작하게 된다.

그러다 만난 '석이'의 존재가 언니의 외로운 삶에 한줄기 웃음을 주는데... 석이는 도깨비였고, 유일한 사랑이자 위로였던 석이를 떠나보내고 본인이 도깨비가 되기까지의 서사가 어린이들에게 꽤 매혹적일 것 같다. 어린이들도 슬픈 이야기를 좋아하더라고. 이 애절한 사연을 가진 도도 언니는 슬픔으로 더 깊어지고 단련된 성품을 가지고 어린이들 앞에 사려깊게 나타난다.

1권에 나오는 아이는 현아다. 자기 의견을 당차게 말하지 못하는 소심한 현아는 전학간 학교에서 좋은 친구 예림이가 다가와 행복했다. 드디어 절친을 만났구나 기뻐했지만 커다란 오해가 아이들 사이를 가로막는다. 그 오해의 사연에는 부쩍 힘들어진 현아네 가정 사정도 있었고.... 그런 현아 앞에 도도언니가 나타났고 '도깨비 공부방'으로 현아를 이끈다. 이곳은 아마 다음 권들에서도 중요한 공간적 배경이 되겠다. 힘들어하는 아이들과 그 아이들의 간절한 소원은 도도언니를 만나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 낼 테고 어린이 독자들은 이야기 속 친구들을 응원하겠지.

어른 독자로서 딱 내 취향에 맞거나 손꼽게 재밌는 책이라 할 수는 없었지만 어린이들에게는 독서력을 불문하고 흡인력과 접근성이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체도 요즘 아이들이 좋아할 만하다. 이어지는 다음 권들에서 다양한 상황의 어린이 주인공들이 나와 어린이 독자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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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속삭임 - 제24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보름달문고 93
하신하 지음, 안경미 그림 / 문학동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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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수상작을 패스한 적은 없으니 올해도! 오, 작가님이 꽤 많은 작품을 쓰신 알려진 분이시네. 이분의 작품 중 『별별수사대』를 몇년 전에 인상적으로 읽었다. 그 작품도 외계인을 다루었고, 우주에 관한 작가님의 관심과 지식을 짐작할만한 대목들이 군데군데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외 다른 작품은 못 읽어보았지만 이번 수상작을 보니 확실히 알겠다. 작가님은 오래전부터 SF 작품을 쓸 수 있는 내공을 닦아오셨구나. 그리고 드디어 이렇게 빛을 보았다. 아주 특별한 느낌의 SF였다. 과학이나 미래는 소재일 뿐 인간을 말하는 작품들이라는 느낌이었다. 책 제목이 『우주의 속삭임』 그렇다, 우주가 나온다. 그런데 그 우주가 탐험이나 개척의 대상이라기보다 어떤 근원을 말하는 느낌이 든다. 가늠할 수 없는 공간과 시간. 그 안의 나. 수많은 사람들의 사색과 철학의 대상이었던 나와 세계. 이 작품은 그 사색의 연장선에 있다는 느낌이었다.

호흡이 긴 작품을 기대했었는지, 첫 작품이 끝날 때 단편집이라는 사실에 살짝 실망을 했다. 그러고보니 표제작이 된 작품은 없었다. 5편의 단편이 실렸고 책 제목은 그 모든 작품을 아우르게 잘 지었다. 실망은 괜한 것이었다. 각 단편의 완성도가 모두 높았고 느낌은 다섯이 각각 다 다르면서도 특별했다.

첫 번째 작품 「반짝이는 별먼지」는 이별을 다루었다. 그 이별은 아주 먼 이별이었다. 산골의 허름한 숙박시설을 운영하는 할머니와 아이. 그 민박집 이름 ‘별먼지’는 참 의미심장한 이름이다. 주제까지 담은 이름이라고 할까. 할머니는 50년 전에 의문의 방송을 듣고 미래를 예견하는 엽서를 썼다. 그게 당첨되어 외계인이 선물을 가지고 ‘별먼지’를 방문했다. 오로타 행성으로 가는 우주항공권. 할머니는 이제 떠나실 때가 된 것이다. 이렇게 쓰면서 생각해보니 그 외계인은 마치 저승차사의 역할 같은데, 작품의 신비로운 느낌 때문에 그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할머니가 가신다는 오로타 행성 또한 여행지라는 느낌이 들 뿐이다. 할머니는 “내 몫의 여행을 떠날 때가 왔구나.” 라는 말씀을 남기고 우주선에 올라 빛과 함께 사라졌다. 의지할 데라곤 할머니뿐이던 아이가 남겨졌지만 슬픔도 참혹함도 없이 평온하다.

이 서사가 상징이어서 할머니의 여행이 즉 죽음이라면, 참으로 아름답게 묘사된 죽음이다. 육신을 벗는 일이 저토록 가볍다면 얼마나 좋을까. 광활한 우주. 그중의 먼지인 존재. 하지만 인생의 무게는 왜 먼지가 아닐까. 어느 순간 그 무게는 우주이기도 하지. 그것이 바로 인생의 신비인 것일까. 그 누구도 완벽히 규정할 수 없는.

두 번째 작품 「타보타의 아이들」에서 지구인들은 인간이 살 수 있는 행성을 탐색 중이다. 화성과 타이탄을 개발했고 ‘타보타’라는 행성에 탐사 기지를 세웠다. 화자는 TAT-129라는 인공지능 로봇이다. 타보타에 파견된 전문가들은 모두 건강에 심각한 이상이 생겨 철수했고, 이곳엔 로봇들만 남았다. 인공지능인 화자는 나름의 판단으로 필요한 일들을 수행하며 타보타를 지키지만 지구인들은 사실상 이 행성을 포기한 듯 보인다. 그러던 어느날 감지된 생명활동! 그것은 폐쇄된 온실에서 발생한 원시생물인 지의류였다. TAT-129는 그것에 보보라는 이름을 붙이고 극진히 보살펴 키운다. 우리가 알듯이 세상 모든 것들 중 어떤 것은 소멸되고 어떤 것은 시작된다. 이것은 또 어떤 시작인 것일까? 작가는 그 이상을 말하진 않았다. 다만 로봇인 화자가 그 지의류에게 하는 말이 기분을 묘하게 만든다.
“보보 힘내, 이게 우리가 사랑을 나누는 방식이야.”

「달로 가는 길」의 주 소재는 ‘로봇’이다. 미래의 인간은 어디까지 로봇을 활용하게 될까? ‘달로 가는 길’은 바로 로봇이 소멸로 가는 길이다. 그게 왜 슬프게 느껴질까. 마지막 순간에서야 자신이 로봇인 줄을 알게 된 로봇(인간인 줄로 알고 살아왔던 로봇) 때문이었다. 로봇에 마음을 심는 일이 가능할까? 내가 상상력이 부족해서인지 가능하지 않을 것 같은데, 가능해지더라도 그건 안 했으면 좋겠다. 인간은 상실을 대체품으로 채우려고 하지만 아무리 미루어도 상실은 찾아온다. 그러니 아무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들어오지 마시오」는 외계인에 대한 상상이 가장 재미나고 유쾌한 작품이었다. 못된 일당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주인공의 상황을 해결해 준 (본의인지 아닌지) 외계인 무아무아족. 이 무심한 외계인이 보여준 권선징악은 아주 후련했다. 그리고 그들이 과연 고향 행성에 돌아갔을까? 확인할 수 없는 열린 결말도 웃음이 났다. 다섯 편의 작품 중 가장 소품이라면 소품인데, 감정에 부담 없는 이런 작품이 하나 끼어 있는 것이 난 맘에 들었다.

마지막 「지나 3.0」은 앞의 작품에 가벼워진 마음을 다시 무겁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지구 멸망의 순간에 첨단 우주선으로 겨우 탈출한 가족. 그들은 인간이 살 수 있다고 짐작되는 태양계 밖의 어떤 낯선 이름의 행성으로 향하는데.... 우주의 광활함은 공포이기도 하다. 그들은 그 행성에 10년이 지나도 도착하지 못한다. 엄마와 동생은 동면에 들어갔고 우주공학자인 아빠와 장녀인 지나가 조종실을 지킨다. 그리고 20년, 30년이 지난다. 아, 그냥 글자만 읽는다면 모르겠는데 상상을 하면서 읽는 것은 힘들었다. 인간이 체감하는 시간 개념, 적어도 나의 체감에서는 저건 상상도 못할 고문이다. 멸망할 때는 그냥 같이 멸망하는게 좋겠어 라는 생각을....;;; 그러나 아빠는 본인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역량을 발휘해 가능한 방법으로 그들의 존재를 남기고 있다. ‘지나 3.0’도 그중의 하나다. 그게 난 너무 부질없고 슬퍼 보였다. 그게 작가의 생각과는 한참 거리가 먼 생각이라 해도. 감상은 각자의 몫이니까. 작가는 뭔가 희망을 말하려는 것 같은데 나는 그게 뭔지 잘 모르겠다.

『우주의 속삭임』이라는 제목 아래 이상의 다섯 단편이 담겨있었다. 제목이 의미깊다는 생각이 든다. 우주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을 건다. 인간 또한 우주를 알고 싶어 몸부림친다. 나야 먼지만큼도 모르지만, 많이 공부하고 알아본 사람들일수록 겸손해진다고 들었다. 내가 겸손해진다면 가끔씩 우주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을까? 그 속삭임이 평화로운 것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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