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 지니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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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리뷰를 쓴 기억이 거의 없다. 소설을 잘 읽지 않아서다. 토지, 태백산맥, 혼불 등의 대하소설들을 읽은 건 젊을 때였고, 이제는 그렇게 시간과 감정을 소모하는 독서를 잘 못하겠다. 게다가 필요를 따지는 성향이 강해서인지 나이들면서 내 독서는 어린이책과 교육도서로 범위가 좁혀졌다.

그래도 너무나 유명한 이 작가의 <7년의 밤>은 읽었다. 그 책은 읽으면서도 힘들고 읽고 나서도 힘들었지만, 중간에 놓을 수는 없었다. 대단한 작가라 생각했다. 지금은 돌아가신 아빠가 "이 작가 책 또 나오면 갖다다오" 부탁하셔서 다른 책들도 빌려다 드렸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최근 이 책이 나온 걸 봤는데, 소설을 다시 읽겠다고 작심한 건 아니지만 끌렸다. 이름 때문인가. 이름 끝자라 내가 많이 사용하던 이름.

진이는 사람이름이고 지니는 동물 이름이었다. 영장류 중에서 보노보라는 동물. 진이는 사육사다. 이런 대목을 보아도 나는 작가들한테 감탄하곤 한다. 내가 경험의 폭이 좁아서인지, '아니 자기 경험 밖에 있는 세계를 어떻게 이렇게 속속들이 알수가 있지? 얼마나 취재를 했길래?' 라는 생각이 든다. 그냥 머리속에서 그려낼 수 있는, 남녀가 서로 팔자를 꼬고 꼬는 피곤한 이야기를 읽을 때는 들지 않던 존경심이 이럴 때는 든다.

잘은 모르지만 이 작가의 작품 중에 판타지가 들어간 작품은 처음이라고 들었다. 그것도 흔하디흔한 '체인지'류의 설정이라니. 이건 영화나 드라마에도 자주 나오고 내가 읽어본 동화만 해도 몇 권 꼽을 수가 있을 정도인데... 그러나 읽다보면 이거 흔하잖아 라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진이의 사고 장면, 지니의 몸 속에서 진이의 의식이 깨어나는 장면을 묘사한 부분을 읽을 때 감탄이 나온다. 겪어봤어도 이렇게 묘사하긴 어렵겠다.... 라는. 누구나 언어를 쓰지만 그 언어를 다루는 수준은 엄청난 차이가 있구나. 당연하겠지만. 그래서 세상엔 작가가 있는 것이다.

게다가 정확히 말하면 '체인지'가 아니었다. 사경을 헤매는 진이의 육신에서 빠져나온 영혼이 지니의 육신에 의탁했을 뿐이다. 지니의 육신은 진이의 뜻을 따랐다가 지니의 본모습으로 돌아갔다가 양쪽을 오간다. 지니의 정신은 이 모든 것을 지켜본다. 이 과정에서의 생각과 감정의 흐름도 마치 들여다보듯 묘사가 되어있다. 내가 이런 설정에 현실적으로는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을 잊어버릴만큼.

불법 포획되어 팔리고 학대받는 동물들(이 책에선 보노보 지니), 그리고 침팬지 엄마라고 불릴만큼 그들과 교감했지만 신변의 위협 앞에 돌아섰던 진이, 긴 시간이 흘러 운명처럼 만난 두 존재. 비슷한 소재의 작품은 많이 있겠지만 이처럼 가슴 조이게 표현할 수 있을까 싶다. 또 강인하지만 홀홀단신인 진이, 그리고 얼떨결에 그 영혼의 일을 돕게 된 부적응 백수 노숙자 민주. 철저히 외로웠던 두 남녀사람의 우정도 아름답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영원히 간직할.

누구나 혼자 떠난다는 면에서 그리 애탈 것은 없지만 여러겹의 외로움과 싸우며 버티던 저 젊은 인생이 저렇게 떠난다는 게 가슴아팠다. 하지만 다행이다. 그녀의 의식은 깨어 지니를 깊이 만나고, 또다른 외로운 한 사람 민주와 짧고 멋진 동행을 했으니.

선이 굵고 거친 이 작가의 작품 중에선 예외적으로 곱고 여린(?...표현할 말이 잘 생각 안 남) 작품이라는 평인 듯하다. 가슴이 아려오긴 했으나 읽기 힘들 정도는 아니었다.

아.... 소설도 읽고 싶구나. 하지만 모드 전환이 쉽지 않은 나는 일하면서 소설도 읽고 이런게 잘 안된다. 월급받는 일만 해도 지쳐버리는 저질체력이라서 말이다...ㅠ 이제 휴가 막바지다. 일할 땐 진이처럼 일하고 싶다. 전문적이고 강인하게. 때로는 누군가의 '다정한 그녀'가 되면서.(이 책에서 그 누군가는 영장류센터의 침팬지들) 그러고 싶다는 거지. 희망사항....;;;; 휴가의 유일한 소설 잘 읽었다. 이제 다음 휴가를 기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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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2019-08-19 1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기진맥진이란 닉은 실제로 그렇게 될수 있어요.ㅎㅎ
닉넴을 건물주로 해야 자기의 무의식이 그런 방향으로 나간다네요.
내가한 말이 아니고 허지원인가 확실하진 않지만 심리학 교수가 쓴책에 그렇게 되어있더군요.

기진맥진 2019-08-19 23:11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긍정적인 자기예언이 중요한데.... 어쩌다보니....ㅎㅎ
다른데서는 안쓰고 요기 알라딘에서만 써요.^^
 
내 마음 배송 완료 동화는 내 친구 89
송방순 지음, 김진화 그림 / 논장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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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방순 작가의 책은 처음 읽었다. 정말 죄송하게도 성함이 옛날분 같아서.... 그런 이미지를 떠올리며 책을 펼쳤던 것 같다.(나도 참...^^;;;) 그런데 내용이나 문체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간결한 문장, 실제적인 대화, 그리고 현실 가족의 문제를 다룬 내용.

송이는 참 서럽다. 부모님이 헤어져서 엄마랑 둘이만 사는 것도 서러운데 엄마는 송이를 더 애틋하게 보살피기는 커녕 거의 방치상태이기 때문이다. 직장에서 돌아와도 먹을 것을 챙겨주기보단 리모컨을 들고 홈쇼핑에 빠져든다. 그렇다. 엄마는 홈쇼핑 중독이 됐다. 현관엔 뜯지도 않은 택배 박스들이 쌓여간다.

사실은 어른들도(아니 어른들이 더?) 중독에 취약하다. 마음이 외롭고 허할수록 더욱. 송이엄마가 송이를 챙겨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강인하게 버틴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게 쉽지 않은 것이다. 송이가 좋아하는 남친 형찬이랑 엄마들을 흉보며 나누는 대화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우리 엄만 맨날 운동만 하는데. 아침부터 밤까지 수영, 헬스, 달리기까지.... 지쳐서 쓰러질 것 같다니까."
"너희 엄만 운동을 정말 좋아하나보다."
"그게 아니라 집에만 있어도 스트레스가 쌓여 숨이 막힌대. 그래서 이 운동 저 운동을 하며 땀을 흘리는 거래."
"그래? 우리 엄만 회사 일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여서 쇼핑을 하는 거라던데. 하여튼 어른들은 스트레스 푸는 방법이 정말 이상해."
(나는 건강하게 스트레스를 풀고 있나? 혼자 까페콕하고 쉬기.... 이정도면 누구한테 피해 안줄 정도는 되려나?)
이 와중에 아이가 별 수 있겠나. 게임에 빠지고 채워지지 않는 허기에 몰라보게 살이 쪄가는 송이. 사실 이정도도 대견하게 잘 버티고 있는 거긴 한데.

갈등 단계로 들어가며 이야기는 판타지가 된다. 송이가 쇼핑호스트를 따라 '쇼핑천국' 안으로 순간이동을 한 것. 결국에는 엄마를 판매품으로 내놓게 되는데.... 엄마가 팔렸다가 반품, 이어서 송이가 팔렸다가 반품. 이 과정에서 서로 다른 체험들, 그 후의 화해 등은 좀 뻔한 공식인 거 같긴 하지만 그래도 지루하지 않게 잘 읽히긴 했다.

택배가 왔다. 또~? 마지막으로 온 이 택배는 아빠한테서 온 택배였다. 이 택배를 보는 엄마와 송이를 보니 판타지를 통과한 두 사람이 달라진 것이 확 느껴진다. 서로의 세상에 빠져서 같은 공간에 있으나 각각 홀로였던 모녀는 이제 생활을 공유한다. 판타지였긴 하나 이런 계기가 있어서 참 다행이다.

자식을 위해서 산다며 매달리는 부모도, 자식과 다른 세상에 홀로 들어가버린 부모도 모두 자식에겐 괴로움과 슬픔이다. 적당한 공유. 참 어려운 일이지만 그게 필요하다. 시간도 공간도 활동도.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제목에 있겠지. "내 마음 배송 완료."

엄마들이 읽어봤으면 좋을만한 책이지만 판타지와 여러 흥미있는 설정들 때문에 아이들도 재미있게 읽을 것 같다. 4,5학년 정도에 적당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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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98 친구 - 2019 가온빛 추천그림책 모두를 위한 그림책 18
다비드 칼리 지음, 고치미 그림, 나선희 옮김 / 책빛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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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직이어서 도서실 근무를 하고 있다. 몇 년 전엔 방학때 도서실에 와서 한 시간 이상 책을 읽다 가는 아이들에게는 도장을 찍어주었고, 도장을 많이 모은 아이들은 개학하고 상을 주었다. 아주 아이들이 바글바글했는데, 시간 따져서 도장 찍어주랴, 진정한 독자가 아닌 등떠밀려 온 아이들은 왔을 뿐 책을 읽지는 않기 때문에 그 아이들 관리하랴, 너무 힘들게 당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이후 다행히 도장과 시상은 없어졌다. 그러자 아주 거짓말처럼 아이들이 빠져버렸다. 서너명 오는 게 고작이다.ㅠㅠ 그치만 한가한 도서실에서 근무할 때 좋은 게 있다. 그림책을 맘대로 꺼내놓고 펼쳐보는 것이다. 그림책들을 집으로 들고 가자니 어깨가 걱정되므로... 오늘도 그림책 서가 앞에서 이런저런 책들을 뺐다 꽂았다 한다.

 

아주 작은 판형의 그림책이 큰 책들 사이에 끼어있고 제목은 뜻을 알 수 없는 숫자 4998... 궁금해서 꺼내 펴보았는데 한 두장을 넘기자마자 하하 웃게 되었다. 5000에서 둘 빠진 숫자. 나도 가끔 5000이 가까워져서 페친 정리한다는 분들의 글을 읽을 때가 있다. 나는 200여 명 정도 되는데, 처음 시작할 때는 ‘100명까지만 해야지했다가 ‘200명 넘으면 넘는 만큼 줄여서 200을 유지해야지했다가 그것도 어려워서 지금은 ‘300만 넘지 말자하고 있다. 사실 200이건 300이건 크게 의미있는 숫자는 아니니 별 상관이 없긴 하다.^^;;;

 

앞에서 말한 도서실 손님들 중 진정한 독자를 뺀 대다수는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 (아니 어머니들, 억지로 도서실에 보내실 거면 휴대폰은 빼고 보내셔야죠. 집 아닌 도서실에서 휴대폰을 하는 것뿐이자나요...;;;) 이 책의 아이도 첫장부터 끝장까지 휴대폰을 보고 있다,

 

내 친구는 4998명이나 돼요. (ㅎㅎㅎ 많이도 맺었구나.)

그런데 그중에 3878명은 여태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어요. (그럼 천명은 만났다는 건데 그것도 대단하다.)

661명은... 우리가 어떻게 친구가 되었는지도 모르겠어요. (공감. 숫자는 다르지만 나도 그래요.^^)

78명은 내 생일도 잊어버렸고요, 내가 생일을 잊어버린 친구도 89명이나 돼요. (난 생일 그런거 부모님과 자식 외에는 전혀 몰라요.ㅋㅋ)

122명은 아주 오래전부터 내 메시지에 댓글을 달지 않아요. (악플보다 무섭다는 무플)

친구가 도와달라고 했을 때 내가 도와 준 친구는 33명이에요. 하지만 그 뒤에 난 아무 것도 하지 않았지요. (SNS에서의 도와줄 수 있는게 뭐가 있을까 잘 모르겠지만 청원에 동의하거나, 질문에 답을 해 준 적은 있음)

내가 도와 달라고 하자 38명이 돕겠다고 했어요. (도와달라는 말 자체를 하기가 어렵다. 질문을 하고 도움되는 답변을 받은 적은 있음)

 

그러나 정작 집에 온 친구는 한 명뿐이었어요. (이게 핵심!!!)

이 친구와 둘이 앉아 피자를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딱 붙어 앉아 함박웃음을 웃으며.....

같이 휴대폰을 한다.ㅎㅎㅎㅎㅎㅎㅎ 에고, 나가서 공을 차거나 책을 읽으면 너무 현실성이 떨어지나.ㅋㅋㅋㅋ

5000에서 둘 빠진, 수많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그 안에 진정한 관계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현대인의 관계 문제를 이야기하는 아주 작고 짧은 그림책이다. 책의 인물이 어른이 아니고 아이인 것은 그림책이라서기도 하겠지만 요즘 아이들의 관계도 어른들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허상의 관계들. 실친이 부족한 사람들은 SNS친으로 그 관계를 메꾸지만, 이 책에서처럼 내 눈 앞에 나타날 친구는 과연 있을까? 물론 실친이라 할지라도 와준다는 보장은 없다.

 

가끔은 실친이 부담스러워 일부러 곁에 있지 않은 SNS친들과 소통하기도 한다.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줄 수 있으니. 그리고 적당한 관심과 격려를 받을 수도 있으니. 그게 꼭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더라만, 그래도 정신은 차려야 한다. 폰 없이 살 수 없고 머리에서 한 쪽 끈이 늘상 폰에 연결되어 있다면 이미 빨간 불!! 뭐든 적당히란 왜이리 어려운지. 고학년 아이들과 읽어본다면 꽤나 술렁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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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이들 마음고생의 비밀 - 더 힘들어하고 더 많이 포기하고 더 안 하려고 하는
김현수 지음 / 해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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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좋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선뜻 손에 잡아지지 않았다. 그래, 요즘 아이들 힘들지. 그걸 모르는 건 아니야. 근데 무슨 방법이 있겠나? 이런 생각이었을까? 읽고나면 더 시름이 깊어지는 책을 읽고 싶지가 않다. 그나마 하던 것마저 더 자신이 없어질 것 같아서.... 그래도 방학이니 독서 리스트에 넣고 한번 읽어 보았다.

저자는 정신과 전문의다. 마음이 아픈 수많은 아이들을 상담하고 그들의 아픔이 어떤 것이며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말해야 될 필요를 느끼셨던 것 같다. 저자는 이 책에서 아이들의 마음 '고생'에 대하여 다각적으로 자세히 얘기했다. '고생'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니다. 고생없이 성장하고 성숙하는 인생이 어디 있으랴. 문제는 지금의 고생이 그것과 아무 상관없는 그저 소모적이고 파괴적인 고생이라는 것이다. 저자의 서문에 이 호소가 담겨있다.
"우리 아이들이 겪는 현재의 고생과 괴로움은 아이들을 행복하게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서는 달라져야 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지인들과 우스개로 주고받는 '이생망'이라는 말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깨닫고 심장이 떨렸다. 난 부분적으로 잘안되는 부분을 얘기할 때, 예를 들면 노래를 잘 부르고 싶은데 잘 안될 때 "이생망이야"하면서 웃곤 했는데 아이들에겐 그정도 개념이 아니었다. 아직 생의 반의 반도 살지 못한 아이들에게 남은 생에 대한 동력을 모조리 빼앗아버리는 무서운 말. 이생망.

마음 속으로 한 번 망한 생애를 다시 되살리기란 참 어렵습니다.(95쪽)

아이들이 이생망을 입에 달고 사는 것은 그들의 책임은 아니다. 새로운 가능성이 차단된 사회, 그걸 알고 있는 부모들의 조급증이 만들어낸 결과다. 유리한 위치를 선점한 부모들은 그자리를 자식 대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상대적으로 조금 불리한 위치의 부모들은 조금 더 올라서거나 적어도 밀려나지 않기 위해서 죽자사자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초등시절부터 아이들에게 불어넣는다. 이 와중에 본인들이 의식하지도 못하는 상처를 아이들에게 주고 서로의 관계는 멀어진다. 반대편에선 자신의 생도 추스리지 못하는 부모가 있고, 그들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엄청난 학대를 자식들에게 가한다. 얼마전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의 인터뷰를 봤다. 드러난(언론에 알려진) 것보다 참혹한 현실이 세상에는 많다고 한다. 그 현장에 내던져진 아이들에겐 어떤 선택의 여지가 있는가. 그들에게 건강한 삶이라는 선택지는 존재하는가?

이 책이 말해주는 전자의 부모들을 보고 난 불안해졌다. 내가 최선을 다한다고, 아이들을 잘 가르쳐 보겠다고 강조한 것들이 부모들의 욕심과 조급증에 기름을 붓고 정당성을 더욱 부여해준 적은 없었을까. 그랬다면 그 아이는 부모와 함께 나를 얼마나 원망했을까. 그렇다면 나는 아이들에게 휴식과 숨쉴 구멍을 만들어주는 사람이어야 했을까. 하지만 그게 학교와 교사의 역할일 수는 없지 않나. 어떤 아이에게는 도전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격려의 외침이, 어떤 아이에게는 마음의 여유와 안식이 필요하다면 난 그걸 어떻게 분별하고 상황에 따라 해줄수가 있을까.
후자의 부모는 거의 만나보지 못했으니 난 사실 아주 편한 교직생활을 해왔으며 인생의 쓴맛을 거의 못봤다고 하겠다. (드러나지 않아서 못본 것일수도) 이런 아이들 앞에서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나 말이 뭐가 있을까. 아득해진다.

이 책을 읽으며 마음이 무거워지는 건 저자가 걱정하는 아이들의 모습 중 일부가 나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특히 성가심 때문에 타인과의 관계를 회피하고 홀로를 자처하는 모습이나 경험의 폭을 축소하여 그 안에 나를 가두는 모습이.... 그러니 나는 자식들이 나를 안 닮은 걸 고마워 해야되나....ㅠ 이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나또한 남의 인생에 개입하거나 개입당하기 싫어하고 고통스럽고 오래걸리는 공감은 피하고 싶은지라 이들의 상담자 역할을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다만 아이들이 이러하다는 사실을 알고 몇가지 조심할 점들을 염두에 두고 있어야겠다.

- 일단 한 편이 되어주세요. 그 다음에 다른 입장을 생각해보는 것은 괜찮지만 처음부터 그렇게 말하지는 말아주세요. (205쪽)
- 압박하거나 채근하지 마세요. 무엇보다 어른의 역할은 안정시키는 것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주세요. 호들갑이 가장 힘들고 짜증나는 반응 중 하나랍니다. (206쪽)
- 함께 도와줄 사람을 찾아주세요. (연결의 역할. 이거라도 할 수 있다면 덜 미안할 듯) (206쪽)
- 부모부터 생기넘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아이들도 어른을 보고 삶이 그저 생존하기 위한 것, 비어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함께하고 기여하는 것이라는 점을 압니다.... 그저 자식 하나 잘되는 것을 보는 것으로 부모의 인생을 제한하지 마세요. (224쪽)

심히 공감한 부분
- 타인들의 행복과 후세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사람들부터, 오늘 하루 사회가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 타인들이 원하지 않는 일을 해내는 사람들 덕분에 우리가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감사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 삶의 의미는 스스로 정하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이지, 타인의 규정이나 집단의 인정에 달린 것은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도 뭔가 미련이 남아 꼰대같은 소리를 한다면, 아이들도 꿈이 다양했으면 좋겠다. 그를 위해서는 고생도 좀 감수했으면 좋겠고.(이 책 제목말고 좀 다른 차원의 고생) "지금의 진로교육은 바보같은 교육이에요. 요즘 아이들의 관심은 주로 이런 거예요." 라고 열변을 토하는 아이가 말해주는 걸 보니 더욱 걱정이다.
• 어떻게 화장품, 패션 쇼핑몰을 할 수 있을까?
• 어떻게 인기 BJ나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을까?
• 어떻게 사람 안 만나고 편히 살 수 있을까?
• 노래하면서 세계일주하고 쉬었다가 또 세계일주하고 그러면 안되나?....
이런 아이들의 욕구만을 들어준다고 좋은 세상이 올거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세상에 의사 판검사만 필요한게 아니듯이 연예인만 필요한 것도 아니니까 말이다. 이 세상을 지탱하는 기본적인 일들에 대한 가치, 그것에 대한 보상과 인식이 지금보다 훨씬 높아져야 한다. 사회는 그것을 향해 가고 아이들은 노동의 가치와 감사를 배우며 건강하게 자란다면 훨씬 살기 좋은 세상이 되겠지. 가장 시급해보이는 내용을 옮겨적고 마치겠다. '아이들이 바라는 10가지 점화술'에서 마지막 10번째 내용이다.(259쪽)

"불필요하고 쓸데없는 헛고생, 헛수고를 조금이라도 줄여주세요. 수많은 사람들이 수억번 이상 이야기했듯이 이런 헛고생, 헛수고하는 공부로 인생을 무의미한 축제로 만들지 말아주세요. 제발 부탁합니다. 불필요한 암기와 배배꼬인 문제와 줄세우기를 목적으로 하는 변별력만 뛰어난 현재의 입시제도를 한시바삐 없애주세요. 우리도 창조, 창의, 창발, 이런 용어가 들어간 활동도 하고, 고등학생이 책도 내고 중학생이 탐험도 나가고 그렇게 살게 해주세요. 단 한 번인 이 인생을 허비하지 않고 살게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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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칼로 디어 피플 6
이사벨 토머스 지음, 마리아나 마드리즈 그림, 서남희 옮김, 우성주 감수 / 웅진주니어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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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피플 시리즈 / 이사벨 토머스 외 / 웅진주니어>

인물이야기(옛날 식으로 부르면 위인전)를 아이들에게 읽히는 게 쉽지 않다. 옛날 우리 어릴때 집에 책이라면 부모님이 맘먹고 사주신 계몽사 위인전집밖에 없었던 때는 어쩔 수 없이 그것만 읽었지만, 지금은 학교도서관에만 가도 온갖 탐스러운 책들이 넘치니까.... 인물이야기는 우선순위에서 한참 밀린다. 하지만 독서의 편식을 방지하는 의미에서라도 난 가끔 인물시리즈를 수업에 활용한다. 국어에서 전기문 단원이 나올 때, 인물의 말과 행동에서 그의 생각을 유추하거나 인물의 삶을 통해 그의 가치관을 판단하는 수업을 할 때 인물이야기 전집을 도서관에서 학급대출해서 횔용한다. 이럴 때 두꺼운 책들은 시간의 제약 때문에 활용하기 힘들고, 나는 주로 비룡소에서 나온 <새싹 인물전> 시리즈를 활용했다. 이 시리즈는 저학년용이라 보통 단위수업시간 내에 읽을 수 있고 국내외 인물 골고루 60권까지 나와있어 권수도 넉넉하여 활용하기 아주 좋았다.

그러다 올해 이 책이 나온 걸 보고 오잉? 요것도 좋겠는걸? 하고 지난 1학기 도서실 수서 때 구입했다. 사놓기만 하고 못읽어보다가 오늘 그 중 2권을 대표로 가져와 읽어봤는데 참 괜찮다.
1. 글보다 그림이 많은 구성이라 일단 접근성이 좋다. 표지도 각 권마다 다른 색으로 칼라풀하다. 내용 이전에 비주얼을 따지는 까탈스런 아해들에게도 먹히겠다.ㅎㅎ 본문의 그림도 총천연색은 아니지만(몇도인쇄? 그런거 잘 몰라서...) 그림체도 각각 개성있고 그림책처럼 그림에도 많은 이야기나 정보들이 들어있다. 글자체도 일반적인 인쇄체가 아니고 개성있는 폰트들이 사용되었다. 모든 책이 이렇다면 정신없겠지만 가끔 이렇게 읽으면 새로워서 좋다.

2. 새로운 인물들을 조명해서 좋다. 완전 최초는 아니지만 그래도 기존 위인전들에선 흔히 다루지 않던 인물들, 프리다 칼로나 '안네의 일기'의 안네 프랑크 등이 포함되어 있다.

3. 이건 무조건 장점이라 할 순 없지만 분량과 구성상 부담없이 빠르게 읽을 수 있어 다양한 독서력이 섞여있는 교실에서 함께 읽고 이야기나누기 좋다. 단 분량이 적다고 해서 내용이 단선적인 건 아니다. 업적과 교훈을 강조한 일반적인 위인전과는 느낌이 다르다. 일생의 애환을 조명했다고 할까. 전권을 다 읽지는 못해서 단언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느껴졌다. 인터넷서점의 분류로는 1,2학년용으로 되어있는데 내가 볼 때는 저학년도 읽는데는 무리가 없겠으나 내용을 다루려면 중학년 이상은 되어야 할 것 같다. 예를들면 '넬슨 만델라'를 읽었는데 그는 비폭력투쟁을 추구한 사람이 아니었다. 이런 부분은 배경을 충분히 이해하지 않으면 상식적인 덕목에는 위배되므로 아이들이 어려워할 수도 있겠다. 모든 일에는 상황적 맥락이 있으므로 그가 살아간 시대와 그의 생애를 통해 이해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게 아이들이 배워야 할 감수성일테고, 그래서 인물책 독서도 꼭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렇게 활용가능한 책들이 늘어나면 그게 내 책꽂이에 꽂힌 게 아니라 해도 든든해지는 느낌이 있다.^^ 현재 7권까지 나와있는데 이 시리즈가 적어도 30권까지는 나왔으면 좋겠다. (그래야 같이 읽고 골라 읽기 좋거든....)

개인적 감상으로 <프리다 칼로>를 읽고나니 그녀의 작품세계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면서 '일부라도 실제 작품을 실어주지!' 라는 답답함이 생겼다. 네~ 바로 그거예요. 그럼 이제 도서관의 600번 코너로 가시는 거죠.ㅎㅎ 아이들도 이처럼 독서가 확대되어가면 좋겠다. 영화 <프리다>도 보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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