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긴밤 - 제21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83
루리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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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비슷한 느낌의 작품들이 쏟아져나오는 가운데 이 책과 비슷한 책이 언젠가 있었나 기억해봐도 떠오르는 게 없다. 그렇다. 이 책은 정말 처음 보는 느낌이다. 완벽히 새로운 느낌. 낯설지만 불편하진 않았다. 새로운 세계로 진입하는 만족감이 충만했다고 할까. 거기에 뻐근한 감동까지 있었다.

시점부터가 매우 특이했다. 처음엔 누가 화자인지 알수 없었다.
"나에게는 이름이 없다.
하지만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
이 '나'가 누구인지는 책의 중반이 가까워서야 나온다. 그때 등장한다기보다는 그때 '태어난다'. 아니 그럼 이전의 서술은 뭐란 말인가. 태어나지도 않은 존재의 1인칭 시점이라니? 관찰자 시점도 아닌 전지적 시점이었다. 뭔가 기이하다? 다 읽고 나서 보니 그 '1인칭'이 주인공에게 '들은 이야기'로 시작하여 '겪은 이야기'로 전환한 것이라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이또한 매우 특이했으나 이상하게 그냥 자연스러웠다.

야생동물이 주인공인 책들이 꽤 있다. 사자라든지, 코끼리라든지.... 근데 코뿔소는 처음 본다. 그리고 그 '1인칭' 서술자는 펭귄이었다. 코뿔소와 펭귄이라니. 서식지가 전혀 다른 이 두 종의 관계는 무엇일까.

코뿔소의 이름은 노든이었다. 이 책은 그의 일생을 다룬다. 노든은 코끼리 보호 시설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코뿔소인 그가 왜 그곳에서 살게 되었는지는 자신도 모르지만 따뜻하게 품어주는 코끼리들 틈에서 평화롭게 지냈다. 자라서 그곳을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 망설일 때 코끼리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더 넓은 세상으로 가. 네가 떠나는 건 슬픈 일이지만 우리는 괜찮을 거야. 우리가 너를 만나서 다행이었던 것처럼, 바깥세상에 있을 또 다른 누군가도 너를 만나서 다행이라고 여기게 될 거야."

야생으로 나온 노든은 가족을 꾸리고 한동안 행복했다. 그러나 인간의 악함을 처음 경험한 그 순간 노든은 아내와 딸을 잃고 자신도 부상당한 채 혼자가 되었다. 그리고 인간들에 의해 도착한 곳은 동물원이었다. 그는 복수심에 불탔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만남은 있었다. 유일한 동족 앙가부. 같은 우리에서 앙가부와 얘기를 나눌 때만은 두려움과 외로움을 조금은 물리칠 수 있었다. 그들은 탈출을 꿈꿔봤다. 하지만 생각대로 되는일은 없었다. 감행도 하기 전 생각지도 못한일로 앙가부는 죽었고 노든은 뿔이 잘렸다. 노든은 또 완벽한 외로움 속에 내던져졌다.

동물원 다른 한쪽에서 일어난 일은 다가올 만남을 암시한다. 바로 펭귄 우리에서. 오른쪽 눈이 불편한 치쿠를 위해 윔보는 늘 오른편에 섰다. 둘이 함께하면 장애도 큰 문제는 아니었다. 아무도 품지 않는 특이한 알 하나를 이 두 친구가 품기로 했다. 그러던 중....
전쟁이 났고, 폭격으로 동물원은 무너졌다. 많은 동물들이 희생됐다. 두 친구 중 윔보도... 철봉에 깔린 그의 품에서 알을 꺼내어 양동이에 담아 부리로 물고 치쿠는 길을 떠난다. 바로 노든과의 만남과 동행이었다.

알에 모든 애정을 쏟아붓는 치쿠를 노든은 묵묵히 돕는다. 그들은 바다를 찾아 헤맸다. 지친 치쿠마저 세상을 떠난 날, 알은 완벽히 노든의 책임이 됐다. 그리고.... 가까스로 무사히 그 '1인칭'과 노든은 만났다. 이제는 완벽히 '둘만'이 되었다. 그들은 그저 견디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수많은 '긴긴밤'을 함께 보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것이 다른 우리가 서로밖에 없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그때는 몰랐었다."
"우리는 긴긴밤을 넘어, 그렇게 살아남았다."
"어느 날 밤, 나는 노든의 이야기를 들으며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다가 문득, 오늘이 노든과의 마지막 밤이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노든의 눈을 쳐다보며, 눈으로 그것을 노든에게 말했다. 노든도 그것을 알았다. 우리는 오래도록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서로밖에 없던 그들은 때가 되자 또 각각 홀로가 되었다.
"두려웠다. 하지만 나는 내가 저 바닷속으로 곧 들어갈 것을, 모험을 떠나게 될 것을, 홀로 수많은 긴긴밤을 견뎌 내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아마도 노든은 곧 소멸했을 것이고 이름없는 그 '1인칭'은 홀로 서며 또다른 누구에겐가 다행인 존재가 되어주었을 것이다. 초반에 코끼리 할머니가 예언했듯이. 이것이 생명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라고 작가는 말하고 싶은 것인가.

작가는 우리에게 동물종을 넘어선 큰 사랑과 책임감을 보여줬다. 그럼으로써 죽는 순간까지 삶이 얼마나 숭고한지 느끼게 해줬다. 그 숭고함으로 살아남은 자가 자기의 삶을 귀하게 여길 수밖에 없음을 감동적으로 보여줬다. 삶이 한없이 가벼워지고 관계 또한 삭아버린 실처럼 위태한 이때에, 삶에 대한 이토록 둔중한 성찰은, 관계에 대한 이토록 거대한 의미부여는 독자들에게 어떻게 다가가게 될까?

가볍지 않은만큼 쉽게 들어갈 순 없을 것이라고 난 생각한다. 이 책 전반을 누르고 있는 무게는 그것 때문이라고. 그 무게를 견디고 자신을 꺼내놓을 의향이 있다면 이 책의 나눔은 아주 귀한 시간이 될 것이다. 아이들과 이 책을 천천히 읽고 그 힘겨운 여정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감동을 나누는 시간.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하겠지만 멋진 도전이 될 것 같다. 어쩌면 아이들은 쉽게 감동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져온 삶의 무게만큼만 쉽게.

처음보는 작가인데 미술을 전공했다고 한다. 미술을 전공한 동화작가 몇 분을 알고 있다. (유승희 님, 김태호 님 등... 아 안면이 있다는 말은 아니고) 자기 글에 이렇게 멋진 그림을 그릴 수 있다니 얼마나 큰 복을 타고난 것인가. 부럽다..... 탄식하며 이분의 그림책을 찾으러 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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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굽는 빵집 상상문고 12
김주현 지음, 모예진 그림 / 노란상상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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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기시감이 느껴질 것 같은 제목이었다.
빵집, 떡집, 가게, 식당.... 이런 곳에서 판타지가 일어나는 책이 너무 많아서... 이제 내용도 머릿속에서 섞여버린 느낌이다. 하지만 요즘 아주 잘나가는 책인지 알라딘 대문에 뜨기도 하고, '시간을 굽는' 이라는 제목도 관심이 가서 구입해봤다. 기시감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건 소재의 동일성 때문에 그렇고, 작가는 또다른 이야기를 하고 계시다고 느꼈다. 그건 '나만의 소중한 시간' 이라고 할까.

붙잡고 싶은 때의 기억과 느낌을 담아 빵을 굽는다면, 나는 어떤 순간을 선택할까? 그러고보니 <원더풀 라이프>라는 일본 영화가 떠오르네. 영화에선 빵이 아니고 영상이었지만. 이 책에서 "빵은 평생 한번만 구울 수 있다."고 했다면 그 영화의 느낌과 더욱 비슷했을 것 같은데, 그런건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다시는 기회가 없는 한 번뿐인 상황으로 펼쳐졌다면 나는 피곤했을 것 같다.^^;;;

만길이라는 다소 옛스런 이름의 열 살 주인공 아이는 전학 온 날 지율이라는 예쁜 아이와 짝이 된 행운과 동시에 원숭이라는 녀석에게 찍히는 불운을 함께 겪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날 털레털레 가던 길에 무심코 끌려 다가간 작은 빵집엔 군침나오는 갖가지 빵과 향긋한 빵냄새가 한가득... (이 부분은 약간 기시감이^^) 이 빵집에선 자기가 주문한 빵만 먹을 수 있다고 했다. 자기가 기억하고 싶은 시간의 맛과 향과 촉감을 빵에 담아 반죽하면 그걸 빵집 아저씨가 구워 주시고, 그 빵을 먹은 고객은 그때의 그 기분을 되살릴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아이는 첫 골을 넣었을 때의 기분을 넣은 '짜릿한 첫 골 슛 도넛'을 먹고 다시 환호성을 지르며 세러머니를 했고, 다른 아이는 '개뼈다귀 카스텔라'를 먹고 지금은 세상에 없는 개의 포근함과 따뜻함을 느끼기도 했다.

솔직히 내게는 전혀 매력있는 판타지가 아니었다. 그래서 어쩌라고? 지금은 그때가 아닌데, 그 기분만 느껴서 뭐하라고? 일종의 마취와 같은 것 아닌가? 이런 빵집이 우리 옆집이라도 나는 전혀 사먹지 않을 것 같은데...ㅎㅎ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읽는다면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긴 하다. 너희들은 어떤 기억을 빵으로 굽고 싶니? 그러면 서로의 소중했던 순간의 이야기들을 공유할 수는 있겠다.

추억의 빵을 굽는 것으로 이 책이 끝나진 않는다. 만길이가 아직 무슨 빵을 구울지 정하지 못하는 사이에 행복한 기억이 아닌 분노의 순간을 빚어 곱씹는 누나의 사연을 엿보기도 하고, 만길이가 상처주었던 여자아이가 주문했던 쿠키에 담긴 기억은 무엇이었는지 알게 되기도 하고.... 그러면서 이야기는 좀더 다각도로 확장된다. 마지막으로 만길이가 만드는 빵은 차원이 한 단계 달라지며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그건 과거의 추억에서 미래의 희망으로 나아가는 전환이었다. 이 지점에서도 아이들과 나눌 이야기가 생생하겠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을 말한다면, 주인공이 열 살인 것보다는 한 살쯤 높였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했다. 보통 주독자를 주인공 연령으로 잡는다고 할 때, 3학년짜리의 말투는 아닌 것 같아서다. "닳아서 덜렁거리는 신발 뒤축 같은 날이다." 투의 말을 3학년 화자가 한다는게 좀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3학년과 4학년이 크게 다르진 않지만 그래도... 그리고 아이들은 주인공 연령이 자기보다 높은 건 괜찮게 여기면서도 낮으면 '애들 책'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또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주전자' 라는 소재였다. 주전이 아닌 후보선수의 신세를 그렇게 부르는데, 그건 이제 우리 세대의 지나간 용어가 아닐까? 요즘 애들이 주전자를 알까? 학교 교실에서도 주전자는 사라진지 오래다. 후보선수라고 주전자를 들고 따라다닐 리가 없으니 약간은 시대착오적(?)인 소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는 이런저런 사소한 걸림도 살짝 있긴 했지만 그래도 아이들 입장에서 보면 괜찮은 책일 것 같다. 중학년에게 권할 동화를 찾다가 요즘 핫한거 같아서 사서 읽었는데, 중학년 교실에서 읽고 상상과 함께 표현활동하기에 무난한 책이겠다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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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가 온다, 플라스틱 와이즈만 미래과학 11
김성화.권수진 지음, 백두리 그림 / 와이즈만BOOKs(와이즈만북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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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가 온다 시리즈가 열 권이 넘어간다. 놀라운 것은 저자가 동일하다는 것. 보통 이런 시리즈들은 각 분야별로 다른 저자들이 집필하지 않나? 두분 다 과학전공자들이고 오랜 세월 어린이 과학책을 함께 써오셨지만 그래도 이번 작업은 놀랍다. 같은 과학이라도 세부 전공으로 들어가면 영역이 다를텐데,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연구해야 이런 작업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어린이책이라고 해서 조금만 알아도 쓸 수 있는건 아니니까.

게다가 저자들 특유의 입말체로 어려운 내용을 지루하지 않게 흥미를 유지하며 이끌어가는 방식이 여전히 빛을 발하는 점 또한 대단하다. 바로 그것 때문에 이 저자들 책의 애독자가 되었는데, 아직도 유효한 그 센스가 반갑다. 이 책에는 그림이 있긴 하나 많지는 않고 총천연색도 아닌데, 강조되는 글자디자인만으로도 빨려들어갈 때가 많았다. 서술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운 책. 내가 생각하는 이분들 책의 장점이다.

이번 권은 플라스틱을 다룬다.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정확히 아는 사람도 많지 않은 게 플라스틱 아닐까. 플라스틱의 등장은 화려했다. 아니 지금도, 플라스틱이 고마운 존재인 것은 사실이다. 플라스틱은 너무나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그러나....

지금은 '플라스틱 시대'라 할 정도로 거의 모든 소재가 플라스틱으로 바뀌었다. 뿐만아니라 그 엄청난 수요와 편리함 때문에 무시무시한 양이 생산되고 소비되며 버려진다. 여기서부터 그의 장점은 치명적 단점으로 바뀐다. 썩지 않는 것. 그래서 그 엄청난 생산량은 다 어디에선가 쌓인다. 상당량이 바다로 흘러가 바다 생태계를 망치고 있어 큰 문제다. "그건 거의 불멸의 존재야!"라고 플라스틱을 표현하는 대목에서 소름이 돋았다. 모든 물질은 최소한으로 쪼개지면 다른 물질이 되는데 플라스틱은 영원하다. '미세 플라스틱'이라는 이름으로. 내 안에 있는, 또 내가 매일 섭취하는, 내 주변에 가득한 미세 플라스틱을 생각하니 마음이 답답해 온다.

이렇듯 위험성에 대한 경고도 물론 좋았지만 이것만으로는 다른 책들과의 차별성이 있다고 하기 어렵다. 이 책에서 특히 좋았던 것은 플라스틱 자체에 대한 정보였다. 플라스틱 재활용이 생각보다 너무 안되고 있다고 하는데 그건 플라스틱의 종류가 많기 때문이다. 그 종류와 표기에 대한 정보가 유용했다. 마침 마시고 있던 탄산수의 병을 보았더니 PETE와 HDPE로 되어있었다. 안봤으면 무심코 버렸을텐데, 라벨의 비닐을 따로 떼어냈다. 학급에서 아이들과 한가지씩 가져와서 표기를 살펴보고 분류 실습을 해봐도 좋을 것 같다.

플라스틱 분자에 대한 설명도 흥미로웠다. 분자구조에 대한 설명과 그림이 아주 잘되어있었다. 거대분자(고분자 물질)에 대한 설명도 흥미로웠다.
(여기서 잠깐 오타발견. 60쪽의 본문과 그림에서 사람 이름이 다르게 적혀 있다. 페트병을 만든 사람 와이어스.)

앞이 깜깜한 걱정이 가득찬 중에, 마지막 장에서 바이오 플라스틱에 대한 내용이 나와 가느다란 희망을 가져본다. 어떤 희망이 나오지 않는다면 지구는 플라스틱에 뒤덮여 멸망하지 않겠는가. 그밖에 여러가지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인간이 뭘 손대서 지구에 유익한 일을 한 적이 없으니 과연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할 발명이나 발견은 이루어질지 모르겠다. 꼭 이루어져야만 하는데......!!

마지막으로 국제 해변 청소의 날에 동참해 보길 제안하며 책은 마무리된다. 해결을 위한 연구가 이루어지고는 있으나 아직 현실로 다가온 일은 아니기 때문에 주변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뭐든 해보는 것이 첫걸음이라는 뜻이겠다.

이 책은 중학년용으로 분류되어 있으나 고학년에게 권해도 좋겠다. 쉽게 설명하고는 있지만 분자 등에 대한 내용은 고학년에게 맞는 내용일 것 같다. 쉽고 흥미있게 서술된 면에서 보면 중학년에게 권할 만도 하다. 4~6학년 대상으로 추천하고, 플라스틱을 주제로 수업하실 선생님께도 내용구성을 위해 읽으시면 좋겠다고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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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살 내 인생 씨앗읽기
이옥선 지음, 김도아 그림 / 바나나북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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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 살 내인생 쯤이면 어땠을까 싶다. 한 살이라도 더 올리고 싶어하는 이 마음은 열살짜리들의 인생이라기엔 넘나 힘겨운, 나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그들의 고통을 같은 나이의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서다.

하지만, 닥치면 겪는게 인생이다. 나이와도 상관없다. 이 책의 열 살 주인공은 두 명이다. 입양아인 재혁이와 신장이 망가진 우주. 둘이서 한 챕터씩 번갈아가며 화자가 되는 형식이다.

재혁이의 인생이 가시밭길이라고 생각되진 않는다. 오히려 참 복받은 아이라는 생각이든다. 자신만 마음을 편하게 먹으면 앞으로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 좋은 부모님에게 입양되었고 사랑받으며 자라고 있으니까. 지금 재혁이가 겪고 있는 마음의 고통은 동생이 태어난 것 때문이다. 난임이던 부모님이 드디어 친자식을 낳았다. 재혁이는 불안하다. 사랑을 뺏길 것 같아서. 충분히 이해되는 마음이다. 실제 이런 사례들이 있고 파양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재혁이의 불안함은 교실에서 난데없이 소변실수까지 하게 만든다. 친구들의 놀림까지 받게 되니 상황은 최악이다. 하지만 그걸 보고 "넌 좋겠다." 라고 말하는 아이가 있다. 오줌을 누는 것이 소원인 우주.

우주의 신장은 고칠 수 없게 망가졌고 그 힘들다는 혈액투석이 일상인 삶이 되어버렸다. 극히 제한된 식단으로 식사를 해야하고 아무거나 먹었다간 바로 퉁퉁 붓고 난리가 난다. 투석실에서 만난 민호 형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당뇨 합병증인 케이스라 신장 뿐 아니라 실명의 위험까지 앞에 있다. 이런 내용을 읽으면 가슴이 저릿저릿하다. 나나 자식이 이런 일을 겪으면 견딜 수가 없을 것 같다.ㅠㅠ 하지만 이 책의 누구도 징징거리거나 비탄에 빠지지 않는다. 책의 전체 분위기도 그렇게 슬프지 않다. 두 아이는 그냥 그또래 아이들이다.

같은 반인 두 아이는 병원에서 마주쳤다. 재혁이는 엄마 병원에 갔다가, 우주는 투석하러 갔다가. 그러잖아도 교실에서 서로 편들어주는 마음이던 두 아이는 서로를 더 이해하고 가까워진다. 재혁이는 엄마아빠의 마음을 확인하고 눈물을 쏟는다.
"가슴으로 낳은 거나 정말 그냥 낳은 거나 엄마 아빠 마음은 똑같아."
"정말이지?"
"정말이고말고. 어떻게 다를 수가 있겠어."
입양 같은 건 꿈도 꿀 수 없는 나는 정말 그게 같을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재혁이 열살 인생은 나쁘지 않다. 좋은 부모님을 만났으니까.

문제는 우주. 투석으로 버티는 삶이지만 조금씩 더 시도해보며 기운을 낸다. 재혁이네 집에 놀러도 오고. 우주의 남은 희망은 신장이식. 신장이 두 개 있다는 말을 재혁이는 처음 듣고 "그게 정말이야?" 하며 깜짝 놀란다.
"너한테 내 신장을 줄 수 있을까?"
마지막장의 대화다. 울림이 출렁했다.
"열 살 우리 인생, 힘든 일도 있었지만 앞으로가 더 기대돼요!"

겨우 10년 산 이 아이들의 앞날에 얼마나 고난이 더 많이 남아 있을까. 하지만 작품의 빛깔이 회색이 아닌 것이 난 신기했다. 나보다 더 단단하고 멋진 열 살 인생들. 희망이 꼭 있을거라 믿게 되는 결말.

마지막으로 주요 인물은 아니지만 내내 마음이 쓰였던 민호 형. 여친까지 밀어내고 혼자 견디던 민호 형에게 여친이 다시 찾아온 장면이 있었다. 제발 눈을 잃지 않게 되기를... 실제 인물이라면 기도해 드리고 싶었다. 우리 **살 인생들! 얼마나들 힘든가요. 마음 한자락씩 서로 기대고 버텨요.

처음에도 말했지만 이 책을 열살(3학년)과 읽기는 좀 빠를 것 같고 4,5학년 정도가 어떨까 생각한다. 물론 개인의 독서수준은 편차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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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제일 달고나 만화동화 1
황선미 지음, 박정섭 그림 / 주니어김영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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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은 2020년을 어떻게 작품으로 남길까? 궁금했다.
일상의 많은 소재들이 작품이 되는데, 우리를 송두리째 흔들었던 코로나의 1년이 소재가 되지 않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년으로 끝나면 좋았는데, 그렇지가 않으니 앞으로도 더 나올 것 같다는게 슬픈 점이다.ㅠㅠ

처음 발견한 작품은 황선미 작가님의 책이다. 제목만으로는 코로나 시대 이야기인지 짐작할 수 없다. <세상에서 제일 달고나> 익살스런 표지를 봐도 그런 느낌은 없다. 아참, 그림은 <감기 걸린 물고기>를 지으신 박정섭 작가님이 그리셨다. 이 책은 '만화동화'라고 책등에 쓰여있는데 분량 면에서 만화의 비중이 높진 않다. 하지만 느낌을 주는데는 큰 역할을 한다. 난 <숭민이의 일기> 시리즈를 읽어서 이분 그림체에 익숙하다. 만화를 빼도 이야기는 되지만 만화가 있어 더 재밌어지는 책. 그런데 코로나 이야기. 제목은 달고나?!

화자는 1학년 이새봄이다. 1학년에게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났나? 첫장면부터 새봄이는 TV 앞에 앉아있다. 물론 교육방송을 보기 위해서지만 아이는 다른 것도 본다. 그때 유명인들이 자녀와 놀아주는 프로그램이 나오고 거기서 어떤 아빠가 달고나를 만들어준다. 부러운 새봄이.

새봄이 아빠는 여행작가였는데 어디선가 발이 묶여 못들어오고 있다. 엄마 혼자 가정 경제를 책임지고 있는데 큰맘먹고 열었던 미술학원은 지금 개점휴업 상태다. 어쩔 수 없이 엄마는 학원에 '급임대'를 써서 붙이고 알바자리를 구한다.

드디어 새봄이가 학교 가는 날! 나도 그날이 생각나 만감이 교차한다. 준비하고 또 준비하고 전날엔 깜깜할 때 퇴근, 당일은 깜깜할 때 출근했는데도 얼마나 불안하던지. 아이들이 마스크를 제대로 쓰지 못할까봐, 거리두기를 지키지 못할까봐, 급식 먹을 때 위험할까봐.... 또 수업은 예전과 같은 활동으로 구성할 수 없었고 아이들 활동을 못시키니 마스크를 쓰고 나혼자 떠들어야 했고, 황사때도 마스크를 쓰지 않던 나는 숨이 차서 녹초가 됐고.... 하지만 이 모든 건 교사의 입장이었다. 아이들의 입장은 이 책을 보면 알 수 있다. 책상이 다 떨어져 있어 짝꿍이 없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 친구 얼굴을 모르고, 가까이 붙을라치면 큰일난듯 선생님의 목소리가 날아오고...

그와중에도 아이들은 학습꾸러미로 받았던 강낭콩의 싹을 틔웠고, 투명한 가림막이 쳐진 급식실에 가서 밥을 먹으며 비로소 친구의 얼굴이 저렇구나 알게됐다. 그리고 중요한 인물, 새봄이 반엔 웬 할머니가 계셨다. 문맹이신 만학도 장갑분 할머니. 할머니는 1학년 동급생(?)들에게 공기 시범도 보여주시고 '꿈' 이야기도 해주신다. 할머니의 꿈은 뭘까?

엄마는 달고나를 만들어 까페 알바 면접을 통과해 취직하게 됐다. 그리고 '급임대' 글자를 써놓은 미술학원 유리창에 좀더 다양한 걸 붙이기 시작했다. 그림과 함께 "모두 안녕하셔야 합니다!"와 같은 글귀들. 거기다 새봄이가 그린 그림들까지. 엄마는 그림에 대한 갈증을 이 유리창에 풀었던 걸까. 화려한 전시회도 아니지만 대중들과 소통한 그림. 그림 앞에 머물다 가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찡하구먼!"
중얼거리며 돌아서는 아저씨. 엄마의 그림엔
- 친구가 있다는 걸 기억해요!
- 달고나처럼 달달하기
- 그리고 조금만 부서지기
같은 글귀가 쓰여있었고, 어떤 이들은 사진을 찍고 어떤 이들은 답문이라 할수있는 포스트잇을 붙여놓고 갔다. 사람들은 그렇게 기대며 견디고 있었다. 물론 거리두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기대진 못하지만...

가장 쓰고 힘든 현실과 최강의 달달함 달고나의 대비는 인생의 아이러니라고 할까 작가가 보여주는 희망이라고 할까. 2021의 교실에서 우린 어떤 '달고나'를 만들 수 있을까.

까막눈 할머니가 엄마 까페의 사장님이었다는 반전은 예상된 반전이기도 하지만 가능성이 매우 희박한 반전이기도 하다. 그정도면 글은 배우지 않으셨을까 싶은데....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니. 할머니와 함께 마시는 달고나우유, 그리고 아직도 남은 할머니의 꿈을 바라보며 만날 늙었다고 한탄하는 나도 꿈을 찾아봐야 할 것 같다.

내년에 죽는다 해도 올해 꿈을 만들 순 있는 거야.
2021에는 교실다운 교실을 만들어보고 싶어.
마스크 안쓰고 마음껏 살아보고 싶어.
함께 견디는 많은 사람들이 있어.
달고나는 나눠먹어야 제맛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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