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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의 재발견 - 다산은 어떻게 조선 최고의 학술 그룹을 조직하고 운영했는가?
정민 지음 / 휴머니스트 / 2011년 8월
평점 :
정민 선생님의 글을 소리 내어 읽으면 글 읽는 맛이 참 좋다.
거짓말처럼 정말 단어들이 책 밖으로 튀어 나와서 춤을 추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죽비소리>의 좋은 글귀는 지금도 발취하여 수업시간에 종종 학생들에게 들려준다.
정민 선생님과의 첫 만남은 <책읽는 소리>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딱 든 느낌은 ‘어려운 고전의 글도 이렇게 알게 쉽게 읽을 수 있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가슴 벅찬 감동이었다. 이 책 이후 정민 선생님의 글에 깊은 매력과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연암 박지원의 이야기를 풀어쓴 <비슷한 것은 가짜다>는 충격이었다.
원문의 감칠맛 나는 맛깔스러운 번역과, 어려운 연암 글에 대한 쉬운 풀이는 삼척동자 아니, 비전공자라고 하더라도 연암에 대해서 조금의 관심만 있다면 누구나가 다 ‘아~ 그거였구나!!’ 하면서 저절로 고개를 끄떡거리면서 읽을 수 있는 그런 책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정민 선생님이 연암이 아닌 다산과 소통을 하고 계셨다.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의 출간이 아마도 그 시발(始發)이었던 것 같다.
연암 연구에 몰두하다가, 2005년 안식년을 떠나면서 다산과 만나게 되었다고 했다.
다산과 만남 직후 다산의 학문과 그 사상, 열정, 매력에 아마도 단단히 빠져버리신 듯 했다.
“연암은 들여다보면 볼수록, 다가가면 갈수록 높고 큰데 비해
다산은 들여다보면 볼수록, 다가가면 갈수록 넓고 깊다.”고 하셨다.
연암이 태산이었다면, 다산은 바다였던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다산은 정조의 브레인이면서 최측근이었다.
그런데 1800년 6월 정조가 갑자기 승하해 버린다.
다산은 자신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기둥이었던 호학(好學)의 개혁 군주인 정조(正祖)의 사후(死後) 가까스로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기나긴 귀향길에 오르게 된다.
무려 18년이란 세월동안 전라남도 강진이라는 궁벽한 곳에서 삶을 이어나갔다.
다산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좌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곳에서 유배생활을 하며 엄청난 공부를 하게 되고, 지적 결과물을 창출해 낸다.
다양한 제자그룹도 만들었고, 다양한 인물들과 멋진 교류도 가졌다.
정민 선생님은 이를 두고 “개인에게는 불행이었지만, 조선의 학문을 위해서는 축복의 시간이었다”고 하였다.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실로 어마어마한 “18세기 조선의 모든 것이 총 망라 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불후의 저작이었다.
다산의 18년, 아니 평생의 내공이 이 책 속에 오롯이 담겨 있었다.
그런데 간혹 잘 이어지던 이야기가 갑자기 툭 끊어지고, 또, 어떤 글은 전후만 있고, 중간이 없거나, 또 어떤 것은 부분부분이 잘려져 나간 것도 있었다.
정민 선생님께서는 의문을 가졌다. 분명 어딘가에 문집(文集)에서 결락(缺落)된 내용의 자료들이 존재할 것이라 믿었다.
정민 선생님은 다산의 끊어지고, 잘라져 나간 이야기들의 파편과 흔적들을 쫓아다니기 시작했다. 다산 관련 자료와 친필이 있다는 말만 들으면, 조선팔도 어디든 찾아갔다.
그렇게 5년이란 세월동안 오직 다산만을 쫓아다녔다.
그 결과물로 탄생된 책이 바로 <다산의 재발견>이란 책이다.
이 책은 저자가 다산의 자취를 찾아 헤맨 여정에서부터 시작된다.
다산 관련 자료를 만나게 된 과정과 자료를 손에 넣는 과정에서의 어려움과 우여곡절 등 사연들이 서설부분에 구구절절하게 기술되어 있다.
한 학자의 다산에 대한 그리움과 학문적 열정 등을 이 장을 통해서 고스란히 들여다 볼 수 있다.
새로운 자료의 출현 소식만 들리면 전국 어디든 직접 찾아가서 어렵사리 자료들을 손에 넣었다.
대부분의 자료가 보물(寶物)이다 보니, 소장가가 선뜻 보여주며, 공개하는 것을 꺼려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포기하지 않고,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마음으로 소장자에게 끝끝내 정성을 다해 소장가 스스로 자료를 내놓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들었다.
선생님의 갖은 노력과 끈질긴 열정, 집념으로 얻어낸 자료를 우리는 이 한 권의 책!!
<다산의 재발견>을 통하여 참 쉽고 편하고 들여다보는 셈이다.
정민선생님의 자료에 대한 열의는 여기서도 확인할 수 있다.
존재여부가 불투명 한 자료에 대해서도 단서만 있다면, 우선은 일단 추적했다.
소장기관의 담당자들조차도 미처 몰랐던 자료들을 단 하나의 단서(분명이 있다는 믿음.)만 가지고 끝까지 추적해서 기어이 자료를 손에 넣고야 말았다.
<다산송철선증언첩>이 바로 그 자료다. 이 자료를 찾고 쫓는 과정은 요즘 흥행하는 뮤지컬 탐정 셜록홈즈를 보는 듯한 착각마저도 들게 만들었다.
그만큼 흥미진진한 스릴이 있었다.
그렇게 어렵사리 구한 자료들은 대부분이 초서로 쓰인 글들이었다.
먼저 탈초하여 초서의 한자들을 정자(正字)로 옮긴다면, 정리하고 해석해서 분석을 하고 논문으로 작정하였다. 그리고 매 논문 뒤에 번역한 원문과 해석을 실어서 독자의 이해를 돕고 나아가 어렵게 구한 원본자료들까지도 과감하게 흑백이 아닌 컬러사진으로 실어서 독자들의 지적 호기심과 시각적 호기심을 만족시켜 주었다.
독자에 대한 애정과 배려, 정성이 없다면 결코 할 수 없는 일이다.
다산 관련 새 자료를 발굴하고 모아서 쓴 논문 22편이 모여 이 책을 탄생시켰다. 즉 지난 5년이란 시간동안, 학회지에 발표한 다산관련 논문들을 추려내어 한데 모아서 엮은 것이다.
<다산의 재발견>은 조선후기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정치 등 문화 전반에 걸친 ‘인간 다산의 재발견’이라 할 수 있다.
(이 서평은 Humanist 출판사로부터 무료로 제공 받아서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