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내추럴해지는 방법 - 와인과 삶에 자연을 담는 프랑스인 남편과 소설가 신이현의 장밋빛 인생, 그 유쾌한 이야기
신이현.레돔 씨 지음 / 더숲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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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의 꽃은 술이다."
이 말은 레돔과 그의 와인 메이커 친구들이 늘 하는 말이다. 누가 한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명언이다. 태초에 농부가 비바람과 뙤약볕 아래 허리를 구부려 일하는 것은 무엇보다 배를 채우기 위한 것이다. 한 톨의 쌀과 밀은 생존에 꼭 필요한 것이라는 경건함이 있다. 그러나 농업의 끝은 여기가 아니다. 인간이 배를 채운 뒤 처음으로 술을 마시게 되었을 때 그 기분이 어땠을지 상상하면 입가에 미소가 감돈다. 얼마나 설레고 즐거웠을까. 술은 그런 것이겠지. 생존이 아닌 휴식과 즐거움을 위한 액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문학도 그렇다. 둘 다 생존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술 안 마셔도 살 수 있고, 글 안 읽어도 잘 살 수 있다. 살기 위한 것이 아닌 가외의 즐거움을 위한 것이다. 술을 빚거나 소설을 쓰는 사람들은 인생 무용지물의 아름다움에 취한 사람들이다.

- P25

세상을 바꾸기 위한 글도 있고 삶을 개척하고 인격을 함양시키거나 지적 수준을 높여 주는 등의 실용적인 글도 있지만, 문학의 순수한 존재 가치는 나만의 조용한 기쁨을 느낄 때다. 침대맡에 앉아 두꺼운 소설책을 읽으며 밤새 인물들을 따라가는 것은 생존과 관계없다. 술을 마시는 것 또한 그렇다. 무용한 즐거운 짓에 빠지는 것이다. - P26

"사람들은 머리 위 하늘은 자주 보면서 ‘아, 하늘이 맑아서 참 좋아!;감탄하며 즐거워하지.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아? 하늘은 그토록 좋아하면서 왜 발밑의 땅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지 모르겠어. 하늘 보듯이 땅도 좀 보면 안 되나? ‘아 땅이 포슬포슬 건강하고 귀여워서 너무 좋아!‘ 이런 말 좀 하면 안 돼?" - P66

사람들은 향긋하지 않은 와인을 용서하지 않겠지만 농부는 안다. 포도는 인간을 위해 늘 상냥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 P130

그는 이 언덕에 살다가 사라진 모든 나무를 아쉬워한다. 특히 늙은 떡갈나무는 미생물을 폭발적으로 많이 가지고 있어 주변의 병든 식물들을 치유해 준다고 한다. 식물들의 뿌리는 본능적으로 떡갈나무가 있는 곳으로 향해 가는데, 거기에 가면 온갖 좋은 박테리아들을 만날 수 있다고 한다. 말하자면 온갖 전통요법을 알고 조제해 주는 동네 할아버지와 같은 존재인 것이다. 아이가 아프면 무조건 동네 할아버지를 찾아가는 엄마처럼 식물들도 몸이 아플 때는 떡갈나무 할아버지를 찾아가는 것이다. - P219

의사를 전달하는 것만이 언어의 목적은 아니다. 그것을 가지고 춤을 출 수 있어야 한다. 먹고사는 데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프랑스어로는 내 맘대로 까불 수가 없으니 물고기는 늘 헐떡거리며 목이 말랐다. 프랑스가 아무리 좋다 해도 한국이 아무리 살기 힘들다 해도 이곳에 돌아오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언어다. 모국어를 다시 찾아 그 강에서 헤엄치는 즐거움을 누리고 싶었다. - P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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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arthian Tales 어션 테일즈 No.3 - Be My IDOL
김보영 외 지음 / 아작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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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독자가 ‘모른다‘고 가정하고 글을 쓰는 태도는 곤란하다고 본다. 독자는 작가보다 많이 안다. 단지 집중하지 않을 뿐이다. 중학생도 이해할 수 있게 쓰라는 말은 정확하지 않다고 본다. 그보다는, 당신이 하는 말에 아무 관심이 없으며, 그래서 집중할 마음이 조금도 없는 사람도 귀를 기울이고, 그러다 자기도 모르게 이해하도록 쓰라는 말이 정확할 것이다 . - P19

얼마 전 지브리 스튜디오 프로듀서가 쓴 콘텐츠의 비밀이라는 책에서 재미있는 내용을 읽었다. 저자는 지브리에 입사한 뒤 회사에서 ‘정보량을 조절한다‘라는 말을 계속 듣는다. 정보량이 많으면 사람들이 여러 번 다시 찾는 작품이 되는데, 대신 어려워져서 아이들이 보기 힘든 작품이 되므로 정보량을 조절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사람이 "그런데 정보량이 뭡니까?"하고 묻자, 다른 프로듀서가 "그림의 정보량이란 선의 수입니다."하고 간명하게 답한다. 말하자면 그림에 선의 수가 많으면 정보량이 많아진다. - P21

인간이 한 번에 기억할 수 있는 정보의 수는 극히 적으며, 수월하게 기억할 수 있는 정도는 1-2개로 보는 편이 좋다. 그렇다면 어려움의 관건은 정보의 내용보다 수라는 가설은 매우 그럴듯하다. - P21

제 글을 쓰면서도, 다른 분들 글 읽는 심사 하면서도 뼈저리게 생각했던 게 있어요. 요즘처럼 아무도 책을 읽지 않는 시대에 굳이 책을 찾아 읽는 독자들은, 작가보다 몇 수 위예요. 작가로서 제가 알고 있는 걸 독자들은 이미 다 간파하고 있죠. 트릭, 기법, 반전이랍시고 집어넣는 것들, 모두 다, 그래서, 독자들을 깜짝 놀라게 하겠다거나, 상상력을 뛰어넘겠다거나, 머리싸움에서 이기겠다는...그런 야심은 좀 버리시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해요. 그런 욕심을 가진 글은 너무 뻔히 의도가 보이기도 하고, 심지어 실현도 불가능해요. 길 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아도 그 분이 저보다 이야기의 트릭을 잘 알고, 백 배 천 배 똑똑해요. 게다가 작가가 글을 아무리 잘 써도 화려한 시각효과, 넷플릭스와 유튜브를 이길 순 없죠. 그러니 베스트셀러의 꿈도 버리시는 게 현명하겠지요. 그런 시대예요. -황보라 - P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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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즈워스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10
싱클레어 루이스 지음, 이나경 옮김 / 휴머니스트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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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은 사람을 사귀면 자랑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를 확인시키기 위해 자기 업적을 전부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미국인 특유의 열망을 지녔다.

"자동차를 만들었습니다. 레벌레이션이요. 이제 그만두고 세상을 둘러볼 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도즈워스라고 합니다." - P64

새로운 것은대체 무엇인가? 그림? 엔진에 관해 지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데 그림에 관해 어눌하게 이야기할 까닭이 있을까? 언어? 할 말이 없는데 3개국어를 할 줄 아는 게 무슨 소용인가? 예절? 팰맬에서 스치던 잘난 귀족이나 공직자가 궁전에 으스대며 들어갈 수 있을지는 몰라도 샘은 궁전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고작 왕이라 불릴 권리를 물려받은 사람보다는 유닛의 앨릭 키넌스(미국의 사업가)가 더 존경스러웠다! - P95

자네, 자네 자신이 미국에서 더 행복한지 유럽에서 더 행복한지 마음을 정하고 거기서 지내게! 나는 유럽 카페에 가서 웨이터들에게 햇볕이 드는 자리를 달라고 사정하는 것보다는 유럽 은행가들이 찾아와 대출해달라고 사정하는 게 더 좋네! - P266

벌 수 있는 돈은 한 푼 빠짐없이 번 사람이 이런 말을 하면 우스울지 모르겠지만... 브렌트, 나는 늘 뭔가 만들고 싶었다. 은행예금 말고도 뭔가 남기고 싶었어. 네가 채권을 팔면 그러지 못할까봐 걱정된다. 채권이 나쁘다는 건 아니야. 그건 알지! 보기 좋은 그림도 찍혀 있고. 하지만 그렇게 빨리 돈을 벌어야 하....

아버지 때보다 사는 데 돈이 훨씬 많이 들어요. 가져야 할 것도 너무 많고요. 제가 어릴 때는 리무진이 있으면 신이나 다름없었지만, 지금은 요트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돈을 벌고 나면 쉬면서 취미도 가질 수 있죠. 유럽을 구경하고 애국심도 고취하고 그런 거요. - P272

샘은 자신을 포함한 컨트리클럽의 남자 대다수가 술을 너무 많이 마신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술을 너무 많이 마신다는 말도 너무 많이 했다. 잡담에 곁들이는, 즐겁지만 그다지 중요하지 않던 음료였던 술이 금주법 때문에 열광의 대상으로 변했다. 사람들은 술 때문에 초조해졌고, 야한 포스터를 몰래 보는 아이들처럼 술에 매료됐다. - P295

성당 한 곳을 열 번 본 사람은 뭔가 본 것이다. 열 곳의 성당을 한 번씩 본 사람은 별로 본 것이 없다. 그리고 백 곳의 성당에 삼십 분씩 들른 사람은 아무것도 보지 못한 셈이다. 벽에 400점의 그림을 가득 걸어두면 한 점을 걸어놓은 것보다 사백 배 재미없다. 그리고 웨이터의 이름을 알 정도로 자주 가기 전까지는 그 카페를 제대로 아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여행의 법칙이다. - P332

사실 여행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은 대부분 그 즐거움과 혜택에 관해 거짓말을 하고 있다. 그들은 뭘 보려고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서, 친척과의 싸움에서 벗어나려고 하는데, 결국 새로운 친척을 만나 싸우게 된다. 그들은 생각하는 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솔리테르를 하거나 십자말풀이를 하거나 영화를 보거나 그 밖에 지긋지긋한 일을 찾는 것처럼 할 일을 갖기 위해 여행한다. 도즈워스 부부는 이를 알게 됐지만, 세상 사람들 대부분처럼 인정하지 않았다. - P333

샘은 프랜이 누구 못지않은 진열창을 지녔지만, 안쪽 선반에는 별것 없다고 생각했다. - P341

쿠르트는 고개를 저었다. 국제 여행사에서의 경험 덕분에 그는 관광지를 모으지 않는 미국인, 여행을 가장 많은 박물관에 다녀온 사람이 우승하는 토너먼트로 여기지 않는 미국인을 상상하지 못했다. 미국인들이 독일인을 모두 매일 저녁 맥주를 마신다고 생각하듯잉 그는 미국인은 모두 가이드북에 나온 장소를 전부 다녀와 표시한다고 믿었다. - P354

‘뭔가 하겠다‘는 막연한 결심과 ‘뭔가 할 수 있다‘는 믿음은, 근본적으로 술 취한 사람의 맹세와 같을까? - P380

샘은 그녀의 눈이 실은 매정한 것이 아니라 지적이라고 판단했다. - P461

그런데 왜 유럽에서 지내십니까?

아...미국이 두려운 것 같아요. 거기선 불안하거든요. 다들 절 지켜보고 있다가 제가 ‘중요한 일을 하자‘고 하지 않으면 비난하는 느낌이에요. 영화관을 세우거나 아인슈타인을 공부하거나 브리지 게임에서 우승하거나 슈나우저를 교배하거나. 그리고 미국에는 사생활이 없어요. 저는 사생활을 누리는 데 있어서는 사치스러운 여자랍니다. - P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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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인생 열린책들 세계문학 275
카렐 차페크 지음, 송순섭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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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인생의 항로는 크게 보아 두 개의 힘으로 진행되며, 습관과 우연이 그것이다. - P67

절약이란 수동적인 미덕이며 안정된 생활에 대한 희구이자 닥쳐올 미래와 위기와 우연에 대한 두려움이다. - P154

...그러나 잠시 후 그는 다시 나를 부드럽게 바라보았다. 젊음이란 너그러운 것이니까. -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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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사에서 볼 건 호수위에 떠 있는 섬이다. 크게 3개의 섬이 있는데 우리는 일정상 제일 큰 하나의 섬만 볼 수 있었다. 유럽역사에 해박한 것도 아니고 사전공부를 열심히 한 것도 아니라 발길 닿는대로 대충 구글맵 후기를 보는데 isola bella 라는 섬에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면 볼 수 있는 궁전이 아름답다고 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배를 타고 그 섬으로 향했다. 사실 뭍에서 배로 가면 타자 마자 내리는 수준으로 아주 가깝긴 하지만 그 곳에 궁전이 있다니 조금 의아하기는 했다. 아무리 옛날이라도 신하들을 불러들이고 나라를 다스리려면 육지에 궁전이 있어야 하는거 아닌가? 


티켓을 끊고 이게 뭣이냐 하고 들어가 본 궁전은... 시작부터 말이 나오지 않는 아름다움으로 사람을 압도했다. 우선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의 난간부터 폭이 30센티미터는 족히 될 듯한 붉은 대리석을 곡선으로 깎아 만들었는데, 대리석을 판으로 만들어 붙이는 건 많이 보았어도 이렇게 덩어리로 난간을 만든 건 처음 봤다. 엄마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이렇게 말했다. "이 나라가 진짜 옛날에는 스위스보다 잘 살았는갑네. 이것만 봐도 알겠다." 


이어지는 동선으로 침실과 연회장과 초상화를 전시하는 방 등이 이어졌고 모든 방이 그저 탄성이 나올 뿐이었다. 창문이 있는 방에서는 당연히 아름다운 호수의 정경이 펼쳐진다. 베르사유 궁전을 볼 때도 화려하네 돈이 많았네 정도의 감상이었지 이렇게 아름다움에 감동을 받지는 않았는데 왜 그럴까 이유를 생각해보니 이 곳은 사용하는 색채나 질감이 아주 부드럽다. 연한 분홍색이나 하늘색으로 각 방의 벽을 칠하고 화려함은 필요한 곳에 적절히 포인트로 더할 뿐 여기저기 금실이나 보석장식 같은 것을 꽝꽝꽝 덕지덕지 더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고급스럽지 않다거나 돈을 아낀 기색이 느껴지는 건 전혀 아니다. 방마다 대리석 조각을 아낌없이 쏟아부터 각각 다른 디자인으로 만든 한숨이 나올만큼 아름다운 바닥이라던지, 방의 컨셉에 따라 사용한 하늘색 대리석이라던지(하늘색 대리석이 존재한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사진으로 찍으니 연한 회색으로 나와 그 색감이 전혀 전해지지도 않았다) 이 곳에 살았을 누군가의 초상화를 싸고 있는 액자의 섬세함에서 돈을 아낄 생각따위는 일도 없다는게 잘 느껴지기 때문이다. 규모가 베르사유보다 아담하다면 아담한 궁전인 것도 좋다. 누군가의 취향이 드러날 수 있는 정도의 규모, 돌아보는 사람도 지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감탄을 할 기력이 남아있을 수 있는 정도의 규모. 


궁전을 다 보고 나면 거대한 계단식 정원이 나타난다. 정원에는 하얀색 공작 두 마리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보기엔 좋았는데 나는 공작이 그렇게나 경망스럽게 꽤액꽤액 우는 새라는 건 또 처음 알았네. 예쁜거 봐서 좋았고 저녁에 호텔에서 인터넷 검색을 통해 그 궁전이 왕족의 궁전이 아니라 상인의 궁전이라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다. 1300년대에 은행업으로 크게 부를 쌓은 가문의 후계자가 아내에게 선물하기 위해 암석으로 이루어진 섬 위에 짓기 시작한 궁전이고 결국에는 짓는데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려 후대에 걸쳐 완성이 되었다고 한다. 왕족이 아니라 상인의 궁전이라는것마저 로맨틱하게 느껴지는... 이때쯤부터 엄마는 유튜브로 스스로 자신이 방문한 장소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코로나 불경기때 자신이 사는 곳의 유적에 대한 소개 동영상을 올린 여행 가이드 분들이 꽤 많았다. 


스트레사 다음 목적지는 베니스. 스트레사는 스위스 국경과 가까운 곳이기도 하고 작은 동네라 정신없는 이탈리아의 느낌은 없었는데 베니스로 가는 기차로 갈아 타기 위해 밀라노 역에 내렸더니 난리 부르쓰 이탈리아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명확한 동선이랄게 없어서 넘쳐나는 관광객들은 모두 서로가 서로에게 거대하게 뒤얽히며 제각각 지 갈길로 서로를 피하며 가고 있고 기차 플랫폼으로 출입을 통제하는 게이트 같은게 있긴 하지만 그냥 넘으려면 넘을 수 있고(역무원인지 경찰인지도 보기만 할 뿐 제지하지 않음) 철도청 유니폼을 입은 직원에게 다가가 "화장실이 어디에요?" 물었더니 웃으며 "굿 모rrrrrr닝?" 하고 그냥 웃으며 쳐다보고 있고 (정색했더니 자기도 정색하며 손가락으로 가르쳐 줌) 기차시간에 늦을까 달려서 화장실로 갔더니 1유로를 넣어야 들어갈 수 있는 화장실이라 맨손을 간 나는 그냥 다시 기차로 돌아와야 하는...그냥 대환장 파티였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하며 엄마와 동생과 시간이 촉박한 기차에 올라 캐리어를 짐칸에 넣다가 내가 동생에게 물었다. "니 배낭은?" 잠시 멍한 표정의 동생이 답했다. "앞에 기차에 놔두고 왔네." 


우리 기차의 출발시간은 10여분 남짓 남았고 동생은 바로 뛰어나가 우리가 내린 기차를 향해 뛰어갔지만.... 눈 앞에 보이는 역무원에게 영어로 상황을 설명했더니 고개를 갸웃하길래 나는 이탈리아어와 비슷한 스페인어 단어라도 소지질렀다. "볼사!!!(가방) 엔 오트로 트렌!!! (다른 기차에!!!)" "오!" 역무원은 그제서야 눈을 크게 뜨고 비극을 마주친 듯한 격한 표정을 짓더니 자기의 손목시계를 탁탁 치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너희 지금 기차 타야 하고 그 가방을 찾을 방법이란 없다는 뜻인거 같았다. 사실 물어보지 않아도 세상 모두가 아는 일이었다. 이탈리아에서 가방을 잃어버렸다? 찾을 길은 영원히 없으리라. "여권은 가지고 있지?" 다행히 동생의 여권은 배낭이 아니라 앞으로 매는 작은 가방에 들어 있었고 우리는 빠르게 결정, 혹은 포기했다. "일단 이거 타고 가자." 


기차가 달리기 시작했다. 그 정신없고 어수선하고 약간은 남루한 듯도 하면서 또 분명히 풍요로운 땅인 그들의 땅을 배경으로. 



하단부가 바로 그 부내 넘치는 대리석 난간



그저 완벽한 응접실




저 바닥이 자세히 보면 참 예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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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22-07-05 0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화나 유산은 돈이 아무리 많아도 시간이라는 것이 함께 어우러져야 하니 아무곳에서나 볼 수 있는 기술문명의 구경거리하고 다르네요

바람돌이 2022-07-05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드디어 사진이.... 궁전이 진짜 아름답네요.
이탈리아에서 가방을 두고 내렸다. 아마 가도 없을거예요. 그냥 빨리 포기하는게 맘 편한.... 저희도 예전에 일행이 택시에 배낭을 두고 내렷는데 뭐 포기햇어요. 그런데 친구가 진짜 하루씩 지날 때마다 그 가방에 뭐가 있었는지 한개씩 한개씩 생각해내는데 정말 장난 아니게 뭐가 많았더라구요. 돈으로 치면 금액도 장난 아닌..... 그래서 내내 속쓰려 햇었어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