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
장강명 지음 / 유유히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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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펀드 CEO가 과로로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으면 우리는 혀를 끌끌 찬다. 뭣이 중한지 모른다며. 큰돈을 벌게 해주는 직업인지는 모르지만 몸을 해치면서까지 추구할 일은 아니라고 예리하게 알아차리는 것이다. 하지만 소방관의 희생을 우습게 여기는 이는 아무도 없다. 화재 현장이 아니라 훈련 중에 일어난 사고에 대해서도 그렇다. 우리는 슬퍼하면서도, 소방관이라는 직업에는 그럴 가치가 있다고 인정한다. 그 가치는 높은 연봉과는 다른 무엇이다. 종사자의 영혼을 충만하게 하는 것.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해주는 것. 퇴근 뒤에도, 심지어 퇴직 뒤에도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 - P10

내가 우리 우주에 대해 이해하는 한 가지는, 인간이 그곳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 P62

무라카미 하루키는 우리 시대의 문호다. 의심할 바 없이 그렇다. 노벨문학상을 받건 못 받건 간에. 그리고 그런 대작가와 같은 시대를 살면서 그의 경로와 성취를 지켜본 것은 성장하려는 소설가로서 커다란 행운이다. - P142

자신의 욕망을 정확히 깨달으면 자신이 누구인지도 알 수 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덜 흔들린다. - P148

어떤 제목이 좋은 제목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사람이 공통적으로 하는 설명이 있다. 첫눈에 눈길을 끌되 소설 내용을 다 알듯한 느낌은 피해야 하고, 다 읽은 뒤에는 ‘아하, 이런 뜻이구나‘하고 무릎을 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 부르기 좋고 검색하기 쉬워야 한다는 것 등등. 내가 하나 더 보탠다면 본문과의 어울림을 들겠다. 소설 내용이 강건하고 씩씩하다면 문체도 제목도 그런 느낌인 게 좋다. - P209

작가에게 가장 바람직한 상황은 아마 작품이 곧 자기소개가 되는 경우이리라. 무슨무슨 소설을 쓴 사람으로 소개되는 것. 소설가에게 그보다 더한 성공이 있을까. 거기서 더 나아가면 작가와 작품이 동의어가 되기도 한다. "난 요즘 하루키를 읽고 있어."라는 말은 어색하지 않다. - P218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생각했죠. 한국 소설 독자들은 어떤 책을 읽을까. 재미있는 작품을 쓰면 되나.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니까 사람들이 재미있는 작품을 읽는 게 아니더라고요. 우리나라 독자들은 유명한 작가가 쓴 작품을 읽어요. 일단 유명해져야 합니다. 상을 여러 개 받아서 유명해지자 싶더라고요. - P257

서울 길거리는 포털 사이트 첫 화면과 비슷하다. ‘여기 좀 봐주세요!;라고 호소하는 수많은 미남 미녀의 사진들이 걸려 있고 ‘이건 도저히 못 지나치겠지? 궁금하지?‘라고 외치는 간판도 있다. 단 몇 미터를 걸어도 그 사이에 무언의 메시지를 수십 가지는 받는다. 어떤 상품이 폭탄 세일 중이고 어떤 가게가 문을 닫았고 무엇이 유행이고 지금 시대정신은 이것이고...작품에 당대를 담으려는 소설가라면 그런 변화들을 놓치지 말아야 하는 걸까? 모르겠다. 유의미한 정보와 무의미한 소음을 구분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 방법은 나만 모르는게 아니라 아무도 모르는 것 같다. 내가 아는 분명한 사실은 간단하다. 그런 자극들이 이릉키는 일회적, 단속적 흥분 상태가 소설 쓰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 긴 글을 쓰려면 긴 호흡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 - P282

나는 좋은 문학이란 고통과 관련이 있을 거라는 희미한 추정을 한다. 인간이라는 종은 행복보다는 고통에 더 마음 깊이 묶이게 되는 존재가 아닐까. 그리고 글자로 그 고통을 전하는 기술이 문학이 아닐까. 위대한 문학 작푸은 모두 행복이 아니라 고통을 다루었다. 문학이 위안을 줄 수는 있지만, 그 위안이라는 게 문학을 통해 타인의 고통을 체험한 뒤에야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 P304

2000년 이후 어느 나라에서나 세계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됐습니다. 이 세계화는 여러 층위에서 동시에 이뤄진 단일화이기도 했습니다. 말하자면 정치와 경제는 각각 민주주의와 수정자본주의로, 생산과 소비는 기업적 합리성과 효율성을 추구하는 ‘맥도날드 방식‘으로, 문화는 ‘젊은, 풍요로움, 섹스‘를 중시하는 미국 대중문화를 닮아가는 방향으로 발전했어요. 그러다 보니 적어도 선진국들 사이에서는 사람들의 삶의 양식이 점점 비슷해져가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점점 더 비슷한 옷을 입고 비슷한 음식을 먹고 비슷한 음악을 들으며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시대에 진정으로 개인이 남들과 다른 삶을 산다는 게 가능할까? 우리는 다들 비슷비슷하게 규격화된 경로를 거쳐, 비슷비슷한 허무와 불행에 이르게 되구야 마는 것 아닐까? - P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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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아빠가 죽고 며칠 지나고부터 주변 사람들이 엄마와 아빠를 꿈에서 보았다고 이야기했다. 하얀 차를 타고 집 앞으로 왔다느니, 사업장 걱정을 하며 도움을 부탁했다느니. 나는 왜 내 꿈에도 나타나지 않는 내 부모가 남의 꿈에 나타날까 의아해하며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들었다가 시간이 지나고 알아차렸다. 망인에 대한 꿈을 꿀 정도로 애틋한 마음도 없는 이들이 상심한 척, 자신과 망인이 특별한 사이인 척 하려 그런 거짓말도 한다는 것을. 실제의 인간은 소설에서 보던 인간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음흉했다.


신은 믿지 않지만 귀신이라고 할까, 그런 건 어느 정도 믿는 나는 정말로 왜 나는 부모에 대한 꿈을 꾸지 않을까 궁금했다. 갑자기 사고로 죽어 한도 많고 남기고 간 뒷일을 자식들이 감당할 걸 생각하면 가슴이 찠어질텐데 왜 나에게는 나타나지 않을까. 그리고 2달이 지나서야 어젯밤에 처음으로 부모에 대한 꿈을 꿨다. 그런데 이 꿈은 신기한 것이 부모가 나오지 않는 부모에 대한 꿈이란 점이다. 


꿈속은 지브리 애니메이션처럼 깨끗하고 밝고 선명했고 비가 내려 물이 넘치는 여름이었다. 여동생과 나는 물이 넘실거리는 강 위의 나무 다리 위를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었다. "엄마 안돌아왔으면 어쩔뻔 했노." 우리는 엄마가 아빠가 오랜 여행에서 돌아와 안도하고 있었고 그 홀가분한 마음으로 신나게 놀고 있었다. 엄마도 아빠도 꿈 속에서 보이지 않았다. 다만 엄마는 놀다가 돌아갈 우리를 위해 국수를 삶고 있고 아빠는 트럭을 몰고 산으로 일하러 갔다는 것이 분명했다. 나는 꿈이라 할 지라도 엄마와 아빠가 다시 돌아왔다는 것을 한치도 의심하지 않았다. 


엄마와 아빠의 사고 소식을 듣고 외국에 살고 있는 동생에게 연락하던 순간에도 나는 돌아가셨다거나 사고가 났다거나 잘못되었다는 표현은 쓰지 않았다. 정확하게 '죽었다'고 말했고 지금도 그렇다. 죽은 건 죽은 것이니까.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니까. 나는 아직도 부모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버겁지만 적어도 죽은 건 죽은 거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의 나이는 되었다는 것이 다행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어젯밤의 꿈에서만큼은 억지를 부리는 것도 아니고 어리광을 부리는 것도 아니고 정말로 순수하게 나는 내 부모가 죽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마음, 언제나 돌아갈 수 있고 나를 해치지 않고 큰일은 책임져줄 부모가 있다는 그 마음이 어찌나 편안하던지. 


그래서 꿈에서 나는 내 부모의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그들의 존재는 느낄 수 있었고 잠에서 깨고 나서도 한동안 현실을 인식하지 못했다. 그 정도로 강렬한 꿈이었다. 그리고 그건 부모의 얼굴을 잠시 보는 꿈보다 더 좋은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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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3-02-15 16: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눈물이 흐릅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꼬마요정 2023-02-15 22: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바람돌이 2023-02-16 00: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부모님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던 꿈이라도 꾸실 수 있어 다행이다 싶지만 그래도 마음이 아프네요. 그냥 많이 슬퍼하고 많이 그리워하세요. 우리 마음이 그저 슬프고 그립다면 그대로 따르는 것이 맞을거같아요.

2023-02-16 07: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예전에 누군가가 쓴 글을 보았는데 엄마가 죽고 난 뒤에 엄마가 만들어 둔 반찬이 아까워 먹지 못하고 냉장고 안에서 그대로 삭고 상하도록 내내 두었다는 내용이었다. 그 글을 읽을 땐 눈물이 나고 나도 그럴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나는 오히려 엄마가 열심히 만들었을 마지막 반찬이 버려지지 않도록 최대한 많이 먹어치우려고 한다. 엄마가 살아 있을 적의 나는 뭘 잘 먹지 않아서 엄마가 보내준 반찬을 오래 묵힌 뒤 버리는 일을 많이 했다. 엄마가 죽은 뒤에야 후회하고 비가 내리면 우는 청개구리처럼 지금의 나는 엄마의 음식 하나하나를 꼭꼭 씹어서 최대한 많이 먹는다. 아직도 냉장고엔 엄마의 반찬이 많이 있다. 베란다에는 엄마의 고추장과 된장도. 


아빠에게는 오래 써서 튿어지고 속의 솜이 드러난 오래된 낡은 가죽 소파가 있었다. 저녁을 먹고 나면 그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곤 했다. 거기서 주전부리도 많이 먹었기에 소파 주변은 늘 지저분했고 그래서 나는 그리로 잘 가지도 않았는데, 아빠가 죽고 집 안에 들어서서 가장 먼저 한 일은 그 소파를 감싸안고 우는 일이었다. 살아 있을 때 너무 오래된 그 소파의 가죽을 갈려고 알아봤더니 비용이 100만원이 훌쩍 넘었다. 그래서 나중에 하자고 미뤄뒀던 일인데 이제는 아빠가 앉아 있던 흔적이 그대로 남은 그 낡은 소파를 그대로 오래도록 간직할 거 같다. 


엄마와 아빠의 스마트 폰에서 유튜브 앱을 열고도 울었다. 둘의 관심사가 그대로 드러나는 추천 영상들에. 아빠는 중장비나 공사, 기독교에 관한 영상들. 엄마는 반찬 만드는 법이나 건강에 관한 영상들. 나는 그 알고리즘이 흐트러지기 전에 스크린 캡쳐했다. 


엄마가 죽은 뒤 내가 엄마의 방을 쓰고 있다. 추워서 전기장판을 켜고 이불 속으로 들어가서는 이 모든 일이 현실이 아니길 바라며 이리저리 뒤척인다. 사실 엄마가 죽고 처음 엄마의 방에 들어섰을 때 방이 너무 썰렁해서 놀랐다. 그리고 곧 알아차렸다. 엄마는 내가 내려올 때만 보일러 온도를 높이고 엄마 혼자 있을 땐 이리 썰렁하게 지냈었구나. 그 뒤로 보일러를 높이고 싶지도 않아서 그대로 두었다. 


설에 친가 친척집에 들렀다. 지금까지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던 그 집안 사람들의 이마가 모두 아빠와 똑같이 생긴 것이 눈에 들어왔다. 아빠의 작은 아버지는 치매없이 100세를 맞았다. 집안의 사람들은 모두 사고없이 60, 70언저리의 나이를 먹었다. 나는 이제서야 우리 집안이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안다. 어떻게 집안 식구들 중 그 동안 사고로 죽은 사람이 아무도 없었단 말인가. 어떻게 어르신들은 모두 80, 90, 100을 꽉 채워 살았단 말인가. 확률적으로 누군가가 사고로 죽지 않은 것이 이상했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린다. 


그래서, 우리는 엄마아빠의 환갑잔치를 치르지 않았었다. 모두 오래 사는 요즘 세상에 뭣하러 환갑잔치를 하냐고. 엄마가 먼저 손사래를 쳤었다. 80이 되지 못하였어도 아쉽고 의아하다 생각했을텐데 고작 70도 살지 못하다니. 뒤늦게 나는 치르지 않은 환갑잔치를 아쉬워한다. 


그리고 동시에, 부부 납골묘에 모신 엄마아빠를 보러 갔다가 그 뒤로 새로 들어온 사람들의 사망일자를 보며, 엄마아빠보다 젊어서 함께 죽은 부부들을 보며 이 모든 것이 큰 세상의 일로 보면 참 심상한 일이구나. 생각한다. 그럼에도 4년만 더 살고 갔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떨칠 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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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24 19: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23-01-24 22: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난번 글 보면서 혹시 부모님이 두분 함께 사고를 당하신건가 싶다가도 설마했는데요.
라일라님 두분 같이 편안하실거라고 믿어요. 그냥 그런 믿음이 우리를 견디게 하는거 같아요.
그냥 라일라님 손 꼭 잡고 위로를 드리고 싶은데 말로만 위로를 전합니다.

책읽는나무 2023-01-24 22: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머니의 마지막 반찬!
꼭꼭 씹어 오래도록 그 맛을 기억하세요.
썩어서 버려야 할 때는 더 마음이 아프고, 후회가 됩니다. 그냥 엄마가 곁에 계셔 나를 위해 해주셨구나~ 생각하고 맛있게 먹는 게 두고두고 후회하지 않을 방법인 듯 합니다.
잘 하셨습니다.
저도 위로의 말을 전할 수가 없어 그저 잘하셨다는 말밖에는...

라로 2023-01-25 05: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글을 올릴 수 있다는 건 심적으로 좀 안정이 되신 거라고 믿고 싶어요. 저는 엄마의 옷이랑 양말을 챙겨 여기까지 가져와서 가끔 입고 신고 그래요. 레일라님 어떤 것도 위로가 되지 않겠지만 늘 마음 잘 추스리고 자신을 잘 돌보는 거 잊지마시길요.

LAYLA 2023-01-26 12:25   좋아요 1 | URL
여기 말고는 말할 곳이 없어요. 마음이 너무 아파요...

라로 2023-01-30 12:39   좋아요 0 | URL
레일라님 여기에 마음껏 쓰세요,, 제가 다 읽어드릴게요... 얼마나 마음이 아프시겠어요... 제 마음도 넘 아프네요... 엄마가 없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너무 잘 아니까..ㅠㅠ

2023-01-27 20: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1-31 16: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엄마의 마지막 전화를 받았을 때 나는 강남역의 한 카페에 앉아 형법각론 기출문제를 풀고 있었다. 엄마는 아빠가 오후부터 연락이 되지 않는다며 걱정이 된다고, 찾으러 나가봐야겠다고 했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내가 앉아 있는 카페는 강남대로변에 바로 접하고 있어서 온갖 네온사인과 자동차 불빛들로 환했기에, 저녁 6시 30분이 그리 어둡게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엄마의 죽음 이후에야 나는 겨울철의 저녁 6시 30분은 앞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 내린 즈음이라는 것을 되었다. 장례식을 치르고 동짓날이 될 때까지 저녁 6시 30분이 되면 시계를 보고 바깥을 보았다. 세상은 도시에선 상상도 하지 못한 수준으로 깜깜했다. 엄마는 어떻게 그 어둠 속에서 두려워하지 않고 아빠를 향해 무작정 달린걸까? 


동짓날이 오자 작년의 동짓날이 떠올랐다. 세상이 너무 힘들었던 작년의 겨울날에 엄마는 말했다. 그래도 이제 해가 길어지니 다행 아니냐고. 겨우 하루 몇 분씩 길어지는 해를 의지로 삼을만큼 우리는 괴롭고 절박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 고비를 넘겼다 싶었는데 더 괴로운 동짓날이 있을 줄은 우리 가족 아무도 몰랐던 일이다. 


동지가 지나고도 몇 주가 지났지만 아직도 저녁 6시 30분의 세상은 깜깜하기만하다. 그래서 그런지 엄마를 생각하면 차오르는 슬픔도 전혀 줄어들지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싫은 것으로 추위를 꼽던 나는 엄마가 죽은 다음날부터 일부러 찬 바람을 맞고 다닌다. 추위 따위는 사람이 인생을 사는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님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엄마의 마지막 전화를 받고 몇 시간 뒤 사고 소식을 전해들었던 강남역의 카페에 오늘 처음으로 다시 가봤다. 저녁 6시 30분, 밖을 보았다. 세상은 정말 환하고 밝고 안전해보였다. 내가 엄마의 전화를 대수롭지 않게 받은 것이 당연하게 느껴졌다. 동시에, 어째서 나의 부모는 노인이 되지 못했을까. 당연하지 않은 일에 대한 의문이 약간의 분노와 함께 치밀었다. 


그 날 이후 나는 백발의 노인들을 유심히 보게 되었다. 지팡이를 짚거나 보행기에 의지해 다니는 시골의 노인들. 사고 전까지 나는 노인으로서의 삶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고 굳이 따지자면 젊은 생을 산 것에 대한 댓가를 치뤄야 하는, 젊은 시절에 비하면 못한 생의 일부분이라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완전히 다르게 생각한다. 노인이 될 때까지 살 수 있다는 것, 그건 정말 대단한 일이며 삶의 축복과 행운이 따라야 가능한 일이라고. 하지만 정작 나는 그리 오래 살고 싶지 않다. 애초에 괴로움이 커서 생에 대한 큰 의지가 없었다. 그렇지만 산 것은 내가 죽으면 엄마가 슬퍼할 것이 싫어서였다. 그리고 이제 엄마가 세상에 없으니, 내가 없으면 남은 가족들이 져야 할 짐이 너무 커서 살아야 한다. 엄마가 그들을 사랑했으므로.  


인간은 살아있는 동안 의미를 찾아 헤매고 생에 의미를 부여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세상은 의미나 노력, 정의 같은 것들과는 전혀 관계없이 작동한다. 음주운전자에게 치여 죽고 암에 걸려 죽고 어딘가에서 떨어져서 죽는다. 죽음은 그 자체로 이 생에 의미가 없다는 걸 반증한다. 나는 그 헛됨을 떠올리며 내 부모의 죽음도 자연의 일이라고 받아들이려 노력한다. 전쟁으로 죽어가는 지구 반대편의 사람들에 대한 기사를 볼 때, 아프리카에서는 하마에 물려 한 해에 3000명의 사람이 죽는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될 때면 곱씹는 방식으로. 그렇구나. 그런 것이구나. 그러니, 내 부모의 죽음도 큰 세상의 일로 보자면 그리 유별난 일이 아니구나,


항우울제와 항불안제의 덕인지 일상에서 바쁘게 일을 할 때면 슬픔이 가슴을 때리지 않는다. 그저 끊임없이 머리에서 엄마와 아빠가 보고 싶단 사실이 논리적인 문장처럼 떠오른다. 아이러니하지만 가장 엄마가 떠오르고 마음이 아픈 때는 엄마가 살던 본가에 있을 때가 아니라 평소에 혼자서 살던 서울 집을 방문할 때이다. 내가 누리던 자유와 사랑하던 혼자만의 고독이 사실 언제든 부를 수 있는 엄마가 있기에 가능했다는 사실을 나는 서울의 아파트에서 홀로 있을 때 깨닫는다. 내 반찬을 걱정하던 엄마, 지치면 어서 이불 속으로 들어가 자라던 엄마, 나의 괴로운 마음을 이해하고 니 잘못이 아니다 넌 정말 아까운 딸이다 위로해주던 엄마. 그런 엄마가 이젠 없다는 사실을 아직 받아들일 수가 없다. 어째서 내 엄마는 노인이 되지 못했을까. 도대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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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3-01-16 05: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레일라님....

책읽는나무 2023-01-16 07: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째서 내 엄마는 노인이 되지 못했을까...
마음이 아프네요.
저도 엄마가 일찍 돌아가신 편이라 늘 그 생각을 하곤 합니다
어머님은 라일라님을 잘 지켜보고 계실겁니다.
굳건하시길...

다락방 2023-01-16 10: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라일라 님.
라일라 님의 이름을 한 번 부르고 갑니다.

2023-01-16 12: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23-01-16 22: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떻게 이렇게 갑작스럽게... 전에 어머님이랑 스위스 갔던 글들 보면서 저는 우리 엄마도 조금 더 젊고 힘이 있었으면 이렇게 같이 해외여행도 다녔을텐데하면서 부러워했었는데요.
어머님 명복을 빕니다. 부디 좋은 곳에서 평안하시기를..... 라일라님께는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위로가 될지 잘 모르겠어요. 엄마를 잃은 마음에는 어떤 말도 위로 안될거 같아서.... 그저 많이 슬퍼하시고 그리워하시라는 말밖에 못하겟네요.
 
물질적 삶 쏜살 문고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윤진 옮김 / 민음사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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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은 고독을 울려 퍼지게 하고, 고득을 다른 어떤 것보다 좋아하게 한다. - P25

상상력은 그 어디보다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 가장 강하게 작동한다. - P47

남자를 많이 사랑해야 한다. 많이, 많이. 남자를 사랑하려면 많이 사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나자를 감내할 수 없다. - P54

유토피아는 여자들이 창조한 집에 있다. 자신의 가족이 행복 자체가 아니라 그 행복의 추구에 관심을 갖게 하려 하는 여자들의 시도, 여자들이 안 하고는 못 배기는 그 시도에 있다. - P55

어머니는 세 번째 전쟁을 기다렸다. 사람들이 다가오는 계절을 기다리듯, 아마도 어머니는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세 번째 전쟁을 기다렸을 것이다. 어머니가 신문을 읽는 이유도 행간을 읽어 내서 전쟁이 다가오는지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 P62

여자는 어머니로 살고 아내로 사는 내내 자신만의 절망을 분비한다. 매일의절망 속에서 자신의 왕국을 잃게 되고, 평생 동안 그럴 것이다. 젊은 시절의 갈망, 힘, 사랑이 빠져 나갈 터다. 순전히 합법적으로 생겨난 상처, 스스로 받아들인 바로 그 상처를 통해 흘러 나간다. 여자는 순교자다. 자신이 가진 모든 재주를, 운동 실력을, 요리 실력을, 미덕을 발휘하는 일이 완전히 끝나면, 여자는 창밖으로 던져져야 할 존재가 된다. - P69

지난 십오 년 동안 책이 출간되면 곧바로 원고를 없앴다. 왜 그랬는지 생각해 보면, 아마도 내가 저지른 죄를 지우기 위해, 내 눈에 그것이 덜 소중한 것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그렇게 나의 자리로 잘 ‘넘어가기‘ 위해, 여자이면서 글을 쓰는 무례함을, 사십 년 전만 해도 그랬으니까, 그것을 경감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 P69

집 안에 물건이 쌓이는 가장 큰 이유는 세일이다. 마치 오래전부터 전해 오는 일종의 의식처럼 정기적으로 넘쳐흐르는 파리의 최대 세일, 파격 세일 때문이다. 정기 세일이 있거, 가을이면 여름 재고를 싸게 팔고, 겨울이 오면 가을 재고를 싸게 판다. 여자들은 마치 마약에 취한 사람처럼 마구 사들인다. 필요하기 때문이 아니라 싸기 때문에 산다. 그리고 미친 듯이 사들인 그 물건을 집에 도착하자마자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이렇게 말한다. "저걸 왜 샀는지 모르겠어." 모르는 남자와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났을 때와 비슷하다. - P70

우리는 언제쯤 우리의 절망이라는 그 숲에 넌더리가 날까? 그 시암 왕국은? 장작에 제일 처음 불을 붙이는 남자는? - P72

그는 늘 젊고 매력적이고 싶어 했고, 젊게 살고 싶어했다. 점심은 크로크무슈를 먹고, 저녁 식사는 레스토랑에서 하고, 여자들, 모든 여자를, 겨울엔 프랑스 여자들, 여름에는 젊은 영국 여자들을 원했다. - P105

오래전부터, 옛날부터, 수천 년 전부터 침묵은 여자들의 몫이었다. 따라서 문학도 여자들의 것이다. - P116

프랑스에서 그랑드 블루(grande bleue)는 여성형이고 지중해를 가리키고, 남성형인 그랑 블루(grand bleu)는 대서양 바다를 가리킨다. - P140

자신이 겪은 일에서 가르침을 끌어내는 일은 나이가 들어서야 가능하다. 두고 보라. 감히 말하건데, 한 남자와 함께 있으면서 행복하다고 느끼는 감정이 필연적으로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을 증명하지는 않음을 우리는 나중에서야 깨닫는다. 그런 사랑의 증거를 나는 그만큼 격렬하지 않은, 쉽게 떠올려 지지 않는 기억 속에서 발견한다. 내가 가장 심하게 배신한 남자들, 나는 그들을 가장 사랑했다. - P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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