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결혼했다 - 2006년 제2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박현욱 지음 / 문이당 / 2006년 3월
구판절판


나이가 좀 들면서 인간관계에 대해 알게 된 게 하나 있는데,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해 버리면 모든 게 간단해지는 것 같아. 뭔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원래 그런 사람이려니 하면 그만이거든. 마찬가지로 누가 나에 대해 뭐라고 해도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야 하고 생각하면 그만이야. 내가 잘 못한 거라면 고쳐야겠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사람들은 내가 잘못해서 뭐라고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싫어서 뭐라고 하는 게 대부분이야.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잇고 그걸 참을 수 없어서 덕훈 씨가 헤어지자고 했던 거잖아. 근데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야. 덕훈시는 원래 그런 걸 싫어하는 사람이고. 우리는 서로 맞지 않는 사람들인 거야.-63쪽

햄릿이 이렇게 말했다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이니라"
햄릿이 지칭했던 여자란 삼촌과 결혼했던 그의 어머니였지만 사람들은 어쨌든 남자에 비해 여자가 약하다고들 생각한다. 그러나 남자는 여자보다 더 약하다.생산력의 관점에서 보면 남자가 우월하다. 하지만 남작 절대적으로 우월했던 것도 육체적 힘을 필요로 하던 먼 옛날 수렵시대나 농경시대의 이야기일 뿐이다. 여자의 생산력은 점점 남자에 근접해 가고 있으며 육체적인 힘의 우위가 생산력의 우월성을 담보해 주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다. 신은 적어도 태초에는 공형팼는지 혹은 세상이 이렇게까지 바뀔것이라고는 간파하지 못했는지 외적으로 강한 남자에게 약한 내면을 주었고 신체적으로 약한 여자에게는 강한 내면을 주었다. 그리하여 배우자가 바람을 피웠을 때 일반적으로 남자들이 훨씬 더 고통스러워 한다.-117쪽

남자들이 더 고통스러워할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이유는 남자와 여자의 사회화 과정이 다르다는 데에 있다. 대개의 여자들은 10대 중반에 이르면서부터 사랑의 시뮬레이션을 수도 없이 경험한다. 순정만화와 로맨스 소설이 그녀들의 텍스트이다. 도한 여자들은 연애할 때와 이별할 때 그리고 남자친구가 바람피울 때 그 모든 일들을 친구들과 공요한다. 이랬어. 어머. 저랬어. 저런. 이래야 돼. 정말? 저래야 한다니까. 깔깔. 그리하여 여자들의 머릿속에는 이미사랑에 관한 수십개의 시나리오들이 완성되어 있으며, 또한 각각의 시나리오마다 배역과 연기의 색깔이 어느 정도 설정되어 있다. 즉 그녀들에게는 수십가지의 대처방안이 이미 정리되어 있는 셈이다
남자들은? 10대 중반에 이르면서부터 스포츠 마노하나 무협지를 보며 영웅에 대한 환상을 키운다. 가까운 친구들과의 대화는 욕설이 절반을 차지한다. 그 속에 연애 이야기가 들어갈 자리란 없다. 사랑에 대한 시물레이션? 없다. 애인이 바람을 피운다고 친구가 고민하면?"술이나 마셔"라고 말해준다.(오쟁이를 지다니 쪼다같은 놈_) 자신의 배우자가 바람을 피운다면? 그럴리가 있겠나 (생각한 적도 없다니까-)막상 일이 닥치면?

왜 나야!-118쪽

아내가 설거지를 하면 나는 청소기를 돌린다. 그릇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청소기 돌아가는 소리의 섞임이 듣기 좋다. 마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소리들이 사랑을 나누고 있는 것만 같다. 세탁기가 다 돌아가면 같이 빨래를 널고, 빨래가 다 마르면 같이 빨래를 개킨다. 할 일이 없으면 소파에서 아내의 무릎을 베고 누워 tv를 본다. 아내가 책이라도 읽으면 또 그 옆에 누워 빈둥거린다. 살아가는 일의 즐거움이란 로또 같은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내의 옆 자리에 아내의 무릎에 있다.-121쪽

-하나 물어보자. 그놈이 뭐가 그렇게 좋은데?
-글쎄. 종일 그 사람 생각만 하는 건 아니야. 다른 건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진 것도 아니고, 죽도록 사랑해서 그 사람 아니면 아된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야. 다만 그 사람하고 있으면 미래가 보이는 것 같아
-미래? 나하고는 미래가 없는 삶을 살았던 거냐?
-그런 게 아냐. 내가 말하는 미래라는 건 아파트 평수에 대한 얘기가 아냐. 아이를 몇을 두어야겠다는 얘기도 아니고 추상적인 얘기지만,내 삶의 방식이 유지되고 발전하는 것에 대한 전망 같은 거야.
-그게 무슨 사랑이야?
-그 사람을 알면 알 수록 나를 알게 되는 것 같아. 그 사람도 마찬가지고. 어떻게 보면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그 사람을 통해 알게 되는 나에 대한 사랑인지도 몰라. 그렇다고 해서 나만 사랑하게 되는 건 아니야. 나 자신을 사랑하게 만드는 그 사람도 사랑하게 되는 거지. 미묘한 얘기지만 어쨌든 그것도 사랑이야. 나한테는 아주 중요한 사랑이야
-그럼 나는?
-당신이란 사람에 대한 사랑이지. 당신은 매혹적이면서 선한 남편이니까. 곰곰 생각해봤는데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게 맞아.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해 . 그런데 말이지. 나는 여전히 당신을 사랑해-129쪽

여자가 오르가슴에 이르도록 남자가 힘을 기울이는 것은 비단 성적쾌락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라는 종이 종족 번식을 위해 프로그래밍된 진화론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흔히 알려져 있듯 수억 개의 정자 중 난자와 만나 수정되는 정자는 하나뿐이다. 나머지는? 영국의 진화 생물학자 로빈 베이커와 마크 벨리스는 80퍼센트 이상의 정자가 여성의 질과 자궁 등에 있는 다른 남자의 정자를 적극적으로 찾아내 죽이는 역할을 하며 20퍼센트 미만의 정자는 다른 남자의 정자가 난자로 가지 못하게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고 밝혔다. 여자의 몸안에서 수억의 때로는 수십억의 정자들이 서로 생사를 건 싸움을 벌이는 것이다. 정자가 수정되는 과정에서의 전쟁은 수백만 년 이상 진행되어 온 진화의 결과이다. 여자의 몸은 이 전쟁을 조장하는 격렬한 전장일 뿐만 아니라 선택한 정자를 지원하는 첨단 기지의 역할도 수행한다. 여자가 느끼는 오르가슴의 타이밍에 따라 산성의 점액이 분출되어 알칼리성인 정자의 전진을 막아버린다. 여자 스스로 오르가스므이 타이밍을 결정할 수 없다. 어떤 정자를 몰살 시킬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여자의 몸이다. 그녀의 성향이나 의지와는 별개로 그녀의 몸은 더 나은 유전자를 획득하려고 하는 것이다. -213쪽

베이커와 벨리스의 연구는 그들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일부일처제를 반대하는 사람들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다른 종의 동물들을 끌어들일 필요도 없이 일부일처제는 인간 고유의 생물학적 본성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자뿐 아니라 여자에게도. 여자는 여러 남자의 정자 중에서 가장 우수한 정자를 받아들이게끔 진화했고 남자는 그러한 조건에서 사진의 유전자가 존속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정자 전쟁이란 여자의 바람기가 남자의 그것 이상으로 프로그래밍되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214쪽

삶에서 견딜 수 없는 고통이란 없다. 다만 견딜 수 없는 순간만이 있을 뿐이다. -217쪽

-거야 그렇지. 근데 내가 지금 이 나이에 거길 가서 뭘 할 수 있겠어
-아무거나 당신이 하고 싶은 거. 가령 축구 웹진 같은 걸 만들어서 운영해 보는 건 어대?
-그런 걸 아무나 하냐?
-당신이 하지 않고 있으니 아무나 하는 중이지. 당신이 하면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사람들이 알게 될 거에요
-3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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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부인 김승옥 소설전집 4
김승옥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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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70년대의 한국소설을 제대로 읽어본건 이번이 처음인것 같다.

수능을 위해 혹은 논술을 위해 읽었던 책이야 이것 저것 있지만 내가 자발적으로 좋아서 고른 책..

60년대의 소설 속에 그려진 사랑이야기라고 하면 어떤 것일까

나는 80년대 중반에 태어나서 그 시절 이야기라면 정말 하나도 모른다

내 직전세대까지 받았다는 교련이나 반공 교육도 희미하게 느끼는 정도인데 60년대 이야기라니, 짐작도 안 가는 시절의 이야기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짐작을 하고 있었다.

아주 보수적이었던 20세기 초반 분위기야 쵸큼 알고 있으니, 60년대라고 하면 21세기 초반인 지금과 20세기 초반의 중간 정도 되는 사회이지 않았을까?

20세기초반보단 개방적이고

21세기 초반보단 보수적인

그런 사회분위기를 상상하며 책을 읽었다.

아니 근데 웬걸, 나의 짐작과는 다르게 이 책은 꽤나 강.하.다.

크게보자면 성에 대한 개방도에서 부터 사소한 것들에 이르기까지..

앞부분에 실린 '보통여자'에서 놀랐던 건, 결혼 전 여러여자들과 쉽게 관계를 가지는 남자주인공의 모습이었다.

보수적인 사회니 어쩌니 해도 돈주고 쉽게 여자를 사고 관계를 가지고 또 그러고선 선을 본 여자와는 예의를 갖추어 만나는 모습. 이런 건 뭐 시대랑 상관없는 거구나 ...싶었다.

또 60년대에도 맞벌이를 선호했다던가, 쌍꺼풀 수술을 많이 했다던가 하는 건 사소한 부분이지만 짐작과는 너무 달라 깜짝 놀란 부분들이었다.^^

무엇보다 이 소설의 매력은 남자의 마음과 여자의 마음을 속속들이 뚫어보는 묘사들이다.

'보통여자'와 '강변부인' 두 편 모두 며칠동안에 일어난 일들을 서술하고 있는데 그러니까 이 두 소설 모두 어떤 상황에 처한 주인공들의 심리를 따라가며 하나하나 묘사하는 스타일이다.

'보통여자'의 경우 여자주인공의 마음과 남자 주인공의 마음을 모두 서술하는데 (남자가 분량이 적다..)

여자의 마음이 그려질 땐 어쩜 저리 여자 마음을 잘 알까, 도대체 스물 여덟먹은 작가가 어찌 여자맘을 저리 아는걸까 탄복을 했고 (그 때는 인터넷도 없었다. 김승옥은 천재같다)

남자의 마음이 그려질 땐 아아 남자의 심리란 이런 것이구나, 그런데 그 세속적이고 노골적인 심리묘사의 리얼리티...그게 좋았다. (이 여자 저 여자랑 자고 다니고 심지어 점심시간에 잠시 여관에 들렀다 회사로 돌아가는 남자의 정신상태..꽤나 이것저것 생각하고 재면서 살고 있는 모습..^^)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야 드러나는 '보통여자'란 제목의 뜻...이거 완전 너무 멋진 영화한편 본 기분이었다..^^

이렇게 만족도 최고였던 '보통여자'에 비해 '강변부인'은 덜 좋았다.

보통여자에 비해 빠른 전개, 자극적인 사건들이 계속 터지는 강변부인 인지라, 읽는 속도도 빨랐고 재미는 있었지만 이건 정말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생각 (이건 21세기에 일어나도 화제가 될 만한 수준의 사건들)

너무 야하단 생각

하지만 그래도 좋았다..^^

언어영역공부하면서도 느낀거였지만 예전의 한글로 씌여진 소설들은 뭔가 말이 이쁘다..

소리내어 읽으면 입안에 울리는 소리도 좋고, 소설이지만 운율이 있는것만 같다.

그리고 '남자'란 단어 대신 '사내'란 단어를 사용한다던지 하는 것들..이런 것들도 맘에 든다.

아아 완전 맘에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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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9-07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자의 마음.." 이라기 보다는 "그남자의 마음.." ,,, 일반화하면 실제와는 많이 차이가 나요.

LAYLA 2006-09-08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책 속의 여주인공에게 몰입하다보니 ^.^ 히히히
 
강변부인 김승옥 소설전집 4
김승옥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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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친구들 중에는 그럴듯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중 몇 사람이 고맙게도 수정이 금년에 졸업한다는 걸 기억해두었다가 서로 취직시켜주겠다고 나선 것이었다.
그분들로서는 물론 가장을 잃은 수정의 가정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어주겠다는 뜻에서였는데, 그러나 수정의 어머니는 수정이까지 벌지 않아도 될 만큼 아직은 넉넉하니까, 라는 이유로 그 도움들을 사양했다.
김씨의 생각으로는 여자란 직장생활을 하며 아무래도 거세지고 여자다운 맛이 달라져버려서 앞으로 결혼생활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것이었다.
일부에서는 맞벌이 할 수 있는 여자를 아내나 며느리로 맞으려는 풍조가 높아가고 있지만 그건 가난한 생활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보려는 최후의 발악에 불과할 뿐, 결코 맞벌이 부부 자체가 이상적인 부부형태인 건 아니다. 집안살림만 해도 여자에게는 중노동인 것이다.

만일 아내가 맞벌이 할 수 있는 여자이기를 바라는 그러한 남자라면 나는 아예 딸을 주지 않겠다.
-51쪽

왜 한때나마 그런 사람을 보고 싶어 안타까워 했을까?
왜 그런 사람을 어머니는 나와 맺어주려고 해을까? 자신이 밉고 어머니도 원망스럽다.
수정은 자기가 속해 있던 세계 전체가 자기를 속였다는 느낌에 떨고 있었다.
그 여자의 기분, 그 여자의 꿈, 그 여자의 육체, 그 여자의 운명, 요컨대 그 여자에게 속해 있는 모든 것은 내팽겨쳐져 실은 아무의 보호도 받고 있지 않다는 것을 그 여자는 비로소 깨달았다.
그 동안은 그나마 어머니라도 자기를 보호해주는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런데 오늘 보니 아니다.

소리나 꽥 지르고 뻔뻔스럽고 진심은 감춰두고 거짓만 내보이며 그리고 여자를 폭력으로 지배하려는 사내한테 나를 떠맡겨버리려 한 것이다.
일부러 그런 사내를 고르려고 해도 힘들 것이다.

그만큼 어머니는 내 운명에 무책임한 것이다. 이젠 내가 귀찮아진 게 틀림없어
아무한테나 줘서 처지해버리려는 생각밖에 없는 거야.

수정은 끝없이 비참한 느낌에 빠져들어갔다.
자기를 보호해주고 있는 건 자기 자신밖에 없다.
그런데 자기란 여자는 얼마나 무력한가!
자기의 힘만으로써는 도저히 이 세상에서 자기의 존재를 떠받치고 있을 수 없을 것 같다.-97쪽

"도둑인 건 사실이죠"
"내가?"
"도둑? 내가?"
"처녀 도둑. 후후훗"

말하면서 종숙은 대담한 자세로 명훈의 가슴을 힘껏 껴안았다. 단추를 잠그지 않은 바바리코트의 앞깃이 벌어지면서 네글리제만의 풍만한 가슴이 명훈의 가슴에 부딪쳤다. 명훈은 이제 익숙해진 그 여자의 젖가슴의 탄력에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면서 여자가 말한 '처녀 도둑'이라는 말만이 귀에 거슬렸다.
어째 올가미를 씌우는 수작인 것 같았다.
이 여자가 역시, 그 동안 그런 내색을 내보인 적은 없었지만, 다른 여자들과 마찬가지로 육체관계에 대한 책임을 남자에게만 돌리며 자신은 피해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게로구나, 생각하니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129쪽

어쨌거나 경숙이 일러주는 방법이란 수정으로서는 도저히 실행 불가능한 일이었다.
우선 경숙과 자기와는 경우가 다른 것이다.
결혼을 하나의 계약이라고 본다면 경숙은 계약자로서의 권리를 가지고 남편의 잘못을 추궁할 수가 있다. 그러나 자기는 무슨 권리로 현장을 습격한다는 따위의 어마어마한 짓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사랑하니까? 사랑한다는 것도 권리일 수 있을까? 글쎄, 사랑한다는 게 권리일 수 있다고 해도 그 권리란 사랑하지 않아버린다는 데밖에는 쓸 수 없는 권리가 아닐까?-198쪽

그 여자 역시 섹스에 대한 근원적인 경멸감 내지 죄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가정이란, 그리고 남편이란 섹스의 대상 이상의 존엄한 그 무엇이었던 것이다.
섹스에 대하여 무지해 보이는 남편이 오히려 믿음직스러워 보였고, 순진한 남편을 통하여 자신의 몸 속에서 병균처럼 끓고 있는 자극에의 욕망이 건강한 육체의 당연한 권리가 아니라 죄스러운 것임을 깨닫곤 해왔던 것이다.
가정에서의 섹스란 엄하게 다스려 조그맣게 가둬두면 둘수록 가정의 다른 부분들, 즉 육아라든가, 문화적 취미생활이라든가, 친척들과의 보다 활발한 왕래라든가, 재산을 불려나간다든가 하는 일에 전념할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질펀하고 시뻘건 낮짝을 한 자극적인 섹스란 놈은 어디까지나 가정 밖으로 몰아내놓고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 시뻘건 낮짝을 하고 있는 녀석과의 교섭이란, 내 가정이 제대로 잘 굴러나가고 있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 때때로 영화구경을 가거나 보석반지를 사듯, 자신에게 속해 있는 죄스러운 욕망을 달래주는 정도로 슬그머니 가져야 하는 것이었다. -261쪽

질투란 하면 할 수록 상대가 아니라 하는 내 가슴만 멍이 들도록 두들겨패는 것이다.-291쪽

"일본 책은 안 보셨습니까?"
"일본어는 다 잊어버렸어요. 내 이전 세대와 나는 그런 점에서 큰 차이가 있지요 번역투일망정 나는 모든 지식과 교양을 한글로 섭취한 최초의 세대, 김현이 말한바 4.19세대임에 틀림없어요"-3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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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랑일까 - 개정판
알랭 드 보통 지음, 공경희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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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H 로렌스의 정의에 따르면 그녀는 다른 사람, 다른 나라, 다른 연인 같은, '다른 것에 향수를 느끼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낭만주의자였다.

그것은 랭보가 청춘시절"la vie est ailleurs(인생은 다른 곳에 있다)"라고 했던 말의 메아리와 같다.-9쪽

앨리스는 자신이 왜 이렇게 절망하는지 납득하지 못했다. 행복이란 즐거운 상태가 아니라 고통이 없는 상태라고 정의하던 자신이 아닌가. 괜찮은 직장이 있고, 건강하고, 살 집이 있는 마당에 왜 주기적으로 아이처럼 울고 짜고 난리람?

불만이 있다면 자신이 타인에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것 뿐이었다. 지구상에서, 그리고 거기 사는 사람들 속에서 그녀 자신은 불필요한 존재 같았다.-13쪽

플라톤은 예술이란 삶을 모방하고자 분투하지만, 결국 실패할 뿐이라고 믿었다. 그러므로 예술가들은 이상 사회에서는 잉여 인간이었다. 로댕이나 클림트가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그들은 이미 존재하기에 재생산 될 필요가 없는 것들을 모방할 뿐이니까. 실제로 침대가 옆에 있는데 침대를 스케치 하는 게 무슨 소용있을까? 키스가 아주 흔한 마당에 무엇 하러 키스 장면을 영화로 찍는단 말인가?

오스카 와일드라면 정중하게 다른 의견을 주장했으리라. 지금은 진부해져 버렸지만 전설적인 그의 말에 의하면, 예술이 생활을 모방하는 게 아니고 생활이 예술을 모방한다. 이런 당황스러운 경구를 통해, 오스카 와일드는 무엇ㅇ르 말하려 했을까? 그것은 예술이 생활보다 나은 점이 있다는, 3차원적인 애인에게 받는 키스는 영화에서 보는 키스보다 판에 박은 듯 형편없다는 것이다. 와일드의 '낭만적인 미학'은 토니 같은 남자들에게 그녀가 내리는 판결문과 같았다. 토니는 사무실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앨리스에게 키스했는데 토니의 입에서는 양파수프 냄새가 폴폴 났고, 행동거지는 오랜만에 돌아온 주인을 맞아 촐랑대는 개와 비슷했다.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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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속의 여성, 여성 속의 신화
장영란 지음 / 문예출판사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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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학기 수업으로 '그리스 신화의 이해'를 들었는데, 단순한 에피소드 나열을 떠나서 다양한 시각에서 신화를 바라보고 싶었고 이 책을 고르게 되었다. 가부장적 가치관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는 그리스 신화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주의의 입장에서 재해석한 서적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니까 사실 이 책을 고른건 거의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에 몇장 읽을 땐 책의 '포스'가 조금 딸린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쉽게 읽어 나갈수 있는 점'이 이책의 큰 장점이 되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점에 비한다면 만족도 100%였던 책이다.

여자인 나에게는 책 속의 주장들. 신화에 대한 재해석들이 모두 '당연'하게 보였기 때문에 술술 재미있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문체또한 쉽다.  아 그러니까 쉬우면서도 열정적이고 기존의 가부장적 신화에 대한 분노가 담긴 '생생한' 문체이다.  원래 가부장제에 대해 삐딱한 나 같은 사람은 책을 읽는 내내 '맞아 맞아 그러치 그러치 옳치' 하고 신날수 있지만 남성독자들에겐 좀 짜증날 수도 있는 그런 문체이다. 알라딘 리뷰를 쭉 ?어봤더니 역시나 남자독자분이 남긴 낮은 별점의 리뷰가 있었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메데이아와 이아손의 이야기에서 이아손이 권력을 위해 조강지처인 메데이아를 버리고 새장가를 들려고 하자 이아손이 변명을 늘어놓는 부분에서..

...메데이아는 이아손이 자신을 버렸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 수많은 날을 눈물로 지새운다. 그녀는 이아손을 위해 자신의 조국을 등지고 아버지를 배신하고 형제를 죽인 지난날의 행위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용서받고자 했었다. 그러나 이제 메데이아에게 지난 세월은 너무나 후회스럽고 허망하기 짝이 없었다. 이아손은 자신의 안위를 위해 메데이아에게 코린토스를 떠나기를 종용했다.

과거에 아르고호의 영웅이었던 이아손은 스스로 가장 비겁하고 몰염치한 남자로 전락해버렸다. 어떻게 신들에게 맹세한 약속을 깨고 자신을 헌신짝 버리듯 버리고 새장가를 들 수 있느냐는 메데이아의 비난에 이아손은 가장 치사하고 궁색한 변명을 주섬 주섬 늘어놓는다. (변명 내용 중략. 대략 찌질한 변명들,,)

이아손 자신은 실제로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없는 자가 아닌가! (이런 !나 ?로 끝나는 문장이 많다.  '사실 어머니는 여자로서의 삶을 모두 박탈당하며 살지 않았던가? '등,,,이런 문장들 덕분에 책을 읽는 내내 작가가 옆에서 흥분해서 말을 다다다 해주는거 같은 느낌이었다^^)그는 오로지 여자로 인해 출세한 자이다. 그는 과거에 메데이아 덕분에 황금 양피를 구해 돌아와 영웅 대접을 받았으며, 또 이제 크레우사와 결혼하여 왕이 되려 하고 있다.

고대에나 현대에나 비겁한 납편들이 아내에게 늘어놓는 변명은 어쩌면 이리도 한결같이 똑같은가 하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런 부분

이 책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성을 포함하여 당시의 사회상. 여성혐오의 배경(철학) 까지 다루고 있다. ( 여신. 열녀.악녀. 미녀. 어머니 살해.  가부장제 신화. 아리스토텔레스의 여성질료성. 성차별. 그리스의 여성 혐오증. 그리스 동성애. 여성괴물등..) 에피소드 속의 부조리한 시각을 끄집어 내어 분석하고 그러한 시각이 만연해있던 시대적 배경. 철학까지 이야기 해주니 이해가 쏙쏙 잘 될 수 밖에..

그리스 신화를 어릴 적 부터 그리 많이 접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인지하지 못했던 가부장제 시각의 흔적을 이 책은 하나하나 집요하리만치 정확하게 캐내고 있다.

그리스 신화에 나타나는 요괴나 악귀는 대부분 여성의 형상을 하고 있는데 인간에게 두려운 존재들이 여성의 형상을 띠는 것은 이러한 의식의 주체가 남성이기 때문이라던지. 하는 이런 사소한 것. 하지만 모르고 있었던 점을 많이 알게 되어서 읽고 나서 신화를 바라보는 나의 눈이 많이 변했다고 느꼈다.

내가 가장 열심히 봤던 부분은 메데이아와 클뤼타임네스트라가 나오는 '악녀편'이었다.

대표적인 악녀로 손꼽히는 두 여인을 다루면서 저자는 그녀들이 왜 살인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꼬치꼬치 따지고 들어간다. 결국 그러니까 그녀들이 살인을 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아손.아가멤논=영웅. 그러나 여자 잘 못 만나서 안타깝게 죽은...

메데이아. 클뤼타임네스트라= 악녀

라는 고정관념. 선입견을 어릴적부터 주입받고 있었단 걸 이 책을 보고 나서 알 수 있었다.

어릴적 그리스 신화 만화를 봐도 메데이아는 마녀같이 악랄한 여자로 그려졌던 기억이 났다.

그렇게 어릴적부터 이야기는 객관적인 것이라 믿었는데 이제 와서 보니 그러한 이야기들이 모두 가부장제 하에서 변형되고 뒤틀린 것이었다니 이제와서 속은 기분이 들었다.

신나게 다 읽고 나서 책 뒷장의 각주와 참고문헌 페이지를 보니 이것만 24페이지나 된다.

저자가  이 책에 참 정성을 많이 들였구나..싶었다. 2001년에 나온 책인데 별로 유명하지 않고 출판사도 모르는곳이라 혹 절판됐음 어떡하나 조마조마한 맘으로 검색을 해보니 다행히 아직도 판매중이다.

나에겐 완전소중책 ♡이지만 참 안타까운건 타인에게 추천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내가 생각하기엔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들로 채워진 책이지만 대한민국의 평범한 남자들에겐 짯응나는 책일 가능성이 80퍼센트 이상이기 때문이다^^ 

아마 책의 저자가 자기가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굳이 말한건 그런 점을 의식해서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당연한 이야기는. 내가 페미니스트라서가 아니라. 인간이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생각이야.' ---요런 의미로.

그리스 신화 공부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방학이 뿌듯할 수 있게 해준 한권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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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YLA 2006-08-04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서 아쉽긴 하지만요..윽윽 도시에서 보내는 여름은 왠지 우울해서 빨리 가을이 되어버렸음 좋겠어요!!^^

얼룩말 2006-08-04 0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전소중.. ㅋㅋㅋ(요즘 이 말이 무척 재밌다는 생각을 해요. 그치 않아요?)

LAYLA 2006-08-05 0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완전소중한 말이에요 자주 애용하고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