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일생 2
니시 케이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1년 6월
품절


- 저기, 마사키...
- 응?
- 결정적으로 결혼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뭐였어?
- 그야, 그 사람과 함께라면 행복할 수 있겠다 생각했으니까.
- ...그래?
- 분명히 말해두는데 츠구미, 결혼하면 무조건 행복해질 거란 생각따위 안해. 결혼한 이상 혼자일 때보다 꼭 행복해지겠다 결심하고 저지르는 거지. 너 아직도 나카가와 씨를 마음에 담아두고 있지? 네게 있는 대로 상처만 줬던 그 유부남. 화내는 거 아니야. 하지만, 이제 슬슬 네 행복을 생각해야지. 지금 곁에 있어 주는 사람을 소중히 생각하라고.-131쪽

- 왜 우는거지? ...또야? 또 결혼이니 행복이니 쓸데없는 생각을 하다 패닉에 빠진 건가. 결혼은 자네 불안의 스위치야. 30도 중반을 넘어서 뭐 그런 걸로 골머리를 썩나.
- 중반을 넘었으니 고민하는 거 아니에요! 이젠 충동적으로 뭔가 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라고요!
- 어리석긴. 나이를 먹으면 충동적이 아니고선 일을 저지를 수 없다고.
- 당신은 그럴지 모르지만 난!
- 그래서 고민 끝에 결국 상처받고 눈물 흘리면서 내가 오길 기다렸던 건가.
- 자넨 날 좋아해.. 나도 자네가 좋고. 그거면 족한데 뭐가 이렇게 복잡하지?
- 우린 맞지 않을지도 몰라요.
- 최근에야 알았는데 자네 마음속에는 빠지지 않는 딱딱한 가시가 있어. 그게 뭔지는 상관없어. 그저 난 그게 빠지길 기다릴 뿐이야. 하지만 내겐 자네만큼 시간이 많지 않아. -1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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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일생 1
니시 케이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1년 4월
품절


- 저기, 카이에다 씨는 쭉 여대에서 일하셨죠?
- 여대에 있다 보니 여자들 패턴은 빠삭하게 꿰고 있지.자네 같은 아이들 많이 봤거든. 자네는 똑똑하지만, 한층 더 똑똑해 져야 해. 여자는 어리석지만, 남자는 그보다 훨신 더 어리석거든.-78쪽

있잖아, 나, 그동안 내내 머리가 깨지게 생각했는데, 역시 난 행복이 뭔지 잘 모르겠어. 하지만, 이 나이 먹도록 살아오면서 나의 싫은 점이라든가 못난 면을 부정하기도 이젠 지쳤어.-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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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설주의보
윤대녕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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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엔 남성 1인칭 화자 시점의 불륜 단편집인가 싶었다. 남자 주인공은 근육이라곤 한 점 없을듯 한 초식룸펜들인데 여자들이 알아서 달려든다. 한 번 만난 여자가 갑자기 전화를 걸어 만나자고 하고 보고 싶다고 한다. 그러면 남주는 아주 드라이 하게 그 관계를 이어나간다. 아내는 어딘가로 치워버리고 귀찮은듯이 마지못해 어쩌다 한번 내연녀들을 '만나 주러' 가는 식이다. 그들은 문어체로 대화를 나눈다. 불륜의 찌질함을 담아내기에 그들의 언어는 너무나 고상하고 시적이다.


아직 불륜을 경험하기엔 어리고 양다리를 걸치기엔 게으른 나는, 소설 소재로서의 불륜에 대해서도 별로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편이다. 불륜이란 중년의 인간이 권태의 골목에서 택하는 가장 쉬운 자기기만의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불륜으로 주변에 민폐만 끼치고 있는 줄은 모르고서 자기가 마치 큰 거사를 도모하는 듯, 인생이 드라마인 듯, 별다른 노력을 한 것도 없으면서 자신의 대담한 선택으로 인생이 특별해졌다며 자위하는 것이 웃기다고 생각한다. 그 뒤에 찾아올 더 큰 허무를 생각하면 참 멍청하구나 싶기까지 하다. 그리고 그 불륜을 자신의 소설을 쿨해보이게 만들 소재로 삼는 작가들은 더 웃기다고 생각한다. 멍청한 인간들의 띨띨함을 적나라하게 파헤치지는 못할 망정 그 장단따라 정말로 그게 쿨한 일인것마냥 따라서 쓰고 있으니 말이다. 


근데 이 전투적 마인드론 이 책의 불륜 이야기와 싸울 수가 없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불륜을 저지르며 그렇게 신나보이지도 않고 시들시들하기만 하기 때문이다. 내가 당신들 참 웃기다고 나서면 주인공 캐릭터들은 쟤는 뭐니, 곁눈질 한번 하고 계속 소주만 따르다가 '오늘 우리집에서 자고 갈래요?' 조용히 이야기하고 자리를 털고 일어날 기세. 소재를 다루는 방식에서 불륜을 쿨함의 상징으로 차용하기 보다는 맥없는 초식동물 인생사의 상징으로 차용했기 때문인듯하다. 불륜 앞에서도 고만고만하고 오면 오는대로 가면 가는대로, 막지도 않고 붙잡지도 않고 무심하고 의욕없고 냉소적인듯 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엔 마음이 약해지는 캐릭터들.


모르겠다. 살다보면 이런 불륜을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 올 지도. 별로 그렇게 되고 싶지는 않지만. 다른 건 다 무심하게 살아도 남녀 사이의 일에서 만큼은 바닥까지 가는 뜨거움을 지키고 싶은데 살다보면 이렇게 의욕없이 불륜을 저지르게 되는걸까? 그렇게나 강하게 불륜을 비웃다가 책을 읽고서 이렇게 갸웃하게 되는 건 어느 부분들은 정말로 가슴이 아팠기 때문이다. 그게 작가의 글빨 때문인지 불륜의 또다른 모습을 가슴으로 이해해서인지 모르겠다. 전자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당분간 다시 또 읽고 싶진 않다. 가슴 아프던 그 구절들만 조용히 조용히 되새기고 싶다. 10년쯤 뒤에 무기력하게 불륜의 유혹을 받을때 읽으면 어떨까 싶기는 하다. 그러면 야채박스 속 시든 야채같은 불륜 보다는 이혼을 하겠다는 용기가 솟구칠 지도 모른다. 그래. 그래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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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7 15: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5-07 23: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대설주의보
윤대녕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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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땅히 갈 곳이 없으면 나와 함께 갑시다."
그러자 퀭한 눈으로 해란이 윤수를 쏘아보았다. 눈가엔 아직도 눈물 자국이 말라붙어 있었다.
"결국 그래서 만나자고 한 건가요?"
"그건 아니지만 나도 갈 데가 없어서 하는 말이오."
"그래봐야, 냄새 나는 여관이나 싸구려 모텔 따위겠죠. 지겨워."
"누추하지만 내 집으로 갑시다. 편히 재워주고 아침밥도 해드리리다."
"왜 그러는 건데요?"
"언젠가 누가 내게도 그렇게 해주길 바라니까요."-93쪽

"존재가 원래 혼자라는 뜻이라는 건 알겠는데, 저 들판의 비석 없는 무덤처럼 말이다, 그게 가끔 감당하기 힘들다고 생각될 때가 있는 것이다. 네가 뭘 알겠냐만."-129쪽

"저 여자냐? 근데...좀 연로한 것 같다."
"다섯 살짜리 딸도 있다네요."
"딸?"
그로부터 맥주 두 병을 마실 동안 삼촌은 입을 다물고 있었다.
"뭐 꼭 또래를 사귀라는 법은 없지. 하지만 모쪼록 상처에 대비하거라. 상처라는 건 대개 스스로 받는 거니까."-136쪽

"오늘도 저랑 같이 자고 싶지 않은 거죠?"
"변하지 않는 관계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어."
"..."
"그리고 어쩌면 내가 연미 너를 사랑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그녀는 덧없이 웃었다.
"아뇨, 사실은 내게 그다지 관심이 없어요. 나란 존재는 단지 환절기에 잠시 필요할 뿐인 거예요."
"..."
"삼촌은 언니를 좋아하고 있어요. 그것도 아주 많이."
"글쎄, 그럴까?"
"삼촌이 다른 여자들에게서 구하는 것은 사소한 것들이에요. 말하자면 호텔 여직원의 훈련된 미소나 서비스 같은 거. 그런 건 원래 집에 없는 거니까요."
연미가 위스키를 더블로 한 잔 주문했다.
"나에게 바라는 게 없다는 것 잘 알아요. 단지 삼촌은 가끔 베풀어주고 싶은 어떤 여자가 필요한 거예요. 언니한테는 그럴수가 없으니까요."-191쪽

"이건 순전히 내 느낌이지만, 시는 여자와 같은 것이더군."
"왜죠?"
"한 번 배신당하면 두 번 다시 울어주지 않더군. 시는 또 물질적으로 눈물과 성분이 같거든. 그것이 굳어 고요한 새벽에 푸르른 돌로 변하게 되지."-229쪽

스물아홉에 천둥 같은 사랑이 찾아왔다가 서른에 떠나갔죠. 그후 마음을 놓쳐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강구항에 오게 됐어요. 그날 서른 마리나 되는 고래가 바닷가로 떠밀려왔죠. 그런데 죽은 고래들을 보면서 눈물이 한없이 쏟아지더라고요. 그리고 다음날 아침 여관에서 잠이 깼는데 마음이 숲처럼 고요한 거예요. 마치 머나먼 고향으로 돌아온 것처럼 말예요. 저는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서울이 고향이라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거든요.-2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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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가족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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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소파에서 깜빡 잠이 들었다 깬 적이 있었다. 눈을 떠보니 미연이 일을 끝내고 돌아왔는지 슬립 차림으로 거실 구석에 있는 거울 앞에 앉아 화장을 지우고 있었다. 군살이 좀 붙긴 했지만 슬립 위로 드러난 미연의 몸매는 아직 탄력이 있어 보였다. 그녀는 화장을 다 지운 뒤에도 한동안 거울을 들여다보며 일어설 생각을 안 했다. 어딘가 처연한 표정이었지만 한편으론 자신의 얼굴에서 뭔가를 열심히 찾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다른 식구들은 모두 방에 들어가 잠들었는지 집 안이 고요했다.
나는 일어난 기척을 할까 했지만 왠지 미연의 비밀스런 순간을 엿본 것 같아 그냥 자는 체하고 있었다. 그녀는 삼십 분도 넘게 목석처럼 앉아 자신의 얼굴을 뚤어지게 들여다보고만 있었다. 미연은 도대체 자신의 얼굴에서 무엇을 찾고 있는 걸까? 이미 지나가버린 젊음의 흔적? 아니면 유난히 신산스러웠던 인생의 뒤안길? 또는 안개처럼 불투명하고 생각할수록 두렵기만 한 미래의 자화상?-103쪽

나는 여자의 그런 뒷모습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는 기시감이 들었다. 그것은 미연이 아니라 중년 무렵의 엄마였다. 내가 중학교에 다닐 무렵이었을까? 엄마는 거울 앞에 앉아 화장을 지우다 말고 지금의 미연처럼 오랫동안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엄마가 입고 있던 낡은 슬립은 여기저기 기운 자국이 남아 있어 그저 가난하고 각박하게 살아온 세월의 두께만이 무겁게 얹혀 있을 뿐 여자의 속옷이 주는 특유의 성적 긴장이나 평온한 휴식 같은 느낌은 조금도 없었다. 그때 나는 엄마의 쓸쓸한 뒷모습을 훔쳐보며 희미하게나마 엄마의 부서진 희망 같은걸 감지했다. 그런데 훌쩍 시간을 건너뛰어 또다시 여동생의 뒷모습에서 여자의 무겁고 숙연한 운명을 들여다보고 있다니, 여자의 인생은 그렇게 대를 이어 반복되는 것인가?-104쪽

성은 허물어져 빈터인데
방초만 푸르러
세상이 허무한 것을
말하여주노라
아 가엾다 이 내 몸은
그 무엇 찾으려
끝없는 꿈의 거리를
헤매어왔노라-147쪽

자존심이 없는 사람은 위험하다. 자존심이 없으면 자신의 이익에 따라 무슨 짓이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위험한 건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사람이다. 그것은 그가 마음속에 비수 같은 분노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은 자존심을 건드리면 안 되는 법이다.-222쪽

하지만 캐서린은 곧 냉정을 되찾고 능숙한 솜씨로 내 상처를 돌봤다. 낯선 나라에 가서 가족들을 힘겹게 건사하며 쌓은 내공이 느껴졌다. 그녀는 이민 초창기에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가 없어 가족들이 아파도 웬만한 응급처치는 자신이 직접 했다고 했다. 오랜 외국생활에 지친 기색이 역력한 그녀의 얼굴엔 '플리이즈'라고 쓰여 있었다.-262쪽

나는 언제나 목표가 앞에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 이외의 모든 것은 다 과정이고 임시라고 여겼고 나의 진짜 삶은 언제나 미래에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 결과 나에게 남은 것은 부서진 희망의 흔적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헤밍웨이처럼 자살을 택하진 않을 것이다. 초라하면 초라한 대로 지질하면 지질한 대로 내게 허용된 삶을 살아갈 것이다. 내게 남겨진 상처를 지우려고 애쓰고나 과거를 잊으려고 노력하지도 않을 것이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겠지만 그것이 곧 나의 삶이고 나의 역사이기 때문이다.-2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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