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코레아니쿠스 - 미학자 진중권의 한국인 낯설게 읽기
진중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1월
품절


자발적이면서도 강제적인 신체 만들기. 이는 한국 사회에 널리 퍼진 현상이다.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알아서 제 몸을 기업의 요구에 맞게 뜯어고친다. 언뜻 자발적인 것으로 보이나, 이 '존재미학'은 실은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강요한 '생존미학'일 뿐이다.
...국가 주도의 경제가 민간 주도로 넘어가면서, 온르날에는 국가를 대신하여 시장이 인간의 신체를 개조하는 역할을 넘겨받았다. 요즘 신문 지면에서 '맞춤형 인재'라는 말을 종종 본다. 이 말은 주로 대학에서 기업의 요구에 맞는 인간을 생산해주는 시스템을 가리킨다. 이제 인간도 양복처럼 맞춰진다. 여기서 일어나는 일은 산학협동만이 아니다. 기업의 요구대로 맞추어진 인재는 지식이나 관심사뿐 아니라 세계관 자체도 기업의 코드에 맞추어질 수바껭 없기 때문이다. -41쪽

삶이 예술이 되는 것은 좋은 일이나, 그 예술의 재료가 신체일 때는 상당히 착잡해진다. 신체를 재료로 한 북한의 매스게임은 보는이에게 근사한 작품일지 모르나, 정작 그 스펙터클 안에 들어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커다란 고통이다. 남한의 신체 예술은 어떨까? 시선은 권력이다. 시선의 '주체'와 시선의 '대상'은 처지가 다르다. 작품이 된 신체는 '보는 남자'에게는 미적 쾌감을 줄지 모르나, '전시된 신체'에게는 커다란 육체적 고통이 따른다.
-75쪽

신체의 자본화

여성의 사회 진출이 막혀 있는 곳에서 혼인은 신분 상승의 유일한 길이 된다. 직장에 들어가도 한국의 여성은 능력보다 '용모'로 평가 받는다. 게다가 일상생활에서도 남성들은 여성의 외모에 대해 노골적으로 비평을 한다. 이런 터무니없는 무례가 버젓이 공중파를 타기도 한다. TV를 켜면 개그맨들이 방청석에 앉은 여성들의 외모를 놓고 농을 지껄인다. 이런 사회의 다이어트는 특히 처절하고 필사적일 수바께 없다. 성형수술이 한국만큼 흔한 곳도 찾아보기 힘들다.
언젠가 이 문제를 놓고 야한 여자 밝히는 마광수 교수와 tv토론을 한 적이 있다. '얼굴 예쁜 여학생이 공부도 잘하고 일도 잘한다'고 믿는 그는 '성형을 안 하는 여자는 게으른 여자'라 단언한다. 예쁜 것을 좋아하는 것을 넘어 아예 못생긴 걸 죄로 간주하는 것이다. 이렇게 극성스런 마초 사회에서는 당연히 실력보다 미모에 투자하는 게 경제적으로 더 합리적인 선택이 된다. 여기서 여성은 자신의 신체를 본격적으로 자본화하게 된다.
-75쪽

엄청난 비용이 드는 성형은 글자 그대로 '투자'다. 물론 상류층 여성에게는 이 투자의 비용이 큰 부담이 안 될 게다. 하지만 이들과 더불어 미모의 경쟁을 벌여야 할 서민층 여성에게는 커다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그것을 피하여 비용을 무리하게 낮추다 보면, 불법 시술에 따른 온갖 부작용의 흉터를 평생 몸에 낙인처럼 새기고 살아야 한다. 신문에서 흔하게 접하는 소식이지만, 사실 이건 정말 비극적인 이야기다. -76쪽

시선의 권력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이 열렸을 때, 남한 남성들은 경기보다 북에서 온 응원단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들은 미녀 응원단에게서 남한 여성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생태적 매력을 보았다.'자본주의 물을 먹지 않아 순박'하고 '성형을 하지 않은 천연미인'이라는 것이다. 응원단은 남한 사회에 '북녀 열풍'을 불러일으키면서 폐쇄적인 북한 사회에 대한 부더적 인상을 누그러 뜨리는 효과를 냈다. 공산 체제가 경기장에 미녀의 얼굴로 나타난 게 <조선일보>는 영 불편했던 모양이다.

-78쪽

왜 남자는 없이 모두 여성들만 왔는지 궁금하기도 하고,배우처럼 활짝 웃는 얼굴 사이로 인공기를 흔드는 모습에 도취될 수도 있겠다 싶다.'아름다운 것이 선한 것'이라고 홀리게 될 때 미인계는 적중한다. -조선일보 2002/10/01

노동자, 농민의 국가에서 기계를 돌리는 튼튼한 여성노동자나 뜨락또르 모는 씩씩한 여성 농민이 아니라, 얼굴 예쁜 예술대생들만 골라서 보냈을 때에는 물론 체제 이미지를 개선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미인계'운운하면서 그걸 무슨 대단한 적화 야욕이나 되는 양 부풀리는 <조선일보>의 우스꽝스러운 태도는 북한의 체재만큼 경직되어 보인다. -78쪽

<조선일보>의 태도에 반공주의적 공격성이 있다면, 남한 관중들의 태도에는 남성주의적 공격성이 있다. 북한에서도 이 시선의 폭력이 불편했던지, 그 다음에 왰을 때에는 남한 언론에 '미녀 응원단'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한국 자본의 눈에 북한이 아직 개척되지 않은 시장으로 보이듯이, 한국 남성의 눈에 북하느이 여성들은 앞으로 시각적으로 정복해야 할 무공해의 처녀지로 보였던 것이다.
'아름다운 것이 선한 것'이라는 관념은 미를 최고의 가치로 보는 유미주의의 강령이다.<조선일보>의 우려대로 과연 유미주의는 반공주의를 압도해버렸다. 유전자처럼 뿌리깊은 레드 콤플렉스도 '미'라는 가치앞에선 무력했다. 여기에는 어떤 통쾌함이 있다. 하지만 그 통쾌함 이면에는 극성스러우 반공주의조차 압도해버리는 막강한 남성주의적 시선의 권력이 있다. 바로 이것이 한국 여성의 성형 수술과 다이어트가 세계 어느 곳에서보다 더 처절하고 필사적인 이유일 것이다.-79쪽

남 보기에

루리아라는 학자가 러시아 혁명 직후 아직 구술문화 단계에 있는 촌락공동체에서 필드 워크를 했다. "당신의 성격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이 물음에 한 농미능 이렇게 대답했다. "그걸 왜 저한테 묻지요 ? 동네 사람들한테 물어보세요." 자기가 자기를 평가하는 '반성'의 습속은 구술문화엔 낯선 것이다. 다른 이는 화를 버럭 내며 말하기를, "우리는 잘 하고 있어요. 그렇지 않다면 다른 이들이 우리를 이렇게 대접해주겠어요?" 구술문화는 이렇게 평가의 기준을 다른 이들의 반응에서 찾는다.

우리가 자라면서 부모에게 늘 들었던 말이 바로 '남 보기 부끄럽지 않게 살라'는 소리. 학교에서도 '누가 뭐라 하더라도 네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하며 살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이렇게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사회에서는 삶의 목표마저 남의 눈에 맞춰지고, 사람들은 남의 욕망을 욕망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누가 뭐라하든 올바로 사는 것, 혹은 누가 뭐라 하든 내 멋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이른바 '남 부럽지 않게' 사는 것, 혹은 '여봐란 듯이 '사는 것이 된다. -174쪽

이런 문화에서 윤리를 형성하는 감정은 죄책감이 아니라 수치심이다. 신 앞에 떳떳하지 않은 이도 사람들 앞에선 떳떳하고, 신 앞에 떳떳한 이도 사람들 앞에선 부끄러울 수 있다. 여기서 수치심을 느끼는 것은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 이렇게 윤리가 타인의 눈에 맞춰져 형성된 사회에서는 죄도 드러나지 않는 한 떳떳하고, 죄가 아닌 것도 드러나는 한 부끄러운 것이 된다. -174쪽

극성스런 사교육 열풍의 바탕에 깔린 것도 실은 생조느이 공포감이다. 아이를 일등 만들려는 상류층의 공격적 사교육과 달리, 서민층의 사교육은 아이를 생존경쟁에서 낙오하지 않게 하려는 방어적 성격을 띤다. "왜 아이에게 사교육을 시키느냐?"고 물으면, 대부분의 부모가 "남들 다 하는데 우리 아이만 안 시킬 수 없어서"라고 대답한다.
...공포는 판단을 마비시킨다. ...과거에 한국인의 심성을 지배한 것이 '전쟁'의 공포였다면, 오느날 한국인의 머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시장'의 공포다. -180쪽

생산의 비물질화

사회가 정부사회로 진입하면서 노동력의 상당수는 공장에서 사무실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이렇게 사무노동 종사자 수가 대폭 늘어나면, 사무직 노동자들이 과거에 누렸던 특권적 지위도 당연히 약화될수밖에 없다. 이로써 화이트 칼라의 블루칼라화가 진행된다. 반면 대다수가 몰락할 때 살아남은 소수의 농민이 농업 경영인이 되듯이 대다수의 몰락 속에서 살아남은 소수의 산업노동자는 기계의 관리인과 같은 전문적 지위를 누릴 것이다. -224쪽

몇 년 전 경주의 천마총에 갔을 때의 일이다. 천년의 역사를 묻고 침묵하는 고분 주위를 산책하고 싶어 들어갔는데, 입구부터 스피커에서 음악이 흘러나온다. 10m간격으로 산책로 전체를 스피커로 도배ㅐ놨기에 가도가도 음악이 끊기지 않는다. 흘러나오는 것은 서양의 왈츠와 중국의 경음악.관광객을 위한 배려란다. 이런 발상을 낸 게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파르테논 신전 앞에서 이박사 테이프를 듣고 싶어할 사람일 게다. -257쪽

"신부입장!"이라는 말과 함께 신부가 예식홀로 들어오자, 바닥에 갑자기 안개가 깔리기 시작한다. 결혼이라고 하면 그래도 인생에서 꽤 의미가 있는 행사일 텐데, 그렇게 중요한 행사를 굳이 눈 뜨고 봐주기 민망한 키치로 연출할 필요가 있을까? -264쪽

"나는 명품이 좋아요"라고 까놓고 얘기하거나, 남자가 주었다는 카드를 자랑하는 것 역시 많은 여성들이 가진 욕망의 솔직한 표현이다. 여자에게 교통카드밖에 줄 게 없는 고추장남들은 낸시가 연출하는 여성상을 아마 '된장녀'라 부를 것이다. 하지만 낸시는 된장녀의 속성과 욕망을 굳이 부정하지 않는다. 남들이라면 극구 부정하거나 애써 감추려 하는 것을 그는 '시대정신'으로 주장해버린다. 거기에 그의 도발성이 있다. -2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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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장미 2007-09-03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예요 ^^ 잘지냈어요? 으흐 진중권씨 좋아하는데, 이 책 어때요? 멋진 리뷰 올려주시면, 읽어보고 저도 지를께요! ㅋㅋ

LAYLA 2007-09-04 00:44   좋아요 0 | URL
멋진 리뷰는 약속 못드리지만 좋은 책인건 보증(?)할게요 ^,^ 가시장미님 아이들 논술 가르치는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히히 웃기기도 하구요 (마지막 밑줄긋기 2개는 순전히 웃겨서 쓴거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춤추는인생. 2007-09-04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일라님 춤인생왔어요^^
저도 이책 읽었는데. 와 참 미워할수 없는 사람이구나 싶었어요 미학오디세이는 읽다 말다 읽다 말다 하지만.
올겨울까지는 꼭 독파하려구요!! 라일라님 잘 지내세요?^^

LAYLA 2007-09-04 00:46   좋아요 0 | URL
네 전 진중권씨 빠순이 끼도 약간 보이는데 이 분이라면 정색하고서 그런 맹목적인 애정은 옳지 않다고 말할거 같아요 ㅋㅋㅋㅋ^,^ 저 역시 미학 오디세이는 다 읽지 못했답니다 OTL 우리 같이 올 겨울까진 다 독파해요...호호호호 (전 잘지내고 있어요, 오늘 개강했답니다. 춤인생님은요? 요즘 뜸하셔서 궁금해요~^^)

미즈행복 2007-09-07 0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분 엄청 좋아하는데 -소싯적엔 한겨레 문화센터로 인사동으로 이 분 강의 들으러 다녔었지요. 2000년인가? 2001년인가에. 집은 서울이지만 그해 겨울에 청주에 가 있을 일이 있었는데 청주에서도 강의 들으러 그 요일에 고속버스 타고 인사동에 올라오곤 했었지요. 근데 이 책은 읽어보니 예전의 그 날카롭던 비판이 -"네 무덤에 침을 뱉어라"- 많이 유해진 것 같아서 아, 나이 드셨구나 하는 생각이 떠오르던걸요?

LAYLA 2007-09-07 23:13   좋아요 0 | URL
와 정말 좋아하셨군요! 미즈행복님의 소싯적^^ 이 궁금해집니다. 소싯적 이야기 좀 많이 해주셔요 호호 ^.^
 
Madame FIGARO 마담휘가로 2007.8
㈜대천유통미디어사업본부 엮음 / ㈜대천유통미디어사업본부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래핑된 상태로 판매되는 잡지에 낚인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지만 ...이런 캐낚시는 풍선껌같이 허영만 가득찬 라이선스 패션 잡지계에서도 드물 정도로 큰 낚시질이기에 굳이 한달 밖에 유효하지 않은 잡지 리뷰를 남긴다. (오늘이 15일이니 실질 유효기간은 열흘 남짓인가)

Exclusive  43p, 디올 60년의 모든 것

1946~2008, 디올 패션 60년 화보 24p

꽁꽁 래핑해두고서 대문짝만하게 저것만 써놨길래 '아 딴건 다 구리더라도 패션화보만큼은 괜찮단 말이지?' 싶어서 구입했다. 그리고 래핑을 뜯고 1분 만에 내가 진실로 크게 낚였다는 것을 절절히 느낄 수 있었다.

디올 60년의 모든 것..............40년대 의상 사진 쪼끄만거 하나 끼워넣고 50년대 사진 하나 끼워넣고...결론적으로 80%이상이 2000년대 이상의 의상들이다. 진짜 디올이 만든 의상부터 갈리아노까지 디올의 변천사를 43p 컬러풀한 화보로 음미하고 싶었던 나의 꿈 따위는 산산조각.......인쇄와 사진의 질도 기대이하이다. 화보는 과연 한 포토그래퍼가 작업한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산만하다. 이것저것 옛날 자료 가져와서 붙여넣기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라이센스 패션 잡지 5년 봤지만 이 처럼 중구난방 화보는 첨이다. 진차 구린 화보는 여럿봤지만 이처럼 주제가 보이지 않는 화보는....인쇄의 질에 대해서는 일부러 그렇게 처리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내눈이 잘못된건가 하여 확인차 몇달 전 바자의 디올 화보를 봤더니 순간 내 시야가 확 트이는 느낌이었다. 브라운관 tv보다가 와이드 화면 PDP tv 보는 느낌이랄까. 참고로 몇달 전 바자 화보는 분량은 적었다만 퀄리티 면에서 휘가로보다 5배는 나아보였다. 그렇다고 바자 화보가 유달리 뛰어난것도 아니었다. 그냥 음 괜찮네 하고 넘어갔던 수준. 그 달 바자 구리다고 욕했었는데 새삼 미안해졌다. 너희 휘가로에 비하면 양반이었구나 미안...

결론: exclusive는 개뿔, 이 정도 보려고 6000원 낼 필요없음. 헌책방가서 1000원짜리 지난 잡지 6개 사서 보는게 디올에 대해서 아는데 더 효과적이리라 사료됨

디올 화보뿐만 아니라 잡지 전체적으로도 상당히 불만족 스러웠다.

이거 신세계에서 상위 1%를 위해 발행하여 무료로 배포한다는 잡지보다 퀄리티 면에서는 더 조악하다고 할 수 있다. 프랑스 라이센스 문화 잡지라고 그러는데 이게 문화잡지를 표방한다니 한숨이.. 그 문화란게, 패션찔끔, 예술찔끔, 인터뷰찔끔, 대중문화 찔끔을 말하는 거라면 맞는 말이긴 하다만 공짜로 배포되는 잡지보다 구린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인터뷰라고 하는 건 무슨 즉석에서 만난 사람과 30분 대화한걸 실은 느낌이고 패션화보,뷰티화보는 말 그대로 구리고 진부하고 재미없다. 살다가 이렇게 '사고 싶지 않은' 명품 백 화보와 촌스러워 보이는 뷰티화보는 첨이다. (그토록 바라던 프라다 백마저 지마켓 스러워보이다니..)뭐 하나 특출난 부분이 있어면 딴게 좀 떨어지더라도 묻혀가기라도 할텐데 고루고루 다 구려주시다 보니 묻힐래야 묻힐수가 없다. 문화잡지라면서 문화계인사들과의 인터뷰 수준은 패션잡지 보그나 바자보다 떨어진다. 비교불가. 구성과 내용자체가 산만해서, 에디터 여럿이서 대충 분담해서 이것저것 모은 다음에 마감 전에 조합한 느낌이다. 잡지의 고유한 아이덴티티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중구난방 내용없음 사자마자 갖다버리고 싶음- 도 아이덴티티라면 아이덴티티?)

내 6000원이 아까워서 갈리아노, 디올 화보 철저히 분석해서 찢어질때까지 노려봐주려다가 짜잉나서 던져버렸다. 내 살면서 잡지 하나에 이렇게 긴 리뷰를 쓸 줄이야...이때까지 본 보그나 바자 기타등등 라이센스 패션지 '최악의 호' 보다 더 심각한 수준이니 '다음달은 다르겠지'따위의 착한마음은 전혀 없다. 다 보고나서 생각해보니 굳이 래핑하고 디올화보만 하이라이트로 표지에 내놓은거 자체가 의도성 낚시질인거 같다. (하긴 뭐 표지에 쓸 내용도 없었을게다. 딱히 잘 해놓은게 없다보니) 양심없는 편집장. 낚시질 말고 잡지 퀄리티 좀 높혀주삼. 휴...차라리 패션브랜드 광고만 꽉꽉 채워져 있는게 나을것 같소. 그럼 눈이라도 즐겁지 이 촌스런 편집 어쩔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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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YLA 2007-08-15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 0개 옵션 속히 추가해주세요 지기님

로렌초의시종 2007-08-15 22:04   좋아요 0 | URL
이렇게 철두철미하게 알흠다운 리뷰가 얼마만인지~~!!>.< 추천은 제가 했어요!! 하지만 역시 한국의 라이센스 잡지계는 총체적으로 파탄 직전이죠.ㅋㅋ

LAYLA 2007-08-15 22:35   좋아요 0 | URL
광복절날 기분좋게 들어와서 샤랄라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하루를 행복하게 마감하려 했더니 오히려 뒷목잡고 쓰러질뻔 했습니다 ^^ 요즘 라이센스 잡지계 다 이런가요? 갈수록 바자가 구려져서 이번엔 다른 걸 볼까 싶었는데 완전 지뢰밟았습니다. 곧 이사갈 계획인데 짐되느니 곧 갖다버리거나 누구줘야할텐데 사자마자 버리고싶다니 기분히 희한하네요 ^^ ㅋㅋㅋ 로렌초의 시종님도 잡지 보시나요? 지큐? 에스콰이어? 맥심? 딴 말이지만 남자고딩들의 수험생활 친구가 맥심이라던 농담이 떠오르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마늘빵 2007-08-15 23:54   좋아요 0 | URL
헐. 잡지를 평하실 정도가 되셨군요. 내공이 대단하신겁니다. 난 잡지는 다 그냥 그런거 같아서 아예 안보는데.

LAYLA 2007-08-16 20:48   좋아요 0 | URL
내공이라뇨 허영의 세계에서 작은 즐거움을 찾다보니..ㅋㅋㅋㅋㅋㅋ

chika 2007-08-15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분노의 리뷰,라는 제목만으로도 추천감이라 생각하고 왔음. ^^;;;;

LAYLA 2007-08-16 20:48   좋아요 0 | URL
추천 감샵니다. 알라딘이 분노를 뿜어내는 공간이 되어선 아니되는데 ^^ ㅋㅋㅋ
 
아웃사이더 02
김규항 김정란 홍세화 진중권 엮음 / 아웃사이더 / 2000년 10월
절판


'지역감정'이라는 현상에는 윤리적 층위와 정치적 층위가 포함되어 있다. 이 가운데 역시 세인의 관심을 끄는 것은 후자, 즉 지역감정의 정치적 효과다. '지역감정'이 운위되는 맥락은 대부분 현실의 정당정치에 과낳ㄴ 것이다. 그리하여 선거철이 지나면 '지역감정'이라는 말은 공론의 영역에서 소리 없이 사라지고 만다. 이 와중에서 종종 잊혀지는 것은, 한 집단이 다른 인간 집단을 차별하는 것은 인종차별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반인륜적 범죄라는 사실이다. 지역감정을 논할 때 정치적 열기 속에 쉽게 묻혀지는 것이 바로 이 점이다. 나는 이 점이 다른 어떤 고려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이런 문제가 우리 사회에 아직까지 존재한다는 것은 영남인들만의 책임이 아니라 그 차별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거나 침묵을 통해 소극적으로 반관해온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70쪽

...여기에서 순수학문이라는 대목을 비판하실 분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좀 더 부연설명을 한다면, 제가 의미하는 순수학문이란 현실에서 유리된 채로 상아탑에서 자족적이고 뜬구름 잡는 학문을 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것을 지양한 상황, 즉 기본적으로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누리면서 제한된 사회의 상상력의 지평을 보다 넓게 열어나가는 학문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정의된 학문은 자유로운 사고와 표현을 침해하는 어떤한 억압에도 저항살 수 있는 근거를 갖게 됩니다. 따라서 대학은 사회의 상부구조(당연히 하부구조 포합)를 보다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지요. -92쪽

조 편집장님은 친절하게도 역사를 짧게 보면 군대가 민주화를 방해한 것처럼 보이지만, 넓게 보면 민주화의 후견인이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좁게 보고 넓게 보아도, 이리 보고 저리 봐도 알 수 없는 둘리인 것을 어쩌겠습니까. 넓게 보면 볼수록 국군은 민주화의 걸림돌입니다. 특히 일상의 민주화, 생활을 민주화와 관련해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군대 갔다온 남성들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전부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대부분이 남성중심적이고 비이성적이며, 자기반성이 없는 인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남성들이 군대가기 전에 순결을 '버리기 위해서(있는 걸 왜 버리지? 무겁지도 않은데?)' 창녀촌을 향해서 돌진을 하는 사실을 모르시진 않겠죠? 그게 여성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갖게 되는 중요한 계기라는 것도 인정하시나요? 이게 얼마나 남녀평등으로 가는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인지도 아시죠? 아 조 편집장님에게 여자는 남자의 성적 대상으로서만, 정액받이로서만 존재하지요? 아, 몰라뵈서 죄송합니다. -96쪽

조 편집장님은 문화민주화와 사회민주화의 결정적 걸림돌인 군대에서 겨껙 되는 어이없는 고통과 처우에 대해서도 친절하게 일러주십니다. "'신고빠따', '선착순', '원산폭격'을 당하면서 인격과 인권이 바닥에 떨어졌을 때...더 떨어질데 없는 바닥까지 떨어져 본 사람들은..그 시적을 떠올리며 '에이, 군대생활 하는 셈치지 뭐'하면서 용기를 동원해내기도 합니다."
맞습니다. 군대생활은 인간을 하나의 물건으로 전락케 하고, 정당한 이유도 없고 필요이상으로 가해자는 가혹한 구타와 기합은 진취적인 젊은이를 시키는 것만 하고 눈치만 살피는 수동적이고 간사한 인가능로 만들며, 주위를 돌아보는 관대한 인간을 고참이 되어서 당한 만큼 돌려주기를 다짐하며 복수심을 불태우는 치졸한 인간으로 만듭니다.그뿐인 줄 아십니까? 정당한 대화와 토론의 가능성을 원천봉쇄하는 상명하달의 위계구조와 복종관행은 군대를 떠나서도 한국 남성의 가슴 깊숙이 남아 사회전체의 획일화와 경직화, 대화 및 토론부재, 노예근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출판되는 각종 출판물들에 대한 검열때문에 군대에서 읽을 수 있는 것들은 고작해야 국방이로반 월관조센징이나 한창때의 젊은이들에게 극우. 파쇼적 사고를 머리 속 깊숙이 박아 넣어 머리는 없고 감정만 남은 인간으로 개조하는 것도 군대가 지니고 있는 역사적 사명입니다. -97쪽

... 아지만 이건 허구에요. 난 민족 중흥의 사명을 띠고 태어난 게 아니라 엄마 아빠가 같이 자서 난자와 정자가 결합한 결과 태어난 것일 뿐이에요. 그리고 그 주정 과정은 확률이 수억 분의 일이기 때문에 역사적 사명은 고사하고 우연에다 우연을 더한 결합으로 발생한 것이지요.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자식을 얻기 위해 백일지성을 드린 수 정말 역사적 사명을 띠고 잠자리를 같이 한 경우도 있겠지만, 정반대로 '술이 웬수'이거나 '찢어진 불량 CD'때문인 경우도 있을 거에요./ 여기에 무슨 의믈르 부여한답디까? 그리고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은 왜 내가 책임져야되는데요? 보이지도 않는 실체 때문에 소중한 몸과 마음을 다 바쳐요? 그럴 정성 있다면 곁에 있는 부모나 형제나 친구에게나 잘 해주세요. -102쪽

조선일보도 그랬고 또 기타 보수세력이들이 DJ가 빨갱이라고 저놈이 정권을 잡으면 우리나라 김정일한테 갔다바칠 거라고 사설에 쓰고 그랬다. 보수냐 진보냐는 신념이다. 신념있는 보수세력이 있으면 청와대 앞에서 광화문 앞에서 분신자살을 한 20명은 햇어야 한다. 국민들이여, 우리나라는 이제 절단이 됐다. 우리 진보세력들은 불과 20년을 거슬러 올라오면서 백명 넘게 분신자살을 했다. 그럼 백이 아니라 그 십분의 일인 열이라도 분신자살을 했어야 된다. 단 한 명도 안 했다. 환장할 노릇이다. 그럼 그걸 어떻게 세력이라고 우리가 인정할 수 있냐 말이다. 한국에 보수세력이나 극우세력이라는 건 없다. 조선일보를 봐라 아무리 정치적 논리라고 해도 DJ가 대통령이 됐으면 전부 절필을 해야지. 어쩔 때는 칭찬도 해주고 어쩔 때는 까고 이짓거리들을 한다. 그것들이 기회주의자들이지 어떻게 보수주의자 극우주의자들인가.-1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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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를 위하여 - '아웃사이더' 편집진 산문모음
김규항 김정란 진중권 홍세화 지음 / 아웃사이더 / 1999년 11월
절판


군대 가서 사람된다느니 사내다워진다느니 하는 얘기는 그저 농담이다. 사람이 되는 게 권위에 무작정 복종하는 일이고 사내다워지는 게 힘없는 사람에게 일수록 불량스러워지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군대도 군대 나름이겠지만 이 나라의 평범한 아들들이 가는 군대란 언제나 고되고 삭막하고 위험하기 짝이 없는 고시며 아차 하면 병신 되거나 죽는곳임 도무지 배울 게 없는 곳이다. 돈을 먹여서 군대를 빠지는 일이 끔찍한 죄인건 단지 신성한 국바으이 의무를 다 하지 않거나 남 하는 고생을 피해서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를 대신 군대에 보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마님 아들 빠진 자리를 머슴 아들이 대신하게 하는 것이다. -39쪽

...더군다나 박정희 시대의 정치적 폭압을 겪어보지 못한 젊은층에서 발견되는 박정희 향수는 '정치적'이라기보다는 '문화적'이다. 그들은 박정희의 이미지를 소비하는 것이지, 그의 정치적 입장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영웅을 구하는 사회는 유약한 사회이다. 문제를 진단하고 처방을 제시할 수 없는 사회가 영웅에 기댄다. 내가 못하겠으니까, 나 대신 해주셔요, 하고 영웅을 소환하는 것이다. 결국 영웅주의는 패배주의적 운명주의의 뒤집힌 이름에 불과하다.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순진한 대중을 정신적으로 유약한 상태에 묶어두려고 하는 이 상징조작이 두렵기 그지없다. -61쪽

자의식 없는 사람들은 국가나 민족과 같은 집단과의 동일시 속에서만 제 정체성을 찾는 법. 그래서 조국과 민족이 군사적 성공을 거두는 허구의 소설을 통해서만 자아를 실현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엔 애국자도 많고, 민족대표도 많다. 너무 많다. 그래서 난 슬프다. -108쪽

...우리나라에서 예술이 발전하지 못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 어느 예술적 상상력도 현실 속에서 벌어지는 그 엄청난 일들의 스케일을 따라잡지 못할 게다. 가령 헐리우드적 상상력이라도 지진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백주에 멀쩡한 백화점이 그 자리에 주저앉아 300명의 사망자를 내다는 시나리오를 생각해낼 수는 없을 게다. 또 어느 시나리오 작가가 정지상태의 버스가 다리 위에서 강물로 잠수하는 기상천외한 모티브를 생각해낼 수 있겠는가? 또 정치인들이 하는 뻔뻔한 농담, 언론은 또 어떻고?
,,,이 현실의 희비극. 순전히 미적 관점에서만 본다면, 신문을 읽는 것처럼 신나는 일은 없다. 로마 시내에 불을 질러놓고 그 불길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시를 읊는 네로 황제가 된 기분으로 본다면. 그런데 한가지 조그마한 문제가 있다. 즉 현실은 허구가 아니라는 것이다. 양자 사이에는 거대한 존재론적 장벽이 놓여 있다. 다시 말해 그 장대한 희비극의 스펙터클을 여유 있게 음미하고 신문을 덮는 순간, 나는 다시 느긋한 유미주의 황제의 입장에서 목숨을 부지하려고 불길에 휩싸인 로마시내를 이리저리 뛰어다녀야 하는 가련한 로마 평민의 주제로 되돌아와야 하는 것이다.-124쪽

100년의 시차를 느끼게 하는 것은 지식인의 '지식'이 아니라 '양심' 이다. '여기 이 땅'의 '진리'와 '진실'에 대한 목마름 없는 '양심'을 '지식'으로 대신할 순 없는 것이다.-1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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겐지와 겐이치로 B - 짓궂은 겐이치로
다카하시 겐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3월
절판


대체로 나는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생활을 견지해왔다. 그것은 내 주장중 하나였다. 쓰레기는 불에 태워지고 산화하여 이산화탄소를 배출해서 오존층에 구멍을 내기 때문이다. 오존층에 구멍이 뚫리면 위험한 자외선이 펑펑 쏟아져서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사람은 죄다 피부암에 걸리고 끝장에는 알츠하이머병에 걸리는 것이다. 누군가 그 병에 걸린 대통령이 있었잖아. 손을 뻗으면 닿을 곳에 사흘 전의 김밥 도시락 남은게 있었다. 손을 뻗으면 닿을 곳에 나흘 전의 이탈리안 햄버거 도시락 남은게 있었다....엿새, 이레, 나링 흘러감에 따라 도시락들은 부패하기 시작해서 상당히 냄새가 난다. 초심자에게는 퍽 괴로운 것이다. 이런 상태일 때 집에 찾아오는 놈은 대부분 파랗게 질려버린다. 냄새가 지독하다고 과장되게 말한다. 미숙한 놈들. 처음에는 톡 쏘는 식초같은 냄새. 그리고 직접 뇌수에 퍼져오는 듯한 이상한 냄새로 변화해간다. 이제는 냄새만 맡아도 그 도시락을 구성하는 성분과 요리 후의 경과 시간까지 알아낸다. 나는 세상에 단 한명뿐인 부패 소믈레이. 하지만 그 상태를 뛰어넘으면 도시락들은 전혀 다른 존재가 된다. 이건 정말 굉장하다. 우선 대단히 커럴풀하게 된다. 그저 허옇기만 하던 밥이 히타치의 플라즈마 50인치 텔레비전 광고 색깔 견본처럼 풀 컬러 1200만 화소의 색깔로 물들어간다. 그 도시락 뚜껑을 무서무서하면서 열어볼 때의 스릴과 서스펜스는 한니발과는 비교가 안된다니까-33쪽

오오 판타스틱두부에 뭔가 가느다란 털 같은 게 생겼잖아-34쪽

오오 판타스틱-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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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YLA 2007-07-28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체로 나는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생활을 견지해왔다. 그것은 내 주장중 하나였다. 쓰레기는 불에 태워지고 산화하여 이산화탄소를 배출해서 오존층에 구멍을 내기 때문이다. 오존층에 구멍이 뚫리면 위험한 자외선이 펑펑 쏟아져서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사람은 죄다 피부암에 걸리고 끝장에는 알츠하이머병에 걸리는 것이다. 누군가 그 병에 걸린 대통령이 있었잖아. 손을 뻗으면 닿을 곳에 사흘 전의 김밥 도시락 남은게 있었다. 손을 뻗으면 닿을 곳에 나흘 전의 이탈리안 햄버거 도시락 남은게 있었다....엿새, 이레, 나링 흘러감에 따라 도시락들은 부패하기 시작해서 상당히 냄새가 난다. 초심자에게는 퍽 괴로운 것이다. 이런 상태일 때 집에 찾아오는 놈은 대부분 파랗게 질려버린다. 냄새가 지독하다고 과장되게 말한다. 미숙한 놈들. 처음에는 톡 쏘는 식초같은 냄새. 그리고 직접 뇌수에 퍼져오는 듯한 이상한 냄새로 변화해간다. 이제는 냄새만 맡아도 그 도시락을 구성하는 성분과 요리 후의 경과 시간까지 알아낸다. 나는 세상에 단 한명뿐인 부패 소믈레이. 하지만 그 상태를 뛰어넘으면 도시락들은 전혀 다른 존재가 된다. 이건 정말 굉장하다. 우선 대단히 커럴풀하게 된다. 그저 허옇기만 하던 밥이 히타치의 플라즈마 50인치 텔레비전 광고 색깔 견본처럼 풀 컬러 1200만 화소의 색깔로 물들어간다. 그 도시락 뚜껑을 무서무서하면서 열어볼 때의 스릴과 서스펜스는 한니발과는 비교가 안된다니까!! 오오 판타스틱!두부에 뭔가 가느다란 털 같은 게 생겼잖아! 진짜 진짜 존 카펜터의 영화에 나오는 에일리언처럼 완전 초현실이야! 이 흐물흐물하게 찌그러진 액체 상태의 것은 원래 무엇이었지? 나는 그 정경을 보여주고 싶어 여자를 데려온 적이 있었는데, 왠지 다들 즉각 도망쳤다. 뭘 모른다니까. 진짜.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거다. 여자라는건, 하긴 남자도 그렇지만.
하지만 그 지복의 시기를 지나면 성자필쇠의 이치에 따라 도시락은 다시 흘배긍로 변해간다. 말라비틀어져 작아져간다. 작고 얇아져서 어떤 의미에서는 도회지의 화석이라고 할 수 있는 어떤 것이 된다. 냄새 또한 약하고 희미해져서 어떤 의미에서는 낙엽이나 쇠에 슨 녹 같은 것이 된다. 이거, 어떤 의미에서는 최고급 와인과 똑같은 것이다. 뭐랄까, 내 방의 쓰레기는 어떤 의미에서는 내 역사의 일부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얼룩말 2007-07-29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금 이 책 읽고 있어요^.^

LAYLA 2007-07-29 0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왕 신기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