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 88만원세대 새판짜기
우석훈 지음 / 레디앙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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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유명한 우석훈 박사의 책을 처음으로 읽어보았다. 순서대로 따지자면 88만원 세대를 먼저 읽어야 할 테지만 도서관에서 책이 들어오는 대로 읽다보니 이 책을 먼저 읽게 되었다. 88만원 세대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킨것으로 쉽게 짐작 가능하지만, 우석훈 박사의 글은 정말 발랄하다. 발랄하면서도 학자의 글 답게 간결한 문장에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꼭꼭 다 들어가 있는데, 그래서 아이쿠 어쩜 이렇게 글을 재미나면서도 똑똑하게 쓸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 책이 하는 말은 '어떻게 진을 짤 것인가?' 이다.  20대를 혁명의 현장으로 끌어내기 위해서는 '진'이 필요한데 문제는 경쟁을 몸과 영혼으로 체화하며 성장한 20대는 연대의 추억을 전연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본 게 있음 배우기라도 할텐데, 연대했다던 기성세대들은 자신들이 이뤄낸 것들을 전리품마냥 자랑하며 20대를 구조적으로  착취하고 있으니 젊은이들이 연대에 대해 냉소적이 될 수밖에 없다. 또 한편으론 요즘 20대에겐 새로운 연대의 모델이 필요하다. 누구 말 듣기를 끔찍히 싫어하는 21세기 20대들에게 상명하달식 80년대 운동권 연대 모델 갖다줘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근데 이런 분석에 앞서 더 중요한 문제는 요즘 20대는 당췌 움직이질 않는단 거다. 착취당하는 20대가 들고 일어나야 당연한 이 상황에서 20대들이 택한 자기보호 전략은 거리로 뛰쳐나가는 것이 아니라 '쿨한척'하기 이기 때문이다. 쿨한척, '나는 이 비극이 아무렇지 않아'라고 가장함으로써 현실로부터 눈을 감아 버리면 연대를 할 필요도 없어져 버린다. 아무리 아파도 난 아무렇지 않아요.라고 도도하게 말하는 20대들.  뭐 같은 현실에서 틀을 깨고 남다른 사고방식으로 제 나름의 길을 찾은 사람들을 보며 이 냉소적인 20대들은 말한다. "그 사람들은 엄친아잖아요?" 이렇게 쿨하게 응대하면 경쟁에서 뒤쳐졌다는 사실도 쿨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 사람은 엄친아.엄친딸이고 난 평범한 사람일 뿐이니까. 이 '쿨'병이 만연하는 한국사회에서 어떻게든 20대들의 '쿨'이라는 가면을 깨트리고 그들을 뜨겁게 만들어보려는 우박사의 노력은 도통 먹혀들지 않는다. 

     어쨌든 안 먹혀들긴 하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20대들의 진짜기 전략을 제시하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 편의점 알바 노조 만들기라던지 하는 것이 전략으로서 제시되는데. 그람시 말대로 신자유주의 시대의 혁명은 장기전이 되어야 하기에 이런 조용한 혁명의 '전'과정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서 과연? 이것이 현실 가능성이 있는가?에 대해서 나는 회의적이다. 현 20대는 절대로 거리로 나설수 없다. 안전이 보장되는 온건한 운동이라면 모를까 혁명을 앞당기는 운동에 나설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럼에도 현 20대가 가지는 의미는 이전 세대보다 처참한 현실에서 여러가지 바닥을 겪은 세대들이고 그렇기에 이들이 기성세대가 되었을 때 보다 젊은 세대의 운동에 대해서, 보다 진보적(최소한 한나라당은 아니라고 해두자) 정치정당에 대해 지지를 보낼 수 있는 층은 된다는 거다. 교대 사대 나와서 임시직 교사 뛰면서 임용고사 3-4년 준비하고 졸업하고 정규직 취업은 꿈도 못꾸는 현실을 견뎌내며 이명박 뽑았던 손목을 끊고 싶다는 충동을 한번쯤 느껴본 바로 그 20대들이 그런 어른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쿨한 20대가 좀 관대한 30대가 되도록 내버려 두고 혁명의 불씨를 10대들에게 찾아보는 건 어떨지? 비유를 해보자면, 천성은 바꿀수 없다는데, 요즘 20대들은 나고 자라고 배운게 지금의 모습인데 그걸 어떻게 바꿔서 혁명으로 가보자~~~! 하는건 너무 이상적이거나 허무맹랑하거나 그렇게 들린단 거다. 차라리 요즘 교복도 거부하고 두발자유화 거세게 외치는 10대들에게서 희망을 찾아보면 어떨까? 앞서 말했듯이 요즘 20대들 방바닥 긁는 백수생활, 히키코모리 생활하며 요즘 10대들에게 미안하단 소리는 하더라. 자기들이 나서서 들고 일어나지 못해서 이런 현실을 10대들에게 물려주는게 미안하다고. 그런 생각까지 하고 후대들까지 걱정하는게 참 가상하다만 어쨌든 이 방바닥 20대들은 절대 못일어난다는거고. 10대들이 들고 일어나면 서포트는 열심히 해줄 사람들이다. 내가 치울 똥 남에게 미루는거 같아서 미안하지만 어쨌든 현실이 그렇네. 

      책 마지막 챕터쯤 가면 우박사가 가르친 대학생들의 에세이 비스무리한게 나온다. 요즘애들 얼마나 똑똑한지 잘 볼수 있다. 다들 글도 참 잘쓴다. 솔직한 것도 20대 답다. 근데 글 잃다 보면 '.......그래서 ?' 란 말이 나오는건 어쩔수가 없었다. 이들은 똑똑하지만 지금의 20대가 왜 혁명의 주자가 되지 못하는지 잘 보여준다. 현실앞에 벌거벗고 서서 자신을 직면한는 용기는 갖추었지만 행동과 실천에 있어서는 글쎄요. 다. 

혁명은 피튀기고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건데 조용한 혁명 준비가 곧 '조용한 혁명'도 가능하다는 소리처럼 들려서는 안된다. 그 부분이 명확했더라면 더 좋았을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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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산책 2009-12-30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88만원 세대>의 대안 제시로군여~ 새해 행복 많이 받으세용^^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 영원히 철들지 않는 남자들의 문화심리학
김정운 지음 / 쌤앤파커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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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 책은 영원히 철들지 않는 남자들의 문화심리학을 설명하는 책이 아니다. 

책 자체의 퀄리티가 떨어져서 별점이 박한 경우도 있지만 기대한 것을 책이 주지 못할 때 그 간극만큼 별점이 박해지는 경우도 있다. 이 책은 후자에 속한다. 저자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하지 않으며 뭣보다 이 책은 '영원히 철들지 않는 남자'들이 왜 그렇게 철들지 않고 팔랑거리며 사는지 그에 대한 명쾌한 문화심리학적 설명을 제공하지 않는다. 이 책은 그런 거창한 소리 다 집어치우고 그냥 저자의 에세이집 정도라고 보면 딱 알맞을것 같다. 배운티 나고 글 하나하나에 그 배운티가 녹아나고 뭐 재미도 있다. 근데 영원히 철들지 않는 남자들은 어디로 간걸까........? 한국 남자들은 이래서 뭐가 어떻고 저떻고 소리는 자꾸 나오는데 결국 글의 논지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은~~~'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남자들을 분석한 문화심리학 책이 아니라 저자, 한 남성의, 한 심리학과 교수의 에세이집 이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기대한 것은 과학적인 심리학적 분석이었건만 내용물은 중년 남자 교수님의 캐주얼한 글들뿐이다. 예를 들면,  '요즘 한국남자들은 감탄을 잘 하지 않는다. 캬-이야-우와-감탄을 하며 일상에서 경이로움을 발견하는 삶이 더 행복한건 지당한거 아니겠니?'이런 방식의 글이라면 잘 설명이 되려나. 시크한 표지와 도발적인 카피는 너무 이쁜데 그거랑 책의 내용물이 일치하지 않는단 걸 먼저 인지하고 시작하면 한결 나을거 같다. 실망이 크지 않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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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 88만원세대 새판짜기
우석훈 지음 / 레디앙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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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경제 운용 방식으로, 그러니까 거시적으로 분석하면 지금 우리가 이해해는 것과 조금은 다른 얘기들이 나올 수 있다. 케인스 시대에는 국가가 직접 경제에 개입해서라도 자본주의가 사회주의 그리고 코민테른보다 우수하다는 것을 알리려고 애썼다. 흔히 케인스 경제 체제를 수정자본주의라고 한다. 자본주의의 우수성을 보여주기 위해 사회주의와 경쟁하는 과정에서 원래 자본주의에는 없던 많은 복지와 후생 장치들을 만들어 넣었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의 복지와 후생 장치들의 탄생 배경은 조금 다르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 복지 제도 예를 들어 이명박 정부가 틈만 나면 해체하려고 하는 의료보험 제도만 해도 박정희 때만들어져 전두환, 노태우 정권 때 확대 실시되었다. 한국 우파들이 무척 자랑스러워 하는 이런 복지 제도들은 실은 대부분 군사정권이 민중들에게서 정권의 정당성을 인정받으려고 만든 것이다. 신자유주의라는 이 특별한 시장 근본주의는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이 무너진 90년대 초. 중반에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본주의로서는 더는 적이 남아 있지 않은 상횡이었다. 이런 점에서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 내부의 약-46쪽

자 들에겐 잔인한 경제 시스템이다. 그들이 탈출구로 생각할까 봐 두려워했던 사회주의 국가들이 이미 무녀져, 국가로서는 굳이 그들에게 뭘 더 해줄 이유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제 국가는 집회, 시위 등 내부약자들의 저항만 해결하면 된다. -47쪽

엘리트들, 스카이 대학 학생들은 대부분 누구보다 먼저 이념으로서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인 이들이다. 이들에게 신자유주의는, 국민경제를 운용하는 케인스주의 다음에 왔던 매우 특수한 경제적 양상이 아니라 보편적이며 영구한 신앙과 같은 것이다. 경쟁은 아름답고, 그러한 경쟁만으로 자신이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 생존자들이 모인 곳이 바로 지금 한국의 대학이다. 그중에서도 부모들이 자부심을 느낄 정도로 특출 난 일류 대학들이다. 이념으로서 신자유주의 개념은 학술적으로 볼 때 아주 복잡하며, 개인이 내면화한 것이라 철학적으로 정의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무슨 상관이랴.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앞에 서 있으면 열에 아홉은 그런 신자유주의를 가슴 깊이 담고 살아가는 특별한 존재들을 만나게 될 테니 말이다. 경쟁해서 친구를 이기면 천국이 펼쳐진다는 단 한마디만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한 명씩 걸어가는 육화된 신자유주의 이념들을 아주 쉽게 만날 수 있다.

저기, 신자유주의가 걸어가고 있다.

헤겔이 자신의 하숙집 밑으 지나가는 말을 탄 나폴레옹을 보면서 "저기 절대정신이 지나가고 있다."고 말했다면, 지금 우리는 "저기, 신자유주의-50쪽

가 걸어가고 있다"며 대학가에서 고뇌할 것이다. 그러나 그 신자유주의들도 실은 불편하고 외롭지 않을까-50쪽

정말로 답 없는 이명박과 청와대에 계신 분들이 그러나 한국의 20대에 대해서 한가지 간과한 것이 있기는 하다. 그들은 소비에 더 길들여져 때때로 소비적 존재로 여겨지고 정치적으로는 나약하고 무기력해 보일지 몰라도, 대단히 미학적인 존재라는 사실이다. 신자유주의 그리고 대기업CEO가 20대들의 이상이란 관점에서, 어쩌면 이명박과 20대는 오히려 이명박과 50대보다 더욱더 환상의 복식조를 이룰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미학적인 측면에서 지금 20대들이 얼마나 민감한 존재들인지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80년대 전두환에 대한 미각적 거부감은 있어 '대머리'라는 말로 상실감을 표현했지만, 그 시기에는 이성이 작동해야 한다는 시대정신 때문에 감성은 비합리적이라는 생각이 공유되었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간지가 맨 앞에 나오는 시기다. 이명박 정부의 치졸한 정책들과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 말들,계속되는 너무 뻔한 거짓말들이 지금 20대들의 미학과는 도저히 맞지 않는 것 같다. ..간지를 목숨처럼 여기는 이 20대들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명랑함. 그렇다고 이들이 이명박 싫다고 바로 민주당이나 진보신당 같은 데로 관-69쪽

심을 돌릴까? 그럴 리가 있나. 많은 20대들에게 간지는 취향이 아니라 존재 이유다. 불의는 참아도 추한 것은 참을 수 없다는 이 독특한 감성, 그것이 앞으로 펼쳐질 다음 세대들의 존재론 아니겠는가. -70쪽

지금 20대들은 성인들의 세계에 잘못 태어난 난쟁이라고 자신들을 생각 할 수도 있다. 맨손으로 모든 것을 일구어 냈다며 자부심이 대단한 50대들의 세계에서 20대는 이해할 수 없는 난쟁이들일 뿐이다. 전두환도 꺾고 노태우도 내몰았던 40대들에게 지금의 20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패배자들이고 지독한 회의론자들로 비추어질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기원에 관해서 잘 생각하지 않으려 하고, 자기가 쌓은 경험이라는 단 하나의 창으로 세상을 보려는 경향이 강하다. 야속하겠지만 원래 인간이 그러한데 어쩌겠는가-76쪽

프랑스 학생들이라고 해서 덜 경쟁하거나 학업의 부담이 적은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러나 유럽의 경제는 한국에 비하면 더 많은 다양한 삶을 가능하게 한다. 이런 현실로 인해 감옥 한번 갔다 왔다고, 대학에서 1년 유급됐다고 해서 인생이 끝날 정도로 엄청난 일이 벌어지지는 않는다. 유럽 대학생들은 중.고등학교 때 한국과 달리 독서와 사색 그리고 토론을 충분히 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데, 그렇다고 그들이 한국 학생들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책을 많이 읽고, 개개인마다 엄청난 철학적 사색을 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프랑스 대학에는 한국과 달리 운동권이 탄탄하게 자리 잡고 거대한 좌파 블록도 조직화 되어 있을거라고? 최근 한국 대학에서 사회과학 동아리들이 망했다고 난리지만 프랑스에는 일부 체육 관련 동아리를 제외하면 동아리 자체가 아예 없다. 따라서 유럽과 한국 대학생들의 상황이 다른 것은 실제로 그 나라의 경제 구조가 달라서다. 프랑스 대학생들도 한국과 같은 스펙 경쟁 구조에 놓이면 별 수 없다는 말이다. -106쪽

민주주의를 말할 때 반드시 언급하는 스위스조차도 1971년에야 여성들의 투표권을 인정한 것을 보면 해방 직후 여성들에게도 남성과 똑같이 참정권을 준 한국의 제헌의회가 얼마나 진보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 물론 그냥 주어진 것과 스스로 쟁취한 것에는 그 내용에 많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건 스위스에선 이미 여러 번 여성 대통령이 나왔다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1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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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산책 2009-12-22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석훈이 새책을 냈군여~ 딸기 맛있겠당..하얀 꽃잎 흩날리는 거 이뻤는데 바뀌었네용^^

LAYLA 2009-12-22 17:34   좋아요 0 | URL
변화를 시도해봤습니다. 꽃잎은 봄되면 다시 데려올까요?^^
 
내게 말을 거는 공간들 - 뮌헨의 건축하는 여자 임혜지의 공간 이야기
임혜지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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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단도직입적으로 오랜 의문을 털어놓았다. 건축가는 남의 돈으로 자신의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존재하느냐, 아니면 사용자의 이상을 실현시켜주기 위해 존재하느냐, 장차 그 건물을 사용할 사람이 원하는 바를 건축가가'건축이라면 내가 더 잘 안다'는 미명하에 안 들어줄 자격이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때 휘브너 교수의 대답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그는 단 1초도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건축주가 달라고 하는 걸 주지 말고 그가 원하는 걸 주라" 무슨 뜻일까? '건축주가 원하는 것'은 유리에 붙인 창살, 그 자체가 아니다. 옛날 창살로 연상되는 부드러운 분위기의 아늑한 공간을 원하는 거다. 비전문가는 그렇게밖에 자신의 희망을 표현할 수 없다. 그 말을 제대로 알아듣는 것은 건축가의 몫이다. 그리고 건축주가 원하는 바를, 모조훔이 아닌 품격 있는 디테일로 실현시키는 것도 건축가의 몫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건축가는 전문인으로서 사회의 미관을 책임지는 의무도 수행하고, 서비스인으로서 건축주의 요구를 실현시키는 의무도 수행하는 것이다. -2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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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 영원히 철들지 않는 남자들의 문화심리학
김정운 지음 / 쌤앤파커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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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긴 북구의 집들에겐 형광등 불빛을 찾아보기 힘들다. 오후 세 시면 컴컴해지는 기나긴 겨울밤을 보내야 하는 이들에게 조명은 삶의질과 직접적인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 형광등에 비해 아늑한 느낌을 주는 백열등의 조명기술은 꽤 오래된 문화다. 이는 초를 켜던 과거 오랜 관습의 연장이다 -16쪽

리추얼은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 사회가 유지되도록 하는 것도 바로 리추얼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독일의 지식인들은 깊이 고뇌했다. 도대체 이 엄청난 야만이 어떻게 독일에서 일어날 수 있었단 말인가? 괴테, 쉴러, 베토벤의 나라 아니던가?
그들은 독일의 권위주의적 사회구조에서 그 이유를 찾았다. 가족, 학교, 일터에서 반복되는 권위주의적 리추얼이 권력자에 대한 일방적 복종과 충성을 강요했다는 것이다. 전쟁 이후, 독일인들은 사회 구석구석에 남겨진 이 집단 리추얼을 철저하게 해체했다. 그래서 독일의 대학에는 졸업식이 없다. 졸업식 가운도 물론 없다. 졸업식을 집단으로 모여 권위를 확인하는 세리머니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독일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받은 나는 그래서 한 번도 졸업식 가운을 입어본 적이 없다. 반성이 철저한 독일인들은 초등학교의 합창시간도 없앴다. 함께 노래하는 행위가 집단에 대한 무의식적인 충성으로 이어진다는 생각 때문이다. 대신 소리가 아주 착한 리코더를 불게한다. -29쪽

후회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눠진다. 자신이 행한 행동에 대한 후회, 그리고 하지 않은 행동에 대한 후회.
살아있는 이상, 우리는 반드시 후회를 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어차피 후회를 해야만 하는 것이라면 가능한 한 짧게 하는 게 좋다. 그래야 심리적인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짧게 후회하려면 행동해야 한다. 확 저질러버리는 편이, 고민하며 주저하다가 포기하는 것보다 심리적으로 훨씬 건강하다. 후회가 오래가지 않기 때문이다. 시작도 하지 않고 포기한 일은 반드시 오래, 아주 집요하게 나를 괴롭히게 되어 있다. 그래서 어른들은 결혼을 망설이는 이들이게 한결같이 이렇게 이야기했던 것이다. 하고 후회하는 편이 안하고 후회하는 것보다 낫다고. -38쪽

뇌가 가장 많은 신경을 쓰는 부위는 손과 입술, 혀의 순서다. 그래서 사랑하는 이를 끊임없이 만지고 싶은 것이다. 키스도 그래서 하는 것이다. 보다 많은 뇌를 사용하여 느끼고 깊은 까닭이다. 뇌에서 차지하는 혀의 비중을 보면, 왜 혀를 사용해야 하는가를 바로 이해할 수 있다. 입술만큼이나 혀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맛있는 음식에 그토록 집착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67쪽

불안하기 때문이다. 과정이 생략된 삶을 사는 까닭이다. 모든 결과는 과정이 있기에 가능하다. 그러나 이 땅의 사내들은 이 사실을 아주 자주 망각한다. 그리고 오직 결과만 가지고 서로 비교한다. -108쪽

사는게 재미있으면 일하는 게 재미있으면, 근면 . 성실하지 말라고 해도 근면. 성실해진다. 순서를 바꾸라는 이야기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인내가 쓰면, 열매도 쓰다. 도대체 열매의 단맛을 겪어봤어야 그 단맛을 즐길 것 아닌가. 21세기에는 지금 행복한 사람이 나중에도 행복하다. 지금 사는게 재미있는 사람이 나중에도 재미있게 살 수 있다.-153쪽

오늘날 우리가 매일같이 반복하는 재미있니?라고 하는 문장은 20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비로서 일상적 용어가 되었다. 물론 재미라는 단어는 그 이전에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의미의 재미가 아니다. 재미라는 단어 사용은 최근 몇십 년 사이에 나타난 문화현상이다. 영어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인들이 입에 달고 다니는 fun이라는 단어가 일상적인 용어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191쪽

서양이늗ㄹ에게 타인의 존재는 항상 나의 상대방으로서의 너다. 동등한 주체로서의 상대방에 대한 무례함은 곧 나라는 주체에 대한 부정이 된다. 그래서 그들은 생판 모르는 사람과도 곧바로 날씨 이야기를 할 수 있고, 낯모르는 사람에게도 웃으며 이야기를 건넬 수 있다. 너의 존재를 인정할 때 나가 성립하기 때문이다. 마르틴 부거가 그의 책 '나와 너'에서 나라는 존재의 근거로 너와의 관계를 지적하고, 이 나와 너의 관계를 모든 의미구성의 기본 단위로 여기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문화적 맥락 때문이다.
한국인의 상호작용의 양상은 사뭇 다르다. 나와 너의 상호작용이 서구인들처럼 곧바로 성립되는 것이 아니다. 나와 너라는 상호주체의 만남은 무엇보다 먼저 우리와 남이라는 경계선을 넘어야 가능하다. 남은 상호작용의 상대방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가 남이가? 라는 질문이 무서운 것이다. 남은 상호작용의 주체가 될 수 없다. 그래서 무시해도 된다. 관심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건이나 크게 다를 바 없다. 그러나 타인이 일단 우리라고 하는 경계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부터, 그 타인은 더 이상 남이 아니다. 그에게 절대 무례해서는 안되다. 우리라는-226쪽

경계선을 넘어오는 순간 상대방은 너라는 가치를 갖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에게 나와 너라는 주체적 상호작용은 우리가 성립되는 바로 그 순간부터 이뤄진다는 것이다. ...이전 시대를 지탱해왔던 우리라는 공동체가 해체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산업사회의 공동체 구성방식으로 포스트모던 사회를 살아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한국인들의 존재근거가 되었던 우리라는 그 울타리가 변형되어 해체되고, 새로운 형태의 우리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 대안적 우리가 잘 형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시대에 적합한 존재 확인 방식이 없다는 이야기다. -227쪽

문화심리학적 시각에서 본다면 사회주의가 망한 이유눈 단순하다. 재미없어서다. 보다 재미있는 사회를 가능케 하는 정치 시스템에 대한 동경이 동독의 몰락을 가져왔다. 여타 사회주의 국가들과는 달리, 당시 동독은 절대 가난한 나라가 아니었다. 1989년 당시 동독의 1인당 국민소득은 1만달러 이상이었다. 당시 한국의 두 배를 넘는 수준이었다. 동독 사람들이 정말 원한 것이 무엇인가를 알려면 통일 후 그들이 제일 먼저 한 일들을 살펴보면 된다. 장벽을 뚫고 서독으로 넘어온 다음날부터, 서독 시내의 섹스숍은 동독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발그레한 얼굴로 섹스숍을 나서는 그들에게 기자들이 느낌을 묻자, 그들은 그랬다.
"망해야 하는 것은 자본주의인데 오히려 사회주의가 망했다"-242쪽

어릴 적 꿈꿨던 일을 이루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고 프로이트는 말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 할지라도 충족되지 않는 어릴 적 욕구는 어떤 방식으로든 내 삶의 그림자가 되기 때문이다. -260쪽

내가 지금까지 어떤 방식으로 아이덴티티를 확인하고 살아왔는지를 확인하려면 내 친구에게 물어본다. 누군가 나를 가리키며 내 친구에게 물어본다. 저사람 누구지요?/저 사람 잘나가는 회사의 전무에요
만약 내 친구들의 입에서 이런 식의 대답이 나온다면 내 미래는 곧 참담해진다. 지금 아무리 잘나가도 곧 망하게 되어있다. 사회적 지위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지위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확인하게 되면, 그 사회적 지위를 지키려고 아등바등하게 되어있다. 사회적 지위가 사라지는 순간 내 존재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즐겁고 재미있는 삶이 아니라 참고 인내하는 삶이 될 수 밖에 없다. 내 삶의 주인이 더 이상 내가 될 수 없는, 이러한 삶의 방식에서는 어떠한 창의적 아이디어도 나올 수 없다. -266쪽

논다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일에 몰입하는 것이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에 푹 빠져 나 스스로를 망각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러야 정말 놀았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대상에 푹 빠져 시간을 보내고 나면 정말 영혼이 맑아지는 느낌이 든다. 잘 논다는 것은 이렇게 나를 망각하고 말 그대로 정신없이 대상에 몰입하는 것이다. 쉬는 것과 노는 것은 이렇게 정반대의 과정이다. 쉬는 것과 노는 것의 적절한 조절을 통해 내면의 항상성이 제대로 유지될 수 있다. -2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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