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적 삶 쏜살 문고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윤진 옮김 / 민음사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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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은 고독을 울려 퍼지게 하고, 고득을 다른 어떤 것보다 좋아하게 한다. - P25

상상력은 그 어디보다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 가장 강하게 작동한다. - P47

남자를 많이 사랑해야 한다. 많이, 많이. 남자를 사랑하려면 많이 사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나자를 감내할 수 없다. - P54

유토피아는 여자들이 창조한 집에 있다. 자신의 가족이 행복 자체가 아니라 그 행복의 추구에 관심을 갖게 하려 하는 여자들의 시도, 여자들이 안 하고는 못 배기는 그 시도에 있다. - P55

어머니는 세 번째 전쟁을 기다렸다. 사람들이 다가오는 계절을 기다리듯, 아마도 어머니는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세 번째 전쟁을 기다렸을 것이다. 어머니가 신문을 읽는 이유도 행간을 읽어 내서 전쟁이 다가오는지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 P62

여자는 어머니로 살고 아내로 사는 내내 자신만의 절망을 분비한다. 매일의절망 속에서 자신의 왕국을 잃게 되고, 평생 동안 그럴 것이다. 젊은 시절의 갈망, 힘, 사랑이 빠져 나갈 터다. 순전히 합법적으로 생겨난 상처, 스스로 받아들인 바로 그 상처를 통해 흘러 나간다. 여자는 순교자다. 자신이 가진 모든 재주를, 운동 실력을, 요리 실력을, 미덕을 발휘하는 일이 완전히 끝나면, 여자는 창밖으로 던져져야 할 존재가 된다. - P69

지난 십오 년 동안 책이 출간되면 곧바로 원고를 없앴다. 왜 그랬는지 생각해 보면, 아마도 내가 저지른 죄를 지우기 위해, 내 눈에 그것이 덜 소중한 것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그렇게 나의 자리로 잘 ‘넘어가기‘ 위해, 여자이면서 글을 쓰는 무례함을, 사십 년 전만 해도 그랬으니까, 그것을 경감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 P69

집 안에 물건이 쌓이는 가장 큰 이유는 세일이다. 마치 오래전부터 전해 오는 일종의 의식처럼 정기적으로 넘쳐흐르는 파리의 최대 세일, 파격 세일 때문이다. 정기 세일이 있거, 가을이면 여름 재고를 싸게 팔고, 겨울이 오면 가을 재고를 싸게 판다. 여자들은 마치 마약에 취한 사람처럼 마구 사들인다. 필요하기 때문이 아니라 싸기 때문에 산다. 그리고 미친 듯이 사들인 그 물건을 집에 도착하자마자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이렇게 말한다. "저걸 왜 샀는지 모르겠어." 모르는 남자와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났을 때와 비슷하다. - P70

우리는 언제쯤 우리의 절망이라는 그 숲에 넌더리가 날까? 그 시암 왕국은? 장작에 제일 처음 불을 붙이는 남자는? - P72

그는 늘 젊고 매력적이고 싶어 했고, 젊게 살고 싶어했다. 점심은 크로크무슈를 먹고, 저녁 식사는 레스토랑에서 하고, 여자들, 모든 여자를, 겨울엔 프랑스 여자들, 여름에는 젊은 영국 여자들을 원했다. - P105

오래전부터, 옛날부터, 수천 년 전부터 침묵은 여자들의 몫이었다. 따라서 문학도 여자들의 것이다. - P116

프랑스에서 그랑드 블루(grande bleue)는 여성형이고 지중해를 가리키고, 남성형인 그랑 블루(grand bleu)는 대서양 바다를 가리킨다. - P140

자신이 겪은 일에서 가르침을 끌어내는 일은 나이가 들어서야 가능하다. 두고 보라. 감히 말하건데, 한 남자와 함께 있으면서 행복하다고 느끼는 감정이 필연적으로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을 증명하지는 않음을 우리는 나중에서야 깨닫는다. 그런 사랑의 증거를 나는 그만큼 격렬하지 않은, 쉽게 떠올려 지지 않는 기억 속에서 발견한다. 내가 가장 심하게 배신한 남자들, 나는 그들을 가장 사랑했다. - P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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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언덕>을 읽다보면 작가인 에밀리 브론테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저 황야의 목사관에서 자란 어린 소녀가 어떻게 스스로를 유폐하고 오직 글쓰기에 매달렸는지, 아무런 명성도 위로도 없는 삶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감내했는지, 소리 없이 퇴장하는 배우처럼 죽음을 맞이했는지에 대해 곱씹어보게 된다. 작가는 누구나 자신이 사랑하는 것에 대해 쓴다. 아무리 음침하고 어두운 이야기라고 해도 그 안에는 작가가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아름다운 것이 들어 있기 마련이다. 


-정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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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12-01 13: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다음 읽을 책이 폭풍의 언덕인데 이 글 머리속에 잘 넣어두고 염두에 두면서 읽을래요. 에밀리 브론테가 쓰지 않고는 견딜수 없었던 아름다운 것이 무엇이었을지 찾고 싶어서요.

LAYLA 2022-12-03 00:21   좋아요 0 | URL
저도요!^^ 지금까지 읽는 게 괴로워서 저런 생각은 못해봤는데...그 고통스러울 정도의 격정 속에어떤 아름다움이 있는지 잘 봐야겠어요.
 
사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59
다자이 오사무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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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은 아시다시피 마음의 병을 앓는 중환자여서 이곳에 머물 때는 근처의 여관을 겸한 요릿집으로 날마다 소주를 마시러 출근하고, 사흘에 한 번은 우리 옷을 내다 판 돈을 들고 도쿄 쪽으로 출장을 갑니다. 하지만 괴로운 건 이런 일 때문이 아닙니다. 저는 다만 제 생명이 이런 일상생활 속에서 마치 파초 잎사귀가 떨어지지 않고 썩어 가듯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선 채 절로 썩어 가는 모습이 생생하게 예감되는 것이 두렵습니다. - P79

6년 전 어느 날 제 가슴에 아스라이 무지개가 걸렸고 그건 연애도 사랑도 아니었지만, 세월이 지날수록 그 무지개 빛깔은 점점 또렷해져 저는 지금껏 한 번도 그걸 놓친 적이 없습니다. 소나기가 지나간 맑은 하늘에 걸리는 무지개는 이윽고 덧없이 사라져 버리지만, 사람의 가슴에 걸린 무지개는 사라지지 않는 모양입니다. - P80

기다림. 아아, 인간의 생활에는 기뻐하고 화내고 슬퍼하고 미워하는 여러 가지 감정이 있지만, 그래도 그런 건 인간 생활에서 겨우 1퍼센트를 차지할 뿐인 감정이고 나머지 99퍼센트는 그저 기다리며 살아가는 게 아닐까요. 행복의 발소리가 복도에 들리기를 이제나저제나 가슴 저미는 그리움으로 기다리다, 텅 빈 공허감. 아아, 인간의 생활이란 얼마나 비참한지!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편이 좋았겠다고 모두가 생각하는 이 현실. 그리고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헛되이 뭔가를 기다려요. 너무 비참해요. 태어나길 잘했다고, 아아, 목숨을, 인간을, 세상을 기꺼워 해보고 싶습니다. - P95

나 역시 이렇게 로자 룩셈부르크의 책을 읽는 자신을 아니꼽게 여기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나름대로 깊은 흥미를 느낀다. 이 책의 내용은 경제학에 관한 것이지만, 경제학으로만 읽는다면 참으로 시시하다. 너무나 단순하고 뻔한 사실뿐이다. 아니, 어쩌면 나는 경제학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내겐 너무 따분하다. 인간이란 원래 쩨쩨하며 영원히 쩨쩨하다는 전제가 없으면 도무지 성립되지 않는 학문으로, 쩨쩨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분배의 문제건 뭐건 아예 흥미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이 책을 읽고 다른 면에서 묘한 흥분을 느낀다. 그것은 이 책의 저자가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낡은 사상을 모조리 파괴해 나가는 저돌적인 용기이다. 아무리 도덕을 거스를지라도, 사랑하는 사람 곁으로 거침없이 내달리는 유부녀의 모습마저 떠올리게 된다. - P107

파괴 사상. 파괴는 슬프고 애처롭고 아름답다. 파괴하고 다시 짓고 완성하려는 꿈. 일단 파괴하면 완성할 그 날이 영원히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그렇다 해도 사랑하기 때문에 파괴해야만 한다. 혁명을 일으켜야만 한다. 로자는 마르크시즘에 일편단심 슬픈 사랑을 했다. - P107

행복감이란 비애의 강바닥에 가라앉아 희미하게 반짝이는 사금 같은 것이 아닐까? 슬픔의 극한을 지나 아스라이 신기한 불빛을 보는 기분. -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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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문학의 이해 고려대학교출판부 인문사회과학총서 31
오탁번, 이남호 지음 / 고려대학교출판부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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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세상을 표현하는 매우 고급한 수단이지만, 세상의 모든 것을 언어로 다 옮길 수는 없다. 언어는 유한하고 세상은 무한하다. - P36

우리가 서사를 이해한다는 것은, 이러한 생략된 부분 또는 비지정영역의 많은 부분을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짐작과정을 서사적 추론이라고 말한다. 서사의 이해에서 서사적 추론, 즉 서사적 틈새를 채워 맞추는 일은 필수적이다. 이런 점에서 서사를 이해하는 일은 그림조각 맞추기 놀이에 비유될 수 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그것은 개수가 모자라는 그림조각을 가지고 전체 그림을 맞추어 그리는 일인데, 그럼조각이 없어 빈 곳은 스스로의 상상력으로 채워넣어야 하는 것과 흡사하다. - P41

일반적으로 민담이나 전설이나 전래동화와 같은 옛날 이야기들은 그림조각 맞추기가 수월하다. 그것들은 비지정영역을 많이 갖고 있긴 하지만 그 영역은 대개 서사적 연속성에 별로 요구되지 않는 영역이거나 아니면 소박한 상상력으로 채워질 수 있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현대소설은 오히려 비지정영역을 적게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을 채워넣으려면 상당히 구체적인 체험과 정보 그리고 고급한 상상력이 요구된다. 이것은 현대소설을 옛날 이야기들보다 이해하기 어렵게 만드는 하나의 요소이기도 하다. - P41

지혜나 교훈이라는 것은 이미 육질이 분해된 후의 영양소와 같은 것이어서 독서의 즐거움과는 직접 관련이 없거나 적다. - P45

거의 모든 서사는 사건의 중간에서 시작된다. 서사가 끝나는 곳도 사건의 중간이다. 사건은 그 뒤로도 계속되지만, 서사는 그 뒤의 이야기를 하지 않음으로써 결말을 짓는다. 옛날이야기들은 대개 주인공의 결혼이나 죽음으로 끝이 난다. 서사가 끝이 나더라도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뿐이지 그것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서사의 끝은 사건의 완전한 종결이 아니라 어떤 ‘기대감의 충족‘이라고 할 수 있다. - P85

문학 역시 삶의 고통과 슬픔을 간접 체험시켜 주는 것이다. 사람들은 문학을 통해서 슬픔과 고통을 간접 체험하게 되고, 그것에 대한 내성을 키우게 된다. - P210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소설병에 걸리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사람들이 이야기에 빠지는 것은 특정한 현실적 목적 때문이 아니다. 그냥 이야기의 재미를 기대하고 또 그것에 빠지는 것이다. 서사문학 속에는 단순한 오락적 재미에서부터 심오한 진리를 맛보는 재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폭넓은 즐거움과 이로움이 있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소설병 혹은 이야기병에 걸리는 것을 두려워하기는 커녕 오히려 자진해서 걸리기를 희망해 왔던 것이다. - P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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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쇼핑을 좋아해 쏜살 문고
무라카미 류 지음, 권남희 옮김 / 민음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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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남자의 거짓말은 인생을 즐겁게 해 준다. 죄가 없다. - P32

살라미와 보리된장은 서민적이어야 맛있다는게 내 지론이다. 누군가 서유럽 살라미를 기념 선물로 사 가고 싶어하면 나는 반드시 드라이브인의 살라미를 추천한다. - P55

쇼핑을 안 하면 차츰 쇼핑이 즐겁다는 뇌이 회로가 끊어져 쇼핑 때위 상관없어진다. 이를테면 멋진 넥타이를 발견해도 별 생각이 없다. 참고로 섹스도 비슷하다. 줄곧 섹스를 하지 않으면 성적 욕구 자체의 회로가 끊긴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 그런 건 주의해야 한다. 그러니 경제적으로 파탄 나는 경우를 제외하고, 갖고 싶은 상품이 있으면 사는 편이 좋다. 특히 외국에서는 또 다음에 올 때 사야지, 망설이지 말고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바로 사야 한다. - P67

쇼핑이 기분을 좋게 해 주는 이유는 갖고 싶은 것을 손에 넣어서만은 아니다. 갖고 싶은 것을 고르고 사는 행위는 자본주의적인 자유의 상징이다. - P130

명품은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소속된 조직에서 개인으로 이행하는 과도기 사회에서, 자신의 경제력과 감각을 어필할 수 있는 유효한 아이템이 됐다. -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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