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의 환경이 정신질환과 강력하게 연관되는 것은 사실이다. 유년기의 불우한 환경을 가늠하는 ‘유년기 부정적 생애 경험‘ adverse childhood experience, ACE 설문에서 제시하는 기준은 다음과같다. 11① 성년이 되기 전 부모 혹은 집안의 어른이 자주 당신에게 욕을 하거나창피를 주거나 당신의 기를 꺾거나 당신을 모욕하거나 신체적으로 아프게 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가지게 행동했는가?
② 성년이 되기 전 부모 혹은 집안의 어른이 자주 당신을 밀치거나 세게붙잡거나 당신의 뺨을 때리거나 당신에게 무엇을 던지거나 한번이라도멍이나 상처가 남을 정도로 당신을 때리거나 다치게 한 적이 있는가?
③ 성년이 되기 전 어른 혹은 최소 당신보다 다섯살 이상 나이 많은 사람이 당신을 만지거나 껴안거나 당신에게 자신의 몸을 성적으로 만지게 하거나 구강, 항문, 성기로 성행위를 시도한 일이 있는가?
④ 성년이 되기 전 당신은 자주 당신의 가족 중 누구도 당신을 사랑하지않거나 당신이 중요하고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느꼈는가? 당신의 가족이 서로를 돌보지 않고 서로 가깝지 않다고 느꼈는가?
성년이 되기 전 당신은 자주 먹을 것이 부족하거나 더러운 옷을 입거나 당신을 보호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일이 있는가? 혹은 당신의

부모가 너무 취하거나 약물 복용 상태여서 당신을 돌보지 못한 일이 있는가?
⑥ 성년이 되기 전 당신의 친부모가 이혼을 하거나 다른 이유로 당신에게서 사라진 일이 있는가?
⑦ 성년이 되기 전 누가 당신의 모친 혹은 계모를 자주 밀치거나 세게붙잡거나 이들의 뺨을 때리거나 이들에게 물건을 던진 일이 있는가? 당신의 모친 혹은 계모를 누가 가끔 발로 차거나 물거나 주먹으로 때리거나 딱딱한 물체로 때린 일이 있는가? 한번이라도 당신의 모친 혹은 계모를 누가 몇분 이상 계속 때리거나 총 혹은 칼로 위협을 한 일이 있는가?
성년이 되기 전 알코올 중독 혹은 마약 중독인 사람과 산 일이 있는가?
⑨ 성년이 되기 전 가족 중에 우울증이나 정신질환이 있거나 자살을 기도한 사람이 있었는가?
⑩ 성년이 되기 전 가족 중 감옥에 간 사람이 있는가?
10개의 항목 중 그렇다고 답한 갯수가 많을수록 정신질환에취약한 정도를 나타내는 유년기 불우 환경 지수가 높아진다. 물론 절대적인 것은 아니어서 이 점수가 높은 사람들 중에도 인생을 잘 사는 사람이 많이 있다. 나의 경우 우리 아이들이 1번과4번에 대해 어떻게 답할지가 궁금하다. 특히 부모가 학업과 관련해서 한 말이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있었을 것 같다. 부모


병원비, 특히 환자가 입원을 하는 경우도 큰 부담이 된다. 문제는 정신건강의학과 병동에 입원할 때는 어느 정도 가격이 의료의 질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환자가 보호병동에 들어가는 순간의료진과 보호사들의 24시간 돌봄 아래 놓이기 때문에 가뜩이나인건비를 깎는 의료 시스템에서 저렴한 가격으로는 좋은 돌봄을받을 수 없다. 이는 우리나라 의료제도의 맹점을 드러내는 예로인건비는 깎고 검사는 과보상하는 체계에서 모든 의료행위가 운영된다는 점에 기인한다. 환자가 호소하는 다양한 신체 증상들은검사를 통해서도 특이점이 발견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 고가 검사인 뇌 자기공명영상 촬영의 경우가 그러한데, 정신질환환자 대부분에서 이상 소견은 관찰되지 않는다. 따라서 입원비가부담된다면 불필요한 검사들은 안 하겠다고 미리 말하는 것도하나의 방법이다. 물론 환자들이 의료진의 눈치를 보게 마련이라쉽게 말하기는 힘들다.
한가지 다행인 점은 양극성 장애 환자들의 상당수는 나이를먹어가면서 얼마간 생활 기능을 되찾는 것이다. 많은 환자들이서른을 넘어서는 부모에게 병원비 지원을 안 받게 되었다고 말한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오래가는 환자의 병 때문에가족까지 빈곤의 구렁텅이로 빠지지 않으려면 가족들도 환자의병시중에 얼마나 지원이 가능한지를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언제까지나 가족이 재정적인 지원을 해줄 수는 없다는 점을 환자 자신도 인지하도록 하고 환자 스스로 자립해서 생활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다. 환자가 적은 돈이라도 자신의 힘으로 벌어보는 것은 본인의자긍심을 높이고 어엿한 사회의 성원으로 사는 데에도 매우 중요하다. 그 시기는 당연히 빠를수록 좋다.
많은 양극성 장애 환자들은 사회의 통상적인 근무시간에 맞춰출퇴근하는 직장에 다니는 것이 어렵다. 야간 근무도 어렵다. 어쩔 수 없이 비정규직의 불안정한 직장들밖에는 선택지가 없는데그래도 일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 나는 아이가 알바를 하면서(젊은이 착취 시스템이라는 것에 치를 떨면서도) 그런 일자리가있다는 사실에 때로 감사했다. 아이가 일터에 나가는 것은 불완전하나마 아이의 삶의 틀을 만들어주었고 나도 아이가 일을 나간 날은 마음을 놓고 있을 수 있었다. 아이는 적은 액수이지만 자신의 자존심을 지킬 수입이 생겼고, 그 돈으로 생활을 기획할 수있었다.

국민의힘 정치인들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기대하는 것이 아예 없기 때문에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려울 만큼 많은 망언이 나왔어도 ‘그런가보다‘ 하고 있지만 성일종 의원의 2022년 6월 일대주택 관련 발언은 우리가 지금 어느 시대를 살고 있는지를 의심하게 하는 수준이었다. 그는 서울시 6-1 지방선거 당선자 대회및 워크숍에서 임대주택 거주 환경을 지적하며 "여기(임대주못사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정신질환자들이 나온다. 방치할수 없다. 사회문제가 된다."고 하고 "문제가 있는 사람은 격리하든지 이런 조치들을 사전적으로 하지 않으면 국가가 책임을 다했다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정신질환을 앓는 환자의 가족은 사회적 안전망이 빈약한 경우바로 빈곤의 늪으로 떨어질 위험이 높다. 국민소득 4만 달러를장담하면서도 복지제도는 OECD 국가들 중 바닥을 기도록 만든당의 국회의원이 할 말은 결코 아니다. 망언 논란 후 박용진 의원은 바로 사과했지만 성일종 의원은 임대주택 거주자에게만 사과했을 뿐 정신질환 환자들에게는 어떠한 언급도 한 일이 없다. 우리가 툭하면 무심결에 입에 올리는 말, "미쳤군."이라는 말은 이런 정치인에게 아주 잘 어울리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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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불가단행‘이요. ‘복불가재구‘니라,
禍不可單行 福不可再求재앙은 홀로 오는 법이 없고 복은 다시 구할 수 없는 것이거니.
6년 전에 집을 고쳤다. 그런데 지붕의 빗물이 제대로 홀러내리지 못했는지 추녀 아래에다 덧댄 합판이 썩어 가기시작했다. 어찌나 볼썽사납게 썩어 문드러지는지 6년 만에아주 헌 집이 된 것 같았다. 금년 여름은 국지성 호우가 잦을 것이라는 중장기 일기예보를 접하고는, 아뿔싸, 하는 마음에서 수리를 결심했다. 추녀 위의 방수 작업을 다시하고배수 시스템을 바꾸고, 썩어 버린 합판을 새것으로 교체했다. 참 좋았다. 새집 같았다. 국지성 호우야, 올 테면 와 봐라. 나는 추녀 수리를 끝내었다. 이러면서 좀 까불었다.
추녀 공사 끝나기가 무섭게 시골집을 돌봐 주는 분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큰일 났습니다. 이번 큰비에 불어날 대로 불어난 골 물이 축대를 쳤습니다. 축대가 15미터 정도 무너지면서, 땅을 쓸어가 버렸습니다! 이 일을 어쩌면 좋습니까?"
시골집. 내가 심은, 그리고 내가 심하게 자랑한 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곳이다. 마른침 삼키면서 기회를 보고 있

렵을 좋아한다. 인도 말로는 이런 순간을 ‘드히아나‘라고한다지 아마. ‘선‘이라는 말이 여기에서 나왔다지 아마.
눈 감은 것도, 뜬 것도 아닌 상태. 확실하게 아는 것도, 전혀 모르는 것도 아닌 상태. 나는 앎과 모름의 가장자리를서성거릴 때 행복을 느낀다.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내가 참 좋아하는, 함민복 시인의 시집 제목.
모르는 사람들아, 내가 가르치겠다너희가 끝내 모르도록내가 참 좋아하는, 독일 시인 라이너 쿤체의 시구.

잔인한 4월, 고라니한 마리

‘책 나이프‘ 할 때의 이 ‘잭‘은 ‘잘난 수컷‘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잭 나이프‘는 솜씨 좋고 잘난 수컷들이 사용하는 주머니 칼이라는 뜻이다. 산중에 사는 잘난 수컷은 ‘마운틴 잭 강가에 사는 잘난 수컷은 ‘리버 잭‘이다. 그런데이 ‘잭‘이라는 말이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밀렵꾼들이 사용하는 불법 ‘올무(덫)‘를 지칭하는 말로 바뀌었다. 솜씨 좋은 수컷이 아닌 야바위꾼 같은 밀렵꾼이 쓰게 하기에는 참아까운 말이다.
우리 시골집 마당을 찾아오는 길고양이 한 마리는 다리하나가 잘린 채 절룩거리며 먹을거리를 구걸한다. 다리 하나 잘린 개도 한 마리 시골집을 드나들면서 음식 쓰레기를 먹어 치운다. 잭에 걸려 다리를 하나씩 잃은 동물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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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노래부르듯이
한줄 두줄만 읽어도
위로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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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들 키울 때
가장 행복하게 읽었던 책이라서
조카에게 선물했어요.

아마 조카와 질부도
아가에게 읽어주며
아가보다 먼저 감동받고
자주 읽어주는 책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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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해 "문제적 경험으로서의 사유의 재의미화"인데, 이를 통해 학생들은 ‘젠더 문혜력(gender literacy)‘을 획득할 수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 이러한 젠더 문해력을 획득하는 교육과정을 탁선미 선•생님은 장 자크와 에밀의 평등한 의사소통 관계교육의 경험에서 드러난 ‘고백화행‘으로 간주합니다. 

특히 초기 제자들이 영페미니스트로서 정체성을 자율적으로 갖출 수 있었던 데에는 이러한 평등한 의•사소통의 경험이 토대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 경험은 단지 수업을넘어서서, 동아리, 독서회, 토론회, 문화행사 등으로 파생되면서 여성주의를 미시적인 공론장으로 지속적으로 만들어내고 그 장들을 연결짓도록 했으며, 장춘익 선생님은 이러한 활동들에 관심을 가지고 격려하며 지지를 표명했다는 것입니다.
장 선생님이 보여준 "상대에 대한 인간적 관심을 유지하며 평등하게 마주서는 순수한 관계"는 학생들로 하여금 자기 스스로를 신뢰할 수 있도록 돕고, 자율적으로 삶을 꾸려갈 수 있는 "내면의 정신적 길잡이"의 역할을 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수평적으로 평등한 관계의 교육 경험에 의해 영페미니스트들은 선생님과 "작업동맹 (workingalliance)"을 맺고, "소통과 교류, 이해와 지지에서 자아 효능감과 세계신뢰를 되찾는 ‘회복적 관계 경험‘, 내적 위기의 순간에 돌아와 의지할 수 있는 ‘안전기지(safety base)"를 발견할 수 있었다고 저 역시 생각합니다.
저는 바로 이 지점에 ‘여성주의철학‘이 ‘여성주의교육‘으로 실천될

때 기억해야 할 중요한 단서들이 있다고 봅니다. 
명료한 이론이나 지식을 통해서 ‘젠더 문해력‘을 키워내는 과정에서, 한편으로는 일상에서 겪는 성차별, 성불평등, 성폭력의 경험을 비판적으로 사유하고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도록 촉진하는 것이 긴요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안전하고 지지적인 ‘수평적인 관계‘를 경험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저는 앞서 언급했던 ‘철학상담‘에서 철학자의 ‘철학함‘이라는 철학적 활동이 지니는 의미를 장 선생님의 <여성주의철학>과 연관시켜서 다시금 숙고해보고 싶습니다. 
먼저 철학자의 ‘철학함‘은 한편으로 ‘전통으로부터 전해져온 사유된 것들‘인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일상적 삶에서 기존의 사회문화적 전제조차 지금 여기서 새롭게철학적 사유 과정을 통해 비판해보는 ‘무전제적인 자유로움‘을 의미합니다. 
장춘익 선생님의 <여성주의철학>은 대학생들이 일상에서 겪었던 성불평등과 성차별의 경험에 대해 ‘철학자의 철학함‘이 지니는이중성을 매우 잘 녹여내고 있습니다. 이 수업은 한편에서 강의를 통해 직접적인 여성주의 이론의 역사와 테제들의 핵심을 배우도록 정리하지만,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 지금 여기서의 성차별과 성불평등문화, 일상에서의 성폭력과 미투 등의 다양한 현상들에 숨겨진 성별이분법적 사고와 그 위계 등의 부당한 논리적, 윤리적 전제들에 대해비판적인 사유를 하고 자유로운 대화를 이어갈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페미니스트인 Y에게 "너의 지식이 너의 페미니즘에 설득력을 가져다주"도록 하라고 촉구하거나, 남학생들로 하여금 즉

그는 최정은의 영향으로 여성주의 동아리 ‘날‘ 활동에도 간헐적으로 참여했다고 한다.
"날‘에서 주관한 생리대 부가세 폐지 서명운동이나 성교육 강좌같은 사업을 할 때, 대자보 쓰고 붙이는 걸 도우면서 조금씩 함께했어요. 그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조금씩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는 부분이 있었던 것 같아요. 
성교육 강좌 때는 콘돔 착용 시범을 하는데 커플이 왔다는 얘길 듣고 ‘아, 그게 여자나 남자가 한쪽이 알아서 하는 게 아니라 같이 그렇게 할 수도 있는 거구나‘ 알게 되기도 했고요. 만약 ‘날‘ 활동이나 대응모임이나 그리고 <여성주의철학> 수업이 없었다면 많이 달랐을 것 같아요. 누군가 문제가 되는 발언을 해도‘농담인데? 농담이야‘ ‘재미있자고 그냥 한 얘기야‘라고 하면, 
지도 ‘그런가?" 하고 별다른 문제의식을 못 가졌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이저 알게 된 거죠.

 무엇이 잘못된 것이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사회에 나와서도 그런 일들은 벌어지더라고요. 
제가 사회복지사로 일할 때 직장 동료가 성추행을 당한 사건이 있었어요. 그 동료랑 같이여성단체에 찾아가서 상담을 받았어요. 가해자가 상사라서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동료와 함께해야 하고 이런 일은 알려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여성주의철학 수업 때 그 말이 왜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있는지모르겠는데요. 급진주의[1970년대 시구 래디컬 페미니즘)와 관련된 얘기있어요. ‘급진주의에서는 이런 걸 이렇게까지 바라보고, 여성의 민권을 위해 이런 것까지 해야 된다‘라는 주장을 한다. 그런 얘기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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