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 너를 사랑한다는 사람들이
너의 선택권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그건 너를 사랑하는 게 아니란 걸 분명히 알아두렴.


네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육아와 집의 화목을 이유로,
남편의 일과 딸같이 여긴다는 시부모의 권유로
너의 선택이 침해된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란다.

엄마가 왔다. 겨울방학이란다.
난 엄마가 와서 너무 좋다.
그런데 동생은 엄마를 알아보지 못했다.
걱정이다. 엄마를 몰라보다니!

딸은 동생이 엄마를 몰라봤다는 사실에 걱정하며 그림일기를 썼다. 누굴 걱정할 나이도 아닌데, 그저 엄마가 와서 좋다고만 말해도 될 나이인데. 남편은 "나도 안 한 걱정을 아이가했네" 하며 한참이나 딸의 그림일기를 쳐다봤다.

내가 유학 간 1년 동안 딸은 바쁜 아빠와 동생, 할머니와함께 지냈다. 내가 밀라노에서 돌아와 우리 가족이 다시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을 즈음 딸이 물었다.
"엄마! 할머니는 동생을 더 예뻐하는데, 엄마도 그래?"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 딸에게 나는 이렇게 말했다.

"할머니 마음은 잘 모르겠지만, 먼저 태어난 아이는 나중에 태어난 아이보다 엄마랑 더 많은 시간과 기억을 갖잖니. 그래서 어른들이 작은 애를 더 아끼게 되는 것 아닐까? 

넌 일찍 태어난 그만큼 엄마와 시간을 더 함께했으니, 언젠가 엄마가 이세상을 떠나도 어찌 됐든 동생보다는 더 많은 걸 기억하게 되잖아. 그것만 생각하렴!"

그러자 딸은 고개를 끄덕이고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게. 동생은 엄마랑 아주 잠깐 떨어졌는데도 엄마를 다 잊어먹었으니까. 
맞아요! 난 영원히 동생보다는 5년 더 엄마랑 함께하네요."

유독 손자만 예뻐하던 할머니와 지내는 동안 딸은 싫은 소리를 번번이 들어야 했다. 
그런 딸에게 나는 ‘남녀가 아닌 인간의 시간‘으로 대답했고 딸은 만족해했다. 내 첫 아이로 태어나 동생보다 더 긴 시간 동안 부모와 더 많은 추억을 갖는다는것에 대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언젠가는 나도 이런 것을 만들고 싶다.
‘이런 것‘이 뭔지 그때는 몰랐다. 적어도 애니메이션을 만들겠다는 생각이 아닌 건 확실했다. 
소설이어야 한다거나 글이어야 한다는 생각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건 아마 형식조차 분명하지 않은, 추상적인 무언가였을 것이다. 

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 혹은 마음을 가득 채우는 것. 출렁이게 하고 확 쏟아버리게 하는 것. 뒤늦게 다시 주워 담아보지만, 더는 이전과 같지 않은 것.

이야기를 쓰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 근원에 있는 마음을 묻게 될 때 나는 가로등 길을 따라 집으로 걸어 돌아오던 열여덟 살의 밤을 생각한다. 
눈은 잔뜩 부었고 내일의 피로는 예정되어 있지만 마음은 행복감으로 차 있었다. 

사실 나는 그영화의 내용을 많이 잊어버렸다. 정확히 어떤 장면과 대사에 울고 웃었는지 세부 사항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때의 기분만큼은 기억한다. 무언가가 너무 좋아서 이런 것을 만들고 싶다는 갈망이 뭉게뭉게 생겨나던 순간을 어떤 이야기와 사랑에 빠질 때의 그 기분, 그것을 재현하고 싶다는 바람이 나의 ‘쓰고 싶다‘는 마음 중심에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위 비숙련직의 큰 장점은 엄청나게 다양한 기술과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같은 일을 한다는 점이다. 

화이트칼라 직종은 비슷한 교육을 받고 관심도 비슷한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동료들이 어느 정도 비슷한 재능과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다. 

경비원의 세계에는 이런 문제가 없다. 메트가 새로운 경비를 고용할 때면 기본적으로 ‘와서 면접보세요‘라는 내용의 짧고도 명료한 광고를 낸다(예전에는 《뉴욕타임스》, 요즘은 온라인예), 경비 담당 부서에서 찾는 사람은 이 일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건강한 사람이고 그들은 이 일에 적합한 다양하고도 방대

한 인력풀이 있다는 사실을 안다.
그 결과 외국 출생인 사람이 거의 절반에 달하는 경비팀은 인구학적으로만 다양한 것이 아니라 모든 축에서 각양각색이다.

미술관 경비가 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출발하는 특별한 부류는 존재하지 않고, 따라서 수없이 많은 형태의 사람들이 이직업을 택하며 각자 서로 다른 동력을 가지고 일에 임한다.

 <뉴요커》에서는 비슷한 시기에 일을 시작한 동료들은 엘리트 사립학교 출신이었고 대부분이 출판계에서 다른 일을 하다가 온 사•람들이었다. 

메트의 경비팀에서는 벵골만에서 구축함을 지휘했던 사람, 택시를 몰던 사람, 민간 항공사 파일럿으로 일한 사람,
목조 가옥을 짓던 사람, 농사를 짓던 사람,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사람, 순찰을 돌던 경찰, 그런 경찰들의 활동을 신문에 보도하던 기자, 백화점 마네킹의 얼굴을 그리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전 세계 오대양 육대주와 뉴욕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이다.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도 있다. 열의가 넘치는 사람도 있고 매사에 뾰로통한 사람도 있다.
경비 전문가들도 있고 어쩌다 보니 이 일을 하게 된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놀랍게도 포인트에 서서 그들 중 어느 누구와 이야기를 나눠도 혼란스럽지 않다. 같은 옷을 입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대화의 물꼬는 이미 튼 셈이다.

여학생 하나가 입술의 튼 부분을 뜯으며 그리스인들은 분명히 신을 믿었을 것이라 주장한다. 당연하지, 아니, 주위를 둘러봐. 그렇지 않아? 이상하긴 하지만... 그러고는 어깨를으쓱한다. 하지만 그녀와 함께 있던 남학생은 그것을 의심한다.
그는 그리스인들에게 신이란 아마도 악마 같은 존재에 더 가까웠을 것이라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은 악마가 있다고, 실제로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게 그냥 이야기라고 생각하잖아? 그 대목에서 두 학생은 말 없는 신들과 여신들을 멍하니 둘러보며 교착상태에 빠진 듯하다.

그들이 결국 ‘어느 정도‘처럼 책임감 없는 답변으로 생각을타협해버릴까 걱정돼 조심스럽게 개입하기로 한다. 
"저기, 너희들, 도움이 필요하니?" 그들은 순간 내 근무복을 보고 깜짝 놀라 자신들이 뭔가 일을 저질렀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차분한 표정을 본 그들은 곧 안심하며 도와주면 고맙겠다고 말한다. 

나는 작문에 쓸 만한 단어 하나를 알려준다. 그리스어 단어 ‘에피파니(piphany‘는 원래 ‘신의 방문‘을 뜻하는 말이었지만 이제는 ‘신의 계시와도 같은 깨달음‘을 의미하게 되었다. 

나는그리스인들은 꿈속에서나 깨어 있을 때나 끊임없이 에피파니를경험했다고 알려준다.
그러고는 지금은 유실된 고전기 그리스의 조각가 페이디아스(서양 고대 최고의 조각가 혹은 건축가로 평가받는 인물. 아크로폴리스 언덕 위에 파르테논신전을 재건한 것이 최대 업적으로 꼽힌다-옮

긴이)의 작품을 모사한 <메디치 아테나Athena Medici>ici) (고대 그리스 아테네 파르테논신전의 황금과 상아로 만든 아테나 대신상을 로마 시대에 이르러 모방한 작품-옮긴이)라고 불리는 로마 시대의 두상 쪽으로 학생들을 데려간다(이 모작도 몸통은 남아 있지 않다). 

우리는 함께 평온하고 무표정하지만 굳거나 얼어붙지는 않은 여신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혈색이 돌고 유연한 지혜의 여신은 바로 이렇게 생겼을 것이라는 걸 보여주는 작품이다. 강인하고 힘이 넘치는 아름다움이다.
"아테나는 특별한 유형의 지혜를 관장하는 여신이었어" 학생들에게 말한다.
 "오디세이」 읽어봤니? 읽어봤다고? 좋아, 『오디세이」에서 아테나는 오디세우스가 자신감과 영감을 회복해야할 때마다 나타나. 그런 느낌 있잖아... 상태가 별로인 채로 돌아다니는데 갑자기 기분이 좋아지고, 조금 전까지는 불가능하다고 느꼈던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와 용기가 생기면서 정신이 또렷해지는 느낌. 

오늘날 우리는 그 변화가 인간의 내부에서 생겼다고 생각하겠지만 고대 그리스인들은 그렇게 믿지 않았어. 
그들에게 힘이란 모두 외부로부터 비롯한 것이었고, 그 힘은 강력하고, 예측 불가능하고, 운명을 좌지우지하듯 사람의 감정을 뒤흔드는 힘이었어. 
아테나는 마음을 꿰뚫고 변화시키는 방식 때문에 ‘가까움의 여신‘이라고도 불렸어."

나는 여신의 얼굴을 가리킨다. "아마 마음을 좋은 쪽으로 바꿔놓는 경우가 많았겠지. 그녀를 좀 더 들여다봐. 그리스인들이

지혜가 어떻게 생겼다고 생각했는지. 너희도 아테나가 기분을나아지게 해주는지 한번 보렴."
내 비위를 맞추려는 것인지는 몰라도 두 학생은 내가 하는 말이 옳다는 듯이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두상 주위를 돌며 노트에 이것저것 필기를 한다. 그러고 나서 "감사합니다. 선생님"이라고 인사하고는, 또 다른 신,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두 번째 에피파니를 만나기 위해 떠난다. 
멀어져가는 그들을 보며 나는 기운이 난다.

 너무 많은 방문객들이 메트를 미술사 박물관이라고 생각하면서 예술에서 배우기보다는 예술을 배우려 한다. 또한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는 모든 정답을 알고 있는 전문가들이있고, 그렇기 때문에 일반인이 감히 작품을 파고들어 재량껏 의미를 찾아내는 자리가 아니라고 넘겨짚는다. 

메트에서 시간을보낼수록 나는 이곳의 주된 역할이 미술사 박물관이 아니라는걸 더욱 확신하게 된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관심 영역은 하늘 높이 솟았다가 지렁이가 기어다니는 지하 무덤까지 내려가고, 그 둘 사이의 세상에서 사는 것이란 어떤 느낌이고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거의 모든 측면과 맞닿아 있다. 그런 것에 관한 전문가는 있을 수 없다.

 나는 우리가 예술이 무엇을 드러내는지 가까이에서 이해하려고 할 때 비로소 예술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고 믿는다. 저 아이들이 과제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를.
그러기 위한 좋은 출발을 한 것 같다.

마음을 어떤 합일점에 고정하기 위해 고안된 종교의식에 하루에 다섯 번씩 참여하는 건어떤 느낌일지 상상해본다.

 ‘종교migon‘는 ‘묶음igature‘과 마찬가지로
ligio‘라는 이근을 갖고 있다. 
기본형일 때 ligio는 연결 혹은 이떠한 공동체가 인식하는 근본적인 진실에 다시 집중하고 교감합을 뜻한다. 
나는 특정한 종교적 전통을 섬기지는 않지만 종종어딘가에 소속되어 사소한 걱정들 대신 더 근본적인 것들과 교감할 필요를 느낀다. 독실한 숭배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찬미하는 마음으로 아름다운 미흐라브를 응시한다.

이슬람 전시관에서 일하는 즐거움 중 하나는 이 구역의 정규 감독관인 하다드 대장과 친해지는 것이다. 하다드 씨는 165센티미터 정도 되는 키에 왕족 같은 몸가짐을 하고 있다. 사실상 그가 하는 모든 말이 예리한 데다 재미도 있지만 그는 엷은 미소이상으로는 절대 웃지 않는다. 한번은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한 방문객이 우리의 대화를 방해하며 하다드 씨의 뚜렷한 외국인 억양이 어디서 온 것인지 물었다. 

대장은 무표정한 채로답했다. "워싱턴 하이츠(맨해튼 북쪽 지역을 일컫는다. 미국에서 억양을 지적하며 누군가를 토박이와 구분 짓는 것은 차별적 발언에 해당한다. 이에 하다드 씨는 자신이 뉴욕에서 자란 것을 밝히며 간결하게 대

그림 속 주인공은 주황색 망토와 독특한 골무 모양의 모자를 쓰고 땅 위에 낮게 웅크려 있고 시선은 구부리진코의 능선을 타고 아래를 향한다. 손에 들린 염주는 신을 직접적으로 체험하기 위해 매일 의식처럼 행하는 그의 노력을 상기시킨다. 

쿠란은 신이 우리의 경정맥보다 우리에게 가까이 있다고 조언한다. 수피즘의 사상이란 이 가르침을 가슴에 새기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예술 작품 앞에 ‘앉아 있다니, 너무 좋다! 그림에 적힌 아랍어 문구를 번역한 캡션을 찬찬히 읽는다.


그렇다면 나는 왜 내게 영혼을 준 것에 대해 하늘에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가? 바로 그 영혼을 고통스럽게 하는 슬픔의 원천을 하늘이 내 안에 만들었는데도.


신을 향한 이 비난에 얼마나 날이 서 있는지 믿기지 않아 문장을 두세 번 반복해서 읽는다. 
반대로 그림은 너무 절제되고 웅장해서 더비시의 애처로운 말투가 나의 허를 찌른다. 
초상화의얼굴에서 이제야 발견한 침울함이 내가 고민하던 몇 가지 질문들을 인간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이렇게나 뚜렷하게 느껴지는 이 남자의 번뇌는 무엇 때문이었을까?
출퇴근길의 지하철에서 수피즘을 파고들기 시작한다. 내가찾은 가장 적합한 책은 13세기의 신학자 이븐 아라비가 쓴 것이

자연은 단순함보다 대담하고 강한 것을 선호한다. 그런 것들은 아름답긴 하지만 항상 예술적이거나 명료하지는 않다. 

경험상 내 삶도 그렇다.
이제 단순한 삶은 끝났다. 그러나 아기 덕분에 이제 내 삶도 더아름답고 강건해지는 여정을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임금을 거의 받지 못한 3개월의 육아 휴가 동안 내 일터는 엘리베이터도 없는 아파트 3층이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한 번에 담당하는 구역보다 작은 공간이었다. 
고요하고 말끔한전시실 대신 고물상 같은 방들이 내 일터가 되었다. 
하지만 7만평이 넘는 메트에서보다 20평짜리 이곳에서 할 일이 훨씬 많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적응하기가 무척 힘들다.

 지금까지는 사소한 것에 거의 신경 쓰지 않는 삶을 살아왔다. 그 삶에서는 내게 전혀 부담을 주지 않는 세상을 그냥 둘러보기만 하면 됐다. 
그러니 부모 노릇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수없이 많은 사소한 일을 해결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내가 받았을 충격을 상상해보라. 

산더미 같은 빨래, 계속되는 병원 출입, 끝없이 반복해서 기저귀 가방을 쌌다 풀었다 해야 하는 일상. 

나는 농부들이 느꼈을 법한 기분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노동이 너무 고단해서 그 결실을 음미할 여유조차 없는 느낌 말이다.

어느 날 오후, 도박을 해보겠다 결심한다. 싸다 만 기저귀가방을 들쳐 메고 아기를 원숭이처럼 한 팔로 안고 드넓은 세상으로 용감하게 나섰다. 5번가의 멕시코 음식점들과 언덕 위에 자

광선 모양의 천사, 기쁘게 몸을 곧추세우고 있는 천사들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이 퀼트의 기하학적 패턴뿐만 아니라 그 불완전함에 감동한다. 살짝 헤매는 듯한 구불구불한 선,
복잡하지 않고 간결한 바느질 자국, 즉흥적으로 구성된 재료들.
거기에는 근면성과 영감을 비롯해서 예술의 위력 중 가장 희망을 주는 것들이 넘치도록 들어 있다.

혼자 생각에 잠긴다. 여기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이 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처럼 세계적으로 장대한 곳에서 얻는 깨달음치고는 좀 우습긴 하지만, 바로 
의미라는 것은 늘 지역적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가장 위대한 예술 작품은 자신의 상황에 갇힌사람들이 아름답고, 유용하고, 진실된 무언가를 창조하기 위해 조각조각 노력을 이어 붙여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교훈까지 말이다. 

미켈란젤로 시대의 피렌체, 심지어 미켈란젤로 시대의 로마마저 이런 면에서는 로레타 페트웨이가 살던 시절의 지스 벤드와 다르지 않다. 이제 더 이상 전성기 르네상스와 같은 개념을빌어 생각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새로 만든 회반죽을 바르고, 거기에 그림을 그리고, 회반죽을 조금 더 바르고, 거기에 그림을 조금 더 그리는 한 사람을 생각할 것이다.

그는 그냥 그곳에 가서 편히 자리를 잡고 앉았고 나는 다른 작품들을 둘러보러 갔다.
"다 보고 와. 나는 여기 계속 있을게." 그가 말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내가 돌아가서 이제 다른 곳으로 좀 움직이는 게 좋지 않겠냐고 묻자 그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믿을 수 있겠어? 진심에서 하는 말인데 여기, 이 그림 앞에서 말라빠진 빵 조각이나 먹으면서 2주일 정도 앉아 있을 수만 있으면내 명을 10년은 단축해도 좋을 것 같아." 그러다가 마침내 그가일어섰다. 하는 수 없지." 그가 말했다. "여기 영원히 있을 수는없는 일이잖아. 그렇지?"

그렇다. 그럴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런 순간들은 위안을 준다.
힘이 나게 한다. 그리고 순수하다. 

빈센트의 <붓꽃>을 보고 있자면 가난과 자신을 괴롭히는 상념들에서 벗어나 그 생기 넘치는단순함 속에서 영원히 살고 싶은 화가의 염원이 느껴진다. 

그러나 몸을 돌려 우리 앞에 놓인 것을 직면해야 하는 시간은 오고야 만다. 

빈센트의 이야기가 슬픈 것은 그가 삶을 살아내는 능력을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보다 운이 좋다는 사실에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이 감사하다. 내 이야기는 행복한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더 그런 생각이 드는 이유는 이제 조셉이 자리로 돌아와서 자신과 나의 미래에 관해 신나게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

그곳을 맡은 포스터 씨의 근무 구역 절반을 내가 맡겠다는 협상을 한다. 전시실 한 곳은 그가 지키고 다른 한 곳은 내가 맡는 식이다. 그렇게 하면 메트 전체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그림이라고 마음속으로 정한 작품을 다시 한번 볼 기회도 누릴수 있을 것이다.

미술관 경비원으로서 수행한 마지막 임무는 바로 맨 처음 미술관에 갔을 때 배운 일이었다. 

20여 년 전, 어머니는 톰형과 미아와 나를 시카고 미술관에 데리고 가서 각자 제일 마음에 드는작품 하나씩을 고르기 전에는 전시실을 떠나지 못하게 했다. 
그렇기에 메트에서 10년을 일했는데 내가 어떤 작품을 제일 좋아하는지 모르는 채 떠날 수는 없는 일이다. 
몇 달 동안 공책에 후보들을 적고 리스트를 만든 다음 가차 없이 숫자를 줄이는 작업을 반복하면서 엄청난 규모의 메트 소장품들을 개인적인 컬렉션으로 축소했다. <쿠로스 대리석 조각상>, <은키시 주술상>,
<시모네티 양탄자>, <곡물 수확>・・・ 너무 많이도, 너무 적게도 고르고 싶지 않다. 내가 품고 갈 수 있는 숫자 정도면 된다. 

앞으로 나아가는 데 시금석이 되어줄 작품들. 옛 거장 전시관에서 내가 제일 필요로 하는 그림은 15세기 이탈리아 수사 프라 안젤리코F-a Argelico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라는 결론을 내린다.

이 그림을 좋아하는 이유는 부분적으로 내가 가진 편견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오래된 작품이 좋다. 단단한 나무판 위에 입혀진 템페라의 느낌도, 자디잘게 금이 간 금박 아래로 붉은 진흙

베이스가 살짝 얼굴을 내미는 것도 좋다. 
옛 기독교 예술품과 거기에 깃든 빛을 발할 정도로 선명한 슬픔이 좋다. 너무도 고통스럽지만 이 그림이 톰을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좋다. 

예수의 몸은 태풍에 요동치는 배의 돛대에 못 박힌 것처럼 보인다. 그를 중심으로 나머지 세상이 흔들리며 돌아가고 있는 듯하다. 우아하면서도 부서진 몸은 뻔한 사실을 다시 상기시킨다.

 우리가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것, 고통 속의 용기는 아름답다는 것, 상실은 사랑과 탄식을 자극한다는 사실 말이다. 그림의 이런 부분은 성스러운 기능을 수행해서 우리가 이미 밀접하게 알고 있으면서도 불가해한 것에 가닿게 해준다.
그러나 안젤리코 수사가 묘사한 것은 예수의 몸뿐만이 아니다. 그는 십자가의 발치에 뒤죽박죽으로 모여 있는 구경꾼 한 무리를 상상했다. 옷을 잘 갖춰 입은 사람, 말을 타고 있는 사람 등등 꽤 많은 구경꾼들의 얼굴에는 놀라우리만치 다양한 반응과 감정들이 떠올라 있다. 
침해하는 사람들, 호기심을 느끼는 사람들, 지루해하는 사람들, 심지어 다른 곳에 신경이 팔려 있는사람들도 있다. 옛 거장들의 그림에서 자주 보이는 리얼리즘이다.

 W. H. 오든의 시 「뮤제 데 보자르Musee des Beaux Arts・Arts(미술관)」에도 나와 있듯 "끔찍한 순교"가 벌어지는 와중에도 "어떤 사람들은 음식을 먹고, 창문을 열고, 별생각 없이 그 옆을 걸어간다." 나는 사람들이 몰려 있는 가운데 부분이 혼란스러운 일상생활을 제대로 표현한다고 생각한다. 
디테일로 가득하고, 모순적이고,

가끔은 지루하고 가끔은 숨 막히게 아름다운 일상. 

아무리 중차대한 순간이라 하더라도 아무리 기저에 깔린 신비로움이 숭고하다 할지라도 복잡한 세상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돌아간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야 하고, 삶은 우리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그림 하단이 있다. 그곳에서 그림의 톤은 다시 한번 변화한다. 거기에는 슬픔에 겨워 쓰러진 어머니를 돌보는 연민 가득한 사람들이 있다. 수동적인 구경꾼들과 달리 그들의 마음은 같은 방향, 즉 선행으로 향하고 있다. 

그림의 이 마지막 부분은 따르고 싶은 모범이다. 내 앞에 펼쳐진 삶에서 나를 필요로하고, 내가 필요한 경우들이 있을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다른 이들도 나를 위해 그렇게 해줄 것이라는 게 나의 희망이다. 

이제 형은 세상에 없다. 나는 그 상실을 느낀다. 형은 그림에서 성모 마리아를 돌보기 위해 정신을 바짝 차린 채 몸을 굽히고 있는, 칭찬받아 마땅한 현실적인 사람들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는 지금도 형의 초상화, 티치아노가 그린 듯한 밝고, 솔직한 형의 얼굴이 선명하게 살아 있고, 그 모습에서 나는 위안을 찾는다. 이 그림이라면 확실히 내가 메트 바깥으로 품고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경비원 일을 시작한 지 넉 달이 되어갈 무렵 고대 이집트 전시관 뒤편에 있는 옷장이라 해도 믿을 만한 크기의 노동조합 사무실로 소환됐다. 
허튼짓은 용납하지 않는 조합장 카터 씨가 들어오라 손짓하며 드물게 
성이 아니라 이름으로 나를 부른다.

"축하하네, 어, 음, 패트릭" 그가 말한다. "수습기간이 끝났으니까 이제 자네는 정식으로 DC37 (뉴욕에서 가장 큰 공무원 노조-옮긴이), 1503지부의 회원이 됐네. 
이 양식을 작성해주게. 좋아,
좋아. 새로운 병가와 연차 수당 기준은 바로 반영될 거고 급여는1년간 근속을 해야 인상될 거야. 
내년 봄쯤 첫 휴가 일정을 잡을 무렵에 자네를 다시 부를 텐데, 휴가는 그다음 겨울, 2월 정도로 계획하고 있으면 될 거야. 
휴가 주간은 선임자가 무조건 우선 선택권을 가지니까 후임들에게 돌아가는 건 보통 그 정도야. 하지만 이제 배치 사무실이 자네를 온갖 구역으로 보낼 테니 최소한 그런 식으로라도 여행을 다닐 수 있겠군... 좋아. 아주 좋아.

 혹시라도 주소가 변경되면 우리에게 알려주고, 조합원 카드는 우편으로 받게 될 거야. 

근무복 제작실에서 신발을 찾으러 오라니

까 이제 그쪽으로 가보게. 

아, 그리고 다음 월급을 받으면 첫 양말수당이 포함되어 있는지 확인해봐. 매년 80달러씩이니까."

"감사합니다. 조합장님." 
명세서의 어디를 봐야 양말 수당이라고 적힌 것을 찾을 수 있을지 고민하며 사무실을 나섰다.

평범한 아침이면 
이스트 82번가를 따라 장엄한 보자르 Beaux-Arts 양식(19세기 중후반 프랑스에서 유행한 신고전주의 건축 양식-옮긴이)으로 지어진 건물과 기둥 그리고 우아하게 펼쳐진 치맛자락 같은 대리석 계단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미술관으로 향한다. 

물론 경비원은 대리석 계단 같은 건 오르지 않는다. 대신 나는 84번가에 있는 경비 초소로 방향을 틀어 미술관 외관 구석구석을 벤치 삼아 델리에서 산 커피를 마시고, 수다를 떨고, 담배를 피우고, 명상을 하고, 《타임스》와 《데일리뉴스>를 읽고 있는 일찍 도착한 동료들을 지나친다. 

M1 버스 한 대가 맨해튼 북부에서 통근하는 경비원 몇을 내려주자 누군가 "차 좀 잡아줘!"라고 소리치고, 야간 근무조 경비원들이 집으로 향하는 그 버스를 타려고 내가 가던 길을 전속력으로 가로지른다. 

초소에 가까워지자 흰색 트럭 하나가 하역장 출입 심사를 통과하는 모습이 보인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대여한 예술품을 싣고 있는지 아니면 키즈밀에 들어갈 핫도그 빵을 나르는 건지는 알 수 없다. 

이윽고두 번째 부스로 가서 출입증을 대자 모니터에 내 얼굴이 번쩍거리며 나타난다. "좋은 아침이야." 이제 얼굴만 봐도 나를 알아보는 고참 동료가 부스 안에서 인사를 건넨다.


메트는 매년 거의 7백만 명의 방문객들을 맞이한다. 이건 양키스, 메츠, 자이언츠, 제츠, 닉스 그리고 네츠의 관중을 모두 합친것보다 더 많은 수다. 자유의 여신상이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방문객보다도 많다. 루브르 박물관이나 중국 국립 박물관

보다는 덜하지만 박물관 중에서는 3위다. 
방문객의 절반 정도는 해외에서 오고 나머지 절반을 차지하는 내국인 방문객 중 다시 절반은 뉴욕시 밖에서 온다. 메트는 원하는 만큼 내라는 입장료 방침을 갖고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돈 걱정할 필요 없이 공원에 소풍을 온 기분으로 미술관에서 하루를 보낸다(슬프게도,
2018년 이후 이 방침은 뉴욕주 거주자에게만 해당한다). 

전반적으로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그 이름에 걸맞은 관중을 끌어모으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다채로운 이유로 이 위대한 도시를 찾아온 다양한 사람들이 뉴욕에서 가장 매력적인 장소 중 하나로 모여들고 있으니 말이다.

이곳 출신이 아닌 뉴요커인 나는 다른 곳과 비교할 수조차 없는 차원의 사람 구경을 처음으로 경험하던 때를 기억한다. 서민들과 멋쟁이들과 동네 괴짜들이 같은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고그 누구도 머뭇거리지 않았다. 아무도 두려워 보이지 않았다. 기분 상해 보이거나 피곤해 보이거나 짜증나 보이는 사람은 있어도 아무도 스스로를 너무 의식하거나 움츠러들거나 소심해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남의 이목 따위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고, 이런 군중 속에 홀로 있는 듯한 모습이야말로 사람 구경의대상이 되기에 이상적인 뉴요커들의 특성이다. 대학교 때는 이따금 메트의 돌계단에 앉아서 5번가를 따라 끝없이 흐르는 행렬을 관찰하면서 생각보다 더 오랜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러다 싫증이 나면 뒤로 돌아 메트의 커다란 입구로 들어가 내가 관찰하

던것만큼 빽빽하고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군중에 합류했다. 혼자였다가 섞여들었다가, 혼자였다가 섞여들었다가 하는도시인의 호흡.

경비 근무 중 나는 내 옆을 지나가는 군중 속으로 섞여들지않는다. 가구에 녹아들지언정 절대 군중에는 그럴 수 없다. 

이 화려한 퍼레이드에서 관객의 자리를 지킬 뿐이다. 공원 벤치에 한두 시간동안 앉아 있는 것과 내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낯선 사람들과 고요한 공간을 공유하며 매일 시간을 보내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다. 

손에 든 은쟁반 말고는 눈에 띄지 않도록 존재감을 숨기는 집사들에겐 익숙한 일일 테지만, 나는 눈과 귀만 가진 존재는 아니지만 어쨌든 그것이 내 주된 임무다.

방문객들이 미술관을 관람하는 방법이 정해져 있는 건 아니지만 몇 가지 대표적인 유형은 있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사람구경도 할수록 는다. 이러한 ‘기예‘에 통달하기로 마음먹은 나는매일 보는 수천 명의 사람 중에서 선형적인 인물들을 골라내는법을 터득했다. 첫 번째는 ‘관광객‘ 유형이다. 대개 사는 지역 고등학교의 바람막이 점퍼를 입고 카메라를 목에 건 채 무조건 가장 유명한 작품을 찾아다니는 아버지들이다. 이들은 예술에 특별한 관심은 없지만 보는 눈까지 없는 것은 아니다. 사실 옛 거장전시관의 솜씨들을 관람하며 큰 소리로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뭐, 액자를 본 것만으로도!" 그들은 초등학교 저학년 자녀가세계사 시간에 배운 내용을 작품에 접목할 때면 열심히 귀를 기


시선을 사로잡는 보기 드문 사람들도 있다. 한 노인이 감상에지쳐서 보행기에 몸을 엎드리면 그의 아내는 고개를 숙여 그의귀에 속삭인다. 몇 분 동안 그녀는 그가 체력이 모자라 놓치게될 중세의 유물들을 자세히 묘사해준다. 설명이 끝나면 그녀는그를 일으켜 세우고 그들은 다시 조금씩 나아간다.


아메리카 전시관의 분수대 앞에서 
한 어머니가 아이에게 동전 두닢을 건네며 말한다. 

"하나는 네 소원을 위해서, 
다른 하나는 네 소원만큼 간절한 다른 누군가의 소원을 위해서." 

이런 말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데 나는 듣자마자 언젠가 내 아이들에게 똑같이 말해주리라 결심한다.

머리가 하얗게 센 두 나이 든 숙녀가 똑같은 차림을 하고 있어서 자세히 보니 일란성 쌍둥이다. 더욱 자세히 살펴보면 한가지 차이점이 있다. 한 사람은 나비넥타이를 착용하고 다른 사람은 착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런 사람들을 몇 분간 바라보고 있다 보면 묘한 일이 일어날때도 있다. 갑자기 방향을 튼 그 관람객이 이쪽으로 걸어와 나에게 질문을 건네는 것이다.


내가 갈팡질팡하며 설명하는 동안 남자는 그런 이야기에 굶주린 듯 귀를 기울인다. 보기 드문 사람이다. 
아는 척을 하거나 비웃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수많은 새로운 아이디어들의 충돌을 반기는 사람. 

나는 온종일 감탄했던 다른 어떤 것보다도 이 남자의 개방적인 태도에 더 탄복한다. 남자는 나에게 감사를 표한 후 떠났고 그때부터 나는 그와 비슷한 사람들을 찾아 나서는 습관이 생겼다.

그는 듣는 사람이었다. 

대부분은 말하는 사람들이다. 

간혹 말을 하면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를 향해 엄청나게 천천히독백을 하는 한 여자가 있었는데 노력이 하도 정성스럽고 진지해서 그 마법의 힘이 풀릴까 두려워 감히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이 재능 있는 예술가들..." 그녀는 <안데스의 오지 Heart of theAnales>(프레더릭 에드윈 처치Frederic Edwin Church의 대형 풍경화. 1857년

어의 의미는 ‘분리되어 있는‘이었다) 지루하고 평범한 세속의 영역을 분리하는 액자가 둘러져 있다. 때때로 우리에게는 멈춰 서서무언가를 흠모할 명분이 필요하다. 예술 작품은 바로 그것을 허락한다.

몇 발짝 떨어진 곳에서 한 관람객이 미동도 하지 않는 조지아의 얼굴 사진을 사진으로 남기기 위해 카메라를 갖다 대고 있다.

목격하는 순간에는 이것이 초현실적인 일처럼 느껴지지만, 
왜그런 일이 일어나는지 이해할 수 있다. 

카메라 뒤의 남자는 그가현실을 더 꽉 움켜쥐고 있는 기분이 들 것이다. 손 틈새로 금세빠져나가버릴 순간을 온전히 경험하는 건 어려운 일이니까. 우리는 소유, 이를테면 주머니에 넣어갈 수 있는 무언가를 원한다.
하지만 아름다운 것은 주머니에 들어가지 않고, 우리가 보고 경험하는 것 중에서 아주 작은 부분만 소유할 수 있다면?
이런 생각에 이르자 갑자기 전시실 안의 낯선 사람들이 엄청나게 아름다워 보인다. 선한 얼굴, 매끄러운 걸음걸이, 감정의높낮이, 생생한 표정들. 그들은 어머니의 과거를 닮은 딸이고,
아들의 미래를 닮은 아버지다. 그들은 어리고, 늙고, 청춘이고,
시들어가고, 모든 면에서 실존한다. 나는 눈을 관찰 도구로 삼기위해 부릅뜬다. 눈이 연필이고 마음은 공책이다. 이런 일에 그다지 능숙하지 않다는 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뜻이다. 나는 사람들이 입고 돌아다니는 옷과, 남자친구나 여자친구와 손을 잡거나 혹은 잡지 않는 몸짓에서, 머리를 다듬고, 면도를 하고, 내 눈

을 마주하거나 피하고, 얼굴과 자세에서 기쁨이나 조급함, 지루힘이나 산만함을 보이는 방식들 속에서 의미를 찾는다. 
그리고 내가 보는 대부분의 것에서 말로 표현할 수 있는 확실한 의미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저 이 장면에 깃든 눈부심과 반짝임을 바라보며 기쁨을 만끽한다.

하루가 끝난 후 86번가에서 지하철을 탄 나는 우물처럼 샘솟는 연민의 마음으로 동승자들을 둘러본다. 평범한 날이면 낯선사람들을 힐끗 보며 그들에 관한 가장 근본적인 사실을 잊어버리기 일쑤다. 그들이 나만큼이나 실존적이고 승리하고 또 고통받았으며 나처럼 힘들고 풍요롭고 짧은 삶에 몰두해 있다는 사실을. 입원해 있는 톰을 방문한 후 집으로 가는 지하철을 타던때를 기억한다. 누구라도 심술을 부리거나, 실수로 부딪힌 다른승객에게 쏘아붙이면 그게 그렇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편협하고 무지해 보였다. 우리 모두 그럴 때가 있는데도 말이다. 오늘밤은 운이 좋다. 낯선 사람들의 피곤하거나 어떤 생각에 빠져 있는 얼굴들을 애정을 갖고 바라볼 수 있다.
반 시간이 지나고 유니언 스퀘어에서 환승한 후, 내가 탄 전철은 맨해튼 다리를 건너 브루클린으로 빨려 들어간다. 지금 내가향하고 있는 사람을 떠올리며, 더 큰 사랑을 느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너 그 상처 어렸을 때 영웅이가 문 거라고 했잖아. 처음만나는 날 보육원에서 영웅이가 널 물었지 뭐니. 엄마를 선택한 게 아니라 널 선택한 거지. 그것도 참 영웅이다워."
어이가 없었지만 태웅은 엄마의 해석이 이해되었다. 사자에게도 덤벼드는 벌꿀오소리라면, 똑똑한 영웅이었다면 사랑으로 돌봐줄 부모님보다 자신과 티격태격 재미있게 자랄 형제를 먼저 선택했을 것이다.

‘내가 마음에 들었다니 다행이다, 벌꿀오소리 동생아‘
마음을 간질간질하게 한 그 이야기는 태웅이 궁금했던 동물화의 큰 비밀을 알려준 듯했다.

제각각의 동물화를 겪는 것은 우리가 인간이라는 걸 다시금 깨닫게 함이다. 역설적으로 사람의 태에 어울리는 속마음을 키우도록 그런 인고의 시간이 필요했으리라.

몸 곳곳에 분홍색 털이 남아 있어 가끔 자신을 부끄럽게 만들었지만, 오랜 시간이 흘러도 동물화 기간의 기억은 누구에게나 강력한 흔적을 남길 듯했다. 
다만 기린이었어도, 비둘기였어도, 뒷다리가 짧은 하이에나였어도 우리는 태어난 존재이고자라나는 힘든 과정도 축복이라 그 힘든 시기를 겪는 것이다.

엄마가 우리를 고통 속에 낳았듯 우리도 우리 자신을 다시태어나게 하는 것이라고, 태웅은 혼자만의 답을 찾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