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하지 않는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장편소설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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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4.3 유족의 딸입니다. 그동안 가슴속 어두운 무거운 돌 같은 역사를 바라보지 않으려 애를 쓰며 살아온 것 같아요. 인선에게, 인선의 엄마에게 고개 숙이고 두손을 내밀어 보고 싶습니다. 딛고 선 이곳이 어디인가... 울울한 삶의 현장, 여전히 서청의 마이크가 왱왱거리는 곳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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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언니가 있었다면, 생각하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나보다 꼭 한 뼘 키가 큰 언니. 보풀이 약간 일어난 스웨터와 아주 조금 상처가 난 에나멜 단화를 물려주는 언니.
엄마가 아플 때면 코트를 걸치고 약국에 다녀오는 언니.
쉿, 조용조용히 걸어야지. 자신의 입술에 집게 손가락을 대며 나무라는 언니. 이건 아주 간단한 거야. 쉽게 생각해봐. 내 수학문제집 여백에 방정식을 적어가는 언니. 얼른 암산을 하려고 찌푸려진 이마.
발바닥에 가시가 박힌 나에게 앉아보라고 하는 언니. 스탠드를 가져와 내 발 언저리를 밝히고, 가스레인지 불꽃에 그슬려 소독한 바늘로 조심조심 가시를 빼내는 언니.

풀어서 다시 쓰면 이렇다. 
질문은 어떤 대답을 향해 나아간다. 
하지만 대답은 무엇인가를 해명하며 질문을 해소하는 진술 속에 있지 않다. 질문이 충분히 개진되었을 때, 그 질문을 숙고하고 있는 사유 그 자체가 변화하는데, 바로 그 ‘변화‘ 안에 답이 들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질문은 질문 그 자체로,
보다 정확히는 스스로를 밀고 나아가다가 다른 질문이 되고 마는 일련의 이행 자체로 작동해야만 한다. 
해결책으로서의 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답을 찾아냈다고 생각되는 순간이 오히려 어서 빨리 끝을 보고 싶은 초조함 때문에 질문을 숙고하던 사유가 끝낼 수 없는 사유의 운동으로부터 물러서서 자신의 운동을 중단한 순간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그간의 한강의 소설들을 다시 읽는 이 자리에서, 섬세한 해석을 통해 정확한 ‘답‘을 찾아내기보다, 차라리 질문들 사이의 간격 또는 변화를 더듬으면서 그 사유의 운동을 우리의 읽기 안에서 다시 발생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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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답을 바라지 않는 작은 호의를 타고
시간과 공간을 넘어
기적처럼 울려퍼지는 삶의 멜로디

여러분이 접어든 이 책은 세상의 이곳저곳에 숨어 있던 빛을 기적처럼 모아놓은 사각형의 종이 뭉치다. 
어쩜 이렇게 쓸 수 있을까. 
조해진 작가는 먼나라의 참혹함과 내가족의 생존이 별개가 아님을, 
살리는 일의 귀함과 소박함을, 이 의심과 냉소로 가득한 세상 속에서도 끝내설득해낸다.
"폭격소리가 가까워져도 응급수술을 중단하지 않는" 의사와 간호사처럼.
소설만이 도달 가능한 힘으로 
기꺼이 서로에게 피난처가 되고자 하는 우리 마음속 빛 조각들을 끌어모은다. 
한 사람에게 수렴되지 않고 한 사람을 통과해 뻗어나가는 사랑을 발견하게 한다. 
이 온기로 나는 다시 한편 지구의 태엽을 감아 빛과 멜로디를 흐르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고맙고 또 고맙다. 김하나(작가)

빛과 멜로디는 지금-여기의 이야기다. 언제나 있었고 언제고 있을 이야기다.
조해진은 폭설 속에서도 전쟁중에서도 어떻게든 온기를 찾으려 한다. 엄혹한 상황에서도 생면부지의 누군가에게 손 내미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않으려 한다. 
"빛이 피사체를 감싸는 순간의 온기"가 스민 문장을 읽다가, 그의 소설을 읽는 시공간이야말로 그 온기가 발산되는 현장임을 깨닫는다. 
인간이 사랑과 상처를 주고받듯, 빛과 멜로디는 흐르다 어느 순간 스며든다. 
시리아에서 레바논에서, 남수단에서, 가자지구에서, 우크라이나에서,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삶이 바로 이곳에 있다". 오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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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오는 섣달그믐 밤에다카시가 벌거벗은 채로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눈밭에서 뒹군다.
그의 비명은 백 년의 시간 동안인간이 거쳐온 폭력과 고통의 응축된 표현이자<만엔원년의 풋볼> 전체 중에서도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다.
다카시가 목소리를 죽이며 지르는 비명은,
구덩이 속에 갇혀 십여 년을 보낸백 년 전의 증조부 동생의 비명이자,
스스로 자원해 맞아죽기를 택한 S형의 비명이기도 하다.
미쓰사부로는 동생의 광기 어린 재현으로다카시와 같은 ‘자기처벌‘ 욕구에 이끌리지만최종적으로는 스스로를 구원해낸다.
‘쥐새끼 같은‘ 자신이더라도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음을이해한 것이다. 진실로 이해하고 치유의 실마리를 찾았기에그의 ‘기대‘와 ‘풀의 집‘은 소중하다.
-세종대 일문학과 교수 박유하

현재와 과거 일상과 광기를 넘나드는 두 형제를 통해오에 겐자부로라는 거장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1994년 노벨문학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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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극적인 뉴스들이
폭력적인 (전체주의적인!) 한국사회의 단면을 솔직하게 보여준다.

그들은 직시하기 싫은거다.
인정하기도
들여다보기도
지켜보기도 싫은거다.

없었다고 우기면
그렇게 10년, 100년 세월이 흘러서
대중들이 다 잊거나 죽어버리면
정말
없었던 것이 될 거라고 믿는 점에서
한국사회는
일본사회와 비슷하다.

채식주의자 책 속의 몇 장면은
나도 불편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것이 전혀 잘못 표현한 것이 아니었기에
나도 겪거나 보거나 듣거나 하여 아는 일이었기에 직시하며 읽어내려 갔었다.

그러나 몽고반점이란 단편은 정말 불쾌했었다.

그것 말고는 다
잘 표현했고
치열하고 대단한 작가라는 생각을 했었다!!

학교도서관에서 한강의 책을 추방하라거나
유해도서라고 하거나
주문했던 도서를 반품하는 사람
또는 아이들이 읽지 않게 해달라는 학부모도 있다고 하는데

화락 부끄럽고 걱정스럽고 두려울지도 모른다. 그래도 사람을 진공속에서 키울 수는 없다. 사회적인 다양한 인간성과 관계의 질곡을 이해하고 대처하고
지혜롭게 관계 맺기를 하도록 가르치려면

이런 작품을 읽고 올곧게 차분하게 천천히
대화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어른답게!!

어쩌면 아직 그 학부모도
아이를 낳아 가정을 이루었지만 끊임없이 불안하고
인간관계에서 폭력적인 상황에 시달리고
지혜롭게 대처할 자신도 없고
아직 어른이 안 되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쓸쓸하다...
속빈강정~~! 한류니 뭐니 하면서도 사실
한국사회는 주류가 아닌 이들에게
매우 불편하고 불안하고
폭력적이기 때문이다.

주류는 그때그때 다르다...
그러니
더 불안은 가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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