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아저씨는 알고 있어야 했다. 슈퍼에서 마주쳤을때도 축구공을 들고 있던 애였다. 비록 직접 말을 꺼낸 적은 없더라도 행동만으로도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아저씨는 자기 아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즉, 아저씨는서진욱을 한 번도 제대로 본 적 없다는 뜻이었다. "아저씨가 자기를 봐 주길 원했나 보죠. 아저씨는 축구에 관심이 많으시니까요." 아저씨가 뻔뻔하게 대꾸했다.
"나는 항상 진욱이에게 최선을 다했어." 아저씨는 진심으로 자신이 서진욱을 잘 보고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웃음이 나왔다. 전혀 웃기지 않은데도 웃음을 흘리지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나는 집으로 향하려던 발걸음을 다른쪽으로 돌렸다. 서진욱이 달려 나갔던 방향이었다. "맨날 폰만 보고 계시던데요."
아저씨는 시간이 멈춘 것처럼 거리의 중간에 서서 움직이지 못했다. 서진욱과 내가 싸우던 모습을 구경하며 서 있던 사람들은어느덧 흩어져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아저씨를 지나쳐 갔다.
그래도 이건 나만의 관점이다. 온전한 내 생각이고, 거짓이 아닌 진심이다. 서진욱은 고개를 떨구었고, 나는 축구 골대를 바라보았다. 서진욱에게는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기다리는 시간 동안 벌을 세었다. 그렇게 같은 자리를 스무 번쯤 헤아렸을 때, 서진욱이 입을 열었다.
아버지가 주식으로 전 재산을 날리면서 어머니가 집을 나간일, 소문이 퍼져 전에 살던 동네에서 왕따를 당했던 일, 그래서 이 동네로 전학 와서는 가난을 숨겼던 일, 점점 무기력해지고 우울해진 아버지가 자신에게 관심을 끊은 일, 축구 경기를 볼 때만큼은 눈을 빛내시던 아버지의 모습, 그래서 축구 선수를 꿈꾸었지만 무리하다가 부상을 입은 일까지. 서진욱은 그간의 사정을 기계적으로 읊었다. 목소리의 고저 없이 그저 담담하게. 그 일대기를 쭉 듣고 있으니 아주 묘한 기분이 들었다.
타인의 인생과 가치관을 가감 없이 마주하는 일은 새로운 우주를 발견하는 일과 같았다. 서진욱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수록 나는 전혀 다른세계 속에서 숨 쉬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쩌면, 아주 어쩌면 말이지, 사람들은 모두 각자만의 세계를가진 외계인일지도 모른다.
모두가 외계인이라서 우리는 죽을 때까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불안해하고 헐뜯고, 그리고 나를 이해해 줄 사람을 찾아 평생을 헤매는 것이다.
‘인간답다‘라는 것은 엄마가 삶의 이정표로 삼는 것이었음을, 현실적이라기보다는 이상적인것이었음을 나는 뒤늦게 이해했다. 쉬는 날에 엄마는 나와 같이 이도해의 실종 전단지를 돌리기도했다. 서진욱도 그 일을 도와주었는데, 슈퍼에 가면 세일 광고지옆에 이도해의 얼굴이 큼지막하게 붙어 있었다. 서진욱은 자기아버지가 실종 전단지를 슈퍼 벽면에 붙이는 걸 허락해 주었다고했다. 서진욱은 여전히 아저씨를 썩 좋아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요즘엔 간간이 대화를 하는 것 같았다. 긴 대화는 아니었다. 학교잘 다녀왔냐, 친구들과는 잘 지내고 있냐, 밥은 뭐 먹고 싶냐....... 그런 일상적인 대화였다.
나와 엄마가 실종 전단지를 돌릴 때, 대다수의 사람들은 우리가 좋은 일을 한다며 칭찬했다. 그러나 그것이 무의미하다고 말하는사람도 있었다. 쓰레기 집의 옆집에 사는 할아버지는 우리가 ‘헛짓거리‘를 하고 있다고도 말했다.
하지만 의미는 타인이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슬퍼하기보다 나아가기를 선택했다. 그러니까 나는 북극성이 되기로 했다. 북극성은 길잡이별. 비록 가장 밝고 큰 별은 아니어도 누구나 찾을 수 있는 별이니까.
무성한 말들로 상처뿐인 이곳 너와 내가 눈으로 전하는 투명한 진심
아이들이 살아가는 세계는 여전히 몰인정하지만, 그럼에도불구하고 율과 아이들이 비탄에 빠지지 않고 한 발 한 발 착실하게 나아갈 때, 나는 그 서툴지만 용감한 발걸음을 응원하게 되었다. 지금껏 조명되지 않았던 연약한 목소리들에 귀를 기울인 작가의 다정함에 찬사를 보낸다. 백온유(소설가)
책에서 하얀 거짓말을 읽었다. 우리는 각각의 별이고, 다른 외계인이다. 죽을 때까지 서로에게 닿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지상의 시선으로 보자면 우리라는 별 사이는 한삠뿐이라고, 그것이 ‘믿음‘이라고, 그러니 살아갈 수 있다고했다. 『율의 시선이라는 지상의 소설이. 쩡찌(작가)
독자들은 율의 시선을 따라가면서 너머의 진심에 닿는 경험을 할 것이다. 마음속 깊은 곳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를 혼자 끙끙대며 외로이 품고 있는 청소년들과 함께 읽고 싶다. 주예지(교사)
세상이 흐리고 어둡고 불안할수록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세우는 작품을 찾아 읽게 된다.
내마음이 원하는 작은 희망 어떻게든 밝게 마무리되었으면 하는 갈망이 있기 때문이다.
아, 이 어둠은 끝이 있기는 한가? 터널이 아니라 지하생활자가 되어버린 듯한 지구끝 생활... 그래도 이렇게 작품을 읽는 동안은 숨을 쉴 수 있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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