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는 15달러 41 센트(약 1만 8천 원), 대출 담당자가 물었다. "아가씨 우리는 정확한 날짜에 돈을 갚아주신 데대단히 감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약간 궁금한 점이 있는데 말이죠? 아가씨 신용정보를 조회해보니 억만장자이시더군요. 그런데 고작 5천 달러를 빌리는 데 어려움이 있으셨던 건가요?" 

그러자 그 금발의 여성이 답했다. "뉴욕시에서 2주간 주차하는데 고작 15달러 41센트만 내면 되는 곳이 여기 말고 또 어디 있겠어요."
생각을 달리하면 효율적인 해결방안이 있다고 한다. 

이런걸 두고 창조적인 아이디어라고 하는데, 아마도 우리나라 모든은행원들에게 소개되었겠지요? 그나저나 그 대출 담당 은행원아마도 똥 밟은 표정이었을 것이다. 뉴욕 한복판의 은행이 싸구려 유료주차장으로 전락했으니 말이다.
더불어, 우리나라 은행에서는 자동차를 담보로 대출을 해주는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다른 나라 은행에서도 우리나라 은행의 (이상한) 중도상환 수수료 같은 것이 있는지 확인해 보지는않았는데 미국에는 그게 없는 모양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것이 보편화되었다고 하는데 부모로부터 독립하지 못하는 우리나라 학생들은 세상을 너무 모른다고 한다. 요리, 가정경제 등에서 말이다. 이런 걸 스스로 배우면서 성인이 된다는 얘기에는 전적으로 공감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핀란드에는 선행학습이란 이상한 수업도 없으며, 명문대 (대학 서열도 없다)도 없다. 
고등학교 때부터 본격적인 공부를 하며, 대학도 미대 법대, 인문대의 인기가 높다고 한다.

 이상하게 놀아가면서 공부한다는 느낌이다.
세금의 쓰임새와 관련해서 이 나라에서는 장관의 업무추진비 중 만찬 일시, 장소, 대상은 물론 메뉴까지 법에 의해 공개된다고 하고, 가사도우미도 4대 보험에 가입해야 되기 때문에 가사도우미에게 현금 월급을 주면 불법이 된다고 한다. 

또한 국민 모두 세전 소득이 공개되어 누구든 세무서에서 다른 사람의 수입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하니 오금이 저린다.

핀란드에도 지역감정, 세대갈등, 공산주의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 (러시아 지배 탓) 등이 있단다. 
도시는 진보적, 농촌은 보수적 (이는 세계 공통인 듯)이라고 한다. 한국의 교육에 대해서 따끔하게 "어머니들이 욕심을 줄여야 한다"고 충고성 멘트를 날린다.

내가 한 말은 아니니 오해는 마시기 바란다.
교육이니 정치니 하는 영역은 대다수 국민들의 관심의 대상이다. 
다수의 관심사항은 저마다 생각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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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가 이 시대를 헤엄쳐가는 모습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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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의 밤]]
해방이라는 언어에 대하여 특별한 동경을 느끼는 자는 어쩌면 결핍과 핍박과 압박을 느껴본 자일진대,
이 언어에 대한 이 감정을 드러내어 말하기 두려운 것은
전세계 전역사를 아우르는 힘없는자, 허약한 계층, 약소국, 피지배층의 궤적을 돌아보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 은유의 따뜻하고 너그럽고 솔직하고 친절한 문장에 뾰족한 긴장을 풀고 읽어낼 수 있었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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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었다고 하네.
세상에나! 울프에게는 멋지고 당당한 삶의 드라마가 있었다. 이토록 생활력 있고 강인한 모습은 어째서 그간드러나지 않았을까. 여기에 대해 『버지니아 울프의 정원의 긴이 메이가 친절하게 짚어준다. 

울프는 "정신병에 시달리다가 자살한 불행한 여성 작가, 광기와 성폭력과 불감증(!)같은 키워드로 이야기되는 삶"(199면)으로 그동안 소비되었는데, 
"아름다움, 기쁨, 유머, 관능, 열정, 욕망으로 찰랑대는삶" (200면)을 살았고 물질적 풍요로부터 얻은 즐거움을 만끽하는 활기 넘치는 인물이었다고.
불행한 여성 작가라는 낡은 라벨이 아니라 새로운 라벨,
글 써서 집 가꾸고 차 사는 활기찬 울프의 이야기는 신선했다. 울프의 언어로 내 삶을 돌아보게 되더라. 작품의 질은 차치하더라도, 나도 울프처럼 ‘글쓰기에 대한 헌신으로 조직된 일상‘에 헌신하며 열권의 책을 썼지. 어떤 책의 인세로는낡은 화장실을 보수했고, 또 다른 책으로는 싱크대와 세탁기를 교체하고, 강연료를 모아 대출금을 갚아나가는 울프식

60의 살림 서사가 있거든.

그런데도 자부심을 갖지 못했다. 왜일까. 아마도 작가는경제적으로 순진하고 상업 감각이 없어야 한다는 관습적 사고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았던 거 같아.

 자기만의 방을가지려고 글을 쓰는 여성의 서사보다 집안의 천사이자 희생자인 여성이라는 라벨이 훨씬 익숙했기 때문일 거야.

이번 영국 여행은 그런 경직된 틀을 깨는 나름의 정신과영혼의 증축 공사 느낌으로 추진했다. 스스로에게 여행의자격을 묻는 소극적 자세에서 벗어나 적극적 행복을 도모하고 실행하자. 고양이와 아이들을 두고 양육자 신분으로2주간 집을 비운 최장기 해외여행이었고, 동성 아닌 이성 친구랑 동행한 여행도 처음이었지. 여행 메이트가 되어준 친구는 성소수자거든. 울프는 작품을 통해 ‘위대한 마음은 양
‘성적‘이라고 말해왔고, 실제로도 자신의 생애를 통해 사랑과 우정의 경계를 실험해온 인물이니 왠지 이런 조합을 환영했을 것 같아.
버지니아 울프의 집, 몽크스하우스 방문에 허락된 시간


철새 떼가, 남쪽에서 날아오며
도나우강을 건널 때면,
나는 기다린다
뒤처진 새를
그게 어떤 건지, 내가 안다

남들과 발맞출수 없다는 것
어릴 적부터 내가 안다
뒤처진 새가 머리 위로 날아 떠나면

나는 그에게 내 힘을 보낸다

「뒤처진 새」라는 작품입니다. 

제목이 이미 시죠. 저만의속도로 날아가는 뒤처진 새, 그 새가 무사히 강을 건너갈기

다리며 응시하는 시인. 저만치 떨어진 채 눈짓으로 날갯짓을 돕는 풍경이 동화처럼 그려집니다. 이 연대가 너무 아름답지 않나요? 

쿤체는 가난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나 병약한어린 시절을 보냈고 많은 핍박을 견뎠답니다. 뒤처진 새를 노래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키 작은 풀 하나도 주의 깊고 따뜻하게 들여다보는 사람이었고, 그렇기에 인간의 불의와 폭력에 저항하는 올 곧은 사람이기도 했다고요.

쿤체는 원래 좋은 사람이라 좋은 시를 썼을까요. 아니면좋은 시를 쓰면서 좋은 사람이 되어갔을까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대가 시를 공부하려다가 겪은 이상한 방식은 아니었으리라 짐작해봅니다. 시를 쓰고 싶어 찾아간 사설교육기관, "무슨 전공이세요?"라며 인사를 나누는 수강생들, ‘아무래도‘ 대학을 가야겠다 싶어 찾아간 문예창작과 입시 전문학원, "네 시는 시도 아니야" 같은 원장의 말, 입시에합격한 고등학생들 작품을 세번씩 노트에 필사시키는 학습법 같은 것들이요. 그대 말대로 도식화된 문장을 뽑아내며노회한 교수들의 취향에 길들여지는 것이 시인의 자격증은

작을 안했을 거고, 이런 게 삶이라면 안 태어났고・・・・그럼 이제 와서 어쩌나요. 이 집요한 삶의 배반을 견딜 방법은 없는가. 예전에 어느 문학잡지를 보다가 중국계 미국인 작가 이윤 리Yyun 의 말이 너무 와닿아서 베껴놓은 적이있어요. 그가 그랬죠

"삶은 그저 삶일 뿐이지요. 늘 고난이 있습니다. 좋은 순간도 나쁜 순간도 있고, 저는 좋든 나쁘든 그 모든 순간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어쨌든 우리는 고통과 슬픔을 경험할테니까요. 그것은 삶의 일부입니다. 
하지만 친절은 우리가 베풀거나 베풀지 않겠다고 선택할 수 있어요. 타인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친절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자신에 대한 친절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결국 친절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일 텐데, 선택이기 때문에 저는 친절에 대해 쓰는 것이 좋습니다."
고난은 피할 수 없지만, 친절은 선택할 수 있다는 것. 희망적입니다. 게다가 친절은 글쓰기로 훈련할 수 있거든요.
저는 삶의 고난이 자아내는 난폭함으로부터 ‘나의 감정과

‘생활‘을 보호하려고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글을 자꾸 쓰다보니 ‘남의 입장과 감정‘도 보이게 됐고, 그 남을 존중하기위해서 내 할 일을 생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가령, 카드센터 직원이 일부러 늦게 처리한 것도 아니니까 너그러이 이해하자가 아니라, 앞으로 살면서 남들에게 정색하지 않으려면 여유 시간 없이 앞뒤로 촉박하게 일정을 잡지 말자고, 글을 쓰면서 돌아보고 다짐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만든 경쟁과 효율의 속도에 끌려다니노라면 내 조급함에 내가 파묻히지 않을 도리가 없으니, 내가 친절해지는 삶의 안전장치를 스스로 구축하는 게 중요함을 알게 됩니다.

남사스럽게도 요즘 강연을 가면 ‘베스트셀러 작가님을 어렵게 모셨다‘고 소개를 받습니다. 처음엔 정말 놀랐습니다. 또 작가님 알아보는 사람이 많지 않느냐는 질문도 받아요. 그럼 거의 없다고 하죠. 브런치 카페 직원 한분, 동네 카페에서 인사를 건넨 주민이 한분 있었고요. 누가 저를 알아보고 아니고가 뭐 중요할까요. 다만 내 얼굴이 아니라 내가

어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나중에 직장을 다니며 노동자로 살아간다. 평균수명이 길어져서 정규직으로 일하다가 나이들어 비정규직으로 재취업을 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적자생존으로 돌아가는 경쟁 시스템은 멀쩡하던 사람도 늘 화가 난 사람‘이나 ‘고통에 무감각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데, 이렇게 폭력이 만연한 풍토에서 어느 직종이라고 해서,
어떤 스펙으로 무장을 한들, 몇살이라고 해서 안전할 수 있겠느냐고요.

무엇보다 대다수 보호자가 내가 혹은 내 아이가 피해자가 될까봐 걱정하지만 내가 혹은 내 아이가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뼈아프게 인정해야만 이런 폭력적인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동준이 어머니가 자식의 죽음을 걸고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도 우리가 타인의 고통에 둔감해지지 말아야 내 아이도 지킬 수 있다는 호소라고요.

그래서 저는 가해자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풀어간 영화「시」에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장면이 있어요. 미자가 말해요. "할머니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게

는 법이 정신을 단련하는 길로 통합니다.

"이 시간들이 내 정신세계를, 그러니까 중요한 게 뭔지를 판단하는 기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그리고 생각하는 능력을 좀더 성숙하게 만들어놨다"(345) 고 이지민 엄마는고백해요. 
이영만 엄마도 "깊이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면서 "주변 사람들의 아픔도 돌아보게"(340면) 되었으니 이제 어른이 된 것 같다고 하고. 
오준영 엄마도 "다 연결되어 있다고. 
다 나한테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다"(334) 말해요. "책임지는 어른의 모습을 나한테 계속 강요"(330면 한다.
고 말하는 이재욱 엄마는 멋지죠.

죽은자는 정말 사라지는가. 그렇다고 말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세상을 떠난 아이들은 여전히 부모의 곁에 남아 매순간 그들의 결정에 개입하고 마음을 흔들고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칩니다. "집에 들어가면 회의 녹음한 걸 세번, 네번,
어떤 때는 다섯번까지 들어요. 이해를 하려고요. (・・・) 우리 아들이 옆에서 자꾸 공부를 가르치는 것 같아요."(314면) 호성이 엄마의 이 말이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세월호의 시간

15년, 유가족은 주변에서 그토록 권하는 일상으로 돌아간 게아니라 한 사람의 분별력 있는 시민으로 복귀했습니다. 나만 잘 살면 된다는 각자도생의 삭막한 땅에 슬픔의 눈물을떨구어 진실의 언어를 심고 있습니다.

통제에 대해 설명해주셨습니다. 사회는 무슨 방식을 쓰든지 슬픔을 관리하려 한다, 사람들이 마음껏 슬퍼하도록 허용하면 대단히 위험할 수 있기에 일정한 처리방식을 따라가도록 한다고요. "사람들이 깊은 슬픔에 빠지게 되면 하나의 인식에 도달하는데, 그 대상은 결코 슬픔의 감상이아니라 바로 사회적 삶의 조건들에 눈뜨기 쉽다는 것입니다."(659~60면)고개를 끄덕이며 밑줄을 그었습니다. 

슬픔은 위험한 감정입니다. 가족을 뺏긴 유가족들, 일자리를 뺏긴 노동자들,
온갖 사회적 참사 피해자의 글을 통해 세상을 공부한 저도슬픔이 얼마나 급진적인 감정인지 목격했습니다. 사람이소중한 것을 잃고 나면 세상이 보이는 사람이 되죠. 슬픔의렌즈로만 보이는 은폐된 진실을 보았기에 권력자가 가장두려워하는 존재로 거듭나죠.
이번 참사에는 유가족과 생존자의 목소리가 곧바로 들리지 않았습니다. 유가족은 참사 한달이 다 되어서야 기자회견을 가졌습니다. 내 자식이 "생매장당했는데도 정부가 제

가 닿는 대로 인파속에서 놀았거든요. 코로나19로 중단되었던 야외 록페스티벌에 갔습니다. 그곳에는 몸을 부딪치며 슬램을 즐기고 음악에 몸을 흔드는 젊은이들이 다수를 차지하는데, 저 같은 중년의 마니아도 있고 목발을 짚거나 휠체어를 탄 장애인도 옵니다. 스탠딩석 가장자리에서 젊은 부부가 아이와 손잡고 신나게 몸을 흔들기도 했습니다.
만에 하나 예기치 못한 참사가 일어났다면 어땠을까요. 왜몸도 성치 않은데 저길 가서, 왜 아줌마가 저길 가서, 왜 애를 데리고 저길 가서, 같은 비난이 쏟아지고도 남았겠지요.
선생님이 누차 강조하던 객관적 권력, 즉 ‘우리를 지배하는 모든 것, 생의 기쁨을 빼앗아가려는 모든 것, 우리의 자유를 박탈하려는 모든 것‘의 정체가 이번 참사로 여지없이 드러났습니다. 슬픔이 통제되고 놀이가 비난받는 이 일그러진 세상에서 시험과 노동에만 복속된 삶을, 우린 왜 누구를위하여 평생 살아가야하는 걸까요.
선생님이 강의 때 자주 던진 물음이고, 책에도 남긴 질문을 붙들어봅니다. 도대체 상처 없는 삶이란 무엇일까, 그리

당함을 가져야 그대도 당당한 환자가 되겠지. 존재는 연결돼 있으니까. 
김진영 선생님 식으로 말하자면, "나의 삶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 타자들의 것이기도 하다. 나의 몸은 타자들의 그것과 분리될 수도 격리될 수도 없는 것이다. 나의몸은 관계들 속에서 비로소 내 것이기도 하다."(79~80면) 이문장을 아픔은 너무도 혼자의 일인데 투병은 다행히 모두의 일이다, 나는 이렇게 이해했어.
저번에 봤을 때 그대가 그랬지. 읽었던 책들이 발병 이후 새롭게 보인다고. 형광펜 파티 하고 있다고. 나도 그러네.

『아침의 피아노』에서 좋았던 부분은 여전히 좋은데, 아픈 몸들을 떠올리면 구체적으로 좋아. J에겐 활자의 약효가 가장빠르다는 것을 아니까 특히 그래. 이 책이 주는 온화함, 다정함, 부드러움 같은 조용한 감정들이 그대의 등을 어루만져줄 거야. 그리고 를 쓰게 하겠지. 아마도 형광펜이 두툼하게입혀질 이 문장 때문에
"글쓰기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그건 타자를 위한것이라고 나는 말했다. 병중의 기록들도 마찬가지다. 이기

기록들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떠나도 남겨질 이들을위한 것이다. 

나만을 지키려고 할 때 
나는 나날이 약해진다.


타자를 지키려고 할 때 나는 나날이 확실해진다."(242)

글쓰기의 본질은 나눔이라는 것을 이보다 더 아름답게표현할 수 있을까. 몸이 신음하고 마음 어딘가 작게 부서지는 느낌을 기록하면서 그대는 나날이 확실해지겠지.

이 누리지 못했던 것 전부를 내게 주는 것이었다"고 딸이 말할 정도로 딸에게 집착해요. 어머니는 체념 어린 투로 말하죠. "나는 내 딸이 행복해지라고 뭐든지 했어.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걔가 더 행복한 건 아니었지."(102면)딸은 어머니를 이렇게 기억해요. 정신적으로 고양되려는의지, 권위, 낭만, 야심, 분노, 의심, 딸에 대한 지지와 질투등 종잡을 수 없는 감정의 활화산을 품고 있는 사람으로, 때로는 ‘좋은‘ 어머니를 때로는 ‘나쁜‘ 어머니를 봅니다. "나는어머니의 폭력, 애정 과잉, 꾸지람을 성격의 개인적인 특색으로 보지 않고 어머니의 개인사, 사회적 신분과 연결해 보려고 한다."(51)그래서 이 책이 좋았어요. 엄마를 ‘내가 태어난 세계와의 마지막 연결고리‘이기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 손쉬운 선악 이분법으로 갈라서 보지 않고, 그가 처한 사회구조, 모순과 욕망의 지도를 읽어내기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감정의실핏줄까지 포착한 글들은 사모곡을 넘어선 인간탐구서가되거든요.

르는 여인처럼 매일매일의 노동을 묵묵히 만삭이 되도록수행한다. 영화 끝 무렵 딱 한번 감정의 수문을 연다. "아기를 낳고 싶지 않았다"며 목놓아 실컷 운다. 나도 따라 물었다. 남자를 비난했고 여자를 연민했다. 엄살 없이 살아내는여자를 존경했다. 예나 지금이나 지구촌 어디서나 저래도되는 남자가 생겨나는 가부장제 시스템에 분개했다.
같은 영화를 본 너는 나처럼 주인공 여성에 감정이입을하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원치 않았던 아기‘의 존재, 단역처럼 스치듯 등장한 신생아를 언급하며 말했다. "어쩌면 나도 태어나지 못했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어."
너는 엄마의 냄새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 말로 다하지 못한 가족사와 복잡한 심정을 글로 남겼다. 엄마에 대한정보는 두가지뿐이라고. 아빠와 아빠의 부모에게 가족으로받아들여지지 못했다는 것. 자신이 생후 100일일 무렵 홀연히떠났다는 것. 너는 훗날 아이를 낳고 10년 넘게 엄마로 살아낸 지금에야 ‘떠난 엄마를 바로 본다며 이렇게 글을 맺었다.
"그건 엄마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엄마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지 않은 것뿐이다. (・・・) 엄마는나에게 역할이 아닌 주체로 살라고 최초로 보여준 사람이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20대 후반의 엄마에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엄마, 너의 자유로움으로 가."
드라마나 소설 같은 픽션에서 엄마의 부재는 단골 시나리오다. 자식을 버린 여자, 엄마가 되지 못한 엄마는 늘 있었다. 나쁜 년이고 독한 년으로 설정되었다. 그러나 현실에서그런 사례는 잘 만나지 못했다. 아니, 드러나지 않았다. 정상가족중심주의 사회에서 엄마 없음은 커다란 결핍이고 모성의 거부는 금기였으니까. 가족은 숨겼고 당사자는 숨었다.
몇년 전부터 나는 본다. 소위 숭고한 모성의 기준을 이탈하는, 감히 자식을 저버린 엄마의 서사를, 그것을 진술하는자식의 용감한 목소리를 글쓰기 수업에서 듣는다. 먹먹한감동이 이는 순간이다. 우리 사회에서 비가시화된 부류, 자리를 할당받지 못한 사람, 모성 없는 존재로 낙인찍힌 여자들의 서사가 약자의 자리에서 세상을 보는 법과 언어를 익힌 자식의 몸을 통해 드러나고 있으니 말이다.

의 너그러운 품에서 먹고 자고 놀던 아이가 자라서 50여년 후 자기를 돌봐준 보모의 서사를 영화로 만들었다. 그 50년은 백인 가정에 고용된 원주민-보모-여성이라는, 이중삼중으로 차별받는불리한 생애 조건에 놓인 한 사람을 역사와 서사 속에서 바라보는 데 걸린 시간이기도 할 것이다.

너도 44년 만에 엄마를 재의미화했다. ‘엄마는 왜 나를 두고 갔을까‘에서 ‘엄마는 왜 나를 두고 가지 않으면 안 되었을까‘로 질문이 나아가기까지 네온 생애를 바쳤다. 네가 그토록 책을 떠나지 못하고 읽고 쓰고 보고 들은 모든 것은, 있지만 네가 모르는 엄마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었구나 조심스레 짐작해본다. 이해는 그만큼 고도의 지적 작업이다. 한편의기품 있는 영화가 불러온 너와 엄마의 이야기는 또 다른 삭제된 여자의 서사, 영화보다 더 영화적인 이야기로 이어지겠지.

살면서 우리는 죄인지도 모르고 죄를 짓듯 시인지도 모르고 시도 짓는다. 잠결의 아이처럼.
수레는 고2가되니까 문학을 배워서 좋다고 지나가듯 말했다. 어느 밤엔 내 옆에서 자려고 눕더니 묻는다.
"엄마, 정호승 시인의 슬픔이 기쁨에게」라는 시 알아?"
"응, 알지. 우리 집에 시집도 있을걸. 근데 왜?"
"문학시간에 배웠는데 그 시가 좋아... 귤값을 깎으면서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주겠다."
수레는 제법 결연한 어투로 시구를 두행 읊더니만 이내잠이 들었는지 잠잠하다. 아이를 키우면서 엄마는 그 나이를 두번 산다. 나도 열일곱 무렵부터 시가 괜히 좋았다. 시집표지가 나달나달해지도록 읽고 노트에 정성스레 베껴 쓰곤했다. 슬픔, 기쁨, 사랑, 그리움 같은 단어가 만든 감정의 둘레에서 나는 마치 꽃그늘 아래 앉은 것처럼 더없이 안전하


집 곳곳에 책이 있지만 수레는 거의 책을 읽지 않는다. 나도 굳이 아이에게 권하지 않는다. 한때는 책 읽으면 똑똑해진다는 신앙에 얽매이는 엄마였는데, 똑똑한 게 자기답게사는 데 도움이 되는지 걸림돌이 되는지 언제부턴가 헷갈린다. 그리고 책이 아니더라도 사람은 자기만의 방식으로세상과 교감하며 느낄 것은 느끼고 배울 것은 배운다는 걸이젠 안다. 타인들의 삶을 관찰하고, 아이의 성장을 가까이지켜보며 자연스레 터득했다. 드수레에겐 고양이 무지가 책이다. 있는 그대로 존재를 대하는 법을 일러주는 지침서이자, 도도한 상대와 관계 맺는법을 알려주는 탁월한 심리 에세이, 한번도 같은 장면이 나오지 않는 마술 같은 그림책, 매번 설렘으로 첫 장을 열게 하는 책.

은 문자를 신봉하는 게 아닐까요. 아이들은 대화와 훈계의차이를 특유의 예민함으로 걸러내고 체벌과 훈육의 차이도간단히 간파합니다. 가족이든 학교든 회사든 그 조직의 가장 약한 사람은 많은 진실을 알고 있습니다. 아무도 묻지 않으니 말을 안 할 뿐.
Pigle

렇게 다른 계급 다른 조건에서 성장한 아이들이 같은 시험지로 같은 날 시험을 치른다고 해서, 그걸 공정한 경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한 사람의 ‘능력‘이란 것은 타고난 재능이나 자질보다 가족으로부터 우수한 학업 기회가 꾸준하게 제공되느냐, 행운이 따르느냐 등 비능력적 요인에 의해 많은 것이 좌우됩니다. 그런 점에서 "부모를 잘 만나지 못한 능력‘이 현수의능력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72)고 말해도 무리가없게 됩니다. 저자는 말해요. "능력은 환경적·사회적으로구성되는 것이며 ‘온전히 개인에게 속한 능력‘이란 환상이다."(21면)또 하나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왜 능력을 꼭 학력과 성적으로만 측정하는가? 즉, 능력을 도대체 누가 평가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이와 관련해 떠오르는 일화가 있어요. 한번은 제 책을 읽은 고등학생이 이런 후기를 남겼어요. "글쓰기를 배우지 않아도 글을 잘 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은유 작가님은 글쓰기를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았는데도 엄


세상의 이치를 배우고 한 사람의 고유함을 진득하게 알아갈 수 있는 ‘일상의 시간과 장소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사회가 된 것입니다.

"없어진 것, 그것이야말로 그곳에 있었던 것이다."(323면)「아이들의 계급투쟁이란 책을 읽다가 번개처럼 다가온 문장입니다. 저자 브래디 미카코 Brady Mikako 가 영국의 가장 가난한 지역에 있는 무료 탁아소에서 보육사로 일하며 쓴 책인데요, 저자는 복지제도가 밑바닥 사회를 어느 정도 지탱해주던 ‘저변 시대‘와 생활을 위한 지원금이 모두 끊긴 ‘긴축 시대‘의 경험을 비교하며 이야기를 전개해요. 긴축 시대가 되자 탁아소가 폐쇄되고 그 공간이 푸드뱅크로 변해버립니다. 그걸 본 저자가 낙담하며 바로 저 말을 해요. "거기서 없어진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게 되었다. (…) 그것은(……)‘존엄성‘이었다."(323면)저는 탁아소를 인간 대 자본의 투쟁이 일어나는 최전방

마지막 반전은 깜짝 시상식! 여러분이 저에게 상을 주었습니다. 한 학생이 교장 선생님처럼 남색 하드커버 상장을 펴자, 저는 저도 모르게 두 손이 다소곳하게 모아졌어요. 상이름이 ‘넌 항상‘. 

학생은 상장 내용을 낭독했습니다.
"위 작가는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있지만 없는 아이들』(창비 2021) 을 쓰며 사회에서 쉽게 꺼내지 못하는 이야기를 해주었고, 사회 약자들의 편에 서주었으며 항상 이 자리에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상을 드립니다. 2021년 9월24일 내면고등학교 학생 일동."

실은 제가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시선을 한몸에 받는시상식 자리에 서본 게 이때가 처음입니다. 생애 첫 상이 ‘넌항상‘이라니요. 상 이름이 너무 예쁘고 빛나서 울 것 같았습니다. 학생 때 못 받은 상을 어른이 되어 학생에게 받는다는건 상상도 못한 일이에요. 게다가 최연소 수상자가 아니라최연소 시상자가 나섬으로써 상의 의미를 간단히 바꿔놓았습니다. 보통은 힘을 가진 이가 임의로 기준을 정해 상을 수여하고 그 수상 이력이 다시 권력의 발판이 되곤 하는데, ‘

"지금이라도 바꾸죠. 세상에 읽어야 될 책이 얼마나 많은데 하필 안 읽히는 책을 읽나요?" 당신의 말은 익숙한 내면의 소리였기에 저는 대답했어요. "안 읽히니까 읽어야죠. 읽힐 때까지 읽는 게 시집 독서의 묘미입니다."

[풀잎』의 시인 월트 휘트먼은 1819년생으로 미국 사람이에요. 1818 년생 독일 사상가 마르크스 Kart Marx 랑 또래더라고요. 마르크스가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며 계급 철폐를외치고 인간의 평등을 주장했듯이 휘트먼도 만물에 위계를두지 않고 "동등한 관계로써 오라" (22)라고 노래했어요.
영웅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을 자신의 시에 주인공으로 등장시켰기에 후대에 혁명적인 인물로 남았죠. "위대한 시는여러 세월에 대해, 모든 계층과 피부색, 모든 부문과 분파에대해, 남자와 마찬가지로 여자에 대해, 여자와 마찬가지로남자에 대해 공통적이다."(38면)

자리를 마련한 것일 테고요.
『고통에 이름 붙이는 사람들』이란 책을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날 강연에서 약자에게 차별은 목숨이 달린 문제라고만 말했지 얼마나 어떻게 그러한지 말하지 못했는데요. 이 책은 차별이 어떻게 노동자의 생명을 위협하는지, 에어컨 설치 기사, 플랫폼 노동자, 학교급식 조리원 등 우리 일상을 떠받치는 25개 직업 사례를 들어 상세히 보여줍니다.
이를테면 이런 사례.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많이 죽는 거나 발암물질에 더많이 노출되는 상황은 차별이 낳은 것이다. 우리나라에서일하는 외국인 이주노동자의 자살률이 높은 것도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차별은 일의 위험을 받아들이라는 강요이기때문이다. 노동자는 차별에 적응하면서 위험을 감수하려고애쓰다가 병들고 다친다."(9)환경미화원이 사고가 많은 이유 중 하나가 밤에 작업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지자체는 낮에 쓰레기를 치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싶어한다. 과소비를 유지하려면 쓰레기에

니다.
저도 스무살 무렵에는 도대체 여자가 무슨 차별을 받는다는 건가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결혼과 출산을 거치고, 또글 쓰는 일을 하며 다른 삶의 배경을 가진 여성들을 만나면서 그런 생각이 깨졌습니다. 사람은 변합니다. 변화란 거저오는 것이 아니라 애써서 만드는 것이라고 하죠. 비난으로는 변하지 않고 애씀으로 변하는 것 같아요. 누군가 애써 글을 쓰고, 누군가 애써 글을 읽고 애써 소개하고요. 남의 말에귀를 열고 질문하고 영향을 받는 것도 애씀이지요.
이 느리지만 단단하게 이어지는 각성과 변화의 흐름을보았기에 저는 ‘애씀 공동체‘를 키워나가는 일이 직업이 되었습니다. 다양한 존재들과 만나서 읽고 쓰고 말하기를 멈추지 않으며 같이 애쓰고 있지요. 요즘엔 장애인 예산 권리확보 시위 관련한 글을 읽으며 그간 우리 사회가 누린 속도와 편의가 장애인 같은 교통약자가 배제된 채 설계된 것이었음을 배웠습니다. 나를 변화시킨 이들의 바통을 이어받아 조금 더 애써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편지를 띄웁니다.

부록
해방의 목록

리베카 솔닛 세상에 없는 나의 기억들, 김명남 옮김, 창비 2022
미셸 바렛, 메리 맥킨토시 반사회적 가족, 김혜경, 배은경 옮김. 나름북스 2019
데버라 리비 「살림 비용 이예원 옮김, 플레이타임 2021
캐럴라인 냅 욕구들, 정지인 옮김, 북하우스 2021
캐럴라인 줄 버지니아 울프의 정원, 메이 옮김, 봄날의책 2020
알랭 바디우 사랑 예찬, 조재룡 옮김, 길 2010
김수우 김민정 ‘나를 지켜준 편지」, 열매하나 2019
윤이형 붕대 감기, 작가정신 2020
아룬다티 로이 9월이여, 오라, 박혜영 옮김, 녹색평론사 2011
라이너 쿤체 ‘나와 마주하는 시간, 전영애 박세인 옮김, 봄날의책 2019
보후밀 흐라발 너무 시끄러운 고독, 이창실 옮김, 문학동네 2016
버지니아 울프 『파도』, 박희진 옮김. 솔 2019
레프 니꼴라예비치 톨스토이 이반 일리치의 죽음, 이강은 옮김, 참비 2012
한정원 ‘시와 산책, 시간의흐름 2020
모이라 데이비 엮음 분노와 애정, 김하현 옮김, 시대의창 2018

켄 로치 감독 「미안해요, 리키, 2019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보라색 히비스커스, 황가한 옮김, 민음사 2019
정지우 감독 「4등, 2016
김윤아 「Flow」, 「섀도우 오브 유어 스마일, 2001
최예원 외 죽고 싶지만 살고 싶어서, 글항아리 2021
이창동 시 각본집』, 아를 2021
은유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임진실 사진, 돌베개 2019
416세월호참사작가기록단 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 창비 2019
김진영 상처로 숨 쉬는 법』, 한겨레출판 2021
김진영 아침의 피아노』, 한겨레출판 2018아니 에르노 여자, 정혜용 옮김, 열린책들 2012
알폰소 쿠아론 감독 「로마」, 2018
51명의 충청도 할매들 요리는 감이며, 창비교육 2019
존 버거 「제7의 인간, 차미례 옮김, 눈빛 2004
김보라 감독 「벌새 2018
장애여성공감 어쩌면 이상한 몸」, 오월의봄 2018
박은실 양성애, 이연 2017
김지은 외 지음 사랑해서 때린다는 말, 세이브더칠드런 기획, 오월의봄 2018
리베카 솔닛 ‘이것은 이름들의 전쟁이다. 김명남 옮김, 창비 2018
김진숙 소금꽃 나무, 후마니타스 2007
박권일 외 능력주의와 불평등 교육공동체벗 2020
이용덕 ‘우리가 옳다! 숨쉬는책공장 2020
리베카 솔닛 ‘이것은 누구의 이야기인가, 노지양 옮김, 창비 2021
황정은 계속해보겠습니다. 창비 2014
브래디 미카코 「아이들의 계급투쟁, 노수경 옮김, 사계절 2019
루쉰 아침 꽃 저녁에 줍다, 김하림 옮김, 그린비 2011
김승일 외 교실의 시, 돌베개 2019
헨리 데이빗 소로우 월든』, 강승영 옮김, 은행나무 2011

러네이 엥겔른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 김문주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17이라영 정치적인 식탁, 동녘 2019
월트 휘트먼 풀잎, 허현숙 옮김, 열린책들 2011
노동환경건강연구소 기획 고통에 이름을 붙이는 사람들』, 포도밭출판사 2021
이라 말을 부수는 말, 한겨레출판 2022
성태숙 변방의 아이들. 민들레 2015
최승자 『이 시대의 사랑』, 문학과지성사 1981
김동원 감독 내 친구 정일우, 2017

해방의 밤당신을 자유롭게 할 은유의 책 편지초판 1쇄 발행 / 2024년 1월 15일지은이 / 은유펴낸이/염종선책임편집 / 최지수 신채용조판/박아경펴낸곳 / (주)창비등록 / 1986년 8월 5일 제85호주소 / 10881 경기도 파주시 회동길 184전화 / 031-955-3333팩시밀리 / 영업 031-955-3399 편집 031-955-3400홈페이지 / www.changbi.com전자우편 / human@changbi.comⓒ은유 2024ISBN 978-89-364-8010-303810* 이 책 내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재사용하려면반드시 저작권자와 장비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 책값은 뒤표지에 표시되어 있습니다.

"책은 해방의 문을 여는 연장이다"

막막한 삶,
우리를 더 나은 삶의 자리로 데려다줄
은유의 문장들

낮의 소란이 지나가고 시간이 경과해야 비로소 선명해지는 것들이 있다. 노동자가 연장을 내려놓고 펜을 잡는 밤은 사유가 시작되는 시간, 존재를 회복하는 시간, 다른 내가 되는 변모의 시간이다. 웅크린 존재의 등이 펴지는 만개의 시간, 밤.

『해방의 밤』은 책과 사람에 대한 오래된 믿음의 기록이다. 책으로 삶을 해석하고, 삶으로 책을 반박하며 덩어리진 생각에 질서와 문장을 부여했다. 

읽는 사람은 답을 구하는 사람이다. 
나를 자유롭게 해준 말들, 아픈 데를 콕 짚어주어 막힌 곳을 뚫어주는 신통한 말들, 기어코 바깥을보게 만드는 문장들, ‘더 이상 그렇게 살 필요 없어‘ 같은위대한 말들. 혼자만 알고 있으면 반칙인 말들을 널리 내보낸다. 해방의 씨앗을 뿌리는 마음으로

프롤로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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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젊은 여자‘는 내가 너무 유난인가 싶어 주저앉길 반복하던 저이기도 하고요. ‘그냥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동화책이나 읽어주고 같이 시간 보내면 될걸, 이렇게 화를 내고 속상해하면서까지 수업을 들어야 할까? 남편 말대로 나중에 애들 크고 할까?" 되뇌는 사랑눈이기도 합니다. 

맞아요. 만국의 엄마들이 ‘조용하지만 끈질긴 불안, 모기의 잉잉거림처럼 성가신 내면화된 경고‘에 시달립니다. 존재에 가해진 금기와 제약이 이렇게까지 완강하기에 무언가를 하려면 이렇게까지 힘겨운 것 같습니다.

사랑눈은 온라인이 아니라 오프라인 현장에 오길 소망했습니다. 동료들 실물도 보고 싶고 글쓰기 수업이 열리는 망원동 이후북스에서 책 구경도 하길 바랐죠. 드디어 오프라인 수업에 참여한 날엔 아이들의 방해 없이 엄청 집중해서
‘무언가를 하는 경험이 너무 오랜만이라며 울먹였죠. 또 집에 있는 아이들한테는 미안하지만 생각보다 걱정되지 않는다며 까르르 웃었습니다. 사랑눈만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갓난쟁이 떼어놓고 나온 김라임씨도, 김지현씨도 육아 해방

눈물과 웃음을 어쩌지 못했어요. 자신의 욕망이 타당하다는 걸 몸은 느끼는 거겠죠.
[욕구들]에서 저자는 ‘딸‘의 목소리로 묻습니다. "어머니가 결코 갖지 못했던 것을 어떻게 나 자신에게 허용할 수 있어?" 가슴이 철렁하면서도 뻥 뚫리는 말입니다. ‘하지 마‘
의 세계에서 엄마를 구원하는 멋진 문장이죠. 사랑눈이 이렇게까지 하는 건, ‘나중에‘라는 시간은 영영 도래하지 않으며 지금 자신이 원하는 바에 따라 행동해도 된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증여이고, 원함에 관해 아이들이 본받을만한 모범이 된다는 점에서, 동화책을 읽어주는 일에 비해모자람 없는 어머니의 일이라고 믿어도 좋을 것입니다.


"백일홍에는 민달팽이가 가득하고. 이 밤에 랜턴을 들고나가서 달팽이를 잡아. 우지직 눌러 죽이는 소리가 들리지." (62) 몽크스하우스에 살던 시절의 울프의 일기는 정원에 깃든 자연을 관찰하고 찬탄하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사실 자연을 관찰하고 묘사하는 작가의 문장은 익숙해서 그다지 새롭지는 않았던 거 같아. 읽다가 멈칫한 대목은 따로있었다.
"돈을 벌면 집에 건물을 한층 더 올려야지" (32) 같은 생활인의 언어야.
자가 소유주이자 살림꾼 울프의 모습은 의외였다. 책에따르면 울프는 『댈러웨이 부인』으로 번 돈으로 몽크스하우스의 낡은 화장실을 고치고, 큰 상업적 성공을 거둔 『올랜도』인세로는 방과 거실을 증축했다. 『등대로』의 인세로는런던과 로드멜을 오가기 위한 자동차를 구입하고 말야. 이러한 경제적 자립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기만의 방』이라는책을 출간하고, 두달 후 울프는 진짜로 ‘자기만의 방‘을 갖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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