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 카를로 로벨리의 존재론적 물리학 여행
카를로 로벨리 지음, 김정훈 옮김, 이중원 감수 / 쌤앤파커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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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 로벨리 책 추천 순서
: 모든 순간의 물리학 ->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 만약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시공간 인식의 틀을 깨고 싶어서 카를로 로벨리 책을 꾸준히 봤다. 아직 이해는 다 가지 않지만 이번 책도 진짜 좋았다! 이 시리즈의 종합편이라고나 할까.

˝영원한 현재를 살라. 지금 여기 현재!! ˝ 라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시작한 이 여정에서, 이번 책에서 사실 가장 많은 영감을 받았다. 우리의 감각으로는 인식하지 못하는 ˝찰나˝ 속 존재의 연속성은 다른 곳이라고 설명할 수 밖에 없다.(다른차원??).

˝시공은 이러한 스핀 네트워크들이 상호 변환되는 과정들에 의해서 생성되며, 이러한 과정들은 스핀 거품들의 합으로 표현됩니다.˝

˝공간의 양자가 시공 거품과 섞이고, 세계의 영역들 사이의 상관관계를 엮어내는 상호적인 정보로부터 사물의 구조가 태어납니다.˝

미시적 차원에서 진동 에너지는 서로 연결 되어 있고, 상호작용으로 창발된 물현을, 우리가 엔트로피 증가방향으로 인식하여 ˝순간들의 거시적 흐름˝이 시간이 된 것 같다. 실재 세계는 구조화된 하나의 전체임을 보여주는 시공 거품이라는 말일까..

어떤 사건의 과거와 미래사이에는 (예를 들어, 당신이있는 곳을 기준으로 당신의 과거와 미래 사이, 그리고 당신이 이 책을 읽고 있는 바로 이 순간) 어떤 ‘중간 지대‘, 어떤 ‘연장된 현재‘가 존재합니다. 과거도 미래도 아닌지대죠. 이것이 특수상대성이론으로 발견한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 화성에서는 이미 일어난 사건들이 있고 일어날 사건들도 있지만,
또한 우리의 과거에도 우리의 미래에도 있지 않은 일들이 발생하는 15분도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것들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우리는 전에는 한 번도 이러한 다른 곳을 몰랐습니다. 우리 옆에서는 이 ‘다른 곳‘이 너무 짧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알아차릴 만큼 재빠르지 못하니까요. 그러나 그것은 존재하고 실재하는 것입니다.

E모든 과거와 미래 사건들을 포함하지만 ‘과거도 미래도 아닌‘ 사건들까지도 포함한 집합입니다. 이 사건들은 단일한 순간을 형성하지 않습니다. 그 자체로 지속기간을 지니고 있지요.

‘공간‘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림 3-2의 ‘연장된 공간‘에서는 ‘지금 이 공간‘이라고 딱히 부를 만한 특정한 부분이 없습니다. ‘현재‘라는 것에 대한직관적인 생각, 우주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모든 사건들의 모음이라는 생각은우리의 맹목의 결과, 즉 우리가 작은 시간적 간격들을 인식할 수 없기 때문에 갖게 된 단정일 뿐입니다.
현재라는 것은 지구의 평평함과 비슷합니다. 착각이죠. 우리는 감각의 한계 때문에,.

구부러진 것은 공간이 아니라 시공입니다. 10년 전 아인슈타인 자신이 순간들의연속이 아니라 구조화된 하나의 전체임을 보여주었던 바로 그 시공입니다.

빛의 점과 천사들의 구가 우리 우주를 둘러싸면서 동시에 우리 우주에 의해 둘러싸여 있다는 것이죠! 정확히 3-구의 묘사입니다.

근본적인 수준에서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흐르는 시간이라는 인상은 오직 거시적 규모에서만 유효한 근사치일 뿐입니다. 이는 우리가 세계를 대충 지각한다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것이죠.
이 이론으로 기술되는 세계는 우리가 익숙한 세계와는 아주 다릅니다. 세계를 ‘담고 있는 공간은 더 이상 없습니다. 사건들이 ‘그것에 따라 발생하는 시간도 더 이상 없습니다. 공간의 양자들과 물질들이 서로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기본적인과정이 존재할 뿐입니다. 우리를 둘러싼 연속적인 공간과 시간이라는 가상은 이러한 기본적인 과정들이 무리지어 있는 것을 멀리서 흐릿하게 보고 있는 결과입니다. 투명하고 잔잔한 산정호수가 무수한 작은 물 분자들의 빠른 춤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처럼 말이죠.

이 과정이 시간 ‘속‘에서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에 주목해주세요. 상자는 시공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공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공간의 양자가 공간 속에 있는것이 아니듯이, 이 과정도 시간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중력의 양자가그 자체로 공간이기 때문에 공간 속에 있는 것이 아니듯이, 이 과정 자체가 시간의 흐름입니다.

공간은 스핀 네트워크이며, 그 노드는 기본 입자들을 나타내고 링크는 그것들의인접 관계를 나타냅니다. 시공은 이러한 스핀 네트워크들이 상호 변환되는 과정들에 의해서 생성되며, 이러한 과정들은 스핀 거품들의 합으로 표현됩니다.

무한이 없는 세계, 최소 크기가 존재해서 그 이하로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무한하게 작은 것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 공간의 양자가 시공 거품과 섞이고, 세계의 영역들 사이의 상관관계를 엮어내는 상호적인 정보로부터 사물의 구조가 태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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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립백 콜롬비아 엑셀소 디카페인 - 12g, 5개입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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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산미라서 괜찮고요 일단 엄청 부드럽고 달달합니다 마일드하면서도 맛있어요!!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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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오르는 질문들 - 마거릿 애트우드 선집 2004~2021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이재경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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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에세이였다 .작년에는 땡기지않았던 [나는 왜 SF를 쓰는가]도 읽고 싶어졌다. 2019년에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했다가 1년만에 도착문자를 받고 삐져서 😂 포기했던 [미친아담]3부작도 다시 읽고 싶어짐 ㅋㅋㅋㅋ
번역탓하며 던져버렸던 앨리스 먼로 소설들도!

그 외에도 [선물] ! 꼭 읽고싶다. 제발트 소설과의 동시성?적인 해석은 은근 소름이다. (아래 밑줄긋기) !!
내가 만난[선물]의 독자들은 모두 이 책에서 통찰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들은 본인의 예술 활동에 대한 통찰뿐 아니라, 일상을 너무 넓게차지하고 있어서 오히려 자세히 볼 틈이 없었던 문제들에 대한 통찰을얻었다고 했다. 누군가 나를 위해 문을 잡아주면 나는 그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빚진 걸까? 내 정체성을 다지려면 크리스마스를 가족과함께 보내야 할까? 만약 동생이 신장을 기증해달라고 부탁하면 즉각그러겠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동생에게 수천달러를 청구해야 할까?
범법 행위를 요구받는 입장이 되기 싫으면 마피아의 선물은 사양하는게 좋지 않을까? 내가 정치인인데 로비스트에게 포도주 상자를 받아도 될까? 다이아몬드는 정말 여자의 ‘베스트 프렌드인가? 아니면 현금화가 불가능한 격정적인 손등 키스에 더 가치를 두어야 할까?

영국의 시인이자 화가인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가 오래전에 말했듯, 인간의 상상이 세상을 움직입니다. 처음에는 인간 세계만움직였습니다. 한때 인간 세계는 주위를 둘러싼 거대하고 막강한 자연 세계에 비해 정말 작았습니다. 지금은 날씨를 제외하면 우리가 통제 못 할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갖가지 방식으로 우리를 조종하는 것은 인간의 상상력입니다. 문학은 인간 상상의 발설 또는 표출입니다. 

우리는 어둠 속에, 빛으로 둘러싸인 어둠 속에 서 있다.

모조품은 무엇이고 진품은 무엇일까? 어떤 감정과 행동 방식과 말이 진솔한 것이고, 어떤 것이 겉치레이고 가식일까? 아니, 두 가지가분리될 수는 있을까? 
먼로의 인물들은 이런 문제들을 자주 생각한다.

『선물』을 읽기 전의 당신과 읽은 후의 당신은 같지 않을 것이다. 이는 이 책이 선물로서 가지는 위상이기도 하다. 선물은 단순한 상품은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영혼을 변화시키니까.

저는 주로 소설을 쓰고,때로 ‘사이언스 픽션‘ 또는 ‘사변소설‘이라 부르는 것을 씁니다. 어쨌든우리의 미래, 지구상의 삶, 가능성의 영역을 다루는 소설들입니다. 이런 부류의 소설을 통해 저는 현재의 사실과 동향을 조망하고, 그것을미래에 투사해서 그 결과를 추정합니다. 이런 소설의 존재 이유를 대라고 한다면, 이런 소설이 작게나마 전략적 도구 역할을 한다고 말하고 싶네요. 이런 소설이 말하는 바는 이겁니다. 우리가 가는 길이 향하는곳은 여기예요. 여기가 종착지가 될 판이라고요. 그래도 정말 이 길로 가고 싶어요? 그게 아니라면 길을 바꿔요.
이런 부류의 소설을 쓰는 사람은 쉼 없이 변화를 숙고합니다. 

촛불거울 현상 같은 우연한 발견을 또 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정확히 30년 전인 1983~1984년, 저는 가족과 함께 노퍽에서 가을, 겨울,봄을 보냈습니다. 제발트가 『토성의 고리에서 너무나 유려하게 그려냈던 지역에 직접 살았던 거죠. 그의 글이 대개 그렇듯 토성의 고리』도 덧없음에 대한 일종의 명상입니다. 
이때 우리는 15세기에 지어진 웅장한 성 니콜라스 성당이 증언하듯 한때는 번성한 항구였지만 지금은갯벌에 면한 작은 포구에 불과한 블레이크니에 머물고 있었어요. 안개,바람 부는 바다, 거기에 잠겨버린 마을들, 꼬불꼬불한 뒷길들, 한때는부유했지만 지금은 퇴색한 사유지들. 우리는 토성의 고리에서 그것들에 대해 읽기 전에 그것들 사이에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노리치시를 배회했습니다. 노리치의 줄리언(Julian of Norwich)이 제 소설 홍수의 해 마지막 장의 수호성인으로 등장하는 것이 우연은 아닙니다.

저는 험프티 덤프티의 교훈을 마음에 새겼습니다. 그럼 물어볼게요!
무엇이 주가 되어야 하죠? 우리가 작가로서 단어들의 의미를 확장하는 걸까요, 아니면 작가는 단지 언어의 도구일 뿐일까요? 언어가 컴퓨터처럼 나를 프로그래밍하는 걸까요, 아니면 ‘템페스트(The Tempest)』의주인공 프로스페로가 마법을 휘두르듯 내가 언어를 휘두르는 걸까요?

제게 번역해줄 사람이 없었기에 저는 언어 몰입을 경험하지 않았어요. 어린 시절의 비(非)몰입이 제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요? 제게 그것은 바깥에 적어도 한 개 이상의 다른 언어적 우주가 존재한다는 신호였습니다. 여기 있는 제게는 불분명하지만 거기 있는 남들에게는 자명한 것들이 있다는 신호요. 작가가 글을 쓰는 동기 중 하나는 글쓰기행위를 통해 다양한 미스터리에 대한 답을 찾는 것입니다. 작가에게뜻밖의 발견이 없으면 독자에게는 재미가 없습니다.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이것이 제가 미리 초안을 잡지 않는 한가지 이유입니다. 

우리는 이중으로 부자유하다. 윌리엄 블레이크는 "새장에 갇힌 울새 한마리가 온 천국을 분노에 떨게 한다"라고 했다. 존 밀턴은 「실낙원」 제3권에서 인류와 자유의지에대한 신의 생각을 이렇게 전한다. "충분히 설 수 있게 했으나 타락하겠다면 그것도 제 자유다." 셰익스피어는 『템페스트』에서 칼리반의 입을빌려 "자유여, 축제여!"라고 노래했다. 

『오릭스와 크레이크』가 던지는 첫 번째 질문은 아마도 이것이다.
"우리 자신에게 우리를 맡길 수 있을까?" 기술 수준이 몰라보게 높아졌다 해도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는 본질적으로 수만 년 동안 변하지않았다. 같은 감정, 같은 집착, 같은 선악미추 개념이 우리를 지배한다.
우리 인간은 영원한 오합지중이다.
...오릭스와 크레이크』의 지미에게는 ‘착한 마음‘이 있다. 우리를 구하는 데 우리의 착한 마음이면 충분할까, 아니면 또 다른 무언가가 요구될까?
우리가 현재의 우리보다 더 아름답고 더 윤리적인 새로운 버전의 우리를 창조할 역량을 갖출 날이 머지않았다.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우리가 그 버전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지금의 우리가 급속히 파괴 중인 생물권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인간 모델을 폐기해버려야 하지 않을까?크레이크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을 실행에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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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11-02 21: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한국에서 출간 되는 앨리스 먼로 작품들 미국 빈티지 출판사에서 출간된 셀렉티드 판형(여기 수록된 단편들 대부분 애트우드 작가가 언급한 명 단편들)을 번역했으면 좋은데 마구자비로 출간 해 버렸습니다.

미친 아담 3부작 강추 합니다 ^^

alummii 2022-11-02 22:49   좋아요 2 | URL
글쿠나...명단편 번역을 기대해야겠네요 ^^ 미친 아담 기대되요 !
 
유리알 유희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4
헤르만 헤세 지음, 이영임 옮김 / 민음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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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제프 명인은 카스탈리엔에서 ‘유리알 유희‘라는 정신의 연금술을 통해 양극성의 대비를 줄여가며, 삶의 균형을 잃지않고 조화로움을 유지하여 실천적 대안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는 의식적으로 소명을 다하고자, 최고 정신의 정점에 도달했을때 카스탈리엔을 나와 속세에 뛰어들기를 선택함으로써 정신과 신념의 한계를 또다시 초월하려 하였고, 스스로가 상승된 참조틀이 되어, 변화된 세계를 갈망했다.
크네히트의 유고로 남겨진 이력서는 시공간을 넘는 관계의 고리 , 순환의 고리를 보여주었고 이는 곧 전체와 하나됨이자, 마야로부터의 각성이라는 현실로의 연결성이다.

크네히트는 그 당시 자신이 얼마나 이 시의 사상에 가슴 벅차하며 "초월하라!"는문구를 스스로에 대한 소명, 명령, 경고로서, 새로 세우고 힘을 불어넣는 하나의결의로서 썼던가를 기억해 냈다. 그리고 자신의 행동과 삶을 이 표어 아래에 둠으로써 인생의 모든 공간과 과정을 초월하여 단호하고도 명랑하게 통과하고 실현하고 자신의 뒤로 흘러 보내고자 했던가를 이제 다시금 떠올렸다. - P148

공간에서 공간으로 명랑하게 나아가야지
어디에도 고향인 양 매달려선 안 되네
우주 정신은 우리를 구속하고 좁히는 대신
한 계단씩 올려 주고 넓혀 주려 한다. - P149

저의 ‘각성‘도 제게는 이런 종류의 절박한 현실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런 이름을 붙이게 된 것이지요. 그런 순간에는 마치 오랫동안 잠을자거나 졸고 있다가 문득 깨어나 정신이 맑아지면서 이제껏 한 번도 그래 본 적없이 민감해지는 것처럼, 그 체험이 생생한 현실이 됩니다 - P210

우리의 삶은 돌고 있네, 언제나 유희할 준비가 된 채.
그러나 우리는 남 몰래 갈망하지, 현실을,
생식과 탄생을, 번뇌와 죽음을. - P301

그런데 이 역겨운 시체의 골짜기에서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부패하는 일 없이
정신은 동경에 차 빛나는 횃불을 치켜들고
죽음과 싸워 스스로를 불멸케 하네. - P306

빛살이 싹 품은 것을 둘로 쪼개어
행위와 싸움으로 창조적으로 나누니,
놀란 세계가 빛을 뿜으며 타오르네.
빛의 씨앗 떨어진 곳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질서가 생겨나니, 찬란한 세계는 삶에 찬가를,
 창조자인 빛에게 승리를 울려 보낸다. - P309

황도십이궁의 별이 빛나는 정신의 공간으로,
거기서는 모든 민족이 구체적으로 본 계시,
몇 천 년을 거쳐 온 세계 경험의 온갖 유산이 조화로이, 끊임없이 새로 결합하고 - P314

우리 가운데 가장 자기를 믿지 않고 가장 많이 묻고 의심하는 자야말로
아마 시대에 영향을 미치고 청년들을 교화하는 모범이 되리라.
자기 자신에 의혹을 품고 괴로워하는 자가 
아마 언젠가는 복 받은 자로서 부러움을 받으리라,

우리 속에도 저 영원한 정신에서 나온 정신이 살고 있어,
모든 시대의 정신을 형제라 부르니
오늘을 초월해 사는 것은 그 정신이지, 너나 내가 아니리. - P325

저는 언젠가부터 유리알 유희 명인으로서의 저의 일이 영원한 되풀이, 공허한 습관이자 형식이 되었으며, 아무 기쁨도 감격도 없이, 심지어는 많은 경우에 아무런 신념도 없이 해치우는 한계선상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 P228

떠나고 여행할 각오된 자만이 습관의 마비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
죽음의 순간에조차 아마 우리는 젊게 새로운 공간으로 넘어가는지도 모른다.
생의 부름은 결코 그치지 않으리니...... - P327

천체의 그윽하면서도 확고부동한 운행, 인간과 동물의 삶, 그들의 공동체와 적의와 만남과 싸움, 크고 작은 모든 것, 개개의 생명 속에 포함되어 있는 죽음, 이 모든 일을 크네히트는 최초의 예감이 가져오는 전율 속에서 하나의 전체로서 보고느꼈으며, 자신 또한 그 안에서 철두철미하게 분류되고 법칙의 지배를 받으며 정신에 친숙한 존재로서 편입되고 포함돼 있다고 느꼈다. - P360

달과 그대와 투루와 아다 사이에는 빛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죽음과 영계(靈界)가 있으며 그곳으로부터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세계의 온갖 형상과 현상에 상응하는 것이 네 가슴속에 있다는 것을, 이 모두가 너와 관계가 있다는 것, - P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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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2-11-02 19:1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대학때 읽다 던져버린 책인데 지금 읽으면 끝까지 읽어낼 수 있을 것도 같고 ㅎㅎ
유리알 유희라는 제목 자체가 흥미로워요^^

Falstaff 2022-11-02 19:14   좋아요 4 | URL
이 책, 정말 끝내주는데.... 마지막 결론이 넘 허무해 말입니다.
역시 헤세는 10대 후반에 읽어야 제맛입니다. ^^

alummii 2022-11-02 20:31   좋아요 4 | URL
저도 몇번 던지다가 겨우 건져올렸어요 ㅎㅎ ㅎ😆 골드문트님 말씀대로 10대 후반이면 좀 더 잼나게 읽었을거 같은데 10대곱하기3하니 자꾸 딴생각이 들어와 힘들었네요 ㅎㅎㅎ

scott 2022-11-02 22:09   좋아요 2 | URL
고딩때 읽었는데 역쉬 골드문트님 말씀처럼 헤세옹 책은 십대 후반에 🤗

새파랑 2022-11-02 22:0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alummii님도 최근에 헤세 읽으셨군요 ㅋ 반갑습니다~!! 저 이 책 너무 읽고싶었는데 별이 다섯이군요 ^^ 어려워보이지만 재미있을거 같습니다~!!

alummii 2022-11-02 22:53   좋아요 2 | URL
재미는 없었어요 ㅎㅎㅎㅎㅎ 😆 전자책대여마감 날짜가 다가와 오기와 끈기로 해냈슙니다 ~~짝짝짝^^

coolcat329 2022-11-03 18: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
이 책은 교육계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도 서문만 잘 넘기면 괜찮지 않나요? 근데 한 여름엔 피해주세요. ㅋ

alummii 2022-11-03 19:15   좋아요 2 | URL
ㅋㅋ 한 겨울에 읽는거로 추천합니다 😎

2022-11-03 18: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1-03 19: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pedagogy 2022-11-04 16: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엇 저도 대학생때 읽은 명작이에요♡♡ 헤세 팬이라..

alummii 2022-11-04 16:25   좋아요 1 | URL
저도 헤세 팬이어요 반갑습니다 ^^♡

pedagogy 2022-11-04 16: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https://pedagogics.tistory.com/m/32

pedagogy 2022-11-04 16: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부족한 리뷰지만 공유해봅니다 !

alummii 2022-11-04 16:57   좋아요 1 | URL
너무너무 잘읽었어요 ^^ 정반합 및 예수에 대한 이해가 제 견해와 같아 제 속이 후련합니다 ^^ 누구나 요제프처럼 정신수양을 통해, 속세와 정신의 대비를 줄이는 대안으로서의 살아있는 참조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레이스 2022-11-06 08: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고 나서 한참 후에야, 이 유리알 유희라는 것이 수도사들의 영성수련을 위한 명상법이라는 사실을 이해했습니다.
헤세를 너무 일찍 읽었다는 생각!^^;;

alummii 2022-11-04 16:34   좋아요 2 | URL
헤세는 으른되서 읽으면 또다른 깨달음이 있는 것 같아요 환갑지나서 한번 더 보는걸로 !! ㅎㅎㅎ 😆
 
다정한 서술자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최성은 옮김 / 민음사 / 2022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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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올가 토카르추크 작품들을 관통하는 수수께끼 같은 은유들에 , 그녀만의 세계관이 들어 있는 것 같아 끌렸었고, 빅팬이다. 이 책을 통해 그동안 이해안갔던 은유들에 대한 궁금증이 많이 풀렸고 , 그녀가 풀어놓은 독서이력이 내 취향과 상당수 겹쳐져 내가 그토록 끌렸던 의문이 풀렸다. ㅎ
<메탁시의 영토들>이 그녀가 은유로 풀어내던 경계와 비경계의 교차점이자, 다정한 서술자이자, 사인칭 서술자인 파놉티콘 관찰자이기도 하다.
그녀가 만든 신조어 ‘오그노즈야‘ 가 바로 초인지적인 상태로 인간심리를 다층적, 복합적으로 이해하고,한발 뒤로 물러서 총체적으로 관찰하고 묘사하려는 태도이자, 이 글의 핵심어인 것 같다.
다정한 사인칭 서술자인 그녀의 영감의 원천이 오그노즈야적인 존재이고, 저절로 써지는 글들 사이에서 그녀는, 서술자의 시각으로 자아를 바라보게 되는 희열을 맛본다.

밑줄그을것이 너무 많았지만, 그중 가장 인상깊었던 고찰은 <방랑자들>에서도 나왔던 ‘카이로스‘와 ‘낯설게 바라보기‘, 그녀가 글을 쓸때 영감을 받는 목소리자 사인칭 서술자인 ‘옌타‘에 대한 언급이다.

˝나는 옌타를 사인칭 서술자, 총체적인 이야기꾼이라고 불렀고,
그러다 마침내 그녀의 시야에 포착된 나자신을 발견한 순간 전율을 맛보았습니다˝

<야쿠프의 서>도 번역되어 나왔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이 있다.

저자의 탈중심주의는 세상을 카이로스적인 순간의 선택으로 바꾸고자 하는 우리의 의지에의 강요다. 예를 들면 동물보호, 육식금지, 신상품구매중독에서 벗어남 등등 공동체적 습관으로부터의 탈피다. 아래 카이로스에 대한 정리이다.


1. <플라마리옹의 목각화>는 카이로스적인 순간을 보여주고 있다.
카이로스는 올림포스의 신 중 하나이다. 후두부가 대머리이며, 카이로스가 다가올 때 우리가 움켜쥘 수 있는 건 그의 앞머리뿐이다. 따라서 그가 우리를 지나치고 나면 머리채를 붙잡을 방법이 없다. 그는 기회의 신이며, 스쳐 가는 순간의 신이며, 딱 한순간만 틈을 보이기에 놓치지 않으려면 망설임 없이 바로 낚아채야 하는 (그것도 앞머리를!) 놀라운 가능성의 신이다

 카이로스가 다가온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메타노이아(metanoia), 즉 기나긴 과정이 아니라순간의 결정이 만들어 내는 중대한 전환점을 놓치게 된다. 그리스의 전통에 따르면 시간을 정의하는 건 ‘크로노스‘로 알려진 거대한 단선적 흐름이 아니라 카이로스다. 그것은 특별한 시간, 모든 것을 바꾸는 결정적인 순간을 의미한다. 카이로스는 운명이나 숙명, 혹은 외부 상황이 아니라 인간이 직접 내리는 결정과밀접한 연관이 있다. 머리카락 한줌으로 카이로스를 붙드는 상징적인 동작은 운명의 궤도를 거꾸로 돌릴 수 있는 변화의 순간이 있다는 걸 의미한다. p 36

저자는 카이로스를 괴상함의 신으로 표현하는 데 이는 탈중심주의, 익숙한 사고방식이나 뻔한 행동 반경을 벗어나려는 경향, 고질적인의식이나 사고방식, 안정적인 세계관에 부합하는 공동체적 관습으로부터의 탈피를 의미한다.
 창의적이고 기발하며, 이 세상을 새로운 방향으로 움직이는 모든 것은 괴상해야만 하고 탈중심적이어야 한다.괴상함은 자발적이면서 동시에 정상적이고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는 것들에 맞서 논쟁을 즐기는 자세를 의미한다. 그것은 순웅적 태도와 위선에 대한 과감한 도전이자 순간을 포착하여 운명의 궤적을 바꾸는 용기 있는 태도다. p 37

우리가 낙원에서 추방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성행위나 신에 대한 불복종 때문도 아니고 신의 비밀을 알아냈기 때문도 아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세상과 분리된 유일하고 단일한 존재로인식한 것이 바로 우리의 원죄인 것이다.  - P26

복합성에 기반한 이 새로운 관점은 세상을 계층에 따라 정렬된 통합체로 보지 않고, 그 안에 내포된 다중성과 다양성, 그리고느슨한 유기적 네트워크 구조에 주목한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것은 이러한 관점 덕분에 우리가 처음으로 자신을 복합적이면서각양각색인 유기체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 P28

나는 이러한 상황 인식에서 파생된 심리학적 결과가 상당히놀라울 것이라고 예상한다. 아마도 우리는 인간 심리를 다양한 구조와 층위의 복합체로 바라보는 관점으로 돌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즉 개별적인 인성을 ‘묶음‘이나 ‘다발‘로 바라보기 시작할 것‘이며, 다중적인 정체성(다중 인격)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고 지극히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간주하게 될 것이다. 사회 영역에서는 네트워크 단위의 탈중심적인 구조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질 수도 있으며, ‘민족주의‘의 배타적 사상에 기반한 위계적 국가의 개념은 완전히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판명되리라.  - P29

 . 카이로스가 다가온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메타노이아(metanoia), 즉 기나긴 과정이 아니라순간의 결정이 만들어 내는 중대한 전환점을 놓치게 된다. 그리스의 전통에 따르면 시간을 정의하는 건 ‘크로노스‘로 알려진 거대한 단선적 흐름이 아니라 카이로스다. 그것은 특별한 시간, 모든 것을 바꾸는 결정적인 순간을 의미한다. 카이로스는 운명이나 숙명, 혹은 외부 상황이 아니라 인간이 직접 내리는 결정과밀접한 연관이 있다. 머리카락 한줌으로 카이로스를 붙드는 상징적인 동작은 운명의 궤도를 거꾸로 돌릴 수 있는 변화의 순간이 있다는 걸 의미한다. - P36

 나는 우리가 새로운 이야기, 새로운 개념, 새로운 단어들을 만들 권리를 스스로에게 부여하기 바란다. 동시에 나는이 세상, 그러니까 이 거대하고 유동적이며 깜빡이는 불빛처럼 불안정한 우주에서 사실상 새로운 것은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 P40

오그노즈야(폴란드어 ognozja, 영어 ognosia, 프랑스어 ognosie)는내러티브 지향적인 초현실적 인지 과정으로 대상과 상태, 현상을 반영하며, 그것들을 보다 고차원적인 상호 의존적 의미로 배열하려는 시도. (참조)→ 충만함, 전체성. (구어] 내러티브 자체는물론이고 그 일부나 세부 항목에서도 질서를 발견하여 종합적인방식으로 문제에 접근하는 능력을 말한다.

인식에 이르는 지각 및 인지 과정의 장애를 뜻하는 의학 용어 agnosia(실어증)의 반대개념으로 토카르추크가 만든 신조어다. - P41

우리는 어쩌면 하나의 공간에 존재하면서도 실제로는 각자의 환영 속에서 살아가는 게 아닐까?

 생각하는 능력은 우주의 본질도, 신의본질도 아니다. 오히려 이성이란 그저 인간 사고의 본질이라 보기에도 애매하며, 좀 더 냉정하게 말하면 인간 사고의 여러 경향중 하나에 불과하다.
- P68

 타인을 자기 자신처럼 바라보는 것, 우리를 타인과 구분하는 명백한 경계를 신뢰하지 않는 것은 착각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당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그것이 무엇이든 내게도 일어나고 있다. 그러므로 ‘타인의 고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환영에 불과한 가상의 경계선은 나와 다른 사람들, 나아가 인간과 동물을 갈라 놓을 뿐이다. 이것이 코스텔로가 불교를 통해 ‘공감‘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 P76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어 주는 것은 우리의 DNA가 아니라 정의로운 행동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행동해야 한다. 마치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처럼, 규범과 질서가 세워져 있는 것처럼, 우리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고 우리를 구원해 주는 선이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 P76

나는 이처럼 경이로운 순수의 상태를 모두가 경험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실에 대한 우리의 고유한 경험을 억누르고, 세상이 고르고 일정하다고 믿게 하며, 불변의 반복적인 법칙으로부터 지배를 받고 있다는 착각을 빚어내고, 그래서 그러한 세상을 신뢰할 수 있다는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모든 연결망과 조합,
인위적인 연관성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상태를 우리 모두가 반드시 경험해 봐야 한다. 동시에 이러한 상태는 우리 것이 아닌, 다른 규칙에 기반한 세계도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으며, 그러한 세계가 우리 세계보다 더 좋지도 더 나쁘지도 않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명확히 알려 준다. 나아가 우리가 만든 질서 또한 세상의수많은 질서 중 하나이며, 우리가 느끼는 편안함은 실은 익숙함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닫게 해 준다. - P90

문학은 집단의 언어가 한때 지금과는 다르게 기능했고 과거의 세계관이 현재와는 확연히 달랐음을 우리에게 일깨워 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책을 읽어야 한다. 지금과는 다른 세계관을 인지하기 위해서,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가 실은 여러 가능한 모습 중 하나이며, 이 또한 우리에게 영구히 주어진 게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 - P105

늘명확하고선명하게만여겨지던 대상들을 마치 램프처럼 다른 각도에서 새롭게 조명해야 한다. 그래서 그 빛 속에서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이 갑자기모호해지고, 익숙한 것들이 낯설어지고, 안심하던 것들이 의심의 대상으로 탈바꿈해야 한다.잠시나마 우리가 우리 자신이 되는 것을 멈추고 타인이 되어보는 데 독서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은 없을 것이다.  - P116

해석의 행위는 세계를 구성하는 다양한 층위를 연이어 발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허공에 떠 있는 마야의 장막과 환상에 의해 세상이 창조된다는 불교의 가르침은 옳다. 물론 해석들은 상호 배제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뭐 대수랴. 배제란 결국 보완을 요구하는 법이니! 사실과 사실 사이를 연결하는 선은 직관적으로 그어지며, 동시성과 연관성이 작동하기 시작하는 순간거기서 갑작스럽고도 명백한 깨달음이 생겨난다. 
해석은 인식의또 다른 형태가 아니라 그저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일 뿐이다. 의미는 무수히 많고, 텍스트는 끝이 없다. 마치 예시바의 학생들이소금 그릇에 손가락을 담그며 탐독하는 토라처럼 말이다.
글자의무수히 많은 배열과 조합이 얼마든지 가능한 만큼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버전의 텍스트가 존재한다. 각각의 버전에는 신의 이름이 붙어있으니 그 이름을 일일이 헤아려 모두 부르는 자가 세상의 역사를 끝내고 시간을 마감하리라.
그렇다, 우리가 지금 여기에 있는 건 책을 읽기 위해서다. - P132

우리가 창작의 과정,즉 카를 융이 ‘동시성‘이라고 독창적으로 명명한, 서로 인과 관계가없는 사건들이 시간과 공간 속에서 공존하는 그 과정을 우리가 주의 깊게 성찰할 때 우리 눈앞에 무엇이 선명하게 보이는지를 깨닫게 해 줍니다.  - P181

그러므로 초반의 스토리텔링은 권능의 행위이며, 말씀이 육신이 되는 성서 속 창조 사역의 반복이며, 상상의 끝자락에 이를때까지 창조하고, 지어내고, 꾸며내는 ‘나‘에 대한 긍정의 확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나‘는 실제로 누구이며, . - P194

 그 고요함 속에서심장은 부드럽게 뛰고, 피는 속살거리며, 심지어 그들이 꾸는 꿈조차현실이 아니다. 난 그것들이 뛰고 있는 이미지의 조각들임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꿈꾸는 몸들 중 어느 것도 나와 더 가까워지지 않고,더 멀어지지도 않는다. 
그저 나는 그들을 바라볼 뿐이며 그들의 뒤엉킨 꿈의 생각 속에서나자신을 본다. 그리고 나는 그 어떤 모습도, 그어떤 가치도, 그 어떤 감정도 없는 순수한 시선이라는 이상한 사실을발견한다. 그리고 이제 나는 또 다른 것을 발견한다. 나는 시간을 통해서도 볼 수 있다. 나는 공간 속에서 시점을 바꿀 수 있는 것처럼 시간 속에서도 그것을 바꿀 수 있다. 그것은 마치 컴퓨터 화면의 커서처럼 스스로 움직이거나 또는 그저 그것 자신을 움직이고 있는 손의 존재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나는 이렇게 꿈을 꾼다. 이것은 나로서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긴시간이다. 나는 앞에도 없고 뒤에도 없으며, 새로운 것도 기대하지 못한다. 나는 얻을 것도 잃을 것도 없기 때문이다. 밤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시간조차 내가 보고 있는 것을바꿔 놓지 않는다. 나는 보고 있고, 새로운 것을 인식하지도 내가 한번 본 것을 잊지도 않는다. - P205

나는 옌타를 사인칭 서술자, 총체적인 이야기꾼이라고 불렀고,
그러다 마침내 그녀의 시야에 포착된 나자신을 발견한 순간 전율을 맛보았습니다……. 가여운 옌타는 지금 모니터 위에 대문자로 표시되고 있는 옌타, 옌타, 옌타리는 글자를 포함하여 텍스트에빈번하게 등장하는 자신의 이름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래서 곧장 흥미를 잃고 다시 위쪽 어딘가로 사라져 버린다. - P227

.. 출생을 일종의 추방으로 간주하기 때문입니다. 안개저편에 펼쳐진 낙원, 순수한 균형과 안정의 공간, 아직 서로 차별화되지 않았기에 모두가 순결한 존재였던 이상향을 우리가 여전히 기억하고 있음을 인류의 오래된 신화들이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아직 자신의 고유성을 발견하지 못했던 시절,그러니까 우리가 세상에 온전히 속해 있지 않다는 사실을 매 순간 상기시켜 주는 ‘나‘라는 존재의 고통스러운 경계를 깨닫기 이전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전통이나 집단적 기억, 나아가 뿌리로부터 떨어져나올 때 우리가 느끼는 고통은 낯선 소외의 경험을 극복하기 위한 일종의 응축된 파생적 자기방어 메커니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야쿠프의 서』는 근본적이면서 형이상학적인 이러한 느낌을형상화하는 데 온전히 헌신한 작품입니다. - P236

야쿠프의 서』에서도 이와 유사한 기묘한 서사가 등장하는데, 그것은 옌타의 존재와 관련이 있습니다. 존재와 비존재 사이에 머물며 서서히 결정체로 변해 가는 유일하게 비이성적인 인물 옌타는 소설에서의 실체적 프레임, 즉 아리스토텔레스식으로말하면 개연성을 초월하는 자신만의 특권을 가진 인물입니다.
기이한 옌타의 존재는 작품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납니다. 옌타는서술된 이야기 전체를 우주적이고 보편적인 사건으로 만들고 시간과 공간의 질서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옌타로 인해 독자는 특별한 파놉티콘의 관점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역설적으로 소설의 리얼리즘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 줍니다. 왜냐하면 보다 심오한 차원에서 고찰해 보면 세상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결코 사실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수수께끼로 가득 차 있고 종종 측량할 수 없는 미지의 대상으로 여기며직관적으로 해석합니다. 심지어 우리가 문학을 통해 세계를 일대일로 설명하려고 시도할 때조차 말입니다.
- P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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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10-25 00: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알럽미미님 저도 빅팬🖐^^

alummii 2022-10-25 08:23   좋아요 1 | URL
^^ 😀

새파랑 2022-10-25 07: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의 광팬이시군요. 요건 에세이네요 ㅋ 저 아직 한권도 안읽어봤는데 😅

alummii 2022-10-25 08:25   좋아요 2 | URL
새파랑님도 읽게되면 좋아하실거 같아요 ^^ 😀

그레이스 2022-10-25 17: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책도 읽고 싶고...ㅠ
^^;;

alummii 2022-10-25 20:19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님도 좋아하실것 같아요 추천드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