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가 달린다
마크 롤랜즈 지음, 강수희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내가 하는 모든 활동이 다른 활동을 위한 수단일 뿐이라면, 그것은 슐리크에 따르면 일종의 일이다. 이것은 일반적인 의미의 일보다는 더 넓은 뜻으로 보통 일이라고 하지 않는 것까지 포함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말하는 일은 이 넓은 의미의 일의 전형적인 예일 뿐이다. 나는 돈을 벌기 위해 일한다. 월급은 외부적인 목적, 바로 '무언가를 위해'의 '무언가'에 해당하며, 내가 일을 하는 이유이다. 이와 유사하게 내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혹은 오래 살기 위해서만 달린다면 나의 달리기는 그 활동의 목적과 가치를 부여하는 내부적인 어떤 것이 이유가 되므로 일이 된다. 만약 내가 니나와 테스가 원하거나 좋아해서 달린다면 내가 아닌 다른 대상에게 이로움을 주는 것이기는 하지만 것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그것도 일이다.

 

 

도구적으로 가치 있는 활동은 일이다. 반면, 본질적으로 가치는 활동은 슐리크가 결론 내렸듯이 일종의 놀이이다. 일의 가치는 항상 일이 아닌 다른 것에 있다. 일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지는 않다. 도구적 가치라는 표현은 이런 면에서 불행하고 오해의 소지가 있다. 즉, 이 표현은 일에도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암시하지만 어디까지나 도구적 가치라는 것에 국한된다. 사실, 무엇인가에 도구적 가치가 있다는 말은 그 가치가 항상 외부에 있다는 말이다. 즉, 진정한 가치가 있는 곳은 외부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무언가가 순전히 도구적 가치만 있다는 말은 가치가 아예 없다는 이야기이다.

 

 

놀이는 전혀 다르다. 놀이는 본질적 가치가 있다. 놀이는 그 자체를 위해 하는 행위이므로 정의에 따라 그 자체의 가치가 있다. 놀이는 가치가 있지만 일은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분명 놀이는 일보다 더 가치 있어야 한다. 슐리크가 말하듯, '산업화 시대의 위대한 가스펠은 우상숭배로 드러났다. 우리 존재는 다른 이들의 명령에 따라 목표를 좇는 일로 가득하기에 그 자체의 가치는 없지만, 놀이라는 축제의 시간을 가질 때 비로소 그 가치를 되찾는다. 일은 그저 놀이를 위한 수단이자 전제 조건일 뿐이다.' 일로 가득한 삶은 놀이로만 구원된다. 놀이를 할 때, 우리는 가치를 좇지 않는다. 왜냐하면 놀이의 가치는  외부가 아닌 내부에 있고 우리는 그 속에 몰입하기 때문이다."

 

 

- 마크 롤랜즈, <철학자가 달린다>, 131~132쪽

 

 

나는 바로 위의 부분이 이 책의 결론이라고 할 수 있고, 저자 마크 롤랜즈의 훌륭한 통찰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어디서 본 것 같은 주장 이기는 하지만.....

 

롤랜즈는 자기가 달리는 목적은 어떤 도구적인 목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달리기 그 자체에 있다고 주장한다. 어떤 목적이 있는 활동은 곧 그것이 일이며, 가치가 없는 것이 된다는 통찰이다. 결국, 가치가 있는 것은 활동 그 자체에 목적을 두고 있는 것이며, 그것은 '놀이' 라는 활동이다.

 

 

여기서 롤랜즈가 주장하는 핵심은 '놀이'라는 개념에 있다기보다는 어떤 활동의 목적이 그 자체 있다는 것에 방점이 찍혀 있다고 볼 수 있다.

 

 

롤랜즈에 주장에 따르면 나에게 축구가 건강을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일이며 가치가 없게 된다. 축구가 나에게 가치가 있는 것이 되려면 축구를 건강을 위한 도구적인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축구를 그 자체로서 즐겨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요즘 내가 축구를 대하는 자세와 같다.^^

 

 

결국, 삶 자체에 목적을 두고 즐기는 삶이야말로 가치가 있다는 것인데, 우리가 되뇌는 인생의 의미라는 거창한 말은 결국 롤랜즈에 의하면 별 의미 없는 말이 된다. 인생은 인생 그 자체에 의미가 있고, 놀이처럼 즐기되 분별 있게 접근하는 데에만 가치가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놀이로서 즐긴다는 것의 본질은 우리가 쉽게 상상하는 것처럼 방탕(?)스런 것이나 소비적인 것이 아니라 몰입에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롤랜즈에 따르면 "삶의 의미는 바로 삶의 중요성을 묻는 것이므로, 의미론적 내용을 묻는 것이 아니라 중요성 차원이 질문인 것"인데, 삶의 의미 또는 삶의 중요성은 물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삶 자체가 의미가 있으니까.

 

 

인생의 의미를 묻지 마라. 헛수고일 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보안사 - 어느 조작 간첩의 보안사 근무기
김병진 지음 / 이매진 / 201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유지길씨의 몸은 등이 아래로 처진 채 젖은 손수건으로 코부터 눈 사이를 덮었다. 숨 쉴 구멍은 입밖에 남지 않았다.
"불어라, 불어."
"항복해"
수사관들의 욕설이 한층 더 높아졌다.
추재엽이 주전자를 들었다. 생명을 잇는 마지막 구멍에 새빨간 물이 부어졌다. 이 광경을 더 쓸 수가 없다. 오랫동안 지옥의 그림을 봤다."
- <보안사> p.294

▶ 위 고문장면은 '바비큐'라고 불리는 고문 장면이다. 양팔과 다리를 묶고 팔과 다리 사이에 각각 각목을 넣어 두 개의 책상 사이에 걸쳐 놓고 무방비 상태에 있는 사람 입과 코에 고추가루 물을 넣는 고문이다. 지난 연말에 개봉됐던 영화 <남영동 1985>에서 고김근태 의원이 고문 기술자 이근안에게 고문 받던 장면이 오버랩된다.

이 책의 저자 김병진씨의 도움으로 저 지옥의 현장에서 살아나 다시 일본으로 돌아갔고, 이후 김병진씨가 일본으로 탈출해 보안사의 만행을 글로 알리는 일에 큰 도움을 주었던 재일 동포 유지길씨. 그의 불굴의 정신력에 고개가 저절로 숙여진다.

정통성없는 군사정권의 정권유지 목적과 그 뜻을 받들어 보안사 수사관 개인의 영달을 위해 자행된 간첩 만들기 작업에 희생되어간 수많은 재일 한국인들의 억울함과 원통함이 아직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고, 고문당사자인 수사관들과 정권유지에 혈안이었던 사람들은 지금도 호의호식하며 이땅에서 아무일 없이 잘 살아가고 있다.

김병진씨는 이책의 말미에서

"보안사를 조국의 땅에서 매장해버리겠다. 그렇게하지 않으면 이 민족의 미래는 없다." 라고 말하고, "이 대지 위에 갇혀 있는 양심들이 계속 살아 있는 한 나는 결코 침묵하지 않겠다." 라는 다짐으로 글을 마무리하고 있다.

이 땅에서 매장해야 할 것이 어찌 보안사 뿐이겠는가. 매장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서
나라 전체를 매장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조국의 미래는 없어도 아무 문제 없겠다만.

또한 하루가 멀다하고 일어나는 힘 있는 자들의 비리와 불법에 침묵하고 무관심으로 대응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있는 한 조국의 미래는 암울해 보인다. 결코 침묵하지 않겠다는 김병진씨의 외침이 외로운 한 마디로 남겨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짧고 미숙한 글이나마 그 한마디에 보태고 싶다.

김병진씨의 외침이 수많은 사람들의 큰 목소리로 되돌아 오길 바라며 하루를 시작한다.

<2013 2 20 이른 아침에>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dyadic1 2013-02-20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국가기관이 있었나?
그 범죄 행위를 반성했던 기관이 있었나?
지금도 범죄 행위가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나?
그들은 아직도 그런 행위가 조국을 위하는 것이라 믿고 있나?
조국이라 쓰고 개인의 영달이라고 읽는 것은 아닌가?
 
그들은 어떻게 주사파가 되었는가 - 한 NL 운동가의 회고와 성찰
이명준 지음 / 바오 / 2012년 6월
평점 :
품절


예전의 학생운동과 작금의 통합진보당 사태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책. 왜 그들이 민주적인 절차를 무시하는 집단주의에 매몰되어 갔었는지, 자기합리화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는지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과 세계 살림지식총서 85
강유원 지음 / 살림 / 200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녹음파일과 인문학의 세계"로 빠져들게 하는 책.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이 문에 들어서는 자 편하게 공부하려는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판단력 비판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51
임마누엘 칸트 지음, 김상현 옮김 / 책세상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내 판단력에 의심을 가지게 하는 책 ^^ 덩치는 작지만 어렵다.ㅠ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