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행 야간열차 (윈터 리미티드 에디션) 세계문학의 천재들 1
파스칼 메르시어 지음, 전은경 옮김 / 들녘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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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리스본행 야간열차>라고 씌어진 책의 두꺼운 존재감이 나에게 ˝너의 시간을 뺏어보도록 하지.˝라고 얘기 했다.
그리고 실제로 읽는데는 약 3일 걸렸다.
(몰입하는데 1달 넘게 걸렸다.)

이 작품은 누구의 스토리를 메인으로 두어야하는지 고민하게 된다.
고지식한 생활을 하던 고전문학 교사 그레고리우스의 모험이야기?
아니면 교사의 모험의 원인이자 탐구의 대상인 리스본 의사 아마데우의 고뇌이야기?
그레고리우스가 아마데우를 통해 찾고자하는 잃어버린 무언가의 이야기?
아마데우가 고민했던 ˝우리가 인식하는 자아˝에 대한 문제?

어찌 됐든 독자들은 읽다보면 문장에서 길을 잃고, 보다보면 눈이 침침해 지고, 책장을 넘기다 보면 무언가를 찾아헤매는게 그레고리우스인지 본인 자신인지 분간 할 수 없어지는 경험을 하게되리라 예상해 본다. (는 나의 이야기이다.)

작품속에는 꽤나 많은 인물들이 출현 하는데 그 인물들이 그레고리우스와 연관되는 사람도 있고 아마데우와 연관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과거와 현재를 넘나든다. 그럼에도 작가는 이야기를 굉장히 질서 정연하게 풀어 간다.

심지어 중반부터 굉장히 몰입하게 되었는데 페이지마다의 풍경과 이미지들이 머리속에 그려질 정도였다. (작가가 대단한 양반이었다.) 다 읽고 나서 책을 덮으면 책 속에 나타났던 인물들이 실제 존재하는 인물인것처럼 다가올 지경이다. (캐릭터 하나하나마다의 성격, 현재의 모습으로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과정의 합리성. 뭐 하나 부족한게 없다.) 그 인물들을 책을 덮음으로 함께 현실에서 덮어버린다는 착각과 아쉬움마저 생긴다. 이 교만한 책을 앞에두고 인정하기엔 좀 얄미운 감정이 들지만 그럼에도 정교하고 섬세하며 잘 쓰여진 책이라고 얘기할수밖에 없겠다.

-독후느낌쓰 끝-

추신: 궁금해서 영화도 봤지만 추천할만한것이 못된다고 판단한다. 그래도 보고싶으신분들은...디테일과 섬세함은 기대하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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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생활자의 수기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22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이동현 옮김 / 문예출판사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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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는 읽다가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럼에도 주인공의 사회에 대한 울분, 분노, 부정과 자신을 열렬히 수호하는 이기주의를 잘 전달해줬다. 솔직히 중간중간 머리를 크게 끄덕거리게 만드는 주장도 많았다. 오오. 나도 웬만큼 삐뚤어먹은 놈이구나.하고 새삼 깨달았다. 모든것을 다 통달했노라 하면서도 정작 불똥이 튀면 울분을 참지못하고 폭발해버리는. 약간의 정신질환같이 발작하는 모습. 소름돋을 정도로 닮아있었다.

2부는 그런 사람의 사회생활을 서술했다. 불안, 초조, 고뇌, 감정 주체 불가. 파생된 감정을 분출하기 전까지 이어서 주렁주렁 메고 가는것. 그리고 언제든지 복수해줄 자세가 되어있는 모습. 그런데 사실상 자아파괴적인 행위라는것. 그리고 본인은 그것조차 알고 있으면서 하고싶은 대로 하며 스스로를 아끼고 미워하고 증오하고 사랑하는것...뭐 그런것 같다.

이런 사람(경험적인 얘기?)들은 보통 자신의 의견이나 주장을 내세우기 보다는 타인의 주장을 비판하는 일을 더 잘한다. 그렇게 비판을 진행하고 누군가가 반박하기도 전에 스스로 부정을 해버린다. 말하자면 ˝그렇긴한데 나도 그게 잘못된건 알아. 아니까 굳이 얘기하지마. 아~ 나도 안다니까?˝ 이런 식이다. 왜냐하면 자존심이 너무 높아서(아니면 낮아서) 타인에게 반박할 기회 조차 주지 않는것이다. 예컨대 ˝나라는 인간은 스스로 장점도 단점도 다 깨닫고 있지.˝ 라는 또 다른 잘난척인 것이다. 그래서 항상 우월감을 갖고 사는데 말하자면 그것은 본인이 진짜 (무결점)해서가 아니라, 못나고 찌질하지만 본인은 그것을 잘 알고 인정하기 때문에 우월하다는 것이다. 하여 타인에 대한 비방은 항상 ˝너도 똑같애, 너도 사실은 못났는데 왜 인정을 하지 못해? 나는 적어도 인정하고 받아들이거든?˝인 것이다.

주저리주저리 ˝이사람 저사람˝ 얘기해봤자. 사실은 공감을 받고 쓴것이라, 결국 내 얘기다.
옙스키행님...왜 제얘길 쓰셨습니까...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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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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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편, 채식주의자는 불쾌감이 남았다.
갑작스런 채식선언, 육류에 대한 민감한 배척.
이해의 결여, 대화의 결여, 감정의 고조.
갑갑하고 숨막히는 ˝나만의 입장 내세우기˝라는 상황이 불쾌했다.
현실의 생활과 닮아서 그랬는지.
지극한 현실적 감정이 읽는 내내 피어올라서 그랬는지.

3편의 단편들이 연결된다는것을 두번째 편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첫편의 불쾌감만 남은채 두번째 편을 보지 않았더라면 큰 실수를 할뻔했다.

두번째편, 몽고반점.
첫편의 영혜네 언니의 남편되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첫편에 잠깐 등장한 ˝별볼일 없는 예술하는 사람˝으로 서술이 됐었다.(영혜네 남편되는 사람의 눈에 비친 모습). 두번째편은 뭐랄까. 사람들이 속히 말하는 ˝예술과 광기는 한끗차이˝라는 식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또한 나의 인식속에 예술이란 무릇 ˝자본과 권력˝과 멀리 떨어진 것으로서 ˝일상에 묶인˝사람들의 눈에는 ˝돈도 힘도 없는˝ 약자일것이라 생각된다. 즉 영혜처럼 그 예술하는 나부랭이도 어느정도 ˝생활˝이라는것에 치여 시름시름 앓고있는 ˝약자˝라는 생각이 들었던것이다. 2편에서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며 보듬어주기를 바랬다. 하지만 그럴리가 있나. 한쪽은 이미 현실을 버린입장이고 한쪽은 자신보다 예술을 더 사랑하는 입장이고. 둘의 만남은 현실을 더욱더 멀리 밀쳐낼뿐이지 않은가? 그리고 위기의 상황에서 순종보다는 더 격렬한 본성(이라 생각되는)으로의 귀환을 시도하지. 영혜는 채식주의자에서 식물로 되려하고 예술가는 자유롭게 날아오르는 새가 되려했다. 둘다 실패했지만 그래도 시도는 하지 않았는가.
나는 2편에 미친듯이 몰입되어버렸다. 1편이 기분나쁜 동굴의 입구라면 2편은 동굴속에 감춰진 카르스트지형 같다.

난 3편, 나무 불꽃
영혜의 언니의 이야기다. 1편과 2편에서 격정을 보여줬다면 3편에서는 어느정도 차분하게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고 할수있다. 영혜의 언니가 매우 가정적이고 받아들이는 성격이라 그렇게 느껴질수도 있겠다. 1편에서 이해가 안되던 영혜의 채식선언도 어렴풋이 이해가 갈것같고 영혜언니의 고통에도 집중할수 있었다.(3편을 읽기 전까지 영혜를 제일 불행한 사람으로 인식했다.)
3편의 마지막 문장을 읽으면서 나는 영혜의 언니는 끝까지 살아갈것임을 알았다. 적응해가면서...아니, 맞춰가면서. 스스로를 위한것이 아니라 아들을 위해서. 분하고 화가나도 여전히 살아갈것임을 알았다. 어쩔수 없이 살아있는 모두들 처럼.

번외: 2편에서 예술가가 찾아간 옛 애인은 대체 여자인지 남자인지 구분이 안간다. ˝그녀˝였다가 ˝그˝였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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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06-26 0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녀 였어요 . 그림그려달라고 부탁한 전애인 말씀이죠?
결혼해서 살고 있다고 하잖아요 . 남편은 사법고시패스한 초등학교 동창이라고 ..
?^^ 법조인. 남편이 경제적 내조를 잘 해줘서 화가로나름
잘 나가는 p ㅡ
 
곰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4
윌리엄 포크너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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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석하다..
평점에 0.5가 없다.
사실 3.5를 주고 싶은데 별점이 안 넘어간다.
(폰이라서 그런가?)

간만에 읽을 책을 고르고 골라 포크너라는 작가에 대한 기대를 한가득 품고 페이지를 넘겼지만,도통 몰입이 안된다.
읽으면서 힘들다 느꼈던 부분은

1)간혹 조사가 사라져 버린 번역이라던가
2)주어가 모호하게 흘려져 버리는 포크너의 작법이라던가
3)과거와 현재와 앞으로의 일들을 함께 서술하는 시공간 타파의 작법이라던가...

무튼 줄거리라는게 도통 어떻게 진행되는것이며 그래서 주인공은 어떻게 된것이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것이며 하는것들이 모호하다 못해 지글거리는 거리위에서 땡볕에 내리쮀이며 피어오르는 아지랑이가 아지랑이인지 내 눈두덩이에 맺히는 땀방울인지 알수없는 그런 찝찝하고 기분나쁜 감정들이 소용돌이 쳤다.
분명 내가 죽어 누워있을때 라는 책은 흥미진진하고 공감(?)하며 몰입해서 봤는데.왜 곰은 읽기가 이렇게나 힘든것인가?
독후감정이고 뭐고 단순 ˝읽는다˝라는 행위에 몰입하는것만으로 이미 진이 다 빠져버리고 남은거라곤 ˝곰은 중반부에 죽는데,결국 말하려는건 곰이 아니잖아.˝라는 생각 뿐이다.
결국 나중에 다시 읽어야 한다.
소설은 남북전쟁후를 배경으로 썼다는데,읽고나면 그게 소설이랑 무슨 관계가 있는지 의문이 든다.백인 흑인사이의 모순도 모호하고 전쟁의 냄새도 없고,다만 숲과 사냥과 곰과 개의 이야기만 남았다.그리고 주인공의 가족사(여기서부터 안그래도 없는 줄거리가 더 흐릿하게 사라져버린다),그리고 개간되는 숲...
그러니까 어떤 부분을 남북전쟁과 연결시켜야하는지...멘붕...
포크너의 소리와 분노도 쟁여놓고있는데 곰을 읽고 난뒤라 괜히 두려움이 앞선다.

-끝(feat:이해를 못해도 쓰기 힘들고 이해를 해도 쓰기 힘들고...걍 글을 쓰는게 힘들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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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5-09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에 반쪽자리 별점을 주는 기능이 없어요. ^^

corcovado 2016-05-10 01:17   좋아요 0 | URL
아...그렇군요.ㅠㅠ
 
나사의 회전 - 헨리 제임스 장편소설 열린책들 세계문학 192
헨리 제임스 지음, 이승은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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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의 회전-헨리 제임스

이 책의 제목은 나에게서 굉장한 흡인력을 이끌어 냈다.민음사를 사려다 번역이 어쩌구저쩌구 댓글을 보고 지레겁먹고 열린책들을 샀는데 나중에 보니 표지는 시공사가 제일 강렬했다.책 겉핥기는 이쯤하고 내용을 얘기해 보련다.

도입부가 굉장히 독특했다.
이야기를 듣고 이야기를 하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인공간에서 시작된다.무서운이야기를 하는 모임이다.(추측하건대)그중에 누군가가 ˝만약 아이가 이야기중에 나사를 조이는 역할을 한다면 아이 두명을 등장시키는 것은 어떠한가˝하는 (원문은 아니고...)얘기를 한다.그러면서 누군가가 자기에게 정말로 소름끼치는 이야기가 있으니 그 이야기를 해줄것인데 원고가 자신의 방 서랍에 있어 하인을 시켜 가져오게할것이라며 모인사람들의 구미를 당긴다.그리고 며칠을 떡밥만 던져주다가 원고를 받고 이야기를 시작하게 된다.
이 도입부가 없었더라면 [나사의 회전]이라는 이 모호하고 의미심장한 제목과 전혀 상관이 없었을수도 있었을것이다.아마 [아이들의 유령]같은 제목이 더 나을수도 있다는 얘기다.
무튼 이 도입부의 존재가 혹자에겐 단순 스토리의 전달인것인지 아니면 공포장르에서의 아이의 역할에 대한 작가의 생각의 전달인지하는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이런 기억에도 안남는 도입부가 단순 제목의 형성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것이라면 사실은 있어도 없어도 그만 아니겠는가.

그렇다고 스토리가 단순한가?
아니다.
혹자는 여전히 유령이란 실제로 나타났던것인지 확실하지 않다.가정교사의 히스테릭한 반응과 묘사를 듣고 그로스 부인(보모)이 옛날 하인과 전임 가정교사 같다는 얘기를 했음에도 그것이 진실인지 아니면 그로스부인이 부정함으로써 현가정교사의 정신이상을 똑바로 마주보는 용기가 없음에 억지로 인정한것인지 알수 없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단순하지 않은 행위에선 ˝혹시?...˝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플로라가 갑자기 사라졌다가 죽은 제셀양을 마주쳤던 호수가에서 발견되는 부분이거나...마일스가 밤에 방에서 나와 저택을 마주보고 서서 탑(?)위를 쳐다보던 모습이라거나(전에 가정교사는 탑위에 서있던 죽은 피터퀸트의 모습을 봤었다)..이러한 아이들의 명확하고 암시적인 행위가 ˝아,아이들도 봤구나.˝하는 생각을 80%까지 끌어올려줬다.

그렇다면 아이들이 본 유령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순수?악?나쁜것?현실?자유?
사실 혹자는 아직 이부분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다.굳이 느낌을 서술해보라고 한다면 기성세대(단순상징적의미)가 생각하는 ˝살아감에 있어서 애들을 나쁜물을 들게 만드는 것들˝과 비슷한 그런 무엇이 되겠다.뭐, 다들 그런적이 있지 않나?부모님이 어느날 그대한테˝그 아이와는 놀지말거라˝하는 그런 상황.대충 그런 느낌쓰가 비집고 들어왔다.그래서 여기서 가정교사는 부모(혹은 컨트롤광적인 인간),그로스부인은 융화적으로 살기에 노력하며 ˝모두 일리 있노라˝라고 하는 부모의 친구,아이들은 아이들,가정교사와 아이들이 볼수있는 유령은 ˝나쁜아이들˝이라고 적용해본다.화면이 훨씬 이해하기 쉬워진다.그래서 가정교사가 아이들을 쫓아다니며 ˝너 봤지?봤잖아?!˝라고 했을때 아이들은 그 집착과 옭아매이는 기분을 떨쳐내지못하고 더불어 괜히 휩싸여 오는 죄책감 비슷한 미안한 감정때문에 파멸되는것이다.

아이들의 자유와 의지를 속박하는것은 자신의 개인적인 신념을 강제로 주입하려는 준비단계라고 생각된다.그것이 형성되었을때 아이는 더이상 독립된 개체가 아니라 텅빈 껍데기가 된다.그리고 그뒤의 행위들은 단순 똑같은 것들을 찍어내는 노가다가 되고 만다.그것이 사회의 비극이라 생각된다.이야기의 끝에서 마일스의 영혼이 타락되고 가정교사가 잡고 있는것이 더이상 아이의 실체가 아니라는 구절이 나온다.(원문아님)이렇게 의지를 박탈 당한다.

Ps:도입부에 이야기꾼의 후기가 궁금한데,친절하지 않은 헨리 제임스씨는 ˝도입부는 잊으시오˝라는 듯이 짐짓 모른척 끝내버렸다...

떨떠름

그럼 나도 떨떠름하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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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4-14 2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날 고딕소설은 결말을 떨떠름하게 끝내는 게 많았어요. 아마도 더 이상 이야기 쓸 게 없어서 고민한 작가들은 이런 결말을 썼을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