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작 - 살인을 위한 살인
손선영 지음 / 손안의책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지금 당신은 살인을 꿈꿉니까? <합작 - 煞人을 위한 殺人> 서평


나의 어린 시절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었다. 그런 어린 시절을 지냈다, 가 아니라(난 여자라고. 그러니까. ㄱㅡ)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 관련된 일이 많았다는 뜻. 중학교 때였나, 영화로 먼저 봤고, 영화에서 엄석대 역할을 맡은 홍경인에게 감탄했었다. 어쩜 저리 연기를 잘 할까, 앞으로 어떻게 자랄까 궁금했었더랬지. 그러고는 고등학교에 들어갔고, 잠깐 동안 연극반 활동을 할 때 받았던 대본이 바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다. 돌아가며 대본을 읽으면서도 예전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의 감동은 여전했다. 마치 제 5공화국의 축소판과도 같았던 한 교실에서 공포정치로 모두를 사로잡은 엄석대와 그에 사로잡힌 반 친구들, 이들의 모습은 주변을, 세상을 보는 시각을 조금이나 바꿔주었는데.
합작도 그러했다.

손선영 님의 합작은 사회의 축소판이다. 공포정치를 펼치는 한 명의 총통과 그 아래서 떠는 국민들의 모습을, 한 명의 광인에게 사로잡힌 사람들의 모습으로 보여준다. 고문과 협박으로 이루어진 그들의 비뚤어진 관계는 마치 이 사회의 한 면을 보여주는 듯한데.
그렇기에 손선영 님의 합작은 한국형 사회파 미스터리라 부를 수 있겠는데, 그 구성 역시 마찬가지이다. 얼마 전 독후감을 올렸던, 사회파 미스터리와 본격 미스터리의 기묘한 조합이었던 시마다 소지 님의 ‘기발한 상상이 하늘을 움직인다’라든가 모리무라 세이이치 님의 ‘여자 마루타’처럼 이 이야기는 사회를 반영하고, 그 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반추하게 한다.

도대체 살인이란 뭘까. 어째서 사람은 살인을 하는 것일까. 이 주제는 선사시대 때부터 이어진 미스터리이리라. 이 책은 그 의문에 대해 어느 정도 해답을 제시한다. 그 해답에서 우리는 경악하고, 약간은 동정할 수 있다. 살인을 위한 살인이기에. 허나 살인에는 이유가 있어도 살인이다. 어떤 이를 죽이더라도 살인은 살인이며, 그 죄는 죄로써 용서받을 수 없다. 죄를 짓고, 그 죄인을 단벌하는 과정을 통해 사회가 존속되기 때문이다.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 법이란 결코 없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책은 그렇듯 살인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드는데. 난 이런 책이 좋다. 책을 읽으며 중간 중간 쉬었다 가고, 지금, 현재의 사회와 비교하는 것, 그것이야 말로 진정 즐거운 과정인데.

보통 이런 식의 이야기를 접하면 ‘지루하겠는데, 재미없겠어.’라고 생각하기 쉽상이다. 실제로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 문장이 무거워지고, 중간중간 하품이 나오게 마련이다. 또, 처음부터 읽기 싫다는 생각이 들어 아예 책장을 펼치지 않게 된다.
허나 이 책은 달랐다.
나는 책을 사거나, 누구에게 선물받거나 하면 일단 혼자 읽다가,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함 읽어 봐.”라고 슬그머니 잠시 맡겨 본다. 5분, 10분 쯤 맡기고는 읽는 속도라든가, 책장을 넘기는 모습을 관찰한다.
어떤 책들은 한 장도 안 넘기고 돌려받고는 “야, 이게 뭐야. 재미 없잖아!” 소리를 듣고, 어떤 책들은 “나 이것 좀 빌려고 돼?”라는 소리를 듣는다.
합작은 어떠했느냐.
말없이 다음 장을, 또 다음 장을 넘겼다.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좋은 징조다, 라고 생각했다. 허나 2장을 보여주었을 때 그러했기에, 뒤쪽은 조금 걱정이 되었는데, 왠 걸, 뒤쪽이 더 좋았다. (경과는 이쪽 확인. http://cameraian.blog.me/130106836350 )

뜻밖의 횡재였달까, 덕분에 당당히 올해 읽은 책들 중 베스트에 등극했다. 일주일 동안 꽤나 행복하게 지낼 수 있었고, 또 자신 있게 주변에 추천할 수 있는 책을 찾아 흡족했달까.

이번 봄에 지를 책들이 많으시리라. 장바구니에 담긴 책들도 많으실 것이고. 허나 아직 망설이고 있고, 정말 재미있는 책을 보고 싶으시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결코 후회하지 않을 소설
합작 - 살인을 위한 살인을.



꼬리.
난 이 책의 제목이 합작 - 살인을 위한 살인 보다는 ‘살인을 위한 살인’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합작’이라는 단어가 앞에 달린 이유는 알겠지만, 역시 뒤쪽이 임팩트가 강하달까.


이상 kgb 레몬 마시며 쓴 독후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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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작 - 살인을 위한 살인
손선영 지음 / 손안의책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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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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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살인게임 2.0 밀실살인게임 2
우타노 쇼고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어렸을 때의 나는 소설보다는 만화를 더 좋아했다. 만화는 소설보다 훨씬 읽기도, 이해하기도 쉬웠고, 그림 자체가 신기했다. 때문에 혼자서 이렇게 저렇게 만화를 그려보기도 했다. 왜, 누구나 다 해봤을 ‘드래곤볼’, ‘캔디’ 따라 그리기 말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끝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아 ‘내가 죽기 전에 다 볼 수 있을까?’ 걱정하게 만드는 만화는 역시나 ‘유리가면’, ‘파이브 스타 스토리즈’, ‘베르세르크’다. 한국 만화도 많이 봤다. ‘마이 러브’, ‘다이어트 고고’, ‘헝그리 베스트 파이브’ 등, 거의 가리지 않고 봤었던 듯하다.

밀실살인게임 2.0을 보는데 왜 이렇게 만화 이야기를 한참 이야기했느냐, 이유는 간단하다. 밀실살인게임 시리즈가 나에게 여러 일본만화들을, 시리즈를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특히 생각난 만화는 미궁시리즈.

처음 미궁시리즈를 우연히 발견했을 때에도 첫 편을 보고는 “어, 이거 남자애들끼리... ...” 이러고는 안 볼까 했었다. 하지만 그 때의 나는 돈이 없어서 책방에 돈을 박아 놓고 보았고(하루에 기본 세 권에서 다섯 권씩 읽었다. 도저히 사서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변명을 붙이자면, 그만큼 사기도 많이 샀다.), 읽지 않으면 괴로울 정도로 만화 중독이었기에, 단지 길다는 이유만으로 그냥 읽었다.

길다.

정말 중요했다. 당시의 내가 만화책을 고르는 기준은 단 하나, “얼마나 긴가”였다.

사람들이 들으면 웃을 만한 기준이지만, 난 진지했다. 만화책은 한 시간에 글자가 많으면 세 권, 적으면 다섯 권씩 읽어치웠다. 그 때문에 미궁시리즈는 어떤 의미로 고마웠다. 처음엔 그림의 구도나, 얼굴과 몸의 비례가 맞지 않고(얼굴이 커졌다 작아졌다, 배경의 위치가 바뀌고 ;;), 스토리 라인도 “뭐야, 이거 셜록 홈즈의 BL물이잖아?”라는 엄청난 혹평을 내렸다. 하지만 3편, 4편, 10편이 넘어가니 점점 좋아졌다. 어느새 인물의 비율도 맞고(다행이야ㅠㅠ),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못 맞추는 트릭도 나와(감동했다) 빠져들었다.

미궁시리즈 뿐만 아니라 내가 본 일본 만화 시리즈들은 대부분 이랬다. 처음엔 그림이 어색하고, 무언가 앞뒤가 맞지 않아도 가면 갈수록 좋아지고, 흥미로워진다. 어렸을 때엔 그 이유를 몰랐다. 크고 나서야 알았다. 출판사와 편집자가 믿고 따라줘서 라는 사실을, 그 때문에, 계속해서 “열심히 써라.”라고 믿고 등 밀어주는 출판사에게, 잡지에게 (나와 아무 관계도 없지만) 괜스레 고마웠는데.

우타노 쇼고의 ‘밀실살인게임 2.0’을 보며 똑같은 느낌을 받았다.

‘밀실살인게임 왕수비차잡기’를 봤을 때엔,

“... ... 별론데? 트릭도 눈에 다 보이고, 윤리적으로도 문제가 있고. 쫑알쫑알~”

라고 번역가한테 대놓고 말했다. 번역가한테 직접 공짜로 받아 본 주제에! (난 참고로 구적초 별로라고 대놓고 말한 인간이다. 지금 생각하면 좀 미안해.) 그러고는 같이 일하는 친구에게 줘버렸다. 때문에 2.0 역시 그다지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얼레, 이게 생각보다 괜찮았다.

줄거리는 생략한다. 줄거리를 말하는 순간 모든 게 스포일러가 되는 책이니까.

뭐 한 줄로만 설명하자면 말 그대로 밀실살인게임이다. 밀실에서 살인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밀실에 있는 인간들이 살인을 일으키고, 그 인간들이 스스로 탐정이 되어서 살인사건을 푸는 내용, ‘본격 추리’ 그 자체로, 2.0은 정말 본격미스터리상을 받을 만큼 잘 썼다. 트릭을 상중하로 나눠 평가하면, 단연 상이다.

하지만 첫 번째 시리즈는 허술하기 짝이 없었단 말이지. 때문에 나는 “이래도 팔리다니, 일본 미스터리가 붐은 붐이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다시 2.0을 보고 나니 말이야, 나만 그랬던 게 아닌 듯하다.

우타노 쇼고, 이 책 발표하고,

일본에서 무지하게 욕먹지 않았을까?

2.0의 중간 중간에 등장인물들이 여러 가지 추리, 상상의 날개를 펴며 ‘설마 그런 거겠어.’라든가 유명한 추리소설 등을 들먹이며, ‘이런 트릭도 있다’고 말하는 장면들이 나온다. 이 장면들이 마치, 전에 자신이 썼던 책이 너무 욕을 먹어서 “이번에도 어디 다 맞추나 보자.‘ 이를 악물고 쓴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단 말이지.

실제로 2년간의 텀이 있었더라. 어쩌면 주변에서 하도 욕을 먹어서 준비를 오래 하지 않았을는지, 그만큼 작가가 공부도 많이 하고, 문장도 늘어난 것은 아닐는지.

"다음은 누가 죽입니까?"라는 챕터 제목부터가 세다.

물론, 2.0도 여전히 윤리적인 문제, ‘과연 이 소설을 읽은 사람들이 모방범죄를 일으키지는 않을까?’ 에 대한 염려는 남아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찬찬히 뜯어보면 이에 대한 비판의식이 곳곳에 숨어 있단 말이다. (자세히 말하면 스포일러가 되니 참고) 모방범을 비꼬는 이야기가 있는데, 잘 드러나지 않았다. 또 가만히 생각해 보면, 모방해서 범죄를 일으키려는 사람들은 자신이 필요한 부분만 읽고 써먹기 때문에, 그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할 듯하단 말이야.

하지만 계속 봐야겠단 말이지.

밀실살인게임은 내가 어린 시절 보았던 수많은 만화책들처럼 천천히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기에 여기서 놓으면 후회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든단 말이다. 미궁시리즈를 보았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랄까.

때문에, 나는 이 소설의 3탄 매니악스도 봐야겠다. 과연 3탄 매니악스에서는 진정 ‘매니악’한 모습을 보여줄는지, 기대하겠다. 동시에, 1편 2편에서 (충분히 매우 많이) 지적받았을 듯한 무게감이나, 윤리성의 문제(요즘 독자들은 많이 눈이 높다고요)를 과연 해결했을지, 두고 보겠다.


해결 못 하면 일본으로 쫓아갈 거예염, 우타노 소고 아찌.



꼬리.

이번 달에 책 살 돈 아껴서 지진피해성금을 좀 냈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일본에 평화가 돌아오길 진심으로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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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 요시키 형사 시리즈
시마다 소지 지음, 한희선 엮음 / 시공사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1. 스포 없는 서평.
이 책의 감상을 한 단어부터 열 단어까지로 써봤습니다.

1. 봐.
2. 봐라.
3. 보라고.
4. 보라니까?
5. 말 참 안 듣네.
6. 싫음 니 손해고.
7. 나도 이제 귀찮다.
8. 그러고도 오덕이냐?
9. 니가 미스터리를 알아?
10. 안 읽고 후회한다 에 백 원.

이래도 안 읽을 자신 있으면, 아래 서평을 봐도 괜찮습니다.
오, 당신은 진정한 용자.
(왠만하면 읽고 보지, 서평.) 

 


2. 스포 ‘좀’ 있는 서평. 
 

작년, 여러 인연들을 만났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이 깊고, 왠지 모르게 자꾸만 구박을 하고 싶고, 만나지 않아도 딱히 걱정이 안 되면서, 또 만나면 어제 만난 사람처럼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바로 트위터 일미당 당주 김선주 씨다.
나 참, 이 아가씨랑 이렇게 친해질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이 아가씨랑 뭔 짓을 하고 다녔었는지 시시콜콜 늘어놓으면 다들 미친 듯이 웃다 쓰러지리라.
왜 서두부터 김선주 이야기를 꺼냈느냐, 이유는 단순하다. 이 아가씨가 준 책들 중 한 권인 모리무라 세이이치의 소설 ‘여자 마루따’가 ‘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를 보는 내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책장 바스라워질까 걱정스러워 덜덜 떨며 넘겼다.

 
 

맨 뒷장 판권 페이지를 확인하니, 자그마치 발간년도가 1989년!

‘여자 마루따’는 731부대의 진실을 사회파 미스터리로 풀어낸 걸작으로, TBS에서 전국 방영 드라마를 만들기도 했다. 실제, 이 소설을 발표할 당시 모리무라 세이이치는 상당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모리무라 세이이치는 ‘여자 마루따’를 통해 일본인이 결코 정면으로 보고 싶어 하지 않았던 불편한 진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저질렀던 세균부대의 만행을 고발했다. (뒤에 해설을 보니, 실제로 시마다 소지는 모리무라 세이이치의 이야기를 하며 사회파 미스터리의 부흥을 이야기했더라. p.516)
‘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 역시 2차 세계대전 당시의 불편한 진실을 이야기한다. ‘여자 마루따’가 중국에 있었던 731 부대의 세균인체실험 이야기라면, ‘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는 조선에서 러시아, 러시아에서 일본으로 이어지는, ‘지리멸렬하다’는 말이 어울리는 우리 조상의 이야기다. p.503의 요시키 형사의 말 ‘그 심정 나도 아플 정도로 잘 알아. 물론 당신이 겪은 고통의 극히 일부를 아는 것뿐이겠지만. 그렇게 가볍게 말할 수 있는 정도의 고통이 아니라고 당신이 나를 꾸짖을 것 같지만.’에 수긍할 수밖에 없는,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마음 속 한편에 잠들어 있는 애국심이 파르르 떠오르는 그런 이야기다.
동시에 감탄할 만큼 아름다운 본격 미스터리이기도 하다. 달리는 열차에서 사라진 살인자의 이야기는 ‘열차시간표트릭’을 연상케 하고, 달리는 열차에 갑작스레 나타난 춤추는 피에로와, 움직이는 목 없는 시체의 미스터리는 괴기트릭으로 손색이 없다.
물론, 다른 분들이 서평에 적었듯 트릭은 지금 우리가 보기엔 너무 쉽다―우린 너무나 많은 코난을, 김전일을 만났으니까! 

 

표지를 벗기면 이런 모습. 재질도 마음에 들지만,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것은 음각으로 새긴 그림이다. 전철에서 볼 때마다 사람들이 ‘저 책 좀 멋진데...’같은 표정으로 쳐다봤다. 훗.  

반전이 아쉬워서 못 읽겠다 싶어도, 이 책은 읽어야만 한다.
애국심에 호소해서? 맞다.
과정이 중요해서? 맞다.
재미있으니까? 맞다.
이런 이유가 다 수긍이 안 되어도 읽어야 한다. 집안에 두자.
왜냐고?
가장 단순한, 당신이 진정한 일미오덕이라면 무릎을 칠 이유를 대주지.
그래야, 시마다 소지의 요시키 형사 시리즈가 나올 테니까! 많이 나올 테니까!
요시키 형사 시리즈를 더 보고 싶은가? 이 책의 뒤편, 혹은 앞편을 보고 싶은가? 그럼 사라. 읽어라. 주변에 재미있다고 소문내라.

책을 만드는 건 출판사이지만, 다음 책을 내게 하는 건 독자다. 시리즈를 내게 하는 건, 지금 이 서평을 읽고 책을 구입하는 당신 손에 달렸다.

질러!
자주 지름신이 내려도 좋습니다.
-_-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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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엄지손가락 지문
리처드 오스틴 프리먼 지음, 원은주 옮김 / 시공사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당신은 ‘탐정의 7대 도구’를 기억하시나요? - 붉은 엄지손가락 지문 서평


내가 초등학교를 다녔을 때, 갑작스런 탐정 붐이 일었었다. 어디서 시작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티비에서는 국산 소년탐정극-검은 별도 이때!-과 외화 탐정시리즈를 방영했고, 나는 탐정물이 하는 시간마다 티비에서 떨어지지 않았었다-지금도 마찬가지다. 정확히 제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많은 탐정물들 중 어린아이들이 탐정단을 결성해 활약하는 외화시리즈가 있었다. 나는 그 시리즈를 보며 “탐정이 될 테닷!”하고는 동생과 친구들을 끌고 있지도 않은 뒷산 보물을 찾아 탐험에 나갔다 갑작스레 폭우가 쏟아져 매몰될 뻔도 하고, 꽝꽝 언 집 앞 개천 속에서 (역시) 있지도 않은 살인사건의 증거를 찾겠다고 하다가 빠지기도 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러고 참, 잘도 놀았다 싶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때의 나는 너무 어렸으며, 말 그대로 ‘깡’이 있었고, 애들에게 ‘뻥’을 치는 데에도 탁월한 소질이 있었던 듯하다-이러니 지금 탐정소설을 쓴다고 앉았겠지.

어쨌든, 이렇게 즐거운 탐정라이프를 즐겼던 나에게는 반드시 갖고 싶고, 가져야만 했던 아이템이 있었다.

‘탐정의 7대 도구’

... ... 그런데 7대 도구가 뭐였더라. 우선 돋보기가 있었고 ... ... 탐정 수첩이 있었던가? 나침반?

아아, 기억 안 난다. 기억 좋은 사람들은 이거 보자마자 기억해내겠지.

그런데 말이야, 내가 기억이 안 나는 이유는 난 이거 없어서 아냐?

엄마가 안 사줬다, ‘탐정의 7대 도구’ 젠장!

어째서 ‘안 사줬다’고 말하느냐, 문방구에서 ‘탐정의 7대 도구’를 팔았기 때문이다! 어린이들이라면 누구나 탐정이 되고 싶어 했고-피구왕 통키가 나오기 전까지만. 그 후엔 다들 불꽃슛을 쏘려고 했다- 하나쯤은 ‘7대 도구’를 갖고 싶어 하기 마련이건만, 우리 엄마는 “여자애는 그런 거 갖고 노는 거 아냐!”라고 말씀하시며 사주지 않았고-설마 이 부분에서, “여, 여자셨어요?”라고 묻는 사람 없겠지? 없어야 하는데-, 나는 다른 아이들의 탐정도구들을 가끔 강탈해서 내 것인 양 쓰고, 안 돌려주려다 주먹다짐을 하기 일쑤였는데.

붉은 엄지손가락 지문을 읽으며 이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했다.

물론, 이 책에 탐정의 7대 도구는 나오지 않는다. 대신 ‘지문첩’이라는 게 나오걸랑.

지문첩, 말 그대로 지문을 모아놓은 수첩으로, 이 소설의 중심에 선 도구다.

사건은 간단하다. 집안에서 다이아몬드가 사라지는 도난사건이 일어났고, 두 조카 중 한 명인 루벤이 범인으로 지목 당한다. 그 이유는 그의 엄지손가락, 것도 피가 묻은 엄지손가락 지문이 금고에서 발견됐기 때문인데. 처음엔 누구의 지문인지 몰랐으나 이 ‘지문첩’에 찍힌 지문과 비교한 후에야 루벤이 범인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보통 탐정물이라면 범인이라고 지목 당하기까지 상당히 오래 걸리겠지만, 붉은 엄지손가락 지문은 이미 지목당하고 시작한다. 그 후에, ‘과연 그가 범인이라는 사실이 타당한가?’를 증명해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이 과정이 마치, 과학이나 수학에서 하나의 명제를 증명해가는 과정과 비슷하여 흥미롭다.

수학과 과학에서는 보통. ‘X는 Y이다, 라는 명제의 타당성을 증명하여라.’ 라는 식으로 문제가 나오는데, 붉은 엄지손가락 지문은, ‘루벤이 범인이다, 라는 명제의 타당성을 증명하여라.’ 로 진행된단 말이지. 또 이야기의 흐름 역시 손다이크 박사의 증명과정으로 진행되고.

그 때문에 이 이야기가 과학 수사의 원조란 말이지.

하지만, 손다이크 박사가 증명하는 과정만 주구장창 보여주면 지겨워지리라. 화학 공식에, 무슨 상수에, 이런 것 나오면 누가 좋아하겠냐고! 다행히(?) 이 이야기는 손다이크 박사의 시선이 아닌 저비스 박사, 셜록 홈즈로 따지자면 왓슨의 시선으로 진행되는데, 그 문체가 참으로 유쾌하다.

동시에, 사회파 미스터리의 성격을 띠는 부분도 꽤 있는데.

예를 들어 이런 부분.

(내가 볼 때엔 이 부분이 스포일러가 아닌 듯한데, 작품을 천천히 꼼꼼하게, 작은 하나하나까지도 놓치지 않는 분이라면 뛰어넘는 편이 낫다.)


P.100

손다이크는 나와 함께 길을 걸어가며 통탄했다.

“저 불쌍한 친구가 감옥에 갇히는 수모를 겪기 전에 구해줄 수 있으면 좋았을 것을.”

“아직 확정된 것도 아니고 그냥 용의자일 뿐이잖아. 그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아직 법률상으로는 결백한걸.”

난 이렇게 대답했지만 설득력은 없는 대답이었다.

“친애하는 저비스, 자네도 나도 그건 그저 결의법에 불과하다는 거 알잖나. 법률상 미결수를 결백하다고 간주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달라질 게 뭐가 있나? 치안 판사가 그 친구를 어떻게 부르는지 들었지? 법정 바깥이라면 혼비 씨라고 부르겠지. 홀로웨이에서 루벤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자네도 알잖아. 교도관에게 이래라 저래라 명령을 받고, 숫자가 붙은 죄수복을 입고, 지나가는 사람이 아무나 들여다볼 수 있게 문에 작은 구멍이 나 있는 감방에 갇히게 되겠지. 양철 그릇에 양철 나이프와 스푼으로 식사를 하고, 주기적으로 감방에서 불려나와 런던 슬럼가 출신들이 대부분인 죄수들 무리에 섞여 운동장을 돌 테지. 루벤이 무죄로 판명이 난다 해도 교도소에 갇혀 있는 동안 그가 겪었을 모욕이나 손해에 대한 보상이나 사과도 없이 풀려날 거야.”

“그래도 난 사법 제도란 필요악이라고 생각해.”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요는 무죄추정이란 건 순전한 소설이란 말일세. 체포당한 순간부터 용의자는 범죄자 취급을 받으니까. 하지만... ...”

손다이크는 지나가던 이륜마차를 불러 세우며 결론을 내렸다.

“이 토론을 뒤로 미루지 않으면 병원에 늦겠어. 자넨 어떻게 할 건가?”


1907년 당시의 사회적인 배경으로 볼 때에, ‘무죄추정’에 대한 토론은 상당히 센세이션 했으리라. (당시의 사법제도 등에 대한 이야기에 대한 실례는 A. 코난 도일의 네 사람의 서명에서도 한 차례 언급된다. 살인자가 노예처럼 섬으로 끌려가 나머지 생생을 노동하며 지내야 한다고 푸념하는 부분.) 이 부분 말고도 신랄하게 사회를 비판하는 부분이 꽤 있다. 당시의 시대상황 등을 떠올리며 보면 더더욱 재미있을 듯한데.

그 때문에 책 표지에서는 과학수사의 원조라고 했지만, 나는, 이 책을 (감히) 사회파 미스터리의 아버지 격이라고 말하겠다.


그런고로, 나처럼 마쓰모토 세이초, 미야베 미유키, 모리무라 세이이치 등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강추. 정말 재미있게 읽었음. 번역도 매우 훌륭하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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