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투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세계명작
니콜라이 고골 지음, 이항재 옮김, 노에미 비야무사 그림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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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틀비란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사람은 저처럼 살았더군요. 허나 저는 조금 다릅니다. 저는 관리'였'거든요. 그랬습니다. 저는 관리였습니다. 그저 평생동안 모든 것을 베껴쓰기만 하였던 관리. 때문에 누군가에게 이렇게 제 의견을 전하기 위하여 편지를 쓰다니, 너무나 낯섭니다. 하지만 지금 저는 능동적으로 당신에게 편지를 적고 있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제 스스로 이렇게 무언가를 적으려 들다니, 이것 역시 외투의 힘일까요.

 

그리하여 내가 편지를 씁니다.

니콜라이 고골의 '외투'

 

 

일전, 누군가 저에게 큰 호의를 베풀어 다른 일을 맡은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준비된 서류를 다른 관청으로 보낼 연락문서를 만들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너무나 단순한 일일 테지요. 제목을 바꾸고 군데군데 동사를 1인칭에서 3인칭으로 바꾸면 끝이었습니다. 허나 저는 몸둘바를 몰라 했습니다. 아카키의 자식 아카키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는 고작 9급관리관이었습니다. 평생토록 베끼는 일외엔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것이 없었고, 자신있는 것도 없었습니다. 때문에 결국 저는 애원했습니다.

 

"못하겠어요. 차라리 뭔가를 정서하게 해주세요." p.16

 

라고요.

그런 제가 지금 당신에게 편지를 남기다니.

 

모든 것은 외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너무 오래 입은 탓에 외투가 낡아 더 이상 손 쓸 도리가 없어졌습니다. 때문에 저는 새 외투가 필요하였고, 그러기 위하여 80루블을 모아야 했습니다. 헌데 그런 큰 돈을 어디서 구한단 말입니까! 저는 아끼고 또 아꼈습니다. 신발이 닳을까 바닥에 닿지 않도록 살금살금 걸어다니고 속옷이 바스라질까 빨지도 못했습니다. 당연히 저녁식사는 꿈도 꾸지 못하였고요. 그렇게 마침내 아끼고 또 아끼어 새 외투를 얻었을 때의 기분이란!

 

사랑이 이럴까요,

세상이 이럴까요,

행복이 이럴까요,

자신감이 이럴까요,

저는 이 모든 '이럴까요'의 해답을 외투에서 찾았더랬습니다. 추위에서 영원히 절 지켜줄 이 외투, 제 모든 것을 바친 이 외투는 그토록 원하던 운명의 짝이었습니다.

 

허나 하룻밤의 물거품이었습니다.

 

반려처럼 나를 감싸주었던 외투는 내 곁에서 바로 떠나가버렸습니다. 저는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제 모든 것을 담은 외투였습니다. 도대체 이 외투를 어디서 되찾을 수 있을까요. 그 때, 누군가 저에게 당신을 찾아가라고 하였습니다. 당신은 대단하다고 하더군요. 제가 잃은 이깟 외투쯤 금세 되찾아줄 수 있을 거라고요. 그리하여 저는 당신을 찾아갔습니다. 당신에게 지금까지의 일을 애타게 이야기하였습니다. 당신은 저보다 높은 사람이니까요. 힘이 있으니까요. 차가운 바람에게서 절 지킬 방법을 알리라고, 저를 도와주리라 여겼습니다.

 

"당신이 지금 누구에게 말하고 있는지 아오? 당신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누군지나 아오? 당신은 알고 있소? 알고 있느냐고? 내가 당신에게 묻고 있잖소." p.57

 

헌데 당신은 나에게 소리 질렀습니다. 나를 매몰차게 내쫓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얼어죽었습니다.

 

 

얼어죽은 내가 원하는 것은 여전히 외투였습니다. 그저 내 몸에 맞는 외투를 찾고 싶었습니다. 때문에 저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습니다만, 사람들의 외투를 빼앗았습니다만, 아직까지도 전 외투를 찾지 못하였습니다. 때문에 저는 이렇게 어쩔 수 없이 편지를 적기로 하였습니다. 살아서도 단 한 번도 적지 못하였던 편지를 죽고 나서 귀신이 되어서야 적기로 하였습니다.

 

저 수많은 외투에, 저 수많은 사람들에게서 뺏은 외투의 등짝에 이렇게 편지를 적기로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바라고 또 바라옵기를 당신의 손에 이 편지가 닿기를.

그리하여 당신의 손에 있는,

허나 당신은 모를 내 몸에 딱 맞는 그 외투를 되찾을 수 있기를 바라옵는 것이었습니다.

 

'외투'의 작가 작가 니콜라이 고골은 러시아 리얼리즘 문학의 창시자라 불리고, '외투'는 특히 토스토예프스키 등 문학의 거장들에게 큰 영향을 준 작품입니다. 단편이며 여러 생각을 하게 합니다. 특히 요즘같이 정국이 불안정하고 "도대체 믿을 놈은 누구야?"라는 생각이 들 때에는 더더욱.

 

그리하여 혹여 관심이 생기셨다면 읽어보시기를.

그리하여 이 책을 선물해주신,

언제나 제 팬을 자청하시며 책을 한 박스씩 부쳐주시는 네이버 자음과모음 카페의 차가운피부 님께 감사드리옵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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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녀석의 몽타주 새움청소년문학 1
차영민 지음 / 새움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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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 번쯤 고백에 대한 경험이 있을 겁니다. 

고백을 했다. 차였다. 잘됐다. 고백을 받았다. 찼다. 잘됐다.

헌데 말입니다, 잘 생각해보세요.

것뿐인가요?

좀 더 있지 않았나요, 고백에 대한 경험?

 

그래요.

 

망설임.

 

우리는 고백을 한다, 안 한다의 망설임을 고백보다 더 많이 경험해 봤습니다.

 

 

 

나는 '망설임'을 고백한다

차영민의 '그 녀석의 몽타주'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상대방에게 고백하고 안 하고를 떠나서,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감정은 참으로 즐겁습니다. 그 사람을 생각하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고, 어떤 물건을 보아도 그 사람 생각이 납니다. 처음엔 딱 좋습니다, 이 상태가. 헌데 조금만 지나면 어떻게 되나요. 불안해집니다. 나는 이 사람이 좋은데 상대방은 날 싫어하면 어쩌지? 이런 감정을 들켜서 멀어지면 어쩌나, 근심초조불안으로 우리의 얼굴을 헤쓱해집니다.

 

늙습니다, 정말.

 

이 소설 속의 주인공 안동안은 사랑의 씁쓸함을 느낄 여유도 없이 이미 늙었습니다. 오죽하면 이름이 안동안이겠습니까. 고작 열일곱밖에 안 된 녀석이 겉보기엔 서른 다섯, 버스도 맘대로 못 타고, 여자한테도 이놈의 얼굴 때문에 차입니다. "아아, 늙는 게 죄란 말인가! 늙으면 사랑도 못한단 말인가!" 안동안이 흥분해서 말을 해보아도 돌아오는 것은 이런, 이런. "그래, 니 얼굴이 죄다. 좀 가꾸지 뭐했냐?"라는 핀잔입니다.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이야기입니다. 저도 어렸을 때엔 꽤나 노안이었습니다. 왠만한 사내들보다 키가 큰 데다, 몸무게도 무척 많이 나가서 사복을 입고 다니면 아무도 청소년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고등학생 때엔 머리를 짧게 잘랐더니, 화장실 갔다가 "왠 사내가 여자화장실에 들어왔어!" 소리를 들은 적도 있습니다. 지금은 미녀작가 소리를 반농담으로 들으니까 웃으면서 말하지만 그 때엔 심각했습니다, 정말로요.

 

때문에 이 소설 속 안동안의 사연에 무척이나 공감했습니다.

특히 안동안의 사랑에 대해서요.

 

"안동안, 네가 사랑을 알아? 하긴, 네가 사랑을 뭘 알겠어. 나처럼 나이 들어봐야 쌉싸래하고 지독한 사랑을 느껴볼 게다. 사랑은 원래 아프고 또 아픈 것이야. 어휴, 시바."

삼촌이 내게 사랑이 뭔지 아느냐고 묻는다. 사랑, 나도 잘 안다. 솔직히 내 사랑이 진짜 사랑이라고 장담한다. 물론 아직 완성되지 않은 어쩌면 평생 완성되지 않을 반쪽짜리 짝사랑이지만, 내 사랑은 삼촌처럼 단물 쪽 빠지면 뱉어버리는 껌처럼 단순한 사랑은 아니라고 자부한다. 물론 내가 사랑하는 주인공이 내 마음을 몰라주는 게 살짝 흠이라면 흠이다.

 

p.29

 

 

안동안은 자신의 외모 때문에 사랑하는 상대에게 고백하지도 못하고 차입니다. 또 좋아하게 되는 여자한테도 쭈삣거립니다.

 

헌데 말이에요, 보면 볼수록 안동안이 참 매력있습니다. 얼굴 외엔 참 괜찮아요. 왠만한 어른보다 나아요. 사고뭉치 삼촌보다, 가끔 철없는 짓을 하는 부모님보다 생각도 깊고, 여자 지켜줄 줄도 알고. 때문에 저도 모르게 자꾸만 안동안을 응원하게 됐습니다. 시끄럽고, 얼굴은 서른 다섯이 되어 보이는데다, 자기 얼굴 때문에 너무 기가 죽어서 좋아하는 여자한테 고백조차 못하고 움찔거리는 안동안을요. 그리하여 저는 이 책을 보며 안동안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고 한참 생각했는데요, 놀랍게도 뒤에 정말 그 말이 나왔습니다.

 

어떤 말이었냐고요?

323페이지부터 읽어보세요.

 

 

 

 

 

 

 

여담.

 

제가 이 책을 받고 나서 작가한테 한 말이 있습니다.

 

"난 책 받는다고 해서 다 서평을 쓰진 않는다. 재밌어야 써."

 

사실입니다. 전 상당히 귀찮아 하는 인간입니다. 특히 마감이 닥쳐오면 더더욱. 헌데 이 책은 읽어가면서, 점점 서평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할 이야기가 자꾸 생긴달까요. 무엇보다 이 책을 보니 떠오르는 책이 있었습니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인데요, 이 책 역시 어떤 의미의 청소년 소설입니다. (읽은 분들은 동감할 테죠?) 헌데 이 책, '그 녀석의 몽타주'와 이 책이 참 닮았습니다.

 

문체가요.

 

저 역시 예전엔 꽤나 수다스러운 문체를 썼었습니다. 대학 때 선생님꼐서 "이건 수다문학이다, 수다문학"이라고 웃었었는데, 그 때 생각이 나더군요. 작가의 나이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이 책, '그 녀석의 몽타주'의 작가 차영민은 아직 스물 넷, 젊습니다. 허나 오랜 시간 습작을 하였기 때문일까요, 참 문장이 탄탄합니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수다스러운 문체는 사실 가끔, "야 적당히좀 떠들어!"라고 짜증을 낼 뻔했지만(후후) 그건 조너선 사프란 모어를 보면서도 느꼈던 거니까 뭐,

 

앞으로,

기대하겠습니다.

 

차영민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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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주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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畢生.

 

생각만 해도 숨이 멎을 듯 거창한 단어입니다. 말 그대로 자신의 생명을 마지막까지 쥐어짜내는 것, 그것이 바로 필생입니다.

헌데 이 '안주'라는 책에는 필생의 사업이라는 띠지가 붙었습니다.

도대체 어떤 책이기에 이런 띠지가 붙었을까요.

 

 

미미 여사님,

당신에게 있어 '필생의 사업'이란 무엇입니까?

미야베 미유키의 '안주'

 

 

 


 
 

 

저는 시급 5,500원을 받으며 커피집 바리스타 아르바이트를 하며(요즘 이웃이 된 분들은 모르셨죠?), 매달 동생과 함께 주택대출금과 여러 빚을 갚으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직업으로 바리스타를 하여 점장이라도 떡하니 맡았다면 월급을 꽤 받을 텐데 저는 8년째 아르바이트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제대로 직업으로 바리스타를 하게 되면 그만큼 글을 쓸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저는 바리스타는 제 직업이고, 생업이지만, 글쓰기가 더 중요합니다. 저는 글쓰기에 방해가 되는 것은 딱 잘라 모두 '싫습니다.' 글을 중심으로 독서를 하고, 사람을 만나고, 사귀고, 그 안에서 새로운 글을 찾아내는 일을 반복합니다. 때문에 미야베 미유키 여사는 제가 볼 때엔 이미 이룰 것을 다 이룬 사람처럼 보입니다. 헌데 일본 현지에선 이 책의 시리즈를 필생의 사업이라고 말했다니, 상당히 흥미로웠습니다.

 

그렇다면, 왜일까.

 

 

이 말이 유독 가슴에 와 닿아서, 한국어 판의 제목을 ‘흑백’으로 정했다. 『흑백』이 출간된 2008년 당시, 일본 현지에서는 “미야베 미유키 씨가 라이프워크(필생의 사업)인 백물어(괴담 대회)를 쓰기 시작했다”고 보도되기도 했는데, 스페셜 인터뷰를 통해 작가는 이렇게 밝혔다. “『흑백』 자체로 보면 매우 슬프고 심각하며 이야기가 무섭게 구성되어 있지만, 이걸로 ‘우와 무서워’ 하고 생각한 후에 『안주』(한국어 판 제목 미정)를 읽으면 좋은 느낌의 칵테일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노리고 홀수 권과 짝수 권의 분위기를 바꾸려고 했습니다. 역으로 『안주』를 읽으신 분들 중에, 괴기소설이면서도 이렇게 귀여운 이야기뿐인 거야? 하고 생각하신 분들은 『흑백』으로 돌아와 보시면 매서운 이야기가 잔뜩 있습니다. 양쪽에서 서로 다른 맛을 느끼실 수 있다면 그 이상 기쁜 일은 없을 겁니다.”

 

출처 :

북스피어 블로그 http://booksfear.com/476 

도대체 무엇이 작가에게 이런 말을 하게 했을까, 궁금하더군요.

하여 저는 흑백을 읽었고 아아, 저 위의 인용문을 마음 깊이 느꼈습니다.

과연, 필생의 사업이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라고요.

 

 

에도하고도 미시마초의 한 귀퉁이에 있는 미시마야라는 주머니가게, 그 가게에 묘한 방이 하나 있습니다. '흑백의 방'이라는 이름의 방입니다. 이 방은 이름처럼 처음엔, 바둑을 두는 방이었습니다. 주머니가게 주인 이헤에 씨가 손님들을 초대하여 바둑을 두던 곳이었는데요, 이곳 미시마야에 조카딸, 17세의 오치카가 몸을 의탁하게 되면서 상황이 사뭇 달라집니다. 어느날 이헤에 씨가 우연히 자리를 비워 오치카가 흑백의 방에서 기다리는 손님을 대하게 되었습니다.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손님은 뜻밖의 이야기를 털어놓았고, 놀랍게도 오치카는 손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 마음의 짐을 달래주었습니다.

 

이헤에 씨는 이 이야기를 듣고 '흑백의 방'을 다른 용도로 쓰기로 합니다. 본래는 바둑의 흑돌과 흰돌을 둔다고 하여 흑백의 방이었던 곳을 오치카가 누군가의 기이한 사연을 들음으로써 흑과 백을 논하고, 가리고, 치유하는 흑백의 방으로 만들기로 한 것입니다.

 

이후 미시마야에는 오치카를 찾는 사람들이 하나 둘 찾아옵니다.

 

헌데 오치카도 그저 평범하기만 한 17세 소녀는 아니었습니다. 하긴, 평범한 소녀였다면 애시당초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마음을 달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야기가 진행되며 오치카의 사연은 서서히 밝혀지고, 그 사연 속에서 우리는 흑백의 방이 지금 내가 있는 이 세상은 아닌가, 잠시 고민하고, 가슴 아파하고, 슬퍼하다가도 그 깊은 저주와도 같은 흑백, 구별되지 않는 회색 빛 속에서 구원의 빛을 발견하게 됩니다.

 

흑백의 이야기가 대략 저리하다면 안주는 사뭇 다릅니다. 절절하여 가슴이 아프기만 하였던 사연이 가득하였고, 그 안에서 한 줄기 빛을 보여주었던 흑백의 한 쌍, 마치 거울의 양면과도 같은 안주는 우리에게 따뜻함을 보여줍니다. 이번 흑백의 방에 찾아오는 손님들은 하나같이 기묘합니다. 헌데 무섭지가 않아요. 오히려 귀엽고, 왠지 애처롭습니다. 이 기묘한 인물들, 혹은 존재들은 결코 우리와 비슷한 점이 있을 수 없습니다. 또 그 사연들 역시 마찬가지예요. 헌데 참, 귀엽습니다. 참, 애처롭습니다. 우리 자신 속에 숨은 부끄러움, 슬픔, 외로움, 그 모든 것을 이 기묘한 존재들이, 사연들이 속삭입니다. 흑백의 방에서 들려줍니다.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고 따뜻함을 느끼려고, 그 안에서 또다른 존재로써, 떨어져 있지만 행복한 존재로 다시 태어나기 위하여.

 

 

우리의 마음 속에는 흑백의 방이 하나씩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우리가 감히 말할 수 없는 슬픔이나 외로움이 있을 것입니다. 혹은 결코 잊을 수 없는 누군가가 있을 수도 있겠고, 죄책감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미야베 미유키 여사는 이 책 '안주'에서 그 이야기를 해보라고 속삭입니다. 지금,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처럼, 흑백의 방을 찾아온 사람들처럼 우리에게, 마음 속 깊이 숨겨놓은 그 상처를, 아무리 치유된 척하더라도 치유되었을 리 없는 그 상처를 나에게 말해 보라고 속삭입니다.

 

그리하여 저는 미야베 미유키 여사의 목소리를 듣고, 그대로 따랐습니다. 저의 이야기를 '안주'라는 이름의 귀여운 흑백의 방에서 조근조근 속삭여 보았더니 미야베 미유키 여사는 저에게 ... ...

 

 

너는 또 혼자가 되겠지. 이 넓은 저택에서 홀로 살게 될 게다.

하지만, 구로스케. 같은 고독이라도, 그것은 나와 하쓰네가 너를 만나기 전과는 다르다.

나는 너를 잊지 않을 거다. 하쓰네도 너를 잊지 않을 게야.

멀리 떨어져서 따로 살더라도 늘 너를 생각하고 있을 게다. 달이 뜨면, 아아, 이 달을 구로스케도 바라보고 있겠지, 하고 생각할 게다. 구로스케는 노래하고 있을까, 하고 생각할 게다. 꽃이 피면, 구로스케는 꽃 속에서 놀고 있을까, 하고 생각할 게다. 비가 내리면, 구로스케는 저택 어딘가에서 이 빗줄기를 바라보고 있을까, 하고 생각할 게다.

얘야, 구로스케. 너는 다시 고독해질 게다. 하지만 이제 외톨이가 아니란다. 나와 하쓰네는 네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

 

P.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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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에서 튀어나온 죽음
클레이튼 로슨 지음, 장경현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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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많은 추리소설이 존재하고, 그만큼의 작가가 존재합니다. 저를 비롯하여 추리소설을 적어 먹고 산다는 일은 결코 녹록치가 않습니다. 추리소설을 쓰기 때문에 혹여 내 가족이 이상한 소리를 듣지 않을까, 해가 되기는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하고, 추리소설을 적는 내내 가끔은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지는 않을까 불안함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또 어떨 때엔 나보다 더 대단한 마술사와 같은 탐정이 늘 곁에 있어, 대신 좀 써줬으면 좋겠다 생각합니다.

 

 

책 vs 책 5  

추리소설 속 추리소설가를 만나다

빨간스웨터 vs 이인들의 저택 vs 모자에서 튀어나온 죽음

 

 

 

 

 

 

 

1. 국적과 시대

 

각 소설은 각기 국적과 시대가 다릅니다. 황희의 빨간 스웨터는 21세기의 한국이며, 오리하라 이치의 이인들의 저택은 1990년대 초반이고, 클레이튼 로슨의 모자에서 튀어나온 죽음은 1930년대 후반입니다. 각기 작품에서 나라와 시대가 주는 의미는 상당합니다. 

 

황희의 '빨간 스웨터'의 경우 21세기의 한국입니다. 지하철을 타면 모두들 느낍니다. 누구나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고 정보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모든 것이 편리하고, 가려질 것이 전혀 없을 것 같은 이 상황에서 여러 사건이 일어납니다. 요즘들어 성폭력 사건이 빈번하고, 개중엔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다 싶은 것들도 있습니다. 황희작가는 이런 사건들, 특히 조직적인 성폭력 사건을 한 아이의 엄마이자 추리소설 작가인 고미자의 시선으로 접근합니다. 하드보일드한 문체와 사회파 미스터리의 시선으로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을 바라보게 합니다.

 

오리하라 이치의 '이인들의 저택'의 배경 1990년대 초반은 일본 미스터리의 황금기였습니다. 미야베 미유키를 비롯한 여러 사회파 추리소설 작가들이 작품을 내놓는 것과 동시에-화차도 이때입니다- 여러 신본격 미스터리 작가들도 작품을 쏟아냈습니다. 당연히, 신진을 키우는 시기이기도 하였는데요, 이 소설 속 주인공 유령작가 '시마자키'는 바로 이런 시기에 데뷔를 한 작가로 나옵니다. 시마자키는 순수소설을 데뷔를 했다가 추리소설로 재데뷔를 한 '대단한' 이력을 가졌지만, 현재는 변변찮은 유령작가에 불과합니다.

 

 

 

 

 

 

클레이튼 로슨의 '모자에서 튀어나온 죽음'은 1930년대 후반, 미국의 황금기 시절을 배경으로 합니다. 책의 뒤쪽, 역자 해설에도 나와 있다시피, 미국의 1930년은 금주법과 대공황이 끝나가는 시기였습니다. 밤문화가 다시 화려하게 꽃피기 시작하여 사람들은 자극적이고 화려한 공연에 빠져듭니다. 이 이야기 속 등장인물들이 그렇습니다. 화려한 문화를 보여주듯 모든 인물들이 대단한 마술사들, 심령술사들, 공연자들입니다. 휘황찬란하기 짝이 없는 인물들은 각기 현학스런 대사를 내뿜고, 기가 질린 서술자이자 작가 '로스 하트'는 그저 그들의 이야기를 옮겨적기에 바쁩니다.

 

하지만 로스 하트의 역할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2. 각 작품 속 작가의 역할

 

클레이튼 로슨의 작품 속 등장하는 로스 하트는 여러 추리소설들에서 그러하듯 단순한 '서술자'로만 보입니다. 하지만 로스 하트는 다른 소설 속 등장하는 서술자와는 확실히 다릅니다.

 

 

~나는 제목이 좀 더 숙성하도록 내벼려 두고 내 주요 논지, 즉 나는 왜 추리소설을 쓰지 않는가에 대한 이유를 타이핑하기 시작했다.

 

추리소설은 독특한 문학 형식이다. 복잡한 직소퍼즐이고, 집필된다기보다 오히려 구성되는 것으로 이것은 거의 수학적이라고 할 만한 공식들에 따라 쓰인다. 이는 독자와 작가 간의 지적 경쟁으로서 지난 세월 동안 나름의 규칙을 발전시켜 왔다. 이제는 모든 추리소설 애호가에게 너무나 익숙한 규칙이기에 작가가 작은 규칙을 어기기만 해도 다음 책의 매출이 줄어든다.

이러한 규칙들은 추리소설이 규정의 주물에서 주조되고 표준의 패턴에 따라 빚어지기를 요구한다. 이러한 패턴은 한 때 만화경 같은 현란한 변주가 가능한 것처럼 보였으나, 이제는 서글플 정도로 닳아버렸다.

(계속)

pp.15~6

 

 

로스 하트는 상당히 비판적인 시선으로 추리소설을 이야기합니다. 이후로도 그런 식입니다. 여러 추리소설 속 탐정 캐릭터를 말하면서 독창적이며 신선한 사립탐정을 만들기는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한편, 살인수법도, 범인의 정체도 더 이상 신선하지 않다고 답답해 합니다.

 

이것 참, 난감합니다. 이 소설의 배경은 1930년대인데요, 우리는 21세기에 살고 있는데, 이때의 소설 속이라고는 해도 추리소설가가 저런 생각을 했다니... 우리는 어쩌란 말일까요?

 

아, 추리소설 쓰지도 말고 읽지도 말아야 하나.

 

헌데 이런 비판적인 1장의 마지막에 확 돌아섭니다.

 

"저 방 안에 죽은 사람이 있도다!"

이건 너무 심하다. 나는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일어서서 문을 홱 잡아당겨 열었다.

"이게 뭡니까?" 나는 항의했다. "무슨 게임인가요?"

 

p. 21

 

 

"무슨 게임인가요?"

이 한마디가 앞으로의 소설의 향방을 결정짓습니다.

 

그렇습니다.

 

클레이튼 로슨의 '모자에서 튀어나온 죽음'은 '게임'처럼 화려하게 마구 증거를 던집니다. 그리고 소설 속 추리소설 비관론에 빠진 작가 '하트 로스'는 그 수많은 증거를 일일이 손으로 적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소설 속 탐정이자 위대한 마술가 멀리니는 그 증거를 통해 범인과 대결합니다.

 

 

 

 

 

 

 

 

'모자에서 튀어나온 죽음' 속 등장하는 문제. 이 원의 '지름'을 구하시오.

해답은 312페이지에.

 

 

 

오리하라 이치의 '이인들의 저택'에 등장하는 시마자키는 이 소설 속의 화자이자 주인공입니다. 시마자키는 두 번이나 데뷔를 하고서도 변변찮은 살림살이 때문에 유령작가로 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 속에는 "나는 대작을 써낼 테다!"라는 생각이 가득합니다. 늘 새로운 소설을 쓰겠다고 기획안을 들고 출판사를 찾아갑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떨까요?

 

 

 

 

 

 

 

 

 

 

 

 

 

 

사토는 시카자키가 경제적으로 궁핍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만약 그 일을 거절하면 오늘 갖고 온 원고도 제대로 봐주지 않을지 모른다. 지금의 출판계에서는 단편으로 수상한 것 정도로는 거의 먹고살기 힘든 게 현실이다. 시마자키처럼 두 가지 상을 받았어도 활동범위가 한정돼 있어 설령 작품을 쓰더라도 채택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한 세계다. 아쿠타가와 상 후보에 다섯 번이나 올랐지만 처자식을 먹여 살리기 힘들어 자살한 작가가 있을 정도다.

p. 35

 

 

시마자키는 마지못해 이 일의 의뢰를 수락합니다. 시마자키가 할 일은 단순합니다. 반 년전 실종된 '고마쓰바라 준'이라는 사람의 전기를 적는 일입니다. 시마자키는 '고마쓰바라 준'의 주변에서 이야기를 모아가며 한 편의 전기를 차츰 완성해갑니다. 그리고 시마자키는 어긋났다고만 생각한 자신의 '유령작가' 생활 속에서 오히려 미래를 발견합니다.

 

이야기 속의 주인공' 고마쓰바라 준'은 너무나 흥미로운 인물이었습니다.

그 인물을 주인공으로 소설을 쓰고 싶어질 정도로.

 

 

시마자키는 계속 이야기했다. 여기서 적당히 타협해 허구적인 내용을 집어넣는다면 지금까지 애써온 보람이 없지 않은가. 만약 다에코가 완성한 '고마쓰바라의 초상'을 탐탁지 않게 여긴다면 등장인물 이름을 바꾸고 소설로 다시 꾸며 발표할 생각도 있었다. 편집자인 사토도 그 원고를 읽으면 분명 마음에 들어 할 것이다.

시마자키는 이제 이 일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이 상태로 나가면 한 작가지망생의 영광과 좌절을 생생히 묘사할 수 있을 것이다. 인터뷰 형식의 특이한 구성이라서 전통적인 3인칭 문체에 비해 고마쓰바라 준의 인간성을 더욱 세밀히 표현할 수 있다.

p. 340

 

헌데 이상합니다.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한 이후 묘한 시선이 느껴집니다.

 

누군가,

시마자키의 뒤를 쫓고 있었습니다.

 

 

 

 

 

 

 

황희의 빨간 스웨터 속 작가 '고미자'는 십오 년 전 가출한 딸을 찾아 헤맵니다. 전봇대마다 붙인 딸의 포스터가 물에 젖을까 걱정되어 비가 오면 달려나가고, 방송국의 아는 피디며, 형사에게 연락을 취해 딸의 이야기가 나왔냐고 몇 번이고 묻습니다. 때문에 소설가인데도 소설을 쓸 수 없습니다. 딸을 잃은 현재가 너무 힘이 들기 떄문입니다.

 

 

아침과 다름없이 하얀 화면 위에서 커서가 깜빡이고 있었다. 그녀는 빈 화면 위에서 깜빡이는 커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머릿속은 여전히 단 한 줄의 문장도 떠오르지 않았다. 작가로서의 자신의 인생이 이대로 끝나는 것이 아닐까하는 두려움이 섬뜩한 칼날처럼 가슴 한쪽을 스쳤다. 그러다가 이내 그 칼날은 무뎌진다.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이 세상의 수많은 작가와 책. 소설 속의 내용이 아무리 재미있고 위대하다해도 인생만 하랴. 인생을 제대로 살아가는 것이 한 줄의 좋은 문장을 쓰는 일보다 나은 일이리라.

p. 297

 

 

고미자에게 있어 소설을 쓰는 것은 숨을 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글을 쓰지 않는다면 삶의 의미가 없을 정도로 고미자에겐 절박합니다. 허나 딸을 잃은 후 고미자의 우선순위는 바뀌었습니다. 모든 것이 '딸'에게 집중되어버렸습니다. 머리가 하얗게 셀 정도로 그렇게, 딸만을 절절이 생각합니다. 진실에 다가갈수록 고미자는 괴롭습니다. 딸이 처했던 현실이 믿을 수 없을 만큼 끔찍합니다. 가출. 우리가 어린 시절 한 번씩 꿈꾸었던 그 교묘한 로망. 주변의 친구들이 한 번쯤 하고 돌아와서는 자랑스럽게, 혹은 약간 성숙해진 모습으로 "나 가출했었어."라고 말했던 그것의 뒤에 이런 것들이 숨겨져 있을 줄은 저는 이 책을 펴기 전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었습니다.

 

모든 것은 한 통의 전화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십오년간 딸의 흔적을 찾아다닌 고미자에게 한 통의 전화가 왔습니다.

 

 

"유정이유정이 알아?"

전화기 저편의 사람은 뭔가 재빨리 말했지만 감이 멀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누구시죠? 잘 안 들려요. 좀 더 큰 소리로... ..."

"유정이 살아 있어. 딸도 낳았어. 유정이 데리고 가고 그 애도 데리고... ..."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상대의 말을 듣고 있던 고미자의 표정이 갑자기 멍해졌다. 그녀의 숨결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어둠 저편에서 전화기를 붙잡고 있는 익명의 존재는 지금 실종된지 15년 만에 시신으로 돌아온 그녀의 딸, 방유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살아있다고? 소름이 돋았다. 혼란이 거대한 파도가 되어 그녀를 덮쳤다.

p. 35

 

 

고미자는 이 전화 한 통을 받고 차츰 딸의 가출 뒤에 숨겨진 진실을 알게 됩니다. 인신매매. 21세기, 사어가 되었을 줄로만 알았던 그 단어가 여전히 극성을 부리고 있고, 자신의 딸이 그 인신매매의 피해자가 되었었다는 사실을 알고 만 겁니다. 때문에 고미자는 일어섭니다. 자신의 딸이 겪은 인신매매의 진실에 접근합니다.

 

 

 

 

 

 

 

 

 

 

 

 

 

 

 

 

 

사실 저도, 8월에 제 자신이 등장하는 추리소설을 한 편 탈고했습니다. 물론 또 고치게 되겠으나, 아무래도 자기 자신을 추리소설 속에 소설가로 등장시키는 것은 작가들의 큰 로망인 듯합니다. 그밖에도 너무나 많은 추리소설 속에서 추리소설가가 등장하니까요. 만화로는 그 유명한 명탐정 코난 시리즈에서 코난의 아버지가 추리소설가로 나오고, 만화 명탐정 김전일의 할아버지 긴다이치 코스케시리즈만 도 추리소설가가 서술자로 등장합니다. 그밖에 최근 우리나라서도 큰 인기를 끄는 미쓰다 신조의 도조겐야 시리즈가 있지요? 또 작가 스스로가 자신을 작가로 등장시키는 경우로는 아리스가와 아리스, 미쓰다 신조, 노리즈키 린타로 등이 있겠고, 영미권에서는 너무 많아 일일이 대기가 힘드니까 이왕 아리스가와 아리스 이야기한 것, 앨러리 퀸 한 명만 말하고 넘어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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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일구
시마다 소지 지음, 현정수 옮김 / 블루엘리펀트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사람은 누구나 등에 하나쯤 두려움을 짊어지고 살아가나 봅니다. 태어났을 때부터 우리의 등엔 원초의 두려움이 있을지 모릅니다. 최초의 두려움은 죽음이었고, 그 이후로 우리는 여러가지 이름의 두려움을 알게 됩니다. 사랑도, 우정도, 사회도, 그 모든 것이 두렵겠지만 제가 제일 두려웠던 것은 문을 두드리는 그 이었습니다.

 

 

 

 

그 손이 두려웠습니다.

시마다 소지의 '최후의 일구'

 

 

 

 

그런 때가 있었습니다. 남의 돈이 무서운 줄 모르고 빌리고 또 빌리다 그 돈이 굴러서 커지고 또 커져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워졌을 때가. 돈이 두려움이란 이름이 되어 등에 올라타고는 채찍질을 하며, 어서 가자! 가자! 하고 말했을 때가 말입니다. 제가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연대책임이란 말이 있습니다. 누군가가 그런 일을 저질렀을 때에 말리지 못했기에, 다 같이 그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고통은 실존입니다. 다가옵니다. 누군가의 손으로 갑작스레 집을 방문합니다. 가끔은 새벽이고, 또 어쩔 때엔 아침입니다. 신호는 간단합니다.

 

 

문을 두드립니다.

 

 

가끔은 세게, 가끔은 두드리듯, 가끔은 티도 나지 않게 그렇게 문을 두드리며 말합니다. 왜 돈을 갚지 않느냐고 따집니다. 어쩔 때엔 안쓰럽다는 듯 사정을 다 안다고 그래도 어쩌겠냐고 말을 하고, 또 어쩔 때엔 일단 소리부터 지릅니다. 주변의 눈총에 등이 따갑습니다. 왜 그런 일을 벌였느냐고 묻는 듯합니다만, 우리는 할 말이 없습니다. 그저 가난해서, 돈을 빌려서 미안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요 몇 주 은행을 들낙거리다 보니 저 때의 일이 떠올랐습니다. 그 때에 전 고등학생이었던 것도 같고, 대학생이었던 것도 같습니다.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집에 누군가 찾아왔고 어렴풋한 공포를 느꼈던 것만 기억에 있습니다. 전화는 받을 수 없었고, 당연히 친구도 찾아올 수 없는 나날이었습니다.

 

당시의 저는 그저 돈을 빌려쓴 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렸을 때였고, 우리집만 그렇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조금 더 커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조금씩 시선이 달라졌습니다.

 

사회.

시스템.

국가.

자본주의.

 

그 여러 이름의 무엇인가가 나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의 목을 졸라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 책들을 읽으며 더더욱 깨닫게 되더군요. 일전 몇 번이고 말한 '이유'라던가 '화차'를 읽으며 생각이 바뀌었고 "그렇다면 나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도 끊임없이 던지게 되었습니다.

 

 

 

이 책,

최후의 일구는 그 질문에 한 가지 답을 던집니다.

 

 

 

최후의 일구는 아주 단순한 이야기입니다. 미타라이 기요시에게 아주 묘한 의뢰가 들어옵니다. 한 악덕 대부업체의 빚에서 해방시켜달라는 의뢰인데요, 시니컬한 점성술사 탐정 미타라이 기요시는 "그것만은 나도 어찌할 수가 없어!"라고 말하며 의뢰를 거절합니다. 기도나 하라고 하네요. 그런데 이게 왠 일입니까? 정말 기도가 통했을까요? 갑작스레 대부업체가 마음을 바꿨습니다. 개심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아이큐 300의 명탐정 미타라이 기요시, 감히 셜록 홈즈를 재해석한 캐릭터라 말할 수 있는 미타라이 기요시가 범죄현장에 갑니다. 헌데 그는 아주 묘한 말을 합니다. 이 모든 것은 그저 기적이라고요. 인과응보라고요. 미타라이 기요시답지 않습니다. 미타라이 기요시는 이방의 기사, 점성술 살인사건, 마신유희 등 여러 작품에서 어떻게 하라고 말을 하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해답을 내놓는 탐정이란 말입니다.

 

그렇다면 미타라이 기요시는 정답을 안다는 말인데,

그 정답은 우리 독자들이 봐도 뻔히 알 만큼 단순하다는 말인데,

헌데 미타라이 기요시는 범인을 찾아내지 않는다.

 

 

 

 

왜?

 

 

 

 

이야기는 2부로 넘어갑니다. 2부는 시작부터 묘했습니다. 미타라이 기요시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전혀 모르겠는 인간이 나오더니 마구 떠들어서 저는 혹시 '숨겨진 몇 장을 실수로 잘못 넘겼나?'라고 생각하여 몇 번이고 페이지를 앞으로 돌렸다가 다시 봤습니다. 하지만 아니더군요. 미타라이 기요시가 안 나오다니! 불만스럽더군요. 이 구조가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저를 비롯한 미타라이 기요시의 팬들에게는 실례가 되는 구조라고 생각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작가 시마다 소지가 이 작품을 '격하게 아낀다'고 하고, 또 이 작품을 한국에서 출간한다니까 여러모로 뒤에서 힘을 써주신데다가 직접 친필싸인까지 선뜻 해서 보내주셨더니 이 작품 안에 무언가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리하여 2부를 한 장 한 장 넘겼는데... ... 아아, 마지막 두 페이지에서 알아버렸습니다, 어찌하여 시마다 소지가 2부에서 나오지 않았는가를요.

 

 

 

저는 뼛속까지 2류로 태어난 인간입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보낼 제 2의 인생도 분명 2류로 끝마치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괴롭지는 않습니다. 지금의 저는 그것에 작은 긍지를 느끼고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괜찮습니다. 헤처 나갈 수 있습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하지만 두 분은 저와 달리 일류인 사람들입니다. 만나 뵈었던 짧은 시간 동안에도 저는 다케치와 마주했으 때와 같은 일류의 광채를 계속 느끼고 있었습니다.

눈부신 그 광채를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발해주십시오. 축복받지 못한 모든 이들을 위해, 구석에서 웅크리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그렇게 해주시기를 저는 지금 무엇보다도 간절히 바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pp.274~5

 

 

 

미타라이 기요시는 나오지 않았지만, 이 마지막장면으로 충분했습니다.

 

2류로 태어났다고 스스로를 말하며,

당신들을 일류라 말하는 인물 다케타니를 통해,

돼지 눈에는 돼지가 보이고,

부처님 눈에는 부처님이 보인다는 그 격언을 느꼈습니다.

등장하지 않은 미타라이 기요시가

스스로를 2류라 치부하며 일류를 알아보는 다케타니를 통해

계속해서 함께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 얼마나 달콤한 밀행이었는지.

 

 

때문에 웃었습니다. 책을 덮었습니다. 일요일 저녁이었습니다. 창밖으로 해가 집니다. 어디선가 참새 소리가 들린 듯도 하였지만 착각이었겠지요. 하지만 개 짖는 소리는 사실이었습니다. 손에 닿는 우리 집 막내 '몽'의 짓입니다. 몽실몽실한 갈색 털을 쓰다듬으며 생각했습니다.

 

 

지금의 나는 행복하다. '그 손'에서 벗아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그 손이 닿은 사람은 어디에든 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나 혼자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것인가.

 

잠시,

쓰다듬던 손을 멈추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펜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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