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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에서 튀어나온 죽음
클레이튼 로슨 지음, 장경현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2년 8월
평점 :
세상엔 많은 추리소설이 존재하고, 그만큼의 작가가 존재합니다. 저를 비롯하여 추리소설을 적어 먹고 산다는 일은 결코 녹록치가 않습니다. 추리소설을 쓰기 때문에 혹여 내 가족이 이상한 소리를 듣지 않을까, 해가 되기는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하고, 추리소설을 적는 내내 가끔은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지는 않을까 불안함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또 어떨 때엔 나보다 더 대단한 마술사와 같은 탐정이 늘 곁에 있어, 대신 좀 써줬으면 좋겠다 생각합니다.
책 vs 책 5
추리소설 속 추리소설가를 만나다
빨간스웨터 vs 이인들의 저택 vs 모자에서 튀어나온 죽음

1. 국적과 시대
각 소설은 각기 국적과 시대가 다릅니다. 황희의 빨간 스웨터는 21세기의 한국이며, 오리하라 이치의 이인들의 저택은 1990년대 초반이고, 클레이튼 로슨의 모자에서 튀어나온 죽음은 1930년대 후반입니다. 각기 작품에서 나라와 시대가 주는 의미는 상당합니다.
황희의 '빨간 스웨터'의 경우 21세기의 한국입니다. 지하철을 타면 모두들 느낍니다. 누구나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고 정보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모든 것이 편리하고, 가려질 것이 전혀 없을 것 같은 이 상황에서 여러 사건이 일어납니다. 요즘들어 성폭력 사건이 빈번하고, 개중엔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다 싶은 것들도 있습니다. 황희작가는 이런 사건들, 특히 조직적인 성폭력 사건을 한 아이의 엄마이자 추리소설 작가인 고미자의 시선으로 접근합니다. 하드보일드한 문체와 사회파 미스터리의 시선으로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을 바라보게 합니다.
오리하라 이치의 '이인들의 저택'의 배경 1990년대 초반은 일본 미스터리의 황금기였습니다. 미야베 미유키를 비롯한 여러 사회파 추리소설 작가들이 작품을 내놓는 것과 동시에-화차도 이때입니다- 여러 신본격 미스터리 작가들도 작품을 쏟아냈습니다. 당연히, 신진을 키우는 시기이기도 하였는데요, 이 소설 속 주인공 유령작가 '시마자키'는 바로 이런 시기에 데뷔를 한 작가로 나옵니다. 시마자키는 순수소설을 데뷔를 했다가 추리소설로 재데뷔를 한 '대단한' 이력을 가졌지만, 현재는 변변찮은 유령작가에 불과합니다.

클레이튼 로슨의 '모자에서 튀어나온 죽음'은 1930년대 후반, 미국의 황금기 시절을 배경으로 합니다. 책의 뒤쪽, 역자 해설에도 나와 있다시피, 미국의 1930년은 금주법과 대공황이 끝나가는 시기였습니다. 밤문화가 다시 화려하게 꽃피기 시작하여 사람들은 자극적이고 화려한 공연에 빠져듭니다. 이 이야기 속 등장인물들이 그렇습니다. 화려한 문화를 보여주듯 모든 인물들이 대단한 마술사들, 심령술사들, 공연자들입니다. 휘황찬란하기 짝이 없는 인물들은 각기 현학스런 대사를 내뿜고, 기가 질린 서술자이자 작가 '로스 하트'는 그저 그들의 이야기를 옮겨적기에 바쁩니다.
하지만 로스 하트의 역할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2. 각 작품 속 작가의 역할
클레이튼 로슨의 작품 속 등장하는 로스 하트는 여러 추리소설들에서 그러하듯 단순한 '서술자'로만 보입니다. 하지만 로스 하트는 다른 소설 속 등장하는 서술자와는 확실히 다릅니다.
~나는 제목이 좀 더 숙성하도록 내벼려 두고 내 주요 논지, 즉 나는 왜 추리소설을 쓰지 않는가에 대한 이유를 타이핑하기 시작했다.
추리소설은 독특한 문학 형식이다. 복잡한 직소퍼즐이고, 집필된다기보다 오히려 구성되는 것으로 이것은 거의 수학적이라고 할 만한 공식들에 따라 쓰인다. 이는 독자와 작가 간의 지적 경쟁으로서 지난 세월 동안 나름의 규칙을 발전시켜 왔다. 이제는 모든 추리소설 애호가에게 너무나 익숙한 규칙이기에 작가가 작은 규칙을 어기기만 해도 다음 책의 매출이 줄어든다.
이러한 규칙들은 추리소설이 규정의 주물에서 주조되고 표준의 패턴에 따라 빚어지기를 요구한다. 이러한 패턴은 한 때 만화경 같은 현란한 변주가 가능한 것처럼 보였으나, 이제는 서글플 정도로 닳아버렸다.
(계속)
pp.15~6
로스 하트는 상당히 비판적인 시선으로 추리소설을 이야기합니다. 이후로도 그런 식입니다. 여러 추리소설 속 탐정 캐릭터를 말하면서 독창적이며 신선한 사립탐정을 만들기는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한편, 살인수법도, 범인의 정체도 더 이상 신선하지 않다고 답답해 합니다.
이것 참, 난감합니다. 이 소설의 배경은 1930년대인데요, 우리는 21세기에 살고 있는데, 이때의 소설 속이라고는 해도 추리소설가가 저런 생각을 했다니... 우리는 어쩌란 말일까요?
아, 추리소설 쓰지도 말고 읽지도 말아야 하나.
헌데 이런 비판적인 1장의 마지막에 확 돌아섭니다.
"저 방 안에 죽은 사람이 있도다!"
이건 너무 심하다. 나는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일어서서 문을 홱 잡아당겨 열었다.
"이게 뭡니까?" 나는 항의했다. "무슨 게임인가요?"
p. 21
"무슨 게임인가요?"
이 한마디가 앞으로의 소설의 향방을 결정짓습니다.
그렇습니다.
클레이튼 로슨의 '모자에서 튀어나온 죽음'은 '게임'처럼 화려하게 마구 증거를 던집니다. 그리고 소설 속 추리소설 비관론에 빠진 작가 '하트 로스'는 그 수많은 증거를 일일이 손으로 적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소설 속 탐정이자 위대한 마술가 멀리니는 그 증거를 통해 범인과 대결합니다.

'모자에서 튀어나온 죽음' 속 등장하는 문제. 이 원의 '지름'을 구하시오.
해답은 312페이지에.
오리하라 이치의 '이인들의 저택'에 등장하는 시마자키는 이 소설 속의 화자이자 주인공입니다. 시마자키는 두 번이나 데뷔를 하고서도 변변찮은 살림살이 때문에 유령작가로 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 속에는 "나는 대작을 써낼 테다!"라는 생각이 가득합니다. 늘 새로운 소설을 쓰겠다고 기획안을 들고 출판사를 찾아갑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떨까요?

사토는 시카자키가 경제적으로 궁핍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만약 그 일을 거절하면 오늘 갖고 온 원고도 제대로 봐주지 않을지 모른다. 지금의 출판계에서는 단편으로 수상한 것 정도로는 거의 먹고살기 힘든 게 현실이다. 시마자키처럼 두 가지 상을 받았어도 활동범위가 한정돼 있어 설령 작품을 쓰더라도 채택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한 세계다. 아쿠타가와 상 후보에 다섯 번이나 올랐지만 처자식을 먹여 살리기 힘들어 자살한 작가가 있을 정도다.
p. 35
시마자키는 마지못해 이 일의 의뢰를 수락합니다. 시마자키가 할 일은 단순합니다. 반 년전 실종된 '고마쓰바라 준'이라는 사람의 전기를 적는 일입니다. 시마자키는 '고마쓰바라 준'의 주변에서 이야기를 모아가며 한 편의 전기를 차츰 완성해갑니다. 그리고 시마자키는 어긋났다고만 생각한 자신의 '유령작가' 생활 속에서 오히려 미래를 발견합니다.
이야기 속의 주인공' 고마쓰바라 준'은 너무나 흥미로운 인물이었습니다.
그 인물을 주인공으로 소설을 쓰고 싶어질 정도로.
시마자키는 계속 이야기했다. 여기서 적당히 타협해 허구적인 내용을 집어넣는다면 지금까지 애써온 보람이 없지 않은가. 만약 다에코가 완성한 '고마쓰바라의 초상'을 탐탁지 않게 여긴다면 등장인물 이름을 바꾸고 소설로 다시 꾸며 발표할 생각도 있었다. 편집자인 사토도 그 원고를 읽으면 분명 마음에 들어 할 것이다.
시마자키는 이제 이 일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이 상태로 나가면 한 작가지망생의 영광과 좌절을 생생히 묘사할 수 있을 것이다. 인터뷰 형식의 특이한 구성이라서 전통적인 3인칭 문체에 비해 고마쓰바라 준의 인간성을 더욱 세밀히 표현할 수 있다.
p. 340
헌데 이상합니다.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한 이후 묘한 시선이 느껴집니다.
누군가,
시마자키의 뒤를 쫓고 있었습니다.

황희의 빨간 스웨터 속 작가 '고미자'는 십오 년 전 가출한 딸을 찾아 헤맵니다. 전봇대마다 붙인 딸의 포스터가 물에 젖을까 걱정되어 비가 오면 달려나가고, 방송국의 아는 피디며, 형사에게 연락을 취해 딸의 이야기가 나왔냐고 몇 번이고 묻습니다. 때문에 소설가인데도 소설을 쓸 수 없습니다. 딸을 잃은 현재가 너무 힘이 들기 떄문입니다.
아침과 다름없이 하얀 화면 위에서 커서가 깜빡이고 있었다. 그녀는 빈 화면 위에서 깜빡이는 커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머릿속은 여전히 단 한 줄의 문장도 떠오르지 않았다. 작가로서의 자신의 인생이 이대로 끝나는 것이 아닐까하는 두려움이 섬뜩한 칼날처럼 가슴 한쪽을 스쳤다. 그러다가 이내 그 칼날은 무뎌진다.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이 세상의 수많은 작가와 책. 소설 속의 내용이 아무리 재미있고 위대하다해도 인생만 하랴. 인생을 제대로 살아가는 것이 한 줄의 좋은 문장을 쓰는 일보다 나은 일이리라.
p. 297
고미자에게 있어 소설을 쓰는 것은 숨을 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글을 쓰지 않는다면 삶의 의미가 없을 정도로 고미자에겐 절박합니다. 허나 딸을 잃은 후 고미자의 우선순위는 바뀌었습니다. 모든 것이 '딸'에게 집중되어버렸습니다. 머리가 하얗게 셀 정도로 그렇게, 딸만을 절절이 생각합니다. 진실에 다가갈수록 고미자는 괴롭습니다. 딸이 처했던 현실이 믿을 수 없을 만큼 끔찍합니다. 가출. 우리가 어린 시절 한 번씩 꿈꾸었던 그 교묘한 로망. 주변의 친구들이 한 번쯤 하고 돌아와서는 자랑스럽게, 혹은 약간 성숙해진 모습으로 "나 가출했었어."라고 말했던 그것의 뒤에 이런 것들이 숨겨져 있을 줄은 저는 이 책을 펴기 전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었습니다.
모든 것은 한 통의 전화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십오년간 딸의 흔적을 찾아다닌 고미자에게 한 통의 전화가 왔습니다.
"유정이유정이 알아?"
전화기 저편의 사람은 뭔가 재빨리 말했지만 감이 멀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누구시죠? 잘 안 들려요. 좀 더 큰 소리로... ..."
"유정이 살아 있어. 딸도 낳았어. 유정이 데리고 가고 그 애도 데리고... ..."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상대의 말을 듣고 있던 고미자의 표정이 갑자기 멍해졌다. 그녀의 숨결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어둠 저편에서 전화기를 붙잡고 있는 익명의 존재는 지금 실종된지 15년 만에 시신으로 돌아온 그녀의 딸, 방유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살아있다고? 소름이 돋았다. 혼란이 거대한 파도가 되어 그녀를 덮쳤다.
p. 35
고미자는 이 전화 한 통을 받고 차츰 딸의 가출 뒤에 숨겨진 진실을 알게 됩니다. 인신매매. 21세기, 사어가 되었을 줄로만 알았던 그 단어가 여전히 극성을 부리고 있고, 자신의 딸이 그 인신매매의 피해자가 되었었다는 사실을 알고 만 겁니다. 때문에 고미자는 일어섭니다. 자신의 딸이 겪은 인신매매의 진실에 접근합니다.

사실 저도, 8월에 제 자신이 등장하는 추리소설을 한 편 탈고했습니다. 물론 또 고치게 되겠으나, 아무래도 자기 자신을 추리소설 속에 소설가로 등장시키는 것은 작가들의 큰 로망인 듯합니다. 그밖에도 너무나 많은 추리소설 속에서 추리소설가가 등장하니까요. 만화로는 그 유명한 명탐정 코난 시리즈에서 코난의 아버지가 추리소설가로 나오고, 만화 명탐정 김전일의 할아버지 긴다이치 코스케시리즈만 도 추리소설가가 서술자로 등장합니다. 그밖에 최근 우리나라서도 큰 인기를 끄는 미쓰다 신조의 도조겐야 시리즈가 있지요? 또 작가 스스로가 자신을 작가로 등장시키는 경우로는 아리스가와 아리스, 미쓰다 신조, 노리즈키 린타로 등이 있겠고, 영미권에서는 너무 많아 일일이 대기가 힘드니까 이왕 아리스가와 아리스 이야기한 것, 앨러리 퀸 한 명만 말하고 넘어갑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