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딧불이의 무덤
노사카 아키유키 지음, 서혜영 옮김, 타카하타 이사오 그림 / 다우출판사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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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살아남은 나는 비겁하게도, 행복합니다.

노사카 아키유키가 쓰고 다카하타 이사오가 그린 ‘반딧불이의 무덤’



얼마 전 아츠키 히로유키의 ‘대하의 한 방울’ 리뷰를 올렸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고 전쟁이라는 것은 승패와 상관없이 사람을 상처 입힌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당시의 리뷰에서 이야기했듯, 아츠키 히로유키는 우리나라가 광복을 했던 당시 우리나라하고도 평양에 있었습니다. ‘대하의 한 방울’ 에피소드 중간 중간, 패전국의 국민이었기 때문에 러시아군의 감시 하에 있었던 당시의 공포를 회상합니다.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최선조차 죄악감을 느낀다며 자신을 비겁자라고 말합니다.

 

저는 살아남은 것이 비겁하다는 말에 의아하면서도 섬뜩했습니다. 어찌하여 이런 생각을 했을까.


생각의 이면에 담긴 작가의 목소리를 가만히 들여다보다 보니 그 죄책감의 원천이 ‘일본이 패배한 것은 우리 탓이다’라는 자책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 생각이 작가의 창작원천이 되어 아츠키 히로유키는 깊이 있는 작품으로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기, 또 다른 작가가 있습니다. 우리에겐 미야자키 하야오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으로 더 익숙한 ‘반딧불이의 무덤’, 그 작품의 원작자이자 이 작품으로 나오키상을 거머쥔 노사카 아키유키입니다.



“... 나를 규정하자면, 불탄 터에 자리잡은 암시장으로 흘러든 도망자라고 하는 게 좋을지 모르겠다. 공급으로 인해 불길이 치솟는 아수라장과 뒤이은 혼란 속에서 부모를 잃고, 나 혼자만이 살아남았다. 불타는 집을 향해 단 한 마디, ‘부모님’을 불렀을 뿐, 나는 곁눈질도 한 번 하지 않고 산을 향해 뛰어 달아났으며, 그때의 뒤통수가 당기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다. 드디어 소년원에 들어가 기아와 추위 탓에 차례로 죽어가는 소년들 속에서 나만이 마치 동화 속의 주인공인 양 행운을 잡아 가정생활로 복귀했다. 여기서도 나만 도망쳤다. 뒤도 안 돌아보고 내달았다. 나 자신에 대한 어리광인지는 모르겠지만, 역시 뒤통수가 근질거린다. 나는 늘 도망치고 있다.”  (pp.154~5)



‘반딧불이의 무덤’의 시작은 한 역사驛舍입니다. 한 소년이 병들어 죽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소설은 담담히 이야기를 꾸려나갑니다. 다음은 공습의 시작입니다. 이 소년에게 이러한 일이 생겼는가를 공습의 시작, 어머니의 죽음, 친척집의 더부살이, 오누이의 방공호 생활, 그리고 죽음이라는 담담한 과정을 통해 소개합니다. 너무나 담담해 당황스러울 정도로 어조가 차분합니다. 문장이 흘러 문단이 되더니 한 쪽을 넘기자 한 장이 흐릅니다. 단어와 단어사이 인간 군상이 죽습니다. 누구나 죽을 수밖에 없는 측은한 생명체라고 말하듯 이야기가 흐릅니다. 전쟁의 참상, 폐허에 남은 아이들의 소리 없는 통곡, 그 안에서도 어떻게든 희망을 찾으려 인형팔뚝보다 얇은 팔을 들어 허공을 흐느적거리는 소녀, 다음 날이면 죽어버릴 하루살이 반딧불이를 보며 헤헤 웃는 피골이 상접한 얼굴, 그 죽음 속에서 죄책감을 느끼고 결국은 죽어버리는 한 소년을 이야기합니다.

 

 

이제 세츠코는, 걸음을 옮겨 놓을 때마다 꼭 끌어안고 손에서 놓지 않던, 목이 달랑거리는 인형조차 안을 힘이 없었다. 새까맣게 더러워진 인형의 팔다리가 세츠코의 팔다리보다 통통할 지경이었다. 세이타는 세츠코를 안고 슈쿠가와 제방에 퍼질러 앉았다. 그 옆에서 한 남자가 얼음 실은 리어카를 세워놓고 얼음을 삭삭 톱으로 자르고 있었다. 세이타는 톱밥처럼 갈려나온 얼음 부스러기를 주워 세츠코의 입술에 대준다.

“배 고프니?”

“응.”

“뭐 먹고 싶니?”

“튀김에, 생선회에, 우무.”

예전에 세이타는 튀김을 싫어해서, 집에서 키우던 ‘벨’이란 이름의 개에게 몰래 던져 준 적이 있었다.

“더 없어? 먹고 싶은 거 말해 봐. 그 맛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좀 낫지 않니?” (pp.134~5)



누구나 투정이 많은 어린 시절이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전쟁을 직접 겪지 않았고, 먹을 것이 부족해 본 적도 없습니다. 가끔은 불안함에 쫓기는 생활을 하기도 하였으나 지금 우리는 이렇게 컴퓨터도 있고, 핸드폰도 있습니다. 적어도 지금 당장 배를 굶으면 어쩌나 걱정할 필요가 없는, 누군가에게 보호받지만 보호받는 사실을 쉽사리 깨닫지 못하는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무언가 재미난 것을 찾습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우리는 이미 특별한 매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다만 이 특별한 매일의 평온한 생활을 깨닫지 못하기에 우리는 가끔 불평불만과 불행하다는 말을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쑥스러운 이야기를 하나 덧붙입니다. 전 몇 번이고 죽음의 위기를 넘겼습니다. 갑작스레 찾아온 죽음은 너무나 평온해서 곁에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잠을 자고 있었을 뿐인데 죽어가고 있었다더군요. 그대로 잠들었다면 호흡이 멎었을 것이란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 그냥 웃었습니다. 살아있으니까 됐어요 하고 말했습니다. 간호사와 의사선생님, 우리끼리의 비밀로 해요, 라고요. 살아남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숨을 쉬는 지금이 얼마나 감사한지, 나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이후로 많은 것이 하고 싶어졌습니다. 아주 조금씩 하고 싶은 일을 해내기 위하여 나에게 무엇이 부족한가 생각하고 또 생각하여 실천하였습니다. 지금도 골똘히 여러가지를 궁리 중입니다만 한없이 부족하기만 합니다. 때문에 몸이 썩어문드러질 때까지 무엇이든 배우고 싶고 많은 것을 알고 싶습니다. 잘 살고 싶습니다. 나 혼자가 아니라 내가 아는 모두와 함께 잘 살고 싶습니다. 아니, 제가 모르는 사람도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 나 때문에 행복하다면 즐겁습니다. 나 때문에 살아있음을 느낀다면 웃음이 나옵니다. 지금 이 순간 살아있어서 그런 당신을 볼 수 있어서 저는 지금, 너무나 행복합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가슴 속에 품고 사는 문장을 덧붙입니다. 역시 전쟁을 몸으로 겪은 일본의 대 작가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중편 ‘서예강습’ 185페이지에 나오는 문단입니다.



평온한 생활이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 가와카미는 절실하게 느꼈다.

지옥을 겪어 본 사람이 아니면 모른다.

평범하고 지루한 일상에 불평을 흘리는 자는 그것이 얼마나 귀한지 모르고 있다.

죽을 것 같은 고뇌를 경험한 자가 아니면 고요함의 가치를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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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자살 미스티 아일랜드 Misty Island
도진기 지음 / 들녘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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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자살을 꿈꾸는 때가 있습니다. 심한 분노나 공포, 슬픔이나 아픔이 사람의 마음을 좀먹어 삶을 포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계기는 아주 사소한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 순간만큼은 자신에게 절실했기 때문에 그런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죽음을 무사히 넘깁니다. 잠시 동안의 슬픔, 고통, 아픔, 분노 안에서 유유히 흐르다가 또 다른 삶으로 이어집니다. 죽음을 꿈꿀 만큼 힘들었기 때문일까요, 조금은 더 강해졌다는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이럴 때 상상해 봅니다. 모든 사람들이 죽음을 꿈꾸고 바로 죽을 수 있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될까요.

 

이 세상,

존재할 수 있을까요.

이런 세계가 존재한다면,

우리는 약한 부분만을 자살시키는 ‘정신자살’을 꿈꿀 수도.

 

그래서 나는 진정한 자살을 꿈꾼다

도진기의 ‘정신자살’



한 남자가 있습니다. 이름은 길영인, 이 남자는 일 년 전 아내 한다미가 사라진 이후 자살을 꿈꿉니다. 허나 죽기는 두렵습니다. 죽는 것은 괜찮지만 그 순간의 육체적 고통이 두려운 것이지요. 그리하여 길영인은 인터넷을 뒤지다가 우연히 정신자살연구소를 찾아냅니다. 이곳에서 만난 ‘이탁오박사’에게 거금을 주고 정신자살시술을 받기로 계약합니다.


그렇다면 정신자살이 도대체 무엇이냐.


(전략) 길영인 씨께서 정신의 자살을 택했다면, 방법은 육체적 자살보다 훨씬 쉽고, 고통 또한 없습니다. 물론, 정신자살 자체가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방책이기도 하고요. 외과적인 수술은 아닙니다. 고뇌의 원인은 다양한데, 뇌의 어느 특정 부위를 잘라내거나 손을 본다고 하여 끝낼 수 있는 게 아니죠. 잘못 건드리면 뇌의 기능이 정지하거나, 저능아를 양산해낼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목적은 정신의 파괴이지 바보의 제조가 아니니까요. 또 여기 사무실 안을 보시면 알겠지만 외과적인 장비 따위는 일체 없습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최면요법을 사용합니다.

(p.49) 



헌데 길영인이 정신자살시술을 받기로 한 이후 자꾸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납니다. 우선 일 년 전 사라진 아내 한다미의 주변사를 알게 되었습니다. 한다미는 길영인 몰래 만나는 남자들이 있었습니다. 길영인은 이들을 찾아가고, 점점 아내의 가출이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고 확신합니다. 연이어 일어나는 살인사건들. 사건들은 점점 더 한다미의 가출과 길영인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의 연관성을 조명합니다.


이 상황에서 사건에 관심을 보이는 이가 등장합니다. 어둠의 변호사 고진입니다. 고진은 길영인 때문이 아니라 정신자살연구소의 소장인 이탁오 박사와 악연입니다. 고진은 4년 전 우연히 이탁오 박사와 알게 된 이후 묘한 살인사건으로 인연이 아닌 악연이 되어버렸습니다. 이후 고진은 이탁오 박사와의 승부(?)를 마음 속 깊이 담아두고 있었는데요, 이번 사건으로(처음엔 얽힐 줄 몰랐지만) 다시 이탁오 박사를 만납니다.


정신자살의 이야기 전개는 상당히 복잡합니다. 일단 시점이 두 가지입니다. 길영인과 고진 변호사 주변의 3인칭 관찰자 시점. 이 두 가지 시점을 교차로 보여주며 이야기를 진행시키며 거미줄과 같은 복잡한 얼개를 짭니다. 때문에 이야기가 어디로 튈지 알 수가 없습니다. 중간중간에 보이는 에피소드의 트릭들은 맞출 수 있어도, 마지막 반전을 맞추기는 무척이나 힘이 듭니다.

허나 모두 보고 나면 이 모든 이야기 속에는 반전에 이르는 힌트가 숨겨져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이것 참, 깨끗하게 “제가 졌습니다.”라고 승복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게다가 이 이야기 속에는 인간에 대한 철학적 고찰도 숨어 있습니다.


 

흥미롭더군, 역시. 인간은 누구라도 다르지 않았어. 사람들은 타인의 불행을 호들갑스럽게 동정하지만, 과연 내면에서도 그럴까? 상투적인 감상주의를 연기하고 있는 건 아닌가? 아무도 보지 않는 골방에서, 뒷감당 걱정 없이 결정하라면 그들은 어떤 모습을 띨까? 사람들은 조용히 그리고 확실히 자신의 주머니를 가장 먼저 들여다본단 말일세. 어느 누구라도 말이야. 자신의 목숨과 만 명의 목숨이 걸린 문제에서 인간은 어느 쪽 스위치를 누를까? 아, 만 명이 부족하다면 백만 명은 어떤가? 백만 명이 죽어 자신이 산다면? 그것이 아니라면 그 반대편을 가볍게 하는 건 어때? 목숨이 아니라 자신의 전 재산과 백만 명의 목숨, 자신 가족의 생명과 백만 명의 목숨이라면? 난 들키지 않고 책임을 지지 않는 조건 하에서는 인간은 주저 없이 자신 쪽을 보존하는 스위치를 누른다고 생각해. 무균 상태에서는 말이야. 그들이 유별난 욕심쟁이라고 생각하나? 절대 아냐. 보통 사람이야. 사람은 누구든 양심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선악을 선택해. 각자의 저울은 천차만별이라도 그 눈금은 하등 다르지 않은 게 인간이야. 인간이란 동물, 참으로 재밌지 않나... ...

(p.357)



이 묘한 이야기는 이야기의 마지막 한 장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충격적인 결말의 마지막 한 장, 이 결말은 아주 오래전부터 많은 작가들이 써왔습니다만 이번 결말 역시 신선했습니다. 때문에 저는 생각했습니다.


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일까.

일신의 안위를 위해 모든 것을 던졌다면,

인간이기를 포기했다면 그것을 인간이라 할 수 있을까.

인간이기를 포기했다면 그 순간 결국... ...

그 인간은 완벽한 정신자살에 이른 것이 아닌가, 하고.

때문에 저는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괴롭다고 하더라도 선택을 내려야 할 때가 된다면,

인간이길 포기하기보다 죽어주겠다,

인간답게,

아무리 네가 날 슬프고 화나게 해도 티를 내지 못하고 그저 헤실거리는 비겁한 인간답게,

인간으로써 죽어주겠다, 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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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문장 못 쓰는 남자
베르나르 키리니 지음, 윤미연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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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도 모르게 손이 가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이 그렇습니다. 블로그 이웃들의 덧글처럼 이 책은 정말이지 제목이 카피문구입니다. 아주 강력한 카피문구. 사실 카피문구만 좋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이네요. 내용도 괜찮습디다. 이유도 있습디다. 이 카피문구에 어울리는 아주 제대로 된 이유가.

 

이유 있는 웃음이 좋다

베르나르 키리니의 ‘첫 문장 못 쓰는 남자’

 


사랑도 아닌데 운명처럼 다가오는 책들이 있습니다. 생소한 느낌의 제목에 흠칫 놀라지만 일단 집어 들고 조금 지나고 나면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게 됩니다. 작년 이맘때에 만났던 엔리케 빌라 마타스의 ‘바틀비와 바틀비들’이 그랬습니다. 이 책은 전체가 주석입니다. 주석 안에서 수많은 작가들의 이야기를 합니다. 단순한 작가가 아니라 ‘글을 쓸 수 없는 작가’의 이야기를 말이에요. 것도 아주 특별한 형식, 모든 소설을 주석으로 적는 놀라운 실험으로! 저는 이 책이 서술방식은 물론 그 내용 역시 무척이나 감명 깊었습니다. 세상에나! 그렇지! 글쓰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그리고 일 년 만에 만난 책. 이 책 ‘첫 문장 못 쓰는 남자’는 ‘바틀비와 바틀비들’을 닮았습니다. 아니, 이 책의 작가 베르나르 키리니는 ‘바틀비와 바틀비들’을 오마쥬했다고 당당하게 밝힙니다. 

  

피에르 굴드가 자신의 소명을 찾은 것은 바로 스페인 작가 엔리케빌라 마타스의 『바틀비와 바틀비들』을 읽으면서였다. 그 놀라운 책은 무능한 필경사인 화자가 어떤 상상의 텍스트 페이지 하단의 주석들처럼 구상한, 번호를 매긴 단락들의 형태로 전개된다. 그리고 그 모든 단락은 동일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자신의 자리를 절대로 떠나려 하지 않으면서 사무실 안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는, 허먼 멜빌의 소설 『필경사 바틀비』의 주인공의 이름을 딴 바틀비들. 화자가 생각하는 것처럼 바틀비들은 종이에 글을 한 줄도 쓴 적이 없거나, 아니면 겨우 한 줄을 써놓고 결국 글쓰기를 포기한, ‘아무것도 쓸 수 없는 상태에 빠진’ 작가들이다. 그래서 엔리케 빌라 마타스는 “현대문학의 가장 혼란스럽고 아찔한 시도의 오솔길에서 ‘거부’의 미로를 산책해보라”고 독자들에게 권한다. 즉, “글쓰기란 과연 무엇인가를 자문하고 글쓰기의 불가능성 주위를 서성이며 맴돌아보라”고 말이다. (pp.223~4)

 

 


단편선의 한 작품  『단검에 찔린 유명인들에 관한 안내서』 의 서두입니다. 시작부터 특이합니다(웃음). 아니 이건 무슨 해설? 혹은 평론인가? 싶지만 이 소설은 이렇게 밖에 쓸 수 없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바로 이 단편소설의 제목 『단검에 찔린 유명인들에 관한 안내서』 때문입니다(단편소설인데 제목을 단행본으로 적었습니다). 이 단편소설은 ‘바틀비와 바틀비들’이 주석으로 소설을 장식했듯, 단검에 찔린 유명인들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거든요. 물론 그것만 있다면 서운하죠. 이유 있는 풍자, 웃음을 위한 소설가의 시선도 들어 있어요.

 

프랑스 문학 가운데 가장 유명한 첫 문장을 둘 꼽으라면 그것은 분명히 “오늘, 엄마가 죽었다”와 “오랫동안 나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일 것이다. 굴드는 그 문장들을 하나씩 큰 소리로 여러 번 되풀이해 발음해보았다. 그 문장들은 언뜻 보기에는 별로 신통할 게 없다. 하지만 그 문장들의 단순함 그 자체가 진정한 천재성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은 확실히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문장들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서부터, 우리는 그 각각의 문장들이 앞으로 전개될 그 걸작의 내용과 꼭 들어맞게 의도적으로 구상된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마치 프랑스어가 원래부터 그처럼 완벽한 단어들의 조합, 프루스트나 카뮈 같은 사람들이 발견할 수 있는 그런 멋진 조합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져 있는 것처럼 말이다. 굴드는 완벽한 첫 문장들이 주변 공기 속에 흩어져 떠돌고 있지만 위대한 작가들만이 그것을 발견하고 포착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위대한 작가는 당연히 위대한 책을 쓰기 때문에, 위대한 책들에는 언제나 완벽한 첫 문장이 있다. (pp.11~2)

 

 


표제작인 '첫 문장 못 쓰는 남자'도 오마쥬입니다. 바틀비와 바틀비들의 이야기처럼 이 소설은 말 그대로 소설을 쓸 수 없는 남자 피에르 굴드를 이야기합니다. 피에르 굴드는 첫 문장을 쓸 수 없어서 두 번째 문장부터 쓰려고 결심했는데 생각해 보니 이거, 다른 사람이 모르면 첫 문장 되는 거죠? 그래서 그는... ... 짓을 합니다! 궁금한 분들은 직접 펼쳐 보세요.


특히 마음에 들었던 작품이 ‘거짓말 주식회사’였습니다. 말 그대로 거짓말을 파는 회사가 있답니다. 헌데 이 회사가 요즘 경영상태가 안 좋다네요. 아, 질 좋은 거짓말 쏟아내기 힘들어요. 게다가 요즘엔 거짓말이 탈진(?)상태예요. 오죽하면 제대로 된 거짓말을 쏟아내는 소설가 찾기가 힘들까! 그런 식의 이야기를 조잘조잘되는데 이것 참, 자꾸만 빨려 들어갑니다.


 ‘내 집 담벼락 속에’도 참 좋았어요. 혹시 아시나요? ‘벽을 드나드는 남자’ 라는 소설.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남자는 벽을 드나드는 능력이 있었잖아요. 그러다 결국 벽에 갇혀(?)버리고. 헌데 이 남자가 실제로 존재했다면, 심지어 ‘내 집 담벼락’에 있었다면 어떻게 될까요? 게다가 그 남자를 마침내 벽에서 분리해내는데 성공했다면? 이 남자는 현대시대를 보며 무슨 말을 할까요?


‘펼쳐진 책’과 ‘가게들(아홉 편의 짧은 이야기)’도 참 독특합니다. 이 소설들은 단편소설 속의 엽편소설로 이루어져 있어요. 이야기와 이야기가 차곡차곡 이어져서 마치 펼쳐진 책의 부분을 훑는 듯하달까요? 아! 그리고 '거짓말주식회사'와 '블록', '마지막 연주'는 꼭 잊지 말고 찬찬히 챙겨보세요. 여러분은 뜻밖의 ‘무언가’를 발견하고 웃게 될 거예요.


어제 이 책을 읽게 됐다고 했을 때 이웃님들 중 한 분께서 이 작가의 또 다른 책 ‘육식 이야기’를 말씀해 주셨더랬어요. 아무래도 저, 이 책도 사서 읽을 것 같네요. ‘다른 남자’를 읽고 나서 ‘책 읽어주는 남자’를 읽을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저는 아무래도 읽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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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랫 패러의 비밀
조세핀 테이 지음, 권영주 옮김 / 검은숲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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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이벤트에 별로 참여를 안 하는 특급변소입니다만 이번에는 무슨 바람이 불어서 프리뷰 이벤트에 신청했습니다. 책 제목부터 독특합니다. 브랫 패러의 비밀. 브랫 패러가 도대체 뭐길래(사람인가 아닌가) 또 무슨 비밀이 있기에 이런 비밀이 붙었을까요. 잠깐 들여다 보기로 합니다.


우아한 서러브레드 형 미스터리

브랫 패러의 비밀


사람이 살다 보면 하나 둘쯤 말 못할 비밀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착한 거짓말이든 나쁜 거짓말이든 거짓말은 나쁜 것이고, 거짓말을 들은 사람은 진실을 알았을 때 큰 상처나 충격을 받기 마련입니다. 이 소설 속에 나오는 브랫 패러(사람 이름이더군요) 역시 하나의 거짓말을 가슴에 안고 있습니다. 바로,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이라고 말하는 거짓말.


브랫 패러, 이 청년은 불운합니다. 고아원에 버려진 이후 홀로 자라났습니다. 어디고 정붙일 데 없이 떠돌다가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말이 무척 좋아 그렇다면 말을 돌보며 평생 살겠다 생각했는데 그만 사고를 당해 한쪽 다리를 절게 되었습니다. 앞길이 어찌될지 자신도 알 수 없는 브랫 패러의 앞에 한 남자가 나타납니다. 당신과 꼭 닮은 남자를 안다며, 그리고 그 남자는 ‘죽은 쌍둥이 형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 순간 브랫 패러에게 유혹이 찾아듭니다. 자기 자신이 아닌 또다른 누군가를 연기하여 앞길을 찾자는 결심을 해버립니다. 그리하여 그 결심이 성공한 순간 브랫 패러에게 공포가 밀려듭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됐나? 대체 자신은, 브랫 패러는 무슨 생각이었나? 그런 일을 자신이 해낼 수 있을 줄 알았나? 애초에 왜 그런 계획에 찬동한 건가? (p.113)


이렇게 켕기는 기분이 아니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들이 정말 자기 가족이고, 접시 옆에 놓인 선물이 정말 자기 것이며, 정말 자기 생일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가족들에게 축하받는 생일은 참 멋진 것이구나. (p.255)


 

비밀, 거짓말은 처음 할 때에만 좋습니다. 그 순간을 모면한다면 그만이니까요. 하지만 그 순간이 지나면 어떻게 될까요. 남은 것은 죄책감뿐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혹시라도 진실을 알고 있었다면, 그 때문에 깊은 상처를 받았다면, 그 때문에 나를 내쳐버린다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입니다. 브랫 패러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처음엔 거짓말을 하여 자신을 잃어버린 쌍둥이라 인정받아 좋아했으나 점차 무거운 죄책감이 가슴을 옭죕니다. 가족들이 자신에게 잘 해줄수록, 그들이 좋아질 수록 브랫 패러는 더더욱 묵직한 죄책감에 억눌립니다. 또 쌍둥이 동생인 ‘싸이먼’이 자신이 쌍둥이 형인 ‘패트릭’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하자 더욱 불안해집니다. 브랫 패러는 이 존재하지 않는 마음의 감옥에서 벗어날 길을 찾습니다. 허나 그리 쉽게 방법이 떠오를 리 없습니다. 그러던 중, 브랫 패러의 머릿속에 의구심이 떠오릅니다.

 

패트릭은 정말, 사고사였을까?

 

이 의문은 브랫 패러에게 새로운 방향으로의 전환점이 됩니다. 그리하여 브랫 패러는 자기 자신이지만 자기 자신이 아닌 ‘패트릭’의 죽음에 접근합니다. 또, 그 접근하는 과정에서 브랫 패러는 자신의 존재 의의를 ‘애써’ 만들어냅니다.


자신이 이토록 기이한 식으로 레체츠에 온 것은 혹시 살인을 밝혀내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그는 지구를 반바퀴 돌아와 거리에서 로딩과 마주쳤다. 그렇게 기묘한 우연은 운명일 게 틀림없다고 스스로를 설득했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 중요한 운명이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지금 와서 보니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운명이었다. (p.354)


그리하여 브랫 패러는 자신(?)의 죽음을 파헤쳐 갑니다. 하지만 브랫 패러의 뒤에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


‘브랫 패러의 비밀’은 이처럼 탁월한 기술로 비밀과 거짓말을 다룹니다. 동시에 시대성도 풍부합니다. 영국하고도 전쟁 후(아마도) 서러브레드를 비롯한 명마들을 키우는 아직 근대성을 간직한 시골 가문, 이 가문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건들을 미스터리라는 형식을 통해 실감나게 그려냅니다. 특히 가문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수많은 말들과 그 동작 표현이 압권입니다. 주인공의 미스터리 구조 외에 이 다양하고 역동성 넘치는 상황들, 놀라운 표현들이 ‘브랫 패러의 비밀’을 읽는 또 하나의 재미라 하겠습니다. 하지만 너무 기대만 하면 곤란합니다. 이 작품에도 우리가 흔히 말하는 번역투라는 것이 존재하니까요. 때문에 여러분께서는 “오, 우리는 지금 말 구경을 하고 있어.”라는 기분으로 가볍게 이 책 한 권 들고, 담요로 몸을 감싸고, 어디 벽난로 앞에라도 앉아 읽어주시면 참으로 감사하겠습니다(그런데 내가 왜 감사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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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를 빌려드립니다
홍부용 지음 / 문화구창작동 / 201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초등학교 때, 누구나 짝꿍에게 연필 한 자루, 샤프 한 자루쯤 빌려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지우개는 반 토막을 내서 돌려준 적도 있을 텝니다. 허나 빌려주는 것은 좋으나 돌아왔을 때의 모습이 달라졌다면 어떨까요. 또 빌려줄 수 없는 물건인데 억지로 빌려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면?

 

이 책에서는 정말 말도 안 되는 걸 빌려줬습니다.

말 그대로 ‘아빠’를 그만, 빌려줘버렸어요.


아무거나 빌려주면 큰일납니다?!

홍부용의 ‘아빠를 빌려드립니다’

 

한 남자가 있습니다. 대단한 대학을 나왔건만 회사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해 결국 백수가 되어버린 이름처럼 태만한 태만. 결혼하고 잘 해준다더니 마누라가 미장원을 운영해 버는 수입을 갖다 날름날름 용돈으로 써먹는, 그런 주제에 쇼핑호스트 강미연만 보면 침을 흘리는 나쁜 남편, 그런 주제에 딸네미하고도 잘 놀아주지 않는 나쁜 아빠, 태만. 이 태만에게 그만 큰일(?)이 생겨버렸습니다.

 

딸네미가 아빠를 친구에게 빌려 줘버린 겁니다.


“잠깐만요! 잠깐만!”

흥분한 태만이 소리를 질렀다.

“그러니까, 엘리펀트 데인지 뭔가 때문에 아빠를 오라 했다고?”

“선생님이 나에겐 쓸모없지만 다른 사람에겐 쓸모가 될 만한 물건을 가져오라고 하셨거든.”

아영이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태만은 머리가 빙빙 도는 것 같았다. 화내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쓸모없는 물건 취급하는 지수보다 쓸모없는 물건이라며 교환하겠다는 아영이 더 미웠다. 지지배. 도대체 아빠를 뭘로 보고. 태만은 아영을 째려보았다. 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그때까지 태만과 아영 사이에서 눈치만 보던 담임이 끼어들었다.

“아영아, 아빠는 물건이 아니잖아.”

"하지만 엄마는 늘 아빠를 쓸모없는 물건이라고 하는 걸요.” (pp.16~7)


어린아이의 장난이라고 웃고 지나치면 좋을 일일텐데 이런! 문제가 생거버렸습니다. 태만의 딸, 아영과 같은 반 친구인 ‘진태’가 아영이의 아빠를 달라고 한 겁니다. 엥? 이게 무슨 상황?! 태만은 당황스러운데, 진태는 아빠가 없답니다. 아빠가 없으니 아빠가 갖고 싶은 거죠. 이런! 쓸모없는 물건의 교환이 제대로 이뤄졌어요! 처음엔 당황스럽습니다. 울컥 하고 진태에게서 벗어나려고 합니다. 헌데 이게 왠 일입니까! 진태의 엄마가 태만이 넋을 놓고 보는 쇼핑호스트 강미연입니다! 아주 살판났습니다. 여우같은 마누라와 토끼같은 딸네미가 있으면서도 예쁜 여자를 보자 침 질질, 다 좋답니다. 우와, 이래도 됩니까?!


“고맙습니다.”

미연이 태만 쪽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별말씀을, 말씀만 하십시오. 남자의 손길이 필요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고쳐드리겠습니다.”

태만은 남자의 손길이라는 말에 유독 힘을 주며 말했다. (p.25)


 

물론 알콩달콩한 아빠놀이는 얼마 못 갔습니다. 바로 혼쭐이 났죠, 여우같은 마누라한테. 흐흐. 태만은 본래의 백수 아빠로 돌아옵니다. 헌데 응? 이상한 일이 생겼어요. 자꾸 전화가 와요. “아빠”를 찾는 전화가요. 도대체 무슨 일이지?! 하는데 인터넷에 이상한 글이 떴네요?


 

아빠를 빌려드립니다. 아빠의 손길이 필요하신 분. 형광등 갈기가 어렵거나, 못질을 못하거나, 아이들과 놀아줄 친구 같은 아빠가 필요하신 분.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p.55)


이게 왠 날벼락이랍니까! 아빠를 빌려주다뇨! 태만은 기가 막하셔 쳐다봅니다. (범인은 네 주변에 있다!) 헌데 화를 내는 것도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 태만은 이 사업(?)에 큰 흥미를 보입니다. 와, 세상에 아빠가 필요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아빠가 되어주는 것, 꽤 괜찮은 사업이에요! 보람도 있고!


 

“저, 부탁이 있는데... ...”

소연의 말에 태만이 살짝 긴장했다.

“부탁요?” 

“네. 가끔 아빠를 빌려도 될까요?”

가슴 저 아래에서 묵직한 뭔가가 울컥 하고 올라왔다. 단 한 번도 느끼지 못한 이 감정의 정체를 태만은 알지 못했다. 그러나 기분은 좋았다. 자신을 찾는 사람이 있다니. 비로소 삶의 의미를 찾은 듯했다. 태만은 진심을 담아 대답했다.

“그럼요. 저도 아름이 같은 딸이 생겨서 든든합니다.” (p.107)


그리하여 태만은 본격적인 아빠 렌탈 사업을 시작합니다. 수많은 아빠가 필요한 사람들을 보며 서서히 ‘진정한 아빠’란 무엇일까, 우리 시대에 부성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생각합니다. 그 생각이 가슴을 울립니다. 저도 모르게 잠시 낮게 읊조려 봅니다. “아빠”라는 단어가 낯설어서 “아버지”라고... ...

 

 아주 재미나게 읽어서 어떻게 서평을 써야지 했는데

마침 딱 맞춰서 재출간이 되었더군요.

 

하여 몇 자 읊조렸습니다.

이미 영화 판권이 팔렸다고 하니,

내년엔 스크린에서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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