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 일기
권남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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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일기, #권남희,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7기

 

한겨레출판사에서 출간된 일기책을 연달아 읽게 되었다. 아니, 하니포터7기 활동 도서로 직접 선택해서 읽었다. 두 권 모두 일기 형식이지만 저자의 연령대와 일기의 소재가 달라서 각기 다른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엉망으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는 팟캐스트 <일기떨기>를 책으로 출간한 것이다. 30대 세 여자가 일기로 수다를 떠는 형식으로 그 연령대의 보편적 고민부터 개인적 걱정과 상처 그리고 글 쓰는 직업군으로서의 불안과 성취감과 꿈 등을 공감 어린 시선으로 담아내고 있었다. 그들의 인생 분투기에 힘을 얻고 신선한 시선을 배우며 위로받았다. 그리고 이미 그 시기를 건너온 선배로서 절로 응원하고 지지하는 마음으로 읽었다.

 

 

 


스타벅스 일기/ 권남희 산문/ 한겨레출판


 

이번에 읽은 <스타벅스 일기>는 번역가이자 수필가인 권남희 작가가 스타벅스에서 마시는 음료와 주위 사람들 얘기를 담은 일기를 엮은 책이다.

딸을 독립시키고 홀로 지내면서 얻은 '빈둥지증후군'을 고치고 일도 할 겸 스타벅스를 찾게 되었다고 한다. 테이블 간격이 좁아 옆자리에 앉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으려 하지 않아도 들리게 되니, 그에 대해 간단한 저자의 생각을 더하여 짤막한 하루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커피 체인점 '스타벅스'

많은 이들이 찾는, 언제나 북적거리는 공간이지만, 나는 잘 찾는 곳은 아니다. 카페 가면 아메리카노만 마시는데 스타벅스 커피가 입맛에 맞지 않아서 선택권이 있다면 스타벅스를 고르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에 <스타벅스 일기>를 읽으면서 이렇게나 다양한 메뉴가 있다고? 음료에 관한 묘사를 읽으면서 왜 사진은 없는 거야? 아쉬움을 느끼다가 그러면 스타벅스 홍보물이지. 자각하는 내가 어이없어 헛웃음이 터졌다.

 

 

겨울에 시작해서 가을까지 1년여의 시간의 흐름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일기다. 음료와 번역 일과 스타벅스 오는 사람들로 채워진 이 짧은 글을 읽는 내내 웃음이 피식 터져 나와 즐거웠다. 스타벅스에서 이토록 다양한 인간 군상을 만날 수 있다니 신기한 경험이었다. 혼자 일하러 가서 동행이 있는 일반적인 고객보다는 더 주변 소리에 민감한 덕분이다. 거기에 세상을 다정하게 바라보는 권남희 저자의 시선이 더해져 사랑스러운 스타벅스 일기 에세이가 탄생했다.

 

 

 


 

 

되도록 안 들으려 하고, 주변에 피해를 주지 않으려 조심하는 저자가 자기가 관심 있는 대화 주제에 귀를 종긋하는 모습에, 극내향이면서도 아이에게는 무한한 관심을 보이는 모습에, 타인이지만 공감할 수 있는 지점에 이르면 예의를 갖춰 마음을 표하는 모습에 훈훈한 온기를 이어받았다. 따뜻한 차 한 잔과 타인들의 대화 소리를 자신의 것으로 소화시켜 글로 재탄생시키는 그는 천상 작가다.

 

딸 정하와 어머니가 자주 등장하는 가족이다. 딸 정하와의 모든 콘텐츠는 내 딸과 하고픈 미래의 모습이다. 당근 마켓에서 사기당할 뻔한 저자를 위해 앞장서 해결해 주고 잔소리하는 딸이지만 아픈 할머니를 돌보느라 지친 엄마를 위해 나고야 효도 여행도 데리고 가고, 여름휴가를 엄마와 함께 가는 사랑스러운 딸이 너무 부러우면서도 내 딸도 그럴 거라 내심 부풀어 오르게 한다.

 

 


 

 

"저승 가는 병원이다."

알츠하이머성 치매와 파킨슨병 진단으로 다니시던 병원에 장기입원하신 저자의 어머니가 요양병원인 줄 알고 친구에게 한 말이다. 얼마나 가슴이 시리던지. 이제 일흔 고개를 넘었지만 사는 내내 종합병원이었던 울 엄마가 떠올라 울컥했다. 생과 사는 하늘의 뜻이라 해도 부디 많이 아프지 마시고 오래 사시길 바랄 뿐이다.

 


 

 

주변의 이야기에 자신의 경험이나 생각을 더해 인생을 살아가는 자세를,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글쓴이 자신에게도, 읽는 이에게도 당부한다.

 

<스타벅스 일기>는 집순이였던 권남희 저자가 스타벅스에서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찾아온 변화의 결실이다. 스타벅스에 앉아 차 한 잔을 자신에게 선물하며 일을 하고 들려오는 주변의 소리에 감응하는 일이 결국 세상과 조우하는 것이었다.

스타벅스를 오가는 수많은 인파들이 전하는 소리들 중 어쩔 수 없이 들린 그 소리들에 반응하여 솔직 담백하게 오늘을 녹여낸 그의 일기를 통해 삶의 사계절을 음미할 수 있었다. 또한 그가 번역한 책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듣고 다양한 음료의 모양과 맛을 상상하는 재미까지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한겨레 하니포터 7기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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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망으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 일기 쓰는 세 여자의 오늘을 자세히 사랑하는 법
천선란.윤혜은.윤소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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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망으로열심히살고있습니다, #천선란, #윤혜은, #윤소진,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7기

 

초등? 아니 국민학교 때 숙제로 썼던 '일기' 외에 자발적으로 일기를 쓴 기억은 첫아이를 임신하고 낳고 키우면서 썼던 2년여의 태교?육아일기가 전부다. 그래서 '일기'로 소통하는 세 여자의 이야기가 궁금하고 끌렸다. 어떤 사이길래 일기를 공유할 수 있는 것일까? 일기를 소재로 한 팟캐스트를 진행할 생각을 어떻게 한 것일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물음표들을 느낌표로 바꾸기 위해 책을 펼쳐 들었다.

 



엉망으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천선란, 윤혜은, 윤소진/ 한겨레출판




 

녹색 계열의 색감이 감싸 안은 차분한 표지 안에는 세 여자를 나타내는 듯한 토끼와 개 그리고 고양이가 서로를 의식하는지, 눈길을 주고받는지 모르겠는, 적당한 느긋함을 드러내고 있다. 왠지 피식 웃음이 삐져나오게 만드는 그림이라 손으로 쓰다듬어주고 책장을 펼쳤다. 읽기 전에는 좀 더 밝은 색감이면 좋겠다 아쉬웠지만, 후에는 차분한 색감이 책이 전하는 질감과 잘 어울린다 느꼈다.

 

 

- 일기 쓰는 세 여자의 오늘을 자세히 사랑하는 법 -

세 여자 중 한 여자를 알고, 그 이름에 이끌려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바로 소설가 천선란이다. 소설로 형성된 소설가 천선란이 아닌 보통 사람 천선란(필명이라는 걸 이 책을 통해 알았네요. ^^;)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다. '일기'로 '수다떨기' 포맷인 팟캐스트인 만큼 내밀한 이야기가 펼쳐질 거니까.

 

소설가 천선란,

일기 인간 윤혜은,

편집자 윤소진.

같은 학교 동문이며 글과 관련된 직업군 안에 있다는 공통분모로 팟캐스트 '일기떨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세 여자 중 꾸준히 일기를 써왔던 혜은 외에 선란과 소진은 새로운 시도를 한 덕분에 30대 여성들이 내밀한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편안하게 꺼내 보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었다. <일기떨기>의 인기가 그 증명일 것이다. 이 시대를 지금 각자의 공간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면서 자기 홀로 감각하고 있지 않다는 동질감을 나누기에 기꺼이 그 수다에 발을 담그는 게 아닐까.

솔직히 수다 떠는 거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세 여자의 정돈된 '일기'보다 순간의 느낌과 감정이 교차하며 엮어지는 '수다'를 읽으면서 저릿저릿 해지는 경우가 많았던 걸 보면 밖으로 털어낼 수 있는 자리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이번 생에 임하는 자신의 현 모습을 이야기하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을 나누면서 마음을 다독이는 모습에 괜스레 나도 울컥했다. 혜은처럼 위기 대처 능력이 취약한 나에게 선란의 테트리스 이야기는 속을 시원하게 해주는 청량함이었다. 판이 망했다 생각들 때 막대기 하나만 들어가면 클리어 되는 테트리스를 상상하면서 미소 지었으니까. 위기나 난관은 우리의 삶에 언제나 존재하고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한 포인트이기에, 유연하게 대범하게 편하게 게임처럼 깨는 기분으로 한걸음 뒤에서 바라보는 여유를 부려야겠다.

 

알지 못했던 한 사람을 알아가는 일은 단순히 한 사람만큼의 공간이, 세상이 확장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이 책 곳곳에서 느꼈다. 혜은을 알게 되면서 혜은의 부모님과 J를 알게 되고, 선란을 통해 선란의 가족들을 알게 된다. 또 소진을 통해 소진의 가족과 남자친구를 알게 되었다. 모든 부분을 알게 된 것은 아니지만, 세 여자가 지금 서 있는 곳에서 말한 만큼 그들을 알게 된 것이다. 과거에는 어땠을지, 미래에는 어떨지 모르지만 지금 세 여자의 마음이 닿아 표현한 그만큼 그들을 보고 세 여자를 더 알게 된 것 같은 기분이다. 그들은 나를 모르는데 나만 넓어져가는 앎이 오지랖이 되어 세 여자를 그냥 응원하게 되니 참 묘한 인연이다.

 

 


 

 

엄마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혜은과 선란은 긴 간병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딸을 키우기에 엄마이면서도 딸인 나는 두 마음 모두 짊어지고 읽었다. 부디 그들의 상처가 아물어가기를, 그들이 언제일지 모를 마지막 순간까지 지금처럼 행복과 사랑과 위로를 잊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게 아니라고 믿었던 엄마가 발병 후 자신의 이름만 기억한다는 사실에 만감이 교차했을 선란을 꼬옥 안아주고 싶었고, 자신을 두고 죽고 싶다고 할 만큼 아픈 엄마의 고통을 뼈저리게 느끼고 울었을 혜은의 눈물을 닦아주고 싶었다.

 


 

"이제 나도 다 컸고 나라도 좀 자유롭게

엄마가 원하는 거, 하고 싶은 거 해도 돼.

나 그런 거 안 해봐서 몰라."

 

 


<엄마의 지구는 우리가 사는 지구보다 작다>편을 읽으면서 어느새 '엄마'에 맞춰진 나의 지구를 감각하게 되었다. 나이가 들수록 좁아져가는 지구를 내년에는 좀 더 의식적으로 넓혀봐야겠다. 제빵도 좋고 캘리그래피도 좋고 배움의 재미를 누려야지.

 


 


"아무런 이유 없이 순한 마음으로 좋아하는 것.

이제 더는 그 마음에 조급함을 느끼지 않기로 했다.

모든 것을 '그냥' 하다가

'그냥' 그만두어도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니

그냥 하고 있다는 것, 그냥 좋아한다는 것,

그냥 그만두어도 된다는 것이 참 근사하게 여겨졌다.

그 무수히 많은 '그냥'이 나를

상상도 하지 못한 장소에 데려다주곤 할 테니까."

 

 



세 여자는 돌아가며 일기를 쓰고 관련된 주제로 수다를 떨면서 일상의 모든 것을 덜어내고 나눈다. 글을 쓰면서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는 그들의 행보는 '엉망'이지만 '열심히'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짙게 묻어난다. 그들이 다른 이의 행보를 보며 위안을 얘기했던 것처럼 오늘 다른 누군가는 세 여자의 행보로 행복과 기쁨 그리고 희망을 꿈꿀 수 있을 테다.

 

정해진 틀 없이 자유롭게 그들이 짊어진 고민과 걱정뿐 아니라 성취와 감격 그리고 꿈꾸는 내일까지 방사형으로 뻗어나간다. 그들이 겪은 다채로운 경험들과 느낀 깊은 감정들이 말과 글로 바뀌어 우리에게 닿아 결국 우리의 것과 어울려 불타오르거나 소멸되거나 몽글몽글해진다. 그리고 내일을 바라보는 다정하고 따뜻한 시선 속에서 위로받고 치유받는다.

 







다른 듯 닮았고, 닮은 듯 다른 세 여자의 목소리가 궁금해지는 책 <엉망으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이다. 정리된 글, 활자 너머 생생한 현장의 숨이 녹아있는 <일기떨기>가 궁금해졌다. 유독 듣기에 메마른 나이지만 꽂히면 직진뿐이다.

 

혼자서 잘, 바르게 살기를 바라는 이에게 기대도 좋은 어깨가 있으면 기댈 수 있어야 진정 건강한 상태라는 걸, 괜찮다는 걸 느끼게 해주는 책, 이 한 권으로 따스한 겨울의 문을 열어보기를 추천한다.

 


한겨레 하니포터 7기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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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환담
윤채근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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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환담, #윤채근, #문학동네, #역사, #팩션

 

평소 기담이나 괴담을 즐기는 터라 이번에 출간된 윤채근 작가의 <고전환담>에 대한 기대가 남달랐다. 저자는 빈 공간이 많은 역사에 과감한 상상력을 더해 생명력 넘치는 이야기를 창출하고 있다. 배경이 된 역사적 사실을 알든, 모르든 우리는 무언가의 힘에 의해 새롭게 창조된 세계 속 이야기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고전환담/ 윤채근 소설/ 문학동네



 

 

무엇을 보고 느끼게 될지 모르고 떠나는 여행, 그 설렘 가득한 길에 <고전환담>의 윤채근 저자는 익숙한 것을 새롭게 보고 자기만의 역사적 진실을 찾을 수 있기를 소망하였다. <고전환담>의 환상과 사실이 뒤섞인 세계에서 역사 속 인물과 공명하는, 강렬하고도 놀라운 경험을 기대하며 책을 펼쳤다.

 

 

이 책은 주제를 달리하여 색과 결을 달리하는 이야기 모둠으로 구성되었다.

1.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 현장을 무대로 삼아 창조된 유사 현실이 펼쳐지는 <전쟁과 혁명>

2. 판타지 스릴러 형식을 통해 공식 역사 속에서 충분히 소화되지 못한 사건들의 빈칸을 허구로 채워 넣은 <현장의 미스터리>

3. 시대를 대표하는 여성들에 관한 서사를 재해석하여 기존 관점을 뒤집고자 한 <시간을 초월한 사랑>

 

 


 


 


 

 

역사적 사건에 관한 짤막한 글 형식으로 제법 많은 팩션을 만날 수 있다. 그중 강렬한 느낌을 선사하는 이야기들이 몇 편 된다. 이야기의 서막을 여는 <왜장 와키자카의 고백>을 위시하여 역사적 사실을 색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새롭게 재창조하여 사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우리를 매혹시키는 작품들이다.

 

우리 국민이 좋아하는 위인을 뽑으라 하면 절대 빠지지 않는 '이순신' 장군이 첫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이순신 장군과 와키자키 야스하루 사이의 인연을 역사적 상황에 바탕을 두고 쓰인 허구의 이야기는 강렬하다. 일본에 보관되어 있는 이순신의 육필 칠언시. 서명과 낙관까지 갖춘 이 필적에 숨겨진 진실을 찾고자 하는 호기심은 놀랍게도 그를 증오하면서도 존경한 왜장의 절절한 고백을 빌어 그려진다. 이순신 장군에게 증오와 분노, 좌절을 느끼면서도 경외를 넘어 추앙하는 왜장 와키자키의 고백으로 '이순신' 장군은 인간을 뛰어넘어 하늘이 내린 존재로 우뚝 서게 된다.

 


정여립의 기축옥사 이후 임진왜란 발발 정황을 배경으로 불온한 조선을 그려낸 <우리들의 위험한 이웃>또한 참신함을 넘은 과감한 행보였다. 기축옥사의 숨은 주역으로 알려진 미궁의 인물 '길삼봉'을 '허균'으로 설정하여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허균에 대해 단편적인 지식에 머물렀던 나로서는 놀라웠다. 허균과 광해군, 궁금증이 폭발하는 역사 메이트다. 짧은 이야기 하나가 일으키는 파장은 참으로 크다. 작가가 손에 쥔 정보로 짜 맞춘 새로운 판으로 역사적 호기심이 커지고 있으니 말이다. 진정 이야기의 힘일 테다.

 


 

"도적? 누가 도적이냐? 백성들 주린 배도 못 채워주는 임금이 진짜 도적 아니냐?

이 나라를 누가 세웠더라? 생각해 보거라.

이성계는 삼봉 선생이 만들어준 왕조에 그저 걸터앉았을 뿐이다.

임금은 백성이 필요할 때 만드는 거다.

왕은 아무나 돌아가며 하면 된다."

 

 

 


<고전 환담>은 참으로 다채로운 이야기의 장이다.

정조 시대에 강진에서 벌어진 김은애 사건을 혜경궁 홍씨의 처지와 연결 지어 풀어내고(살인자를 쫓는 밤), 고려의 빼어난 문장가 이규보가 시마(초원의 음유시인)과 계약했다는 설정으로 가질 수 없는 것을 사랑해야만 시인이 될 수 있다는 형이상적인 의견을 선보이기도(시마의 계약) 한다. 그리고 임진왜란 이후 조선 땅에 남겨진 일본인의 후손을 기녀로 등장시켜 시인과의 인연을 노래하고(칼의 가족), 프랑스 통역관 모리스 쿠랑을 통해 강대국 앞에 놓인 풍전등화와 같은 조선의 위기를 미스터리 형식으로 풀어낸다.(모리스 쿠랑 이야기)

경주에서 발견된 보물 제635호 페르시아 왕실 보검을 고대 페르시아 구전 서사시 [쿠쉬나메]에 담긴 페르시아 왕자와 신라 공주의 사랑 이야기와 연결시켜 직조한 팩션 <불과 모래의 기억>부터 황진이의 마지막을 시작으로 황진이의 불꽃같은 인생을 담아낸 <여름 여자 가을에 떠나다>까지 시대를 대표하는 여성들에 대한 서사 또한 아우르고 있다.

 


 

"이 세상은 본디 크나큰 이야기인 셈 아닌가요?

이 아우는 이야기가 덧없이 끝나버릴까 두려워 잠들지 못한답니다.

혹은 세상이 너무 재미 없어질까 불안하여 밤을 지키는 초병이 되었다라고나 할까요?"

 

 


이렇듯 <고전환담>은 이야기가 생명을 얻어 뻗어나가는 세계의 무궁무진한 힘이 담긴 소설이다. 역사와 문헌을 수집하고 연구하면서 자연스레 품은 호기심과 의아심을 글로 직조하여 또 다른 질문과 상상을 낳고 있으니 말이다.

 

 


"말을 마음에만 품고 산다면 그게 지옥인 거다.

말로 못 할라치면 글로라도 써서 뜻을 전해야 할 것 아니겠느냐?

백성들이 갇혀 있는 무명의 지옥을 우리가 깨트릴 것이다."

"입으로 하지 않은 말은 잠꼬대 같아서 한을 남길 뿐이고

글로 쓰지 않은 말은 봄기운에 녹아버릴 고드름처럼 허무한 것이란다.

아버지께서 만드신 글자로 어미의 마지막 마음을 이렇게 너에게 건넨다."

 

 


윤채근 저자는 역사적 사실을 허구의 필터로 재조명하여 무심히 넘겼던 사건의 이면과 인물의 속내를 담아냈다. 익숙한 역사적 통념을 허를 찌르는 통찰력과 찬란한 상상력으로 무너뜨린다.

 

 

 


 

 


윤채근 저자는 팩션마다 <역사와 문헌>을 제시하여 상상의 씨를 뿌린 토양을 확실히 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는 역사적 사실과 허구적 상상을 구분하되 재구성되어 퍼져나가는 이야기의 힘을 음미하고 공감할 것이다.

 

그에게 역사는 기록 너머 행간과 맥락 그리고 공백까지도 놓치지 않고 면밀히 살피는 대상이자 어둠의 장막을 거둬 진실의 빛으로 밝히고픈 상대지 않을까. <고전환담>과 함께 한 시간은 그가 던진 역사적 진실에 관한 뜨거운 질문에 나름의 답을 찾아가는, 찾아가고자 하는 매혹적인 여정이었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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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폰을 해지하시겠습니까? 창비아동문고 333
박하익 지음, 신슬기 그림 / 창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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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고학년 부문 대상 수상작인 <도깨비폰을 개통하시겠습니까?> 후속작이 출간되었다.

 


도깨비폰을 해지하시겠습니까?/ 박하익 글/ 신슬기 그림/ 창비



 

최신 스마트폰과 도깨비를 소재로 한 한국 판타지 동화로 어린이 독자들을 사로잡았던 전작을 잇는 <도깨비폰을 해지하시겠습니까?>는 SNS와 영상 공유 플랫폼을 추가하여 이야기의 힘을 확장시켰다. 요즘 초등학생들이 즐겨보고 미래 직업으로 꿈꿀 만큼 관심이 많은 영상 공유 플랫폼까지 자연스럽게 도깨비 세상에 녹여내면서 현실감을 실감 나게 살렸다.

 

 


 

 

도깨비방망이에게 주문을 외우듯 폰 이름을 정한 다음 뚝딱을 붙여 부르면 스마트폰이 나타나기도 하고, 도깨비들이 영상을 공유하는 동영상 사이트 '만리경'이 있고 '좋아요'처럼 호감을 나타낼 때 방망이 버튼을 누르기도 한다. 도깨비 밴드가 인간 아이 소리꾼을 영입하기 위해 꼼수를 부르는 등 전통과 현대, 판타지와 현실의 조화로 탄생한 이번 이야기는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성장 동화이다.

 

 


 

 

거울을 들여다보듯 자신과 비슷한 동화 속 친구들을 보면서 나름의 고민을 털어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판타지 동화이다. 박하익 작가는 전작에서 스마트폰 중독을 해결하기 위해 사용을 금지해야 한다고 단순한 주장을 펼치지 않은 것처럼, 이번 작품에서도 가상 세계에 빠져드는 상황과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공감할 수 있도록 전개하고 있다.

 

 

이번에는 갑자기 외할머니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어 반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수범이가 주인공이다. 할머니의 병환 때문에 부모님은 수범을 챙길 여력이 없고, 노래를 잘 부르셨던 할머니도 아프신 이후에는 심술궂게 변하셨다. 친구를 사귀고 싶어 아이들에게 인기 많은 가온이가 즐겨 하는 게임을 열심히 하건만 친구를 사귀는 일은 쉽지 않고, 반에서 도난 사건이 자주 일어나 '도둑'으로 오해까지 받는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힘이 나는 일은 일어나지 않고 기운만 빠지는 수범이는 우연히 도깨비 세상에 들어가 '흥얼깨비' 밴드의 가수가 된다. 그리고 인간 세상에서는 접하지 못했던 인기와 칭찬에 고무되어 도깨비가 되어도 좋겠다는 위험한 생각까지 하게 된다. 하지만 결국 음양의 조화가 깨지면서 수명이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는 알림을 받는다. 전작의 주인공 지우가 같은 반 친구로 등장하여 큰 도움을 준다. 수범은 목숨을 걸고 진실한 마음을 보여준다.

 

 



 

현실 세계에서는 자신감 없고 친구들과 어울리기 힘들어하는 기운 없는 수범이 도깨비 세상에서는 인기 가수가 되면서 가상 세계에 빠져드는 흐름이 설득력 있게 그려진다. 가상 세계에서 얻은 자신감으로 현실 세계에서도 달라진 모습을 보이는 수범이지만, 결국에는 목숨이 위험하게 된다. 하지만 이번에도 박하익 작가는 가상 세계를 포기하지 않는다.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의 적절한 균형을 이루기 위한 수범의 노력과 좋은 친구 지우의 도움이 펼쳐진다. 그리고 수범과 지우의 진실한 마음을 받아들인 어른 윤진사의 실질적인 도움과 지원으로 결국 문제를 해결한다. 

 


 


 

 

수범은 '흥을 일으키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수범이 부르는 노래에 담긴 흥이, 가족과 친구를 위해 기꺼이 기를 나눠주는 행동 속에 깃든 다정한 마음씨가 어린이 독자들에게도 큰 울림으로 다가갈 것이다. 수범의 흥 주머니가 일으킨 놀라운 변화를 직접 본 우리는 그 힘을 믿으니까.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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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동 헤리티지 - 공단과 구디 사이에서 발견한 한국 사회의 내일
박진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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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동헤리티지, #박진서,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7기

 

'당신은 구로동을 아십니까?' 혹은 '구로동 하면 떠오르는 게 있나요?'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구로디지털단지'를 언급할 것이다. 남편은 '구로공단'을 이야기했다. 제법 나이차가 나는 우리 부부는 같은 70년대생으로서 생각보다 많은 부분에서 공감대를 형성하는 편이다. 그 결과 남편은 '역시 우리는 같은 세대야'라며 흐뭇해하곤 했기에 서로 다른 키워드에 실망했다. 특히 이 책에서 나온 구로동에 대한 세대별 반응의 차이를 전해 들은 후에 더 그랬다.

 



구로동 헤리티지/ 박진서 지음/ 한겨레출판


 


박진서 저자는 구로동 토박이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24년을 죽 한곳에서 살았다니, 그만큼 구로동에 대한 마음이 남다를 듯하다. 그런 마음이 <구로동 헤리티지>라는 책으로, 형태를 지닌 구체적인 결과로 발현되었다. 흥미롭고 참신하며 날카로운 시선으로 담아낸 '박진서의 구로동'은 구로동에 국한되지 않은 우리들이 생활하는 공간의 기록이었다. 구로동, 누군가에게는 중심이나 또 다른 이에게는 변방인 그곳. 보통 변화는 중심부에서 일어난다고 여겨지는 데, 저자의 시각으로 톺아본 구로동은 분명 변화의 흐름 위에 존재했고, 존재하고, 존재할 것이라는 사실이 명확하다.

 

이미 탄탄하게 갖춰진 중심부보다 빈 공간이 있는 여유로운 변방에서 죽 살아온 터라 저자의 목소리가 더 묵직하게 다가오는 지도 모르겠다. 혹은 그가 살고 있는 구로동과 지금 내가 발을 딛고 서있는 곳이 교집합이 많아서일지도 모르겠다. 공단이 있고, 중국인과 재한 중국동포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가 많이 살고 있는 이곳에서의 일상 속 공기와 감정을 명징하게 기록한 그 덕분에 주위를 향한 나의 시선을 환기시킬 수 있었다.

 

 



 

 

24년을 살아온 동네. 그가 감각하는 동네 그 사적인 공간을 둘러싼 기억과 이야기들로 시대를 살피고 사회를 돌아본다. 잘 안다 생각했지만 익숙한 공간에서의 색다른 경험이나 동네라 인지하지 않았던 혹은 동네라 인지했지만 아닌 공간을 향한 낯선 기분들로 박진서 저자의 '나의 구로동 이야기'는 시작한다.

 

10년 전 모니터링했던 영화제가 건재할 뿐만 아니라 성장하여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에서 '화려함이 아닌 꾸준함'으로 오늘도 주어진 일을 묵묵히 헤쳐나가고자 하는 믿음을 노래한다.

 

혐오시설인 구치소 자리에 들어선 마천루에 대한 내용은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감옥은 싫지만 감옥 같은 집에서 살고 싶다?' 현대 공공 주택은 감옥과 공간적 속성이 유사한 부분이 많다. 효율성이 강조된 공간이기에 감옥 같다는 사실을 알고도 외면하고 더 많이 창출한다.

 


 

 

박진서 저자는 공항 때문에 고도 제한이 있는 동네에 들어선 고층 아파트를 보고 날카롭고 명민한 생각을 적고 있다. 이전한 구치소 자리에 들어선 마천루, 완화된 고도 제한 규정의 허가치 최대한을 적용한 45층, 재건축을 바라는 주민들과 떠나야 하는 공구 상가 주인들과 주민들의 상반된 입장 등 구치소가 떠나고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 된 공간을 보고 적어내린 문장들은 오늘날 주거 공간으로서의 '집'에 관한 상념에 젖어들게 만들었다.

 

 

'구로공단 - 구로디지털단지 - 중국인'

결혼으로 고향을 떠나 이사한 경우라, 아이들 중심으로 한정적인 관계를 맺었다. 또래 아이들을 키우면서 비슷한 고민을 공유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한 집단이다. 그런데 근년 마을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동네 사람들과의 교류가 확장되었다. 우리 동네의 역사를 배우고, 다양한 활동가분들을 알게 되면서 시야가 넓어졌다. 우리 동네만이 가진 가치를 발견하는 기쁨은 생각보다 일상에 활력을 부여했다. 아는 만큼 보이는 기적으로 좋은 점, 아쉬운 점이 예전보다 도드라져 보이게 되는 것이다.

 

 


 

 

저자가 구로동의 어제와 오늘을 바라보는 시선에서도 그와 비슷한 맥락을 읽었다. 기쁨과 자부심 그리고 걱정과 우려가 섞였지만 다채로운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었다.

공단에서 디지털단지로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산업의 형태는 달라졌다. 공단과 디지털단지에 찬사와 칭송은 쏟아지지만, 그 공간에서 일하는 노동자에게는 관심이 부족하다. 실상 공단 시절처럼 디지털단지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노동 환경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이에 대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여전히 그곳에서 일하는 당사자 본인들의 몫이다.

 

 


 

 

AI 시대, 최첨단 기술이 선도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간과하고 있었다. 기술 너머 사람을. 저자가 수면 밖으로 끌어올린 '사람'이 다시 가라앉지 않도록 기억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사람을 가릴수록 기술이 대단해 보이기 마련이기에 인간의 노동이 남긴 흔적을 지우려고 노력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고 떠올려야 한다는 저자의 말이 또렷하게 새겨졌다.

 

 

 

변방으로 떠넘겨지는 문제, 중국인과 재한 중국 동포에 대한 우려 그리고 이를 넘은 편견과 혐오를 다룬 저자의 시선 또한 인상적이다.

전가되어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문제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저 우리로부터 멀어져 잘 보이지 않을 뿐이다. 어쩌면 해결되었다고 믿고 싶은 건 아닐까 자문해 보았다. 외면하고 회피하는 것이다. 저자는 중국인 관련 불안과 혐오도 그런 맥락으로 풀어나간다. 미디어에서 만들어낸 이미지에 불안을 키우는 건 아닌지 경계한다. 편가르기가 아니라 그들에게 다가가기를 권한다.

분명 중국인, 재한 중국 동포들을 포함한 외국인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다. 그렇다면 막연한 불안과 적대감은 잠시 내려놓고 그들을 제대로 알아가고자 하는 배려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쉬운 해결책일 것이다.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저자의 포용심에 감화되는 걸까 부드러워지고 있다.

 

 

자신의 몸과 마음에 새겨진 구로동을 기록하기 위해 기억을 되짚어나가고 외부인이 바라보는 구로동을 듣고 구로동을 바라보는 시선, 이미지의 의미와 진실을 쫓는 여정이 좋았다. 행정구역 상 구로동이 아닌 '나의 구로동'을 쓰기로 결심했더니 비로소 글쓰기가 수월해졌다는 표현에서 그가 무엇을 쓰고자 하는지 전해졌다. 그의 진심이 녹아있는 <구로동 헤리티지>는 부단히 애쓰며 살아가는 우리 한국 사회의 보통 사람들이 남긴 어제와 오늘과 그리고 내일의 기록이다. 세상에 대한 통찰과 사랑과 희망이 느껴지는 20대 청년의 글은 담담하면서도 열정적인 목소리로 다채로운 가능성을 들려주고 있다. 자신이 깨달은 이 경이로운 경험을 부디 많은 이들이 함께 하기를 바라는 저자의 바람이 이루어지는 그날, 구로동에서 만나요!

 

무조건 갈등을 피하고자 하는 나에게 큰 의미로 다가온 글을 남기며 마무리한다.

 


 

 

한겨레 하니포터 7기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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