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보는 이해하면 짜릿한 상대성이론 - 빛의 속도부터 쌍둥이 역설까지 번쩍이는 물리학 이야기 만화로 보는 교양 시리즈
타냐 버브.제프리 버브 지음, 송근아 옮김 / 다른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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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과 출신인 나는 고등학생 시절 많은 과학 과목 중 '물리'를 정말 어려워했다. 그렇지만 공과대학에 진학했고, 여전히 '물리'는 어려웠다. 다행히 과 특성상 '물리'는 한걸음 뒤에 있는 존재였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상대성 이론, 중력, 마찰력, 관성의 법칙...... 몰라도 살아가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라는 굳건한 믿음으로 살아왔다.

 


만화로 보는 이해하면 짜릿한 상대성이론/타냐 버브, 제프리 버브/다른출판



이제 내 손에 들려있는 문제의 책 한 권. 『만화로 보는 이해하면 짜릿한 상대성이론』

헝클어지고 단정치 못한 헤어와 개구진 표정으로 기억되는 과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발표한 대이론 <상대성이론>에 대해 과학 작가인 딸과 물리학자인 아버지가 힘을 합쳐 일반인들이 알기 쉽게 정리한 책이다.

 

우선 막연했던 '상대성이론'에 대한 전반적인 개념을 잡아준 책이다.

'상대성이론' 'E=mc²' 많이 들어는 봤지만 와닿지 않는 단어들의 나열이었다.

이 책 또한 물리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이 부족한 나에게 짜릿할 정도의 이해를 선사하지는 않았지만, '상대성이론'이 무엇인지 소개해 주는 책으로는 손색이 없다.

특수상대성이론과 일반상대성이론을 총칭하는 상대성이론.

이 책은 특수상대성이론을 일반 독자에게 이해시키고자 하는 목표가 확실하다.

이 책이 차근차근 설명해 주는 과정을 통해 일반 독자인 나도

 


 

이 절대적이고 확실한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시간과 공간 속에서 움직이는 물체에 대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방식을 무너뜨린 이 사실은 과학자들에게도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역사상 가장 유명한 실패한 실험(마이클슨-몰리 실험)까지 나오게 되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아인슈타인이 빛의 속도를 바탕으로 실험을 하지 않고 명확하고 논리적인 사고만으로 공간과 시간, 물질의 본질을 밝혀냈다는 것이다.

 


 

이를 풀어내는 여정을 함께 하기 위해서는 좋은 상상력과 약간의 믿음이 필요하다.

그리고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기에 무한한 상상력을 펼쳐도 문제 될 게 없다.

 


 

저자는 빛의 속도로 달리거나 상대적으로 절반의 속도로 달리는 열차들을 등장시켜서 고전역학의 시간과 공간의 절대성을 무너지는 과정을 다양한 예시로 설명하고 있다. 검은 열차와 하얀 열차의 풍선으로 설명된 동시성의 상대성은 읽으면서도 오~ 감탄을 자아냈다.

 


 

뉴턴의 운동량 보존 법칙을 바탕으로 에너지와 질량의 긴밀한 관계를 '1'의 질량을 가진 찰흙을 등장시켜 등속 열차에서 충돌시키면서 설명해 주기도 한다.

 


 

아인슈타인의 쌍둥이 역설을 설명해 주면서 등장시킨 또 다른 이야기도 무척 흥미롭다.

빛의 절반 속도로 달리고 있는 하얀 열차에 서있는 나와 검은 열차에 서 있는 또 다른 내가 달걀 상자를 가지고 실험을 한다. 상자 개봉 후 1초 후 부화하고 0.15초 후 성숙한 닭이 된다는 설정인데 분명 각자의 열차에서 보면 1초 후 부화한 병아리를 다른 열차에 옮겼으니 자신이 있는 열차에는 한 마리의 병아리만, 다른 열차에는 옮겨진 한 마리의 병아리와 부화하지 않은 두 개의 계란이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는 우리가 일단정지시킨 상태에서의 이야기이고 실제로는 한 마리의 병아리와 부화된 한 마리의 닭만이 각자의 열차에 존재하게 된다. 서로 어떤 열차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동시성의 상대성, 참 놀랍다.

 

이렇게 저자들의 여정을 함께 하다 보니 개략적인 '상대성이론'의 틀이 잡혔다. 그래서 괴짜를 위한 노트 - 회의적인 상대주의자를 위하여 정리된 방정식들을 보니 머리가 빙빙 도는 게 현실이다.

 

그리고 '만화로 보는' 이 부분에 혹해서 서평단을 신청했던 나로서는 서문을 읽으면서 아쉬움을 금치 못했다. 작업대에서 사망해버린 그래픽 노블 버전의 상대성이론 책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그래픽 노블이었다면 좀 더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을까? 경험하지 못한 일에 대한 상상과 기대가 있다.

저자 부녀의 또 다른 협업인 '만화로 보는 이해하면 이상한 양자역학' 책도 만나보고 싶다.

 

물리학의 핵심 기둥인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에 대한 호기심이 있으신 분들에게 입문서로 추천하고 싶다. 한 번에 이해가 되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니 우리 좌절하지 않기로 약속하고 편하게 읽어봤으면 좋겠다.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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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밀당의 요정 1~2 - 전2권
천지혜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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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풋한 십 대 시절 감성이 퐁퐁 솟아오르게 만드는 소설을 만났다. 『밀당의 요정』

중학생 딸아이에게 물어보니 극존칭을 하면서 대답한다. 아이가 웹 소설을 읽길래 어떤 내용일까? 관심이 생겨서 『밀당의 요정』 서평단에 신청했다. 나이는 잊어버린 채 요즘 세대 로맨스 감성에 빠져보리라.

 

어렸을 때부터 만화방에서 살다시피 하고 온갖 만화잡지를 섭렵했던 나에게 로맨스물은 어린 시절 감성의 호수이다. 지금도 300여권의 만화책을 소장하고 있을 정도로 만화를 좋아한다. 만화책과 영화 DVD, 책이 내 예물이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들이 태어나 육아의 늪에 빠지다 보니 자연스레 나를 위한 독서보다는 육아, 아동 도서 위주로 읽게 되었다. 그리고 요즘에는 인문과학, 에세이, 소설로 책장이 채워지게 되었다. 이런 나에게 2022년도 웹툰 연재 확정된 웹 소설 『밀당의 요정』은 오랜만에 접하는 로맨스물이다. 손발이 오그라들어서 로코물 드라마, 영화도 잘 못 보는 여자인지라 과연 감당할 수 있으려나, 떨리는 마음으로 첫 장을 펼쳤다.

 

 

밀당의 요정/천지혜 지음/알에이치코리아


전설 속 엘프인가. 이 세계에서 뛰쳐나온 여신인가.

 

처음부터 멋진 남주와 서브 남주가 여주에게 한눈에 반한다. 여신, 엘프, 비너스라는 표현처럼 이 세상 미모가 아닌 여인이 웨딩드레스를 입고 스쳐 지나가는 장면이 영상으로 눈앞에 펼쳐졌다. 드라마 제작 관련 직종 이력의 소유자인 천지혜 작가의 내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밀당 갑이었던 '권지혁'이 사랑의 호구였던 을 중 을 '이새아'에게 한없이 빠져들어 '비혼'을 외쳤던 자신의 사랑관이 흔들리게 된다. 재벌 2세, 명석한 두뇌, 잘생긴 외모까지 어느 하나 빠질 게 없는 권지혁은 연애뿐만 아니라 사업에서도 밀당을 하며 순항 중이다. 아버지의 결혼생활과 형과 형수의 연애결혼에 대한 아버지의 태도를 보고는 비혼주의자가 되었지만 사랑만은 감정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웨딩플래너 이새아는 웨딩컨설팅 일에서는 에이스지만 사랑 앞에서는 무조건 을이다. 매번 사랑에 끌려다니기만 했다. 또 거절을 못 하는 성격으로 2달 전에 헤어진 전 남자친구의 결혼식, 그것도 자신의 로망으로 가득 찬 결혼식을 담당하게 되었다. 그 끔찍한 결혼식 당일 사고로 발이 묶인 신부 대신 대타로 웨딩드레스를 입은 모습을 보고 '권지혁'과 세계적인 사진작가 '조예찬'이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이다.

 

『밀당의 요정』은 소모성 연애에 지쳐 결혼을 하고 싶은 새아와 결혼만은 피하고 싶은 지혁과의 밀당 로맨스이다. 정반대의 사랑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석처럼 끌려 사귀게 되나 주위의 상황이 녹록지 않다. 일도 사랑도 포기할 수 없었던 지혁의 선택에 결국 지혁은 건설사 상무에서 자회사 웨딩홀 대표로 좌천하게 되고 새아와 삐꺽대면서도 인연을 이어나간다.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그녀이기에. 그런 새아에게 부드럽고 안정감을 주는 '조예찬'이 다가오고 그녀는 흔들리게 된다. 사랑은 타이밍이라고 했는데 이미 불꽃이 튄 지혁과 새아 사이에서 과연 예찬은 사랑을 쟁취할 수 있을까? 어린 시절 뉴질랜드로 이민 가서 자유롭게 자란 예찬은 그 성정처럼 상처 입은 새아를 부드럽게 어루만져 준다.

확연하게 타입이 대비되는 삼각관계 구도가 1,2권에 걸쳐 펼쳐지면서 독자들의 관심과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지혁파, 예찬파가 갈려 응원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주를 이루는 지혁과 새아, 예찬 러브라인 못지않게 주변 인물 이야기들도 의미 있게 다뤄진다. 결혼, 연애에 대한 이야기이고 2,30대 직장인들이 등장인물이라 현실적인 내용이 많이 눈에 띈다. 학자금 대출을 갚느라 연애는 꿈도 못 꾸는 청춘 유준에게 저돌적으로 다가온 다람에게 벽을 치는 모습이 N포 세대의 아픔을 드러내고 있다. 웨딩플래너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으나 실적으로 정해지는 월급은 매달 스트레스이고, 빚을 갚느라 결혼비용은 현실적으로 꿈도 못 꿔 결혼도 연애도 다 남일인 그이지만, 자꾸 다가오는 다람이 신경 쓰인다.

예찬은 <결혼의 민낯>이라는 프로젝트를 기획하는데 뜨끔한 면면들을 포착하고 있다. 예식을 축하하러 온 이들이 예식보다는 식당에서 밥만 먹고 사라지고, 결혼식은 시간대별로 착착착 공장에서 다음 예식을 찍어 내듯이 진행된다. 축의금을 봉투에 넣어 주면, 바로 돈을 꺼내 액수를 장부에 적고 적은 돈에 많은 가족을 데려온 사람을 탐탁지 않게 바라보는 등의 모습, 축의금 액수로 인간관계를 재평가한다는 소리까지 나온다. 결혼식에 수천만 원을 쓰고 있는 우리네 현실이 과연 옳은 것인가? 의문이 든다. 남녀가 만나 또 다른 하나가 되는, 특별한 결혼이 형식에 갇혀 의미를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든다.

 

결혼을 목표로 달렸던 새아가 감정에 충실하기로 결심하고,

결혼만은 피하려고 몸부림쳤던 지혁이 결혼도 불사하기로 마음먹었다.

사랑은 이렇게 서로를 변화시킨다. 이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는 현재진행형.

『밀당의 요정』 3권에서는 어떤 이야기들이 펼쳐질지 두근두근 거린다. 그리고 웹툰 『밀당의 요정』 또한 캐릭터들의 매력을 얼마나 잘 표현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



<이터널 선샤인>

무의식에 대고 이야기하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이 사람이 좋다는걸, 다 말로 설명하긴 힘들잖아요. 감각이란 게 오감만 있는 게 아니거든요. 처음 보는 남녀가 서로 끌린다는 것 자체가 이미 무의식의 필터에서 오케이 사인을 준 거니까. 이후 갖가지 이성적인 이유로 이 사람이 좋다, 싫다 판단할 순 있지만 그래도 무의식은 알고 있는 거죠. 이 사람이다, 나는 이 사람한테 끌린다.

 

<건축 철학>

건축은 크고, 무겁고, 장대한 예술이죠. 정말 많은 사람들의 손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니까, 모든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어 낼 수 있어야 돼요. 그래서 더 오롯해야 되고, 흔들려서는 안 되고.

 

<웨딩 철학>

사랑에서 사랑을 배운다.

건축도 웨딩이랑 똑같은 것 같아요. 현장은 전쟁이고, 누구 하나 다치면 정말 큰일이니까 계속 긴장의 연속이고, 잠깐 딴 데 보고 있으면 재공사 해야 할 부분이 생기고, 설계대로 안 될 때도 있고, 정신없는데...... 막상 끝나고 나면 나랑 건축물만 남아요. 그때 알죠. 이 평안을 위해서, 이 고용함을 위해서 그 전쟁을 견뎠구나. 건축물은 말이 없으니까.

웨딩도 그랬어요. 남북전쟁 같은 결혼 준비도, 막상 끝나고 나면 오롯하게 두 사람만 남아요. 그때부터 진정한 대화가 시작되는 것 같았어요.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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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소크라테스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은모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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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카 고타로』 작가의 데뷔 20주년 기념작 【거꾸로 소크라테스】

- 답답한 어른들의 선입관, 우리가 다 뒤집어버리자!

 

 

거꾸로 소크라테스/이사카 고타로/소미미디어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선입견들을 비틀어 꼬집는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주된 이야기 배경은 초등학교로 초등학생들이 답답한 어른들의 선입관을 그들만의 방식으로 뒤집는다.

 

▶ 선입견 ◀

1. 핑크 옷을 입은 아이는 여자 같다. - 거꾸로 소크라테스

2. 달리기를 못하고 왜소한 아이는 왕따일 것이다. - 슬로하지 않다

3. 부임한 지 얼마 안 된 선생님은 못 미덥다. - 비옵티머스

4. 한번 나쁜 놈은 영원히 나쁜 놈이다. - 언스포츠맨라이크

5. 새아빠는 아이를 학대할 것이다. - 거꾸로 워싱턴

 

선입견은 고정관념으로 우리가 판단을 내리는 데 잘못된 영향을 미친다. 외부에서 얻을 수 있는 현실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를 외면한 채 오로지 주관적인 정보 - 나의 생각, 신념, 가치관 - 만을 기준으로 세상을 판단하게 된다. 지속되다 보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믿고 싶은 것만 믿게 된다. 우리가 사용하는 '답정너', '꼰대' 등 선입견으로 무장한 사람들을 지칭하는 표현을 보면 부정적이고 답답하고 편향적인 시선이 느껴지지만, 이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듯해 안타깝다. 완벽한 사람은 없는데도 '자신은 항상 옳다. 틀릴 리 없다.'라는 생각은 매우 위험하다. 이런 선입견들이 역사상 얼마나 큰 재앙을 불러왔는지 떠올려보면 말이다.

 

 


 

심리학 용어인 '교사 기대 효과', '피그말리온 효과'는 교사의 학생에 대한 기대가 학업 성취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말하는데, 교사가 학생을 우수하다고 지각하면 그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그 기대에 맞는 지도를 하게 되어 학업 성취가 증대된다는 것이다. 반대로 학생을 무능하다고 보면 기대감이 낮아 성의 있는 지도를 하지 않기 때문에 학업 성취 또한 낮아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교사의 학생에 대한 기대는 쉽게 변하지 않는 지속성이 있다.

 

'거꾸로 소크라테스'에서 구루메 선생은 제자 구사카베를 얕잡아 보고 매번 그를 무시하는 행동과 말을 서슴지 않는다. 그로 인해 구사카베는 위축되어 있다. 일례로 구사카베가 분홍색 옷을 입고 온 적이 있었는데 "여자처럼 입고 왔구나."라는 말을 구루메 선생이 해서 동급생들에게 '구사코'라고 놀림을 당하게 되었다. 초등학교가 배경이라 소설 속에서 교사의 영향력, 역할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데 구루메 선생은 선입견을 가지고 학생들을 지도하는, 답답한 어른의 전형이다. 구사카베의 친구인 안자이는 이를 무너뜨리기 위해 작전을 펼치고 구사카베는 구루메 선생을 향해 천천히 또박또박 말한다.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이렇게 통쾌할 수가 없다.

 


 

'비옵티머스' 2년 전 사랑하는 연인을 눈앞에서 사고를 잃고 무기력하게 교사 생활을 하고 있는 구보 선생님은 학교 공개 수업을 하게 된다. 제자 나이토의 주도하에 양철 필통을 일부러 떨어뜨리는 소란이 일고 학부모들은 선생님께 강한 훈육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데, 구보 선생님이 밍밍한 말투의 창백하고 기운이 없는 '끝물 호리병박'이었던 이전과는 다르게 길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상대에 따라 태도를 바꾸는 사람이 되지 않았으면 해." 중요한 삶의 자세를 알려준다. 체벌은 왜 해서는 안 되는가. 법률로 정해지지 않은 일은 어떻게 지키게 할 것인가 등 당장 필요하지는 않지만 중요한 일들을 열심히 고민했던, 교사가 되기 전 모습으로 돌아간 그는 진정한 교사로 우뚝 서 있었다.

 

 

 

 

'슬로하지 않다'/'언스포츠맨라이크' 두 개의 에피소드에서 등장하는 이소켄 선생님은 질문에 대한 답을 직접적으로 알려주지 않고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유도한다.

'슬로하지 않다'에서 왕따 가해자가 전학생으로 왔을 때 "저번 학교에서 왕따를 당해서 전학 왔다는 거 진짜예요?"라는 질문에 넌지시 학급 친구들에게 "만약 왕따를 당했단 뭔가 달라지니? 다시 시작하려 한다면 그걸 도와주고 싶지 않니?"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전학생의 행동도 우리에게 많은 부분을 깨닫게 해준다. 진심으로 달라지려 하는 모습과 예전 자신과 비슷한 이에게 보여주는 진정한 염려와 안타까움이 우리의 마음을 움직여 어리석었던 과거를 털어버리고 행복해지길 바라게 된다.

'언스포츠맨라이크'는 리틀 농구단에서부터 시작된 인연이 어른이 되어서까지 이어져 온 친구들이 겪는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소켄 선생님은 리틀 농구단 임시 코치를 맡게 되었고 중요한 조언들을 해준다.


 


 

이 글을 읽고 1년여 전 출소한 '조두순'이 떠올랐다. 과연 그와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을까? 그의 행복을 빌어줘야 하나? 왜? 물론 이소켄 선생님이 제자들에게 하는 말들 대부분이 살아가는 데 힘이 되어주고 통찰력을 길러준다. 그리고 소설 속 범인이 마지막 에피소드에 나오는 가전제품 대리점 점원일 것 같아 갱생하여 일반인처럼 살아가는 해피엔드 결말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현실 속 나는 범죄자가 행복하게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경지는 이르지 못할 것 같다. 그게 현실적인 방법일지라도 피해자의 한과 억울함이 너무나도 무거워 힘들다. 극단적인 예를 든 것 같지만 범죄자가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자립은 필요하다까지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인 것 같다.

 

'거꾸로 워싱턴' 워싱턴 대통령의 유명한 일화가 지어낸 이야기라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 얼마나 충격을 받았던지 모른다. 그래도 자주 많이 회자되고 우리 기억에 남아 있는 걸 보면 '정직'이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도시히코와 겐스케가 합리적인 의심을 하여 학대를 당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친구를 도와주려고 노력하는 면이 대견하였다. 그리고 야스시 아버지와 겐스케 어머니 또한 바른 어른의 모습을 보여줘서 답답한 어른만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에 기분 좋았다.


 

 

다섯 가지 선입견을 비트는 다섯 가지 에피소드들을 찬찬히 읽다 보니 학부모로서의 내 모습, 부모로서의 내 모습, 어른으로서의 내 모습을 반성하게 된다. 소설 속 너무나 쉽게 체벌을 말하고 아이들의 의견은 묵살하는 등 한 인격체로 존중하지 못하는 모습들이 불편하면서도 미성숙하여 돌봄과 배려, 응원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나 또한 순간순간 편한 방식으로 통제하지는 않았나 되돌아보았다. 완벽한 인간은 없다. 그 자명한 사실을 잊지 말고 살아가야겠다.

 

소설 속 무릎을 꿇리려는 아저씨나 자신의 배경을 믿고 남에게 함부로 대하는 친구, 자신만이 옳다고 믿는 선생님처럼 선입견에 갇혀사는 이들을 현실 속에서 간혹 만나게 된다. 아빠의 영향력만 믿고 친구를 얕잡아보다가 아빠의 고객 아들이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당황했던 나이토 같은 상황은 현실 속에서 쉽게 벌어지지 않는다. 그렇다 한들 남의 말에 흔들리지 말고 어떻게 생각할지는 자신이 결정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우리 아이들도 그런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다. 타인이 일방적으로 단정하는 말을 절대로 그냥 받아들이지 말고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해." 말할 수 있는 이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거꾸로 소크라테스> 선입견의 맹점을 꼭 짚어주는 통찰력 있는 이야기들에 공감하고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는 연말연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과 같이 읽고 대화 나눠보시는 건 어떠세요?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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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있어서 괜찮아
임하운 지음 / 시공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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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불러봅니다.

임채웅, 김초희, 백인우.

마음이 먹먹해지는 이름들입니다. 오롯이 새겨져 가슴을 저미는 아픔이 한동안 제 안에 둥지를 틀 듯합니다. 그렇게라도 세상 어딘가에 존재할 채웅과 초희와 인우에 대한 미안함을 감당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네가 있어서 괜찮아/임하운/시공사

 


이제 중3, 열여섯 살 아이들의 인생이 이토록 처참하고 암담할 수 있는지 읽으면서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그 아이들 모두 자신들의 책임이 아닌 일들로 혹독한 벌을 받고 있는 상황이 소설을 통해 전개되니, 감정이입을 하면서 아파하고 미안해하고 분노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현실에서 뉴스로 접했다면 이 소설 내 무심한 댓글 속 익명인처럼 쉽게 판단하고 결론짓고 비난하거나 불쌍하게 여겼을 겁니다. 무섭고 가슴 아픈 일이지만 나에게는 그냥 스쳐 지나가는 일이니까요. 비겁하고 끔찍하게도.

 

초반에 캐릭터에 대한 이해 없이 만났던 채웅과 초희는 이해하기 힘든 존재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임채웅 - 김초희 - 임채웅 - 김초희 ...... 반복되는 화자가 전해주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 같은 고통 속에서 자신만의 갑옷을 걸친 채 버텨온 채웅과 초희가 그리고 인우가 또렷해졌습니다.

 

 

 

 

'그 사람'

'생존자'

낯선 단어들이 아이들을 정의하는 그 공간은 결코 그들에게 공감과 위로와 배려를 베풀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대신해서 다른 가족들이 죽었다는 비난까지 서슴지 않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열 살의 어린아이들이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을지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네요. 살아 있는 데 사는 것 같지 않은 눈. 살아남은 아이들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가엾은 영혼이나 한 명은 남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할까 전전긍긍하여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못해 '호구'로 살아가고, 다른 한 명은 아무도 지켜주지 않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니 내일은 눈이 떠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살아내고 있었습니다. 둘이 만나서 "네가 있어서 괜찮아" 서로에게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고, 억눌러왔던 삶의 욕구를 발산하게 하고, 행복해지고 싶다고 꿈꾸니 다행입니다.

 

"나는 네가 싫지가 않아. 그냥 이해가 돼."

"이상한 애야. 바보 같아. 자꾸 바보 같은 짓을 해서 사람을 기대하게 해."

"그 애랑 있으면 내가 조금씩 달라지는 게 느껴져. 채희 그렇게 죽고 한 번도 제대로 웃어본 적이 없는 데 그 애랑 있으면 내가 진심으로 웃고 있어. 난 평생 행복하면 안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았는데, 그 애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니까 나도 행복해지고 싶어졌어."

"난 전부를 잃었으니까."

 

둘이는 초희의 제안으로 감정을 공유하지 않고 곁에 머무는 이상한 관계지만 점차 가까워지는데, '그 사람'의 아들인 또 다른 상처 받은 영혼 '백인우'의 등장으로 또 다른 국면을 맞이합니다. 처음으로 자기를 알아봐 주는 사람을 만나 어떻게든 살아보려는 희망 같은 게 생겼는데, 이제는 '그 사람'을 털어내고 행복하게 살아가고 싶은데, '그 사람'을 아니 그 끔찍한 순간의 용서할 수 없는 자신을 떠올리게 하는 아이가 나타나다니 운명의 장난이네요.

오히려 채웅와 초희가 아닌 제 삼자가 인우를 상처 입히고 괴롭히는 모습에서 그릇된 정의의 탈을 쓴 또 다른 폭력을 목도하게 됩니다. 우려와 달리 피해자와 가해자의 아들이 아닌 '그 사람'에 의해 삶을 잃어버린 세 아이가 서로에게 희망이 되어줍니다. "잘못한 거 없어." 이 한마디에 담긴 이해와 공감이 살아가고 싶다는 힘이 되어줍니다.

 

언니에게 안녕을 고하는 초희와 초희에게 친구가 되자고 권하는 채웅과 고맙다고 말하는 인우처럼 서로를 이해하고 감싸 안아주는 동지의 존재가 오늘을 살아 내일을 맞이하게 합니다. "다행이네." 말해준 선우와 같은 마음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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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 누가 데려가나 했더니 나였다 - 웃프고 찡한 극사실주의 결혼생활
햄햄 지음 / 씨네21북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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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바와 판다의 사랑 이야기 <널 누가 데려가나 했더니 나였다>

귀여운 표지와 앙증맞은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만화 에세이로 제목부터 범상치 않다.

나, 꾸밈없는 사람이오. 대놓고 홍보하는 제목처럼 책 곳곳에서 저자의 털털함과 진솔함을 느낄 수 있었다.


널 누가 데려가나 했더니 나였다/햄햄 지음/씨네21북스



1라운드 - 어느 서늘한 연애담

2라운드 - 기묘한 동거 시절

3라운드 - 결혼이라니, 결혼이라니!

 

 

연애 이야기로 시작해 동거 그리고 결혼에 이르기까지 그들만의 이야기를 현실감 있게 그려내서 공감을 자아낸다. 이제 결혼 2년 차인 신혼이지만 긴 시간 연애와 동거로 더 이상 볶을 깨가 없어서 잔잔한 시작이었다고 아쉬움을 토로하는 글을 보면서 나는 고개를 세차게 젓는

다. 결혼 16년 차에 접어든 내가 보기에는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럽고 달달한 그들이기에 보는 내내 향긋하고 달콤한 내음에 행복했었다고 말해주고 싶다.



 공감 가는 에피소드



자립적인 두 남녀가 연애 시작부터 결혼까지 일상을 필터링하지 않고 보여주는 형식이라 MZ 세대의 현실적인 사랑 이야기가 펼쳐진다.

사랑이 시작되는 이유가 운명처럼 극적이지 않아서 더 공감이 갔다. 한번 눈이 닿은 곳은 자연스레 시선이 가게 된다. 시바도 같은 회사에서 판다의 등이 눈에 들어왔고 어느새 모든 시야에 꽉 차 버렸다.

서늘한 연애담 에피소드 중 반지하 판다의 첫 자취방 이야기들이 많다. 안타까운 청년들의 현실을 그리면서도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시간 속에서 솟아나 뻗어나가는 사랑의 줄기가 그들을 더 강하게 묶어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반지하 방에 핀 곰팡이를 신사임당의 초충도 속 포도송이처럼 멋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시바의 독특함이 사랑스럽다. 그리고 그녀를 한결같이 잔잔하게 바라봐 주고 묵묵히 곁에 있어주는 판다의 듬직함이 멋지다. 그래서 그들은 다음 단계로.

 

 


 

연애와는 또 다른, 현실적인 면을 알게 하고 서로에 대해 더 깊숙이 들어가는 문을 여는 동거 생활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이 맞다'라는 확신이 들어 결혼까지 한 시바와 판다 커플.

중증 개털 알레르기 보유자면서도 반려견 '하루'와 죽고 못 사는 관계인 판다처럼 이미 서로에게 당연한 존재가 된 시바와 판다 그리고 하루의 일상이 사랑스러운 그림체와 색감으로 포근하게 그려져서 실제 투닥투닥거리는 싸움 장면이 그려져도, 시바의 불타오르는 분노가 느껴져도 괜스레 미소가 지어진다.

 


 

- 너 좋다는 여자가 생긴다면 -

 

사람이 사람한테 이렇게 빠질 수 있구나.

판다가 인기 많을까 봐 살 빼고 머리숱 많아지는 게 싫다는 말에 한바탕 웃고,

한날한시에 같이 죽게 해달라는 소원에 눈이 번쩍 뜨이고,

바람피우는 꿈에 화가 나서 자고 있는 판다의 뺨을 찰싹 때리고 배신감에 우는 시바의 모습에

저렇게 좋을 수가 있구나.


 

천천히 우리들의 속도대로, 그렇게 가자.

단지 다른 방법으로 사랑하는 것일 뿐. 쫌 들어주면서 살지 뭐. 들어주면서.

우리는 서로 사랑하지만 서로 다른 사람이기에 똑같은 방법으로 사랑하지 않을 뿐이다. 물론 내가 원하는 대로 사랑해 주면 좋겠지만, 나 또한 그렇게 해줄 수 없음을 알기에 각자의 방식으로 그렇지만 우리가 행복할 수 있도록 사랑을 계속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와 남편의 지난 추억들이 새록새록 피어났다. 여자, 남자, 연인의 관계가 아닌 엄마, 아빠, 주부, 가장으로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옅어지고 사라져가던 사랑의 기억들이 퐁! 퐁! 퐁! 튀어나왔다. 괜스레 소파에서 누워자고 있는 남편에게 담요를 덮어주게 된다. 그리고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그리고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고 말을 건넨다. 혼자 헤매지 않고 두 손 꼭 잡고 앞으로 걸어가는 시바와 판다의 내일을 응원해 본다. 우리 모두 행복하기를.

 

연말연시에 따뜻한 집안에서 꼬물꼬물 거리면서 보면 좋을 책 ♡

바라만 봐도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던 시간을 불러와 웃고 울고 살아가는 내음 가득한 우리의 이야기와 시바&판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함께 나눠요. 

 

<한겨레출판 서평단 하니포터1기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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